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척 노력해도 종국에는 오은인 걸 들키고 마는 시

 

 

 

오은 ․ 이재훈

 

 

 

이재훈 : 반갑다. 오은 시인. 우린 오래 만난 사이인데 새삼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냥 편하게 얘기하기로 하자.

 

오은 : 좋지, 형.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 못 본 지 두 달은 넘은 것 같네.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듯 답할게.

 

이재훈 : 세월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요즘 마음이 무겁고 괴롭다. 슬픔과 분노가 교차되어 한 마디로 멘붕 상태다. 어떻게 잘 버텨내고 있는가.

 

오은 : 그제는 안산에 다녀왔어. 유가족들이 단상에 올라가는데 모인 사람들이 다 훌쩍이더라. 유가족 한 분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지. 분노와 무기력, 슬픔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이면 결국 울게 되는 것 같아. 울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한동안은 넋이 좀 나간 채로 지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재훈 :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 과연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세월호와 같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시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들. 이런 때에 한 정치인이 시를 써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시가 희화화되지 않았나. 오은 시인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하다. 

 

오은 : 고통을 덜고 위로를 해주는 것은 시가 할 수 있는 부차적인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인이 그 시를 쓸 당시에 기대했던 바가 아닐 수도 있고.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아이를 잃은 부모가 나오잖아. 시는 어쩌면 제과점 주인이 그 부모에게 건네는 롤빵보다 하찮은 것일지 몰라. 허기를 달래주지도, 가시적으로 온기를 전달하지도 못하니까. 그러나 나는 시가 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각자의 말로, 우리의 말로 기억하는 거지.

 

이재훈 : 내게 오은 시인은 막내동생과 같다. 나뿐만은 아닐 텐데. 문단의 교유가 넓은 편 아닌가. 오은 특유의 친화력이 부러울 때가 많다. 오은의 어머니를 뵐 때 느끼는 것인데,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았구나 생각했다. 그 천진무구의 성정은 어디로부터 연유된 걸까?

 

오은 : 집이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어. 아버지가 선생님이었는데, 우리 집은 엄격하기보다는 자유로웠지. 우리가 거짓말할 때를 제외하곤 매를 들지 않으셨으니까. 단칸방에 꽤 오래 살았는데, 덕분에 부모님과 형이 거의 항상 가까이 있었어. 귓속말을 해도 다 들릴 정도였어. 형이 무슨 책을 읽는지, 어머니가 무슨 색깔의 매니큐어를 칠하는지, 아버지가 어떤 TV 프로그램을 좋아하시는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 어머니의 긍정적인 성격을 닮은 것도 한몫한 것 같아. 가난이 단 한 번도 부끄러운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부모님이 우리가 부족한 거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아낌없이 베풀어주셔서 그랬을 테지만.

 

오은_이재훈_ 약수역_2014.5

 

이재훈 : 사회학을 전공하고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문학이 아니라 사회학을 택하게 된 이유라도 있는가? 그리고 문화기술대학원에서는 어떤 연구를 했나. 그 연구의 결과물로 로봇서사를 다룬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를 출간했다. 독자들을 위해 소개 부탁한다.

 

오은 : 학창시절에 문학을 전공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었어. 알다시피 나는 친형 덕분에 등단을 했으니까. 중고등학교 시절 큰 대회에서 몇 차례 상을 받긴 했지만, 그건 대부분 산문이었고. 무엇보다 나는 내가 쓰는 것이 시가 될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았거든. 수험생이 으레 그랬듯 나 역시 교과서 시들만 접했으니까. 국문학은 내가 범접하기엔 너무 멀리 떨어진 학문이었던 셈이지.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하고 1학년 때 전공 탐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 나는 원래 기자가 꿈이어서 언론정보학과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수업을 듣고는 실망하고 말았지. 내 기대와는 전혀 달랐거든. 심리학, 경제학, 외교학, 인류학 등 사회과학대학에 있는 다른 전공들을 듣다가 사회학이라면 머리는 아프지만 기분 좋게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거리낌 없이 의심할 수 있었으니까. 궁극적으로는 세계를 바라보는 고유의 시선을 갖고 싶었지.

문화기술대학원은 ‘융합기술’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막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문을 연 대학원이야. 국문학, 법학, 경영학, 미학, 컴퓨터 공학, 건축학, 산업디자인 등 다양한 전공 출신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지. 겹치는 전공이 거의 없었을 정도니까.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구현하는 데까지가 우리가 하는 일이었지. 그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작업이 팀으로 이루어졌어. 가령 나 같은 사회과학도가 어떤 것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문을 트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친구가 그것이 현재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는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야 사용자들에게 좀 더 편안할까를 고민하고 경영학을 전공한 친구는 그것이 시장에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 따져보는 거지. 얼핏 분리된 작업 같지만, 한자리에 모여 항상 머리를 맞대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작업했어. 그 친구들과의 작업 경험은 아마 평생 동안 잊을 수 없을 거야.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라는 책은 ‘로봇’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산업자원부( 산업통상자원부) 프로젝트였어. 로봇이 변화함에 따라 그것을 가지고 만들어진 콘텐츠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피는 게 목적이었지. 나는 영화, 소설 등 서사를 다른 하나의 축으로 세우고 작업했다면 어떤 친구는 무용(퍼포먼스)을 다루는 작업을 했어. 로봇과 교육, 로봇과 디자인, 그리고 로봇과 애니메이션을 함께 엮어서 살펴본 친구들도 있었고. 이른바 ‘로봇 시리즈’로 출간된 이 책들을 읽어보면 우리가 로봇이라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협소한 개념인지 파악할 수 있을 거야. 로봇이 어떤 존재로 우리에게 인식되어왔는지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고.

 

이재훈 : 색과 그림을 다룬 책 <너랑 나랑 노랑>을 출간했다. 오은 시인은 문학과 미술뿐 아니라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다방면의 문화 취향에 대해 들려 달라.

 

오은 : 조예가 깊지는 않다고 생각해. 미술, 음악 등 다른 분야에 몸담은 사람들과 협업을 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들과 대화하기에 큰 무리가 없는 정도야. 좋아하는 건 어떻게든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하잖아. 그러다 보니 틈나는 대로 찾아서 읽고 보고 들었지. 시간이 없어서 요새는 전시는커녕 영화도 많이 못 봐. 많이 속상하긴 한데 언젠가는 찾아올 여유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지.

취향에 대해서라면 크게 할 말이 없어. 두루두루 다 좋아하거든.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색과 그림을 다룬 책을 낸 것처럼 색을 잘 구사하는 화가들을 좋아해. 앙리 마티스나 파울 클레 같은 화가를 예로 들 수 있겠지. 음악은 신스팝(synthpop)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해. 기타보다는 건반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요새 부쩍 들어. 나는 줄곧 내가 기타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웃음)

요 몇 년 사이에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아졌어. 몇 년 전부터 타이포그래피 아티스트들과 작업할 기회가 있었는데, 시가 읽는 것에서 보는 것이 될 때 어떤 질감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지. 작년에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에서 영상으로 내 시를 보여줄 기회가 있었는데, 아예 해당 미디어에 걸맞게 시를 새로 썼거든. 서울역 근처를 지나가는 시민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을 거야. 앞으로도 기회가 생기면 협업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싶어.

 

이재훈 : 큰 교통사고로 인해 생사를 넘나든 적이 있지 않은가. 아직도 많은 시인들이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한동안 기억을 잃어버렸던 실존의 경험이 시 쓰기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오은 : 글쎄, 나는 그때가 좀 뿌예. 많이 아팠다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니까. 물론 재활 치료의 고통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정말 끔찍했지.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머리에 물이 찼었는데, 그 물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니까 사고 직후부터 수술 직전까지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진 거야. 그사이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지인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지. 정말 가관이더라고. (웃음)

그때의 기억을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은 없어. 단지 나는 내가 정말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지. 그 뒤로 아픔과 슬픔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듯싶어. 한동안은 병원에 가서 대기실에 앉아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만 봐도 눈물이 났어.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니까.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지 아니까. 시무룩한 표정의 보호자만 봐도 어머니 생각이 나서 가슴을 쓸어내렸지. 나는 진짜 효도해야 돼.

 

이재훈 :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부터 오은 시인 하면 명명되는 것이 ‘말놀이’로 대표되는 언어감각이다. 말놀이나 펀(fun), 유희의 수사법은 오래된 전통을 가진 것이지만 오은의 언어는 다른 지점이 있다. 나는 그것이 인문학적 사유와 사회성을 겸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인문학적 말놀이라고 할까. 말놀이로 투영되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오은 : 글쎄,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말놀이 때문에 주목받았지만, 그것이 내 발목을 잡는 상황이라고 말하면 조금 우스울까? (웃음) 놀이의 세계는 변화무쌍한데, 사람들은 놀이의 가벼움, 놀이의 발랄함만 기억하니까 가끔 안타까울 때도 있어. 아직까지도 “오은? 말놀이하는 애?”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것은 나의 개성을 반영한 말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면서 은연중에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한계를 미리 재단해놓는 것이기도 하거든. 그만큼 놀이가 가진 기운이 내 시를 압도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실은 놀이에서도 자꾸만 규칙을 어기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규칙을 지키면서 교묘하게 배반하는 작업을 하고 싶은 거지. 기존의 언어 규칙에 내가 짠 규칙을 접목한 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싶어. 이건 형식적인 문제고, 무엇을 쓰느냐의 문제는 또 완전히 다르지. 흔히 놀이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다루고자 하는데, 아직은 내가 미숙한 탓인지 사람들은 형식에만 반응하더라고. 어쨌든 결국에는 내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

 

이재훈 : 대표적으로 「ㅁ놀이」를 보면 말놀이, 물놀이, 맛놀이, 몸놀이, 망놀이, 멋놀이, 무놀이, 문놀이, 몽놀이, 맥놀이, 멱놀이, 몇놀이, 맘놀이, 못놀이로 이어지면서 의미가 확장되고 유희가 가속화된다. 요즘도 사전을 읽나? 말놀이의 이면에 숨어 있는 시인의 태도가 궁금하다. 물론 말놀이는 재미있어 하겠지만, 그것 이외에 추구하려는 전략이 있다면 살짝 공개해 달라.

 

오은 : 응, 예전처럼 자주는 못 보지만 아직도 무료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친구가 바로 국어사전이야. 요새는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내가 익숙한 단언데 잘 사용하지 않는 것들, 뜻을 많이 품고 있어서 그중 일부만 사용하는 것들에 관심이 가더라고. 실제로 그 단어를 실생활에서 사용해보려고 노력도 하고. 입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내 말이, 내 단어가 되는 것 같으니까. 전략이라고 말할 것은 없고, 놀이라는 게 가진 기본적 속성이 즐거움, 흥겨움, 즉흥성 등이잖아. 그 놀이가 다 끝났는데 이상하게 슬픈, 혹은 이상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기분을 갖게 하는 것? 울면서 웃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당도하게 하는 것? 너무 거창한가? (웃음)

 

이재훈 :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시인의 말을 보면 “가장 가벼운 낱말들만으로 가장 무거운 시를 쓰고 싶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이 오은 시의 정체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오은의 언어는 경쾌함, 유쾌함, 유희 등의 요소들이 있다. 이런 개성은 한국 시단에 드문 세계이다. 앞으로의 언어 방법도 이 분위기를 유지할 것인지 궁금하다.

 

오은 : 글쎄, 나는 굳이 내가 어떻게 변화해야겠다고 생각한 뒤에 시를 쓰지는 않아.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을 쓰니까. 이전 질문의 답변과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양극단에 있는 감정이나 무게, 질감 등이 어떻게 시 안에서 부딪치는지 지켜보고 싶어.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친 말들, 너무나 익숙해서 그 특유의 색깔이 지워지고 있는 말들, 아무러한데 부러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데 붙어 다니는 말들 옆에 붙어 있고 싶어. 내가 해왔던 방식을 전면적으로 뒤엎지는 못하겠지. 그것은 천성에 가까운 것이니까. 단지 단어가 어떤 식으로 문장에 결절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일이 잦아지겠지.

 

이재훈 : 나는 두 번째 시집을 ‘부조리’라는 개념어로 읽은 적이 있다.(「부조리한 언어의 건축술, <세계의문학>, 2013년 가을호) 개인적으로 오은 시에 대한 평가가 너무 언어감각과 방법론에만 치중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언어의 껍질을 벗겨내고 시의 속살을 바라보면 문명인의 무기력함과 한 개인의 쓸쓸함이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언어는 재밌게 놀고 있지만 분명 쓸쓸할 때 이 시를 썼을 거야 라고 혼잣말을 할 때가 있었다. 시를 쓸 때 어떤 정서의 감도를 가지고 쓰는가. 예를 들어 슬플 때, 기분 좋을 때, 헛헛할 때 등등처럼.

 

오은 : 쓸쓸하지. 나는 항상 웃고 있지만, 거의 항상 외로워. 외로우면 눈물도 나고 울상도 짓는 게 일반적인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더라고. 근데 그게 나를 포장하는 방식은 아니야. 나는 너무 슬플 때는 웃음이 터져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쓸쓸함이나 외로움은 연애를 하거나 복권에 당첨이 된다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시인으로 살고 있는 것도 우스꽝스럽고, 부조리를 감추려고 또 다른 부조리가 행해지는 것을 목도할 때면 정말이지 어이가 없지. 생각해봐. 웃음의 차원도 여러 가지잖아. 배꼽을 잡고 뒹굴뒹굴 구를 때도 있고 어처구니없어서 피식 웃고 마는 경우도 있으니까. 웃음을 유발한다고 해서 그게 가벼운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 형 말처럼 그 안에는 무기력함과 쓸쓸함, 공허함 같은 것이 다 담겨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쓸쓸하면서 우습고, 한없이 밝으면서 뒤꽁무니에는 거무스름한 그림자를 길게 달고 다니는 셈이지. 말하고 보니, 시를 쓸 때 딱 저런 상태인 것 같아.

 

이재훈 : 최근 시를 보면 점점 더 의미가 강화된다는 느낌이다. 「우리 학원」이나 「맥거핀」,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다움」 등에서 보이는 사회성이나 존재에 대한 풍자가 더 깊어진 것 같다. 「반의반」에서처럼 말놀이의 재기는 여전하고.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

 

오은 : 딱 봤을 때, “이거 오은 시네!”라고 말할 수 있는 시. 나는 나의 시를 쓰고 싶어. 나만 쓸 수 있는 시. 내가 들어가 있는 시. 내가 아무리 내가 아닌 척 노력해도 종국에는 오은인 걸 들키고 마는 시를.

 

이재훈 : 우문이지만 현답이었다. 인터뷰 하느라 고생 많았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오은 : 응 형. 나도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어.

 


 

오은 : 1982년 전북 정읍 출생.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및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로봇과 서사를 다룬 책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그리고 색과 그림을 다룬 책 <너랑 나랑 노랑>을 썼다. 현재 작란(作亂)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이재훈 :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저서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부재의 수사학>,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다. <현대시작품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_ <시향>, 2014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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