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명왕성 되다(plutoed)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뱉어낸다. 눈 밑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 잊혀진 얼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풍경은 서서히 물드는 것. 그리운 얼굴이 푸른 멍으로 잠시 물들다 노란 불꽃으로 사라진다. 나는 단조의 노래를 듣는다.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음 소리. 단추 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 내 입술과 몸에도 푸른 멍자국이 핀다. 아무리 하품을 해도 피로하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모두 신성한 모험이었다는 거짓된 소문들. 내 속의 거대한 허무로 걸어 들어갈 자신이 없다. 지하철 2호선의 문이 활짝 열린다.

시집 명왕성 되다(민음사, 2011) 중에서

 

2005년 결혼을 했다. 평생 혼자 살 것이라는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고 누구나 한다는 결혼을 했다. 시인에게 결혼은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니다. 종교적 신념에 비례하는 순교자적 소명 없이는 결혼을 생각할 수 없다. 당시 서른 넷. 시를 쓰고 대학원 박사 과정이며 비상근 문예지 편집자였던 나도 평범하게 살아볼 요량으로 결혼을 했다. 예비 신랑신부의 자취방 보증금을 빼니 오천만원이 되었다. 이러저리 돈을 더 융통해서 육천오백만원짜리 방 두 칸이 있는 전셋집을 구했다. 집은 지하철 2호선 신림역 근처에 가까스로 구했다. 지하철도 있고, 시장도 있고, 먹자골목도 있고, 게다가 월세가 아닌 전세라니. 신림동은 시골에서 상경한 내 정서와 잘 맞는 동네였다. 서울 토박이보다 고향이 남쪽인 분들이 훨씬 많았다. 무엇보다 시장 물가가 저렴했고, 신림동 순대타운이나 고시촌으로 들어가면 값싸고 푸짐한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어느 동네든지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저녁약속이 있어서 저녁을 먹고 지하철 막차를 타고 신림역에 도착했다. 집에 가기 위해서는 역근처 유흥주점 골목을 지나가야 했다. 그때 어떤 청년이 내 손목을 잡았다.

형님. 놀다 가시죠?”

전 집이 여기 바로 앞이에요. 놀러 온 거 아니에요.”

에이. 왜 이러실까. 잘 해드릴게요.”

진짜 집이 요기 바로 앞이라니까. 자꾸 그러네.”

일명 삐끼라고 부르는 주점의 호객꾼이었다. 근처에 단란한 주점이 많았는데 당시에는 거의 호객꾼들을 두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호객꾼과의 실랑이가 꽤 오랜 시간 지속되곤 했다. 한 마디로 떼어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화도 내보고, 무시하고 지나가 보기도 하고, 돈이 없다고 지갑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호객꾼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조금 늦은 시간이면 빙 에둘러서 집에 들어갔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출근길의 고통이었다. 서울살이 직장인들의 출근길 노고를 고스란히 체득하게 되었다. 나는 며칠은 출판사로 며칠은 대학원으로 출근했다. 늘 지하철을 탔다. 출근길의 2호선은 지옥철이었다. 푸시맨이 있던 시절이었다. 차를 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으면 뒤에서 푸시맨이 밀어 넣었다. 매일 구겨져서 지하철에 실려 갔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앞사람의 눈과 마주하는 것이다. 애써 서로 눈동자를 아래로 깔거나 눈을 감는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므로. 눈을 감는 대신 매일 온갖 인간 군상들의 냄새와 소리들을 섬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비누냄새, 목욕탕 스킨 냄새, 전날 숙취 냄새, 꼬락내, 방귀 냄새, 암내, 오래 묵은 곰팡내, 신음, 하품, 욕소리, 핸드폰 벨소리, 진동소리, 안내 방송, 밀지 마요, 죽겠네, 왜이래, 저기요, 여기요, 저 여기 내려요, 다음에 내리십니까, 내립시다, 내린다니까.

명왕성 되다(plutoed)라는 말은 2006년 미국 방언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였다. 명왕성(Pluto)이 태양계 행성 지위를 박탈당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지하철 무가지 신문에서 읽었다.요즘은 모두 스마트폰을 쳐다보지만 당시만 해도 대부분 지하철에 무료로 배포되는 타블로이드 신문을 보았다. 세상에나. 태양계의 별도 지위를 잃는다니. 이런 일도 있구나. 그 기사가 신기해서 신문을 찢어 주머니에 넣었다. 태양계에서 가장 먼 별 명왕성이 박탈당했다. 태양계에서 소외되었다. 누가 박탈했나.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그랬단다. 나사에게 그런 자격을 누가 주었나. 아무도 모른다. 우리에게 말도 없이 왜 명왕성을 없앤다고 난리인가. 마치 꿈을 빼앗는 것처럼 이상했다.

매일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매일 박탈당하는 꿈을 꾸며 지하철 2호선을 돌고 도는 건 아닌가. 나는 완전히 소외될 때까지 2호선을 돌고 돌 것이다. 지하철에서 눈을 감으면 너는 명왕성 되었어 라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너는 박탈당하고, 소외당했단다 하는 중얼거림이 들렸다. 첩자처럼 도시를 배회했다. 허무의 그림자만 잔뜩 거느린 채 혼자 있고 싶은 곳을 찾아 다녔다. 그 시간들이 빚어낸 시가 바로 명왕성 되다이다.

내게 지하철 2호선은 삼십대를 통과했던 서울의 상징과도 같다. 명왕성 되다는 신림에서 합정을, 합정에서 증산을 오갔던 날들의 기록이다. 또한 두 번째 시집의 표제시가 되었다. 이 시집에 수록된 남자의 일생, 매일 출근하는 폐인, 신림동, 귀신과 도둑등도 모두 신림동과 지하철 2호선을 배경으로 쓴 시편들이다. 어쩌면 그 시절 가장 많은 시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하게 살려고 결혼을 했지만, 다른 사람 살 듯 평범하게 사는 게 비범하게 사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들도, 가장 바쁘고 처참했던 시간들도 그 시절이었다. 신림동에서 2년을 살고 그곳을 떠나왔다.

ㅡ <시인시대>, 2021년 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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