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곳.

강원도 영월 모운동 마을이 신문에 나왔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꾸 유명해져 간다. 아마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한 곳.

영월 모운동.

 

 


 

 

하늘 아래, 구름 위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망경대산 싸리재에서 모운동 마을 주위로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구름처럼 모여든다’는 말뜻이 무언지 실감한다.


동화 속 주인공 같다는 마을 이장의 농담에 할머니들이 웃고 있다. 탄광촌 50여년의 흥망성쇠를 지켜온 광부의 아내들이다.


구름도 쉬어가는 첩첩산골에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생 막장에야 찾아온다는 탄광은 가방끈도 짧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필부들에게 가장 노릇하기 안성맞춤인 직장이었다. 돈을 캐낸다는 소문을 들은 사내들은 해발 1000m가 넘는 망경대산 7부능선 산꼬라데이(산꼭대기)를 넘어왔다.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옛 탄광촌 모운동 마을이다.

“여기 시집온 색시들은 처음에 네 번 놀래요.”

두 살 때 광부 아버지를 따라 모운동에 온 김흥식 이장(58)이 부인 손복용씨를 보며 웃는다. 부모를 떠나 탄광마을에 시집가는 색시들은 구불구불 굽이치는 험한 산길에 놀라며 눈물을 흘린다. 해질 녘에야 망경대산 싸리재에 오른 여인들은 별빛처럼 반짝이는 광부 마을의 야경에 감탄하며 흘리던 눈물을 훔친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새색시들은 지난 밤 자신이 본 휘황찬란했던 마을이 단지 함석집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짓는다. 이렇게 세 번이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아비를 탄광에 배웅했던 아낙들은 마을 집들의 모양새가 모두 똑같아 자기 집을 찾을 수가 없어 망연자실했단다.

“당구장, 사진관, 미장원, 양복점, 병원, 모 없는 게 없었더래요.”

하늘 아래 제일 높은 모운동 탄광마을은 2000여명의 광부들로 시끌벅적했다. ‘별표’ 연탄을 만들던 옥동광업소가 그들의 직장이었다. ‘옥광회관’이라는 극장이 있었는데, 서울 명동에서 개봉한 영화 필름이 두 번째로 도착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간조(월급)날이면 마을 공터에는 영월읍보다 큰 장이 열렸다. 산길을 달리는 마이크로버스는 물건을 팔러 오는 상인들로 콩나물시루가 됐다. 여관방들도 모자라 한 방에 여러 명이 새우잠을 잤다. 왕대폿집은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고, 거나하게 취한 사내들은 요정집을 기웃거렸다. 첩첩산골에 요정집이 네 개나 됐다고 한다.

어느 광부의 생명을 지켜주던 안전모였을까? 갱도의 받침목인 동발 붕괴사고는 탄광에서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사고였다. 옥동광업소 목욕탕 탈의실에 빛바랜 안전모 위로 햇살이 비치고 있다.


서울 부럽지 않다던 모운동 마을은 1989년 탄광이 문을 닫으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마을 사람들이 바람처럼 빠져나가 현재 30여가구만 남았다.

“평생 해로하자 했는데, 나만 두고 떠났지 모야.”

작년에 진폐증으로 남편을 잃었다는 김옥준 할머니(85)가 평상에 앉아 나물을 손질하며 한숨을 짓는다. 탄광 문이 닫히자 남편의 폐병이 심해졌다. 석탄을 캐던 남편을 대신해 할머니는 약초를 캤다. 망경대산 구석구석을 뒤적이며 캐낸 약초는 30여가지. 김 할머니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할아버지가 다른 광부들보다 오래 사셨다며 웃는다.

“썰렁했는데, 벽화 보러 오는 사람들 구경하느라 심심하지 않아 좋지.”

폐광된 후에도 마을을 떠나지 않은 김 이장은 7년 전 부인과 함께 동네 분위기를 바꿀 방법을 생각해냈다. 허름한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것. 손재주 많은 이장 부인이 밑그림을 그리고 그림 안에 색깔을 적었다. 마을 노인들도 벽화 색칠작업에 참여시키고자 했던 것. 잿빛 폐광촌은 개미와 베짱이, 백설공주와 난쟁이가 뛰노는 동화마을로 탈바꿈했다.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산꼬라데이에 동화마을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게 모운동은 다시 사람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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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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