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좋았다
모두들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사람들의 말 하나하나가
풍요로운 국부(國富)를 이루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말할 권리를 뜻했다
그때는 좋았다
사소한 감탄에도 은빛 구두점이 찍혔고
엉터리 비유도 운율의 비단옷을 걸쳤다
오로지 말과 말로 빚은
무수하고 무구한 위대함들
난쟁이의 호기심처럼 반짝이는 별빛
왕관인 척 둥글게 잠든 고양이
희미한 웃음의 분명한 의미
어렴풋한 생각의 짙은 향기
그때는 좋았다
격렬한 낮은 기어이
평화로운 밤으로 이어졌고
산산이 부서진 미래의 조각들이
오늘의 탑을 높이높이 쌓아 올렸다
그때는 좋았다
잠이 든다는 것은 정말이지
사람이 사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사람이 사람의 여린 눈꺼풀을
고이 감겨준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 시_ 심보선(1970~ )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눈앞에 없는 사람』 등이 있다.

 
▶ 낭송_ 이재훈 – 시인.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가 있음.

 
 
배달하며

    좋은 시절은 항상 지나간 시절이죠. 오늘 감당해야 하는 삶의 고단함과 수고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죠. 그때는 가난하고 사는 것이 만만치 않았는데도 지금보다는 다들 행복했죠. 뜰의 모란과 작약은 더 화사하고, 앵두나무 가지에는 빨간 앵두들이 다닥다닥 달려 익어갔지요. 사람들에겐 덕이 있었고, 작은 성취에도 늘 보람은 더 컸었지요. 어디에나 “무구한 위대함들”이 반짝거리고, “생각의 짙은 향기”는 넘쳤으니, 그때가 호시절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왕관인 척 둥글게 잠든 고양이”는 어떤가요? 정말 사랑스럽지 않나요? 양친부모는 살아 있고, 형제자매들은 종아리들이 굵어지고, 이웃들은 느긋했고, 누구나 들길을 쏘다닐 수 있는 여유쯤은 있었죠. 우애와 우정이 있던 그 시절, 시간은 기쁨으로 가득 찬 윤무(輪舞)와 같았죠. 예전보다 더 많이 가졌지만 지금은 더 가난하고, 더 높은 직책을 가졌지만 기쁨이나 보람은 줄었지요. 양친부모 다 떠나시고 형제자매들도 다 흩어졌으니, 호시절이 다시 오기는 아예 글러버린 것이겠죠?

 
 
 

문학집배원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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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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