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 굴사냥

시시각각 2015. 2. 6. 15:23

작년 늦가을인가...
합정역굴사냥에서 굴찜 먹던 날.
좌부터 노희준, 전영관, 김태형, 김도언과.

각자 취향대로 막걸리, 소주, 맥주를 한 테이블에서 먹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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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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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서의 기록

시시각각 2013. 10. 11. 16:05

2013년 7월의 여름이다.

문학콘서트에 참여한 인연으로 모인 '황새'.

두목은 권대웅 선배님.

홍대 이춘복 참치에서 실컷 먹었던 날.

신혜정, 김선재, 조동범, 박지웅, 이혜미, 이재훈, 권대웅,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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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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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지프를 타고 노란 잠수함으로 가라 앉기



김태형 이재훈

 

오직 견뎌 내는 일 견뎌 내면서 서서히

밑으로 더 아득한 심해 속으로 숨차 오르는 일

그래 무겁다는 것은 얼마나 숨 가쁜 일인가

가슴 죄는 일인가 허파를 가지고 있다는 이 사실은

그 얼마나 솟구치는 벅찬 설렘인가 이 고요는

― <노란 잠수함> 중에서

 

청춘에 회복이란 없다. 일시적인 위안은 있어도 다시 그 안락한 안위로의 되돌아감은 없다. 애초에 그런 자리조차 없었다는 듯이 끊임없이 흔들리며 숨가쁘다. 몇 번의 탈주를 경험한 자의식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정식으로 현실적인 삶 속으로 편입된 것이라고 스스로를 애써 타이른다.

김태형이 마련한 노란 잠수함은 “아아 이제 이 흔들림은 너무나도 편안하다”라고 말한다. 너무도 어른스러운 말이어서 그가 ‘메탈지프’를 타고 “빗속으로 시속 백구십 이백 어때 숨쉬기조차 힘들지/헉헉 마구 벅차 오르지 그래 달리는 거야”(<메탈지프>)라고 외치며 출렁거리는 젖가슴과 번들거리는 허벅지를 상상했던 그 속도의 탈주와 얼른 겹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대시인이 떠나고 없는 낯선 고장에 여행객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그 진리와 모순의 교집합(모래 바람이 불었다. 나의 몸은 낮게 석양이 저무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낯선 고장에서의 하루는 흔적도 없이 저물었다. 대시인은 그날 오래도록 집을 떠나 없었고 그에게 대답을 얻고자 기다리며 줄지어 선 여행객들은 계속해서 늘어났지만 누구도 함부로 이곳에 도착한 자는 없었다. - 시집 <로큰놀 헤븐> 자서에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그 때문인지 그의 노란 잠수함은 “무겁다는 것은 얼마나 숨 가쁜 일인가”라는 결핍의 고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허파를 가지고 있다는 보편적 사실을 내내 상기한다. 단순할 것 같은 이 인식은 ‘고요’를 ‘솟구치는 벅찬 설렘’으로 탈색하게 하는 정신적 힘이 되는 것이다.

김태형 시인은 이런 정처없음의 배회 속에서도 지독히 자아의 정체성을 심문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려는 사유의 노력가이다. 어쩌면 시인은 너무 일찍 ‘노란 잠수함’을 알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피부가 찢어지도록 빠른 속도 속에서 그는 몇 번의 하드코어 외침으로 청춘의 격렬함을 대신했다. 그리고 사유 속에서 자맥질하며 아득한 심해 속으로 숨차오르는 일을 내내 경험하고 있다.

서울 태생의 한때 록음악에 심취했었고 시쓰기와 책읽기로 20대를 보낸, 지금도 여전히 문학에 뜨거운 피가 끓어넘치는 시인. 이제는 아빠가 되고 등단 10년째가 된 젊은 시인의 사유의 흔적이 아래에 빼곡히 적혀 있다.


이재훈:예전부터 시집을 읽고 느낀 것인데요. 김태형 시인에게 어떤 선입관 같은 것들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김태형 시인을 전형적인 모더니스트라고 보는 경우라고 해야 할까요. 시집 <로큰롤 헤븐>에서 록음악과 관련된 시들이 10여 편 정도이고 나머지 시들은 전통적인 시적 방법론을 잘 지킨 서정시 계열의 시들이었는데요. 문제는 선생님의 시를 논할 때 록음악과 관련된 시들만이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만약에 똑같은 시집이 최근에 나왔다면 오히려 다른 시들이 주목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집의 제목도 상당한 영향이 된 것 같습니다. 제목이 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얘기하는 것 같거든요.


김태형:처음 시집 원고를 넘겼을 때 시집 제목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시집 출판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다른 원고보다는 뒤로 밀리게 됩니다.

원고를 보내고도 꽤 시간이 지나갔어요. 일단 시인이 한 권의 시집을 정리하고 나면 기존에 자신이 가졌던 언어들을 심화하거나 확장하면서 혹은 버리면서 거듭나려는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 무렵에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록음악과 관련된 시들을 쓰고 발표했는데 시집의 첫 교정지를 받고 나서 그 시들을 추가하게 되었어요. 시집 제목도 바꾸게 되었고요. 처음 원고를 넘겼을 때는 그런 시를 쓰지도 않았거든요. 그래서 시집 해설에서조차 거론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미 해설이 나온 상태였거든요.

시집이 나오고 난 후에는 대부분의 평자들이 시집 제목에 초점을 맞추어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외의 시들은 제 시세계의 기저를 이루는 층위로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이후 몇 년까지도 문예지에 신세대 시인들의 특집이 나올 때마다 제가 실험시인으로 분류가 되어서 록음악과 관련된 시들만이 거론이 되었습니다. 1995년에 시집이 나왔으니까 이후 몇 년 동안 제 시에 대한 논의는 조금 편향된 지점에서 이루어졌던 것 같아요. 한동안 ‘실험’, ‘키치’, ‘신세대’, ‘대중문화’ 등의 코드들이 저를 에워싸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련의 시들은 제 시가 가지고 있는 세계의 극히 일부였습니다. 그 외의 시들에 대한 평가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서 시인으로서는 불행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만큼 그 시들이 갖고 있는 개성이 너무 강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래서 제가 일련의 계열을 잇는 시인으로서 거론되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정확히 말하면 저는 실험의 양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우리 세대의 문학적 고민을 조금 일찍 드러냈던 것뿐입니다.


이재훈:실험시를 쓰는 시인으로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 실험시를 계속 쓰게 만드는 이유가 될 법도 한데요. 말하자면 평단이 원하는 것과 시인 자신이 원하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할까요?


김태형:실험시에 관한 제 생각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우선 읽혀야 그 실험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인데요. 제 시는 형태를 중시하는 방법론적인 태도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전위라는 것은 시대를 미리 앞서가는 것이라기보다 그 당대성을 첨예한 시각으로 뒤집어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저에게는 현실을 좀 더 직접적으로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언어가 요청되었던 것이지요. 많은 이들이 저를 지나치게 모던한 쪽에 초점을 맞추는 건 90년대의 폭발적인 대중문화와 시 장르를 접목하려는 암묵적인 시각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나름대로는 다양한 시도들을 했어요. 이전에는 록음악에 경도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이후에는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던한 시를 발표한 것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요. 등단작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짙은 서정 계열의 시를 발표했는데 아무래도 모던한 시들이 던져준 인상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저의 다른 일련의 작업들은 상대적으로 낡아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저로서는 좀 아쉬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재훈:첫 시집 이후가 궁금해집니다. 평자들이 주목하는 시와 시인이 주도적으로 쓰는 시의 차이가 그 과도기를 더 격렬하게 했을 것 같은데요. 평자들이나 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첫 시집에서 가졌던 문화적 코드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또 어떤 문화적 코드를 가지고 나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원하는 부분이 있었다구요. 그런 문단에서 요구하는 새로움과 그 과정 사이에서 오는 시적 행로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김태형:벌써 첫 시집을 내고 7년이 지났고 올해가 데뷔 만 10년째입니다. 시집 이후에 상당히 갈등이 많았습니다. 첫 시집에서 저는 한 권에 담을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다고 봅니다. 그 시집에는 상당히 고전적인 설화시들도 있고 연애시, 동물 알레고리를 결합한 시도 있었습니다. 일련의 사막을 배경으로 드리운 시들과 육체와 상처의 이미지, 록을 소재로 다룬 시들, 그리고 숲 연작시 등 다양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시집이었어요. 시집 한 권에 담을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버렸던 거지요. 그때는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지 내 스스로 언어의 한계치를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문학평론가 신철하 선생은 “자기의 생존 조건이 극히 위기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마지막으로 꽃을 피워올리기 위해 있는 힘을 다 쏟아붓는 한 화초의 환각”(<여보세유!>, <현대시사상>, 1996년 봄호.)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말이 당시의 저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집 이후에 한 단계 거듭나는 시세계를 보여줘야 하는데 나 스스로가 그 부분들에 대해서 만족을 하지 못했고 몇 년간 절필하다시피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어떤 것일까를 끊임없이 되묻곤 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저에게 바라는 기대 지평에 스스로 함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첨단과 복고의 끊임없는 길항 관계를 체화한 격렬한 시세계를 밀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많은 시간들이 필요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들이 새로운 것을 내놓으라고 할 때 오히려 고전적인 것들을 풀어놓는 이상한 습관을 보이곤 합니다. 그것이 저의 싸움의 방식입니다. 젊은 시인들에게 새로움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새로움에 대한 요청이 시를 망치고 있다고 봐요. 결국 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 시인의 그럴 듯한 이미지만 남아서 스스로를 파먹으며 연명하게 만들지요. 그런 경우를 볼 때마다 저는 안쓰러움을 느낍니다. 문화적 코드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것을 ‘문화’라는 틀에서 접근하면 시가 너무 생경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그런 표현을 잘 쓰지는 않습니다. 저에게는 ‘서정적 코드’라고 해야 어울리겠네요. 보통 ‘지적 모험’이라고들 말하는데 저는 거기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서정적 모험’을 중시합니다. ‘서정’이란 결코 고전적이거나 낡은 것이 아니거든요. ‘서정적 코드’를 말하는 위치에 서서 그 ‘문화적 코드’를 바라보게 되면 소위 ‘지적 모험’이 보일 것입니다.


이재훈:일찍이 손진은 선생은 <해체의 새로운 모습과 그 언술적 독법>(<현대시>, 1996년 9월호)이라는 글에서 선생님의 시가 가지고 있는 서정성에 대해 논한 바 있습니다. 내용은 자연에 대한 친연성, 대상과의 화해와 일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서정과 밀접하지만 형식 면에서 해체적 코드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러한 형식면을 긴 화법을 통해 이미지를 구사하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발표하는 시들에서도 긴 화법을 통한 이미지 구성을 엿볼 수 있고 서정성 또한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첫시집과 최근 시들의 방법론 상의 차이 같은 게 있겠지요? 아마 정신적인 면에서 바뀐 부분이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김태형:손진은 선생이 <히말라야시다에게 쓰다>를 분석한 글을 읽고서 제가 시를 너무 못 쓰지는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제가 의도한 것들을 세밀하게 잘 읽어주셨으니까요. 자연과의 친연 관계는, 아마도 저와는 좀 거리가 있을 거예요. 대상과 이미지를 해체해나가는 방법에 관심이 있는데 제가 ‘서정적 모험’이라고 돌려서 말하는 데에는, 실험과 전위라는 말이 담보하고 있는 방법적 태도, 새로움에 대한 빗나간 기존 시각으로부터 제 시쓰기를 가두어두지 않으려는 고통 때문입니다. 이전 시들이 갖고 있었던 호흡은 상당히 긴 편입니다. 보통 짧은 호흡의 시들에서 리듬감이 잘 발휘되곤 합니다. 그러나 제 시는 긴 호흡을 통해서 나오는 거친 리듬을 만들거든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 끊어지지 않는 호흡을 통해 잘 정돈된 리듬이 아니라 보다 격렬한 리듬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래에 발표하는 시들은 그런 긴 호흡을 자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선 시가 상당히 짧아진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지금 연애시를 못 쓰듯이, 제가 다루는 이미지나 호흡마저도 예전과는 어느 정도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거친 호흡을 따라갔다면, 이제는 이미지들이 안으로 집중되면서 소용돌이치는 상징의 힘에 제 몸을 맡기는 쪽입니다.


이재훈:선생님의 문학적 질료가 되는 것들 중에 많은 부분들이 문화적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정시 자체도 한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담보로한 시이기보다는 문화적인 체험을 통한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물에 대한 철학적 체험이라고 할까요. 이른 나이에 등단을 하셨는데 젊은 시절의 문화적 체험들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김태형:글쎄요. 다른 나이의 세대와 구별되는 것이 있다면 록에 대한 체험일지도 모르겠네요. 취향이야 세대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세대가 유사한 음악적 교집합을 찾기는 힘들 듯이 분명 다른 부분이 있을 거예요. 음악의 경우에 이 취향의 문제는 어느 정도 특이한 부분인 것 같아요. 90년대에 들어서서 홍대와 신촌을 중심으로 록카페가 부흥기를 맞고 있었어요. 그 전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종로의 작은 공연장 정도였습니다. 신촌과 홍대를 중심으로 좁은 공간에서 춤을 출 수 있는 록카페는 록음악과 맥주와 섹슈얼리티가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세대는 보다 폭발적인 음악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록음악에 빠져들었지요. 일렉트릭 기타의 한번 긁어내리는 폭음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것은 그 소리를 몸으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의 체질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것 같아요.

덧붙인다면 요즘 어떻게 하면 대중문화를 문학에 접목시킬까 하고 고민하는 게 저는 참 우습게 보여요. 그만큼 문학이 현실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 대중문화를 문학에 접목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껴야 하는지 저는 이해가 잘 안되었습니다. 물론 문학은 허구를 통해서 진실에 이르는 장르입니다. 하지만 사실과 현실의 세계를 허구의 폭력으로 가두어두면서부터 문학은 실체를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문학에서 말하는 현실의 개념은 실제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현실과 일상이 문학에서는 다른 개념으로 소통되는 느낌이었어요. 대중문화를 소재로 차용하거나 혹은 그 속성 자체를 다루는 작품의 경우라 하더라도 그 본래의 문학과의 싸움이 전제되지 않으면 단순한 소재주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저의 몇몇 시들은 이런 소재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기존 문학이 끊임없이 유포해왔던 ‘반성’의 미학에 대한 거부로서 저의 몇몇 시들은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의도이기도 하고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대중문화를 차용한 작품들이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 정신을 담보로 그 의미를 확장하려고 했습니다만 그것은 또 다른 ‘거짓’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뻔히 보이는 ‘반성’과 ‘비판’의 태도야말로 다시 한번 뒤집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의 세대가 맞이했던 문화적 체험이 있다면 저 허위적인 반성과 비판의 지식으로부터 스스로를 풀어내려는 자세일 것입니다.


이재훈:웹사이트 기획, 제작이 직업이 되었으니까 컴퓨터도 시작(詩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요?


김태형:시를 쓰는 데는 오히려 역효과가 났지요. 먼저 이야기를 하자면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인 매우 소중한 체험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를 시작하고부터는 글을 못 쓰게 되었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시세계의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시쓰기를 일시적으로 멈추는 방법을 선택했던 이유도 있었지요. 하지만 컴퓨터와 통신, 인터넷 자체가 저에게는 글을 쓸 수 없게 만드는 새로운 환경이었다고 여겨집니다. 문제는 제가 몸담은 그 세계가 저 자신에게 글을 쓰게 만드는 내적 충동을 일으키지 못했던 것이지요. 오직 그 공간에만 신경질적으로 매달리면서 한동안 시를 못 썼어요. 시를 쓰지 않으면서 그간 제가 이루었던 어떤 세계의 일단을 되래 놓치고 있었던 거예요. 어느 정도의 수준을 회복하는 데만도 꽤 많은 날들을 보내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 시간이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요즘은 네트워크를 사유화하는 시를 조심스럽게 쓰고 있는데요. 이런 시간들이 내적으로 잠재되어 있었으니까 지금 이렇게 빠져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나 상당히 오랫동안 저로 하여금 글쓰기에 벽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의식과의 싸움은 이제 고작 시작일 뿐입니다.


이재훈:간간히 평론도 발표하시고 계시는데요. 디지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평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쓰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디지털하고 친해지기가 힘듭니다. 본능적으로 어떤 선입관인데, 기계적인 것과는 반감 같은 게 있습니다. 한동안 PC통신을 시작하면서부터 전자매체와 문학과의 관계를 논한 글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 글들의 대부분은 뜬구름잡기 식이거나 이왕에 있었던 것들의 반복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인터넷을 안하고는 안될 만큼 우리 삶의 또 다른 한 부분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공간이 아직까지 시의 장벽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더 옛날로 돌아가는 듯한 인상까지 받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우리 삶의 한 부분임을 이제 부정할 수 없다면 이런 부분들이 어떻게 시 속으로 들어와 시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지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일각에서 하이퍼텍스트 시나 몇몇 시도들을 하고는 있는데요.


김태형:지금 컴퓨터나 인터넷을 다루는 몇몇 시들이 있는데 그런 시들의 대부분이 실험성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결과겠지요. 왜 시와 네트워크 사회가 아직까지 불화를 하고 있는가 생각해봤더니 시가 가지고 있는 서정성이 너무 강해서 그런 것 같아요. 우선 서정에 대한 개념이 바뀌지 않고는 네트워크 사회를 시에서 수용하기는 힘듭니다. 시가 가지고 있는 서정성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전통적이고 복고적인 경향이 두드러지는데요. 그런 서정이 담보했던 수위를 네트워크가 가지고 있는 차갑고 즉물적인 금속성의 서정으로 대체할만한 언어가 우리에게는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서 시가 실험성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이제는 컴퓨터를 몰라서 못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예전 도스 시절에는 그래도 명령어 몇 개쯤은 알아야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사용자가 직접 네트워크와 접속하기 위해서 모뎀을 사다가 세팅을 해야 하는 등 하드웨어적인 지식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통신회사에 전화만 한 통화하면 바로 인터넷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컴퓨터를 몰라도 되는 사회에 와 있습니다.

이 네트워크 사회가 시로 승화되려면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절에 시가 소설보다 더 시대를 발빠르게 언어로 담아낼 수 있다는 관점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의 네트워크 사회를 시의 언어로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자기 내부에 잠재되고 체화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미 PC통신이 본격화되면서부터 문예지에 여러 특집들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사실 통신문학은 장르문학에 다름 아니지요. 문단에서의 이러한 관심들은 그다지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유행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온 듯하네요. 그러고도 이제 막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잖아요. 새로움에 대한 광적인 집단 무의식이 현실에 대한 발빠른 적응력을 키워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반면 거짓 문학이 저잣거리의 언어를 들고서 새로움의 포즈를 취하는 것은 결코 막을 수 없을 거예요. 우리는 늘 허상을 붙들고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이재훈:저는 속도의 차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시를 읽을 때 필요로 하는 시간이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죠. 시를 읽을 때는 침묵이 필요로 합니다. 행간과 행간 사이, 그리고 말과 말 사이의 침묵과 시간이 필요한 데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이러한 시간이 아주 불편한 요소가 되고 있는 거죠. 이제 인터넷에서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닌가요.


김태형:겉으로 보기에는 실시간을 중시하는 인터넷의 특성상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데요.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의 공간은 결코 지도로 정형화해서 그릴 수 없는 미로의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이 미로의 개념을 속도라는 경제적 사유로 풀어낸다면 그야말로 광대한 전자 시장에 머물 것입니다. 문학은 그 인터넷의 속성을 상징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로와 미로 사이의 굴절, 그 우주적 상징의 기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저 들끓는 말들의 세계를 하나하나 끈질지게 물고늘어지면서 풀어나가면 어떨까 싶어요. 이제 인터넷은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서 말과 말의 관계로 이동한다고 봅니다. 이제는 또 다른 언어의 사회로 다시 되돌아온 것 같습니다. 다르다면 말의 무용성이 드러내는 그 상징성이 더 중요할 것 같아요. 미로와 언어와 숨은 자아들의 소통관계, 이러한 관계 속에서 생기는 시간성을 상징화하는 작업이 필요할 듯합니다. 서구의 고대 신화가 말과 말의 풍요로운 상상의 세계를 통해 다이달로스의 미궁을 탄생시켰다면 이제 현대의 테크놀러지 사회가 네트워크라는 스스로 진화하는 미궁의 길을 넓히고 있습니다. 그곳은 거대한 말의 소음들이 우주 먼지처럼 푸른 허공 중에 가득합니다. 그토록 시인들이 찾아 헤매던 우주의 자궁이 아니겠습니까.


이재훈:네트워크의 수많은 말들 중에서 의미성을 담보하고 뱉어내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러한 말들을 어떻게 구별해 내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니면 수많은 말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김태형:저는 인터넷의 쓰레기 언어조차도 오히려 시인들에게는 유용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급화되고 단련되고 정제된 언어들만으로 인터넷을 채운다면 그것은 관리되는 사회입니다. 오히려 퇴화되는 것이지요. 인터넷은 풀어내고 해체되고 열려 있는 공간이어야 되지 않을까요. 그 열림은 스스로의 개념이 정립되는 것조차 거부하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한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소음의 세계 속에서 침묵을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요. 이런 세계야말로 시인들에게는 매우 잘 어울리는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서정성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저 고전적인 미학의 세계가 인터넷이라는 현대의 신화적 상징으로 재구성되고 다시 해체되는 그런 이미지의 언어라면 어떨까요. 분명한 것은 가능성이라는 희망의 기대 지평만이 무수히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느리지 않게 사유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갖게 되는 것이 당대 시인들의 일이라고 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곧 다른 언어 체계를 갖게 된다는 의미겠지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재훈:오랜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밖은 벌써 어둑해졌네요.

_ 현대시 2002년 8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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