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서정시문학상 수상소감 |

 

크고 비밀한 일을 꿈꾸는 시를 위해

 

이재훈

 

비가 온 날입니다. 바싹 말라붙었던 온 대지가 촉촉해졌고 공기는 더욱 청명해졌습니다. 한바탕 쏟아지고 나니 모든 사물들이 상쾌합니다. 이런 느낌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늘 꿉꿉하고 답답하고 풀이 죽은 모습만 눈에 보였습니다. 제 문학도 그런 날이 많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답답한 날이 많았습니다. 이번 수상 소식은 이런 날 한바탕 내린 단비와도 같습니다. 큰 위안이자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늘 제가 생성하는 언어가 어떤 의미가 될까, 제가 짓는 언어의 방법들이 어떤 쓸모가 있을까 고심했습니다. 질서도 없이 범람하는 글자들 속에서 방황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고 또 물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저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산에 오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오르는 산을 잘못 택한 것은 아닌지 회의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는 알겠지만 어떻게 올라야 할지는 모르는 자의 안타까움으로 늘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럴 때 힘을 내서 올라보라고 부추겨주시는 시간이 바로 지금인 것 같습니다. 외롭지만 더 힘을 내서 올라보겠습니다. 아니, 이제 외롭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외롭고 싶습니다. 외롭지 않으면 자꾸 기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의 길은 어차피 고독한 외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길에서 손 내밀고 힘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신께서는 제게 어떤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비밀한 일이 무엇인지 여전히 궁금해 하며 시를 씁니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 깨치는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시를 계속 쓸 수밖에 없는 힘은 깨치는 그날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책상에 앉아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가 보겠습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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