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날의 기록

시詩 2006. 2. 14. 15:00
쓸쓸한 날의 기록
― 정재학에게


무기력하다 했던가
마지막 술잔을 남겨 놓고
우리가 귀가하는 순간
하늘 아래 어디 쯤에선 꽃이 피었을 거다
꽃을 보고도 그걸 표현할 방법을 몰라
그렇게 헤매었던가 우린 한낱
일렉기타의 음률과 철지난 유행가에
더 감상적이었잖은가
네게도 말했지만
나는 백년의 무명을 견딜 것이다
그렇게 철없이 살리라

더 이상 만질 것도, 들을 것도, 말할 것도 없는 어둠
소주 몇 병 먹고 어둠과 말할 수도 있지만
그만한 자족으로 그 어둠 속
텅 빈 공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옥상 위에 올라가 날아 보자
네 몸이 땅에 떨어져 옆구리가 찢어지고
사람들의 입가에 오르내린다 해도
내가 믿는 예수처럼
그 옆구리를 기억할 수 있을까
어느 요절한 시인처럼
흉흉한 소문 속에 네 아픔이 기억될 수 있을까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실패한 서정시인
서럽고 아름다운 자연은 이미 다 해먹고
남은 상상으로 목울대를 울리는,
이제 우리의 가난도 팔지 못하는,

거울 속에서 내 눈을 보았다
무얼 견디는 지도 모르는
몽롱한 얼굴이 날 바라보고 있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금술사의 꿈  (0) 2006.11.08
결별의 노래  (0) 2006.02.14
햇살의 집  (0) 2006.02.14
일식  (0) 2006.02.14
나스카 평원을 떠난 새에 관한 이야기  (0) 2006.02.14
Posted by 이재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