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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06 합정역 굴사냥
  2. 2015.02.06 도일, 오미경 작가와
  3. 2015.02.06 약수파 사진
  4. 2015.02.06 김태형, 최치언 시인과
  5. 2015.02.03 단국대 국문과 특강
  6. 2015.02.02 2014년 현대시작품상 시상식
  7. 2015.01.29 바람의 계곡 라다크 투르툭에서의 이틀
  8. 2015.01.29 EBS 라디오 시콘서트
  9. 2014.12.27 고독한 원시의 시간, 라다크(Ladakh)
  10. 2014.12.10 <현대시작품상> 심사평
  11. 2014.12.10 <현대시작품상> 수상소감_ 다시 별들의 방언을 찾아
  12. 2014.09.30 자전 에세이_ 내가 꾼 꿈은 사실 꿈이 아니었네
  13. 2014.08.27 내 최초의 말이 사는 영토의 영주_ 이재훈 조동범 대담
  14. 2014.08.06 징후는 없다- 현대시의 새로운 징후와 담론의 가능성
  15. 2014.08.05 김산 시창작반 특강
  16. 2014.07.31 빈이무첨의 시간_ 나민애
  17. 2014.07.27 [문학집배원 장석주의 시배달] 심보선, <호시절>(낭송 : 이재훈)
  18. 2014.07.02 [대담] 아닌 척 노력해도 종국에는 오은인 걸 들키고 마는 시 (오은 시인)
  19. 2014.05.19 연희창작촌_ 시창작 수업
  20. 2014.05.19 현대시 2014년 5월호_ 표지
  21. 2014.05.17 이승훈 선생님
  22. 2014.04.10 [주목하는 시인 읽기] 시인이 품고 있는 도시 속의 신성함 속으로 말(言)을 타고 달려본다(이재훈_김성규_대담)
  23. 2014.03.31 신동옥의 집
  24. 2014.03.31 약수파
  25. 2014.03.21 대도시와 정신적 삶, 그리고 서정시_ 조강석
  26. 2014.02.21 이재훈의 <기타가 있는 궁전> 읽기
  27. 2014.02.13 꿈처럼 오련하게 사레들리네
  28. 2013.12.11 한 글자 사전 - 잎
  29. 2013.12.05 2013년 송년회
  30. 2013.12.02 [경향시선 - 미래에서 온 詩] 동경(銅鏡)_ 박성준

합정역 굴사냥

시시각각 2015. 2. 6. 15:23

작년 늦가을인가...
합정역굴사냥에서 굴찜 먹던 날.
좌부터 노희준, 전영관, 김태형, 김도언과.

각자 취향대로 막걸리, 소주, 맥주를 한 테이블에서 먹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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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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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개천절.

강릉 정동진 하슬라 아트월드. 도일, 오미경 개인전.

나의 동지 도일 형, 그의 동반자 오미경 작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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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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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파 사진

시시각각 2015. 2. 6. 14:52

약수파 사진. 작년과 올초 모였을 때 찍어둔 것.
정재학, 이현승, 김언, 오은 시인과 함께.

늘 그렇듯 약수역에서. <주전자>, <스코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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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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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밤.

충무로에서. 동국대 이해랑극장에서 최언형이 극작을 쓴 연극을 관람한 후.
김태형, 최치언 형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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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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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말 단국대 국문과에서 특강을 했다.

시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엿볼 수 있어서 흐뭇한 시간.

또랑또랑한 눈빛들이 눈에 선하다.

특히 이재훈 시집을 꼼꼼히 읽고 비평한 학생들의 평문집에 감동했다.

학생들이 쓴 수십편의 이재훈 시평이 실려 있다.

오래오래 간직하려고 한다.

 

 

 

 

 

 

 

 

 

 

 

 

 

사진 출처 : 김옥성 교수님 카페에서  http://cafe.naver.com/koslecture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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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었던 것이다.
벌써 아주 오래된 일처럼 까마득하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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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계곡 라다크 투르툭에서의 이틀

 

 

 

이재훈

 

 

 

 

 

인도의 라다크는 내게 늘 관념 속에서만 머물렀던 정신적 공간이었다. 헬레나가 <오래된 미래>를 통해 소개한 공동체 낙원 라다크. 문명이 서서히 들어와 변질되어가는 히말라야 고원의 라다크. 하지만 라다크의 실체는 사회학자들이 얘기했던 현상을 느낄 수 없을 만큼 태고의 원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열흘 동안 나는 태초의 신비를 탐했다. 숨 쉬기 힘들었고,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으며, 전기는 자주 끊겼다. 많은 것들이 불편했지만 마음만은 평화로웠다. 내 마음에도 평화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곳이 라다크이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알 수 없는 평화로움이 물밀듯 밀려와서 잠깐 난감하였으나 곧 그 평화로움을 누리게 되었다.

라다크에서의 열흘 동안 가장 평화로웠던 시간은 아마도 투르툭(Turtuk) 마을에서 지냈던 이틀일 것이다. 여행의 마지막 이틀을 투르툭에서 소요하며 보냈다. 투르툭은 라다크의 주도인 레(Leh)에서 10시간 정도 걸리는 마을이다. 우리 일행은 레에서 누브라 밸리로 갔고 누브라의 훈다르 마을에서 하룻밤 캠핑을 하고 투르툭 마을로 이동했다. 투르툭 마을은 파키스탄의 국경과 마주한 지역이다. 이전에는 개방이 되지 않았던 곳인데 2010년 인도 정부가 여행 제한을 풀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신비하고 더 원초적인 곳이었을까.

투르툭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황토물이 산처럼 굽이치는 강을 만났고, 흙과 돌로만 쌓아올려진 누런 민둥산을 끝없이 오르내렸다. 때론 작은 초원이 있는 마을을 지났고, 마을에서 밀을 수확하는 여인들과 만나기도 했다. 어딘가를 가는 길은 늘 닿는 시간보다 가는 시간이 즐겁다. 투르툭으로 가는 길에는 욕망이나 격정보다는 광막한 막막함이 더 자주 다가왔다. 그 막막함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이 막막한 풍경 속에서 시간도 잊은 채 나른하게 취하고 싶었다. 늘 취하고 싶었으나 취할 수 없는 긴장의 시간을 즐긴 것이라고 말할까.

투르툭에 도착하자 이곳은 한없이 게으를 수 있고 한없이 상상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멍 하니 바라보거나 멍 하니 앉아 있으면 되었다. 특별한 일정이나 계획 없이 이틀을 꼬박 빈둥거리며 지냈다. 투르툭은 어렸을 적 자주 갔던 외가의 마을과 닮아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오래된 돌계단이 있었고 돌담이 둘러쳐 있었다. 마을 전체에 키 높이의 돌담이 있었고 돌담 사이로 작은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나는 그 골목길에서 자주 서성였다.

마을의 골목길 중간중간 아주 오래된 살구나무들이 많았다. 투르툭은 살구나무의 마을이었다. 작은 도랑이 흘렀고, 햇살은 따사로웠다. 그러다 투르툭의 아이들을 만났다.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아이들은 천진난만했고 이 세상을 다 가진듯한 밝은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쓰러진 나무 기둥에 모여 앉아 낯선 외국인을 구경했다. 특히 아이들은 디지털 카메라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몇 백년이 되었을지 모르는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 아이들을 위해 만든 수영장도 있다. 물을 가두어 만든 수영장에서 수십 명의 사내 아이들이 벌거벗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인도의 다른 지역과 다르게 이슬람 교도들이 대부분이다. 여인들은 히잡을 쓰고 다닌다. 또한 낯선 남자들에게 경계심이 강하다. 그리고 이곳 여인들은 농사일을 도맡아 한다.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짚단을 지게에 짊어지고 다니는 여인들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아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는 아주 작은 사원이 있었다. 사원을 올랐다. 돌담길을 지나 너른 흙길을 지나 나무들이 숨을 뿜어내는 작은 숲길을 지나 언덕으로 오르는 돌밭을 지나 마을의 꼭대기까지 올랐다. 돌계단을 오르고 올라 가쁜 숨을 몰아쉰 후 언덕의 꼭대기에 오르니 원시의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쪽 너머의 산으로 강은 굽이치고 있었고 여러 겹의 산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나무들과 작은 초원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언덕 위에 앉아 한참동안 풍경에 취해 있었다. 작은 사원 안에는 명상을 하는 서양인들이 몇몇 있었다. 여행객이 아니라 구도자에 가까운 파란 눈동자의 젊은 명상가들에게서 무엇인지 모르는 자유가 느껴졌다. 자유는 자신의 외적인 모습에 신경쓰지 않는 태도에서 풍겨나오는 것임을 알았다. 나도 저런 삶을 바랐었는데 어쩌다 지금 이렇게 살고 있을까.

라다크는 바람의 계곡이다. 우리도 바람을 만났다. 작은 마을에 갑자기 불어닥치는 바람에 몸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바람을 맞으며 바람놀이를 하고 있었다. 바람 때문에 잠시 무서웠다. 그러나 곧 평온해졌다. 도둑처럼 들이닥치는 이곳의 바람은 늘 이런 식인가보다. 골짜기에 숨어 있는 마을은 바다의 외딴 섬처럼 존재해 있다. 하지만 이런 바람을 맞아들이는 마을이다. 투르툭은 바람을 맞아들이며 스스로 가쁜 숨을 뿜어낸다. 그러다 때론 침묵한다. 마을의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보면 조잘조잘 수런거린다. 그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음악을 며칠 동안 한없이 들었다.

나는 게으름을 좋아한다. 게으름이 여행의 본질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게으름에도 격이 있다면 이곳에서의 게으름은 그럴 듯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색에도 쾌락이 있다면, 사색을 유희할 수 있다면 트르툭에서는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도시에서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허무의 관념들이 이곳에서는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 마을에서 나는 며칠만 머무른 나그네일 뿐이다. 길손이 되어 그들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간 존재일 뿐이다.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여행객은 그들의 모습과 풍경 속에서 많은 것을 담아간다. 그들은 나를 통해 무얼 생각했을까. 트루툭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 삶의 속도대로 산다. 그렇게 오래오래 그들의 속도대로 천천히 소요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쏟아질 듯한 별을 보며 누워 있던 트루툭의 밤이 아련하게 그립다.

_ <대전평생교육>, 2015년 1~2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

언제 방송에 나갔는지는 모르겠네. 작년 가을인데.
EBS라디오 <강성연의 시콘서트>에서 아래의 시를 낭송하고 짧게 코멘트 했었다.
이제 불혹에 대해 아무 느낌도 없는 나이가 되었음.^^

 


불혹

 

 

 

어른은 큰 소리내지 않는단다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고 비겁한 자가 되겠지

담배 연기만 품어대며, 다 안다는 듯

끄덕끄덕대기만 하겠지

날 어른이라 부르는 손가락들

그 모든 비겁도 눈 감고

어떠한 격정에도 미혹되지 않는

어른들의 세계

이미 네 앞의 시간들은 결정된 것

가르치려 드는 꼰대들에게

다리를 까딱거리고 딴지를 걸고 싶더라도

어른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제 소년을 간신히 넘었을 뿐인데

눈물을 참아야 하고 그리움도 참아야 하고

홀로 식당문을 들어서는 서글픔도

지루한 술자리도 참아야 한다

아직도 쓸쓸함을 사랑할 수 없나

차가운 거리를 헤매다 방안에 들어와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할 때

내 몸에 남아 있는 허약한 온기

엎드려 시를 쓰는 사람

엎드려 생각하는 사람

엎드리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라지만

엎드리는 일은 자신을 잊는 일

엎드려 이제

스스로의 온기로 인해 나는 살겠다

 


 

불혹이라는 시는 제가 마흔을 넘어가면서 쓴 시입니다. 어딜 가서 나이 얘기를 잘 안하는데요. 서른을 넘길 때와 마흔을 넘길 때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서른 때에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는데, 마흔이 되니 달라지더군요. 이제 나이 먹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마흔이 넘어가면서 꼭 ‘마흔’이라는 시간에 대해 시를 써보고자 생각했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마흔’이라는 시는 많겠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마흔의 의미가 또 있는 것이니까요. 마흔이 넘어가니 주변의 모든 분들이 이제 어른이 다 됐네, 라고 말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슨 말일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른이라는 것은 참으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눈물도, 그리움도, 외로움도, 꿈과 희망도 참아야 하고 비겁한 일도 모르는 척 넘기는 게 어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참아야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잊지는 않고 싶습니다. 모두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겠지만 그런 어른이라면 어른이 되기 싫은 거지요. 차라리 엎드리라면 엎드리는 게 낫겠지요. 눈물도, 그리움도, 외로움도, 꿈도 희망도 참지 않는 어른이면 참 근사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재훈)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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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원시의 시간, 라다크(Ladakh)

 

 

 

이재훈

 

 

 

 

 

모르는 시간

 

풍경은 시간을 앞선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풍경은 이전의 기억을 지워버린다. 마치 구름처럼 하늘과 지상의 일을 슬쩍 가리고 무감하게 한다. 내게는 라다크로 가는 하늘 위가 그랬다.

값싼 여행을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이다. 우리는 배고픈 여행객들이었다. 서울에서 홍콩으로, 홍콩에서 델리로, 델리에서 다시 라다크의 주도인 레(Leh)로 이동하는 경로였다. 하지만 델리에서 이미 지쳐있었다. 비행기를 타는 시간만큼 환승 시간도 길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꼬박 하루를 견뎠다. 델리에서 라다크로 가는 비행기를 탄 시간은 다음날 아침이 밝기 전이었다.





라다크로 가는 하늘 위에서 여명이 밝아 왔다. 피곤에 지쳐 눈꺼풀이 반쯤 감겨 있을 때였다. 그날의 첫 햇살이 눈가를 살살 간질였다. 눈을 뜨니 저 멀리 구름에 살짝 걸린 햇귀가 보였다. “죽인다.” 그 말밖에는 할 수 없는 일출 장면이었다. 노랗게 익은 햇살이었다. 햇살 아래로 양털 구름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었다. 하늘과 구름이 풍경의 전부였다. 그러다 이내 강렬한 빛이 창안으로 쏘아들었다. 창밖을 볼 수 없을 만큼 강한 빛이었다. 온 얼굴이 아침햇살로 뜨끈했다. 기내식 커피를 한 잔 하고 나니 햇살은 수그러들었다. 구름과 파란 하늘만이 모든 풍경을 감쌌다. 햇살은 어느새 저 하늘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아침이 찬란하게 푸르렀다. 도시에서 보았던 수직과 직선의 완고함이 이 높은 하늘에서는 무력했다. 선이 아닌 면으로 뒤덮인 구름과 하늘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러다 비행기가 낮게 깔리며 내려갔다. 산맥이 나타났다. 눈을 이고 있는 산봉우리가 서로를 맞잡고 있었다. 저 밑이 바로 히말라야다. 낮게 비행하며 바라보는 산맥은 장관이었다.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키를 재듯 머리를 내밀었다. 산맥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다른 산맥의 몸에 길게 드리워졌다. 그런 그림자들은 서로의 산맥에 검은 덧칠을 하며 묘한 명암을 만들어냈다. 힘차면서 부드럽게 감싸는 그림자가 긴장하듯 햇살의 몸에 담겨 있었다. 원시의 경이가 있다면 이런 순간일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저 밑의 산맥을 달리고 휘돌아가면서 울렁울렁했다는 것을. 저 원시의 시간들. 내가 모르는 시간들 앞에 설 생각에 마음이 달떴다. 자꾸만 숨이 가빠왔다.



 

오래된 사원


라다크에서 가장 먼저 둘러본 곳은 레 근처에 있는 사원들이었다. 헤미스(Hemis), 틱세(Thiksey), 쉐이(Shey), 스톡(Stock) 사원들을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라다크는 티벳 불교를 믿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인도의 힌두인들과 다르게 라다크는 대부분 불교인들이다. 라다크의 곰파들은 모두 몇 천 년 전의 건물처럼 오래돼 보였다. 돌을 쌓고 진흙을 비비고 발라 만든 사원들은 히말라야의 고원에서도 몇 백 년을 견뎠다. 대부분의 곰파는 그 지역의 가장 높은 곳에 세워졌다. 그렇기에 곰파에 가기 위해서는 늘 올라야 한다. 마치 하늘 위로 오르는 것처럼. 모든 계단과 길들이 하늘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사원의 곳곳에는 낮잠을 자는 개들이 유독 많았다. 이곳에서 개는 아무도 소유하려 하지 않는 가장 미천한 동물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향불을 피우고 식사를 준비하는 어린 스님들의 모습은 진지하면서도 천진했다.





석양이 지는 어스름. 사원으로 전해지는 사양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저물어간다는 것은 쓸쓸하거나 때론 아름다운 일인데, 이곳에서는 성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저물어가는 사양은 대지와 숲이 아니어도 근원을 향할 수 있었다. 사원으로 오르느라 지친 얼굴에 저문 햇살의 감촉이 다가왔다. 서서히 누그러지고 넘어져가는 석양을 마음에 담느라 일행들은 모두 저마다의 시간 속에 홀로 서 있었다. 햇살이 수직에서 사선으로 제 몸을 허물다가 스스로 스러지는 일. 매일 가장 꼭대기에서부터 가장 아래로의 소멸을 겪는 일. 우리는 스러질 때에야 비로소 평온해진다. 스러지고 소멸될 즈음에야 평온해진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실로 오랜만에 저물어가는 일의 감동과 흐뭇함을 천천히 음미했다. 이곳에서의 모든 소멸에게 온 맘으로 경이를 보내고 싶었다.

나는 어쩌면 몇 천 년 전의 사람들과 만나고 온 것인지도 모른다. 먼 기억을 소환하는 공간에 열흘 동안 있다 온 셈이다. 작은 도랑물 소리. 바람이 발바닥을 간질이는 나긋함. 마당을 쓰는 빗질 소리. 멀리서 들리는 야크의 울음. 옆 호텔에서 두런거리는 이방의 방언들. 나는 먼 기억으로부터 왔다. 저 우주의 행성에서 지구의 어느 땅을 밟는다면 가장 먼저 이곳을 밟으리라.

 




느림

 

레에 도착해 우리는 숙소에서 하루를 온전히 쉬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거나 소요했다. 고산증 때문이다. 어지러웠고 메스꺼웠고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렇기에 느릴 수밖에 없다. 방심하여 조금이라도 뛰면 곧바로 머리가 아프고 뒷목이 당기고 어지럽고 숨이 가빴다. 느리게 걷고 느리게 말하고 느리게 움직이기. 그것이 라다크에 적응하는 첫 번째 일이다. 세수를 할 때도 느릿하게 얼굴 한 번 문지르고 숨 한 번 쉬어야 한다. 몸을 씻을 때도 느릿하게 물 한 번 끼얹고 숨 한 번 크게 쉬고 비누칠 한 번 하고 숨 한 번 쉬어야 한다. 말도 천천히, 걷는 것도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것도 천천히. 천천히 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온몸으로 느꼈다.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찍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내 말과 움직임이 그동안 얼마나 빨랐던 것일까. 빠르게 움직이는 몸의 감각들을 느린 감각으로 되돌려놓기. 그 느림의 시간들이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라다크에서는 이렇게 오래도록 생각할 수 있는 몸을 저절로 만들게 된다. 밤에는 옥상에 올라 오래도록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최초의 시간

 

판공초(Pangong Tso)는 해발 4,350미터에 위치한 가장 높은 소금호수이다. 판공초는 마법의 호수라는 뜻이다. 이 높은 곳에 염호가 있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는다. 판공초는 빙하기 시대 대륙의 판들이 솟아오르고 히말라야가 융기하면서 바닷물이 높은 곳에 고여 그대로 호수가 되었다. 소금호수이기 때문에 이곳에는 갈매기가 날아다닌다. 판공초는 인도와 티벳에 걸쳐져 130km나 뻗어 있는 어마하게 큰 호수이다. 우리가 본 곳은 그 일부분일 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끝부분에 판공초가 배경이 되기도 한다. 보통은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을 하기 마련인데, 판공초는 기대 이상이었다.





레에서 판공초로 가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세 번째로 높은 고개 창 라(Chang La)를 넘어야 한다. 창 라는 5,360미터이다. 레에서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온종일 히말라야의 가장 높은 곳을 넘고 북쪽으로 달려야 닿는 곳이 판공초이다.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은 얼음처럼 차갑고 공기는 더욱 희박해져 갔다. 빙하가 흘러내리는 물에 잠시 발을 담그고 저 먼 시간의 흔적을 생각하기도 했다.

판공초의 끝 언저리에 닿자 긴장했던 모든 마음이 허물어지고 에머랄드빛 호수의 색깔에 눈이 멀어 버렸다. 그저 마음을 풀어 놓고 누워 있고 싶었다. 저 호수 가까이에 가서 바람을 맘껏 쐬고 싶었다. 멍하니 넋 놓고 한참 앉아보고 싶은 곳. 내게는 그러한 장소가 또하나 생긴 것이다.





원하는 마음이 아무 것도 들지 않는 곳이었다. 혹시라도 소리 지르면 죄를 짓는 것 같은 곳이었다. 그립다는 말이 소용없는 곳이었으며 자꾸만 침묵 속으로 잦아들어가는 곳이었다. 나도 모르게 원시의 기억을 하나씩 헤집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각자 물과 바람과 시간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 시간이 무엇을 주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도록 그 시간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어둠이 깔리자 추위가 몰려들었다.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곳의 호수바람은 매서운 겨울바람보다 더 사나웠다. 8월의 여름이었지만 판공초의 밤은 겨울이었다. 준비해간 겨울점퍼를 입고 달을 보았고, 장작불을 피웠다. 이전의 기억은 자꾸만 스러져갔고 추위는 점점 더 몰려왔다. 어쩌면 이곳에서 만나 함께 불을 쬐고 있는 록산과 우리는 몇 천 년 전 이곳에서 만났을 지도 모른다.

 

 

동지들

 

생각하면 열흘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먼저 동행했던 여행 동지들. 어쩌다 저쩌다 이러다 저러다 만나게 되었다. 세상에 계획된 일은 늘 계획과는 무관하게 흘러가게 되며 우연한 인연이 동지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세상에 천재시인은 많지만 그중 천재시인이자 여행전문작가인 김선생. 혼자 떠나는 여행의 달인이며 외국인들의 이성적 로망인 신시인. 늘 감동할 줄 아는 화가이자 시적 감성이 넘쳐흐르는 송작가. 인도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믿기지 않았지만 이십대 꽃청춘이었던 현지 라다키 가이드 록산. 이들은 모두 지극했다. 김선생은 피곤에 쩐 몸을 일으켜 매일 짜이를 타주며 일행의 정신적 위로자가 되어주었다. 신시인은 말할 줄 모르는 동지를 위해 통역을 도맡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할애했다. 신시인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행 고아가 됐을지도 모른다. 송작가는 우리에게 꾸밈없는 웃음을 주었다. 순간순간 많이도 웃었다. 송작가는 카메라 없이 여행지를 모두 그림으로 담는 예술혼을 보여주었다. 록산은 잘 생기고 건실하고 순수한 청년이었다. 록산의 희망은 한국을 여행하는 것이라 했다. 꼭 그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나의 별칭은 ‘동바’였다. 동네바보라는 뜻이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실실 웃으며 때론 투정도 하며 따라다니는 동바로 살았다.





라다크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 라다키인들과 인도인들과 때때로 만난 서양인들. 곰파에서 만나 우리를 거처로까지 초대했던 노스님과 어린 승려들. 누브라계곡의 훈더르, 투르툭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에 대해 어떻다고 말할 처지는 아니다. 잠시 여행지에서 스쳤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스친 인연이지만 그들의 웃음과 표정과 냄새와 그 배경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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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니체는 알프스 산맥 깊숙이 있는 호숫가에서 영겁회귀의 사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때 쓴 문장은 한 줄이었다. “사람과 시간의 저쪽 6천 피트”. 이 한 줄의 문장이 영원회귀의 철학을 낳았던 것이다. 시간은 어떤 풍경과 만나 철학으로 남고, 때로는 한 편의 시로 남는다.

모든 기억은 허전함만을 남긴다. 라다크에서의 열흘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 기억이 어떤 형상으로 남을까. 지금 여기에서 보면 그 형상이 다소 비현실적인 환상과도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들의 진실은 고이 박제될 것이다. 나는 어떤 한 줄의 문장을 쓰고 왔을까. 어떤 한 편의 시를 쓰고 왔을까. 아직 모르겠다. 앞으로 열흘 동안의 라다크를 좀 더 생각한 후에 단 한 줄의 문장이 나올 것이다. 좀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한 편의 시가 써질 지도 모르겠다.


_ <시인동네>, 2014년 겨울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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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 심사평

 

 

실재계의 목소리

 

원구식

 

 

 

지난해 한국시는 우리의 경제사정만큼이나 피폐하였다. 시인은 이미 호모사케르인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맑스가 세상에 나왔듯이, 오늘의 정보혁명은 또 다른 맑스의 출현을 예감케 한다. 한국이 세계에서 자살률이 1위인 까닭은 세계에서 정보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기술혁명은 고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절망을 넘어선 청년들의 실업은 구조화가 되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실패한 시장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는 이미 오래 전에 버려졌다. 그런 와중에 나는 이번 심사에서 김안, 박진성, 이재훈, 이현승, 최금진 시인을 추천하였다. 모두 지친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한국 시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우리들의 전사이다. 어느 시인이 수상하여도 본상의 명예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번에 수상자로 선정된 이재훈 시인은 수도원에서 거리로 나온 실재계의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구도를 열망하는 나르치스의 언어와 세속에 빠진 골드문트의 언어가 혼재되어 있다. 이 두 목소리가 길항하며 부딪칠 때 이재훈의 시는 묘한 빛을 발한다. 그것은 마치 실재계가 상징계로 침입하는 것과 같다. 실재계는 언어에 의해 포착되지 않은 세계이다. 기표도 기의도 없는 삶의 영역, 그래서 시인은 “날 구원해주는 것은 언어가 없는 원시의 감각”(「나르치스」)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감각을 소유한 시인은 “전투력을 가진 말들이” 서로 왕 노릇을 하려고 뽐을 내는 길거리에서 “이 세계에 없는 언어를 찾아나”선다.(「거리의 왕 노릇」) 그리하여 그가 평원에서 “아무 언어도 없이 심연에 잠길” 때, “저 우주에 몸을 눕히고 별들을 덮을” 때(「평원의 밤」), 혼잡한 지하철에서 눈을 감고 퇴출한 명왕성으로 사라질 때, 상징계의 꼭두각시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문득 우리의 맨얼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수상을 축하한다.

 


제15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 심사평

 

 

영혼의 전인적 복기 의지

 

박주택

 

 

 

수상작을 선정한다는 것은 작품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시인이 그간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작품을 써왔는지도 중요한 가치 평가로 작용한다. 상호연관성 속에서 관계 짓는 이 잣대는 이런 의미에서 전체적이고 통일적이다. 시가 시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전인적 삶으로부터 현시된다. 시가 역사이고 정신인 것은 시간과 함께 지속적으로 삶 속에 자신을 투여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한 편의 시에는 미적 체험으로서의 선명한 자기 인식이 녹아 있다.

이번 수상자인 이재훈 시인은 그간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2005)와 <명왕성 되다>(2011)를 상재하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온 시인이다. 그의 시편들은 동시대의 현실을 가장 새로운 묵시의 형식으로 시화하면서, 동시에 난파된 젊음에 대한 우수와 자긍을 겹쳐놓은 독특한 현실 환기의 세계다라는 평가(유성호)와 함께, 유한한 것들을 무한에 대고자 하는 상상적 결단이라는 평가(조강석)를 받아왔다.

수상작인 「거리의 왕 노릇」은 속도와 비생명적 일상 속에서 전투와 명령만 있는 세상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하며 통박한다. 일찍이 벤야민이 도시 산책자의 시선으로 생명을 억압하는 기제들에 대해 신령상실을 탄식한 것처럼 이재훈은 영혼과 말의 부재를 공간의 부재로 대체하며 배설과 오물의 길에 서성인다. 대지에 서 있지만 대지에서 유폐된 채 서로 왕 노릇하려고 생명과 죽음을 능가하려는 부끄러움이 없는 영혼들을 조롱하고 야유한다. 십자가 없는 어두움과 허공 속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조용한 잠이 없는 모퉁이 속에서 쭈글해진 어머니 배에 귀를 갖다 대며(「사수자리」) 신의 안부에 고통스럽게 침묵하는 이교도처럼(「빌딩나무 숲」) 처형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바라본다.(「연옥의 산」)

이재훈의 시는 그간 도시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영혼 없는 형식의 세계를 개성적인 시각으로 묘파해왔다. 일관되게 자신의 시적 세계를 밀고 나가는 그의 추동력은 존재의 시원을 상기시키며 성소로서의 낙원 의지를 복기해 왔다. 이번 수상으로 그의 시가 우리시의 부족한 부면을 더욱 광활하게 개척하기를 고대하며 현대시 작품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제15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 심사평

 

 

존재론적 시원始原을 추구하는 순례자의 언어

 

오형엽

 

 

 

나는 예심을 거쳐 올라온 본심 대상 시인들 중에서 1차로 김중일, 박진성, 심보선, 윤의섭, 이재훈 시인을 추천했다. 1차 투표 결과 이재훈 시인이 3표, 박진성, 이현승, 최금진 시인이 각각 2표를 얻었다. 심사위원들은 이 네 시인이 작년 한 해 동안 발표한 시들을 놓고 작품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다각도의 논의가 진행된 후 심사위원들은 이재훈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재훈의 시는 세속도시의 일상을 지배하는 자본과 마케팅 문화의 힘에 맞서 존재론적 시원始原을 추구하면서 천상의 언어를 회복하려 한다. 수상작인 「거리의 왕 노릇」은 최근 이재훈 시의 특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문명의 한 구석에 제 이름을 새기려는 영혼들”과 “서로 왕 노릇하려고/생명을 능가하고, 죽음을 능가하는 이웃들”이 발설하는 “왕의 언어”, “법의 언어”, “왕을 심판하는 언어”에 저항하는 시인의 언어는 “이 세계에 없던 언어”이다. “문득 신들이 사는 세계를 구경하고 싶었”다는 진술이 드러내듯, 이재훈의 최근 시는 신학과 문학이 만나는 사제적 언술로 우리의 현실을 질타한다. 이처럼 이재훈의 시는 신학적 상상력에 근거하지만, “아름다운 운율은 규칙이 아니라/ 당신의 입술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처럼 거리의 소음과 노동과 사랑을 시적 시선에서 놓치지 않는다. 군중과 농부와 회사원으로 구성되는 일상의 현실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체험에 공감하고 동참함으로써 이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시적 화자의 목소리를 구성한다. 그래서 이재훈 시의 화자가 드러내는 목소리는 군중과 농부와 회사원의 언어를 종합하고 그것을 순례자의 언어로 승화시켜 얻어진 것이다. 우리 시단에서 무의식적 욕망의 언어 및 사회적 윤리의 언어와 더불어 존재론적 시원을 추구하는 순례자의 언어를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재훈 시인의 현대시작품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제15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 심사평

 

 

마음의 한 세기를 다루는 시인

 

조강석

 

 

 

2014년 현대시작품상을 이재훈 시인이 수상하는 것에는 문학 내적인 필연과 문학 외적인 우연이 결부되어 있다. 부차적인 우연에 대해서 가장 간명한 형식으로 먼저 얘기하는 게 좋겠다. 현대시작품상은 지난 한 해 동안 쓰인 가장 좋은 작품에 주어진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이재훈의 작품이 마음을 가장 오래 붙잡았다. 그리고 이재훈 시인은 우연히도 시상 주체와 관련된 불필요하고 근거 없는 오해와 결부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작품의 수월성에 대한 고민은 짧았지만 혹시라도 수월성과 우연의 성근 인과관계를 유독 필연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까봐 고민하는 시간이 몇 배 길었다. 그러나 필연은 필연이고 우연은 우연이다.

이제 필연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이 글을 쓰는 이나 읽는 이나 한 시대의 얼굴을 오래 지켜보고 있다. 하나의 시대가 어떻게 자신을 구조적으로 체계화하며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감산하는지를 제법 오래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자본이 국경 없는 제국의 섭생을 관장하고 다수결이 소수에 의해 입안된 구체적 이익을 출납하고 덧셈 뺄셈처럼 명료해 보이는 외설적 욕망과 전횡도 모두 각자도생의 이전투구처럼 비치게 하는 나팔수가 24시간 활약하는 시대에 출근하고 카드 긁고 퇴근하고 정산하는 삶을 부정할 수 없는 우리는, 생활하며, 그러나, 마음의 한 세기도 경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훈은 바로 그 마음의 한 세기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통치와 경영과 합리화와 욕망의 구조 속에서 그래도 하루를 살아야 하는 우리가 마음의 한 세기를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가장 진솔하게 보여주는 작품을 쓰고 있다. 시가 내감의 외화만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사유의 귀결이기도 하다면 마음의 한 세기를 다루는 이 시인의 운산은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표상에 대한 내밀한 사유와 적실한 이해로부터 비로소 우리는 폐기할 것들의 숙주로 살고 있는 이의 곤혹스러운 윤리가 모든 끝의 시작임을 배운다. 드물고 귀한 시선을 이제 우리시는 지녔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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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다시 별들의 방언을 찾아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질 않습니다. 늦은 밤. 홀로 창밖을 보다가 문득 별을 발견했습니다. 예전 서울에 올라와 옥탑방에 살 때는 별이 참 많았습니다. 지금이라고 그 별이 줄어들지는 않았겠지요. 당시엔 자주 하늘을 올려다 볼 때였습니다. 문학을 하고 있고, 시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고 간혹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무릎 꿇고 살더라도 시를 쓸 수만 있다면 고귀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변해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혹시 시인의 자존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교만하지는 않았는지, 시를 제 목숨보다 앞에 놓고 사는 시인들의 작품을 함부로 폄훼하지는 않았는지 곱씹어 보았습니다.

면구쩍어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이 세계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는 별이 제게 자꾸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별의 소식을 잘 받아 적었느냐고. 많이 바쁘지 않았느냐고. 시가 네게 어떤 의미가 되었느냐고.

시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언이었습니다. 훈육된 제 언어는 너무 짧고 황망하여 이리저리 변죽만 울리다가 이내 사그라들기만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제가 찾은 유일한 언어였습니다. 운명적으로 만난 제 존재와 저를 둘러싼 환각의 관계들을 밤새도록 되작이며 중얼거려도 헛헛하지 않았습니다. 내게도 예술적 파토스가 있다면 이 방언을 잊지 않고 목이 쉬도록 불렀다는 것이겠지요. 신과 마주하는 기도와 시와 마주하는 방언 사이에서 늘 헤매었던 것 같습니다. 때때로 그 자발적인 영혼의 방랑이 변덕을 많이 부렸습니다. 지치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 상은 그런 제 마음을 다시 붙잡아 놓으려는 신호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가볍고 산뜻하게 시를 쓰고 싶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칭얼대기도 싫고 노인네처럼 훈계하기도 싫습니다. 늘 새로운 것만 요구되는 시대에 저 먼 시간의 강을 헤엄치려 합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것들을 탐하며 이 세계 이전의 존재들을 그리워하겠습니다. 최초의 말을 만나기 위해 방황하겠습니다.

제 육체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 영혼 또한 영원히 완성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전언으로 삼고 있는 헤세의 말처럼 “너는 완벽한 교훈을 동경하지 말고 너 자신의 완성을 동경하라”는 말을 가슴에 얹을 것입니다.

어짊으로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 큰 빚을 언제 갚을까요. 이제 별의 신호에 따라 다시 외계의 방언을 받으러 가야겠습니다.

 

_ <현대시>, 2014년 5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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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 에세이

 

 

 

내가 꾼 꿈은 사실 꿈이 아니었네

 

 

 

이재훈

 

 

 

 

 

 

범꿈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내 태몽은 호랑이 꿈이었다. 어머니는 가끔씩 고개를 갸우뚱거리시며 지금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 태몽을 얘기하셨다. 정말 생생하게 꾸었어. 지금도 호랑이가 내 앞에 떡 하고 서 있는 것 같아. 바늘처럼 꼿꼿하게 선 황금빛 털. 온 땅이 울리는 듯한 숨소리. 아직도 생생해. 꿈속의 어머니는 밭을 매고 계셨다. 신혼의 새댁이라 알록달록하게 수놓은 화려한 한복을 입고 계셨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며 내려오더니 어머니 앞에 떡 하고 나타났다. 어머니는 놀라서 허겁지겁 도망을 쳤지만 금세 호랑이는 어머니 얼굴 앞에 다시 섰다. 그러곤 어머니 치맛자락을 물고는 놔주지 않는 것이다. 호랑이는 고깔밑까지 얼굴을 파묻고 어머니를 떠나지 않았다. 잠이 깬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태몽인 걸 아셨다. 어머니는 그전에 유산한 경험이 있었다. 이번에는 아기가 뱃속에서 떨어지지 않고 잘 들어서겠구나고 생각하셨다.

나를 잉태하고 실제로 어머니는 호랑이를 만났다고 했다. 믿기 힘든 얘기다. 하지만 어머니는 정말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부재중이셨다. 아버지께서 확신하신 신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잠시 가족을 떠나 있었다. 강원도 산골은 긴 겨울밤을 홀로 보내기엔 너무 적막한 공간이었다. 어머니는 뜨개질을 하시다가 까무룩 잠이 드셨을 것이다. 자정 무렵.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방문 앞에서 멈추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문을 꼭 잠갔다. 두려웠다. 만삭의 배를 한 번 더 쓸어보고는 두 손으로 꼭 안으셨다. 날이 이슥하도록 호랑이는 집을 뱅뱅 돌았다. 온 대지가 밤새 울렸다. 그때 어머니는 보았다. 방문 틈으로 숨죽여 밖을 살펴보았을 때. 호랑이의 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무섭게 빛났다. 더 오래 볼 수 없어서 이내 방문을 닫고 밤새 호랑이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해가 밝았다. 호랑이는 가버렸다. 집 주위엔 호랑이가 남긴 발자국이 가득했다. 발자국 하나가 사람 얼굴 만 하다고 했다.

다소 과장이 섞인 이야기겠지만 어머니는 겨울밤에 만났던 그 짐승이 호랑이라고 굳게 믿고 계셨다. 담이 없는 산 밑의 외딴 시골집에는 짐승들이 자주 출몰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호랑이가 가끔씩 출몰한다는 소문도 수근거렸으리라. 1972년의 일이다.

이것은 어떤 사건일까. 운명이라고 하기엔 호랑이가 내 형상이나 기질과 맞지 않고, 우연이라고 하기엔 마치 신탁처럼 너무 생생하다.

나는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주문리(일명 모운동)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하동면이 김삿갓면으로 개명되었다. 내 태어난 곳 근처에 김삿갓의 무덤이 있다. 지명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모운동’은 구름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모운동’은 구름처럼 떠돌며 살다간 김삿갓(난고 김병연)을 이곳으로 다시 오게 했다. 한때는 산속의 석탄을 캐러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렸던 곳이다. 지금은 노인들만 남아 있는 고요한 마을이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운명인 걸까. 나 또한 이십대까지 구름처럼 전국을 떠돌며 살았고, 김삿갓처럼 시를 쓰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김삿갓의 혼이 담긴 곳과 가장 가까이에서 태어난 시인인 셈이다.

 

 

겨울

 

내 유년의 겨울은 유독 길었다. 강원도를 두루 다니며 살았던 덕이다. 나는 겨울에 태어난 겨울 아이다. 내 감각이 가장 예민하게 기억하는 계절 또한 겨울이다. 찬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나는 모든 것들이 예민하게 감각된다. 찬바람이 콧속으로 들어와 온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 들 때야 비로소 나를 느낀다. 늦가을부터 시작되는 찬기와의 만남은 날 설레게 한다.

강원도의 산골은 일 년의 반이 겨울이나 다름없다. 여름이 지나면 곧바로 김장이 시작된다. 그리곤 긴 겨울이 시작된다. 어느 겨울엔 자고 일어나니 온 세계가 전부 눈으로 덮인 날도 있었다. 방문을 여니 흰 눈이 너무 눈부셔 눈을 뜰 수 없었다. 내가 디딤돌을 밟고 올라타야 오를 수 있는 마루에까지 눈은 차올라 있었다. 어느 곳이 마루이고 마당이고 대문인지, 어느 곳이 길이고 도랑이고 담벼락인지 모를 정도로 온 세상이 눈으로 가득했다.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다. 자동으로 방학이 되어 그날부터 학교엔 가지 못했다.

군인들은 그날부터 마을로 모두 나와 눈을 치웠다. 우리 꼬맹이들은 터널을 만들고 이글루를 만들어 놀았다. 손과 발에 동상이 걸리도록 놀았다. 그때 우리들은 누구나 동상 한번쯤은 걸렸다. 저녁나절엔 친구의 아버지가 우리집에 고기를 가져다 주셨다. 친구의 아버지는 육군 중사였다. 그 고기는 오늘 잡은 멧돼지라고 했다. 나는 멧돼지 고기를 그날 처음 먹어 보았다. 아, 멧돼지, 토끼, 꿩, 사슴, 개구리, 그리고 온갖 민물고기 등을 그때 다 먹었었다. 아쉽게도 그 맛을 지금 다 기억하지 못한다.

잊지 못할 유년의 죽음이 있었다. 당시 내가 사랑했던 강아지의 죽음이다. 강아지의 이름은 물론 메리였다. 강아지라면 누구나 이름이 메리였던 시절이었다. 메리는 한겨울에 얼어 죽었다. 그것이 병인지 동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일어나 메리집으로 가보니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 내가 부엌으로 옮겨놨어야 했는데 하는 심한 죄책감이 일었다.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한겨울에 내복만 입고 개집 주위를 한참이나 서성였다. 나중 아버지와 함께 파묻어 주었다. 우리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강아지의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강아지의 주검은 옷으로 잘 감싸서 땅을 파고 묻었다. 작은 봉분도 만들었고 그 위에 십자가도 세워주었다. 이 절차는 모두 내가 집행했다. 아버지는 묵묵히 지켜보고만 계셨다. 내가 다른 영혼을 위해 가장 간절히 기도할 수 있다는 걸 아마 그때 깨닫지 않았을까. 이별의 아픔은 다른 사랑으로 회복되듯이 곧 나는 다른 강아지를 들여 그 아픔을 회복하였다. 강아지와 함께 골목에서 골목으로 마을 어귀에서부터 강가에 이르기까지 뛰어다니면 행복했다.

 

 

편식

 

언제부터인가 편식이 시작되었다. 우유도 맛이 없었고 고기도, 멸치도, 콩도, 달걀도. 세상에 어린이들에게 몸에 좋다는 음식은 모두 맛이 없었다. 그때 맛있었던 음식은 라면과 김 정도. 우유나 삶은 달걀 흰자를 먹다 토하기도 했다. 돼지고기는 입안에 넣자마자 몰래 뱉어내었다. 우유와 달걀에 대한 거부감은 거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밥도 맛이 없어서 라면 스프나 설탕에 비벼먹기도 했다. 어떤 날은 밥을 남기면 혼날까봐 엄마 몰래 땅속에 밥을 파묻기도 했다.

친구들은 냇가에서 피라미를 잡아 그 자리에서 배를 따고 씹어 먹었다. 어른들 흉내를 내느라 된장을 가져와 피라미와 마늘쫑을 함께 찍어 먹기도 했다. 나도 따라 했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친구들이 하는 건 따라 했다. 동산에 가서 오디를 따먹기도 했다. 혓바닥과 이빨이 새까매지도록 오디를 따먹고 주전자에 한 가득씩 담아 왔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린 시절 먹었던 대부분은 가장 천연의 자연식인 것이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강원도 산골에서 냇물과 공기와 자연의 모든 것들을 먹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편식 때문에 키가 크지 않고 점점 말라갔다.

 

 

편지

 

이사를 자주 다녔다. 전학을 가면 낯선 환경과 친구들과 적응을 해야 했다. 친구들이 못살게 굴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다. 나는 얼굴이 하얀 편이어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도시에서 전학을 온 것으로 오해했다. 전학 오는 학생이 흔치 않은 때였다. 한 학년에 한 반이거나 두 반이 전부였던 학교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전학생을 구경하러 왔다. 전학 선물로 받아온 내 자석필통이나 샤프펜슬, 공책을 구경하기도 했다. 엄마가 입혀주신 새 옷에 흙을 칠하거나 운동화를 밟기도 했다.

전학을 자주 다니니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나는 그곳의 친구들과는 다르고 영원히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이방인이라는 경계 위에서 위태롭게 관계를 유지하다가 마음에 맞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이상하게 그런 복은 있는 것이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보지는 못했지만 늘 친구들은 내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친구들이 생겨서 친해지고 서로 손을 맞잡으며 어깨를 부딪칠 무렵 또 전학을 가야 했다.

편지를 썼다. 이곳에 오면 저곳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며 그리워하는 것이 취미가 되어 버렸다. 편지쓰기는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종이에도 쓰고, 화장지에도 쓰고, 잘 말린 은행잎에도 썼다. 사진도 보내고, 낙엽도 보내고, 그림도 그려 보내고,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도 보냈다. 어쩌면 내 문학의 출발은 편지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대학 때까지 주고받았던 그 수많던 편지들은 나중 어머니에 의해 불에 태워져 없어진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안 나는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며칠 동안 잠이 안 올 정도였다.

 

 

서재

 

초등학교때 나는 <새벗>이라는 잡지를 정기구독 했다. 아버지는 월부 책장사들에게 최우수 고객이었다. 아버지는 책에서만큼은 금방 현혹되어 신청서에 사인을 하셨다. 어머니는 무척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빠듯한 살림 때문에 월부책을 더 이상 들여 놓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새벗>보다는 <어깨동무>나 <새소년>을 더 좋아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깨동무>나 <새소년>에는 만화가 있었으니까. 송년호나 신년호 잡지는 그야말로 놓칠 수 없었다. 만화만 있는 특별호가 따로 나왔으며 각종 선물이 즐비했다. 내 생일이나 성탄절 선물은 물론 <어깨동무>나 <새소년>이었다. <어깨동무>의 발행인이 육영수 여사였으며 육영수가 죽자 박근혜와 육영재단이 발행인이었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 안 사실이었다.

아버지의 서재에는 신학책들과 각종 월부책들로 가득했다. 나는 가끔씩 그 서재에서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퀴퀴한 곰팡내가 나는 시골집 한 켠의 서재. 이 서재만 없었다면 이 방은 내 방이 되거나 우리 형제들의 방이 되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의미도 내용도 모르는 서적들을 암호 해독하듯 읽었다. 어린이 동화전집은 읽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다. 기억나는 책들로는 삼성출판사간 한국현대문학전집, 까뮈 문학전집, 보들레르 시집 등이었다. 70권짜리 세로쓰기판 한국현대문학전집은 내가 한동안 가지고 있다가 최근 동생네 집으로 분양되었다.

 

 

데미안

 

중학교 때까지 교회와 집과 학교가 내 세계의 전부였다. 집에서는 비교적 말 잘 듣는 장남이었고 교회에서는 신실한 배냇교인이었다. 학교에서도 말썽 안 부리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또래보다 조숙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학생이기도 했다. 하지만 교회와 집 이외의 다른 세계를 경험한 친구들의 사정에 둔감했으며, 그곳의 일들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사춘기가 늦게 찾아 왔다. 남들보다 늦은 사춘기 때문에 당황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실존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신앙에 대한 회의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내 인식을 뒤덮었다. 태어나서 내 스스로 선택한 길은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의 아들로 태어나 누군가의 아들로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길을 찾고 싶었다.

부모님은 다시 먼 곳으로의 이주를 결정하셨다. 이번에는 충청도였다. 나는 혼자 남겠다고 선언하듯 얘기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나는 혼자 남게 되었다. 남아 있는 고등학교 생활 동안 자취를 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학교와 교회를 벗어난 경계 바깥의 학생으로 조금씩 변해갔다. 이탈된 자가 되어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산 자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 세상엔 피 묻은 상처를 어쩌지 못해 들고 다니는 이탈자들과 나처럼 스스로 선택한 이탈자들이 많았다. 개중엔 간혹 건강한 이탈자들도 있었다. 나는 다른 세계의 이곳저곳을 엿보았고, 때론 함께 살았다. 함께 산다는 것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느꼈으며, 성숙하지 못한 다짐의 결말을 많이 맛보았다.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너무 놀랐다. 소설 속의 싱클레어가 바로 나였으니까. 그리고 머지않아 소설 속의 데미안도 나였으니까.

선언하듯 대학을 포기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친구들은 대학으로, 업소로, 재수학원으로 도피하듯 들어갔다. 그때 내 눈에는 명문대에 입학한 친구들도 꼭 도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갖은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마음이 동하면 그날로 처음 가보는 남쪽행 기차를 탔다. 사람살이의 모든 게 우스웠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만큼 꽤나 지쳐 있었다.

나를 위로한 것은 예상치 않게도 문학이었다. 갑자기 내 삶에 문학이 확 끼어들었다. 일이 없는 날은 용산도서관을 매일 들락거렸다. 주로 소설과 사상서, 문예지를 읽었다. 헤르만 헤세와 프란츠 카프카를 신봉하게 되었다. 앙드레 지드는 취향은 아니었지만 매력적이었고, 보들레르나 랭보를 읽으며 미친 인간들의 미학을 엿보았다. 손창섭과 이승우에 감복했다. 이승우는 지금도 내가 최고로 치는 한국작가이다. 그 외 셀 수 없이 많은 작가들, 시인들, 사상가들과 만났다. 만났다 헤어지고, 잊히다 다시 만났다. 그때부터 돈이 생기면 각 출판사의 시인선을 모으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시인선의 시집들을 구하게 되었다. 순례하듯 헌책방을 다니며 모았고, 읽었다.

 

 

시인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뒤늦은 나이에 대학을 가게 되었다. 간신히 턱걸이로 부모님이 계시는 지방에 신설된 대학에 입학했다. 국문학을 전공했다. 1학년 때에는 적응을 못해 학교에 결석하다시피 했다. 학교보다 서울을 더 자주 들락거렸다. 다행히 교양과목이 많아 학번 동기들이 대리출석을 해주었다. 새로 생긴 대학이라 교수님들의 열정이 대단했다. 1학년을 마치고 도피하듯 군대에 방위병으로 입대했다.

입소하기 이틀 전, 소꿉친구의 부고가 날라왔다. 예기치 않은 일이었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자동차가 눈길에 미끄러진 교통사고였다. 그 친구는 우리들이 모두 위로받고자 하는 만인의 여자친구였다. 힘들 때 늘 누나처럼 위로하였으며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다. 도저히 친구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그 마음을 고스란히 안은 채 군대에 입소했다.

군대 복무를 마친 후 복학했다. 누구나 그렇듯 나의 짧은 군대이야기는 장편소설로 써도 모자랄 것이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뒤늦게 열병을 앓듯 시를 썼다. 다행히 문학이 전공이었으므로 재미있었다. <시심문학회>의 회장이 되었다. 여러 곳을 오가며 시 쓰는 티를 냈고, 시 앞에서만큼은 수줍은 성격이 열정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각종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응모를 했다. 어쩌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시밖에 없었던 시절. 연애하면서 당신은 시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라는 질문을 받던 시절.

운이 좋았을 것이다. 대학 4학년이 시작되기 전 겨울방학. <현대시>에서 당선 통보가 날라 왔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며칠을 묵었던 탓에 내게 연락이 안 되었다고 한다. 잡지사 편집자는 하소연을 했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었느냐고. 죄송합니다. 삐삐의 배터리가 다 달아서요. 당시 내 무선호출기 번호는 012-405-4329였다. 당선작은 「수선화」 외 4편.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시인이 되었다. 이건 허구가 아니다.

 

 

시의 삶

 

대학 졸업 후 다시 서울로 상경하여 대학원에 입학했다. 시의 삶을 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더 하기로 했다. 또다시 고달픈 사람살이의 연속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견딜 만했다. 시의 삶이며 시인의 삶이니까.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내 연보에 대충 나오는 얘기들이니까. 시와 함께 하는 고통스러운 행복을 지금까지도 누리고 있다.


_ <현대시>, 2014년 5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

제15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 대담

 

  

 

내 최초의 말이 사는 영토의 영주

 

 

 

 

 

 

이재훈 ․ 조동범

 

조동범, 이재훈

조동범 : 이재훈 시인. 안녕하세요. 이번 현대시작품상 수상을 축하해요. 사석에서는 친한 형동생이지만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 마주하니 새로운 기분입니다.

 

이재훈 : 감사합니다. 대담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나는 시인이다>라는 대담집을 출간했었잖아요. 주변 사람들이 대담은 이재훈 시인이 선수겠지,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여전히 인터뷰이로서는 낯설어요. 차라리 인터뷰어가 편하죠.

 

조동범 : 그래요. 저도 인터뷰이는 힘든 것 같아요. 자기 자신 안의 이야기를 온전히 풀어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으니까요. 더구나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전 국민이 비통에 잠겨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힘겹고 조심스럽습니다.

 

이재훈 : 예. 그 사고로 인해 뉴스를 보는 게 고통스럽습니다. 사고로 죽어간 학생들과 사람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먹먹합니다. 매일 눈물이 나요. 전 국민이 이 고통을 이겨내야 할 텐데요. 이 사고가 인재라는 사실, 그리고 사고에 대응하는 안이한 태도와 구조 장면을 보면 화가 솟아오릅니다. 아직도 구조중인데 구조가 끝날 때까지 유족들이나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간절하게 기도해야죠. 인간의 사악함과 무력함을 자꾸 느끼게 되어 요즘 정신적으로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국민 모두가 정서적 우울을 경험할 텐데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조동범 : 이번이 두 번째 수상이죠? 2011년에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받으셨고요. 1998년에 등단을 했으니 등단한 지 16년이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감회가 남다를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수상이 많은 격려가 되었을 것 같은데 그동안의 소회를 밝혀줬으면 합니다.

 

이재훈 : 면구스럽다란 말이 딱 이럴 때 쓰이는 말 같아요. 주목받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이거 쑥스럽고 어색해서 어떡하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현대시>에서 주관하는 상이라 전혀 생각지도 않았어요. 심사위원 선생님들이나 동료 시인들에게 민폐는 아닌지 여전히 걱정되고요. 제가 “거 참…”이란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는데요. 상 받는 시인들은 인기가 없다던데. 저도 이제 인기가 없어지면 어쩌나 하고 거 참. 또 대담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고 거 참. 시상식 때 앞에 설 생각을 하니 거 참. 그럼에도 많은 시인들이 기뻐해주는 걸 보면서 다행인건가 거 참. 모 시인은 누리라고 하던데 내가 누릴 깜냥은 못되지 거 참, 하면서 이번 달을 보내고 있어요.

 

조동범 : 수상할 자격이 충분하니까 ‘거 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요.(웃음) 상이란 것은 그래도 언제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 같아요. 많은 격려가 되기도 하고요. 이재훈 시인도 이번 수상이 시를 계속 쓰게 하는 그 어떤 자극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해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재훈 시인의 시를 보면 자신의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던데요.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경우에도 그것이 가족사나 개인사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원형적 세계와 맞닿아 있어요. 시에 가족사나 개인사를 등장시키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이재훈 :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들을 받곤 해요. 왜 당신의 시에 이재훈의 구체적 삶이 보이지 않느냐고요. 그런데 역으로 다시 생각해봤어요. 왜 유독 제게 그런 질문들을 공통적으로 해오는 걸까 하고 말이죠. 혹시 읽는 사람들이 제 시에서 그런 모습을 바라는 건 아닌가 생각했죠. 완전히 현실의 토대를 등지고 언어를 꾸리는 시인들에게는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이때는 시적 대상으로서의 현실을 말하죠. 아마 저는 현실과 현실 너머의 경계를 이리저리 오가니까 그런 것은 아닐까 스스로 생각해봤어요. 결론을 얘기하자면 자연인 이재훈과 그에 관계된 가족사가 굳이 시에 등장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이지 않을까요. 제 구체적 삶의 모습을 시의 질료로 삼을 때 과연 어떤 매력이 있을까 생각할 때 좀 회의적이죠. 김수영은 단 한 편도 똑같은 기분으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잘 살펴보면 엄청 많은 제 일상이 시에 숨겨져 있어요.(웃음) 특히 두 번째 시집에서는 과하게 드러낸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하기도 했고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경우에는 너무 큰 상징이라 쓰기 힘들어서 일겁니다. 어떤 찬사와 그리움과 원망을 하더라도 부모님을 얘기하기엔 부족할 뿐이죠. 형이 잘 지적해주셨듯이 제 시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꼭 이재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거든요. 원형적 세계의 상징에 가깝죠. 제 가족사를 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소설감이라고들 얘기하지만 그걸 시로 써낼 재주가 제겐 없어요. 가족사나 개인사가 저의 일부를 만든 또 하나의 장본인이니 제 언어의 토대에 그런 부분이 스며들어 있겠죠. 재주 없음의 변명을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았네요.

 

조동범 : 그럼 이어진 질문을 하죠. 성장기, 특히 문학적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한 삶의 여정을 좀 들려주겠어요? 내가 이재훈 시인을 만난 게 꽤 오래전이지만 내가 아는 이재훈은 시인 이재훈의 모습 정도였던 것 같아요. 물론 그것만으로도 시인 이재훈뿐만 아니라 인간 이재훈으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내가 그동안 너무 이재훈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재훈 : 중학교 때까지 저는 신의 은총 가운데 자라났죠. 삶의 모든 역정을 다 경험해본 아버지의 세계와 그걸 온몸으로 품고 살아가는 어머니의 세계 속에서 키워졌죠.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계 위에는 종교적 세계가 있었고요. 저는 촉망받는 교회의 학생신도이자 학교의 모범생이었습니다. 저의 유년은 이주의 연속이었어요.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에 이르기까지. 그러다 본가가 충남 논산에 터를 잡으면서 그곳에서 오래 정착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프로야구에서 삼성과 한화를 응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는 거죠.

초등학교 때는 전학을 많이 다녔는데 친구들은 저를 항상 도시에서 온 전학생으로 오해했죠. 아마도 거친 세계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제 모습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운동화에 타이즈와 멜빵 반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당시 강원도 산골에서는 단연 이채로운 모습이었죠.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늦은 사춘기가 찾아왔어요. 저의 반항으로 인해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생활을 했어요. 거친 남자들의 세계와 짐승들의 세계를 맘껏 경험하며 살게 된 거지요. 그 이후의 삶은 하루하루가 마치 부조리 연극처럼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의 전리품이라면 스스로 대학포기를 선언한 것, 말도 되지 않는 사회생활을 일찍 경험한 것,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등이 있을까요.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조동범 : 얼핏 들어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네요. 언제고 그 이야기를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좀 전에 원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원형적 세계에 대한 탐구는 첫 시집은 물론이고 두 번째 시집에서도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개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를테면 우주나 미지의 세계와 같은 본질과 원형의 세계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재훈에게 그러한 원형성의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요? 내 생각에는 그것이 이재훈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세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이번 수상작의 경우에도 그런 성향은 여전하고 말이죠.

 

이재훈 : 제 시를 평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바로 원형, 신화, 우주와 같은 개념어들입니다. 신화가 시 작품의 ‘최초의 말’이라는 견해들이 있어요. 신화 창조는 신화적 상상력을 언어로 표현할 때 구현되는 것이죠. 즉 시를 쓴다는 행위는 신화 창조와 다를 바 없는 것이고요. 시는 이 땅에 없는 새로운 세계를 자신의 인식 지평 하에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잖아요.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시의 방향은 그렇다고 생각해요.

신화나 원형이라고 하면 이미 우리에게 체득된 많은 선험적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리스 로마, 북유럽 등의 신화들이 있고 탄생 설화들과 수많은 원형적 화소들이 있지요.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시를 쓰긴 힘들어요. 그 테마들은 이미 수없이 반복된 알맹이일 뿐 내 고유한 세계는 아니니까요.

제가 신화에 대해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신화의 이미지나 신화에서 발생하는 고유한 환경이나 조건들이 제 뇌리에 오래 남더라고요. 어렸을 적부터 읽었던 성경도 많은 영향이 있었을 것이고요. 폴 리쾨르, 조지 캠벨, 엘리아데, 샤르댕 등을 좋아했는데요. 그런 독서경험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하지만 그 미적 관심이 제 언어 속에서 오래도록 내재화되었다가 시를 쓸 때 그쪽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제 시원始原에 관한 대답을 스스로 던지고 싶었어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제 존재에 대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진 거죠. 그것이 제 신화성에 대한 시적 구현이라고 봅니다. 그 질문의 대답은 없어요. 질문을 던진다는 것에 의미가 있죠. 시원에 대한 질문이 나를 관통하여 어디로 향할 지가 지금 제가 바라보는 시의 길입니다. 아마 물질이 아닐까 싶은데요. 지금 ‘돌’이라는 물질을 통해 그것을 실험해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동범 : 그렇군요. 그런데 그와 같은 세계를 추구하기 때문인지 이재훈 시인의 작품은 확장된 세계라는 외연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외부로 확대된 이러한 시적 개성은 첫 시집에서부터 주요한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확장된 시적 지평을 추구하는 특별한 의도가 있나요?

 

이재훈 :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데요. 제 언어습관 때문인 것 같아요.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많이 상상해 왔거든요. 하나의 사물을 보면 그 사물의 탄생 이전이 궁금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주로까지 상상이 나아가는 거죠. 시론에서 동일성의 시학을 보면 ‘세계의 자아화’라는 말을 쓰잖아요. 이 세계의 본질을 하나의 시적 대상에 집적시켜 시인의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인데요. 저는 이 동일성이 제 자아가 자꾸 어떤 외부로 이동하고 합일해가면서 이루어지는 방식은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넓게 보면 이것도 본질적으로 동일성이 되겠죠.

 

조동범 : 그렇다면 그렇게 마련된 ‘세계’로서의 첫 시집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나요? 생각이 깊었던 만큼 특별한 느낌이었을 것 같군요. 첫 시집을 출간했을 때의 소회뿐만 아니라 시집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이랄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첫 시집을 출간하기까지의 기간이 좀 긴 편 아닌가요?

 

이재훈 : 네. 등단한 지 7년 만에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를 출간했고, 그 이후 또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를 출간했으니 요즘의 시집 출간 간격으로 보면 늦은 편이죠. 첫 시집을 준비하면서 조급해하는 후배들을 볼 때면 제 얘기를 해줘요. 나를 반면교사로 삼아 위로를 받으라고요.(웃음) 시인들은 동료들을 많이 의식하잖아요. 모두 나보다 못한 시인들이 잘되는 것 같거든요. 이런 것에 자꾸 매이면 스트레스 받아서 시를 쓰지 못하겠죠. 이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져야 오래 자기의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료들과 경쟁하지 말고 나 자신과 경쟁해야 한다고 얘기해 줍니다. 더 나아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세상의 모든 진실과 모종의 상관관계를 맺는다면 더 좋겠죠.

때때로 시에서의 경쟁이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 동력이 되기도 하겠죠. 하지만 저는 그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저 또한 시적 욕망이 많은 사람이죠. 그렇기에 지금까지 시를 쓸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여러 면에서 문학 외적인 부분을 되도록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런 생각들이 시집 출간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첫 시집을 출간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시집 출판 환경이 좋지 않았어요. 특히 첫 시집인 경우에는 더 힘들었죠. 몇 년 전부터 시집을 묶어 놓았는데요. 출판사 선정에서부터 출간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다보니 시집을 많이 손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초반에 넣고 싶었던 시들이 자꾸만 형편없어지는 거예요. 또 제가 추구하는 방향의 시집을 기획하려다 보니 여러 시들이 걸러져서 결국 44편만 남게 되었어요. 첫 시집은 제가 가고 싶은 시적 방향을 막연하게나마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애정이 있죠. 제 딴에는 첫 시부터 마지막 시까지 정말 공들여 기획을 했다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세상에 내보내는 첫 번째 책이 첫 시집이었는데 어찌 애정이 없겠어요.

 

조동범 : 첫 책, 첫 시집이라고 하니까 제 마음이 다 두근거리네요. 저 역시 첫 시집을 내던 때의 설렘을 잊을 수가 없거든요. 누구에게든 ‘첫’은 참으로 두근거리는, 그런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자, 그럼 이제 개인적인 질문을 좀 하도록 할게요. 요즘의 근황을 좀 들려주겠어요? 많은 동료들이 이재훈 시인을 시인이자 편집자로, 대학 선생으로 기억하고 있잖아요. 시인 이재훈이면서 동시에 <현대시>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편집자 이재훈이기도 한데요. 편집자로서의 일상과 선생님으로서의 일상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일상 모두가 궁금하네요.

 

이재훈 : 문예지 편집자와 대학에서의 강의를 병행하는 삶이 벌써 꽤 오래되었네요. 앞으로 제 삶이 분명 변하겠죠. 어떻게 변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요즘은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느낄 때가 있어요. 제 딸 은율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든요. 사람들이 모두 놀라더라고요. 벌써 그렇게 되었냐고.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네요. 제가 가장의 역할에 대해서는 형편없는 편이죠. 시인들의 아내는 순교자적 삶을 살아야 하잖아요. 겨우 겨우 가장의 흉내를 내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어요.

 

조동범 : 그런데 <현대시> 부주간으로 일하면 문학과 관련된 모임이 많을 텐데요. 그게 글을 쓰는데 방해가 되거나 그러지는 않는지도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할 것 같거든요. 편집자로서 지내는 시간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갖는 시간과는 다를 것이고, 퇴근 후에도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고 집에 돌아가서 가장의 역할까지 하려면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거기에 더해 일상의 고단함도 있을 거고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해요. 혹시 여행 좋아하시나요?

 

이재훈 : 문학 모임에는 저의 자발적 기분에 따라 다니고요. 제가 꼭 가야 하는 문학모임은 많지 않아요. 개인적인 모임들이 많은 편이죠. 제가 시도 쓰고, 가끔씩 평론이나 에세이도 쓰고, 강의도 하고 편집자도 하니까 걱정들을 많이 하시죠.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요.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시를 못 쓴다는 건 모두 다 핑계죠.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할 것 같지만 저는 혼자 영화도 보고, 프로야구 중계도 보고, 도서관에도 설렁설렁 다녀요. 자주 그러지는 못하지만 혼자인 시간, 고독한 단독자의 시간을 얻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죠. 밖에서 하루 놀았으면 다음날은 원고를 쓴다거나 혼자 논다거나 육아를 담당한다거나 해요. 이게 나름 균형을 맞춰가며 사는 거예요. 동범형도 자신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집안 살림을 해놓고 점수를 따놓는다거나, 밀린 원고를 후딱 써놓는다거나.(웃음)

또 낮에는 일상인의 삶이었다가 저녁이 되면 시인의 자의식으로 돌아오려고 많이 노력해요. 중요한 건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자의식의 집중도인 것 같아요. 그리고 메모하려고 하죠. 메모하지 않으면 내가 발견한 미적인 순간을 자꾸 놓쳐버리니까요.

여행은 자주 가는 편이 아니에요. 제가 어렸을 적부터 이사를 자주 다니고, 젊은 시절에 훌쩍 떠나는 시간들을 많이 가져서일까요. 낯선 곳에 대한 향수를 이젠 꽤 참을 만해요. 올 겨울엔 친구와 둘이 부산에 다녀온 것이 기억에 남네요. 광안리에서 남포동, 보수동, 태종대까지 다니며 실컷 바람맞고 왔죠. 공간이 문제는 아니죠. 그날 부산의 바람은 제게 마다가스카르의 바람과 다를 바 없었어요. 아, 물론 가족들하고는 자주 다니죠. 가족이 생기다보니 이젠 혼자 떠나는 여행이 쉽지 않아요. 꿈만 꿀 뿐이죠.(웃음)

 

조동범 : 일상을 견딘다는 건 참 쉽지 않은 문제지요. 시인이 된 이후에는 특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문단에 나와 만나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신지가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그동안 많은 시인들이 등장했고 사라져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만큼, 우리가 문단에 나오고 첫 시집을 냈던 2000년대 초중반의 시단의 모습과 요즘 시단의 모습은 또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세대교체도 많이 이루어졌고, 시세계의 변화도 감지됩니다. 등단 이후 벌써 16년인데 최근 시단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네요.

 

이재훈 : 많이 달라졌죠. 젊은 세대의 교체 주기도 빨라졌고요. 저는 아직도 선배시인들에게 젊은 시인으로 불리는데, 제 밑의 세대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제 저도 중견 아니면 선생님으로 불리는 세대가 된 거죠. 세대교체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너무 빨리 젊은 시인들을 혹사시키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렇게 쓰다가 오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이 돼요. 또한 아직 자기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인데 시단에서 저렇게 눈 치켜뜨고 주목하고 있으면 힘들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시단이 시인들에게 이것저것 여러 스타일도 실험해보고, 자기 세계를 이쪽저쪽 두드려보고 하는 여유를 허락해 주지 않는 것 같아요. 좀 더 빨리 새로운 것만 내놓으라 요구하죠. 유행이 끝나면 더 젊은 세대로 옮겨가겠죠.

어느 시대나 전통과 새로움은 서로 길항하며 발전을 해왔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 중 하나인 이분법적 갈등이 시단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시인과 독자와의 소통이 문제가 아닙니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혹은 전통과 전위의 시인들끼리 소통이 안 되고 있어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용인해 줄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 속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인들을 바라볼 수 있겠죠. 서정과 모던으로 구획 짓는 전근대적인 구분법의 프레임에 갇혀서 정말 좋은 시인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정치에서 진정한 의미의 보수와 진보가 드문 것처럼 대부분의 시인들도 서정과 모던의 경계에 있다고 보는데요. 이 경계에는 관심이 없죠. 우리 시단이 유행과 관계없이 자기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시인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토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조동범 :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일 텐데요. 시집을 내면서 늘 그렇듯 변화에 대한 시적 모색이 고민일 것 같아요. 특히 다음 시집은 지난 10여년을 마무리하고 새 출발하는 의미가 강할텐데 말이죠. 지난 시집이 2011년에 나오기는 했지만,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은 등단 이후 10여 년 동안의 문학적 궤적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물론 시적 모색이라고 하는 것이 새로운 시집을 낼 때마다 늘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제 신인이나 젊은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뭔가 다른 변화에 대한 탐색이 필요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이재훈 : 세 번째 시집은 준비 중에 있습니다. 세 번째 시집은 첫 번째 시집에서 추구하려던 세계를 확장하고, 두 번째 시집에서 고백했던 도시의 성찰이 더 처절하게 이어질 것 같습니다. 새 출발이라는 말보다는 더 확장된다는 느낌이 강할 것 같아요. 시적 대상도 다양해지고, 어조도 조금 달라지고요. 앞으로 더 가야 할 세계의 지향점에 징검돌을 놓는 기분입니다. 이제 나를 벗어나 타자와, 다른 세계에 눈을 돌리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조동범 : 이제 중견(?) 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삶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말이죠.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지도 궁금하지만, 시인으로서 어떤 문학적 삶을 살고 싶은지도 궁금해요. 앞으로 나이가 들수록 시쓰기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선배 시인들을 보더라도 문학적 삶을 지속한다는 게 참 어려워 보이거든요.

 

이재훈 : 저 아직 중견 아니에요. 중견되려면 멀었어요. 제가 중견이면 형도 중견이니 서로 그러지 맙시다.(웃음) 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삶이라… 어렵네요. 시인이 꼭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죠. 다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갈 텐데. 저도 아직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요. 제 시집의 자서에서 말한 대로 멋있게 늙는 것이 바라는 바고요. 추하거나 구차한 시인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고민 중입니다.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며 살아야겠죠.

 

조동범 :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네요. 마지막으로 <현대시>를 비롯한 한국시의 독자들과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할게요.

 

이재훈 : 저는 시인들은 모두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시인들을 살펴보세요. 특별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살아낼 수가 없어요. 때론 천형을 받은 존재들이라고 하지만, 그 형벌을 행복하게 받아낼 줄 아는 존재들이 시인들 아닙니까. 시인은 통각에 가장 예민하면서도 가장 강한 내성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시인의 한 마디 말이 삶의 어느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자신을 송두리째 전율시킬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말에 온 맘으로 귀 기울이면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조동범 : 긴 시간 고생했습니다. 다시 한 번 현대시작품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이재훈 : 네. 감사합니다. 형과 대담을 하게 되어 참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_ <현대시>, 2014년 5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

징후는 없다

― 현대시의 새로운 징후와 담론의 가능성

 

 

 

이재훈

 

 

 

 

 

1.

 

시는 늘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온다. 무의식적으로 다가와 내면화되었다가 다시 목구멍 밖으로 토해내는 이 목소리들은 늘 무정형이다. 들뢰즈식으로 말하면 ‘애벌레 주체’들의 목소리는 무의식 속에서 우리들도 모르는 사이에 시인의 목소리를 빌려 온다. 아직 이성적으로 객관화되지 않은 목소리들이, 윤리적이지 않은 날 것의 목소리들이 신기(神氣)의 목소리를 타고 뱉었다 들이켰다를 쉬지 않고 반복한다. 애벌레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쉬지 않고 뱉어내는 애벌레들의 소리는 이 땅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시인은 무당이 아니던가. 애벌레들의 목소리는 주술사의 구음과 같다. 정체를 알 수 없으나 그 소리엔 신탁이 있으며 예언이 있다. 그 소리엔 치유의 부드러움이 있으며 상처를 소환하여 멀리 떠나보내려는 씻김이 있다. 때론 마녀의 목소리가 출몰하며, 때론 그로테스크한 환영의 그림자가 출몰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의 징후는 늘 예기치 않게 온다. 시의 언어가 늘 먼저였으며, 그 목소리를 재단하고 목소리의 특성을 살피는 일은 늘 뒤에 온다. 징후를 살피는 일은 지금 우리의 현재를 살피는 일이며, 지금 현재를 통해 시가 지나가는 존재의 자리를 다시 되짚어보는 일이다. 그러므로 때론 예언적 목소리들이 징후의 그물망에 걸리기도 하고, 때론 그물망에 걸리지 않고 스스로 침묵의 길로 걸어가기도 한다. 징후는 늘 사회적 현상, 역사적 흐름, 현대인의 보편적 특성 등과 함께 재단된다. 시의 목소리는 새로운 개념어를 통해 이리저리 분절되고 재단되어 이러저러한 틀 속에 넣어진다. 그동안 미래, 정치, 윤리, 미성년, 서정과 극서정, 반미학, 환상 등의 개념으로 주체의 표본을 만들고 시의 목소리는 새로운 발성이나 음색으로 표본화되어 전시되었다. 시의 화자는 늘 세계와 화해를 꿈꾸는 이상(理想)으로 간주되어, ‘차이’나 ‘불화’와 같은 다소 불편한 개념어로 자주 뭉뚱그려졌다.

애벌레들이 뱉어내는 무수히 많은 자아들의 목소리는 이구동성으로 중엉거린다. 우리는 화해의 파수꾼도 아니며 불화와 전복의 점령자도 아니라고. 우리는 단지 무의식적 영혼의 소리라고. 화해와 불화를 동시에 뱉어내는 벌레들의 소리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모든 소리가 명창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목소리들 가운데 하나를 건져올려야 한다. 눈 밝은 선자(選者)들과 발견자들에 의해 소리 가운데 하나가 점지되어 새로운 목소리로 발견된다. 이 발견은 이미 징후된 것인지도 모른다. 문명과 사회는 급속도로 변화하며,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활도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에 발맞추어 시의 목소리도 발 빠르게 시대를 대변하리라고 믿었다. 물론 시는 시대를 대변한다. 하지만 시는 가장 넓은 범위의 기억들을 모두 떠안고 있는 기록물이다. 존재 이전과 존재 이후, 문명 생성 이전과 문명 파괴 이후의 시간까지 시는 기억하거나 예견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늘 징후나 예감을 좋아하기에. 시대적 사명 속에 깃발든 시를 늘 발견하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기쁨은 시의 언어와는 늘 상대적인 윤리의 언어를 가장 독실하게 그려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겨워. 발을 차 넣자 그녀는 그것을, 그대로 꾸욱 삼켰다. 동그란 눈에서 눈물이 찔끔, 발소리를 냈다. 하루 종일 짧아진 발목으로 기어 다니던 나. 오늘은 그녀의 목구멍에서 내가 차 넣은 발을 찾았다. 깨끗이 닦아 낸 나의 구두를 그제야 입 밖으로 밀어 올리며, 사랑해요. 많은 날 동안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벌레, 그녀

 

배 속을 열어 보니 오래전 내가 씹다 뱉은 말들이 들어 있었다. 당신이 그랬다고요, 내게. 가로줄무늬가 길게 늘어진 그녀의 배가 동그랗게 출렁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보다는 고통에 소리치는 동물들을 더 사랑했고, 헤어져.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녀. 뇌 속에는 이미 벌레가 가득했다. 그건 모두 둥글둥글 그녀를 닮아 꾸물거렸고 찔러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랑해. 그녀가 사라진 곳에서 천천히 그녀의 남은 영양분을 모두 빨아먹고 나오는 나. 어느 날은 새까맣고 날카로운 눈빛의 내가 죽은 그녀 주변에서 무수히 많은 날갯짓을 하며 날고 있었다. 벌레들. 털어 내도 계속 벌레가 꼬였다. 당신을 사랑했었다고요. 벌레처럼. 그녀들이 벌레처럼, 벌레처럼 속삭였다.

― 조혜은, 「벌레―그녀」 전문

 

조혜은의 시는 애벌레들의 자아가 여러 겹을 통해 발화된다. 이미 많은 시를 통해 이성적 자아와 자폐적인 자아를 중첩시킴으로써 개인의 내면을 여러 색깔의 스펙트럼으로 보여준 조혜은에게 벌레의 말은 진실의 말과도 통한다. 진실은 가능한 말이며, 경험적으로 가장 절박한 말이기도 하다. 그녀의 내면은 “나”와 “그녀”의 목소리가 서로 혼융되며 벌레의 정체성을 서로 나누어 가진다. 시의 화자는 그녀에게 “발을 차 넣는” 존재이며, 그녀는 그것을 “그대로 꾸욱 삼키”는 존재이다. 시의 화자는 시적 대상인 “그녀”와 피학과 자학을 나누는 존재이며, “그녀”는 고딕체의 독백으로 화답한다. “지겨워”, “당신이 그랬다고요, 내게”, “헤어져”, “당신을 사랑했었다고요, 벌레처럼”과 같은 고백과 내면으로 소통하는 말들은 그러한 점을 잘 직시해준다. 하지만 이 가학과 피학의 관계는 서로 다른 몸이 아니며 한 몸이다. 그녀의 목구멍에서 “내가 차 넣은 발을 찾았”기 때문이다. 구두를 밀어올리며 그녀는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그녀는 “벌레”로 형상화되어 있다. 벌레로 가득찬 그녀의 몸엔 “내가 씹다 뱉은 말들이 들어 있었다”. 시의 화자가 뱉어낸 말들은 그녀의 몸속에서 벌레로 변이(變移)된 것은 아닌가. 결국 시의 화자는 “그녀의 남은 영양분을 모두 빨아먹”는다. 그리곤 “그녀 주변에서 무수히 많은 날갯짓을 하며” 날고 있다. 벌레는 쉬지 않고 그녀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에워싸고 있다.

조혜은이 벌레를 통해 본 현실은 벌레와 싸우고 있는 시적 자아의 분투로 점철되어 있다. 시의 화자와 그녀가 서로 분리되어 있지만 한 몸이며, 내면의 일과 바깥의 일 또한 허물어진 경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환(幻)의 공간은 실체를 가지지 않으나, 실체와 같은 극사실의 경험을 우리에게 준다. 시의 화자는 뼈저리게 내면의 일을 현실의 일로 감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겹고, 헤어지고, 사랑하는 일은 현실에서 모두 발생하는 일이지만 이 현실의 감정이 내면으로 습합(習合)되면서 내면의 일로 다시 발화되고 있다. 이 작은 벌레의 말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의 말이며 가장 절박한 자아의 말이기도 하다.

 

2.

 

스펙트럼은 가시광선을 파장에 따라 배열한 것이다. 문학에서도 이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다양한 파장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듯 문학, 혹은 시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을 함께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까. 그저 수많은 시 속에서 선명한 색깔을 하나 건져 올려 특별한 것인 양 자찬한다. 혹은 비슷한 색깔들끼리 묶어 새로운 계열의 색을 발견했다고 자찬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담론이 발생한다. 늘 시는 담론보다 먼저였으며, 담론을 위한 시는 언제든지 즐비하다. 어떤 면에서는 시적 담론이 아니라, 철학의 신기술을 시에 대입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시단에서는 몇 년 동안 담론부재를 걱정하며 새로운 담론을 찾기에 급급했지만, 그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전 담론의 부채를 다 갚기도 전에 새로운 빚을 지고 있다. 시적 담론의 부재가 아니라 시를 재단할 철학의 부재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시를 재단할 철학적 아이디어의 부재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시가 아주 극명하고 선명한 색을 내는 목소리만 즐비할까. 대부분의 많은 시들은 이 색도 아니고 저 색도 아닌, 빨강도 아니고 파랑도 아닌 색을 가진 목소리들일 것이다. 무슨 색인지 규정할 수는 없지만 오묘하고 매력적인 색을 가진 목소리들이 대부분 아닐까. 하지만 많은 선자들은 가장 극단의 색깔만을 문학사에서 유용한 목소리라고 규정한다. 근대문학에서 어쩔 수 없이 재단했던 이분법적 프레임에서 우리는 아직도 갇혀 있다. 모던과 리얼, 전통과 전위, 농촌과 도시, 현실과 환상 사이의 수많은 스펙트럼을 가진 목소리들은 그저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 목소리로 둥둥 떠다닐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늘 딜레마이다. 어떤 시를 평하는 것은 결국 어떤 목소리 하나를 끄집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의 언어는 누군가에게 선택되자마자 어떤 성향과 색깔의 목소리로 규정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발화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붉은 띠를 맨 시인이 되기도 하고, 푸른 띠를 맨 시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명명해줌으로써 시인의 말은 그 사명을 따라가야 한다는 무의식적 다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시인들이 내뱉는 목소리가 닿는 곳은 어디일까. 현실의 어디쯤일까. 지구의 반대편일까. 지구를 벗어나 우주의 어디쯤일까. 아니면 공간이 아니라 환상이 구성되는 미정형의 이미지일까. 그곳이 어디든 시인의 목소리는 바로 이곳 현실로부터 시작된다. 이곳 현실을 우화하거나 비유하거나 대상화하면서 때론 이국으로, 낯선 땅으로, 기억의 먼 곳으로, 우주와 환상이 기억하는 어떤 곳으로 목소리가 날아든다. 어떤 의미에선 현실이 없는 시는 없다. 지금 이 현실이 우리의 언어를 만들고 꿈꾸게 하므로. 또한 그런 의미에서 완벽히 현실을 반영하는 시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곳이 어디든, 이제 그 실존의 목소리를 따라 읽어 본다. 그들의 현실이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는지 소요하며 긁적이며. 없는 징후를 만들거나 예감하면서.

 

엘프족을 닮은 여자가 있다

이름 모를 행성과 충돌하고

흩어진 가계를 수습하기 위해

가위 하나만 달랑 손에 쥐고

지구별로 야반도주한 여자

건조한 내 머리에 물을 뿌리며

숙련된 손길로 싹둑싹둑

한 달간의 근심을 가지 치는 여자

웃자란 생각들을 좌우로 보며

마침맞게 중심을 잡아 주는 여자

이따금 새순으로 피어난 꽃말들이

그믐처럼 그윽하게 입가에 스미는 여자

언젠가 여자는 나를 쓸어 담고

그녀가 왔던 행성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레이스가 달린 은하수 돗자리를 깔고

흩어졌던 가족들을 불러 모아

내가 지금 잠시 무릎에 손을 얹고

그녀의 손길을 따뜻하게 받아들인 것처럼

머―언 작은 별 이야길 해줄 것이다

그녀는 지금 내 머리 위에

비행접시처럼 떠서 우주의 먼지들을

구석구석 헹구고 있다

― 김산, 「은하 미용실」 전문

 

김산은 이곳의 현실을 화성이라고 한 적이 있다.(「화성 관광 나이트」)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관광 나이트의 공간을 화성으로 비유하여 지구인의 숨겨진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었다. 화성을 불의 별로 지칭하며 욕망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을 이루는 공간이 되는 것은 관광 나이트의 공간이 이곳의 현실과는 다른 욕망의 배설소이기 때문이다. 즉 관습적으로 살아가는 현실의 공간에서 가장 빨리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 관광 나이트이다. “가만히 누워 부울, 하고 부르면 온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오장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보면 어느새 당도하는 곳”이 바로 불의 별 화성이다. “정열적인 아낙들이 요술공주 밍키처럼 사자로 늑대로 변신하는 곳”은 화성에서만 가능하다.

현실의 공간을 우주의 일로 극화시키는 시적 재기(才氣)는 은하 미용실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은하 미용실은 잘 쓰여진 서정의 구조를 띄고 있으면서, 그 내용의 변주를 통해 새로운 시로 읽히게 된다. 미용실의 여자는 엘프족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일련의 행위는 우주에서의 경험을 수습하는 일로 치환된다. 시에서 은하 미용실의 여주인은 과거 삶의 고통과 역경을 “새순으로 피어난 꽃말들”로 이겨내는 희망의 엘프족으로 대상화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더 고통스럽게 느끼게 한다. 은하 미용실의 그녀는 우주에서 온 여인이며 엘프의 요정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꿈꾸는 일들은 “머―언 작은 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이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위의 시를 통해 읽을 수 있다.

 

각자의 런던은 영국에 없다.

각자의 런던은 삼례에 있는 술집이다.

검정색 통유리에 빨간색 이층버스가 그려진

각자의 런던은 소읍에서 다소 파격적이다.

소읍만큼이나 사건사고가 없는 이곳,

옆 테이블에 앉은 커플과 멱살잡이가 없다.

화장실 거울에 붉게 떠도는 립스틱이 없다.

쟁반에 코를 박고 쓰러지는 대머리가 없다.

알코올로 빌어먹고 사는 각자의 런던,

엉덩이 밀고 끄는 의자들의 노동이 없다.

복제화를 진정 사랑하는 화이트칼라가 없다.

각자의 런던은 사장님이 일으킨 제국,

사장님은 제국을 쇠사슬로 묶고 자물쇠를 채운다.

각자의 런던은 각자의 대문을 닫은 나라,

퇴근길을 봉지에 담고 들어가는 가장이 없다.

이제는 어떠한 중독자도 없는 각자의 런던,

소읍에서 가장 세련된 디자인을 가졌던

현관이 굳게 잠겨버린 금단의 제국.

― 백상웅, 「각자의 런던」 전문

 

백상웅이 말하는 삼례의 현실은 “각자의 런던”으로 변용되어 우리에게 남는다. 누구나 내면에는 런던이라는 조용하고 세련된 서구의 도시를 가지고 있지만, 시에서 “각자의 런던”은 술집이름일 뿐이다. 시인이 바라본 것은 관습적으로 알려진 런던이 아니라 “현관이 굳게 잠겨버린 금단의 제국”으로서의 술집이다. 이 술집은 이미 멸망한 제국이기에 사건사고가 없는 공간이 된다. 즉 “옆 테이블에 앉은 커플과 멱살잡이”, “화장실 거울에 붉게 떠도는 립스틱”, “쟁반에 코를 박고 쓰러지는 대머리”가 없는 술집이 되어 버린 것이다. 중요한 점은 사연이 없음으로해서 노동이 없다는 것이다. 사장님이 일으킨 제국이 없다는 것. 제국이 없으면 노동도 없고 노동이 없으면 “퇴근길을 봉지에 담고 들어가는 가장이 없다”. 런던과 삼례는 공간적 심리적 거리의 문제이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자와 노동을 관리하는 사장과 그것을 통해 살아가는 가족의 사유가 들어가 있다. 백상웅이 「도계」에서 말한 “여기에서 태어나고 여기에서 죽는” 공간이 서로 맞물리며 경계를 이루는 것처럼, 지명과 방언도 하나의 경계에 속한 것처럼, 한 술집과 마을과 이 땅의 모든 공동체는 이런 경계를 뛰어넘어 공통의 조건과 문제를 직시하고 있다.

 

3.

 

공간은 늘 이곳과 저곳의 경계를 구분한다. 바깥과 안의 경계, 시적 자아가 참여한 공간, 확인한 공간, 미지의 공간, 관념의 공간 등으로 구획되곤 한다. 시인은 이곳과 저곳의 경계를 오가며 경계의 무화를 향해 노력한다. 시간의 경험은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에겐 더할 수 없이 막연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공간의 보고이다. 그 경험은 기억의 방법론으로 실체화된다. 먼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하면서 지금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유희경의 시에 드러나는 가족사나 시간과 계절에 대한 예민한 감각은 이런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저녁이 되면 스스로 사막이 되는 방법을 연구한다 더 빨리 늙기 위해 천천히 걷고 뒤로 걷다, 갑자기 돌아서서 잊으려 했던 사람을 떠올리는, 조금 시큰한

 

지도는 조금씩 자라는 동물 같은 것이다 봉투를 뜯는 내 건조한 경력을 생각한다 아버지란 기호에선 캐치볼이 떠오르지만,

 

어느새 나와 아버지 사이 넓게 자리 잡은 이만 헥타르쯤의 운동장 이따금, 몰래 알약 반 개 같은 씨앗을 심지만 자라는 것은, 없다

 

방금 불어온 바람을 등지고 어리고 슬픈 내가 공을 주우러 뛰어간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 글러브는 누구의 가죽이고 날아가는 것을 보면 왜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는가

 

계집애가, 오빠를 쫓다 울음을 빙그르르 돌리는 저녁이다 더는 돌릴 수 없을 때까지 숨을 참는, 어쩌면 생활의 무늬란 그런 것이지 꼭 다문 입술의 주름 같은 것

 

그러나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날리지 않는다 단단하게 여물어 열리지 않는 길의 가슴을 열기 위해 새빨간 태양이 넘어간다 잡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법 따위는 지운 지 오래

― 유희경, 「지워지는 地圖」 전문

 

지도는 어딘가를 가리켜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기호이다. 지도를 통해 전체를 보거나, 전체 속에 밀집되어 있는 세밀한 공간을 확인한다. 유희경의 지도는 기억의 지도이며, 흔적의 지도이다. 기억의 나침반은 아버지의 시간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향한다. 시의 화자는 “더 빨리 늙기 위해 천천히 걷고 뒤로 걷는” 자이다. 더 빨리 늙고 싶다는 것은 잊으려 했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도가 “조금씩 자라는 동물”과 같다는 생각은 아버지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아버지라는 기호가 자신의 시간을 무력하게 하고, 아버지의 실체로 들어가는 지도도 더 넓어지게 만든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펼쳐든 지도는 “이만 헥타르쯤의 운동장”이다. 그 운동장에서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려면 그 넓은 운동장을 뛰어가야 하고, 숨을 참아야 하고, 전력 질주해야 한다. 시의 화자는 길을 잃어버린다. 시인의 기억술은 특별한 것이어서 아버지에게 가는 길의 지도는 더 넓어진다. 아버지라는 기호는 쉽게 해석되지 않는 암호와 같기 때문이다. 그만큼 넓어진 생각의 그늘이 시인의 시간을 에워싸고 있다.

 

거기에서는

죽은 자의 피부를 벗겨 가까운 사람들이 나눠 가진다더군

아끼는 책을 장정하고 이름을 새긴다더군

죽은 자는 책이 된다더군

아기가 태어나 글을 익히면

최근에 죽은 자의 피부로 감싼 책을 선물한다더군

그를 대부로 삼는다더군

거기에서는

몇권의 책을 장정하며 성인이 된다더군

결혼을 서약할 때는 책에 손을 얹고

여기 장엄한 생을 두고 맹세합니다, 말한다더군

때가 되면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을 유언으로 남겨야 한다더군

거기에서

죽은 자는 몇권의 책이 된다더군

문자의 외투가 된다더군

늙어서 죽은 자는 지혜의 책이, 젊어서 죽은 자는

혁명의 책이 된다더군

아이가 죽으면 예언서가 된다더군

삶에 관한 의문이 드는 저녁에 쓰다듬는

한권의 생이 된다더군

― 유병록, 「사자(死者)의 서(書)」 전문

 

“아무래도 나는 빨강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했던 유병록은 색깔을 통해 자신이 감각한 세계의 일면을 얘기했다.(「빨강」) 위의 시에서는 우리 현실 이후의 세계를 감각한다. 유병록은 죽은 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려고 한다. ‘사자의 서’는 지하세계를 안내하는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경험하거나 실증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 감각하거나 확신할 뿐이다. 감각이나 확신의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방법에 따라 종교적 믿음이 생긴다. 유병록이 감각하는 죽음 이후의 세계는 현실을 책으로 소통하는 자아가 출몰한다. 이 현실을 문자로 해독하고 이해하고 결국 자신이 책으로 남는다는 것은 시인이 할 수 있는 자의식에 가깝다. 시에서 아기가 태어나 글을 읽히면 “가장 최근에 죽은 자의 피부로 감싼 책을” 선물받는다. 또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몇 권의 책을 장정”해야 하며 결혼을 서약할 때에도 책이 필요하다. 이뿐 아니다. 책은 “죽은 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창구역할을 하기도 한다. 죽은 자와 연결할 수 있는 책. 이 책은 죽은 자가 몸으로 남기는 가장 완벽한 유품이 된다. 이 유품은 “늙어서 죽은 자는 지혜의 책”으로 “젊어서 죽은 자는/ 혁명의 책”으로 “아이가 죽으면 예언서”로 각각 남겨져 인간의 유산이 된다. 살아남은 자들과 죽은 자들이 서로 교통하는 매개물로서의 책. 그 책은 죽음을 경험한 한 개인의 실존에서부터 출발하였지만, 우리 모두가 긍정하며 감각할 수 있는 죽음 이후의 세계이기도 한 것이다.

 

맥박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답장을 쓰다 말고

눅눅한 구들에

불을 넣는다

겨울이 아니어도

사람이 혼자 사는 집에는

밤이 이르고

덜 마른

느릅나무의 불길은

유난히 푸르다

그 불에 솥을 올려

물을 끓인다

내 이름을 불러주던

당신의 연음(延音) 같은 것들도

뚝뚝

뜯어넣는다

나무를 더 넣지 않아도

여전히 연하고 푸른 것들이

먼저 떠올랐다

― 박준, 「당신의 연음(延音)」 전문

 

환후의 고백을 쓰며 구들에 불을 넣는 시인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까. 혼자라는 단독자의 시간을 그리움이라는 정서로 이렇듯 꽉 채울 수 있을까. 덜 마른 느릅나무나 솥에 올려진 물까지도 모두 그리움이라는 시인의 마음에 봉사하고 있다. 이런 먹먹한 시에 무슨 해설이 필요할까. 잊고 있었던 당신의 연음을 함께 되뇌며 나의 그리운 시간을 뜯어 넣으면 된다. 여전히 연하고 푸른 것들이 떠오를 때까지.

징후는 없다. 비바람과 폭풍과 지진의 징후는 있어도 시 언어의 징후는 없다. 다만, 시가 있을 뿐이며, 시 이후에 유포되는 소문이 있을 뿐이다.

 

_ <시인동네>, 2014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

지난 7월 11일.

후배인 김산 시인의 시창작반에서 특강을 했다.

구일동에 위치한 아담한 도서관이었다.

북카페 <곁애>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는데 커피향이 좋았다.

시의 열정을 온몸으로 받아 왔다.

시와 동시의 언저리에 대한 여러 얘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비행기를 아주 가까이에서 자주 오래 본 여름 밤이었다.

 

 

 

 

Posted by 이재훈이
,

빈이무첨의 시간

 

 

나민애

 

 

 

  울었지. 허벅지가 패고 뺨에 피가 흐르지. 우리는 어디에서 짐승처럼 왔을까. 당신의 기별을 기다리며 안절부절하는 날들. 먼 시간을 건너왔을까. 천 년 전부터 서로의 몸을 기억했을까. 기억이란 늘 중심이 다를텐데.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검은 밤의 시간을 가로질러 왔지. 그때 우리는 참담했을까. 누군가는 나를 기억하고, 누군가는 내가 뱉은 말들을 기억하지. 아무도 없이,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않고 잠들고 싶었지.

  내 겨울엔 소리가 없지. 모든 사물은 배경으로만 존재할 뿐. 두려움은 고독 때문인 것. 문을 열고 나가면 그뿐인데. 전략 없는 삶이 늘 자랑스러웠지. 슬픔에도 정도가 있다면 나는 어떤 고통쯤에 닿았을까. 우린 숨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 묘한 시간이 지나면 어느덧 시의 동지들. 불을 만지고, 물을 만지고, 공기를 만지는 손들.

  우울이 병은 아니지. 무엇을 요구할 수 없는 사십대가 된 것뿐이지. 달이 떠오르는 시각. 달빛의 광경보다 텅 빈 마음이 들어온 거지. 중년의 형편이 가장 누추할 때. 땀이며 피며 살갗이 흘러내리지. 이제 갈 시간이 된 것. 도시에서, 혹은 상스럽고 선정적인 인문학의 세계에서.

  - 이재훈, <짐승의 피> 전문(<세계의문학>, 봄호)

 

 

이재훈 시인의 시를 읽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 시인을 통해 ‘불완전한 성인(成人)’의 위태로운 사회적 위치와 불안한 심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세의 이립(而立)을 지났어도 세운 것은 하나 없고, 40세의 불혹(不惑)이 되었어도 미혹되지 않은 바 없다. 많은 ’성인‘들이 모여 시에서처럼 ’우리‘가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성인이 되었음은 물론,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났어도 21세기의 성인들은 ’미성인(未成人)‘의 처지에 있다. 이재훈 시인의 작품에는 성인이되 성인이지 못하다는 이 모순적 자의식이 존재한다. 더불어 뒤틀린 자의식이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고통과 살 타는 냄새가 가득하다.

이 고통의 냄새를 민감하게 맡고, 그 냄새의 원천지를 찾아 나서는 독자의 심정은 아마도 타인의 표정에서 자기 얼굴을 찾아내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내 고통의 표정을 타인의 고통의 표정에서 찾아내는 즐거움, 이것이 이재훈 시인의 시를 읽는 두 번째 이유이다. 내가 고통스러운 것처럼 그도 고통스럽구나 내지는 내 타는 살보다 저 사람의 살은 더 타고 있구나, 이렇게 비교 가능한 고통을 확인하는 것은 고통을 견디는 데 위안이 된다. 매우 야박한 일이지만 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 너는 더 아프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고통의 심리적 지수는 체감상 낮아지게 된다.

그렇지만 체감상 낮아질 뿐 고통은 여전히 고통이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안절부절하는 날”과 “참담”은 계속되고, “형편이 가장 누추”하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변함없는 것을 변하게 할 힘이 없는데 그렇다면 이런 사실을, 못난 현실과 못난 나를 고발하는 행위는 무슨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이재훈의 시를 읽는 세 번째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다. 그의 시는 오욕과 더러움과 진땀의 세계에 속해 있고, 그것을 어쩌지 못하고 건너는 ‘개 같은 날들’의 기록이다. 이렇게 더러움을 깨끗하다고 말하지 않고, 참 더럽다고 말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나는 이재훈 시인의 주먹에는 ‘빈이무첨(貧而無諂)’의 세계관이 쥐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더럽지만 그래, 더러우니까 나만 깨끗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가난하지만, 가진 것은 없고 미혹과 불안만이 있지만, 아첨하지는 않겠다. 이것이 ‘빈이무첨’의 정신이고, 완전히 짐승 쪽으로 건너가지는 않겠다는 마지막 마지노선이다. 도시를 욕하면서 그곳에 사는 도시인뿐만 아니라 “상스럽고 선정적인 인문학의 세계”를 욕하면서도 그 세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죽을 때까지 풀지 않을 주먹에 ‘빈이무첨’을 꼭 쥐고 이 세계를 건너는 자세 말이다.

 

― <문학사상>, 2014년 7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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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좋았다
모두들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사람들의 말 하나하나가
풍요로운 국부(國富)를 이루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말할 권리를 뜻했다
그때는 좋았다
사소한 감탄에도 은빛 구두점이 찍혔고
엉터리 비유도 운율의 비단옷을 걸쳤다
오로지 말과 말로 빚은
무수하고 무구한 위대함들
난쟁이의 호기심처럼 반짝이는 별빛
왕관인 척 둥글게 잠든 고양이
희미한 웃음의 분명한 의미
어렴풋한 생각의 짙은 향기
그때는 좋았다
격렬한 낮은 기어이
평화로운 밤으로 이어졌고
산산이 부서진 미래의 조각들이
오늘의 탑을 높이높이 쌓아 올렸다
그때는 좋았다
잠이 든다는 것은 정말이지
사람이 사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사람이 사람의 여린 눈꺼풀을
고이 감겨준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 시_ 심보선(1970~ )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눈앞에 없는 사람』 등이 있다.

 
▶ 낭송_ 이재훈 – 시인.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가 있음.

 
 
배달하며

    좋은 시절은 항상 지나간 시절이죠. 오늘 감당해야 하는 삶의 고단함과 수고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죠. 그때는 가난하고 사는 것이 만만치 않았는데도 지금보다는 다들 행복했죠. 뜰의 모란과 작약은 더 화사하고, 앵두나무 가지에는 빨간 앵두들이 다닥다닥 달려 익어갔지요. 사람들에겐 덕이 있었고, 작은 성취에도 늘 보람은 더 컸었지요. 어디에나 “무구한 위대함들”이 반짝거리고, “생각의 짙은 향기”는 넘쳤으니, 그때가 호시절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왕관인 척 둥글게 잠든 고양이”는 어떤가요? 정말 사랑스럽지 않나요? 양친부모는 살아 있고, 형제자매들은 종아리들이 굵어지고, 이웃들은 느긋했고, 누구나 들길을 쏘다닐 수 있는 여유쯤은 있었죠. 우애와 우정이 있던 그 시절, 시간은 기쁨으로 가득 찬 윤무(輪舞)와 같았죠. 예전보다 더 많이 가졌지만 지금은 더 가난하고, 더 높은 직책을 가졌지만 기쁨이나 보람은 줄었지요. 양친부모 다 떠나시고 형제자매들도 다 흩어졌으니, 호시절이 다시 오기는 아예 글러버린 것이겠죠?

 
 
 

문학집배원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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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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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척 노력해도 종국에는 오은인 걸 들키고 마는 시

 

 

 

오은 ․ 이재훈

 

 

 

이재훈 : 반갑다. 오은 시인. 우린 오래 만난 사이인데 새삼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냥 편하게 얘기하기로 하자.

 

오은 : 좋지, 형.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 못 본 지 두 달은 넘은 것 같네.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듯 답할게.

 

이재훈 : 세월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요즘 마음이 무겁고 괴롭다. 슬픔과 분노가 교차되어 한 마디로 멘붕 상태다. 어떻게 잘 버텨내고 있는가.

 

오은 : 그제는 안산에 다녀왔어. 유가족들이 단상에 올라가는데 모인 사람들이 다 훌쩍이더라. 유가족 한 분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지. 분노와 무기력, 슬픔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이면 결국 울게 되는 것 같아. 울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한동안은 넋이 좀 나간 채로 지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재훈 :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 과연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세월호와 같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시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들. 이런 때에 한 정치인이 시를 써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시가 희화화되지 않았나. 오은 시인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하다. 

 

오은 : 고통을 덜고 위로를 해주는 것은 시가 할 수 있는 부차적인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인이 그 시를 쓸 당시에 기대했던 바가 아닐 수도 있고.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아이를 잃은 부모가 나오잖아. 시는 어쩌면 제과점 주인이 그 부모에게 건네는 롤빵보다 하찮은 것일지 몰라. 허기를 달래주지도, 가시적으로 온기를 전달하지도 못하니까. 그러나 나는 시가 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각자의 말로, 우리의 말로 기억하는 거지.

 

이재훈 : 내게 오은 시인은 막내동생과 같다. 나뿐만은 아닐 텐데. 문단의 교유가 넓은 편 아닌가. 오은 특유의 친화력이 부러울 때가 많다. 오은의 어머니를 뵐 때 느끼는 것인데,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았구나 생각했다. 그 천진무구의 성정은 어디로부터 연유된 걸까?

 

오은 : 집이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어. 아버지가 선생님이었는데, 우리 집은 엄격하기보다는 자유로웠지. 우리가 거짓말할 때를 제외하곤 매를 들지 않으셨으니까. 단칸방에 꽤 오래 살았는데, 덕분에 부모님과 형이 거의 항상 가까이 있었어. 귓속말을 해도 다 들릴 정도였어. 형이 무슨 책을 읽는지, 어머니가 무슨 색깔의 매니큐어를 칠하는지, 아버지가 어떤 TV 프로그램을 좋아하시는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 어머니의 긍정적인 성격을 닮은 것도 한몫한 것 같아. 가난이 단 한 번도 부끄러운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부모님이 우리가 부족한 거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아낌없이 베풀어주셔서 그랬을 테지만.

 

오은_이재훈_ 약수역_2014.5

 

이재훈 : 사회학을 전공하고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문학이 아니라 사회학을 택하게 된 이유라도 있는가? 그리고 문화기술대학원에서는 어떤 연구를 했나. 그 연구의 결과물로 로봇서사를 다룬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를 출간했다. 독자들을 위해 소개 부탁한다.

 

오은 : 학창시절에 문학을 전공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었어. 알다시피 나는 친형 덕분에 등단을 했으니까. 중고등학교 시절 큰 대회에서 몇 차례 상을 받긴 했지만, 그건 대부분 산문이었고. 무엇보다 나는 내가 쓰는 것이 시가 될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았거든. 수험생이 으레 그랬듯 나 역시 교과서 시들만 접했으니까. 국문학은 내가 범접하기엔 너무 멀리 떨어진 학문이었던 셈이지.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하고 1학년 때 전공 탐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 나는 원래 기자가 꿈이어서 언론정보학과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수업을 듣고는 실망하고 말았지. 내 기대와는 전혀 달랐거든. 심리학, 경제학, 외교학, 인류학 등 사회과학대학에 있는 다른 전공들을 듣다가 사회학이라면 머리는 아프지만 기분 좋게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거리낌 없이 의심할 수 있었으니까. 궁극적으로는 세계를 바라보는 고유의 시선을 갖고 싶었지.

문화기술대학원은 ‘융합기술’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막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문을 연 대학원이야. 국문학, 법학, 경영학, 미학, 컴퓨터 공학, 건축학, 산업디자인 등 다양한 전공 출신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지. 겹치는 전공이 거의 없었을 정도니까.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구현하는 데까지가 우리가 하는 일이었지. 그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작업이 팀으로 이루어졌어. 가령 나 같은 사회과학도가 어떤 것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문을 트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친구가 그것이 현재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는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야 사용자들에게 좀 더 편안할까를 고민하고 경영학을 전공한 친구는 그것이 시장에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 따져보는 거지. 얼핏 분리된 작업 같지만, 한자리에 모여 항상 머리를 맞대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작업했어. 그 친구들과의 작업 경험은 아마 평생 동안 잊을 수 없을 거야.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라는 책은 ‘로봇’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산업자원부( 산업통상자원부) 프로젝트였어. 로봇이 변화함에 따라 그것을 가지고 만들어진 콘텐츠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피는 게 목적이었지. 나는 영화, 소설 등 서사를 다른 하나의 축으로 세우고 작업했다면 어떤 친구는 무용(퍼포먼스)을 다루는 작업을 했어. 로봇과 교육, 로봇과 디자인, 그리고 로봇과 애니메이션을 함께 엮어서 살펴본 친구들도 있었고. 이른바 ‘로봇 시리즈’로 출간된 이 책들을 읽어보면 우리가 로봇이라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협소한 개념인지 파악할 수 있을 거야. 로봇이 어떤 존재로 우리에게 인식되어왔는지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고.

 

이재훈 : 색과 그림을 다룬 책 <너랑 나랑 노랑>을 출간했다. 오은 시인은 문학과 미술뿐 아니라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다방면의 문화 취향에 대해 들려 달라.

 

오은 : 조예가 깊지는 않다고 생각해. 미술, 음악 등 다른 분야에 몸담은 사람들과 협업을 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들과 대화하기에 큰 무리가 없는 정도야. 좋아하는 건 어떻게든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하잖아. 그러다 보니 틈나는 대로 찾아서 읽고 보고 들었지. 시간이 없어서 요새는 전시는커녕 영화도 많이 못 봐. 많이 속상하긴 한데 언젠가는 찾아올 여유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지.

취향에 대해서라면 크게 할 말이 없어. 두루두루 다 좋아하거든.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색과 그림을 다룬 책을 낸 것처럼 색을 잘 구사하는 화가들을 좋아해. 앙리 마티스나 파울 클레 같은 화가를 예로 들 수 있겠지. 음악은 신스팝(synthpop)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해. 기타보다는 건반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요새 부쩍 들어. 나는 줄곧 내가 기타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웃음)

요 몇 년 사이에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아졌어. 몇 년 전부터 타이포그래피 아티스트들과 작업할 기회가 있었는데, 시가 읽는 것에서 보는 것이 될 때 어떤 질감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지. 작년에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에서 영상으로 내 시를 보여줄 기회가 있었는데, 아예 해당 미디어에 걸맞게 시를 새로 썼거든. 서울역 근처를 지나가는 시민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을 거야. 앞으로도 기회가 생기면 협업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싶어.

 

이재훈 : 큰 교통사고로 인해 생사를 넘나든 적이 있지 않은가. 아직도 많은 시인들이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한동안 기억을 잃어버렸던 실존의 경험이 시 쓰기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오은 : 글쎄, 나는 그때가 좀 뿌예. 많이 아팠다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니까. 물론 재활 치료의 고통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정말 끔찍했지.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머리에 물이 찼었는데, 그 물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니까 사고 직후부터 수술 직전까지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진 거야. 그사이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지인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지. 정말 가관이더라고. (웃음)

그때의 기억을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은 없어. 단지 나는 내가 정말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지. 그 뒤로 아픔과 슬픔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듯싶어. 한동안은 병원에 가서 대기실에 앉아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만 봐도 눈물이 났어.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니까.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지 아니까. 시무룩한 표정의 보호자만 봐도 어머니 생각이 나서 가슴을 쓸어내렸지. 나는 진짜 효도해야 돼.

 

이재훈 :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부터 오은 시인 하면 명명되는 것이 ‘말놀이’로 대표되는 언어감각이다. 말놀이나 펀(fun), 유희의 수사법은 오래된 전통을 가진 것이지만 오은의 언어는 다른 지점이 있다. 나는 그것이 인문학적 사유와 사회성을 겸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인문학적 말놀이라고 할까. 말놀이로 투영되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오은 : 글쎄,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말놀이 때문에 주목받았지만, 그것이 내 발목을 잡는 상황이라고 말하면 조금 우스울까? (웃음) 놀이의 세계는 변화무쌍한데, 사람들은 놀이의 가벼움, 놀이의 발랄함만 기억하니까 가끔 안타까울 때도 있어. 아직까지도 “오은? 말놀이하는 애?”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것은 나의 개성을 반영한 말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면서 은연중에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한계를 미리 재단해놓는 것이기도 하거든. 그만큼 놀이가 가진 기운이 내 시를 압도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실은 놀이에서도 자꾸만 규칙을 어기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규칙을 지키면서 교묘하게 배반하는 작업을 하고 싶은 거지. 기존의 언어 규칙에 내가 짠 규칙을 접목한 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싶어. 이건 형식적인 문제고, 무엇을 쓰느냐의 문제는 또 완전히 다르지. 흔히 놀이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다루고자 하는데, 아직은 내가 미숙한 탓인지 사람들은 형식에만 반응하더라고. 어쨌든 결국에는 내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

 

이재훈 : 대표적으로 「ㅁ놀이」를 보면 말놀이, 물놀이, 맛놀이, 몸놀이, 망놀이, 멋놀이, 무놀이, 문놀이, 몽놀이, 맥놀이, 멱놀이, 몇놀이, 맘놀이, 못놀이로 이어지면서 의미가 확장되고 유희가 가속화된다. 요즘도 사전을 읽나? 말놀이의 이면에 숨어 있는 시인의 태도가 궁금하다. 물론 말놀이는 재미있어 하겠지만, 그것 이외에 추구하려는 전략이 있다면 살짝 공개해 달라.

 

오은 : 응, 예전처럼 자주는 못 보지만 아직도 무료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친구가 바로 국어사전이야. 요새는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내가 익숙한 단언데 잘 사용하지 않는 것들, 뜻을 많이 품고 있어서 그중 일부만 사용하는 것들에 관심이 가더라고. 실제로 그 단어를 실생활에서 사용해보려고 노력도 하고. 입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내 말이, 내 단어가 되는 것 같으니까. 전략이라고 말할 것은 없고, 놀이라는 게 가진 기본적 속성이 즐거움, 흥겨움, 즉흥성 등이잖아. 그 놀이가 다 끝났는데 이상하게 슬픈, 혹은 이상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기분을 갖게 하는 것? 울면서 웃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당도하게 하는 것? 너무 거창한가? (웃음)

 

이재훈 :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시인의 말을 보면 “가장 가벼운 낱말들만으로 가장 무거운 시를 쓰고 싶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이 오은 시의 정체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오은의 언어는 경쾌함, 유쾌함, 유희 등의 요소들이 있다. 이런 개성은 한국 시단에 드문 세계이다. 앞으로의 언어 방법도 이 분위기를 유지할 것인지 궁금하다.

 

오은 : 글쎄, 나는 굳이 내가 어떻게 변화해야겠다고 생각한 뒤에 시를 쓰지는 않아.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을 쓰니까. 이전 질문의 답변과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양극단에 있는 감정이나 무게, 질감 등이 어떻게 시 안에서 부딪치는지 지켜보고 싶어.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친 말들, 너무나 익숙해서 그 특유의 색깔이 지워지고 있는 말들, 아무러한데 부러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데 붙어 다니는 말들 옆에 붙어 있고 싶어. 내가 해왔던 방식을 전면적으로 뒤엎지는 못하겠지. 그것은 천성에 가까운 것이니까. 단지 단어가 어떤 식으로 문장에 결절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일이 잦아지겠지.

 

이재훈 : 나는 두 번째 시집을 ‘부조리’라는 개념어로 읽은 적이 있다.(「부조리한 언어의 건축술, <세계의문학>, 2013년 가을호) 개인적으로 오은 시에 대한 평가가 너무 언어감각과 방법론에만 치중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언어의 껍질을 벗겨내고 시의 속살을 바라보면 문명인의 무기력함과 한 개인의 쓸쓸함이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언어는 재밌게 놀고 있지만 분명 쓸쓸할 때 이 시를 썼을 거야 라고 혼잣말을 할 때가 있었다. 시를 쓸 때 어떤 정서의 감도를 가지고 쓰는가. 예를 들어 슬플 때, 기분 좋을 때, 헛헛할 때 등등처럼.

 

오은 : 쓸쓸하지. 나는 항상 웃고 있지만, 거의 항상 외로워. 외로우면 눈물도 나고 울상도 짓는 게 일반적인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더라고. 근데 그게 나를 포장하는 방식은 아니야. 나는 너무 슬플 때는 웃음이 터져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쓸쓸함이나 외로움은 연애를 하거나 복권에 당첨이 된다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시인으로 살고 있는 것도 우스꽝스럽고, 부조리를 감추려고 또 다른 부조리가 행해지는 것을 목도할 때면 정말이지 어이가 없지. 생각해봐. 웃음의 차원도 여러 가지잖아. 배꼽을 잡고 뒹굴뒹굴 구를 때도 있고 어처구니없어서 피식 웃고 마는 경우도 있으니까. 웃음을 유발한다고 해서 그게 가벼운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 형 말처럼 그 안에는 무기력함과 쓸쓸함, 공허함 같은 것이 다 담겨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쓸쓸하면서 우습고, 한없이 밝으면서 뒤꽁무니에는 거무스름한 그림자를 길게 달고 다니는 셈이지. 말하고 보니, 시를 쓸 때 딱 저런 상태인 것 같아.

 

이재훈 : 최근 시를 보면 점점 더 의미가 강화된다는 느낌이다. 「우리 학원」이나 「맥거핀」,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다움」 등에서 보이는 사회성이나 존재에 대한 풍자가 더 깊어진 것 같다. 「반의반」에서처럼 말놀이의 재기는 여전하고.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

 

오은 : 딱 봤을 때, “이거 오은 시네!”라고 말할 수 있는 시. 나는 나의 시를 쓰고 싶어. 나만 쓸 수 있는 시. 내가 들어가 있는 시. 내가 아무리 내가 아닌 척 노력해도 종국에는 오은인 걸 들키고 마는 시를.

 

이재훈 : 우문이지만 현답이었다. 인터뷰 하느라 고생 많았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오은 : 응 형. 나도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어.

 


 

오은 : 1982년 전북 정읍 출생.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및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로봇과 서사를 다룬 책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그리고 색과 그림을 다룬 책 <너랑 나랑 노랑>을 썼다. 현재 작란(作亂)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이재훈 :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저서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부재의 수사학>,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다. <현대시작품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_ <시향>, 2014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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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기대 문창과 학생들과 연희문학창작촌을 찾았다.

학생들에게 내 몰골이 찍힌 사진을 받았다.

연희창작촌에 입주해 있는 김성규 시인을 초대하여 대화를 했다.

4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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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선생님

시시각각 2014. 5. 17. 01:10

기억이 벌써 가물한데, 사진을 보니 2012년 11월이다.

이승훈 선생님의 전집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몇 시인들이 모였다.

선생님께 한 마디씩 적은 나무와 승복과 어울리는 머플러...

선생님께서는 연신 활짝 웃으셨다.

이승훈 선생님의 자택 근처. 강남역 부근이다.

 

이승훈 선생님께서는 현재 병중이시다.

쾌유를 기도하며...

 

박상순, 이수명, 이원, 정재학, 오은, 강동우, 이민하, 김경인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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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품고 있는 도시 속의 신성함 속으로 말(言)을 타고 달려본다

 

 

이재훈, 김성규

 

 

 

 

 

건기(乾期)의 새. 시집 속에서 이재훈 시인의 모습을 찾아본다면 이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자신의 말보다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시인. 시인의 모습은 자신의 시와 닮아있다. 시에 행간의 여백이 느껴지듯 타인을 자신의 여백 속으로 깃들게 만드는 시인. 북가좌동에서 가끔 이재훈 시인을 만난다. 내가 사는 동네에 이재훈 시인의 직장이 있다 보니 같이 맥주를 마시고 시 이야기를 나눈다. 이재훈 시인이 주로 나의 고민을 들어주는 편인데 생각해보니 내가 시인의 고민을 들어준 적이 없다. 주로 후배인 내가 신세한탄을 하거나 물어보는 것이 많으니 이 빚을 언제 갚을까. 등단 15년이 가까워오지만 한결같은 모습, “햇살이 없었다면/ 저물녘이 없었다면/ 늦은 밤 빗소리와/ 시를 긁적이는 펜 소리가 없었다면(자서 부분)” 우주에서 우리는 만나지 못했으리라. 평소 궁금했던 시에 대해, 시인이 품고 있는 도시 속의 신성함 속으로 말(言)을 타고 달려본다.

 

김성규 : 이재훈 선생님 안녕하세요. 평소에 가끔 만나 뵈었는데 이런 계기로 마주 앉으니 좀 쑥스럽습니다. 겨울인데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저는 감기가 심하게 걸려 며칠을 고생했습니다.

 

이재훈 : 예. 반가워요. 김성규 시인과는 가까운 사이인데 이렇게 공적으로 마주 앉는 건 처음인 듯 싶네요. 저도 이번 겨울을 병치레로 나고 있어요. 감기를 달고 있네요.

 

김성규 : 선생님 시집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신화성, 시간성, 절대성 등입니다. 일단 약력을 보면 1972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하여,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2005), <명왕성 되다>(2011)를 출간하셨습니다. 시집으로 보면 등단 이후 많은 시간 차이를 두고 첫 시집을 냈고 이후에도 6년이 지나서 두 번째 시집을 냈습니다. 요즘같이 빨리 바뀌는 세상에서 긴 시간을 두고 출간하신 이유나 그 동안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이재훈 : 제가 작품 발표할 때에는 그렇지 않은데 시집을 묶을 때는 자기검열이 엄청 심해지더라구요. 시를 넣고 빼고 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구요. 결국 첫 시집은 44편만 남게 되었죠. 또 제가 첫 시집을 출간할 당시에는 지금과 상황이 달라서 시집 출간이 쉽지 않았습니다. 출판사를 결정하는데 또 시간이 걸려서 여러모로 늦어지게 되었어요. 두 번째 시집은 박사논문과 평론집, 대담집 등의 출간으로 생각보다 늦어지게 된 거구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평생 시를 쓰지 않겠습니까. 긴 안목으로 보면 시집의 권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몇 십 년 쓴 후에는 출간한 시집이 10권이건 5권이건 크게 중요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런 마음 때문에 출간이 더뎌지게 된 것이기도 하죠. 의미있는 시집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성규 : 첫 번째 시집보다 두 번째 시집은 보다 실재적 세계에 많이 접근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시간이 많이 지난 질문인지는 모르지만 첫 시집에 비해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하실 때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지요.

 

이재훈 : 첫 시집 이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하늘에서 내려와라. 우주와 하늘에서 신들과만 놀고 있다고. 땅에 내려와 인간들하고도 놀자고. 그런 말들에 영향 받았을 거예요. 두 번째 시집은 내 실존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렸다고 할까요.

 

김성규 : 시를 쓰고 그것에 다가가려는 시간이 짧은 순간 완성될 수 없듯이 선생님 시는 줄곧 성배, 순례라는 시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신이나 절대에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이 많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다신교적인 방식이 많이 등장합니다. 선생님 시에서 종교나 신화적 사고가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재훈 : 아마도 유년시절부터 내면화된 종교적 경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춘기 때부터 종교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어요. 전통이 아닌 비전통의 교리 등을 기웃거렸죠. 결국엔 돌아 돌아왔지만 그런 내면적 경험들이 시에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종교라는 것을 의식하고 쓴 적이 없어요. 습관화된 제 언어 속에서 그런 것들이 드러나는 건데요. 그렇기에 제 시는 영성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말인 것 같아요. 아무튼 신화와 영성 등의 주제는 계속해서 제가 탐구하고 싶은 주제입니다.

 

 

 

김성규 : 첫 시집 첫 번째 시가 「사수자리」라는 시입니다. 마지막 시는 「결별의 노래」이구요. 두 시 모두에서 빛이라는 상징이 드러나는데 이 빛(별)으로 가기 위해서는 “쭈글쭈글해진 어머니의 배”, 이마 위에 “주름이 깊어 눈이 감기고”라는 이미지가 나옵니다. 마치 성스러운 곳으로 가기 위한 통과제의처럼 보입니다.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재훈 : 「사수자리」는 존재의 시원에 관해 혼몽하는 시이고, 「결별의 노래」는 시원에서 다른 물음으로 이동하려는 다짐의 시라고 말할까요. 통과제의는 맞는데 성스러운 곳으로 갈 지는 모르겠어요. 오히려 더 속악한 곳으로 가지 않을까요? 하하.

 

김성규 :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도 크게 보면 별자리의 하나인데 이 시집에서는 「안드로메다 바이러스」같은 경우는 외계인의 침입으로 인한 지구인들의 종말이라는 SF적이라고 해야할까요 영화적이기도 하고 성경의 종말론적 버전도 보입니다.

 

이재훈 : 맞아요. 굳이 성경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보편화된 상상이죠. 영화에서도 많이 등장하죠. 아마 종말론의 상상은 앞으로 영원히 반복될 테마겠죠.

 

김성규 : 「매일 출근하는 폐인」에서 “출근길 지하철 입구에 눈먼 소녀가 앉아 있다./ 소녀의 귀에서 누렇게 익은 곡식 낱알을/ 새가 쪼아 먹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굉장히 선명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인데요 이런 상징들이 생활인으로써의 시인,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시인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재훈 : 상징은 일상이 내면화되어 나온다고 생각해요. 실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그걸 보지 않으려는 것뿐이죠. 왜냐면 끔찍하니까요. 지하철 입구의 소녀 이미지도 상상이 덧붙여지긴 했습니다만 실제 그렇게 느낀 이미지에요.

 

김성규 : 「겨울 숲」이라는 시는 <형의 이해하기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시인들에게도 그렇지만 창작이라는 허망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묘비도 없이 바람에 존재를 실어 버리는 게/ 가장 행복한 결말이라고” “신문에도 남지 않았던 그의 결말은/ 그가 진정 원하던 것이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저는 마지막 구절이 가슴 아프게 읽혔습니다. 사적인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이 시에 얽힌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이재훈 : 시의 실제 모델인 형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십대 초반에 병으로 돌아가셨죠. 방황하던 제 친구들의 정신적 우상이었어요. 병을 앓다가 독학으로 공부해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했는데 졸업도 못하고 돌아가셨죠. 그 후 십년이 훨씬 넘어 그 형에 대한 시가 나오게 된 거에요. 시 쓰는 사람들처럼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욕망이 강한 이들은 없을 겁니다. 이 땅에 무분별하게 널려 있는 시비를 봐도 그렇죠. 이름은 그렇게 남기는 게 아니란 것을 그 형이 알려주었다고 할까요. 단 한 사람의 가슴에라도 그 이름이 새겨진다면 정말 훌륭한 거죠.

 

 

 

김성규 : 「침묵의 세계」에서 보면 선생님 태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호랑이가 어머니 치맛자락을 물었다는 것인데, 일찍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뒷 구절을 보면 선생님이 평소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려집니다. 대부분 시 쓰는 선후배들이 선생님을 굉장히 포용적인 성격이고 베푸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얼핏 보면 태몽에 호랑이가 나온다는 것은 굉장히 도전적 인간형이라는 것인데, 포기하는 법을 배운 시인이 되신 이유나 어릴 적 어머니에 대한 기억 같은 것을 듣고 싶습니다.

 

이재훈 : 태몽은 실제 어머니에게서 들은 것이고요. 아마 실제 성격과 달리 내면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불덩어리를 끌어안고 사는 거 같아요. 그걸 본 사람들은 몇 없죠. 아마 그래서 시인이 되었겠죠.

 

김성규 : 다른 시인들과 달리 선생님 시에서는 유년에 대한 기억이나 현실에 밀착한 시들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시속에서도 그런 경험들이 얼핏얼핏 드러나고 전면적인 모습은 많이 감추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선생님 시의 방법론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독자로서 많이 궁금합니다. 유년시절이나 성장기는 「서태지 세대」에서 잠깐 나오는데 말씀해주세요.

 

이재훈 : 파란만장했죠. 어릴 때는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와 같은 삶이었다가 머리가 좀 굵어지고 나서는 데미안처럼 성(聖)과 속(俗)을 이리저리 방황했다고 할까요. 하지만 삶의 경험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데 대한 부끄러움이 있어요. 천성적인 성향 같은데 많이 망설이는 것 같아요. 유년시절에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그 시절에 대해 쓴 시들도 많이 있는데 「영월에서 온 편지」라는 시도 있고 다른 시편들도 많지만 시집에는 일부러 넣지 않았습니다.

 

김성규 : 「물에 대한 사소한 변론」이나 「대황하」 연작에서는 물이미지에 대해 많이 나옵니다. 물이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고 폭력적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특히 황하 연작은 무려 11편이나 나옵니다. 연작시가 거대한 서사가 없다면 쓰기가 힘들고 또 「대황하」는 시가 굉장히 역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방법론적인 특성을 보면 어조도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재훈 : 물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고, 그 이미지가 마치 돌풍처럼 제게 왔어요. 누런 황톳물이 굽이치며 제 속으로 출렁였죠. 원래 11편보다 더 많이 썼는데 선별한 거죠. 같은 이미지의 연작시이지만 모두 다른 방식으로 시가 나왔기 때문에 어조도 다르게 나온 걸 거에요.

 

김성규 : 다른 시 「돌」도 물질적 이미지인데요. 이 시를 보면 돌과 달의 유사성에서 시작해 돌이 어머니 같기도 하고 피와 온기를 가진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집니다. 전통 신앙에서 보여지는 임신과 출산에 관여하는 신적 존재, 애니미즘 적이기도 하고, 선생님의 기존 시에서 추구했던 신성성과도 연관돼 보입니다. 마지막에 돌에 머리를 숙이는 장면에서는 어떤 숭고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전봉건 선생님의 돌 연작시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한편의 시가 가진 매력으로써도 감탄한 시입니다.

 

이재훈 : 「돌」이라는 시는 지금보다 앞으로 할 말이 많은 시입니다. 지금 ‘돌’에 관한 연작시를 쓰고 있습니다. 제목은 각기 다른데 모두 돌에 대해 썼어요. 이미 10편 넘게 썼습니다. 돌은 언제든지 우리의 발에 채이지만 가장 무한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물질입니다. 돌의 기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죠. 가장 성스러운 존재였다가 가장 희화하는 존재이기도 해요. 돌을 숭배하기도 하지만, ‘돌대가리’라고 놀리기도 하죠. 전봉건 선생의 돌 연작도 제가 좋아하는 시편들이죠. 이미 많은 시인들이 돌에 대해 썼지만 저는 다른 방식으로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성규 : 자서의 마지막 구절에서 선생님을 방황하게 만들 수많은 것들과 고독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방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곧 문학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을 것 같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이제 내 바람은 멋있게 늙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혹시 다음 시집의 계획이나 앞으로의 바람 같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재훈 : 말 그대로 멋있게 늙는 게 바람이구요. 때가 되면 나오겠지만 세 번째 시집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사진을 곁들인 산문집도 한 권 내고 싶고요. 눈 오는 날 창밖을 보며 아주 천천히 따뜻한 정종 한잔 할 수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어요.

 

김성규 : 사진까지 곁들인 산문집이라면 좀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산문집이 기대됩니다. 세 번째 시집 출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든 정종 한잔 이라면 열일 제쳐놓고 나오겠습니다. 오늘 만남 즐거웠습니다.

 

이재훈 : 예, 김성규 시인도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쓰길 기대하겠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도시의 빌딩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불빛들, 어디선가 외팔이 소년이 “천사와 함께 비탄의 노래를 부르는” “아름다운 시간”(「연옥의 산」)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재훈 시인은 지금까지 두 권의 시집을 냈다.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2005), 『명왕성 되다』(2011)는 한국 시에 이제까지 부족했던 신성함과 절대성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1998년에 등단했으니 그동안 출간한 두 권의 시집은 과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발표작들을 엄선해 뽑아놓은 시집 속엔 침묵 속에서 발화하는 시의 언어들이 행간에 심겨져있다. 속된 세계에서 신성한 언어를 길어올리려는 그의 과업은 속도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무모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모든 허공과 모든 공허 속에서 이는 바람을 혼자 듣고 있는지 모른다.

 

_ <시향>, 2014년 봄호.

 


 

이재훈 : 1972년 강원도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저서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부재의 수사학』,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다.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김성규 : 1977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너는 잘못 날아왔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가 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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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옥의 집

시시각각 2014. 3. 31. 22:58

동옥의 집에서 조촐한 파티를 했다.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 동옥의 신혼집이다.

지하에 있는 동옥의 공부방을 찍지 못해 아쉽다.

이날의 메뉴는 다음과 같다.

쭈꾸미, 호박죽, 해파리냉채, 홍어무침, 갓김치, 간장게장, 꼬막, 낙지죽, 생굴, 월남쌈, 숯불 삼겹살.

동옥의 집에서는 그냥 있는 반찬이란다.

옥의 짝 여의씨에게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즐거웠을까. 더 말해 무엇하랴.

신동옥 부부, 박장호, 서대경과 함께 했다.
지난 3월의 어느 토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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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파

시시각각 2014. 3. 31. 22:44

일명 <약수파> 모임이다.

약수에서 만나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엔 이곳이 각자 집에서의 중간 지점이었다.

약수역 근처 <스코어>.

올해 1월의 어느 날이다.

무엇 때문에 모였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본 지 오래된 것 같아 만난 것이겠지.
다트 배틀은 오은의 완승으로 끝남.

참, 이후 현승형은 쌍둥이를 출산했다.^^

 

정재학, 오은, 이재훈, 이현승, 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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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와 정신적 삶, 그리고 서정시

 

 

-조강석

 

 

 

 

 

 

1.

 

대도시의 성립은 단지 물적 기반의 확립과 경제 시스템의 정착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앙리 르페브르가 강조했듯이 공간은 정신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사회적인 것, 역사적인 것 등을 연결하고 발견, 생산, 창조의 과정을 재구성함으로써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공간은 “할당된 장소와 위치 안에서 무수히 많은 교차를 내포”하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간의 문제는 물적 토대, 지식과 담론의 생산, 그리고 공간의 재현 양태 모두와 결부된다. 대도시의 성립이 예술에 있어 새로운 의미지평을 획득하게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도시의 대두와 성립은 단지 물리적 차원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공간을 표상하고 재현하는 구성원들의 의식 차원의 문제와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즉, 대도시는 물리적으로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구획하고 정초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 삶의 영역에서도 새로운 방식의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아마도 이와 관련하여 게오르그 짐멜의 논의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막스 베버, 에밀 뒤르켐 등이 근대 세계에서 대도시의 성립과 관련된 역사적 계기와 도시의 발달 조건 등에 대해 논했지만 대도시의 발달이 인간의 내면적-정신적 삶과 일상적 상호작용에 대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짐멜의 글 「대도시와 정신적 삶」이 우선적으로 주목에 값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대목을 눈여겨보자.

 

한편으로는 관심을 끄는 자극들이 도처에서 밀려오고 시간과 의식의 충전을 통해 거의 움직이지 않아도 마치 강물에 휩쓸려가듯이 저절로 떠밀려가는 삶을 살게 되면서 개인의 삶은 엄청나게 편리해졌다. 다른 한편으로 삶은 점점 더 개인적 색채나 비교불가능한 특성을 몰아내는 비인격적 내용과 제공물로 채워진다. 그 결과 누군가를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 혹은 자신만을 위한 경우라도 개인적인 것을 과장할 필요성이 생긴다.

 

인용된 게오르그 짐멜의 언급에서 흥미로운 것은 대도시가 개인의 의식의 영역에서 “도처에서 밀려오”는 자극들을 끊임없이 생산한다는 대목이다. 생활의 영역에서 개인의 삶은 더욱 편리해졌지만 한편으로 정신적 삶의 영역은 “비인격적 내용과 제공물”들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이 짐멜의 설명이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급속도로 이미지들이 교체되면서 밀려오거나,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포착되는 내용의 변화가 급격하거나 밀려드는 인상이 전혀 예기치 못한 경우에 더 큰 부담을 갖는다. 이러한 심리적 조건은 대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나 빠르고 다양한 경제적-직업적 및 사회적 삶을 경험할 때 발생한다. 따라서 정신적 삶의 감각적 기반, 다시 말해 차이에 입각한 우리 존재의 속성 때문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의식의 총량을 비교해보면, 대도시는 소도시나 시골의 삶과 커다란 차이를 보여준다. 후자에서는 감각적-정신적 생활의 리듬이 더 느리면서 더 익숙하고 더 평탄하게 흘러간다.

 

그러니까, “비인격적 내용과 제공물”로 가득찬 자극들이 “정신적 삶의 감각적 기반”을 형성하는 감각자료들이 됨에 따라 주체는 한편으로는 신경과민에, 또 한편으로는 둔감함에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짐멜 전문가 김덕영은 이에 대해 이 둔감함이, 지젝의 규정에 따르면 “사물의 차이에 대한 마비증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둔감함은 쉴 새 없이 주어지는 자극들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로서 주체의 내면에 사물의 차이에 대한 마비증세가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모든 개별 가치들을 교환가치로 환원시키는 화폐의 유통이 사물들 고유의 가치에 대한 계량보다 우선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런 양상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신경과민과 둔감함이라는 양가적 심리를 동시에 지닌 주체들은 무수한 자극과 만남들에 대해 매번 전면적인 내면적 반응을 보이는 것을 피하고 자신의 속내를 감춤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한다는 것이 짐멜의 후속 설명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짐멜은 대도시에서의 정신적 삶과 관련하여 양적 개인주의와 질적 개인주의를 구분하여 설명한다. 짐멜에 의하면 양적 개인주의란 18세기에 발생한 것으로 “자연이 불어넣었지만 사회나 역사에 의해 훼손될 수 있는 인류의 고상한 본질”을 회복하려는 개인주의 즉, 종교적 억압과 같이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구속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려는 개인주의를 의미한다. 반면, 질적 개인주의란 “역사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개인들이 각기 남과 구분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이상”으로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질적 유일성과 대체 불가능성이라는 개인적 가치를 유지하려는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짐멜은 대도시에서 개인의 정신적 삶이 결국 이 두 개의 개인주의의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혹은 “투쟁과 분규”를 통해 형성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2.

 

게오르그 짐멜의 설명은 대도시에서 서정시의 역할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대도시가 감각적 자극의 끊임없는 흐름을 낳고 그에 따라 정신적 삶의 영역에서 개개인은 둔감함과 신경과민에 내몰리면서도 고유성을 유지하는 질적 개인으로 남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된다면, 그것은 대도시와 정신적 삶의 영역에서 서정시가 할 일이 적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서정시란 사물들을 익명의 교환가치에 의해 환원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사물 각각의 고유성에 대한 구체적 관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서정시에 대한 오래된 규정 중 하나가 ‘서정시는 사물의 꿈이다’라는 것을 상기해 보라. 또한, 감각적 자극들에 매몰되거나 이에 휩쓸려 신경과민과 둔감함에 치우지는 대신 넘치는 자극들을 수용하여 고유한 내적 반응을 생성시키고 이를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주체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것이 서정시이기 때문이다. 둔감함대신 일사일언(一事一言)을, 교환과 환원대신, 질적 고유성을 택하는 것이 대도시의 자극에 의해 계발되면서도 동시에 정신적 삶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질적 개인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시적 주체의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의 대도시 형성 경험에 나타난 문학적 표상과 재현의 예를 직접 드는 것이 긴 설명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조선에 근대적 도시가 본격적으로 성립되던 1930년대의 한 정신 풍경의 지형도를 다음과 같은 예를 통해서 단적으로 일람할 수 있을 것이다.

 

 

(1)

가로수(街路樹) 이팔마다 발발(潑潑)하기 물고기 같고 유월(六月)초승 하늘아래 밋밋한 고층건축(高層建築)들은 삼(杉)나무 냄새를 풍긴다 ( …중략)

풀포기가 없어도 종달새가 나려오지 않어도 좋은, 푹신하고 판판하고 만만한 나의 유목장(遊牧場) 아스팔트!

 -정지용, 「아스팔트」 중에서

 

 

(2)

그러나―왜 나는 미끈하게 솟아 있는 近代建築의 위용을 보면서 먼저 鐵筋鐵骨, 시멘트와 細砂, 이것부터 선뜩하니 감응하느냐는 말이다

 

(… …중략)

 

나는 오늘 大悟한 바 있어 美文을 避하고 絶勝의 風光을 隔하여 蕭條하게 往生하는 것이며 宿命의 슬픈 透視癖은 깨끗이 벗어 놓고 溫雅慫慂, 외로우나마 따뜻한 그늘 안에서 失命하는 것이다.

                    

- 이상, 「종생기」 중에서

 

 

(3)

서울의 이곳저곳에 뛰어난 근대적 <데파트멘트>의 출현은 1931년도의 大京城의 주름잡힌 얼굴 위에 假裝하고 나타난 <近代>의 <메이크업>이 아니고 무엇일까(… … 중략) 이 <메이크업>한 <메피스트>의 늙은이가 온갖 근대적 시설과 機構感覺으로써 <젊음>을 꾸미고 황폐한 이 도시의 거리에 다리를 버리고 저물어가는 황혼의 하늘에 노을을 등지고 급격한 각도의 직선을 도시의 상공에 뚜렷하게 浮彫하고 있다.

밤 하늘을 채색하는 찬란한 <일류미네이션>의 人目을 현혹케 하는 변화―수백의 눈을 거리로 향하여 버리고 있는 들창―.

-김기림, 「都市風景 1․2」 중에서

 

 

1930년대에 이르러 경성은 완연하게 근대적 도시의 면모를 지니게 된다. 통계에 따르면, 1928년 현재 경성의 인구는 약 31만 5천이었으나 1934년에는 38만 2천 명에 이르며 1941년에는 무려 97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완연한 성장이 아닐 수 없다. 근대적 도시가 형성됨에 따라 지식인들의 도시 문물 체험은 일상적이면서 동시에 문제적인 것이 된다. 많은 작가들이 소위 ‘산책자’로서 도시의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새로운 문물에서 ‘신기성’을 발견하고 동시에 새롭게 도입된 근대 문물이 자극하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따라 부유하는 군중의 모습을 발견했고 이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관견기로만 간주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대도시의 넘쳐나는 감각적 자극들의 홍수 속에서 사태를 고유한 방식으로 파악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당대의 대표적 모더니스트로 꼽히는 정지용, 김기림, 이상 등은 근대 도시 문물의 상징인 고층 건물에 대한 각기 다른 인상을 기록한 글들을 남기고 있는데 이 글들은 이들이 속도감 있게 육박해오는 근대와 근대적 도시에 대해 보여준 인식의 차이와 그에 따른 미학적 태도의 차이를, 그리고 그 결과 각자의 고유성이 발원하는 지점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지용은 근대 문물의 상징인 낯선 고층건물에서 ‘杉(삼)나무 냄새’를 느끼고 아스팔트에서 유목장을 상기한다. 이는 낯설고 새로운 것을 친숙한 감각을 통해 전유하는 정지용 특유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근대 도시의 넘쳐나는 자극들을 감성적으로 전유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벼리는 것이 정지용의 방식이다. 반면 이상은 낯선 자극을 감성적으로 전유하여 친숙한 이미지들의 결합체로 변환시키는 대신 정공법을 택한다. 그는 근대건축의 위용을 보면서 무엇보다 먼저 철근철골, 시멘트와 세사 등을 “선뜩하니 감응”한다고 말하며 이를 스스로 ‘슬픈 투시벽’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근대와 근대 도시에서의 삶을 해부학적 시선으로 투시하는 것이 이상의 방식이다. 김기림의 태도는 또 다르다. 각기 근대와 근대 도시의 감각적 전유와 수학적 환원으로 환언될 수 있는 정지용과 이상의 태도와 달리 그는 고층 건물의 외관에서 ‘메이크업한 표정’을 읽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근대 도시의 물리적 알리바이로부터 매혹과 불안이라는 양가적 정서를 느낀다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일종의 신경증이라고 표현될 만한 성질의 것이다. 근대 도시의 산물을 익숙한 감각에 의해 치환하고 전유하거나 대도시라는 괴물을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해부하고 포획하는 태도와 달리 김기림은 근대 도시가 지시하는 숨은 기표를 더듬으며 때론 그것을 매혹으로 때론 그것을 불안으로 풀어내고 있다. 김기림의 작품에 나타나는 근대도시에 대한 양가적 태도가 이런 신경증적 태도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1930년대에 대도시가 본격적으로 성립됨에 따라 작가들은 그것이 주는 새로운 감각적 자극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이에 대해 고유한 대응을 해나갈 것인가를 각자의 방식으로 모색했으며 그 귀결이 그들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3.

그렇다면 최근의 사정은 어떠한가를 간략히 살펴보기 위해 최근의 시 두 편을 더 읽어 보자.

 

(1)

도시는 수많은 유리알을 낳는다

 

도시의 유리체를 통과한 것들은

유리체 통과의 꿈을 꾸지 않는 것들과 함께 있지만

유리체를 통과하지 않은 것들과 같지 않다

아직도 뒹굴며 꿈꿀 뿐이다.

 

돌아온 것들은 죽고 완성된 것은 훼손된다

꿈을 통과하지 않은 것들만 밖에서 천예(天倪)의 숨을

쉰다. 유리체는 녹화되지 않고 영원히 비어 있다

구름을 향해 그들은 불구의 몸으로

가지를 뻗는다

 

이미 사라진 것의 남은 존재들은

지나간 거리에 긴 그림자를 끌기 시작한다

오늘도 혼돈은 눈을 감고, 길을 차단하고 돌아와

깨어나지 않는 유리알 속으로 사라진다

-고형렬, 「유리알 도시의 빌딩 속에서 - 고귀한 삶을 빙자한 숲의 은유」 전문

 

 

(2)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뱉어 낸다. 눈빛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 잊혀진 얼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풍경은 서서히 물드는 것. 그리운 얼굴이 푸른 멍으로 잠시 물들다 노란 불빛으로 사라진다. 나는 단조의 노래를 듣는다.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소리. 단추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 내 입술과 몸에도 푸른 멍자국이 핀다. 아무리 하품을 해도 피로하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모두 신성한 모험이었다는 거짓된 소문들. 내 속의 거대한 허무로 걸어 들어 갈 자신이 없다. 지하철 2호선의 문이 활짝 열린다.

- 이재훈, 「명왕성 되다」 전문

 

 

(1)이 이미 경험의 본원적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로 자리 잡은 도시를 단적으로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라면 (2)는 도시에서 질적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겪어내는 정신의 운동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우선 인용(1)을 보자.

유리는 바깥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다른 세계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스스로 차단막으로 기능한다. 이 이미지는 도시의 심리적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는 얼핏 보아 유리와 숲의 대립 구조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도시 자체가 이미 매혹과 환멸, 방랑과 귀환, 순수와 퇴화의 심리 구조로 축조된 것임을 적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도시는 매혹으로도 환멸로도 펼쳐질 수 있는 감각적 자료들을 끊임없이 생산하여 주체의 감성에 기입한다. 넘치는 자극들로 인해 익명성과 은닉의 편안함 속으로 퇴거하는 것도, 넘치는 자극들을 수용하여 질적 개인으로 재탄생 하는 것도 모두 가능하다. 이처럼 서정시가 자극의 감성적 전유과 감각적 표현을 통해 도시인의 정신적 삶을 개변시킬 수 있는 격려가 될 수 있는 여지는 항상 도시가 낳은 피로감을 토로하는 것을 반복할 위험과 동시에 존재한다. 인용(2)를 보라.

이 시의 배경이 되는 것은 출퇴근길의 2호선 지하철이다. 이 시의 주체는 지금 익명과 소외, 그리고 기계적 규칙성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이것이야말로 도시 생활자의 정신적 삶에 대한 노골적 은유가 아닐 수 없다.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생(生)”, 모든 대면 접촉이 시간을 두고 익명성의 궁륭이 되는 부박한 삶의 한 가운데에서, 게오르그 짐멜식으로 표현하자면 연속적인 익명적 자극이 끊임없이 주어지는 도시적 삶의 한 가운데에서 이 시의 주체는 질적 개인으로의 탄생을 꿈꾼다.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하고 묻는 것은 삶의 고유성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열망의 불씨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심회는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는 말을 통해 역설적으로 다시 한 번 표현된다. 폭풍이란 바로 기계적 삶의 리듬을 뒤흔들 파국이 아니겠는가? 일상에 한 번 생긴 파국은 언제나 치명적이다. 그것은 항상 이미 생긴 파국이기 때문이다.

시인 김수영은 “도시의 피로”를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새로운 삶의 씨를 틔우는 텃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아니, 그 가능성을 믿으며 도시의 피로, 바로 거기로부터 삶의 새로운 지평이 발원하기를 열망했다. 신경과민과 둔감함, 그리고 환원의 피로가 도시의 것이라면 새로운 감각이 탄생하고 피로로부터 신세계로의 발원을 가능하게 하는 씨앗을 품고 있는 것도 도시이다. 서정시는 토로하고 전유하고 창조하고 싹 틔운다. 갑을 시대에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 다시 한 번 필요한 까닭은 우리가 누구도 양적 보편성으로 환원되는 개성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둔감에 매몰되는 재난에 대해 시만한 방재시스템이 따로 없다. 

 

_ 출처 : <시인수첩>, 2014년 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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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가 있는 궁전

 

 

이재훈

 

 

아버지가 기타를 연주하십니다. 나는 아버지의 다리 밑에 누워 있습니다. 기타에서 떨어지는 마른 고독이 목젖을 열게 합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말들이 우르르 목덜미로 떨어집니다. 말들이 저 밖으로 퍼지지 못하고 등 뒤로 차오릅니다. 나는 말 위에 떠 있고, 아버지는 저 말 속에 계십니다. 내가 뱉어놓은 검은 말 속에서 기타를 연주하십니다. 말이 진화하면 물이 된다지요. 고도로 단련된 연금술인 셈입니다. 허공에 산화되어 사라지는 말을 만들어 냅니다. 그제서야 저는 말을 배웠습니다. 내 말은 이미 물이 되었습니다. 물속에서 기타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버지가 기타를 연주하신 곳은 궁전이었다고 합니다. 그 궁전의 돌계단이 너무 높았지요. 다리가 아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곤 노래 위를 떠다녔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했던 기억의 꽃잎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립니다. 검은 말들이 기타의 현을 먹고 저렇게 아름답게 치장을 하다니. 참 감동스럽습니다.

겨울이 오고 말들이 얼어붙습니다. 저는 도끼로 말들을 내려칩니다. 얼었던 말의 입이 쩍 벌어지고 피가 솟아오릅니다. 아버지, 제 말이 자꾸만 피가 됩니다.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들려옵니다. 등 뒤로 솟는 피가 참 따뜻합니다.

 

-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문학동네) 중에서

 

 


 

 

 

이재훈의 「기타가 있는 궁전」을 읽으면서 어떤 연주가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생각했다. 하나의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여러 사태들을 연쇄적으로 이끌어낼 때, 그 사태는 사건으로 전화된다.

이 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은 아버지의 기타 연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아버지의 연주를 시적 화자는 자주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연주에서 “마른 고독”을 듣게 될 때, 그 연주는 사건으로 전화된다. 저 연주가 “마른 고독”임을 감지하는 순간 시적 화자의 목젖이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여, 열린 목젖은 노래를 불러일으키고 “나는 말 위에 떠 있”게 되며 아버지는 “내가 뱉어놓은 검은 말 속에서 기타를 연주하”시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시적 화자가 부르는 노래의 말이 물로 진화하게 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물과 같이 흐르는 노래는 말의 궁륭을 이룰 수 있게 했던 것이어서, 아버지는 그 궁륭의 궁전에서 연주하시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시적 화자의 노래를 불러일으켰던 것이 아버지가 연주하는 “기타에서 떨어지는 마른 고독”이었음을 상기해본다면, 말이 물로 진화될 수 있었던 것은 고독하게 말라버린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슬픔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그 고독과 슬픔은 어떤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한 사람을 사랑했던기억의 꽃잎들”인 “검은 말들”이 그 죽음을 암시한다. “검은 말들”에 기타의 현을 먹이는 아버지의 연주는 죽어버린 연인에 대한 “기억의 꽃잎들”을 반짝거리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가 “뱉어놓은 검은 말”이란 결국 기타 연주로 현현한 아버지의 검은 말들을 미메시스한 것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교묘하게 시간은 순환되는데, 화자가 자신의 “검은 말”에 아버지를 유폐한 것은 바로 아버지가 연주로 전화시킨 “검은 말들”에 미메시스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의 순환이 가능한 것은, “등 뒤로 솟는 피가 참 따뜻”하다는 문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아버지와 화자가 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들려옵니다”라는 문장에서 암시받을 수 있듯이 저 일련의 사태들은 화자의 기억과 상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암시 말이다.

그래서 “겨울이 오고 말들이 얼어붙”은 것 아니겠는가. 하여, 이재훈 시인에게 시 쓰기란 그 얼었던 말들을 도끼로 내려쳐서 그 말 속의 피―아버지의 피이기도 할―를 솟아오르게 하는 것이다. 말을 피가 되게 하는 시 쓰기는 아버지의 연주처럼 죽은 연인에 대한 기억―“검은 말들”―에 악기―“기타의 현”―를 먹이는 일이기도 할 터, 결국 그것은 현재 얼어붙어 있는 ‘사건’―“마른 고독”을 떨어뜨리는 아버지의 기타 연주-을 다시 기억하여 되찾는 일인 것이다.

- 이성혁(문학평론가)

 

출전 : <시사사>, 2014년 1~2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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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처럼 오련하게 사레들리네

 

 

 

이재훈

 

 

 

 

정말 오랜만에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에게 안부를 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이 어쩔 수 없음이 제 마음을 다시 붙잡습니다. 늘 당신에게 나는 막무가내의 고집쟁이로 비춰졌겠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이 나를 만난 이후로 활짝 웃는 날보다 우울했던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늘 각을 세우고 칼 같은 말들을 내뱉던 시절 말입니다. 문학을 한다는 이유로 한없이 유치하고 철없이 굴었던 시간들이었죠. 하지만 그때도 알고 있었어요. 당신과 내가 얼마 후면 이별할 수도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마 당신이 아니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시작하기도 전에 다 보일 때가 있습니다. 다 보인다고 믿고 있는 자신의 마음처럼 서글픈 일은 없죠. 사랑은 제게 화두와 같은 것입니다. 다른 관념의 외피를 입을 때조차도, 사랑의 일을 돌보는 것은 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어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럴 때 내 영혼의 한계를 발견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게 사랑의 일이라지만, 너무 어렵고 힘이 듭니다.

쓸쓸함을 사랑하는 건 나 자신을 사랑하려고 하는 노력의 하나입니다. 쓸쓸함도 지금 내 모습의 일부이니까. 그때 나는 어떤 꿈이 있었을까요.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막무가내로 바랐던 꿈이었습니다. 당신은 내게 이런 말도 했었죠. “시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그건 범주가 다른 문제라고 말했지만, 당신이 내게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사랑을 잘 몰랐던 겁니다. 에릭 프롬이나 구약의 아가서에 나오는 사랑만이 사랑인 줄 알았던 겁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며, 살아가는 일이며, 함께 옆에서 호흡하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거죠. 내 꿈이 시인이었기에, 자주 시의 동력을 얻기 위해 숨어버렸습니다. 사람살이가 모두 달라서 달팽이의 칩거가 꿈인 자도 있죠. 나는 그때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그때 바라보려 하지 않고 숨어버리려고 했으니까요. 마음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과 같아서, 파릇파릇 당신이 지금 돋아납니다.

아무 것도 몰랐던 시절이라고 하겠습니다. 늘 변죽만 울리다가, 자기비하에 빠지는 편지만 썼던 시절입니다.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은 꼭꼭 숨겨두었던 시절입니다.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촌스러운 거라고 생각한 내가 참 한심합니다. 참 소심했습니다. 자꾸만 삶이 어떤 힘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웠습니다. 일반의 구속과 다른 사랑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빨리 늙고 싶었던 듯도 합니다. 내 마음의 원함이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내게 당신은 위로였습니다. 늘 가장 먼저인 시간에 당신이 있었습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로 아플 때도 먼저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바깥의 바람을 맞고 들어와 헝클어진 머리와 차가워진 몸을 당신의 기억으로 덥혔습니다. 날 방치하고, 몰아세우고, 핍박하던 시간들. 당신을 만난 것은 작은 우연으로 시작되었지만, 당신을 만난 게 우연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 이후로 꽤 오랫동안 궁핍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기도 했죠. 순정이란 것을 당신으로 인해 알았습니다. 늘 수동적이었던 나. 사람의 이성과 감정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일 때 비로소 제 것이 된다는 걸 왜 몰랐을까요. 당신을 통해 어떤 의미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바퀴의 절망과 환희를 돌아 결국 제자리에 서 있을 때, 언제부터 혼자 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누군가 기댈 어깨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언젠가부터 혼자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아마, 당신을 시작으로 천천히 성숙되어갔나 봅니다.

당신이 나를 만나 큰 것들을 버렸다고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그때 당신은 용기를 가진 자였습니다. 나는 무엇을 버렸을까요. 늘 망설였던 것 같아요. 이건 모두 당신을 실패할까봐 두려워서겠죠. 당신을 오래오래 봐야겠다는 설익은 마음으로 그랬을지도. 늘 말줄임표로 끝이 나는 당신에 대한 생각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잊으려했네, 내 가슴에 철쭉마냥 흐드러진 분홍빛 시간을, 저어기 삶의 저쪽에 띄우려했네, 흘러가면 그만이겠지, 한 세월 넘어 河口에 닿으면 분홍으로 물든 물빛, 그 빛깔 기억하면 되겠지, 그의 집 앞, 옷가슴, 덕적덕적 낀 욕망을, 백수광부처럼 노래하며 떠나 보내려했네, 그러나, 내 가슴 아직 고여 있네, 썩으면 어떡하나, 물가로만 빙빙 도는, 내 속 수면 위에 떠서 자맥질하는······ 그 철쭉 그만 삼켜버렸네, 어떡하나 내 사랑, 도근도근 내 사랑, 나 몰랐네, 빛 좋은 철쭉, 먹으면 죽는다는 전설을, 아아 사레들리네, 꿈처럼 오련하게, 사레들리네

― 「강」 전문

 

나에게 사랑시는 없습니다. 사랑으로 가는 길목의 지난함만이 있을 뿐. 사랑이라고, 첫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사레들릴 것 같습니다. 철쭉은 아름다운 꽃이지만 먹어서는 안 되는 꽃입니다. 철쭉의 운명과 분홍 빛깔의 아름다움이 내 사랑의 이미지입니다. 먹으면 죽는다는 전설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사랑을 꿈꾸었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네요. 다만 당신의 빛깔과 생각하면 떠오르는 맛과 자꾸 사레들어 고개를 돌려야했던 풍경만이 선명합니다.

사실 내게는 당신이 참 낯선 경우였습니다. 애매함의 경계 위에서 위태위태하게 걷고 있는 시간들이. 터무니없이 허둥댔던 그 긴 밤의 시간들이. 바보처럼, 답답하게, 깊은 망설임의 안개 속에서 앞을 못보고 발걸음치던 시간들이. 다만, 조금 늦거나, 조금 빨랐을 뿐이라고 자위했습니다. 당신 눈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보였다고 했죠. 당신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한 아련함과 불편함 때문에 복잡한 심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내게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이었죠. 그런 게 바보 같았나요? 지금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당신을 만나겠다는 미련한 생각은 안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당신을 볼 수 없지만, 그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봄철 아지랑이 올라오는 긴 흙길을 함께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란히 걷지 못하고, 손 잡아주지 못하고 자꾸 뒤만 돌아보았던 그때. 그 시간이 있음으로 사랑을 조금 엿보았던 것 같습니다. 부디, 행복하기만을 기도하겠습니다.

재훈

 

_ 출처 바로가기 :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 - 내 생애 최고의 '사랑 고백'을 꿈꾸는 그대에게>, 곰, 2013, 14,000원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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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사전 - 잎

산문 2013. 12. 11. 13:10

 

 

 

이재훈

 

 

 

 

버려진 것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쓸쓸한 존재들이 스멀스멀 꿈틀거린다. 허물어지고 홀로된 존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서럽게 아름답다. 이런 아름다움은 사람에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잎은 아름답다. 잎이 더 아름다우려면 버려져야 한다. 버려진 것들의 아름다움을 잎이 가장 완벽하게 증거한다.

잎은 꽃과 나무에 떨어질 듯 들러붙어 한 계절을 난다. 초록의 빛깔로 자신의 청춘을 온힘으로 뒤흔든다. 초록의 몸이었을 때 사람들은 그 몸의 숨을 마신다. 청춘의 숨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청춘의 숨처럼 온몸을 차오르게 하는 게 있을까.

잎은 소멸을 증언한다. 소멸의 순간이 아름답다는 역설을 증언한다. 스러져가는 존재에 환호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아직 내 차례는 아니라는 안도감이겠지. 모든 젊음은 시든 운명을 타고 태어난 것. 모든 청춘은 지는 운명을 지닌다. 잎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잎은 저마다 아름답게 늙는 법을 안다. 붉게 늙고 노랗게 늙고 적갈색으로 늙는다. 사람들은 몸에 붙어 있을 때보다 제 몸으로부터 떨어진 잎에 관심을 갖는다. 이탈된 존재에 대한 관심은 본능적인 것일까. 이탈된 나를 본다. 이탈된 우리를 본다. 이탈된 가방. 이탈된 책. 이탈된 영혼. 이탈된 사랑. 주변엔 모두 이탈자들뿐이다. 국적 없는 자들은 고독하고 쓸쓸하겠지만, 그들에겐 소용 있는 고독이 있지 않은가. 아무것에도 소속되지 않고 유일하게 혼자이고 싶다는 철없는 객기가 순간순간 불쑥 일어난다.

쓸려 어딘가로 버려지기 전. 잎은 노쇠해져가는 자신의 미학을 가장 완벽히 보여준다. 하지만 그 소멸의 말로는 잔인하게 버려지는 것이다. 빗자루로 포대자루로 리어카로 트럭으로 쓸리고 실려 버려진다. 태워지고 분해되고 땅속으로 파묻힌다. 마치 아우슈비츠처럼. 마치 신자유주의 시민들처럼.

그러나 잎을 찬양하지 말 것. 소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말 것. 찬양받고 감탄되는 것들은 모두 가짜이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좋고 네가 좋으면 그뿐인 것이다.

 

파편

 

파편의 아름다움은 아마 모여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에서 시작할 것이다. 잎은 저 홀로 있을 때 빛나지만, 모여 있을 때는 거리의 색채가 보여줄 수 있는 충일감 때문에 황홀하다. 초록의 시절. 잎은 서로 손을 잡고 제 어미의 몸을 간절히 부여잡는다. 세상에 간절한 것만큼 마음 아리는 게 있을까.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잎은 절대로 그 손을 놓지 않는다. 간절한 마음이 잎의 몸을 초록으로 물들게 했을 것이다. 목에 굵은 힘줄이 불거져 초록으로 온몸을 새겼을 것이다.

간절함과는 상관없이 잎이 제 어미와 떨어져야 할 때. 잎은 제 몸을 바람에 내맡긴다. 제 터전이 아닌 어딘가로 잎은 날아간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미지를 향해 잎은 제 몸을 맡긴다. 헤어지고 떨어지고 슬퍼하는 게 추앙받는 계절. 온몸과 마음이 파편으로 남아도 아름답다고 말하는 계절. 붙들었던 것을 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을 배우는 계절. 가을은 잎의 계절이다. 잎은 가을에 완성된다.

 

기다림

 

벤치에 떨어진 잎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아마 생의 마지막 기다림이겠지. 어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손을 잡고 벤치에 앉을 때, 그 잎은 치워질 것이다. 기다림은 그런 것이겠지. 바깥으로 치워질지 알면서도 설레는 시간이 기다림이겠지.

잎 하나 책갈피에 꽂아 넣고 짧은 기억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본다. 꽃잎은 맑은 물에 띄워 차로 마시기도 한다. 잎은 제 몸이 바짝 말려진 뒤에도 기다림의 시간을 견딘다. 화석조차도, 말려진 몸조차도 쓸모 있는 잎의 오지랖. 말린 잎의 몸에선 향기가 난다. 스스로 욕망하지 못하고 순응적으로 호흡하며 살아온 향. 물과 공기만으로 제 몸을 삼투한 향. 기다림에도 향기가 있다면 이런 내음이 아닐까.

 

태초

 

동물의 노쇠는 누추한데 왜 식물들의 노쇠는 찬란할까. 가장 성실한 생명의 열매였던 잎은 다시 땅의 입으로 들어간다. 마치 그곳이 잎의 기원이라는 듯이. 시(詩)는 잎을 기록하지 않는다. 잎의 운명과 함께하는 것뿐이다.

 

 

_ <문예중앙>, 2013년 겨울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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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송년회

시시각각 2013. 12. 5. 11:22

송년회 참 빨리 돌아오는구나.

이렇게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는구나.

나이를 더 먹는구나. 이제 더 철없이 살리라.

현대시 시사사 송년회를 지난 금요일에 했다.

오다가다 사진 몇 장 찍혔다.

가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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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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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銅鏡)

 

깨진 기왓장을 주워 주머니에 넣으면, 그 속에서 비닐에 덮여 자고 있는 여인을 볼 수 있다. 콧대와 턱이 뿌연 비닐과 뒤엉켜, 툭 건드리면 바삭 부서질 것 같다. 팔딱팔딱, 손가락 사이로 심장 소리가 뛰어올랐다. 모든 소리들이 긴 줄에 매달려 그네를 탔다. 녹색의 밤.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었던 밤. 나는 단지, 일생을 꿈꾸었을 뿐인데. 챙, 소리에 놀라 보니 사방에 깨진 파편들이 반짝였다. 깜박깜박, 수많은 눈동자가 길을 물었다. 그네는 삐걱거리며 보랏빛 옷만 남겼다. 깊은 숲길에 안개가 뿌옇고, 여인은 안개를 덮었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 천년을 건너온 어떤 눈동자에 손을 베인다. 스윽.

- 이재훈 (1972~ )

 


△ 시는 언어 속에 내장된 사유가 좀 더 극단적으로 외침이 된 형태이다. 이 때문에 몇몇 시인들은 언어가 생성되기 이전에 감각된 어떤 질감을 전략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그것을 초능력으로 비한다면,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일 수 있겠다. 사이코메트리란 사물 속에 잠재되어 있는 혼을 계측하여 해석하는 능력인데, 대개 이재훈의 시가 성립되는 방식이 그렇다.

 


깨진 기왓장을 자신의 주머니 속에 취했을 뿐인데 발화자는 기왓장과 함께 살다간 여인을 손의 촉감만으로 재구성한다. 손끝으로 뭉개진 얼굴을 지나 그네를 타고 노니는 소리의 운동성을 느끼고 잃어버린 신발, 보랏빛 옷의 감촉까지. 여인을 둘러싼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주머니 속에서 종합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오래된 거울에서 살다간 이미 지워져버린 삶의 기록들이자 주변의 역사들이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생애의 파편들이다.

 

그가 자주 태초의 시공간을 자신의 언어 속에 안착시키고, 소멸해간 것들을 호명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근대 시스템이 가진 폭력을 자신의 초능력으로 일격에 무너뜨리고, 또 회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아픈 줄도 모르고 살다가 그의 시를 읽는다. 그에게는 시원(始原)이 있고, 자주 나의 손을 베이게 해 왜 아픈지 또 질문하게 하는 것이다.

 

 

 

 

 

 

 

 

 

 

 

 

 

*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242025165&code=990100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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