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고통을 대하는 자세…이재훈 시집 `벌레 신화` 출간

  • 김유태 기자
  • 입력 : 2016.08.19 15:43:30   수정 : 2016.08.19 17: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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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도 못 사는 인간으로만 살다 가는 인간이 있고 억겁의 시간에 자기를 올려두고 삶을 구경하다 가는 인간이 있다. 혹자는 후자를 시인이라 부른다.

이재훈(44)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벌레 신화`(민음사)가 출간됐다. 시인은 이번에도 어떤 분리주의적 시각을 유지한다.
몸에서 영혼을 떼어내 나를 구경하는 `자기 분리`랄까. 떨어져서 보니 꽃 속에 갇힌 벌레 한 마리가 보인다. `꽃 속에 산다./웅덩이에 잠겨/달콤함에 취해/먹고 싸며 늙는다.`(`벌레` 부분)

벌레로의 변신은 자기비하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삶이 닮았기에 등가를 이룬다. 더 주목할 건 내부 풍경이다. 벌레는 `기근보다 더한 맨살의 고통`(`뿔` 부분)을 겪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육체`(`벌레 신화` 부분)가 되길 희망한다.

원시를 현시하는 환시로 쓰인 작품들이 눈에 띈다. 아주 먼 과거에서 왔다는 신화적 상상력이 독특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짐승처럼 왔을까.(중략)기억이란 늘 중심이 다를 텐데.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검은 밤의 시간을 가로질러 왔지.`(`짐승의 피` 부분)

`광석을 모르는 고대인들은 운석을 주웠다지. 별의 살 껍질을 주워 칼을 만들고.`(`녹색섬광` 부분)

현재에서 과거를 보는 시인의 발상이 시집 한 권에 가득하다.

장은수 문학평론가는 시집 해설에서 시인에게 "세계의 쏟아지는 폭력을 웅크리고 엎드린 채 등으로 견디면서 자신의 소리를 듣는 식물적 능동"이라는 평을 헌사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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