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도에서

시시각각 2006. 9. 2. 23:42


잔뜩 흐린 날이었습니다.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바닷가를 향해 달렸습니다.
걱정이 많으면 위안이라는 덤을 얻게 됩니다.
바다와 하늘은 검회색의 색다른 옷을 입고 있었지만
다른 어느 때보다 매혹적이었습니다.
햇살이 잠시 따가워질 때
갯벌 위에서 오래도록 머물렀습니다.
잠시의 체험이 어떤 이에게는 진지한 생활이라는 걸 깨달을 때
부끄러워집니다.
그날은 내내 무엇엔가 홀린 듯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소나기가 내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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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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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령_ 시인





만난 지 몇 년인가. 어쩌다 만났는가. 생각해보네. 구체적 답을 요要하기란 옹색해지는 법, 허나 인색함 그 자체가 우리가 만났던 그때 우리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네. 왜 우리들은 만나더라도 대로의 환한 빛 뒤편, 허름한 구석으로 스며들어 만나곤 했을까. 싼 곳을 찾느라 그런다 했지만 그것보단 어쩌면 우리 마음의 옹색함 저편 후미진 곳에 도사리고 있는 음습한 살기를 드러내 놓는 것이 부담스러워서는 아니었을까. 자네의 말대로 ‘어떤 폐부의 한 골짜기를 기억’한다는 것이 결국 시라면, 그 기억을 우리는 서로 들켜야만 하는 옹색함을 만날 때마다 견뎌야 되지 않았겠는가. 환한 대로를 걷기에는 너무 불편한 몸인 ‘자존심’을 가지고 그때 자네는 그리고 우리는 “구원의 문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기 망설여지게 하는” 시를 말했었던가. 우리 사이에 놓여있던 술들은 외피에 불과한 것. “구원을 욕망하게 하는 에너지”가 되는 시를 통해서 오히려 ‘구원의 문’이 단단히 잠겨 있음을 거듭 확인하는 곤혹스러움이 우리들이 나누었던 술 안쪽에 도사린 살기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그때 자꾸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졌던 자네를 기억하며, 자네의 시집 후기의 말을 잡고 더듬어 생각해보니 그런 듯 하단 말이네.


이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텨왔다 그러나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뜨개질을 하신다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뜨고 계신다

- 「마루」

자네 촌사람 아닌가. 그러나 얼핏 보면 사람들은 자네를 서울사람으로 착각하기 쉬울 것이네. 물론 서울사람과 시골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라든지, 시골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또 무엇이냐 라든지의 성의 있는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내 말이 무모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내가 볼 때 자네를 서울사람으로 보기 쉬울 듯 허네. 대부분 옷을 조이기보다는 풀어 입되, 정갈하게 풀어 헤쳤으며, 풀어진 곳에 적절히 배치된 안경, 액세서리, 그리고 내 기억엔 언젠가 자네 귀에 반짝이던 귀걸이. 그러나 이런 말은 처음 잠시 잠깐의 인상기일 뿐. 좀더 깊이 보면 그것들이 어쩌면 부유의 흔적일 거라는 생각.  저 강원도 영월에서 시작해 논산을 거쳐 서울에 자리 잡기까지 여정의 흔적일 거라는,  그리고 시 전문 문예지 편집장으로서 자네가 만나야 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또한 부유하는 자들 아니겠는가. 그 만만치 않았을 여정을 자넨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티는” 자로 걸어 온 게 아니었겠는가. 그것이 옷을 풀어 헤쳤으되 산만하지 않은 감각적이되 진지한 자네의 풍모를 만든 게 아니었겠는가.

자 그럼 이쯤에서 내 말을 바꿔야겠네. 자넨 부유하는 자처럼 보이지만 좀더 자세히 보면 자네의 부유엔 중심이 도사리고 있다고. 이별의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는 믿음이,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 올 때 무릎을 꿇고” 어머니가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짜 올린 슬픔이, 그리고 그 힘으로 “어느새 푸른 피가 발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깊은 시간 속을, 자꾸만 걷”(「숲」)는 고집이 자네의 부유 속 중심이라고. 아니 이 말은 너무 내가 고집스럽게 말한 듯하니 다시 사족을 달겠네. 내가 보기엔 그런 것 같다고. 갈수록 무엇은 그렇다고 단언하기엔 내 스스로가 불안해져 가기에. 차라리 조금은 비겁하게 말하는 게 낫겠네.


말 위에서 견디는 삶

그곳엔 조용한 잠도 없었지

열두 밤이 지나자 황도십이궁의 한 모퉁이에

나는 떨어졌지


새벽녘 어머니가 내 머리칼을 만지고 있었지

나는 쭈글해진 어머니 배에 귀를 갖다댔지

말발굽 소리와 활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지

그 큰 어둠을 품고 어머니는 새벽 기도를 가셨지

나는 어머니가 믿는 神의 안부가 궁금해졌지

- 「사수자리」 부분

내가 자네를 처음 볼 때부터 자네의 눈빛은 멀리 있었지. 가끔 자네를 마주칠 때 자넨 아주 멀리서 온 듯한 혼곤한 눈빛이었지. 어디를 갔다 온 것인지. 무엇을 본 것인지. ‘밤이 되면 말을 타’고 달려 자네가 달려가려 한 곳이 어디였는지.

그렇군. ‘신의 안부가 궁금한 자’가 그것을 묻기 위해 ‘말 위에서 견디는 삶’을 사는 자 어찌 ‘조용한 잠’의 안식을 찾을 수 맛볼 수 있었겠는가. 결국 자네의 눈빛은 ‘불면의 눈빛’이었나. 조용한 잠 대신, ‘십자가 없는 어둠’ 속에서 ‘활을 쏘아’대는 고투의 길을 달리는 말로 언어로 가득 찬 불면의 눈빛이 내가 본 자네의 눈빛이었나. 그래서 자네가 본 것은 무엇이었나. 아니네 이러한 질문은 부질없는 것.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는가가 아니라 보려 했다는 것, 보려 한다는 것. 그 자체일 테니.

시 쓰는 자가 문학하는 자가 이 세상 삶에 대한 답을 주는 자는 아니지 않겠는가. 답은 시인보다 훨씬 위대한 존재자의 영역일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네 말대로 다만 그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을 사랑으로 보지 않고, 균열을 균열로 보지 않고 그 위에 주저앉아 사랑을 통해 균열을 균열을 통해 사랑을 그리고 또 다시 거듭, 돌고 도는 해결점 없는 미로를 확인하고 절망하고 자멸해 가는 것. 스스로의 흔적을 말을 지우는 것. 그것이 시 쓰는 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경지 아니겠는가.  

작년 우리는 자네의 결혼식에 갔었지. 시골 교회에서 올려진 자네의 결혼식은 참했고 깊었지. 그 깊고 깊은 속에서 자네의 아름다운 사람이 이젠 자네의 머리칼을 만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신의 안부를 묻기 위해 달려가는 자에게 그 정도의 호사는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나는 자네에게 못된 욕심을 내네. 자네의 ‘불면의 언어’가 더욱 지속되기를. (계간 <시인시각>, 2006년 여름호 게재)



장무령
충남 홍성 출생.

1999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선사시대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다>가 있음.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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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감자바위세요?

산문 2006. 7. 16. 02:40
 

강원도가 고향이세요? 아, 감자바위시네요. 하하.

서로 고향 얘기를 주고 받을 때 흔히 듣는 말이다. 그리곤 강원도 어디어디를 얘기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대부분 놀러다녀 온 이야기다. 설악산이 어떻고 경포대가 어떻고 속초를 위시한 동해안 일대 등의 얘기가 오가면 강원도 얘기를 거의 다 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강원도 사람들을 ‘감자바위’라고 부르는 데에는 ‘촌스러움’이라는 지역적 선입견이 포함되어 있다. 이 촌스러움 때문에 강원도는 관광지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자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산수자연은 도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유혹적인 안식처인가. 그러니까 사람들은 강원도의 촌스러움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도시 사람들이 강원도를 철저하게 소비의 방식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제 내린천이나 영월 동강의 변해가는 모습은 이를 증명해 주는 일들이다. 이제 우리는 강원도의 겉모습이 아니라 강원도의 깊은 마음을 이해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경상도나 전라도, 충청도 사람들처럼 지역적 냄새가 많이 풍기지 않는다.어딜가나 경상도나 전라도 사람들은 금방 표시나는 데 반해 강원도 사람들은 여간해선 잘 알 수가 없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겉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속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한 성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속내 깊은 은근함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추암해수욕장 일출전야(2003)


강원도 ‘감자바위’들은 이름처럼 순박하다. 요즘은 순박하다, 착하다 라는 말이 좋은 말로 들리지 않게 돼버렸지만 강원도 사람들을 표현할 때 가장 적당한 표현이 순박하다는 말일 것이다. 대개 순박한 사람들은 자기표현에 서툴다. 그것은 타인과 자연스럽게 자기 감정을 표현할 일이 적음에서 생기는 쑥스러움 때문이다. 강원도를 다녀온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으로 강원도 사람들은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감정표현이 익숙치 않아서 생기는 오해이다.

감정표현이 서툰 것에는 지리적 특색이 큰 요인 중의 하나이다. 강원도의 북쪽은 함경도와 황해도, 서쪽은 경기도, 남쪽은 충청북도, 경상북도와 접하고 있다. 또한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동서로 양분되고 산악이 많은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세 탓에 지역 간 교통이 빈번하지 않았다.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설악산과 치악산 오대산 등의 험준한 산령이 남북을 길게 막아놓고 있고 이 산맥들이 쳐놓은 가지들 또한 작은 혈관처럼 넓게 뻗쳐 있다. 그래서 강원도 지역은 거의가 산악지형이다. 감자와 옥수수가 많이 나고 고랭지 농작물이 많이 생산되는 것 또한 이런 경우이다.

이러한 지형은 강원도 사람들을 진취적이지 못하고 고여있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미 자연을 정복하지 않고 자연과 순응하며 그 질서대로 사는 것이 생활 습관이 되었기에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강원도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고립되어 있고 고립된 만큼 폐쇄적이다. 또한 바깥의 문화를 흡수하는 데도 늦고 타지역에 대해 먼저 경계심부터 발동한다. 좋게 말하면 지역적인 고유의 색채가 아주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강원도 사람들의 무뚝뚝함은 특유의 사투리 때문에 더 딱딱하게 다가온다. 강원도 사투리는 다른 지역 사투리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영동지역은 서울로의 이주가 잦지 않고 또한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상경하기 때문에 사투리의 원형이 잘 유포되지 않았던 것 같다.

강원도의 사투리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영동지역과 영서지역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영서지역은 오히려 서울의 문화권과 가깝기 때문에 표준어에 가까운 말씨를 쓴다. 그러나 영동지역은 옛부터 태백산맥의 영향으로 중앙과의 교류가 없었으므로 독특한 사투리가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강원도 북부지역이 함경남도와 인접해 있으므로 이쪽의 말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강원도 토박이 사투리를 북한말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원도 사투리로 웃음을 선보인 개그맨 심원철이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선생 김봉두>는 강원도 사투리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이제 강원도 사투리가 전국적인 문화코드가 될 수 있을 날도 멀지 않았다.

감정표현이 서툰 대신 한번 정주면 끝까지 가는 성미가 강원도 사람들이다. 그네들의 정은 타지역 사람들의 정붙임에 비해 유달리 질긴 편이다. 흔히 말하는 남자들의 의리나 여자들의 살가움에 비해 강원도 사람들의 정붙임은 진득한 데가 있다. 한번 정을 붙이면 쉽사리 떨어질 줄 모른다. 그래서 강원도 사람들은 일단 친해지면 뚝배기처럼 은근하고 오래간다. 또한 감정 표현이 서툰 반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다독일 줄 안다. 그 다독인 감정을 소중하게 아끼고 보살필 줄 안다. 강원도 사람들 사이에 큰 싸움이 없는 것 또한 이런 이유이다.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느림의 미학이 속도의 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부면에 걸쳐 떠오르는 시대다. 강원도 사람들의 은근함과 포근함이 이제 빛을 발할 때가 아닌가. 주변에 강원도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 말을 걸어 보면 어떨까. “아, 감자바위세요?”


글 : 이재훈
출처 : WEL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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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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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습니다 | 시인 이재훈

이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텨왔다 그러나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뜨개질을 하신다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뜨고 계신다

이재훈의 시 ‘마루’ 전문


마치 얼굴로 시를 쓰는 듯한 따뜻한 미소의 이재훈 시인

다시 한 해가 저문다…

세월로 치자면 저문다는 것은 일어선다는 말의 프롤로그 정도 될 것이다. 한 해가 가면 예기치 못하는 새해가 다가서므로. 그러나 마치 세월을 역행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월간 문예지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 가는데 옛 모습 그대로 문학의 텐트 속에서 라면을 끊이는 사람들이다. 문예지를 만드는 사람들 중에서 시 전문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더욱 고전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월간 ‘현대시학’과 ‘현대시’의 존재는 가련하면서도 경이롭다. 월간 ‘현대시’를 방문 하려면 이재훈이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 이재훈 시인이 줄곧 수문장과 공장장 노릇을 하다가 첫 시집을 상재했다.

ㅂ ㅊ

반갑습니다.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를 잘 읽었습니다. 우선 첫 시집을 낸 소감을 한 번 듣고 싶군요.

ㅇㅈㅎ

반갑습니다. 저 또한 선생님 시의 애독자인데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집 출간을 계획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먼저 부끄러움이 앞서 앞으로는 어떤 시를 써야 하나, 또 시집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 이제 시집이 한 권 있는 시인이 되었구나, 하는 스스로의 위안도 함께 있었지요.

ㅂ ㅊ

강원도 영월 생인데 언제까지 살았으며 어떤 청소년기를 보냈습니까?

ㅇㅈㅎ

강원도 영월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즈음까지만 살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제천, 횡성, 인제 등 강원도 일대를 옮겨 다니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영월군 하동면 주문리인데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 하여 ‘모운동’이라고 불리워졌습니다. 해발 800미터 가까이 되는 하늘 아래 첫 동네입니다. 원래 화전민들이 살고 있다가 탄광이 개발되면서 탄광촌으로 바뀐 동네였습니다. 부친께서는 그곳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지요. 지금은 폐광된 지 오래되었고, 인적이 드문 고요하고 깊은 산중 동네로 바뀌었습니다. 초등학교 이후로 문경새재를 넘어 경북으로 이사를 왔는데, 아무튼 제 청소년기는 잦은 이사로 늘 낯선 풍경과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로 보냈던 것 같습니다.

ㅂ ㅊ

왜, 어쩌다가 이 자본주의 시대에 시인이 되었습니까?

ㅇㅈㅎ

만약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어 있을까. 좀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 생리적으로 맞기 때문일 거에요. 시를 쓴다는 것이 자본주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겠지요. 독자와의 소통은 자본주의가 매개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반대로 자본주의의 원리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글이 시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ㅂ ㅊ

이번 시집에 도시를 배경으로 한 글이 많이 보입니다. 이시인의 시 속에 나오는 도시와 종교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요.

ㅇㅈㅎ

도시생활은 이십대가 되어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줄곧 읍면 단위의 시골에서만 자랐으니까요. 도시에서의 생활은 제 이십대에 상당한 활력을 주었지만 또한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여전히 도시는 낯선 곳이고, 그러면서 이제 도시가 아니면 불편해하는 제 모습이 여러 가지 시적 감성을 갖게 만드는 겁니다. 종교는 제가 운명적으로 지고가야 하는 십자가 같은 것입니다. 저는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고 모태신앙이지요. 그러니 그냥 자연스럽게 제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ㅂ ㅊ

월간 “현대시”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지요. 이재훈 시인하면 현대시를 떠올릴 정도로 밀착되어 있습니다. 시의 범람 속에 묻혀있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또 상식적인 질문이지만 이시인의 창작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ㅇㅈㅎ

문예지에 근무하고 있으니 문학 활동하는 데 많은 제도적인 도움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잡지에 있다보니 저보다는 다른 시인을 먼저 챙겨야 하고, 잡지에 있다는 이유가 오히려 이러저러한 시선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문학잡지 편집자로서 남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시인’으로 남고 싶다는 것입니다. 시 속에 살고 있어서 때로는 시에서 벗어나고도 싶습니다. 너무 오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시 속에 있어서 시를 바라보는 눈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ㅂ ㅊ

약력을 보니 두 대학에서 강의를 하더군요. 이 자리야 이 시인을 만나는 자리지만 이 시인이 놓인 특별한 위치를 감안해 특별한 것을 좀 물어보지요. 독자들을 위해 한국 시인들의 관심사를 개괄적으로라도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가령 어떤 연령층은 어떤 문제에 관심이 크고 어떤 부류는 어떻게 쓴다 등 말이지요. 아니면 전혀 그런 변별성이 보이지 않던지...

ㅇㅈㅎ

간단히 얘기하기엔 어려움이 있는 질문인데요. 최근 들어 전 세대와 달라진 시적 경향이 뚜렷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세대론적인 문제이기보다는 취향의 문제인 것 같은데, 우선 대중문화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중요한 기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념 시대를 넘어 탈근대를 살고 있는 지금, 시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관심사를 말하기엔 무리입니다. 굳이 세대별로 따진다면 전통의 고양과 새로운 감수성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전통적인 시적 덕목과 가치관을 더 깊이 이어나가려는 관심과, 자본주의의 극점에서 느끼는 정신적 공황을 새로운 자아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말해 볼 수 있습니다.

ㅂ ㅊ

오랜 얘기지만 문학이 독자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대부분이 미디어와 영상물의 탓으로 돌리는데 문학 내부의 문제는 없을까요.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보다 실감나게 느끼는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ㅇㅈㅎ

문학 독자층이 감소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현 출판계의 상황이 이를 가장 잘 말해줍니다. 저는 멀티미디어의 시대에서 본격 문학의 독자수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내의 시간들을 견뎌야만 얻을 수 있는 독서의 경험들을 재밌고 환상적인 멀티미디어가 대체하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히려 문학이 문학 본연의 모습을 가질 때 더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사회를 보면 억압 없는 민주사회에서 문학의 모습은 더 진지하게 오리지널리티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중요한 것은 문학 자체의 형질변화가 아니라 문학을 재가공해서 독자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인프라와 기술의 개발일 것입니다.

ㅂ ㅊ

문단 교유의 폭이 넓겠어요. 주로 어울리는 선배 동료들이 누구인지요. 만나면 뭐 합니까? 이시인 주변의 문화풍토가 궁금하군요.

ㅇㅈㅎ

아무래도 그런 편이겠지요. 지속적으로 어울리는 문인들은 비슷한 또래의 시 쓰는 친구들입니다. 만나면 대개 술 마십니다. 시인 축구단도 있고 하지만 운동도 좋아하지 않고 해서요. 참 요즘은 산엘 자주 다니려고 노력합니다.

ㅂ ㅊ

앞으로 계획이나 가고자 하는 길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ㅇㅈㅎ

계획이 있다면 시를 좀 열심히 쓰고 싶다는 것과 예전엔 다른 장르의 글쓰기에도 열심이었는데 시간을 핑계 삼아 게을렀습니다. 좀 열심히 써보고 싶습니다.

ㅂ ㅊ

마지막으로 근간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으면 두 세권 말씀해 주시지요.

ㅇㅈㅎ시는 여전히 읽고 있고요. 최근에 읽은 소설은 프랑스 작가 미쉘 우엘벡의 [소립자]이구요. 요즘은 신간보다는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강석경, 이승우 등의 작가들과 비교신화학자 조셉 캠벨 등등.

앞글에 문예지 만드는 사람들을 가련하다고 했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들은 하나의 권력이다. 지면이 점점 줄어들면서 권력은 속성을 알게 될 것이다. 내노라 하는 시인들을 상대하면서 터수를 자랑하고 목에 힘을 줄만도 한데 이재훈 시인은 늘 겸손하다. 점잖다. 그의 벗들과 허물없이 지낼 때는 어떨지 모르지만 이방인에게는 항상 따듯한 미소를 보낸다. 마치 얼굴로 시를 쓰는 사람 같다. 이 세상에 그런 시만 나돌아 다닌다면 얼마나 따뜻할까. 돌아서기 전 나눈 악수의 온기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 초겨울이다.


작가 박철
- 60년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과 졸업.
- 87년 『창작과 비평』에 시 <김포> 외 15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을] [새의 全部]
[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등이 있다.
- 97년 『현대문학』에 단편 <조국에 드리는 탑>이 추천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출처|
http://www.booxen.com/book_readers_view.asp?sabo_ho=81&part=3&subpart=1&page=1&seq_no=791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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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의 아들’을 위한 바람의 계보



김태형



첫 시집을 낸 이재훈 시인을 나는 어디엔가 “영원한 꿈의 시민(市民)”이라고 적어놓았다. “불을 타고 오르거나 허공에 발을 내미는”(「공중정원3」) 새로운 공중의 시민이라 했다. 그를 불러 ‘바빌로니아의 후예’라고 한 것은 혼돈의 어원, 저 바벨(Babel)의 도시로부터 그의 언어들이 이제 막 태어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시의 음울한 리듬을 빌어 꿈꾸는 것들은 모두가 그 기원에 도달하려는 슬픈 몸짓이었다.

이십대 후반에 등단한 이후 이재훈 시인은 그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그만의 푸른 언어의 휘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와 나는 거의 나이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의 언어들은 나에게도 예외 없이 낯선 것이었다. 간혹 나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거처했던 집들을 매번 찾아다녔다. 그와 알게 된 이후 그는 세 번 거처를 옮겼다. 그때마다 나는 그의 방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한 번도 혼자 살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그의 삶을 부러워했다. 나는 그의 방이 점차 커지고, 책이 늘어나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의 방은 책으로 가득 쌓여 비좁을 수밖에 없었다. 밤늦게 찾은 손님은 겹겹이 쌓아놓은 책들을 칸막이 삼아 새벽녘 잠시 잠이 들었다가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문 밖을 조금 나서면 대도시의 빌딩숲마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가득했지만 그의 방은 늘 7,80년대쯤의 고전적인 향기가 배어 있었다.

연희동의 자취방으로 늦은 시간 술병을 싸들고 찾아가거나, 꽤 늦은 시간에도 밖으로 불러내어 그와 만났다. 그는 매번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나를 만나러 왔고, 그럴 때면 늘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매캐한 담배 연기 속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는 사이 그도 나처럼 이십대를 건너왔다.

언젠가 평론을 하는 오형엽 선생과 함께 한 자리였는데, 그때 “이재훈 시인은 위아래 20년은 거뜬히 커버한다”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무릎을 쳤다. 이재훈 시인은 그만큼 삶의 폭이 넓고 깊다. 넓고 깊은 자는 또한 고요하고 느리다. 느리고 기다릴 줄 알면서도 늘 바삐 걸음을 옮긴다. 그와 만나면서 알게 된 일이지만, 그는 꽤 많은 곳을 옮겨가며 살아 왔다.

언젠가 정재학 시인이 쓴 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형은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더듬거리며 태어난 동네를 찾고 있었어요. 눈덮인 들판에서 전화도 했었죠. “엄마, 내가 태어난 곳이 어디에요?” 나는 하필 바람과 다투며 지도를 쫓아 들판을 뛰어다녔습니다.”(「편지, 영월에서」) 이 시를 읽으며, 역시 내가 알던 이재훈이구나 생각했었다. 삼각지의 어느 뒷골목 술집에서 지면에 실린 이 시를 함께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순간만큼 시가 살아 꿈틀거리는 때가 어디 또 있을까.

나는 나 자신을 늘 ‘언덕의 아들’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이재훈 시인 역시 이 ‘언덕의 아들’ 계보에 넣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실은 누구나 ‘언덕의 아들’이지만 모두가 이 언덕을 떠나고 없다. ‘언덕의 아들’은 이미 언덕을 잃어버린 아들이지만, 언제나 언덕으로 가고자 하는 아들이다. 이들은 지금 언덕이 사라진 “눈덮인 들판”에 서 있는 자이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바람을 느낄 줄 안다. 늘 바람을 맞고 살기 때문이다. 이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모두가 바람이 어디로 불어 가는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동안 이들은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묵묵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나에게 이재훈 시인을 만나는 일은 어느덧 지극한 시간이 되었다. 그를 안지도 꽤 오래 되었지만 늘 만날 때마다 새롭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참된 사람이다. 그의 시가 그렇고, 그의 삶이 그렇다. 나는 여간해서 옆자리를 잘 안 내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의 성품 앞에서는 언제나 흔쾌히 열려 있는 사람이 되고는 한다.

그가 찾는 바빌로니아의 언덕은 어디에 있는가. 바람에 날리는 지도를 바라보던 그때도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람 속에 지도가 날려간 것이 아니라 정작 그 바람이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아마도 지금쯤 또 다른 바람을 따라가려 할지 모른다. 가던 길을 돌려 어느덧 푸른 지평선을 건너려 할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가던 길을 조금만 더 가보자고 그의 손을 잡는 일뿐이다.



김태형
1970년 서울 출생.
1992년 『현대시세계』 가을호로 등단.
시집 『로큰롤 헤븐』『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


출처 : 계간 [시와세계] 2006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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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광화문 350D 테스트샷 중, 잃어버린 조약돌 Noh가 찍어줌]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임을 줍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늘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생각없이 가다 보면
나는 왜 여기 서 있는가
정말 아무 것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긴 숨을 쉬고
잠시 지나온 것들을 되돌아 봅니다.
그리고 먼 곳에 그리운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내가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잠시 뜨거워질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때 잠시 쉬어 가겠습니다.
작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내 맘대로
구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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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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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언론기사 2006. 2. 14. 15:11

이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텨왔다 그러나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뜨개질을 하신다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뜨고 계신다

-> 출처 : 포스코신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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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의 노래

시詩 2006. 2. 14. 15:01
결별의 노래
― 성배(聖杯)를 찾아서

흰 눈을 만나기 위해
폭염을 견디었는지 모른다
먼 기억으로 터져나오는 울음 소리,
도시의 거리와 거리,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엉켜 태연히 입 맞추는 소리,
이 땅은 풀벌레 소리도 서러움이다
마음이 없는 몸을 질질 끌고
미술관으로 가서 꽃 가득한 정물화를 본다
지지 않는 꽃, 수없이 그리워하고 약속했던 꽃
나는 그림 속의 화려한 상징에만 골몰했다
마음이 없는 몸을 질질 끌고
시위대를 지나고 학교를 지나고
걸음을 멈추게 했던 대형전광판을 지난다
역사도 없고 분노도 없는 권태로운 시간을
홑날로 벼리는 젊은 어깨의 그림자
그림자들이 서로 만나 어둠을 만들고
어둠을 지키기 위해 네온사인이 하나 둘 켜진다

어제의 일이 까마득하다
하룻 밤새
이마 위에 주름이 깊어 눈이 감기고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 친다
차가운 결정(結晶),
그 위에 금빛새가 발자국을 찍고
푸드득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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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날의 기록

시詩 2006. 2. 14. 15:00
쓸쓸한 날의 기록
― 정재학에게


무기력하다 했던가
마지막 술잔을 남겨 놓고
우리가 귀가하는 순간
하늘 아래 어디 쯤에선 꽃이 피었을 거다
꽃을 보고도 그걸 표현할 방법을 몰라
그렇게 헤매었던가 우린 한낱
일렉기타의 음률과 철지난 유행가에
더 감상적이었잖은가
네게도 말했지만
나는 백년의 무명을 견딜 것이다
그렇게 철없이 살리라

더 이상 만질 것도, 들을 것도, 말할 것도 없는 어둠
소주 몇 병 먹고 어둠과 말할 수도 있지만
그만한 자족으로 그 어둠 속
텅 빈 공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옥상 위에 올라가 날아 보자
네 몸이 땅에 떨어져 옆구리가 찢어지고
사람들의 입가에 오르내린다 해도
내가 믿는 예수처럼
그 옆구리를 기억할 수 있을까
어느 요절한 시인처럼
흉흉한 소문 속에 네 아픔이 기억될 수 있을까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실패한 서정시인
서럽고 아름다운 자연은 이미 다 해먹고
남은 상상으로 목울대를 울리는,
이제 우리의 가난도 팔지 못하는,

거울 속에서 내 눈을 보았다
무얼 견디는 지도 모르는
몽롱한 얼굴이 날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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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의 집

시詩 2006. 2. 14. 14:59
햇살의 집


햇살이 술을 마신다. 거리는 방금 목욕을 한 것처럼 뽀얗다. 나는 버스 속에 앉아 술에 취해 이글거리는 햇살을 본다. 한 소녀가 버스에 오르며 묻는다. 이 버스는 천국으로 가나요? 햇살이 일그러지고 사람들이 비틀거린다. 광화문 네거리. 한 복판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 동상이 흠칫 움직인다. 칼자루를 놓고 싶다 후손들아! 꽃잎이 비틀거리며 이글거리는 햇살 속으로 날아간다. 차창 밖으로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사람들이 와 좋아한다. 나도 꽃잎이 되고 싶어요! 아가씨가 황급히 벨을 누른다. 햇살은 집이 없다. 사방 어디를 가도 햇살이 누워 있다. 나는 집 없는 햇살이 시큼한 술내를 풍기며 창가로 살짝 몸을 기대는 것을 보았다. 잠이 온다. 저 햇살에 집을 주고 같이 무너져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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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시詩 2006. 2. 14. 14:58
일식


태양이여,
나는 이 큰 우주를 목놓아 불러본 적 없다
용기도 없이 컴컴한 방에 앉아
창틀에 놓인 꽃병들만 바라봤다
어느 날 나는
태양이여, 불러보고 싶었다
늘 곁불만 쬐며 속으로 옹알거리기만 하며
이 엄살의 통각(痛覺)을 갖게 되었다
태양이여, 부르는 순간
내 항문으로 뱀이 숫진 머리를 들이밀고 왔다
온몸이 뜨거워져서 태양에게 다가가도
뜨겁지 않았다
불타지도 않았다

뱀이 태양을 갉아먹을 때,
하나의 꿈틀거리는 숨이 우주를 갉아먹을 때,
네 소멸이 위대한 미학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순간

어느새 뱀의 뱃속에 태양이 들어가 있다
고요 가운데 입을 열고 들어가
한 몸이 된
뜨거운 잉태

나는 큰소리로 태양이여, 불렀다
뱃속에서 울리는 뜨거운 공명

모든 사위는 어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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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 평원을 떠난 새에 관한 이야기


언제부턴가 새는 날지 않았다. 나스카 평원을 유유히 날아 광대한 상상의 틀까지도 슬쩍슬쩍 엿보던 새가, 날지 않게 되었다. 사연은 있었다. 가벼운 날갯짓, 그림자 아래에서 즐기는 종종걸음의 시간이 지나자, 설움이 찾아 왔다. 새의 부리와 발톱이 꺾이고, 허기가 지면 온 몸이 숯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새는, 투명한 옷을 입고 전생의 시간 앞을 오갔다. 수면을 뛰어오르는 물고기나 굴을 빠져나온 뱀을 낚아챌 때마다 한 생이 투명하게 빛 바래는 순간을 보았다. 새는, 눈이 멀었고 노래를 배웠다.

내 스무 살은 노래였다. 거리에서 배운 노래가 목청으로 흘러나올 때, 사람들은 그것을 먼 이방의 방언이라 여겼다. 천둥소리는 더 크게 들렸고, 몸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단 하나의 권능도 없이 숨소리 없는 거리에 서 있었다. 나는, 가볍게 다른 문을 열 수 있을까. 꿈도 없는 잠을 매일 잘 수 있을까. 내 손가락들이 들러붙어 물갈퀴가 되고 이빨은 사자처럼 송곳니만 사납게 솟아난다. 성 꼭대기에 올라 어둠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새의 등에 올라타고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으며 나스카 평원에 새겨넣은 神의 형상을 한눈으로 보고 싶었다. 나는, 어떤 법을 배웠던가. 노래하는 법 말고는 배운 것이 없다. 눈 먼 한 마리의 새가 내 머리칼 속에서 둥지를 틀고 있었다. 새의 전생은 자유였다고 평원을 돌보던 파수꾼이었다고, 그 새가 법을 배웠다.

법을 배우는 순간, 나는 풀이 되었다.
하늘을 날지 못하고 하늘을 바라보는
풀,

나는 오래 전 풀의 고독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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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시詩 2006. 2. 14. 14:51
순례


맨발로 유리밟는 소리를 듣는다. 유리의 머리가 내 발바닥을 찢는 수런거림을 듣는다. 수행자처럼 온 땅을 모두 밟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땅은 너무 넓어. 내 온기가 기댈 곳은 건물과 건물 사이, 그 사이의 위태로운 희망, 그리고 낯선 꿈들뿐.

내가 밟는 유리의 온기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 뜨거운 감촉. 두꺼운 군살을 비집고 환한 몸으로 날 찾아오는 신비. 유리를 밟으며 축제를 연다. 붉은 포도주가 흐르는 식탁. 얼굴에 분칠을 하고, 혀에 피어싱을 하고, 히피처럼 연기를 피워올린다. 치렁치렁한 푸른 옷을 입고, 방안을 빙빙 돈다. 사각사각 유리가 몸 안에서 춤을 춘다. 두려움은 없다. 정작 두려움은 예언자의 눈, 인디언의 귀, 언고기를 사각거리는 알라스카의 몽골리안을 그리워하는 것. 生의 분노도 잊은 채, 태평하게 먼 이방의 전설을 말하는 내 입술.

맨발로 유리밟는 소리를 듣는다. 유리가 내 몸을 돌고 돌아 검붉은 내장을 모두 만난다면, 늦은 밤 가냘프게 흔들리는 마음까지 싹둑 잘라버린다면, 나는 백치가 되리. 내 몸이 된 유리. 너의 촉감밖에, 소리밖에 모르므로 나는 불구다. 저기 저쪽, 나처럼 맨발로 유리 밟으러 가는 젊음들. 땡볕 아래 꽃들이 붉은 햇살을 게워내고 있다.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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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시詩 2006. 2. 14. 14:49
수선화


한밤중이 되면 내 몸에 수선화가 핀다, 방 안의 모든 소리가 잠을 잘 무렵이면, 내 몸에 꽃씨 앉는 소리가 들린다, 간지러워, 암술과 수술이 살 부비는 소리가 사물거리며 온몸에 둥지를 틀고, 어머 꽃피네, 마른버짐처럼, 간지러운 꽃이 속옷 새로 피어나네, 내 몸에 피는 꽃, 어머 내 몸에 핀 꽃, 나르키소스의 영혼이 노랗게 물든, 수선화가 핀다, 아름다운 내 몸, 노랑 꽃파랑이 쓰다듬으며 어깨에서 가슴을 지나 배꼽으로 핀 꽃과 입맞추고, 시커먼 거웃 사이에도 옹골지게 핀 꽃대 잡는다, 아아, 아 에코가 메아리치네, 아름다운 내 몸, 거울에 비추어, 아아아 에코가 흐느끼네, 내 몸이 하분하분 물기에 젖네, 꽃들이 더펄거리며 시들어가네, 나르키소스여 내 몸에 오지마소서 五慾에 물든 몸 꽃피게 마소서
한밤중이 되면 내 몸에 수선화가 핀다 방 안의 모든 소리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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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2006. 2. 14. 14:48
빌딩나무 숲


그 숲엔 풍경이 없다
나무와 새 온갖 풀벌레가 가득하지만
그들은 소리내지 않는다
사방을 둘러봐도 제자리만 지키고 선
가장 그럴듯한 포즈의 마네킹들
그곳엔 소리가 없다
어머니, 하고 부르면 침묵만 되돌아와
귓가엔 내 목소리만 자욱이 앉아 있다
숲속에서 숨이 막혀 한참을 내달았다
소리를 지르고 실컷 울고는,
그루터기에 앉아 부풀어 오르는 힘줄들을 만졌다
나는 나를 만지고 한없이 그리워져
나무에게로 간다
새에게 말을 건다
자애는 폐허, 라고 되뇌이는 시간들
내 힘줄을 내가 끊어도 고통스럽지 않은 곳,
그곳엔 아무도 없다
있다면, 침묵이 있다
아무도 면회오지 않는 숲에서
나는 이교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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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자리

시詩 2006. 2. 14. 14:46
사수자리


밤이 되면 말을 타러 갔었지
잠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깊은 동굴이었지
따뜻한 물 흐르는 동굴에서
서둘러 어둠을 껴입었지
찰박찰박, 어둠 사이로 붉은 등을 내비치는 탯줄
그 고요의 심지에 불을 당기고
입술을 오므려 휘파람을 불었지
나는 말을 부르는 소리부터 배웠지
탯줄이 사위를 밝히고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나는 편자를 갈고 있었지
등불을 들고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같았지
빛이 어둠을 갉아먹기 시작할 때
하늘에서 별이 하나씩 떨어졌지
말이 내 앞에 와서 가쁜 숨을 고르고 있었지
떨어지는 별에 맞을까 두려워 말에 올라 탔지
어둠 속으로 달렸지
손엔 활이 들려져 있었고
다리가 말의 몸에 심겨졌지
말과 나는 한 몸이 되었지
그제야 예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어둠 속엔 많은 별이 있었지
십자가 없는 어둠,
그 불안한 시간 속에서
별을 보며 내 형상을 기억했지
가끔씩 구름에 가려 별이 안보이면
활을 쏘았지 허공 속에서 비명이 들려왔지
꺼지지 않는 촛불의 위태로움을
말 위에서 견디는 삶
그곳엔 조용한 잠도 없었지
열두 밤이 지나자 황도십이궁의 한 모퉁이에
나는 떨어졌지

새벽녘 어머니가 내 머리칼을 만지고 있었지
나는 쭈글해진 어머니 배에 귀를 갖다 댔지
말발굽 소리와 활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지
그 큰 어둠을 품고 어머니는 새벽기도를 가셨지
나는 어머니가 믿는 神의 안부가 궁금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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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9월 28일 초판 발행
* 121*186|112쪽|7,500원
* ISBN 89-546-0046-8 02810
* 문학동네

1998년 『현대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명료한 이미지와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들을 선보여온 이재훈 시인의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가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총 44편의 시들은 머릿속에 자유로이 떠돌던 혼돈을 지난 기억들에 하나하나 끼워넣는, 독특한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존재의 두려움에 이끌리다
이재훈의 시는 마치 불의 뜨거움을 알고도 그 바알간 빛에 이끌리는 것처럼, 두려움에 대한 내밀한 경험들을 꿈속에 혹은 현실의 어느 곳에 고스란히 드러낸다. “내 영혼이 하루 동안 수십 바퀴의 절망과 환희를 돌아오면, 하얀 꿈이 몇백 년을 지나 내 앞에 멈추곤 한다”(「어느 꿈길」)라고, “밤이 되면 말을 타러 갔었지/잠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는/깊은 동굴이었지”(「사수자리」)라고 고백하는 그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고독한 모습들은 ‘거리’라는 확장된 장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도시의 거리를 걷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내 기억을 훔쳐간 그 거리. 나는 땅바닥에 입술을 갖다대었어. 수많은 발자국들과 친해지고 싶었던 그 거리. 사람들이 뱉어놓은 말들이 거리에 흩날렸지. 말들이 글자가 되고, 무거운 책이 되었어.”(「거리를 훔치다」) 친해지고 싶던 곳이지만 그곳엔 툭 뱉어놓은 말들만이 흩날리고 그것들이 결국 무거운 책이 되어 자신을 힘겹게 만들고 마는 거리. 그 거리를 쏘다닌 발을 부끄럽다고 하는 고독과 나르시시즘에 대한 반성에 대해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그 ‘곤고함’과 ‘견딤’과 ‘비명’ ‘목마름’과 ‘배회’야말로 거리에서의 젊은 날을 함의하는 이재훈의 생의 형식들”이라고 이야기한다.
내면(자신)을 드러내는 또하나의 방법으로서 이재훈은 소리에 집중한다. “한밤중이 되면 내 몸에 수선화가 핀다, 방 안의 모든 소리가 잠을 잘 무렵이면, 내 몸에 꽃씨 앉는 소리가 들린다, (……) 내 몸에 피는 꽃, 어머 내 몸에 핀 꽃, 나르키소스의 영혼이 노랗게 물든, 수선화가 핀다,”(「수선화」)라고 말하는 그는 자기 자신에게, 자신한테서 보여지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몰입하는 나르키소스처럼 자신과 또다른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인다. 소리에서 말과 노래로 한 발자국 나아간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이재훈의 시는 세상에 대한 응시와 관찰 그리고 내면의 ‘신성(神聖)경험’에 대한 고백과 보고이다.

어느 순간, 시가 내게로 왔다
시가 ‘사랑의 대상이었다가 고백의 성소였다가 다시 불안의 자리로 옮겨가면서 여전히, 존재를 옥’죈다고 말하는 이재훈 시인은 자신의 시가 ‘반성’이 아닌 ‘고백’이라고 이야기한다.

‘고백’은 생각 이전에 눈물이 앞서는 경험이다. 상징이 불러일으키는 그 무엇. 그 무엇의 생각. 내게 그것은 ‘흠’으로부터 출발된다. 어쩌면 내 말은 고백이다. 내 말이 간신히 시가 되는 이유는 눈물을 애써 감추기 위해 다른 부족의 동화(童話)를 꿈꾸기 때문이다. 먼 이방의 부족들 속에 들어가 말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꿈이다. 언제나 이곳에서 저곳을 그리워하기만 한다. ―‘시인의 말’ 중에서
어린 시절 말에 서투르고 머뭇거리는 시간조차 견디지 못해 속으로 말을 되삼키던, 여전히 낯선 이방인이라 자신을 여기는 시인에게 문학에의 욕망, 시원(始原)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고통과 아픔에 비명을 지르며 내달리는 이재훈의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는 시에 대한 새로운 자유로움과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하프를 잃어버린 도시의 오르페우스……

우기(雨期)를 견디는 도마뱀의 숨소리처럼 처녀성을 지니고 있는 이재훈의 시는 오늘의 시에 대한 새로운 보고서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이 신선함은 미래의 어디서 훈풍처럼 감지되는 것일까. 시인은 이 도시에서 온몸에 파란 움이 터진 시의 이파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삶을 노래하고 있다. 시 도처에서 발견되고 갈망되고 있는 낙원의식, 오염되지 않은 자신의 부족과 종족언어에 대한 향수. 그가 속해 있는 부족은, 최초의 말이 태어나 번식하는 마을이요, 밤하늘의 사수자리가 대초원을 이루는 곳이다. 그곳에 하프를 잃고 온 그는 이렇게 반문한다. ‘왜 하필, 이 늙은 땅에서 절 잃으셨나요?’ 챙 넓은 솜브레로 모자와 차우를 걸친 현대의 오르페우스처럼 그의 음조는, 도시의 우수와 자연의 웃음과 밤이 낳은 미아, 그리고 일상적으로 돌아갈 한 얼굴의 죽음이나 거북이처럼 엎드려 살면서 병들어가는 아침의 영광에 바쳐지기도 한다.
이 첫 시집에는 새로운 언어의 처녀성에 처음으로 눈뜬 자의 설렘과 감동을 포획하는 그 최초의 눈이 있다. 조정권(시인)

이재훈 시의 시공은 광대하다. 그 광대함은 ‘겹침의 시학’에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시인은 ‘빌딩나무 숲’인 이곳에 사막과 우주와 원시의 시공을 겹친다. 그러자 몸의 결핍과 영어(囹圄)는 깊어지고, 영혼의 시공은 광대해진다. 깊음과 광대함은 ‘태양이여’라고 시인이 그 광대함을 부르는 행위, 시인의 시작(詩作)을 통해 시인의 몸 속 깊은 곳에서 겹쳐지고, 만난다. ‘태양이여’ 하고 시인이 외치자 시인의 ‘항문으로 뱀(태양)이 숯머리를’ 깊이, 뜨겁게 ‘들이민’다. 그리하여 광대함에 머리를 둔 시인이 잠자리에서 깨어날 때마다, 우주는 별자리 하나씩을 새로이 탄생시키고, 모세는 다시금 출애굽하며, 시인은 창세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마치 처음인 듯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인 이 시집의 시들을 쓰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김혜순(시인)

이재훈
1972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현대시』 편집장, 『시와세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중앙대, 건양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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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쓰고 있는 태터툴즈의 정식버전이 새로 나와 배포되었습니다.
시험 설치했습니다.
데이터를 이전할까 생각했는데
이전 블로그에 별 자료도 없고, 데이터 이전도 귀찮은 일이어서
그냥 테터의 정식버전으로 그냥 사용할까 합니다.
그럼 늘 평안한 날들 되세요.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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