'이재훈'에 해당되는 글 44건

  1. 2022.07.12 배진우_세상이 세상을 읽어가는 동안(작품론)
  2. 2022.07.12 류수연_ 어제로부터 오늘, 오늘로부터 내일('생물학적인 눈물' 서평)
  3. 2022.07.12 정재훈_우리가 사랑하게 될 족속('생물학적인 눈물' 서평)
  4. 2021.04.11 이천만 원 농가주택의 꿈 1
  5. 2019.08.17 문학관 시네마실 - 지니어스
  6. 2019.08.17 문학관 시네마실 - 트럼보
  7. 2019.08.17 문학관 시네마실 - 실비아
  8. 2019.08.17 문학관 시네마실 - 비커밍 제인
  9. 2019.08.17 문학관 시네마실 - 조용한 열정
  10. 2019.08.17 문학관 시네마실 - 일포스티노
  11. 2019.08.17 2019 노작홍사용문학관 문학관 시네마실 커리큘럼
  12. 2019.02.10 [이달의 시인] 신작시/대표시/시인론(안서현)
  13. 2019.01.30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기독교적 상상력
  14. 2018.01.29 편지
  15. 2017.10.26
  16. 2016.08.11 속초에 간 약수파_ 오은
  17. 2015.08.27 송종찬_ <베리아의 들꽃>(낭송 : 이재훈) 2
  18. 2015.02.06 합정역 굴사냥
  19. 2015.02.06 약수파 사진
  20. 2014.08.27 내 최초의 말이 사는 영토의 영주_ 이재훈 조동범 대담
  21. 2014.07.02 [대담] 아닌 척 노력해도 종국에는 오은인 걸 들키고 마는 시 (오은 시인)
  22. 2014.05.19 현대시 2014년 5월호_ 표지
  23. 2014.05.17 이승훈 선생님
  24. 2014.03.31 신동옥의 집
  25. 2014.03.31 약수파
  26. 2013.12.02 극단 <두목> 특강
  27. 2013.10.11 홍대에서의 기록
  28. 2013.09.27 어느 술집의 기록
  29. 2013.07.16 나를 치유한 나의 시_ 이재훈 <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
  30. 2013.07.12 당신의 물체주머니_ 이재훈, 박성준

세상이 세상을 읽어가는 동안

  
배진우(시인)



  새로운 언어를 접할 때는 새로운 추임새를 배우고 새로운 문화를 배운다. 새로운 언어를 사용할 때 내가 아니던 내 성격이 튀어나온다. 몇 개 국어가 가능한 사람에게 나는 질문을 던진다. “외국어를 쓸 때 다른 사람이 되는 거 같아?” 어떤 사람은 그렇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내 성격이 어디 가겠느냐며 모국어를 쓸 때처럼 한결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라틴어를 배우는 시간」을 읽고 생각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언어로 세상을 읽어나가는 것에 제한이 있다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내가 아닌 성격으로 세상을 읽어간다면 다르게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세상을 읽기에 좋은 언어와 성격은 무엇일까. 내가 알고 있는 언어가 세상의 끝 같다. 세상이 벅차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는 세상을 설명하기에는 한 박자 느리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한다면 세상이 조금 더 쉬울까. 
 「라틴어를 배우는 시간」의 화자는 질문한다. 그리고 대답한다. 무언가가 되어 있지 않은 문장으로 말을 채웠다. 무언가 된 것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무언가가 되고 싶어서 연습한다. 말하며. 우리들이 알고 있는 기본적인 회화를 벗어나서 말이다.

  말을 하고 있는 나와 내가 말하고 있는 나는 다르다. 시에서 화자는 이 사이를 오가며 자기를 소개하며 자기의 위치를 보여준다. 말하고 있는 화자의 위치는 나약하다. 본인 소개를 통해 보자면 나약한 곳만 ‘찾아’다녔다. 약자와 잊혀 진 것 사이에서 그간 시인은 이야기를 해왔다. 이재훈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에서 표제작인 「명왕성 되다」에서는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 잊혀진 얼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는 문장이 있다. 명왕성은 더 이상 행성이 아니다. 행성에서 소외당했다. 명왕성이 행성이다 아니다 라고 말하는 인간이 있기 전부터 명왕성은 그 자리를 지켰을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명왕성은 거기 있었고 사람들은 명왕성을 정리했다. 남아있는 명왕성을 읽은 것은 시인이다. 이처럼 사회적 분유물이 되어버린 것을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은 이번 작품에서도 남아 있다. 나약하고 쓸쓸한 화자의 언어를 옮겨 적음으로 인하여 라틴어를 배우고 있는 그의 자리를 보여준다.    
 
 「라틴어를 배우는 시간」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 첫 문장은 “선생님.”이며 마지막 문장은 “눈곱을 떼어내고 이방의 언어로 세상을 겨우 읽기 시작한 근사한 순간이에요.”이다. 시의 첫 단어 “선생님.”으로 보아 강의실에서 라틴어를 배우며 말하는 화자가 그려진다. 화자가 연습하는 문장은 당연하게 자기를 소개하는 것이다. “저는 집을 떠나본 적이 없어요. 바닷가의 노을을 보고 싶어도 참았어요. … 대신 저는 죽지 않았어요. 겁은 났지만 나약한 자리만 찾아다녔죠. … 먼 바다의 시간을 견뎠어요. …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죄라는 사실을 몰랐죠. … 거리를 걷다가 넘어져 있는 나를 보았어요. 무릎 꿇고 울고 있어요. 나는 선물이 되지 못하고.” 
  화자가 지금 당도해 있는 공간은 ‘선물이’ ‘맛이’ 무언가가 되지 못하는 무언가가 될 수 없는 공간이다. “맹인이 그림을 그리고, 벙어리가 노래를 부르”는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곳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 계속하여 불가능한 것으로 남아있는 것밖에는 되지 못하는 곳이다. 화자는 이 공간을 벗어나려 한다. 언어를 통해.

  화자는 본인의 영역을 떠나 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 배우고 ‘괜찮다면 괜찮은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려 한다. 본인이 살고 있는 영역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순간을 상상한다. 그리고 “눈곱을 떼어내고 이방의 언어로 세상을 겨우 읽기 시작한 근사한 순간이에요.” 이방의 언어로 세상을 곧 읽어나갈 것이다. 
  질문하는 문장과 아무것도 되지 않으려고, 되지 않은 문장의 연쇄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의도가 되는 문장들.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고 부서질 듯 부서지지 않은 가늘고 강한 문장들이 이 시에 있다. 언어가 밖으로 나온 이상 언어가 읽어갈 세상을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언어로 “가장 위험한 사랑”의 시간을 시작할 것임을 믿는다.

 *
  
  세상을 읽어가는 방법 중 하나로 우리는 언어를 배운다. 언어를 배우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한다.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만든다. 슬퍼서 슬프다고 말하고. 들어주는 사람은 때때로 알맞은 표정을 지어준다. 「라틴어를 배우는 시간」을 읽고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아 밑줄을 그었다. 어제의 문장과 오늘의 문장이 달랐다. 마치 슬픈 이야기를 하는 사람 앞에서 다른 표정을 지어주기 위해 잠시 노력했던 것처럼.   
 언어를 어디까지 알아야지 시를 쓸 수 있을까? 또한 잘 읽을 수 있을까? 국어사전을 펴놓고 단어에 집착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시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에는 도움을 주진 못한다는 것만 깨달을 뿐이다. 글쓴이는 지금도 알고 싶다는 욕심의 덩어리만 있을 뿐 시를 모른다. 그렇기에 시를 쓴다. 그렇다면 새로운 언어를 잘 모를 때에도 막연한 문장의 충돌 사이에서 시가 나오지는 않을까. 몰라서 목적어를 잊고 횡설수설하며 내가 가지고 있는 답답한 언어의 범위에서 무언가를 말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 때에는 언어에게 구걸이라도 하여 정확한 문장을 가지고 싶다.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문장을. 또한 세상이 나의 문장을 읽어주길 바랄 때도 있다. 세상 어딘가에는 나의 문장이 속하기를 바란다. 

_ <현대시> 2019년 7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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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로부터 오늘, 오늘로부터 내일


류수연(문학평론가)



2. 우리 모두의 생물학적인 슬픔 – 이재훈의 '생물학적인 눈물'

이시영 시인의 세계가 일상에서 문득 포착된 자연의 찰나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고자 했다면, 이재훈 시인의 새 시집 '생물학적인 눈물'(문학동네, 2021)이 응시하고 있는 세계는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 그 자체이다. 시인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삶이고, 그것을 살아내는 인간이다. 

차창 밖으로 비가 내린다.
버스를 타기 전에는 맑았던 하늘인데
집으로 가는 길에 비가 내린다.
지방 소도시의 대학에서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갈 때면 늘 가혹하게 막힌다.
모두 저마다 집으로 가거나
외로움을 달랠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저녁 일터로 가는 길일 것이다.
휑한 마음 한구석에 빗방울이 또르륵 떨어진다.
매일 보따리를 들고 어딘가로 나서는
장사꾼의 저녁이 궁금하다.
언제쯤 집에 당도할까.
쉬어야 할 집은 멀고
목은 더 컬컬해진다.
버스 뒷자리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사연인지 생각하다
뒤로 가서 가녀린 등을 토닥거려주고 싶지만
모르는 척 그냥 눈을 감는다.
도착할 집은 멀고 잠은 오지 않는다.
버스가 도착할 무렵이면
가까운 막걸리집부터 찾을 것이다.
컬컬한 목이 바짝 마른다.
- 「퇴근」 전문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가는 길, 휴식이 되어야 할 집은 아직 멀기만 하다. 버스를 채운 사람들의 모습조차 크게 다르지 않다. 집으로 돌아가거나, 누군가를 만나러 가거나, 아니면 또 다른 일터로 향하는 길. 시인은 그곳에서 문득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도 이미 알고 있다. 이 외로움은 사실 그리 지독하거나 절망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그것은 이미 오래도록 익숙하게, 삶의 매순간마다 마주쳐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목이 바짝 마르도록’ 긴장되고 힘겨운 것은, 그것이 영원히 극복되지 않을 근원적 고통임을 보여준다.
과장되지 않게,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게 시인의 일상에 배어들어 있는 이 슬픔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진원지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을 운명적인 슬픔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기원은 아무래도 시인의 이전 시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꽃 속에 산다.
웅덩이에 잠겨
달콤함에 취해
먹고 싸며 늙는다.

그곳이 지옥인 줄 알고
기어 나올 때

지옥을 보려고 온 사람들
예쁘다고 기념할 때

벌레들끼리 서로 눈 마주쳐
징그러워 깜짝 놀랄 때

마지막 계절은 
툭 떨어진다.
- 「벌레」 전문

이재훈의 전작 󰡔벌레 신화󰡕에 실린 「벌레」는 기괴하기보다는 애잔하다. 벌레의 존재가 인지되는 순간은 벌레(혹은 벌레임을 각성한)들이 ‘서로 눈이 마주치며’ 놀라는 바로 그 때이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느 순간에 서로와 조우하는가이다. 그들만의 지옥을 벗어나자 오히려 혐오의 지옥이 펼쳐지는 이 모순된 순간. 시인은 한 마리의 벌레가 된 자신을 자각한다. 그리고 그의 계절이, 세계가 변화한다.

바람은 바닷물을 뒤집고
바닷물을 따라 물고기들이 솟구친다.
햇빛에 몸을 기울이는 수중식물이
바닷물끼리 부딪히는 협곡에 숨어
줄기에 공기를 불어넣는다.
몰락의 길에는 비상구가 없다.
오랜 사랑이 없고 도륙과 생존만이
물속의 시간을 지배한다.
맑은 하늘 아래 아이가 뛰어놀고
씨앗들이 바람을 따라 잉태하는 땅.
순수한 길을 걸었다는 어떤 시인의
추악한 옷가슴을 보았을 때
원시의 바다를 생각한다.
오직 생존만이 도덕인 바다의 꿈틀거림.
미래를 점칠 수 없는 계절이 계속되고
가장 알량한 회개가 마음을 헤집는다.
수면 위로 솟구쳐올라 바위에 온몸을 부딪치는
눈물벼락.
남몰래 땅속을 흐르는 물주머니가
천둥처럼 얼굴에 달라붙는다.
- 「생물학적인 눈물」 전문

시인이 지옥 바깥에서 만난 또 다른 지옥은 더욱 추악하다. ‘사랑은 이미 사라졌고 도륙과 생존만이 지배한다.’ 순수를 노래하는 시인조차 사실상 이 타락한 세계의 일원일 뿐, 그 어떤 순수도 실재(實在)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저 타락과 자조만이 남았을 것 같은 그곳에서, 시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눈물’과 조우한다.
스스로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이러한 마음의 동요를, 그는 “가장 알량한 회개”라고 지칭한다. 어쩌면 그것은 이성이나 감정이 아닌 본능에 가까운 것, 깊은 반성이나 공감이라기보다는 값싼 연민과 동정일지 모를……. 그리하여 오늘이 지나면 금세 잊혀져버릴 것들……. 차마 반성이라고 명명될 수조차 없는 찰나의 것. 
하지만 그 보잘 것 없었던 감정은 이내 그의 모든 것을 헤집는다. 폭풍이 된다. 거센 파도가 된다. 그리하여 온 얼굴을 메운 눈물이 된다. 그리고 이 눈물이야말로 지옥에서 우리를 견디게 했던 유일한 힘이었으며, 지옥 바깥에서 마주친 서로를 향한 지독한 연민과 공감의 언어였음이 다시금 환기된다. 이재훈의 시가 우리에게 속 깊은 위로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눈물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나오종 지닌 것”(김현승의 「눈물」)이므로.

3. 또 다른 위로의 시간을 맞이하며

2021년 12월,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지난 2년보다 더 암울하다. 2022년 1월, 우리가 마주하게 될 현실은 이보다 더 암울할지 모른다는 우울한 관측이 더 많다. 끝이 보일 듯 보일 듯 이어진 팬데믹 상황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강탈당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도둑맞은 시간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고, 살아내야 한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결코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공백의 시간을 살아야 했지만, 그 안에서 ‘우리’를 발견하는 것은 이전보다 훨씬 쉬운 일이 되었다. 서로를 향한 연민과 공간으로 그 공백을 채우고, 이 지옥의 시간을 함께 살아내었다는 사실 역시 결코 지워지지 않는 진실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가장 큰 위로로 존재해왔던 것이다. 

좋은 시인이란 그러므로 귀가 쫑긋 솟은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잉크병 얼어붙은 겨울밤 곱은 손 불며
이 모든 소리를 백지 위에 칠필로 꾹꾹 눌러쓸 것이다
- 이시영의 「듣는 사람」 부분

풀잎이 너를 쓴다.
멀리서 너를 읽는 소리가 들린다.
네 몸이 조각나 날린다.

우린 모두 피를 만드는 사람.
어떤 사람은 역사를 쓰고
어떤 사람은 일기를 쓰고
어떤 사람은 시를 쓴다.

새벽이 건너가는 소리 들린다.
거울을 보니 흰 수염이 가득하다.
- 이재훈의 「에다」 부분

그러므로 시인의 오늘에서 다시 시작하자. 시인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결국은 무엇인가를 쓰는 일이며, 때로는 쓰지 않은 혹은 쓸 수 없는 그 무엇을 환기하는 일이다. 시인에게 그것은 그저 주어진 소명일 뿐이다. 그들이 하루를 살아가고 살아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며,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전하는 위로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어제처럼 오늘을, 그리고 오늘처럼 내일을 살아가는 그 순간들 말이다.
지난 2년,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그저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그리고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받는 그런 시간을 살아왔다. 그리고 내일도 우리는 여전히 그런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소명으로, 살아낸 어제와 살아가는 오늘과 살아갈 내일을 통해, 우리는 그 무엇보다 서로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공백의 시간에 압도되지 말자. 서로를 향한 위로로 우리는 이미 그 공백을 채워왔으니 말이다. 

_ <현대시> 2022년 1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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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멍때린다는 시쳇말이 있다. 아무생각 없이 멍 하니 오래 있다는 말이다. 멍때리는 자를 나무랄 수는 없다. 누구나 멍을 때리니까. 멍때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마음이 허하든지, 배가 고파 허하든지, 무기력해서 허하든지. 고통이 극에 달해서 허하든지.

나도 자주 멍때리는 편이다. 깊은 밤 혼자 TV를 무심코 켰다가 멍때릴 때가 있다. 그 프로그램은 아무 때나 켜도 늘 방영된다. 아마 24시간 방영하는 것 같다. 멍때리고 싶을 때는 그 프로를 틀면 된다. 바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 아마 나 같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장수하나 보다. 그 프로는 희한한 구석이 있다. 일단 보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마치 아는 사람이 출연했어? 라고 옆에서 누군가가 물어보기라도 하듯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게 되는 것은 지금 이곳의 결핍 때문은 아닐까. 산골의 원시적인 삶이 채워주는 무언가가 있다. 어떤 사람은 고요를 채우고, 어떤 사람은 자유를 채운다. 어떤 사람은 싸움이 없어 좋고, 어떤 사람은 건강해져서 좋다. 나는 자연인들에게서 공통된 것을 발견했는데, 그건 바로 고통스러운 세속에서 벗어나 산골을 택했고 그곳에서 상처를 보듬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무욕이 가져다주는 미소가 깃들어 있다. 그것이 다분히 연출된 것이라 해도 도시에서의 파탄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아파본 사람, 망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삶의 중요한 목록이 있을 것이다. 그 목록이 세상과 절연한 자연인을 통해 투사되는 게 아닐까. 그 프로를 오래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자연인들의 사연은 늘 비슷비슷하다. 어쩌면 시청자들에게는 그들의 사연이 중요하지 않은지 모른다. 그들의 사연과는 무관하게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을 다른 곳에 둘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늘 어딘가를 꿈꾼다. 꿈은 늘 이곳에 없는 공간을 이상향으로 만든다. 도시에 살면 시골을 꿈꾸고, 시골에 살면 도시를 꿈꾼다. 나도 어릴 적 시골에 살 때는 도시를 꿈꾸었다. 빌딩을 드나들고 지하철 타는 꿈을 꾸었다. 도시의 매연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무궁화호 기차가 서울의 한강철교를 넘어갈 때면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시골에서 살고 싶다. 꿈은 늘 지금 이곳의 결핍을 드러내준다.

꿈꾸는 유토피아가 문학에서는 아주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것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 주는 기쁨을 자주 얘기한다. 하지만 자연인처럼 산속에서 혼자 사는 삶은 어떤 부분에서는 형벌에 가깝다. 도피나 유폐와 다름없는 고독한 삶이 행복할 리가 없다. 단순한 기쁨의 저자 아베 피에르 신부는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한다. 피에르는 사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목표, 즉 행복을 추구한다. 모든 인간은 그가 어떤 시대, 어떤 조건, 어떤 문화 속에서 생활하건 두 가지 길 가운데 선택하게 마련이다. 타인들 없이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들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혼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과 공감할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구도가 아니라면 인간은 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행복하지 않을까. 타인들과 나누고 실천하는 삶이 인간답게 사는 맛이다. 결국 우리는 공동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요즘 나는 농가주택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자주 본다. 세속에서 찾은 유토피아이다. 바닷가 앞에 마당 있는 주택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작은 산을 두르고 있는 시골의 작은 집을 보다가 흥분하기도 했다. 이천만 원짜리 농가주택도 있었다. 서울 아파트의 반 평도 안 되는 가격이다. 서울의 집은 못 사더라도 저 집은 살 수 있지 않을까. 과연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요원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천만 원이라면 해볼 만한 도전이지 않을까.

출처 : www.pckworld.com/article.php?aid=8878899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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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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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기독교적 상상력

 

이재훈

 

 

1. ()과 속()의 피안(彼岸)

 

문학과 종교의 관계는 상보적이면서도 대립된 관계에 놓여 있다. 그 성격은 다르지만 구원(救援)’을 열망의 마지막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동지적(同志的) 입장에 서 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구원이라는 동질의 지향점이 서로의 세계를 용인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문학은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여 신에게 이르고, 종교는 신에게부터 출발하여 인간으로 내려온다. 그 차이점이 경미한 상황으로 인식할 수도 있지만 실상 시인의 의식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못하다.

문학은 목표가 분명치 않은 세계를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종교에 비해 좀 더 자유롭다. 목표가 분명치 않은 문학은, 작품을 창작하는 개별적 존재자가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대리자(代理者)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작품의 창작자에 따라 구원에 이르는 길이 제각기 다르다. 또한 구원의 방법과 도달점도 다르다. 이렇게 각기 다를 수 있는 이유는 문학은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그것이 관념화되어 보편적 진리에 이르는 수순을 밟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종교는 특수한 목표가 있다. 종교는 경전을 통해 과학적인 분명함이 지배하지 않는 이상적 세계를 보여준다. 그 세계는 현실의 세계와 다른 초월의 세계이지만, 오히려 그 초월의 세계가 현실을 더욱 단단히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종교는 보편적 세계를 특수한 선민(選民)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이러한 이유로 문학과 종교가 본질적으로는 상통하는 내력을 가질 수 있으나 그 도달점과 방법은 상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은 문학 일반에서 로 방향을 바꾸어 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시는 보편적 언어를 객관화하고 대리하는 다른 장르와 달리 노래성이 강하다. 그 노래성은 달리 말하면 부족의 언어, 방언을 육성할 때 힘을 발휘한다. 그렇기에 시의 언어는 여러 비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언어의 개별성에 많이 기댄다. 이는 종교가 가지는 특수한 세계와 상충되기도 한다. 종교의 모든 목표는 문학을 통해 종교적 진리를 전파하는 데 있다. 물론 각 종교마다 그 성질은 각기 다르지만 본질적인 인식은 그와 같다. 그렇기에 분명한 목적을 가진 종교적 세계를 시로 노래하기란 쉽지 않다. 시는 이미 확정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그 미적 자질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확정적인 세계로 인도하도록 강제받을 경우에 있어서는 그 반발이 더욱 심해지게 된다.

어떻든 속()의 세계에서 성()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게 문학이라면 종교는 이미 성()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를 관리하고 설교한다. 이런 경우, 성과 속이 서로 위무하고 용인하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지점이 바로 종교적 상상력이 서야 할 지점이다.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종교생활을 했으며 그것은 사유의식을 가진 인간의 본성적인 것이다. 폴 틸리히(P. Tillich)종교는 인간 정신 생활의 모든 기능의 심층에서라면 어디나 있을 집이 있다고 했다. 이는 종교가 우리의 삶에 어떤 부분인지를 말해 준다. 우리는 성과 속이 서로 습합되고 위치를 바꾸는 현실의 상황들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것은 문학과 종교가 서로 상충되면서도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1)각주

 

2. ()에 속한 시의 내력과 층위(層位)

 

기독교는 일반적으로 나사렛 예수를 구주로 믿는 그리스도교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동방정교회의 전통이 거의 없기에 개신교(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이 주류로 크게 뿌리내리고 있다. 이십세기 초에 유입된 기독교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쳐 약 천 사백만의 신도수를 가진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의미는 이미 기독교가 우리의 정신세계를 많은 부분 책임지는 사상으로 거듭났다는 데 있다. 그 동안 기독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 전부면에 걸쳐 그 정신이 침윤되었다. 문학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문학 작품들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쓰여졌고 현재에도 쓰여지고 있다.

한국의 정서에 유, , 선의 종교는 샤머니즘적 전통과 함께 맞물려 일종의 동질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하지만 근대가 시작되면서 유입된 기독교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 기독교의 발전은 한국의 성장 자본주의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물론 한국적인 기독교가 기복신앙(祈福信仰)의 성격을 가진 연유는 종교의 토착화를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에만 보편적으로 행하고 있는 새벽기도회는 정화수를 떠놓고 간원을 비는 한국적 기복신앙의 모습이다. 또한 본질적인 기독교와 다르게 현세의 축복과 상급을 강조하는 측면도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기독교 의식, 혹은 기독교적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개념과 범주를 들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박이도의 다음과 같은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기독교 의식이란 기독교의 목표가 되는 속죄, 구원, 부활, 재림 등의 실현을 위해 일상 생활에서 기도하고 간증하며 신과 교감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의식이 시인의 내부에 심화됨으로써 작품 속에 기독교 의식의 시정신이 드러나게 된다. 2)각주

 

결국 기독교적 상상력이란 기독교 정신3)각주 을 시적으로 잘 구현한 작품들을 의미한다. 문제는 기독교 정신, 혹은 기독교 의식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냈느냐의 문제이다. 기독교가 가진 내세에 대한 단호한 믿음은 많은 부분 상상력을 제한한다. 즉 기독교가 시세계의 사상적 측면에서는 다양성을 준 게 사실이나 그 미적 형상화는 한계점을 드러낸 경우가 많았다. 외형적 측면에서는 성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소재들,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비유들과 예수의 행적, 제자들의 행적에 관한 소재주의로 빠진 경우가 많았다. 기독교 정신을 깊게 고민하고 갈등하는 시적 자아의 모습을 포기한 채 이미 선취된 인간형이나 사상을 그대로 옮겨놓는 경우들도 허다하다.

또한 그 사상적 측면에서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적 상상력이 시의 근간을 이루는 많은 시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획일성과 교조주의(敎條主義)적 성격 때문이다. 시의 목적이 종교의 정신을 전파하려는 데 있을 때 시는 종교의 목적을 달성하는 시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종교적인 목표에 부합되는 시편들은 일반의 시와 다른 범주에서 평가되고 인식되고 있다. 이른바 신앙시, 종교시 등의 개념을 들어 종교적 목표가 시의 분명한 목적일 때 일반 문학과의 차이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상상력을 가진 시가 가야 될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말은 큰 의미가 있다.

 

교의는 진정한 시에서는 그 모습을 나타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혹 나타난다 하더라도 교의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환상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것은 기독교 문학이 어떤 위치에서 이룩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적절히 표현한 대목이다. 문학이란 장르에서 기독교적인 것만을 뽑아 그 의의를 상고한다는 것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한국의 현대 문학 속에 기독교적인 특징이나 정신만으로 된 작품을 고르고 분석하기 보다는 작가의 기독교적인 인스피레이션이 얼마만큼 뿌리박고 있는지를 작품 전체에서 얻어낼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4)각주

 

우리가 문제삼으려고 하는 기독교 시는 신에 대한 절대 긍정과 함께 인간 역사에 반영된 신의 섭리를 해석하고 그것을 실천의 지평에 놓는 태도를 포괄하는 시편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 기독교 시가 지향하는, 일종의 대안적 유토피아주의야말로 기독교 정신 혹은 이념을 가장 충실하게 지칭하는 것이 된다. 5)각주

 

가장 중요한 점은 종교적 경험에 대한 자아의 정신적 현존을 드러내는 것이다. 경험에 대한 관념화와 실천적 의지, 본질에 대한 방황 등이 확실한 세계에 대한 궁극적인 뒷모습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길이다. 완료된 해석의 틀을 거부하고 그 해석에 의해서 반죽되어진 자아의 본질적 모습을 통해 성자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 시사에서 이런 기독교적 상상력을 미적으로 승화시킨 시인들은 적지 않다. 또한 많은 시인들이 남긴 다양한 사상적 층위와 여정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기독교의 신앙적 정신을 시적으로 잘 형상화한 시, 속된 자아와 신앙인으로서의 자아 사이의 갈등과 죄의식을 고백한 시, 기독교 사상이 대상 속에 스며들어 보편적인 정서의 형태로 내재화된 시, 기독교 정신의 올바른 방향을 변론하기 위해 비유나 풍자의 방법론을 택한 시 등 다양한 표출방식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윤동주, 정지용, 김현승, 박두진, 박목월 등이 보여준 세계는 한국 시문학의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본 글에서는 이미 다량의 평가를 받아온 위의 시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가가 미흡되었다고 생각되는 몇 시인들의 시를 살펴봄으로써 기독교적 상상력을 실천한 다양한 시적 모습을 살펴보겠다.

 

3. 기독교적 상상력의 양상

 

이용도 시인(19011933)은 우리 문학사에서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그가 뛰어난 시편들을 남기고 33세의 이른 나이에 요절했다는 사실 또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당시 감리교파의 개신교 부흥목사였으며 정열적인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중학재학 중 1919년 독립 만세를 부른 혐의로 투옥된 이후, 1922년 태평양 회의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는 등 열성적인 독립운동가였다. 1924년에는 협성신학교(감리교신학대학 전신) 영문과에 입학하고 이후 부흥목사로서의 활동을 하다 폐결핵으로 이른 나이에 작고한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생전에 일기나 서간문 등을 통해 발견된 시편들이다. 그의 시는 기교위주의 형식주의 시보다도 생명력있는 내용을 중시하였다. 6)각주

 

이름없이 지구의 일각을 밟고가! 샤론의 들꽃같이! 피는 줄, 지는 줄 세상이 다 모르되, 다만 하늘만이 빈 들에 속삭이는 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소문 없이 퍼지는 그 향기에 하늘이 웃음 웃고, 자취없이 눈 감을 때 적막한 밤 작은 별의 무리들이 조상을 해- 이것이 값없는 야화의 무상의 영광, 평생 발원이었던 것이로다. , 그러나 저를 낸 조물주는 여기에 가공을 하여 옮겨 놓으니, 요란한 대로변 가시밭에 한 송이 백합화가 되었구려! 고요히 이름없이 지나갈 고독한 야화! 이제는 소문 놓고 노방(路傍)에 찟길 이름 좋은, 그러나 역시 고독한 백합화로구나!

이용도, <샤론의 들꽃> 전문

 

샤론은 성서에 나오는 지명이다. 구약성경 아가서 21-2절에는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라는 부분이 나온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기술한 책으로 아름다운 노래의 책이란 뜻이다. 아가에는 그리스도와 인간에 대한 거룩한 사랑을 비유하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이로 인간의 엄숙하고 순결한 사랑을 노래한 깊고 고상한 윤리적 도덕성을 엿볼 수 있다.

샤론은 욥바에서 갈멜산에 이르는 지중해변의 평원이다. 이곳은 봄이 되면 갖가지 들꽃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샤론의 들꽃은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에서 비범하게 핀 영광된 꽃이 아니라 들꽃처럼 평범한 꽃 한 송이를 의미한다. “이름 없이 지구의 일각을 밝고 가!”라는 단호한 어조는 스스로를 다짐하는 어조이기도 하다. 이 시는 이용도의 삶의 지표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 시이다. 평범한 들꽃처럼 온 가운데 소문 없이 퍼지는 그 향기에 하늘이 웃음 웃는 야화의 삶을 닮고 싶은 의지가 담겨 있다. “고요히 이름 없이 지나갈 고독한 야화!”의 삶은 당시의 상황을 또한 생각하게 한다. 신비주의적인 부흥목회자였던 시인은 마지막에 이단으로 낙인되어 교단에서도 지위를 박탈당한다. 또한 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 초반까지의 7-8년 동안 시작활동을 벌여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의 불우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들에 핀 꽃에 대한 열망으로 시적 자아의 근원적 갈급함을 표현하고 있다. 신성한 자연의 근원적 원리를 통해 자신의 삶의 지표를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는 시이다.

이러한 시는 예수의 생애나 사상을 닮아 있다. 위의 시는 당시 우리 문학사를 생각해 볼 때 문학적으로 상당히 뛰어난 가편이다. 산문시가 비유와 어울려 이루어내는 세계가 기독교적 상상력을 스스로 체득하여 이루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산아, 나무야, 바위야. 나를 가리워 주의 진노의 눈에서 피하게 하여 주고, 모든 인간들에게서 숨기어 수치를 면하게 하여 다오. 그러나 내가 일찍이 산에서 범죄하여 산을 더럽혔사오매, 나는 산의 원수가 되었고, 나무와 바위 아래서 내가 부정하였으매 저가 나를 멸시한지라, 어찌 나를 덮어 주며 가리워 주랴. 산과 나무가 나를 덮어주지 아니하고, 바다가 나를 숨겨 주지 아니하며, 바람이 나를 듣지 않고, 하늘이 나를 동정치 않는도다.

이용도, <산아, 나무야, 바위야> 전문

 

 

하늘은

헤아려

측량하기 어려운 것.

웅대하고,

한이 없는

이 우주

 

! 그 큰 천체를

한 입에 삼키는

이 작은 마음이여

이용도, <마음> 전문

 

무엇을 깨달을 때 그 깨달음을 지속할 특별한 순간을 담지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은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드러낼 때 더 선명해진다. <산아, 나무야, 바위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용도의 신성 원리가 신과 자아의 교감 속에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신과의 물음과 대답을 통해 그곳에서 오는 죄의식과 그것에 대한 회개와 다짐이 함께 존재한다. 속죄는 기독교 정신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일상적 자연이 신의 진노를 피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자아는 자연과 인간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죄를 가리고 싶은 본성을 고백하고 있다. 그것은 일찍이 아담이 뱀의 유혹을 통해 선악과를 먹고 죄의식을 갖게 된 이후부터 가질 수 있는 본성인 것이다. 시인은 또한 자신을 가리워줄 자연과 인간을 자아 자신이 훼손하였고 부정하였다고 말한다. 자신의 죄를 위무받을 수 있었던 대상과 운명적인 대립의 관계가 되어 이곳저곳에서도 위로받을 곳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신과 자아와의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구원을 받아야 하는 나약한 실존을 보여준다.

마음은 모든 천체를 한 입에 삼키는 것이다. 측량하기 어려운 하늘과 웅대하고 한이 없는 우주조차도 마음 하나에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그의 시가 자연을 순례하며 자연의 비유로 자신의 신앙관을 보여줄 때 그 사상적 풍요로움은 더 깊어질 수 있다.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은 살아야 한다.

구상, <오늘> 전문

 

구상은 기독교적 신앙관을 시 속에 잘 형상화한 시들을 많이 남겼다. 이미 많은 종교시편을 써왔으며 스스로 신앙시집이라는 기획으로 󰡔두 이레 강아지만큼이라도 마음의 눈을 뜨게 하소서󰡕라는 시집을 발간한 바 있다. 구상의 시는 복잡한 수사가 없이 쉽고 간결한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사상의 깊이를 함께 가지고 있는 시에 속한다. 또한 신앙인으로서의 시인의 삶 또한 시의 의미와 덧붙여져서 감동의 무게를 더한다. 위의 시는 현세의 삶 이후의 영원에 대해 말하고 있다. 기독교 정신의 핵심사상인 창조, 부활, 사랑, 심판 등의 개념 속에서 오늘에서 영원을 산다는 부활의 신앙을 담고 있다.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현세 기복적인 신앙이 아니라 이 세계의 종말이 닥치더라도 영원을 함께 살 수 있는 신앙의 회복, 영혼의 영원을 말해주고 있다. 구상의 시는 의도적으로 시적 수사를 거세하고 사상적 의미의 핵만을 남겨두는 방식을 취한다. 그의 종교적 시편들이 다수 연작의 형태를 취하는 것은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만월이 떴다

소돔성에 만월이 떠오르자

버들가지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고

고향에 두고온 깊은 강물도

더 이상 잠자리를 적시지 않았다

이미 문 밖에는

예비된 공포가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새벽이 오는 게 두려운 사람들은

이불깃에 이빨을 지그시 깨물며

절망으로 단단히 무장한 다음

가까스로 건진 희망 몇 가닥을

모세의 목에 걸어주었다

가까스로 얻은 희망 몇 가닥이

공동묘지에서 빛나는 아침

모세는 가야 했다

소돔성 떠오르는 만월이 되어

죽음보다 어두운 애급 땅으로

뚜벅뚜벅 사라진 다음에야

희망 몇 가닥에 잎이 돋는다는 것을

우리의 모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가지 않았다

마을에 남아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만월이 되는 것은 아득했다

 

문 밖에는 미증유의 적막이 다가서고

승냥이 울음소리 음산하게

빈 벌판에 가 닿았다

고정희, <만월> 전문

 

고정희의 시는 기독교 정신의 올바른 방향을 변론하기 위해 비유, 풍자의 방법론을 택한 시에 해당한다. 그는 많은 시편들을 통해 기독교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풍자, 비유 등의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면은 그가 신학도이며 또한 해방신학에 영향을 받은 실천적 의지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의 사상을 육성한 것이 바로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한 종교의 모습이고 그러한 자신의 신념은 기존의 신념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현존하는 기독교적 가치관들을 한번 되짚어보고 자문해 본다. 또한 그의 시에서는 역사적 소명을 자신의 신앙적 경험을 체화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만월>은 깊은 달이 뜬 밤을 배경으로 새로운 역사의 도래나 그것이 오기까지의 정신적 여정을 적고 있다. 그 여정은 새로운 희망과 함께 긴장감이나 두려움을 동반한 감정이다. “소돔성은 지금의 현실적 상황을 말한다. 창세기 13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성으로 이주할 때의 이야기이다. 소돔성은 이미 성적 문란과 도덕적 퇴폐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 유황볼의 심판을 받는다. 소돔성 안에 의인 10명만 있으면 소돔성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의인 10명이 없었다. 죄악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죄악에 빠져 있을 때, 그 죄악 가운데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롯의 아내가 받았던 돌기둥의 형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돔성의 현실 속에서 모세는 구원의 지도자이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고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하였다. 그 해방 가운데 백성들과 광야에서 40년의 유랑생활을 하였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의 현대사는 이러한 광야의 생활과 다를 바 없다. 민족의 상실과 더불어 평화, 자유, 민주의 상실을 거듭 체험한 우리의 현실은 광야에서 고난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과도 같다. 이제 새로운 지도자나 영웅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문밖에는 아직도 미증유의 적막이 다가서는 현실 속에 있다. 민중의 아픔 속에 하나님의 진리가 함께 존재할 때 그 신앙의 존재 의미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이처럼 고정희의 시에는 신앙인으로서의 종교적 체험이 다양한 시적 방법론에 의해 시화(詩化)되고 있다.

 

장독대의 항아리들을

어머니는 닦고 또 닦으신다

간신히 기동하시는 팔순의

어머니가 하얀 행주를

빨고 또 빨아

반짝반짝 닦아놓은

크고 작은 항아리들……

 

(낮에 항아리를 열어놓으면

눈 밝은 햇님도 와

기웃대고,

어스름 밤이 되면

달림도 와

제 모습 비춰보는걸,

뒷산 솔숲의

청살모 다람쥐도

솔가지에 앉아 긴 꼬리로

하늘을 말아쥐고

염주알 같은 눈알을 또록또록 굴리며

저렇게 내려다보는걸,

장독대에 먼지 잔뜩 끼면

남사스럽제...)

 

어제 말갛게 닦아놓은 항아리들을

어머니는 오늘도

닦고 또 닦으신다

지상의 어느 성소인들

저보다 깨끗할까

맑은 물이 뚝뚝 흐르는 행주를 쥔

주름투성이 손을

항아리에 얹고

세례를 베풀듯, 어머니는

어머니의 성소를 닦고 또 닦으신다

고진하, <어머니의 聖所> 전문

 

고진하는 기독교 사상이 내재화되어 보편적인 정서에까지 그 시적 진리가 전달되는 시다. 그의 시 속에서 자아는 신앙인과 속인으로서의 가치판단이 분리되지 않은 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한한 신의 섭리를 이끌어낸다. 그의 시편들이 신성과 일상의 만남을 생태적 사유로 구현해냈다는 세간의 평가는 온당하다. 불순한 모든 것 또한 초월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초월의 힘이 보편적 정서로 다다르면 굳이 기독교적 상상력이 아니라 하더라도 모든 종교적 상상력이 그의 그물망과 함께 하는 것이다. 시인에게 聖所는 교회의 성전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만물이다. 또한 어머니의 세계가 바로 성소이다. 시인이 성소를 발견하는 특별한 순간은 계시의 장소가 아니라 일상의 장독대이다. 어머니가 장독대 항아리를 닦고 계시는 모습을 통해 인간이 가지는 진실된 마음이 모두 종교적인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세계는 각기 다른 존재로 분할되지 않고 사건의 연결망이며 연대성을 가지고 있다는 존재론적 인식이 고진하의 시 속에는 자주 목격된다. 기독교가 가지는 선민의식은 때로 그들만의 성찬식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를 베풀 듯성소를 닦아나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진정한 종교적 구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가 기독교적 상상력이 가진 한계에 대한 선입견을 탈각시킬 시의 준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외에도 김남조, 김형영, 신중신, 정호승, 김정환, 박찬일 등의 시에서도 각각 다른 방법으로 기독교적 상상력을 형상화하고 있다. 애초의 계획과 달리 짧은 지면에 이 모두를 묶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다른 지면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한다.

 

4. 맺으며

 

지금까지 기독교적 상상력을 구현한 다양한 층위의 시편들을 살펴보았다. 위의 몇 시편들을 통해 기독교 정신이 어떻게 시 속에 습합되고 표출되는지를 일별해 볼 수 있었다. 더 깊은 논의를 위해서는 각 시인들에 대한 개별적인 분석이 더 부가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겨 둔다.

어떠한 길을 통해 그곳에 이르고자 하는지, 혹은 그 길이 목표가 없는 길이라 할지라도 깊고 진정한 사유의 세계는 깊고 오래가며 감동을 준다. 종교적 상상력이 우리 시단의 사상성에 더 깊이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서구의 오래된 문학 전통이 헤브라이즘의 전통 속에서 나왔음을 생각할 때 그 중요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기독교는 가장 기본적으로 현세의 종교가 아닌 내세의 종교이다. 현세의 기복과 인간의 안위가 아닌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보증으로서 믿는 종교이다. 모든 영적 행위는 죽음 이후 삶을 담보한다. 기독교가 유일하게 부활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부활은 죽음 이후 다시 사는 세계를 의미한다. 죽음 이후에 다시 소생하는 생성과 소멸의 원리가 숨어 있다. 그것은 꽃이 지고 다시 꽃이 피는 자연의 순환원리처럼 우리 육신과 영혼의 삶도 그러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앞으로 명징한 세계와 그것을 거부하려는 세계 사이의 길항과 모순 속에 기독교적 상상력이 존재해 있을 때 그 미적 형상성을 더 깊어질 것이다. 하늘의 구름 위에서 군림하는 성자가 아니라 인간의 옷을 입은 성자가 시 속에 투영되기를 희망해 본다.

 

각주)

1) 엘리아데는 다음의 글을 통해 성과 속의 관계를 보편적 관계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정황들은 민속종교에서부터 그 기원이 있다고 보고 있다. “성속과 구원이라는 말은 아무리 원시인이라 할지라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인 한 종교적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명제와 관련된 것이고, 인류의 여명 추기부터 일정한 종교 체험을 해왔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을 경험하는 것은 매우 다양한 양상에서 비롯되므로 한두 가지 카테고리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을 든다면 성과 속을 구분하고 가능한 한 성에 가까이 있고자 한다는 것, 인간 조건의 한계를 느끼고 막연하지만 구원을 갈망한다는 점이다. (중략) 성은 영속적 혹은 일시적 특성으로서 어떤 사물, 인간, 공간, 시간 등에 두루 퍼져 있다. 어떤 신비적인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성이 되면, 그 순간부터 하나의 변질을 겪고 사람들한테 두려움과 숭배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성을 접축하는 것은 위험시되기도 한다. 또한 그 성은 외부로 퍼져나가 마치 물과 같이 번지고 전기와 같이 방출되는 성격을 지닌다. 그에 비해 속은 부정적 성격으로 확인되는데, 빈약한 생명력이나 허무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민속 종교에서도 성과 속을 구분하고 속의 허무를 극복하고 성으로 되돌아가고자 하였다.(엘리아데, 이은봉역, <성과 속>, 22-23)

2) 박이도, <한국 현대시와 기독교>, 종로서적, 1987, 10-11.

3) 신에 의한 창조, 사랑, 섭리, 구원의 역사를 자신의 사유의 근본 구조로 받아들이고, 그 질서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신학적이념적 원리를 이름하는 것일 터이다.(유성호, <한국학연구> 21, 고려대한국학연구소, 7)

4) 박이도, 위의 책, 57쪽.

5) 유성호, 위의 책, 7쪽.

6) 이용도의 생애나 사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변종호 편저, <이용도 목사 전집>(장안문화사, 1993)과 신규호, <한국 현대시와 종교>(국학자료원, 2003)를 참고.

* 출처 : 이재훈, <딜레마의 시학>(국학자료원)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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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산문 2018. 1. 29. 23:30

편지

이재훈

 

1.

내가 편지를 처음 쓰기 시작한 때는 중학교 1학년 즈음이다. 나는 낯설고 먼 동네에서 전학온 이방인이었다. 당시에는 전학온 학생이 드문 시절이었다. 친구들은 타향에서 온 얼굴이 희고 키가 작은 전학생을 놀려주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이상한 별명을 만들어 내어 놀려대곤 했다. 짓궂은 친구들은 뒤에서 돌을 던지고 도망가기도 했다. 누가 별명을 지어냈으며 누가 돌을 던졌고 누가 그러지 말라고 말렸는지 모두 알 수 있는 작은 동네였다. 학교에서부터 집까지 논둑길을 걸으며 한없이 외로워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엄마가 사서 입혀준 멜빵바지가 창피했다. 친구들처럼 털털하게 아무 거나 입고 함께 풀피리를 불며 소 풀뜯기러 가고 싶었다. 뚝방에서는 늘 아지랑이가 어지럽게 피어올랐다. 집에 가다 말고 뚝방에 앉아 소를 몰고 다니는 친구들을 오래도록 보는 날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얘기지만 당시엔 또래집단에 편입되지 못한 외로움 때문에 너무나도 힘들었다. 나는 편지를 썼다. 떠나온 곳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혹시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나처럼 너희들도 전학간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동갑내기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친동생처럼 아껴주었던 교회 누나에게도 편지를 썼다. 어쩌면 그 편지들이 내 문학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애들은 시간이 지나면 친해지게 마련이다. 나를 놀려대던 친구들은 친해지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친해지고 싶었지만 어찌할 바를 몰라 놀려댔던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줄로만 알았던 게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였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무장해제되었다. 몇 달 동안 외로움에 지쳐있던 나에게 친구들은 샘물처럼 달았다. 친구들과 개울가에서 미역을 감았고 함께 소 풀을 뜯겼다. 저녁나절엔 친구집 사랑방 아궁이에서 쇠죽이 끓는 구수한 냄새를 오래도록 맡았다. 억센 경상도 욕을 배웠고 친구들처럼 아무 옷이나 입고 동네를 쏘다녔다. 때론 범죄에 가까운 대량 서리를 하러 다니기도 하였다. 편지는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사춘기가 찾아왔다. 밤늦게까지 라디오를 켜놓고 멍하게 있는 날이 많았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유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잡히지 않는 방송이었다. 나는 김희애의 인기가요를 들었다. 늦은 밤에는 팝음악 방송을 들었다. 공테이프를 걸어 놓고 좋은 음악이 나오면 녹음을 했다. 그리고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번엔 방송국에 편지를 썼다. 다시 불을 지피기 시작한 내 그리움은 대상이 없는 막연한 것이었다. 방송국은 그런 내 그리움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편지지에 썼고, 노트에 썼고, 엽서에 썼고, 은행잎에 썼고, 티슈에 썼다. 내 그리움을 전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이 나의 편지지였다. 펜이 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글씨체를 실험하며 썼다. 어쩌면 그 편지들이 내 문학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나는 또다시 전학을 갔다. 그리고 또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편지는 그리움뿐만 아니라 존재의 궁금증에 대한 갈망을 담은 것이었다. 친구들은 답장을 쓰느라 곤혹을 치렀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허황된 질문들과 존재론적 고민들에 대해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망설였을 것이다. 대답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편지를 쓰는 게 중요했다. 어쩌면 그 편지들이 내 문학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편지를 쓰는 일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되었다. 아마 이십대까지는 계속 편지를 썼을 것이다. 그 편지들은 몇 개의 상자 속에 오래도록 보관되어 있었다. 시골집 책상 아래 깊숙이 보관되어 있었다. 가끔씩 시골집에 들르면 그 편지들을 꺼내 보곤 했다. 아직 설익은 감정을 어찌할 바 몰라 서성대는 문장들이, 열망에 차서 흥분된 문장들이, 열등감에 휩싸여 자책하는 불안한 문장들이, 구원을 꿈꾸는 불가해한 내면의 문장들이 스멀스멀 기어다니고 있었다. 어쩌면 그 편지를 꺼내 읽는 일들이 내 문학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2.

 

스물 하고도 몇 해가 넘어갔다. 문학을 한다고 폼을 잡으며 허둥대던 시절이었다. 문학 쫌 할 것 같은 친구들이나 여학생들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에 시를 썼고 시가 어떻냐고 물었다. 편지에 치기어린 문학론을 펼쳤고 문학에 목숨을 바치겠다는 객기를 부렸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등단을 했다. 등단을 했다고 편지를 썼으며, 등단을 하니 더 괴롭다고 편지를 썼다. 시가 내 미래를 무엇 하나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시에 투정을 부렸다. 시 때문에 내가 이꼴이 되었다는 투정을 편지에 썼다. 어쩌면 괜찮다는 위로의 대답을 듣기 위해 투정을 부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관한 편지상자가 불태워진 것은 이십대의 마지막이 끝나가고 있을 때였다. 명절에도 들르지 않았던 시골집에 오랜만에 들렀다. 그런데 편지상자가 없어졌다. 늘 책상 밑 깊숙이 놓여 있던 편지상자가 없어졌다.

엄마. 내 편지상자 못 봤어요?”

그거 다 태워버렸다.”

뭐라고요? 아니. 그걸. 제게 말도 안하시고 태우다니요.”

. 너무 오래 돼서. 필요 없는 건줄 알고 태워버렸지. 중요한 건지 몰랐구나.”

어머니는 그 편지들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내 일기까지도 훔쳐보시는 분인데 그 편지를 안 읽었을 리가 없었다. 아마 과거의 일들에 목매인 나의 모습이 보기 싫었으리라. 옛 추억에 젖어 찔끔거리는 아들의 모습이 안타까우셨으리라. 그리고 어머니의 병적일 만큼 깔끔한 성격도 한몫 했다. 누렇게 바랜 종이상자를 빨리 치워버리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무튼 편지를 잃어버린 그날의 사건은 꽤 오랫동안 나를 옥죄었다. 내 추억의 대부분이 뭉텅 잘려나간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편지를 계속 썼다. 아직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꽤 남아 있었다.

 

내 스무 살은 노래였다. 거리에서 배운 노래가 목청으로 흘러나올 때, 사람들은 그것을 먼 이방의 방언이라 여겼다. 천둥소리는 더 크게 들렸고, 몸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단 하나의 권능도 없이 숨소리 없는 거리에 서 있었다. 나는, 가볍게 다른 문을 열 수 있을까. 꿈도 없는 잠을 매일 잘 수 있을까. 내 손가락들이 들러붙어 물갈퀴가 되고 이빨은 사자처럼 송곳니만 사납게 솟아난다. 성 꼭대기에 올라 어둠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새의 등에 올라타고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으며 나스카 평원에 새겨넣은 의 형상을 한눈으로 보고 싶었다. 나는, 어떤 법을 배웠던가. 노래하는 법 말고는 배운 것이 없다. 눈 먼 한 마리의 새가 내 머리칼 속에서 둥지를 틀고 있었다. 새의 전생은 자유였다고 평원을 돌보던 파수꾼이었다고, 그 새가 법을 배웠다.

 

법을 배우는 순간, 나는 풀이 되었다.
  
하늘을 날지 못하고 하늘을 바라보는
 
,

나는 오래 전 풀의 고독을 기억하고 있다.

이재훈, 나스카 평원을 떠난 새에 관한 이야기부분(<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문학동네)

 

나의 노래는 편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성전에서 배운 노래를 편지에 옮겨 적었고, 거리에서 배운 노래를 편지에 옮겨 적었다. 내 존재의 고민과 환상의 빛깔과 삶의 고통들을 편지에 옮겨 적었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편지 쓰는 일이 뜸해졌다.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성탄절 카드도 신년 카드도 서서히 사라졌다. 이제 편지는 내 스무 살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지금은 사라진 어떤 흔적이 편지의 기억을 통해 내 청춘을 증언해주는 것만 같다. 편지로 주고받았던 오랜 기다림과 떨림은 이제 없을 것이다. 봄날 비가 오는 밤이 되면 정말 오랜만에 손편지를 써봐야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끄러워 부치지 못할 정념의 말들을 맘껏 써봐야겠다. 펜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부끄러운 문장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 기다림의 문장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빗소리를 들어야겠다.

출처 : <문학사상>, 2016년 4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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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_관련자료 2017. 10. 26. 14:29

 

이재훈 

 

찬바람이 옷깃을 연다

궁핍도 잊고 지체한 일들을 잊고

언덕을 오른다

바람의 체온을 오래 안으면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붉게 물들어 간다.

물들어 간다는 건 고통스러운 것인데

물들어간다는 건 소멸하는 것인데

이 아름답고 황홀한 속마음을 어디에 둘까.

악인이 넘치는 세계에서

무엇을 붙들고 물들고 잠들까.

무력한 사람들에게 간청할 목록을 적고 나면

소리 내어 울고 싶어진다.

무엇을 위해 우린 목소리를 놓지 못했을까.

지난여름 온몸을 물로 가득 채웠지.

물의 힘으로 당신을 기억했다.

이제 서서히 내 몸에 물이 빠져나간다.

잎들은 모두 붉고 노랗게 늙는다.

언덕의 세상과 당신과 내가 온통 물들다가

툭 다른 계절로 사라지는 순간

푸석한 내 몸에서 당신이 툭 떨어져 나가는 순간

툭 툭 빗방울이 가슴을 두드리는 절명의 순간

 

―《시와표현, 201611월호

 


 

은 의성어(擬聲語)이다. 사물의 소리를 흉내내는 말이다. 이 소리만 들어도 무엇인가 벌어지는 사건들을 사실 그대로 실감할 수 있게 한다. 또는 이란 본래의 하나 된 어떤 사물이 분리되어질 때 나는 소리이기도 하다. 하나를 이루는 순간이 둘로 분리되어 완전한 개체를 형성하는 순간 하는 소리는 절로 일어난다. 이 화자에게는 하나의 소멸이요, ‘고통이 된다.

화자는 찬바람이 옷깃을 연다하나의 개체를 이루는 순간을 맞는다. 따라서 찬바람은 곧 궁핍이요, ‘지체한 일로서 옷깃을열듯 언덕을 오른다’. 또한 바람의 체온을 오래 안으면서 붉게 물들어감으로써 바람의 체온이 안기는 하나를 이룬다. 그리고 마침내 소멸된다. 완전한 개체의 분리다. 소리의 원형을 이룬다. ‘물들어 간다는 건 고통스러운 것인데/물들어간다는 건 소멸하는 것인데/이 아름답고 황홀한 속마음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찬바람 궁핍 지체한 일 고통 소멸 악인이 넘치는 세계 간청할 목록 로부터 옷깃을 열고 언덕을 오르고 붉게 물들어 간 붙들고 물들고 잠들까 빠져나간다 붉고 노랗게 늙음으로써 하는 세상에 이른다. 그것은 곧 언덕의 세상과 당신과 내가 온통 물들다가/툭 다른 계절로 사라지는 순간/푸석한 내 몸에서 당신의 툭 떨어져 나가는 순간/툭 툭 빗방울이 가슴을 두드리는 절명의 순간이 된다. 결국 이 시작품은 삶의 온갖 노정에서 만나는 숱한 언덕의 세상과 당신과 내가 온통 물들다가끝내 하며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살아가는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거니와. 이를 이라는 의성어를 통하여 시동성(示同性시차성(示差性)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삶의 다양한 상징적 체계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추천 구재기)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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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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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찬, 「시베리아의 들꽃」

 

 
 


누가 내게 사랑을 물어 온다면
시베리아로 달려가 반란처럼 피어난
보랏빛 엉겅퀴 한 송이 보여주리
 
 
벌판에 십 개월 동안 눈이 쌓이고
자작나무 숲에 안개가 덮여도
원색의 야생화는 피어난다
 
 
유형의 길 떠나던 임을 따르다
눈밭에 나뒹굴던 여인처럼
길가에 맨발로 피어난 양귀비
 
 
여름은 짧고 길은 어두어도
그대에게 가야 만 하는 먼 길
사랑은 들꽃처럼 붉어지고
 
 
누가 내게 사랑을 물어온다면
그냥 시베리아로 달려가
엉겅퀴 한 송이 가슴에 물들여주리

 
 
 
 
_ 송종찬 – 1966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성장했다. 1992년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등이 있다.
 
 
낭송_ 이재훈 – 시인.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가 있음.
 
 
 
배달하며

    시베리아라는 시어는 호랑이와 횡단열차와 함께 달려온다.
    자본론을 읽고 있는 유리창에 추운 입김이 서리고, 이념의 가죽 군화 소리가 저 멀리서 메아리처럼 들려올 것 같은 시베리아. 가장 단단한 영혼과 가장 순결한 바람소리로 소스라치게 잠든 의식을 깨우고야 말 것 같은 시베리아! 광활한 대지와 그 대지가 품은 보랏빛 이념들을 떠올려본다.
    유형지를 따라 나선 맨발의 엉겅퀴와 양귀비! 들꽃이지만 지독한 사랑과 파멸을 동시에 품은 것 같아 슬며시 두려워지는 들꽃들이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김태형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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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 굴사냥

시시각각 2015. 2. 6. 15:23

작년 늦가을인가...
합정역굴사냥에서 굴찜 먹던 날.
좌부터 노희준, 전영관, 김태형, 김도언과.

각자 취향대로 막걸리, 소주, 맥주를 한 테이블에서 먹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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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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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파 사진

시시각각 2015. 2. 6. 14:52

약수파 사진. 작년과 올초 모였을 때 찍어둔 것.
정재학, 이현승, 김언, 오은 시인과 함께.

늘 그렇듯 약수역에서. <주전자>, <스코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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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 대담

 

  

 

내 최초의 말이 사는 영토의 영주

 

 

 

 

 

 

이재훈 ․ 조동범

 

조동범, 이재훈

조동범 : 이재훈 시인. 안녕하세요. 이번 현대시작품상 수상을 축하해요. 사석에서는 친한 형동생이지만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 마주하니 새로운 기분입니다.

 

이재훈 : 감사합니다. 대담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나는 시인이다>라는 대담집을 출간했었잖아요. 주변 사람들이 대담은 이재훈 시인이 선수겠지,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여전히 인터뷰이로서는 낯설어요. 차라리 인터뷰어가 편하죠.

 

조동범 : 그래요. 저도 인터뷰이는 힘든 것 같아요. 자기 자신 안의 이야기를 온전히 풀어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으니까요. 더구나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전 국민이 비통에 잠겨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힘겹고 조심스럽습니다.

 

이재훈 : 예. 그 사고로 인해 뉴스를 보는 게 고통스럽습니다. 사고로 죽어간 학생들과 사람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먹먹합니다. 매일 눈물이 나요. 전 국민이 이 고통을 이겨내야 할 텐데요. 이 사고가 인재라는 사실, 그리고 사고에 대응하는 안이한 태도와 구조 장면을 보면 화가 솟아오릅니다. 아직도 구조중인데 구조가 끝날 때까지 유족들이나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간절하게 기도해야죠. 인간의 사악함과 무력함을 자꾸 느끼게 되어 요즘 정신적으로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국민 모두가 정서적 우울을 경험할 텐데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조동범 : 이번이 두 번째 수상이죠? 2011년에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받으셨고요. 1998년에 등단을 했으니 등단한 지 16년이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감회가 남다를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수상이 많은 격려가 되었을 것 같은데 그동안의 소회를 밝혀줬으면 합니다.

 

이재훈 : 면구스럽다란 말이 딱 이럴 때 쓰이는 말 같아요. 주목받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이거 쑥스럽고 어색해서 어떡하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현대시>에서 주관하는 상이라 전혀 생각지도 않았어요. 심사위원 선생님들이나 동료 시인들에게 민폐는 아닌지 여전히 걱정되고요. 제가 “거 참…”이란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는데요. 상 받는 시인들은 인기가 없다던데. 저도 이제 인기가 없어지면 어쩌나 하고 거 참. 또 대담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고 거 참. 시상식 때 앞에 설 생각을 하니 거 참. 그럼에도 많은 시인들이 기뻐해주는 걸 보면서 다행인건가 거 참. 모 시인은 누리라고 하던데 내가 누릴 깜냥은 못되지 거 참, 하면서 이번 달을 보내고 있어요.

 

조동범 : 수상할 자격이 충분하니까 ‘거 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요.(웃음) 상이란 것은 그래도 언제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 같아요. 많은 격려가 되기도 하고요. 이재훈 시인도 이번 수상이 시를 계속 쓰게 하는 그 어떤 자극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해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재훈 시인의 시를 보면 자신의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던데요.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경우에도 그것이 가족사나 개인사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원형적 세계와 맞닿아 있어요. 시에 가족사나 개인사를 등장시키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이재훈 :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들을 받곤 해요. 왜 당신의 시에 이재훈의 구체적 삶이 보이지 않느냐고요. 그런데 역으로 다시 생각해봤어요. 왜 유독 제게 그런 질문들을 공통적으로 해오는 걸까 하고 말이죠. 혹시 읽는 사람들이 제 시에서 그런 모습을 바라는 건 아닌가 생각했죠. 완전히 현실의 토대를 등지고 언어를 꾸리는 시인들에게는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이때는 시적 대상으로서의 현실을 말하죠. 아마 저는 현실과 현실 너머의 경계를 이리저리 오가니까 그런 것은 아닐까 스스로 생각해봤어요. 결론을 얘기하자면 자연인 이재훈과 그에 관계된 가족사가 굳이 시에 등장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이지 않을까요. 제 구체적 삶의 모습을 시의 질료로 삼을 때 과연 어떤 매력이 있을까 생각할 때 좀 회의적이죠. 김수영은 단 한 편도 똑같은 기분으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잘 살펴보면 엄청 많은 제 일상이 시에 숨겨져 있어요.(웃음) 특히 두 번째 시집에서는 과하게 드러낸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하기도 했고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경우에는 너무 큰 상징이라 쓰기 힘들어서 일겁니다. 어떤 찬사와 그리움과 원망을 하더라도 부모님을 얘기하기엔 부족할 뿐이죠. 형이 잘 지적해주셨듯이 제 시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꼭 이재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거든요. 원형적 세계의 상징에 가깝죠. 제 가족사를 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소설감이라고들 얘기하지만 그걸 시로 써낼 재주가 제겐 없어요. 가족사나 개인사가 저의 일부를 만든 또 하나의 장본인이니 제 언어의 토대에 그런 부분이 스며들어 있겠죠. 재주 없음의 변명을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았네요.

 

조동범 : 그럼 이어진 질문을 하죠. 성장기, 특히 문학적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한 삶의 여정을 좀 들려주겠어요? 내가 이재훈 시인을 만난 게 꽤 오래전이지만 내가 아는 이재훈은 시인 이재훈의 모습 정도였던 것 같아요. 물론 그것만으로도 시인 이재훈뿐만 아니라 인간 이재훈으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내가 그동안 너무 이재훈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재훈 : 중학교 때까지 저는 신의 은총 가운데 자라났죠. 삶의 모든 역정을 다 경험해본 아버지의 세계와 그걸 온몸으로 품고 살아가는 어머니의 세계 속에서 키워졌죠.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계 위에는 종교적 세계가 있었고요. 저는 촉망받는 교회의 학생신도이자 학교의 모범생이었습니다. 저의 유년은 이주의 연속이었어요.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에 이르기까지. 그러다 본가가 충남 논산에 터를 잡으면서 그곳에서 오래 정착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프로야구에서 삼성과 한화를 응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는 거죠.

초등학교 때는 전학을 많이 다녔는데 친구들은 저를 항상 도시에서 온 전학생으로 오해했죠. 아마도 거친 세계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제 모습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운동화에 타이즈와 멜빵 반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당시 강원도 산골에서는 단연 이채로운 모습이었죠.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늦은 사춘기가 찾아왔어요. 저의 반항으로 인해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생활을 했어요. 거친 남자들의 세계와 짐승들의 세계를 맘껏 경험하며 살게 된 거지요. 그 이후의 삶은 하루하루가 마치 부조리 연극처럼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의 전리품이라면 스스로 대학포기를 선언한 것, 말도 되지 않는 사회생활을 일찍 경험한 것,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등이 있을까요.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조동범 : 얼핏 들어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네요. 언제고 그 이야기를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좀 전에 원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원형적 세계에 대한 탐구는 첫 시집은 물론이고 두 번째 시집에서도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개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를테면 우주나 미지의 세계와 같은 본질과 원형의 세계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재훈에게 그러한 원형성의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요? 내 생각에는 그것이 이재훈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세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이번 수상작의 경우에도 그런 성향은 여전하고 말이죠.

 

이재훈 : 제 시를 평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바로 원형, 신화, 우주와 같은 개념어들입니다. 신화가 시 작품의 ‘최초의 말’이라는 견해들이 있어요. 신화 창조는 신화적 상상력을 언어로 표현할 때 구현되는 것이죠. 즉 시를 쓴다는 행위는 신화 창조와 다를 바 없는 것이고요. 시는 이 땅에 없는 새로운 세계를 자신의 인식 지평 하에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잖아요.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시의 방향은 그렇다고 생각해요.

신화나 원형이라고 하면 이미 우리에게 체득된 많은 선험적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리스 로마, 북유럽 등의 신화들이 있고 탄생 설화들과 수많은 원형적 화소들이 있지요.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시를 쓰긴 힘들어요. 그 테마들은 이미 수없이 반복된 알맹이일 뿐 내 고유한 세계는 아니니까요.

제가 신화에 대해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신화의 이미지나 신화에서 발생하는 고유한 환경이나 조건들이 제 뇌리에 오래 남더라고요. 어렸을 적부터 읽었던 성경도 많은 영향이 있었을 것이고요. 폴 리쾨르, 조지 캠벨, 엘리아데, 샤르댕 등을 좋아했는데요. 그런 독서경험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하지만 그 미적 관심이 제 언어 속에서 오래도록 내재화되었다가 시를 쓸 때 그쪽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제 시원始原에 관한 대답을 스스로 던지고 싶었어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제 존재에 대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진 거죠. 그것이 제 신화성에 대한 시적 구현이라고 봅니다. 그 질문의 대답은 없어요. 질문을 던진다는 것에 의미가 있죠. 시원에 대한 질문이 나를 관통하여 어디로 향할 지가 지금 제가 바라보는 시의 길입니다. 아마 물질이 아닐까 싶은데요. 지금 ‘돌’이라는 물질을 통해 그것을 실험해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동범 : 그렇군요. 그런데 그와 같은 세계를 추구하기 때문인지 이재훈 시인의 작품은 확장된 세계라는 외연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외부로 확대된 이러한 시적 개성은 첫 시집에서부터 주요한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확장된 시적 지평을 추구하는 특별한 의도가 있나요?

 

이재훈 :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데요. 제 언어습관 때문인 것 같아요.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많이 상상해 왔거든요. 하나의 사물을 보면 그 사물의 탄생 이전이 궁금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주로까지 상상이 나아가는 거죠. 시론에서 동일성의 시학을 보면 ‘세계의 자아화’라는 말을 쓰잖아요. 이 세계의 본질을 하나의 시적 대상에 집적시켜 시인의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인데요. 저는 이 동일성이 제 자아가 자꾸 어떤 외부로 이동하고 합일해가면서 이루어지는 방식은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넓게 보면 이것도 본질적으로 동일성이 되겠죠.

 

조동범 : 그렇다면 그렇게 마련된 ‘세계’로서의 첫 시집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나요? 생각이 깊었던 만큼 특별한 느낌이었을 것 같군요. 첫 시집을 출간했을 때의 소회뿐만 아니라 시집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이랄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첫 시집을 출간하기까지의 기간이 좀 긴 편 아닌가요?

 

이재훈 : 네. 등단한 지 7년 만에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를 출간했고, 그 이후 또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를 출간했으니 요즘의 시집 출간 간격으로 보면 늦은 편이죠. 첫 시집을 준비하면서 조급해하는 후배들을 볼 때면 제 얘기를 해줘요. 나를 반면교사로 삼아 위로를 받으라고요.(웃음) 시인들은 동료들을 많이 의식하잖아요. 모두 나보다 못한 시인들이 잘되는 것 같거든요. 이런 것에 자꾸 매이면 스트레스 받아서 시를 쓰지 못하겠죠. 이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져야 오래 자기의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료들과 경쟁하지 말고 나 자신과 경쟁해야 한다고 얘기해 줍니다. 더 나아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세상의 모든 진실과 모종의 상관관계를 맺는다면 더 좋겠죠.

때때로 시에서의 경쟁이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 동력이 되기도 하겠죠. 하지만 저는 그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저 또한 시적 욕망이 많은 사람이죠. 그렇기에 지금까지 시를 쓸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여러 면에서 문학 외적인 부분을 되도록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런 생각들이 시집 출간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첫 시집을 출간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시집 출판 환경이 좋지 않았어요. 특히 첫 시집인 경우에는 더 힘들었죠. 몇 년 전부터 시집을 묶어 놓았는데요. 출판사 선정에서부터 출간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다보니 시집을 많이 손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초반에 넣고 싶었던 시들이 자꾸만 형편없어지는 거예요. 또 제가 추구하는 방향의 시집을 기획하려다 보니 여러 시들이 걸러져서 결국 44편만 남게 되었어요. 첫 시집은 제가 가고 싶은 시적 방향을 막연하게나마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애정이 있죠. 제 딴에는 첫 시부터 마지막 시까지 정말 공들여 기획을 했다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세상에 내보내는 첫 번째 책이 첫 시집이었는데 어찌 애정이 없겠어요.

 

조동범 : 첫 책, 첫 시집이라고 하니까 제 마음이 다 두근거리네요. 저 역시 첫 시집을 내던 때의 설렘을 잊을 수가 없거든요. 누구에게든 ‘첫’은 참으로 두근거리는, 그런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자, 그럼 이제 개인적인 질문을 좀 하도록 할게요. 요즘의 근황을 좀 들려주겠어요? 많은 동료들이 이재훈 시인을 시인이자 편집자로, 대학 선생으로 기억하고 있잖아요. 시인 이재훈이면서 동시에 <현대시>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편집자 이재훈이기도 한데요. 편집자로서의 일상과 선생님으로서의 일상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일상 모두가 궁금하네요.

 

이재훈 : 문예지 편집자와 대학에서의 강의를 병행하는 삶이 벌써 꽤 오래되었네요. 앞으로 제 삶이 분명 변하겠죠. 어떻게 변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요즘은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느낄 때가 있어요. 제 딸 은율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든요. 사람들이 모두 놀라더라고요. 벌써 그렇게 되었냐고.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네요. 제가 가장의 역할에 대해서는 형편없는 편이죠. 시인들의 아내는 순교자적 삶을 살아야 하잖아요. 겨우 겨우 가장의 흉내를 내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어요.

 

조동범 : 그런데 <현대시> 부주간으로 일하면 문학과 관련된 모임이 많을 텐데요. 그게 글을 쓰는데 방해가 되거나 그러지는 않는지도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할 것 같거든요. 편집자로서 지내는 시간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갖는 시간과는 다를 것이고, 퇴근 후에도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고 집에 돌아가서 가장의 역할까지 하려면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거기에 더해 일상의 고단함도 있을 거고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해요. 혹시 여행 좋아하시나요?

 

이재훈 : 문학 모임에는 저의 자발적 기분에 따라 다니고요. 제가 꼭 가야 하는 문학모임은 많지 않아요. 개인적인 모임들이 많은 편이죠. 제가 시도 쓰고, 가끔씩 평론이나 에세이도 쓰고, 강의도 하고 편집자도 하니까 걱정들을 많이 하시죠.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요.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시를 못 쓴다는 건 모두 다 핑계죠.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할 것 같지만 저는 혼자 영화도 보고, 프로야구 중계도 보고, 도서관에도 설렁설렁 다녀요. 자주 그러지는 못하지만 혼자인 시간, 고독한 단독자의 시간을 얻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죠. 밖에서 하루 놀았으면 다음날은 원고를 쓴다거나 혼자 논다거나 육아를 담당한다거나 해요. 이게 나름 균형을 맞춰가며 사는 거예요. 동범형도 자신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집안 살림을 해놓고 점수를 따놓는다거나, 밀린 원고를 후딱 써놓는다거나.(웃음)

또 낮에는 일상인의 삶이었다가 저녁이 되면 시인의 자의식으로 돌아오려고 많이 노력해요. 중요한 건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자의식의 집중도인 것 같아요. 그리고 메모하려고 하죠. 메모하지 않으면 내가 발견한 미적인 순간을 자꾸 놓쳐버리니까요.

여행은 자주 가는 편이 아니에요. 제가 어렸을 적부터 이사를 자주 다니고, 젊은 시절에 훌쩍 떠나는 시간들을 많이 가져서일까요. 낯선 곳에 대한 향수를 이젠 꽤 참을 만해요. 올 겨울엔 친구와 둘이 부산에 다녀온 것이 기억에 남네요. 광안리에서 남포동, 보수동, 태종대까지 다니며 실컷 바람맞고 왔죠. 공간이 문제는 아니죠. 그날 부산의 바람은 제게 마다가스카르의 바람과 다를 바 없었어요. 아, 물론 가족들하고는 자주 다니죠. 가족이 생기다보니 이젠 혼자 떠나는 여행이 쉽지 않아요. 꿈만 꿀 뿐이죠.(웃음)

 

조동범 : 일상을 견딘다는 건 참 쉽지 않은 문제지요. 시인이 된 이후에는 특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문단에 나와 만나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신지가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그동안 많은 시인들이 등장했고 사라져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만큼, 우리가 문단에 나오고 첫 시집을 냈던 2000년대 초중반의 시단의 모습과 요즘 시단의 모습은 또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세대교체도 많이 이루어졌고, 시세계의 변화도 감지됩니다. 등단 이후 벌써 16년인데 최근 시단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네요.

 

이재훈 : 많이 달라졌죠. 젊은 세대의 교체 주기도 빨라졌고요. 저는 아직도 선배시인들에게 젊은 시인으로 불리는데, 제 밑의 세대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제 저도 중견 아니면 선생님으로 불리는 세대가 된 거죠. 세대교체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너무 빨리 젊은 시인들을 혹사시키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렇게 쓰다가 오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이 돼요. 또한 아직 자기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인데 시단에서 저렇게 눈 치켜뜨고 주목하고 있으면 힘들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시단이 시인들에게 이것저것 여러 스타일도 실험해보고, 자기 세계를 이쪽저쪽 두드려보고 하는 여유를 허락해 주지 않는 것 같아요. 좀 더 빨리 새로운 것만 내놓으라 요구하죠. 유행이 끝나면 더 젊은 세대로 옮겨가겠죠.

어느 시대나 전통과 새로움은 서로 길항하며 발전을 해왔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 중 하나인 이분법적 갈등이 시단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시인과 독자와의 소통이 문제가 아닙니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혹은 전통과 전위의 시인들끼리 소통이 안 되고 있어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용인해 줄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 속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인들을 바라볼 수 있겠죠. 서정과 모던으로 구획 짓는 전근대적인 구분법의 프레임에 갇혀서 정말 좋은 시인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정치에서 진정한 의미의 보수와 진보가 드문 것처럼 대부분의 시인들도 서정과 모던의 경계에 있다고 보는데요. 이 경계에는 관심이 없죠. 우리 시단이 유행과 관계없이 자기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시인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토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조동범 :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일 텐데요. 시집을 내면서 늘 그렇듯 변화에 대한 시적 모색이 고민일 것 같아요. 특히 다음 시집은 지난 10여년을 마무리하고 새 출발하는 의미가 강할텐데 말이죠. 지난 시집이 2011년에 나오기는 했지만,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은 등단 이후 10여 년 동안의 문학적 궤적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물론 시적 모색이라고 하는 것이 새로운 시집을 낼 때마다 늘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제 신인이나 젊은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뭔가 다른 변화에 대한 탐색이 필요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이재훈 : 세 번째 시집은 준비 중에 있습니다. 세 번째 시집은 첫 번째 시집에서 추구하려던 세계를 확장하고, 두 번째 시집에서 고백했던 도시의 성찰이 더 처절하게 이어질 것 같습니다. 새 출발이라는 말보다는 더 확장된다는 느낌이 강할 것 같아요. 시적 대상도 다양해지고, 어조도 조금 달라지고요. 앞으로 더 가야 할 세계의 지향점에 징검돌을 놓는 기분입니다. 이제 나를 벗어나 타자와, 다른 세계에 눈을 돌리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조동범 : 이제 중견(?) 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삶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말이죠.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지도 궁금하지만, 시인으로서 어떤 문학적 삶을 살고 싶은지도 궁금해요. 앞으로 나이가 들수록 시쓰기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선배 시인들을 보더라도 문학적 삶을 지속한다는 게 참 어려워 보이거든요.

 

이재훈 : 저 아직 중견 아니에요. 중견되려면 멀었어요. 제가 중견이면 형도 중견이니 서로 그러지 맙시다.(웃음) 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삶이라… 어렵네요. 시인이 꼭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죠. 다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갈 텐데. 저도 아직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요. 제 시집의 자서에서 말한 대로 멋있게 늙는 것이 바라는 바고요. 추하거나 구차한 시인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고민 중입니다.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며 살아야겠죠.

 

조동범 :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네요. 마지막으로 <현대시>를 비롯한 한국시의 독자들과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할게요.

 

이재훈 : 저는 시인들은 모두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시인들을 살펴보세요. 특별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살아낼 수가 없어요. 때론 천형을 받은 존재들이라고 하지만, 그 형벌을 행복하게 받아낼 줄 아는 존재들이 시인들 아닙니까. 시인은 통각에 가장 예민하면서도 가장 강한 내성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시인의 한 마디 말이 삶의 어느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자신을 송두리째 전율시킬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말에 온 맘으로 귀 기울이면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조동범 : 긴 시간 고생했습니다. 다시 한 번 현대시작품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이재훈 : 네. 감사합니다. 형과 대담을 하게 되어 참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_ <현대시>, 2014년 5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

아닌 척 노력해도 종국에는 오은인 걸 들키고 마는 시

 

 

 

오은 ․ 이재훈

 

 

 

이재훈 : 반갑다. 오은 시인. 우린 오래 만난 사이인데 새삼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냥 편하게 얘기하기로 하자.

 

오은 : 좋지, 형.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 못 본 지 두 달은 넘은 것 같네.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듯 답할게.

 

이재훈 : 세월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요즘 마음이 무겁고 괴롭다. 슬픔과 분노가 교차되어 한 마디로 멘붕 상태다. 어떻게 잘 버텨내고 있는가.

 

오은 : 그제는 안산에 다녀왔어. 유가족들이 단상에 올라가는데 모인 사람들이 다 훌쩍이더라. 유가족 한 분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지. 분노와 무기력, 슬픔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이면 결국 울게 되는 것 같아. 울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한동안은 넋이 좀 나간 채로 지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재훈 :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 과연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세월호와 같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시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들. 이런 때에 한 정치인이 시를 써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시가 희화화되지 않았나. 오은 시인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하다. 

 

오은 : 고통을 덜고 위로를 해주는 것은 시가 할 수 있는 부차적인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인이 그 시를 쓸 당시에 기대했던 바가 아닐 수도 있고.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아이를 잃은 부모가 나오잖아. 시는 어쩌면 제과점 주인이 그 부모에게 건네는 롤빵보다 하찮은 것일지 몰라. 허기를 달래주지도, 가시적으로 온기를 전달하지도 못하니까. 그러나 나는 시가 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각자의 말로, 우리의 말로 기억하는 거지.

 

이재훈 : 내게 오은 시인은 막내동생과 같다. 나뿐만은 아닐 텐데. 문단의 교유가 넓은 편 아닌가. 오은 특유의 친화력이 부러울 때가 많다. 오은의 어머니를 뵐 때 느끼는 것인데,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았구나 생각했다. 그 천진무구의 성정은 어디로부터 연유된 걸까?

 

오은 : 집이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어. 아버지가 선생님이었는데, 우리 집은 엄격하기보다는 자유로웠지. 우리가 거짓말할 때를 제외하곤 매를 들지 않으셨으니까. 단칸방에 꽤 오래 살았는데, 덕분에 부모님과 형이 거의 항상 가까이 있었어. 귓속말을 해도 다 들릴 정도였어. 형이 무슨 책을 읽는지, 어머니가 무슨 색깔의 매니큐어를 칠하는지, 아버지가 어떤 TV 프로그램을 좋아하시는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 어머니의 긍정적인 성격을 닮은 것도 한몫한 것 같아. 가난이 단 한 번도 부끄러운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부모님이 우리가 부족한 거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아낌없이 베풀어주셔서 그랬을 테지만.

 

오은_이재훈_ 약수역_2014.5

 

이재훈 : 사회학을 전공하고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문학이 아니라 사회학을 택하게 된 이유라도 있는가? 그리고 문화기술대학원에서는 어떤 연구를 했나. 그 연구의 결과물로 로봇서사를 다룬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를 출간했다. 독자들을 위해 소개 부탁한다.

 

오은 : 학창시절에 문학을 전공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었어. 알다시피 나는 친형 덕분에 등단을 했으니까. 중고등학교 시절 큰 대회에서 몇 차례 상을 받긴 했지만, 그건 대부분 산문이었고. 무엇보다 나는 내가 쓰는 것이 시가 될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았거든. 수험생이 으레 그랬듯 나 역시 교과서 시들만 접했으니까. 국문학은 내가 범접하기엔 너무 멀리 떨어진 학문이었던 셈이지.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하고 1학년 때 전공 탐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 나는 원래 기자가 꿈이어서 언론정보학과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수업을 듣고는 실망하고 말았지. 내 기대와는 전혀 달랐거든. 심리학, 경제학, 외교학, 인류학 등 사회과학대학에 있는 다른 전공들을 듣다가 사회학이라면 머리는 아프지만 기분 좋게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거리낌 없이 의심할 수 있었으니까. 궁극적으로는 세계를 바라보는 고유의 시선을 갖고 싶었지.

문화기술대학원은 ‘융합기술’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막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문을 연 대학원이야. 국문학, 법학, 경영학, 미학, 컴퓨터 공학, 건축학, 산업디자인 등 다양한 전공 출신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지. 겹치는 전공이 거의 없었을 정도니까.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구현하는 데까지가 우리가 하는 일이었지. 그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작업이 팀으로 이루어졌어. 가령 나 같은 사회과학도가 어떤 것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문을 트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친구가 그것이 현재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는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야 사용자들에게 좀 더 편안할까를 고민하고 경영학을 전공한 친구는 그것이 시장에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 따져보는 거지. 얼핏 분리된 작업 같지만, 한자리에 모여 항상 머리를 맞대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작업했어. 그 친구들과의 작업 경험은 아마 평생 동안 잊을 수 없을 거야.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라는 책은 ‘로봇’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산업자원부( 산업통상자원부) 프로젝트였어. 로봇이 변화함에 따라 그것을 가지고 만들어진 콘텐츠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피는 게 목적이었지. 나는 영화, 소설 등 서사를 다른 하나의 축으로 세우고 작업했다면 어떤 친구는 무용(퍼포먼스)을 다루는 작업을 했어. 로봇과 교육, 로봇과 디자인, 그리고 로봇과 애니메이션을 함께 엮어서 살펴본 친구들도 있었고. 이른바 ‘로봇 시리즈’로 출간된 이 책들을 읽어보면 우리가 로봇이라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협소한 개념인지 파악할 수 있을 거야. 로봇이 어떤 존재로 우리에게 인식되어왔는지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고.

 

이재훈 : 색과 그림을 다룬 책 <너랑 나랑 노랑>을 출간했다. 오은 시인은 문학과 미술뿐 아니라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다방면의 문화 취향에 대해 들려 달라.

 

오은 : 조예가 깊지는 않다고 생각해. 미술, 음악 등 다른 분야에 몸담은 사람들과 협업을 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들과 대화하기에 큰 무리가 없는 정도야. 좋아하는 건 어떻게든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하잖아. 그러다 보니 틈나는 대로 찾아서 읽고 보고 들었지. 시간이 없어서 요새는 전시는커녕 영화도 많이 못 봐. 많이 속상하긴 한데 언젠가는 찾아올 여유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지.

취향에 대해서라면 크게 할 말이 없어. 두루두루 다 좋아하거든.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색과 그림을 다룬 책을 낸 것처럼 색을 잘 구사하는 화가들을 좋아해. 앙리 마티스나 파울 클레 같은 화가를 예로 들 수 있겠지. 음악은 신스팝(synthpop)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해. 기타보다는 건반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요새 부쩍 들어. 나는 줄곧 내가 기타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웃음)

요 몇 년 사이에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아졌어. 몇 년 전부터 타이포그래피 아티스트들과 작업할 기회가 있었는데, 시가 읽는 것에서 보는 것이 될 때 어떤 질감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지. 작년에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에서 영상으로 내 시를 보여줄 기회가 있었는데, 아예 해당 미디어에 걸맞게 시를 새로 썼거든. 서울역 근처를 지나가는 시민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을 거야. 앞으로도 기회가 생기면 협업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싶어.

 

이재훈 : 큰 교통사고로 인해 생사를 넘나든 적이 있지 않은가. 아직도 많은 시인들이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한동안 기억을 잃어버렸던 실존의 경험이 시 쓰기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오은 : 글쎄, 나는 그때가 좀 뿌예. 많이 아팠다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니까. 물론 재활 치료의 고통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정말 끔찍했지.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머리에 물이 찼었는데, 그 물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니까 사고 직후부터 수술 직전까지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진 거야. 그사이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지인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지. 정말 가관이더라고. (웃음)

그때의 기억을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은 없어. 단지 나는 내가 정말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지. 그 뒤로 아픔과 슬픔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듯싶어. 한동안은 병원에 가서 대기실에 앉아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만 봐도 눈물이 났어.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니까.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지 아니까. 시무룩한 표정의 보호자만 봐도 어머니 생각이 나서 가슴을 쓸어내렸지. 나는 진짜 효도해야 돼.

 

이재훈 :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부터 오은 시인 하면 명명되는 것이 ‘말놀이’로 대표되는 언어감각이다. 말놀이나 펀(fun), 유희의 수사법은 오래된 전통을 가진 것이지만 오은의 언어는 다른 지점이 있다. 나는 그것이 인문학적 사유와 사회성을 겸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인문학적 말놀이라고 할까. 말놀이로 투영되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오은 : 글쎄,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말놀이 때문에 주목받았지만, 그것이 내 발목을 잡는 상황이라고 말하면 조금 우스울까? (웃음) 놀이의 세계는 변화무쌍한데, 사람들은 놀이의 가벼움, 놀이의 발랄함만 기억하니까 가끔 안타까울 때도 있어. 아직까지도 “오은? 말놀이하는 애?”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것은 나의 개성을 반영한 말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면서 은연중에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한계를 미리 재단해놓는 것이기도 하거든. 그만큼 놀이가 가진 기운이 내 시를 압도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실은 놀이에서도 자꾸만 규칙을 어기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규칙을 지키면서 교묘하게 배반하는 작업을 하고 싶은 거지. 기존의 언어 규칙에 내가 짠 규칙을 접목한 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싶어. 이건 형식적인 문제고, 무엇을 쓰느냐의 문제는 또 완전히 다르지. 흔히 놀이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다루고자 하는데, 아직은 내가 미숙한 탓인지 사람들은 형식에만 반응하더라고. 어쨌든 결국에는 내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

 

이재훈 : 대표적으로 「ㅁ놀이」를 보면 말놀이, 물놀이, 맛놀이, 몸놀이, 망놀이, 멋놀이, 무놀이, 문놀이, 몽놀이, 맥놀이, 멱놀이, 몇놀이, 맘놀이, 못놀이로 이어지면서 의미가 확장되고 유희가 가속화된다. 요즘도 사전을 읽나? 말놀이의 이면에 숨어 있는 시인의 태도가 궁금하다. 물론 말놀이는 재미있어 하겠지만, 그것 이외에 추구하려는 전략이 있다면 살짝 공개해 달라.

 

오은 : 응, 예전처럼 자주는 못 보지만 아직도 무료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친구가 바로 국어사전이야. 요새는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내가 익숙한 단언데 잘 사용하지 않는 것들, 뜻을 많이 품고 있어서 그중 일부만 사용하는 것들에 관심이 가더라고. 실제로 그 단어를 실생활에서 사용해보려고 노력도 하고. 입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내 말이, 내 단어가 되는 것 같으니까. 전략이라고 말할 것은 없고, 놀이라는 게 가진 기본적 속성이 즐거움, 흥겨움, 즉흥성 등이잖아. 그 놀이가 다 끝났는데 이상하게 슬픈, 혹은 이상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기분을 갖게 하는 것? 울면서 웃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당도하게 하는 것? 너무 거창한가? (웃음)

 

이재훈 :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시인의 말을 보면 “가장 가벼운 낱말들만으로 가장 무거운 시를 쓰고 싶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이 오은 시의 정체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오은의 언어는 경쾌함, 유쾌함, 유희 등의 요소들이 있다. 이런 개성은 한국 시단에 드문 세계이다. 앞으로의 언어 방법도 이 분위기를 유지할 것인지 궁금하다.

 

오은 : 글쎄, 나는 굳이 내가 어떻게 변화해야겠다고 생각한 뒤에 시를 쓰지는 않아.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을 쓰니까. 이전 질문의 답변과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양극단에 있는 감정이나 무게, 질감 등이 어떻게 시 안에서 부딪치는지 지켜보고 싶어.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친 말들, 너무나 익숙해서 그 특유의 색깔이 지워지고 있는 말들, 아무러한데 부러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데 붙어 다니는 말들 옆에 붙어 있고 싶어. 내가 해왔던 방식을 전면적으로 뒤엎지는 못하겠지. 그것은 천성에 가까운 것이니까. 단지 단어가 어떤 식으로 문장에 결절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일이 잦아지겠지.

 

이재훈 : 나는 두 번째 시집을 ‘부조리’라는 개념어로 읽은 적이 있다.(「부조리한 언어의 건축술, <세계의문학>, 2013년 가을호) 개인적으로 오은 시에 대한 평가가 너무 언어감각과 방법론에만 치중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언어의 껍질을 벗겨내고 시의 속살을 바라보면 문명인의 무기력함과 한 개인의 쓸쓸함이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언어는 재밌게 놀고 있지만 분명 쓸쓸할 때 이 시를 썼을 거야 라고 혼잣말을 할 때가 있었다. 시를 쓸 때 어떤 정서의 감도를 가지고 쓰는가. 예를 들어 슬플 때, 기분 좋을 때, 헛헛할 때 등등처럼.

 

오은 : 쓸쓸하지. 나는 항상 웃고 있지만, 거의 항상 외로워. 외로우면 눈물도 나고 울상도 짓는 게 일반적인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더라고. 근데 그게 나를 포장하는 방식은 아니야. 나는 너무 슬플 때는 웃음이 터져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쓸쓸함이나 외로움은 연애를 하거나 복권에 당첨이 된다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시인으로 살고 있는 것도 우스꽝스럽고, 부조리를 감추려고 또 다른 부조리가 행해지는 것을 목도할 때면 정말이지 어이가 없지. 생각해봐. 웃음의 차원도 여러 가지잖아. 배꼽을 잡고 뒹굴뒹굴 구를 때도 있고 어처구니없어서 피식 웃고 마는 경우도 있으니까. 웃음을 유발한다고 해서 그게 가벼운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 형 말처럼 그 안에는 무기력함과 쓸쓸함, 공허함 같은 것이 다 담겨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쓸쓸하면서 우습고, 한없이 밝으면서 뒤꽁무니에는 거무스름한 그림자를 길게 달고 다니는 셈이지. 말하고 보니, 시를 쓸 때 딱 저런 상태인 것 같아.

 

이재훈 : 최근 시를 보면 점점 더 의미가 강화된다는 느낌이다. 「우리 학원」이나 「맥거핀」,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다움」 등에서 보이는 사회성이나 존재에 대한 풍자가 더 깊어진 것 같다. 「반의반」에서처럼 말놀이의 재기는 여전하고.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

 

오은 : 딱 봤을 때, “이거 오은 시네!”라고 말할 수 있는 시. 나는 나의 시를 쓰고 싶어. 나만 쓸 수 있는 시. 내가 들어가 있는 시. 내가 아무리 내가 아닌 척 노력해도 종국에는 오은인 걸 들키고 마는 시를.

 

이재훈 : 우문이지만 현답이었다. 인터뷰 하느라 고생 많았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오은 : 응 형. 나도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어.

 


 

오은 : 1982년 전북 정읍 출생.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및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로봇과 서사를 다룬 책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그리고 색과 그림을 다룬 책 <너랑 나랑 노랑>을 썼다. 현재 작란(作亂)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이재훈 :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저서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부재의 수사학>,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다. <현대시작품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_ <시향>, 201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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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선생님

시시각각 2014. 5. 17. 01:10

기억이 벌써 가물한데, 사진을 보니 2012년 11월이다.

이승훈 선생님의 전집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몇 시인들이 모였다.

선생님께 한 마디씩 적은 나무와 승복과 어울리는 머플러...

선생님께서는 연신 활짝 웃으셨다.

이승훈 선생님의 자택 근처. 강남역 부근이다.

 

이승훈 선생님께서는 현재 병중이시다.

쾌유를 기도하며...

 

박상순, 이수명, 이원, 정재학, 오은, 강동우, 이민하, 김경인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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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옥의 집

시시각각 2014. 3. 31. 22:58

동옥의 집에서 조촐한 파티를 했다.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 동옥의 신혼집이다.

지하에 있는 동옥의 공부방을 찍지 못해 아쉽다.

이날의 메뉴는 다음과 같다.

쭈꾸미, 호박죽, 해파리냉채, 홍어무침, 갓김치, 간장게장, 꼬막, 낙지죽, 생굴, 월남쌈, 숯불 삼겹살.

동옥의 집에서는 그냥 있는 반찬이란다.

옥의 짝 여의씨에게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즐거웠을까. 더 말해 무엇하랴.

신동옥 부부, 박장호, 서대경과 함께 했다.
지난 3월의 어느 토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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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파

시시각각 2014. 3. 31. 22:44

일명 <약수파> 모임이다.

약수에서 만나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엔 이곳이 각자 집에서의 중간 지점이었다.

약수역 근처 <스코어>.

올해 1월의 어느 날이다.

무엇 때문에 모였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본 지 오래된 것 같아 만난 것이겠지.
다트 배틀은 오은의 완승으로 끝남.

참, 이후 현승형은 쌍둥이를 출산했다.^^

 

정재학, 오은, 이재훈, 이현승, 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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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3일과 17일. 두 차례에 걸려 극단 <두목> 배우들과 수업을 진행했다.

나는 극단 <두목>의 명예단원이다.^^

함께 놀아준 배우들. 오래 함께 만났으면 좋겠다.

11월 17일. 삼선교에 위치한 극단에서 기념 촬영 한 컷.

 

이준혁, 김현, 이재훈, 손인정, 이설, 원인진(오은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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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서의 기록

시시각각 2013. 10. 11. 16:05

2013년 7월의 여름이다.

문학콘서트에 참여한 인연으로 모인 '황새'.

두목은 권대웅 선배님.

홍대 이춘복 참치에서 실컷 먹었던 날.

신혜정, 김선재, 조동범, 박지웅, 이혜미, 이재훈, 권대웅,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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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한다.

2013년 약수역의 여름날.

김언 시집 <모두가 움직인다>가 출간된 지 얼마 안 된 날이다.

배경은 저래도 분위기는 엄청 좋았던 날.

 

김언, 이현승, 오은, 정재학,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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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

 

 

이재훈

 

 

산책길엔 언덕이 있다.

그날은 이상했다.

오르고 올라도 닿지 않는 거리를 헤맸다.

혼을 빼앗긴 것처럼.

늪에 빠진 것처럼.

뒷덜미를 놓아주지 않는 불빛이 있었다.

사위가 어둠에 둘러싸이면서

상점엔 불이 하나씩 켜졌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근원을 바랐다.

기적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어둠이 안겨주는 거대한 정적을,

위대한 침묵을

나는 알지 못했다.

상처받은 한 친구를 생각했고

갚아야 할 빚의 액수를 생각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바쁜 거리의 일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산책길엔 언덕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길목과 길목이 혀를 내밀어

내 몸을 떠받치고 있을 뿐.

타인의 인격을 규정하지 않기로 했다.

지혜로운 자가 되고 싶었다.

장 그르니에가 산타크루즈를 오르며 쬔

빛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었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환호하지도 분노하지도 못하는,

심장을 꺼내 거리에 내던지고 싶었다.

심장이 몸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은,

그 짧은 시간만큼은 황홀하겠지.

언덕이 있는 곳은 월곡(月谷),

달빛이 있는 골짜기다.

언덕을 오르고

또 한 언덕을 오르면

마치 기적처럼 달빛에 닿는,

존재의 비밀을 한순간에 깨칠

그런 순간이 올 수 있을까.

산타크루즈를 오르며 쬔

그 햇살의 순간처럼.

 

- 시집 <명왕성 되다>(민음사, 2011) 중에서

 

 


 

골목길 산책자

 

 

 

이재훈

 

 

 

장 그르니에는 산책자의 위의(威儀)를 가장 매력적으로 드러낸 이다. 우리에게 산책이란 그저 평범한 시간을 가장 평온하게 보낼 수 있는 생활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그르니에에게 산책은 여러 가지 철학적 의미를 담은 고귀한 행위였다. 심지어 그는 산책의 정의와 좌표들을 설정하고 산책의 시간과 산책하는 자의 진귀한 내면을 파헤쳤다.(「산책」, <일상적 삶>, 장 그르니에(권오룡역), 청하, 1988) 즉 산책에도 여러 가지 성격의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강제에 의한 산책, 이성에 의한 산책, 사회성에 의한 산책, 철학적인 산책, 자연과의 융합수단으로서의 산책, 완성된 산책 등이 그것이다.

저 유명한 칸트의 저녁산책은 정기적인 휴식의 산책이다. 그에게 산책은 자신의 작업으로부터 벗어난 유일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이에 반해 니체의 산책은 자신의 작품을 구상할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루소의 산책은 몽상과 명상을 장려한 산책이었다고 한다. 장 그르니에는 루소의 산책은 타인과 교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도망가게 해주는 산책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이런 산책을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으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기 위한 산책. 키에르케고르의 아버지는 산책했을 당시의 모든 장소를 아주 상세하게 묘사해주는 방식을 택했다. 즉 가시적이고 관조적인 산책의 즐거움을 일깨운 것이다. 하지만 열자(列子)는 산책에서 관찰하는 기쁨을 찾지 않고 명상하는 기쁨을 찾았다고 한다. 이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기쁨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산책이라고 말한다. 열자의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산책하되 완전하게 하라. 완전한 산책자는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걸으며, 그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바라본다…… 나는 네게 어떠한 산책도 금하지 않지만, 완전한 산책을 할 것을 충고한다”고.

한동안 나도 산책을 했다. 아니, 산책을 한다는 자의식 없이 그냥 걸었다. 내려야 할 지하철 한 두역 전에 내려 걸었다. 내가 주로 걸었던 길은 집 주변의 골목길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골목길을 걸으며 내가 욕망하는 것, 놓고 싶은 것, 바라보고 싶은 것, 듣기 싫은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즈음에 「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라는 시를 쓰게 되었다. 골목길을 걸으며 나는 언젠가 읽었던 장 그르니에의 산책을 떠올렸다. 그의 책 <지중해의 영감>(청하, 1988)은 내 감성의 세포들을 흔들어 놓았다. 물론 그의 산책과 나의 산책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골목길이 내 삶의 길이 아니라 지중해 도시의 어느 신비한 골목길이길 바랐다. 어떻게 보면 위의 시는 내 산책의 비망록과 같은 시이다. 산책을 통해, 산책을 통한 시를 통해 나는 조금 위로받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다 그렇게 골목길을 걷는 것도 조금 뜸해졌다. 이제는 골목길을 걸으면 가끔씩 눈물이 난다. 한없이 작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길, 담쟁이와 붉고 노란 꽃들이 담벼락을 타고 넘는 길, 욕망과 욕정이 자욱한 길, 더럽고 추하고 가난한 길, 시끄럽고 위험하고 울퉁불퉁한 길, 소년소녀들이 욕하고 침을 뱉고 담배를 피우는 길, 취객들과 노인들과 부부들의 싸움소리가 새어 나오는 길, 이 모두가 공존하는 길. 그 골목길이 내 삶이기 때문이다.

다시 장 그르니에로 돌아가 보자. 그는 알제리의 오랑에 있는 산타크루즈에서 산책을 한다. 태양의 발자취가 언덕을 휘감는 아름답고 신비한 풍경을 기적이라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을 직시한다. 산책 속에서 만나는 거대한 풍경으로 삶과 존재의 비밀을 언뜻 알게 된다. 이 모든 순간들이 우리를 채워주기 보다는 비워버린다는 깨달음까지도. 그의 일상은 고귀한 산책의 시간을 누리는 것이었다. 여전히 그의 산책은 가장 멋있다. 나의 골목길 산책도 어떻게 변할 지 기대된다.

 

_ <시평>, 2013년 가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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