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봉
무엇인가를 주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떤 방어력을 가지고 있어야 설득력 있는 일이다. 방어력은 어디로부턴가 공격받을 때 생기는 에너지일 것이다. 나는 배한봉 시인과 대담을 진행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주장과 그 방어력은 어디로부터 나왔는가가 궁금해졌다. “언어는 자연의 부르짖음에서 출발한다”는 루소의 언명은 이를 잘 뒷받침해 주는 말이다. 물론 이는 언어의 기원에서 비롯된 말이긴 하지만 지금의 진화된 언어도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곤 한다. 굳이 물질문명 사회의 한계에 대한 대안으로 얘기하지 않더라도 자연만큼 인간에게 큰 스승은 없다. 이미지도 그 이미지를 파생한 어떠한 기교도 날 것 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자연친화적이다. 문명사회가 자연친화적인 기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더 증폭될 것이다. 실리콘벨리의 많은 과학자들이 자연주의자라는 점이나 동양뿐만 아니라 미개발지에 대한 관심, 레오폴드나 소로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스콧 니어링 같은 이들에 대한 애정어린 찬탄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환경 문제가 날로 심각해져 가는 작금의 상황에서 인간이 자연에 가한 가혹성의 무모함은 더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제정복자로서의 인류 역사는 새로 쓰여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자연주의자들 앞에서는 그 어떤 합리화의 방편이 생각나지 않는다. ‘결빙으로 정제시키는 맑고 투명한 저 힘’ 앞에 무릎꿇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고백은 너무나 절실한 울림이기 때문이다.
배한봉 시인은 경남 창녕에서 서울로 올라와 주었다. 그와 하룻밤을 같이 지내면서 자연에 대한 애정은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또한 깨달았다.
이재훈:지금 우포는 어떻습니까. 이제 봄기운이 완연했을 텐데요. 습지라는 특수한 환경이 가지는 생장군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포에는 완전히 봄이 찾아왔죠?
배한봉:우포의 봄소식은 늪 가장자리의 둑과 근처의 밭이나 논두렁에서 먼저 만날 수 있습니다. 냉이, 토끼풀, 고랭이, 소루쟁이, 개망초 등이 싱그러운 봄빛을 안겨주죠. 얼마 전부터 창포나 갈대, 부들 같은 식물과 갯버들이 새순을 밀어 올리기 시작했으니까 미구에 자운영꽃, 제비꽃 등의 꽃잔치를 만날 수 있겠네요. 이 무렵이면 소금쟁이, 물댕땡이, 물방개, 게아재비들이 수면에서 봄을 환호하며 춤추는 것도 함께 볼 수 있을 거예요.
이재훈:독자들을 위해 경남 창녕의 우포늪을 간략히 소개해 주세요. 우포늪을 지키기 위한 민간 단체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배한봉:우포늪은 1억 4천만년전 중생대 전기 백악기 때, 우리나라 지형의 탄생과 그 기원을 같이 하는 국내 유일의 자연 늪입니다. 현재 우포늪은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4개의 늪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서울 여의도와 맞먹는 70여만 평에 달하는 이 광활한 곳에는 1천여 종의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수서 식물의 보고(寶庫), 살아 있은 곤충박물관, 철새들의 낙원으로 불리기도 하죠. 여름이면 창포와 갈대, 생이가래, 개구리밥, 마름, 자라풀 등이 늪을 거대한 초록융단으로 만들지요. 또 여름 장마가 지난 뒤부터는 지름이 2~3m에 달하는 가시연이 꽃을 피운답니다. 잎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운 이 장관을 놓치지 않으려고 전국에서 많은 시인, 화가, 사진가들이 몰려들더군요. 겨울엔 기러기, 고니, 오리류 등의 철새들이 생동감 넘치는 군무를 펼칩니다. 4계절 내내 생명잔치가 끊이지 않는 곳이 바로 우포늪이랍니다. 관련단체는 ‘창녕환경운동연합’과 ‘푸른 우포 사람들’ 등이 있습니다.
이재훈:선생님의 이력을 보면 등단은 좀 늦은 편이지만 일찍부터 작품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 박재삼 선생으로부터
「경인문예」로 추천을 받았지만 잡지의 폐간으로 불우한 문학환경을 겪다가 다시 재등단 하지 않았습니까. 「경인문예」로 등단한 시절부터 재등단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셨을텐데요. 선생님의 문학적 연대기라고 할까. 그런 것들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배한봉:오래 전 이야기를 하려니까 많이 쑥스럽네요. 처음엔 소설을 쓰고 싶어했죠. 고교시절 학생잡지의 학생작품공모에 단편이 당선되었던 것이 계기였죠. 그러다가 84년 서울살이 시절에 박재삼 선생님을 만나면서 시로 바꿨지요. 그때 선생님의 후배가 관여하던 그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두어 번 더 나오다가 그만 폐간돼버렸어요. 별로 유명한 잡지도 아닌데다가 또 그 후 열심히 신춘문예를 준비했지만 몇 번인가 최종심에서 탈락하고는 상심해서 시를 쓰지 않았지요. 80년대 후반에 고향인 마산으로 내려와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시가 안 되더군요.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동인활동을 하며 습작하다가 93년에 다시 박 선생님 추천을 받았는데, 이번엔 문단에서 그 잡지를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시를 써놓아도 발표할 곳이 없었으니까요. 처절한 좌절감에 사로잡히던 그런 때였어요. 다시 두 번인가 신춘문예에 도전했는데 또 최종심에서 떨어졌어요. 그동안의 작품을 다 버릴 수는 없으니까 이젠 시집이라도 한 권 묶어놓고 독자로 남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시전문잡지를 고르고 골라 신인상에 응모했는데 마침 당선이 되었어요. 벼랑 끝에 서 있는 내게 마지막으로 다가온 생명줄이라고 하면 쉽게 이해될까요?
이재훈:선생님의 시는 기본적으로 서정의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서를 객관적 상관물을 빌어 표현하는 것은 시가 발생한 이래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방법론입니다. 이는 서정의 힘이 바로 시의 본질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시의 양식적 변화는 분명 필요하다고 봅니다. 인간 삶의 양식이 변한 만큼 시의 양식도 변하기 때문이죠. 시의 양식적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배한봉:맞습니다. 인간 삶의 양식이 변하면 자연스레 시의 양식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변화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인들의 의식이 인기나 유행을 좇아가서는 안됩니다. 이런 점에서 시인은 확고한 자기 신념이 있어야 됩니다. 저도 습작시절엔 여러 형식을 실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결국 남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웃음) 인기나 유행이 한순간이듯 인기시․유행시는 소모품에 불과합니다. 제 스승님의 간곡한 가르침이기도 한 이 점을 저는 가장 경계합니다. 유행에 휩쓸리거나 인기를 얻기 위해 고객의 입맛에 맞춰 생산하다보면 시의 큰 미덕인 진정성에 결함을 갖게 되고 생명성을 잃게 됩니다. 이것은 고정관념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시인은 늘 새로운 세계를 향해 오감을 열고 있는 존재니까요. 그리고 또 시인으로써의 자기 세계관이 없어집니다. 세계관이 없는 시인이 생명력 있는 시를 쓸 수 있겠습니까? 좋은 시와 인기시․유행시와의 변별점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어떤 세계관으로 무엇을 어떻게 노래할 것인가는 그 시인만의 개성이고, 또 특질이 될 것입니다. 시의 양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인의 의식 아닐까요.
이재훈:제가 이 질문을 드리게 된 것은 선생님 시의 특질을 말하려고 하다가 선생님의 생각을 우선 듣고 싶어서입니다. 우선 선생님의 시는 자연에서 대상을 찾고 있고 그것을 운용하는 방식도 아주 세밀한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 시의 특질은 방법론적인 것보다는 시가 추구하는 정신적인 특성에서 찾아질 것입니다. 우선 “배한봉 시인은 자연주의자다” 라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배한봉:자연주의자이긴 하지만 문명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자」에서 19년 동안이나 칼을 갈지 않고서도 신들린 듯 소를 잡고 살점을 발라냈다는 포정(庖丁)의 기즉도(技卽道)를 자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문명세계를 어떻게 읽고 노래할 것인가 하는 점을 많이 생각합니다. 컴퓨터나 모든 기계들의 구조를 꿰뚫고 틈없는 데서 틈을 보는 포정의 칼날 같은 기즉도가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은 곧 세계와 문명에 대한 재해석과, 가치관과 세계관에 대한 사고 양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자는 것입니다. 도로나 루소 그리고 헤세가 기계문명에 반기를 들고 자연을 찬미했던 것은 유토피아에 대한 꿈이 절실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풍요한 물질문명의 공허는 오늘의 우리를 고향을 상실한 실향민으로 방황하게 합니다. 가난에 찌들린 과거의 시골, 현실적 고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의 가족적 공동체로 엮어주는 이상적 삶의 고장인 이상향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이나 플라톤의 공화국, 헤세의 나무들 등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바로 유토피아의 가장 필요한 조건을 말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역시도 이런 이유 때문에 자연에서 대상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니까요. 전통적 방식을 선택한 것은 제가 추구하는 양식이나 정서적 호흡, 체질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과 잘 맞기 때문이죠. 또 한 가지는 전통적 방식 속에도 분명 새로운 것이 있다는 점이지요. 많은 시인들이 이미 낡았다고 던져버렸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새로운 감동이 살아 있습니다. 사물에 대한 통찰력이랄까 깨달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라의 불상이나 석탑을 보고 21세기를 읽어낼 때의 그 팽팽한 긴장, 그 팽팽한 힘과 같은 것이죠.
이재훈:근래에 지겹게 떠돌던 담론 중의 하나가 생태시 논의였습니다. 그것이 물질 문명사회의 한계에 대한 대안적 가치로서는 분명 옳은 것입니다. 문제는 반성적인 사고 없이 우후죽순으로 그것을 지향하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반성적 사고가 없는 작품은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첫 시집 「흑조」의 자서를 보면 “땅의 정기와 신령스러움, 순결성은 언제나 내 경외의 대상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선생님의 농경사회가 가지는 땅에 대한 믿음이 반성적 사고의 토대 위에서 세워졌다고 생각됩니다. 작품 속에서도 그러한 부분들은 잘 드러나 있지요. 특히 「멸포」, 「화천리의 가을」, 「낙안읍성시편」 같은 작품을 보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세대의 고민과 역사적 고민까지도 아우르려는 면모가 보입니다. 자연에 대해, 땅에 대한 화두가 나오기까지의 정신적 추이를 듣고 싶습니다.
배한봉:저는 낙동강변의 농촌에서 태어났고 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고향 마을은 풍요로운 들판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과 더불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낙동강이 홍수로 범람할 때면 그 풍요로운 들판이 침수되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는 일인(日人)들의 소작농으로 전락했던 불행한 세대가 바로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였습니다. 그 후, 우리 세대는 별로 실감 못하지만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시작한 새마을 운동 바람이 불면서 신작로가 생기고 관개사업을 벌였고, 90년대 우리의 농촌은 농공단지가 조성되면서 황폐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농촌의 도시화는 옛날과는 다른 삶의 풍요로움을 안겨준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릴 때 보았던 자연에 대한 겸손과 대지에 대한 무한한 신뢰, 일에 대한 신명보다는 그저 삶을 위한 맹목이 사람을 지배하기 시작하더란 것입니다. 도시생활을 해보니까 그런 것을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되더군요. 첨단 기술 문명은 비정한 경쟁과 투쟁을 강요하잖아요. 그 속에서 쟁취한 물질적 성공 뒤에 숨겨진 고독하고 공허한 문명의 실존은 물질적 세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적 ‘무거움’의 고통이고, 유토피아에 대한 상실감이고, 인류 미래의 실상을 알몸으로 보여주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유토피아에 대한 꿈이 더 절실하다고 봅니다. 경제 지상주의적(물질적) 가치관과 인간 중심의 윤리관(개인주의적 인생관)은 정복과 굴복, 승리와 패배의 원리가 지배하는 인간관계를 형성시켰으니까요. 여기서 저는 ‘인간과 자연’, ‘삶과 정신’이 교감하고 하나로 조응하는 큰 질서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자연에 대한 정복의 이념이 지배해온 인간 중심주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않으면 발레리나 토인비가 말한 문명의 죽음을 우리 세대나 우리 자식들 세대에서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이것은 곧 인류의 미래이기도 하죠. 시는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구원의식 같은 게 있다고 확신해요. 제가 시의 방법론적인 것보다 정신적 면을 더 중요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질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으로 변모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공생적 삶으로 가는 한 출구로써, 그리고 민족연원에 가 닿는 한 표상으로써 자연과 대지가 와 닿았던 거예요. 이것이 향토적․토속적 정서와 만나면서 정신의 축을 이루게 된 것이지요.
이재훈:자연을 대상으로 사용할 때 중요한 것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향토적․토속적인 정서가 정신과 맞닿는 지점이지요. 요즘은 병든 자연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까지도 병들고 있다는 것을 통해서 물질문명의 폐해를 말하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선생님의 시는 자연의 긍정적인 부분들을 들추어냅니다. 이번에 발표한 「가시연꽃」이나 「얼음꽃」은 ‘아픔을 통해서 아름다움에 이른다’는 자연의 섭리와 삶의 이치가 잘 조화된 시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에게는 자연이 거대한 스승인 거지요. 선생님 시의 변별점은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겁니다. 자연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직접 자연 안에서 생활하고 체험한 삶의 산물이니까요. 제 개인적으로도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투사로서 자연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연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을 통해 자연을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의 몇몇 시들 중에 자의식이 너무 강한 인상을 받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자연을 완벽한 교훈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배한봉:아주 예리하시군요.(웃음) 가끔씩 저도 그런 점 때문에 망설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포늪 근처에 우거를 마련하고부터는 오히려 담담해졌습니다. 첫 시집 「흑조」가 대개 낙동강변의 삶이었다면 최근의 시들은 우포늪과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체험(체험을 통한 상상력)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체험 없는 상상력은 엉터리 환상을 심어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무엇인가에 대한 열망이 체험을 만들고, 그것이 육화되었을 때 시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절실함, 달리 말해서 구체화된 자기 내면의 소리가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달고 비상했을 때 시의 진정성을 확보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선험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사유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이런 상상력이나 사유체계가 詩로 태어났을 때는 이미 외부의 여러 가지 소산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협심증에 걸리거나 흑보기[斜視]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 역시도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투사로서 관점을 만들고 바라보는 것은 경계합니다. 다만 그것이 육화되었을 때는 이데올로기라기 보다는 삶 그 자체이고 거기서 발생한 에너지를 분출해 내다보면 그게 이데올로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시인들은 이렇게 산 체험을 통해 육화된 에너지의 분출과 재생성과정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자기 세계관을 확장시켜 나간다고 봅니다. 기왕 이데올로기 문제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요, 자연은 단언컨대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우리가 별을 바라보고 헤아리는 것조차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립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 이 우주의 순환질서는 ‘스스로 그러함(自然)’ 그 자체로 보아야 합니다. 자연조차도 정복할 수 있다는 인간중심주의적 횡포가 얼마나 어리석고, 결국에는 얼마나 무력한가를 깨달을 수 있는 존재도 역시 인간입니다. 문학 담론에 있어서 생태시, 혹은 생명시 논의가 무성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연유일 것입니다. 저는 이런 논의가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이어져 가기를 바랍니다. 자연은 우리 모두에게 거대한 스승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육화시킬 수 있다는 것, 저는 이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재훈:여담입니다만, 계속해서 우포늪에 사실 생각이십니까?
배한봉: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사할 계획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살이는 늘 가변적이잖아요. 전에 창원에 살 때도 그랬지만 어디 가서 살던지 간에 늘 손에 흙을 묻히면서 살 겁니다. 현재 고향에 있는 조그만 과수원 농사도 계속 지을 거고, 아이들에게도 대지적 삶을 체험하도록 계속 도와주고 싶군요.
이재훈:마지막으로 정신의 또 다른 한 우주를 창출하기 위해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배한봉:시인은 창조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작년 늦가을에 제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이런 산문을 남겼습니다. “저는 햇빛을 퉁기는 잎들의 가락과 조응하면서 ‘그 자체’로 생명인 것들, 또는 툇마루 판때기에 배인 시간과 같은 것들에 ‘혈육의 정’을 담아 노래하려 합니다. 새로운 좌절과 치열하게 싸움도 하면서 정신만큼은 살아 있는 그런 시, 그런 시인이 되도록 용맹정진(勇猛精進), 또 勇猛精進할 것입니다. 절벽과 절벽 사이의 길, 이 길 위에서의 목마름, 이것이야말로 창조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즐거운 고통이며, 또 다른 한 우주로의 변신이 시작된다는 증표일 것입니다.” 우포늪은 앞서 이 시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연을 통해 삶의 이치를 다시 깨달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 이 거리를 좁혀 준 것이지요. 그래서 틈날 때마다 늪길을 산책하고 명상하고 늪에 사는 무수한 생명체들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지요. 마치 똑 같은 대지에 돋아난 풀이지만 작년 봄의 풀과 올해의 풀이 다르듯이 정신의 영역도 그렇게 변하는 것이겠지요.
이재훈:이것으로 현대시 대담을 마치겠습니다. 오랜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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