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남자의 일생」

 

이재훈, 「남자의 일생」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진 애벌레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데
온 생을 바쳤다.

늦은 오후
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
그림자 찾아들고
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

나비 한 마리
공중으로 날아간다.

풀잎이 몸을 연다.

시·낭송 _ 이재훈 –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등이 있다.

 

배달하며

한밤중이 되면 몸에서 수선화가 피어난다는 시인. 깊은 동굴로 들어가 서둘러 어둠을 껴입고 찰박찰박 입술을 오므려 휘파람을 분다는 시인.
애벌레-나비-남자들은 낮에는 실존적인 제약과 필연 속에 넥타이를 매고 아스팔트를 달려 “매일 출근하는 폐인”이다.
나비는 시인이요, 일용근로자, 백수, 독학자이다.
그늘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아스팔트 위에서 뱃가죽이 뜯어지는 무력한 생명의 순환과 만다라를 읽는다. 「남자의 일생」이라는 제목에 그만 몇 편의 페미니즘 시가 움찔하다가 풀잎처럼 몸을 연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명왕성 되다』(민음사)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김은미

▶ 프로듀서_ 김태형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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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패러디 백일장

 

출처 : http://www.for-munhak.or.kr/idx.html?Qy=play_parody&nid=632&page=1



[심사평]


             제5회 문학나눔 패러디 백일장 심사평 발표

 

 

글/이재훈(시인)

 

이번 백일장에서는 응모작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힘든 모양이다. 응모작들을 한 편씩 읽으면서 각박한 삶의 세목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때론 히죽히죽 웃음을 지었고 때론 공감했으며 때론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다.

<남자의 일생>은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한 평범한 남자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애벌레의 느리고 질기고 고통스러운 시간은 우리네 삶의 형편과 많이 닮아 있다. 응모작들 중 많은 수의 작품들이 각자의 위치 속에서 이런 고통스럽고 힘든 삶을 잘 표현해 주었다.

패러디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위트와 풍자가 담긴 수사법이다. 원작을 변용시킬 때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위트가 살아 있는가,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전달해 줄 수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Red S님의 <개똥의 일생>은 위트와 해학이 넘쳤다. 한참 웃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미지가 살아 있으면서 개똥이 거름이 되어 새로운 열매를 맺는다는 생명 순환의 의미도 담겨 있다.

토머스님의 <노숙인의 하루>는 관찰자의 시선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노숙인의 일상을 유심히 관찰하여, 노숙인이 가진 허기가 육체적 허기만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신혁님의 <지아의 일생>은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작품이다. 신지아에게 온 생은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는 시간일 것이다. 아기의 일상을 몸소 체험하여 아기의 세상을 이해하게 한다. 지아에게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수상으로 선정한 미립님의 <김씨의 일생>은 죽음의 순간을 사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평생 농사일만 하다가 쓰러진 김씨는 자식들 잘되는 것을 위해 온 생을 바쳤다. 우리 부모님들은 대개 이런 분들이다.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내기에 충분한 작품이고 표현도 깔끔하다. 특히 마지막 연에 모처럼 단잠이 든다는 구절이 시를 더욱 의미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이번 백일장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우리의 일생이 어떤 문장을 남기게 될까 궁금해지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수상 : <김씨의 일생>(미립)

장려상 : <개똥의 일생>(Red S), <노숙인의 하루>(토머스), <지아의 일생>(신혁)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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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for-munhak.or.kr/idx.html?Qy=play_parody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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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있는 아침

 

‘남자의 일생’ 부분
- 이재훈 (1972~ )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진 애벌레.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
온 생을 바쳤다.
늦은 오후.
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
그림자 잦아들고
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



양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음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나는 음지를 좋아하는 편이다. 저녁에도 불끄고 있기를 즐겨 한다. 안경도 색이 들어간 안경을 주로 쓴다. 햇빛 알레르기가 없다고 할 수 없다. 햇빛을 싫어하는 마음도 햇빛 알레르기의 일종이다. 이재훈은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 온 생을 바치는 것을 “남자의 일생”이라고 했다. 혹시 여자는 현실주의, 남자는 이상주의(혹은 낭만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낭만주의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욕을 그동안 많이 들었다. ‘현실에 대한 적극적 외면’이라고 말하면 점잖은 표현이 된다. 현실주의도 나무랄 생각은 없다. 현실주의가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고 잠을 재웠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법. 나는 요즘 햇빛이 들라치면 차양을 거두어 올린다. 햇볕을 쬐고 싶어서.
<박찬일 시인>
2008. 11. 6일자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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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일생

시詩 2008. 3. 6. 11:25

이재훈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진 애벌레.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
온 생을 바쳤다.

늦은 오후.
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
그림자 잦아들고
온 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

나비 한 마리.
공중으로 날아간다.

풀잎이 몸을 연다.


_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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