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촛불도 아니고 감나무도 아니다
미끈한 자동차도 아니고
달콤한 솜사탕도 아니다
차갑고 텅 빈 사물에
쇳물을 들이붓고 싶다
나는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이었다
꿈을 꾸면
붉은 별 하나가 내게 떨어지는 사건이었다
손이 데일까 만지지도 못한 별이
마당에 내려와 날 또렷이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엎드려 울지 않겠다
슬픔을 우스운 몸짓으로 과장하지 않겠다
해거름에 사양(斜陽)을 보며 사흘을 울겠다
그러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겠다
그 비밀의 성소(聖所)가 내 집이었다
소멸이
내 먹는 밥이었다
시와세계, 2005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