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20인이 첫사랑에게 쓴 서간문 형태의 에세이.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라는 말처럼 시대의 가치가 아무리 변하고, 유행과 시류가 변해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 이 사랑은 소통을 통해서 살아 움직이는 것 아닐까.

그래서 우리나라 대표 시인 20인이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한 첫사랑을 호출해 그의 근황과 안부를 묻고, 첫사랑과 시인의 마음을 잇는 뜨겁고 절절한 사연을 문장에 담았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편지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책에는 시인 개개인의 편지를 '육필'로도 수록하였다.

 

1부 그대는 내 마음의 언더그라운드
추억을 통해 인생은 지나간다 │ 천양희 │ 9
아마도 중얼거림 │ 김경주 │ 17
마음이 즐거워지는 네이밍 │ 이근화 │ 23
먼 그대에게 │ 박정대 │ 31
비밀의 서랍을 열듯, │ 이민하 │ 43
너에게 │ 김언 │ 53
이상하고 외로운 소실점 │ 이제니 │ 63
꿈처럼 오련하게 사레들리네 │ 이재훈 │ 73
나는 안녕하지 않습니다 │ 유형진 │ 81
첫사랑을 향한 연서 │ 박후기 │ 89
봄의 묵서 │ 조용미 │ 99
나의 첫사랑에게 │ 윤성택 │ 109
피와 눈빛과 입술의 일 │ 이혜미 │ 117
잘 지내고 있나요 │ 유희경 │ 125
도망가고 싶었던 마음 │ 이영주 │ 135
당신은 내게 사랑을 말했죠 │ 윤성학 │ 143
공작새가 깃들어 있다지요? │ 조윤희 │ 153
당신은 혹시 내가 아는 모든 사랑이 아니던가 │ 강정 │ 163
하필(何必), 이라는 말 │ 박연준 │ 171
에로 테쿰 │ 김영승 │ 181

2부 우리는 미래에 당도해 있는 연인
스무 통의 손 편지 │ 193

 

 


hoonyletter
최근작 :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부재의 수사학>,<명왕성 되다> … 총 7종 (모두보기)
소개 :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
2012년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문학동네, 2005), <명왕성 되다>(민음사, 2011), 지은 책으로 <현대시와 허무의식>(한국학술정보, 2007), <딜레마의 시학>(국학자료원, 2008), 인터뷰집 <나는 시인이다>(팬덤북스, 2011)가 있다. 중앙대, 경기대, 열린사이버대, 숭의여대에서 글쓰기와 문학을 강의했다. 2012년 현재는 건양대, 서울과학기술대에서 강의하면서 <현대시> 부주간, <시와세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줍은 시인은 편지를 쓰고,
고요한 내 마음은 일렁인다!”

지우려 할수록 또렷해지는 첫사랑님께
한국 대표 시인들이 띄우는 스무 통의 러브레터

▣ 누구의 맘속에나 한 번쯤 피어나는 첫사랑님께 한국 대표 시인들이 띄우는 육필 편지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20인이 첫사랑에게 쓴 서간문 형태의 에세이인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가 웅진문학임프린트 곰에서 출간되었다.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라는 말처럼 시대의 가치가 아무리 변하고, 유행과 시류가 변해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 이 사랑은 소통을 통해서 살아 움직이는 것 아닐까. 그래서 우리나라 대표 시인 20인이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한 첫사랑을 호출해 그의 근황과 안부를 묻고, 첫사랑과 시인의 마음을 잇는 뜨겁고 절절한 사연을 문장에 담았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편지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책에는 시인 개개인의 편지를 ‘육필’로도 수록하였다. 디지털 문화의 보편화로 SNS와 채팅 문화는 일상화되고 아날로그적인 접촉은 희박해지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순수한 대상인 첫사랑을 호명하고 그에게 손으로 편지를 쓰는 일은 매우 상징적이면서 호소력 짙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 하필, 어쩌다 당신을 사랑한 ‘나’의 고백
일생에 단 한 번 첫사랑님께 비밀스러운 편지를 쓴다면……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에 수록된 20편의 편지에는 첫사랑을 향해 열병처럼 타올랐던 마음을 뒤늦게나마 고백하거나, 현 시점에서 느끼는 복잡하고 단호한 심정을 그려내기도 하며, 첫사랑만큼은 여운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심정 또한 녹아 있다. 편지에서 시인들은 “당신을 사랑한 것은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박연준)이라 하고, “첫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사레들릴 것 같”(이재훈)다 말한다. 여느 첫사랑처럼 “해마다 오월이 되면 환절기 감기처럼 마음을 앓”(이민하)고, “한때 내 실재에 대한 배고픔이었고, 내 영혼의 창을 흔든 바람”(천양희)이라 떠올리는 시인도 있으며, 여전히 “너는 나와 함께하고 있어. 툭 털어냈는데 도로 와서 앉고는”(이근화) 한다는 고백도 눈에 띈다. 또 그 사람을 생각하면 어떤 곳, 어떤 사물, 어떤 동식물이 노랫말처럼 쉴 새 없이 떠오르기도 한다.

당신은 걷는 걸 좋아했는데, 당신은 늘 큰 눈에 호기심 어린 눈빛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나는 당신의 그 큰 눈동자 속으로 떠내려가는 음악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만나는 동안 자주 면이 고운 바지에 올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지요. 또한 당신은 고양이를 무척이나 기르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어떤 색깔과 종류의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지, 당신은 맛있는 것을 보면 눈이 커지면서 새근새근 옹알이를 하곤 했는데, 내 말투를 따라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p.21, 김경주, 「아마도 중얼거림」 중에서)

첫사랑의 시작은 자신도 모르게 시나브로 깃든다. ‘사랑’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전에 “너의 빛”(김언)으로 생겨나 세상을 비춘다. 아니면 “실제로 당신을 겪었을 수도, 아니었을 수도”(강정) 있는 우두커니 떠올린 사람일는지도 모른다.

얼굴 없는 나의 동행자는 조금씩 조금씩 얼굴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고, 그 얼굴은 순식간에 당신의 얼굴이 되었고, 그것은 거울이 되어 다시 나를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야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었고,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서로의 이름의 의미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p.69, 이제니, 「이상하고 외로운 소실점」 중에서)

▣ 시리지만 뜨겁고, 냉정하지만 두근거리는 시인의 첫사랑
내 생애 최고의 ‘사랑 고백’을 꿈꾸는 그대에게


첫사랑은 여운과 같아서 지우려 할수록 사라지지 못하고 가슴에 남는다. 함께한 날들이 짧았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더 가까워질 수 없다 해도 강렬하고 애틋하기만 하다. 끝내 미안하고 고맙고, 그 사람이 잘 지내기만을 바라본다.

당신과 함께했던 봄은 단 한 번뿐이었지만 혼자서 보낸 봄들도, 나머지 봄들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해마다 봄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애틋했습니다.(p.105, 조용미, 「봄의 묵서」 중에서)

아아 나의 가장 먼 곳에 그대는 있으라
그리하여 내 영원히 꿈꾸는 그리움의 실체로 그대는 남으라
그대를 꿈꾸기에 나는 영원히 그대를 사랑할 수 있으리니(p.41, 박정대, 「먼 그대에게」 중에서)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의 시인이 첫사랑님께 쓴 편지는, 설레고 따뜻하며 안타까우면서도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 누구의 가슴에나 한 번씩 피어나는 첫사랑의 감정을 다시금 일깨우고, 나아가 우리 시대 사랑의 모습과 그것의 소중함을 한 번쯤 돌아볼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 시인에게 사랑이란

° 천양희에게 사랑이란…… 여운만이라도 살아남기를,
그리고 다시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 김경주에게 사랑이란…… 떠나가고 나서야 배우기 시작하는 언어, 아마도 중얼거림.
° 이근화에게 사랑이란……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손으로 만든 상자들처럼 그 미묘한 차이가 만들어주는 틈.
° 박정대에게 사랑이란…… 우리가 알 수 없는 아득한 그 무엇을 서러움 없이 툭, 하고 만졌다가 그리워하고
또 서러워졌다가 후회도 하고 안도도 하며 그렇게 열렬히 자기 마음의 불꽃을 태우는 것.
° 이민하에게 사랑이란…… 우리가 함께 비운 찻잔처럼 어둠 속에 남아 있는 태양의 온기.
° 김 언에게 사랑이란…… 적어도 한 사람의 기억을 붙들고 더도 덜도 말고 그 빛만 기억하라는 것.
° 이제니에게 사랑이란……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는 빛, 둘만의 암호와도 같은 이름을 간직하는 것.
° 이재훈에게 사랑이란…… 사람의 일이며, 살아가는 일이며, 함께 옆에서 호흡하는 일.
° 유형진에게 사랑이란…… 여전히 안녕하지 못한 채 비바람 속에 서 있는 일.
° 박후기에게 사랑이란…… 종말을 예감할 때마다 숨이 턱, 막히지만 뜻대로 멈출 수 없는 것.
° 조용미에게 사랑이란…… 처음 들을 때부터 수백 번, 수천 번 들은 지금까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신선한 공기가 많이 포함된 말.
° 윤성택에게 사랑이란…… 전 생애를 비밀에 걸었을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
° 이혜미에게 사랑이란…… 어떤 서투름도 추레함도 빛나는 무엇이 되어 드리워지는 것.
° 유희경에게 사랑이란…… 바라는 것 하나 없이, 그대로.
° 이영주에게 사랑이란…… 온몸을 휘감는 전율과 뼈의 이동.
° 윤성학에게 사랑이란…… 덜컹이는 눈물 너머 당신에게 오래오래 손을 흔드는 것.
° 조윤희에게 사랑이란…… 아무리 순수한 사랑에도 허영의 공작새가 깃들어 있는 것.
° 강 정에게 사랑이란…… 뫼비우스 띠처럼 안으로 굽어 바깥으로 휘어져 나가는 기억의 표면장력 안에서
여전히 새로 씌어지고, 지워져버리는 것.
° 박연준에게 사랑이란…… 공중에서 부유하는 뿌리를 서로 보듬어주는 일.
누가 사랑을 한곳에 심을 수 있겠어요?
° 김영승에게 사랑이란…… 어쩌면 태어남 그 자체. 살고 싶어서 누군가를 태어나게 했고,
그리고 태어난 그 역시 살고 싶어서 태어난 것. 그 ‘살고 싶음’이 사랑.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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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하며 시단의 촉망받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재훈 시인의 두 번째 평론집. 자기만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시단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는 이재훈 시인은 시뿐만 아니라 비평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이미 2008년 <딜레마의 시학>이라는 평론집을 통해 시인만이 볼 수 있는 시의 다양한 풍경들을 내밀한 목소리로 표출한 바 있다.

이번 평론집에서는 공분의 시대에 시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재훈 시인은 이미 여러 평론을 통해 부재의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성찰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한 바 있다. 이번 평론집은 부재의 현실을 넘어서려는 여러 가능성들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는 집적물이라 할 만하다.

저자의 말대로 '부재의 수사학'은 부재의 현실을 통해 우리가 목말라하고 있는 사유와 정서는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개념어이다. 저자는 각기 시인들이 다양한 양상으로 벌이고 있는 유토피아의 꿈, 현실과의 적극적인 싸움, 내면에의 침잠, 사물에 대한 깊은 사유 등을 꼼꼼히 추적하면서 시가 가진 성찰의 다양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책머리에: 저자의 말

<제1부>
시적 현실과 영성의 세계
아가미로 숨쉬는 문명인의 일상
공시적 맥락에서 본 금강의 시적 흐름
몰입과 탕진의 시적 재현

<제2부>
물과 질량의 시학
: 허만하 시집 <바다의 성분>
통찰의 시학
: 임강빈 시집 <이삭줍기>, 마종기 시집 <하늘의 맨살>
고요한 내레이터와 신명나는 퍼포먼스
: 정희성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 신현정 시집 <바보사막>
부재의 시학
: 장석주 시집 <몽해항로>, 최준 시집 <뿔라부안라뚜 해안의 고양이>
소통의 연애사
: 김요일 시집 <애초의 당신>, 손현숙 시집 <손>,
: 김성대 시집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극진한 통찰과 결기(決起)
: 손택수 시집 <나무의 수사학>, 이기인 시집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상처의 경제학
: 박진성 시집 <아라리>, 신정민 시집 <꽃들이 딸꾹>
통각을 딛고 일어서는 성찰의 시학
: 고석종 시집 <말단 형사와 낡은 폐선>

<제3부>
소외와 말줄임의 수사학
: 조현석 시집 <울다, 염소>
공중에 풀린 영원성의 시학
: 박남희 시집 <고장 난 아침>
상처받은 꽃말과 몸말의 소리
: 한문석 시집 <바람개비>
관계의 복원에서 상생의 열림으로
: 조혜전 시집 <기린산방>
그리움으로 향하는 꽃길의 시
: 강수완 시집 <꽃, 모여서 산다>
농담의 수사와 할(喝)의 시학
: 황상순 시집 <농담>
그저 달콤하기만 한 문명의 정치학
: 신혜정 시집 <라면의 정치학>
고통을 딛고 일어선 비상의 꿈
: 손계정 시집 <솔개>
신생의 꿈을 향한 시적 순례
: 이민화 시집 <화몽>
역전(逆轉)을 통한 비움의 길 찾기
: 엄혜숙 시집 <도문(道門)>
흔적의 시학
: 하상만 시집 <간장>

인명 찾아보기

 

 

 

5
시인들은 본질에 닿기 위해 이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극복하는가. 이러한 질문들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시인들의 눈에 비치는 현실세계는 극복의 대상이면서 또한 함께 발 딛고 살아가야 할 공존의 대상이다. 시인들은 첨단을 걷고 있는 문명 세계와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를 늘 골몰했다. 지금의 신자유주의는 곪을 대로 곪아 우리의 삶을 부박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삶은 가난해졌으며, 인간을 인간답게 유지시킬 도덕과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와 갈등의 시간들을 견디고 있다. 한 마디로 공분(公憤)의 시대다. 이러한 부재의 시대에 문학인들은 어떤 목소리들을 내고 있을까.
(책머리에: 저자의 말; 5쪽) - 알라딘
25
시인들은 영적 삶의 구체적 모습들을 시를 통해 고백한다. 기독교라는 종교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시인에게 영적인 삶은 일종의 숙명 같은 것이다. 굳이 종교의 이름을 빌리지 않더라도 영적인 충만을 시로 표출하는 경우를 쉽사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본질로 하는 시적 현실의 다양성이 더 큰 깊이와 만나 한국 시단에 큰 강물을 이루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시적 현실과 영성의 세계; 25쪽) - 알라딘
30
시론에서 오래전부터 지적하고 있듯이 시가 ‘일상적 진실’과 ‘당위적 진실’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면, 대부분의 문학은 ‘진실’의 차원에서 시적 의미를 거론한다고 말할 수 있다. 진실성은 현실을 그대로 노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의해 재단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을 어떠한 내면을 통해 동화하거나 투사하여 비춰지느냐에 있다.
(아가미로 숨쉬는 문명인의 일상; 30쪽) - 알라딘
64
요즘 인터넷에는 비틀즈의 'Let It Be'가 댓글로 여기저기서 노래처럼 꼬리를 물고 다닌다. 이유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따른 비판적 목소리 때문이다. 경제살리기의 정치목표가 가장 중요한 점들을 간과한 채 전 국토를 공사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생겨난 말들이다. 이런 현상 때문인지 최근 발표된 시에서는 사회 현실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시편들이 상당수 발표되었다. 그것은 현실이 시인들의 삶 속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다는 현상을 반증한다.
(몰입과 탕진의 시적 재현; 64쪽) - 알라딘
149
현대사회는 소외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관료제를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들었다. 즉 합리적 원칙에 의해 조직되는 관료제는 사회의 모든 구조를 원활하게 지탱해나가는 가장 편리한 장치이다. 그러나 이 조직화된 관료제는 개인을 소외시킨다. 굳이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문명 도시 속에서 개인이 가지는 소외와 고독과 절망은 자본 문명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혹독한 정신적 부산물이다.
(소외와 말줄임의 수사학; 149쪽) - 알라딘
233
현대문명은 음험한 음모를 거느리고 광장의 질서를 지배하고 있다. 그 질서는 곧잘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들의 음모에 의해 조종되어진다. 눈에 뻔히 보이는 모종의 담합들이 위정자들의 가난한 머릿속에서 실현되어질 때 우리는 그 공분(公憤)을 억누를 수 없게 된다. 최근 들어 자주 제기된 문학과 정치와의 상보적 관계는, 문학의 역할과 창작자들의 태도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을 하게 했다.
(그저 달콤하기만 한 문명의 정치학; 233쪽) - 알라딘

 

 

 


hoonyletter
저자 : 이재훈
 

  • 최근작 : <부재의 수사학>,<명왕성 되다>,<나는 시인이다> … 총 6종 (모두보기)
  • 소개 :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
    2012년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문학동네, 2005), <명왕성 되다>(민음사, 2011), 지은 책으로 <현대시와 허무의식>(한국학술정보, 2007), <딜레마의 시학>(국학자료원, 2008), 인터뷰집 <나는 시인이다>(팬덤북스, 2011)가 있다. 중앙대, 경기대, 열린사이버대, 숭의여대에서 글쓰기와 문학을 강의했다. 2012년 현재는 건양대, 서울과학기술대에서 강의하면서 <현대시> 부주간, <시와세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재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갈급하고 있는 사유와 정서를 탐색하다!


2012년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하며 시단의 촉망받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재훈 시인이 두 번째 평론집을 출간하였다. 이재훈 시인은 첫 번째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를 통해 자기만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시단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는 시인이다. 이재훈 시인은 시뿐만 아니라 비평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이미 2008년 <딜레마의 시학>이라는 평론집을 통해 시인만이 볼 수 있는 시의 다양한 풍경들을 내밀한 목소리로 표출한 바 있다.
이번 평론집에서는 공분의 시대에 시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재훈 시인은 이미 여러 평론을 통해 부재의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성찰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한 바 있다. 이번 평론집은 부재의 현실을 넘어서려는 여러 가능성들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는 집적물이라 할 만하다. 필자의 말대로 ‘부재의 수사학’은 부재의 현실을 통해 우리가 목말라하고 있는 사유와 정서는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개념어이다. 필자는 각기 시인들이 다양한 양상으로 벌이고 있는 유토피아의 꿈, 현실과의 적극적인 싸움, 내면에의 침잠, 사물에 대한 깊은 사유 등을 꼼꼼히 추적하면서 시가 가진 성찰의 다양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제1부는 부재의 시적 현실에 대한 나름의 양상들을 담은 글들이다. 현실과 기독교적 영성의 세계가 어떤 접합점으로 모이고 있는 지에 대한 탐구, 문명인으로 살아가는 구체적 삶의 양태가 시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몰입과 탕진의 세계가 현실에서 어떤 자구책을 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탐구, 금강을 젖줄로 삼은 충청 지역의 시인들에 대한 비평 등을 담았다.
2부는 다양한 시집에 대한 내밀한 비평서이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출간한 시집들에 대한 나름의 분석적 비평이다. 허만하, 마종기, 정희성, 신현정, 장석주, 김요일, 손택수, 박진성 등의 시집에 대해 시인만이 감각할 수 있는 시의 속살을 읽어내고 있다.
3부는 시집에 수록된 해설들이다. 필자는 최근 출간되는 시집의 해설을 많이 써왔다. 시집의 뒤에 붙는 해설은 일반적인 비평과 다른 성격을 가진다. 시인이 한 권의 시집을 출간하기까지의 시적 여정을 같은 시인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려고 했다. 시인은 한 권의 시집을 내기까지 지난한 정신적 역경과 파고를 지닌다. 그 흐름을 함께 공유하고, 느끼려 했던 기록물이다. 조현석, 박남희, 신혜정, 하상만 시집 등 11권 시집의 해설을 살펴볼 수 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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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시원(始原)을 응시하며 세속 도시를 순례하는 시인 이재훈

슬픔의 소진마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얻는 소멸의 미학



“이재훈 시의 시공은 광대하다. ‘빌딩나무 숲’인 이곳에 사막과 우주와 원시의 시공을 겹친다.”(김혜순 시인), “그의 시는 오늘의 시에 대한 새로운 보고서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조정권 시인)라는 평을 받은 이재훈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가 출간되었다. 도시의 생태와 자신의 내면을 결합하며 한 시대의 쓸쓸한 풍경을 기록한 첫 번째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로 큰 주목을 받았던 그는, 이번 시집에서 소재와 착상의 범위가 더욱 넓고 풍요로워졌으며, 다양한 시편들을 통해 호흡과 리듬도 점점 확장되고 있다.

이재훈 시인에게 도시는 늘 새로운 탐구의 대상이다.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도시를 성찰한다. 시집 곳곳에서 지하철, 버스, 독서실, 저녁의 거리, 도서관, 골목 등 시인의 일상 공간들이 직접 드러나는데, 존재의 시원(始原)에 가닿고자 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도시 속에서 환상적이고도 동화적인 색채의 공간을 펼쳐 놓는다. 그 도시 속에서 “육십억 분의 일일 뿐”인, 그저 “먼지”처럼 “아무것도 아닌” “매일 출근하는 폐인”들의 고단한 삶이 펼쳐지며, 시인은 그 속에서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을 진하게 그려 낸다. 시집 안에서는 끊임없이 “일용근로자의 피로와 백수건달의 자책과 독학자의 자부심과 시인의 기상”이 한데 배어나고 있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명왕성 되다(plutoed)’라는 말은,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한 사건에 빗댄 신조어다. 익명과 소외, 그리고 기계적 규칙성이라는 도시 생활자의 삶에서 그는 ‘명왕성’이 됨으로써 스스로 궤도를 벗어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끊임없이 구원을 꿈꾸고 있는데, 그에게 ‘구원’은 곧 ‘근원’이다. 이재훈의 시에서 근원적인 곳은 머나먼 어딘가가 아닌, 세속 도시의 구석구석에 내재되어 있다. 이 도시 안에서 시인은 세속적인 이미지 속에서 성스러움을 체험한다.


이재훈

1972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가 있다.


■ 편집자 리뷰

침묵과 고요의 깊고 너른 ‘울음’을 통한 거대한 ‘울림’


첫 번째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가 하늘 위에서 부르는 노래, 특히 ‘영가(靈歌)’의 세계였다면,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는 하늘과 땅의 중간쯤에서 부르는 ‘침묵’과 ‘고요’의 깊고 너른 ‘울음’을 통한 거대한 ‘울림’이다. 이재훈 시인에게 도시는 늘 새로운 탐구의 대상이다. 숨이 막히고, 끊임없이 옥죄는 공간이지만, 어쨌든 발 디디고 살아가야 할 공간인 욕망의 도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도시를 성찰한다. 「新林洞」, 「매일 출근하는 폐인」, 「비비디 바비디 부」, 「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  등의 시에서 시인의 일상 공간들이 직접 드러나는데, 존재의 시원(始原)에 가닿고자 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도시 속에서 환상적이고도 동화적인 색채의 공간을 펼쳐 놓는다.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진 애벌레.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

온 생을 바쳤다.


늦은 오후.

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

그림자 잦아들고

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


나비 한 마리.

공중으로 날아간다.


풀잎이 몸을 연다.

―「남자의 일생」


이 시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하는 과정의 알레고리 속에 처절한 생존 게임과도 같은 인생의 과정 전체를 담아내며, 이 시대에 남자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우회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의욕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미소를 연습한다. 수많은 거울 앞의 표정들. 낯선 얼굴, 낯선 침묵.


다른 말은 없다. 너를 자위케 하던 기호들. 새, 별, 그리고 꽃과 나무. 아무 생각 없이 잠들 수 있었던 그대, 라는 말을 향해.


(중략)


나는 육십억 분의 일일 뿐. 페트병에 가득 담긴 담배꽁초와 찌그러진 맥주 캔. 먹다 남긴 컵라면. 참기 힘든 소음. 역겨운 화장 냄새와 비둘기 똥 냄새로부터.


계곡의 하얀 물보라를 헤치고, 난파된 얼음 위에 올라서 저물어 가는 사람들의 삶을 감상하고 싶다. 그러면 아주 쓸쓸하겠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아무도 없이 고독하겠다.


(중략)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밤의 형벌이었다.

―「매일 출근하는 폐인」


이 시를 통해 우리는 견고한 생활의 필연적 조건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비관’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스스로 정확히 ‘인지’한다. 이 인지의 결과는 바로 다음과 같은 시에 나타난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뱉어 낸다. 눈 밑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 잊혀진 얼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풍경은 서서히 물드는 것. 그리운 얼굴이 푸른 멍으로 잠시 물들다 노란 불꽃으로 사라진다. 나는 단조의 노래를 듣는다.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 소리. 단추 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 내 입술과 몸에도 푸른 멍 자국이 핀다. 아무리 하품을 해도 피로하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모두 신성한 모험이었다는 거짓된 소문들. 내 속의 거대한 허무로 걸어 들어갈 자신이 없다. 지하철 2호선의 문이 활짝 열린다.

―「명왕성 되다(plutoed)」


이 시의 제목이자,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명왕성 되다(plutoed)’라는 말은,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한 사건에 빗댄 표현인데, 사물이나 사람이 갑자기 평가절하 되거나 혹은 소외되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이 시의 배경은 규칙적인 리듬의 기계 소리만 들리는 2호선 지하철 안으로, 화자는 익명과 소외, 그리고 기계적 규칙성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이것이야말로 도시 생활자의 정신적 삶을 규정하는 필연적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의 화자는 바로 그런 제약들로부터 비켜서고자 눈을 감는다. 그는 ‘첩자’나 ‘폭풍’과 같은, 기계적 삶의 리듬을 뒤흔들 파국을 스스로 필요로 하고 있다. ‘명왕성 되다’는 말은 즉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궤도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재훈의 시에서 근원적인 곳은 머나먼 어딘가가 아닌, 세속 도시의 구석구석에 내재되어 있다. 시적 자아는 세속 도시의 세속적인 이미지 속에서 성스러움을 체험한다. 지하철의 문은 계속해서 열리지만, 우리를 진정한 삶으로 인도할 출구는 없다. 하지만 시인은 그 공간 안에서 출구를 찾는 방법을 터득했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 존재의 비밀을 한순간에 깨칠 소멸의 순간을 꿈꾸다


나는 근원을 바랐다.

기적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중략)

지혜로운 자가 되고 싶었다.

장 그르니에가 산타크루즈를 오르며 쬔

빛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었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환호하지도 분노하지도 못하는,

심장을 꺼내 거리에 내던지고 싶었다.

심장이 몸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은,

그 짧은 시간만큼은 황홀하겠지.

언덕이 있는 곳은 월곡(月谷),

달빛이 있는 골짜기다.

언덕을 오르고

또 한 언덕을 오르면

마치 기적처럼 달빛에 닿는,

존재의 비밀을 한순간에 깨칠

그런 순간이 올 수 있을까.

산타크루즈를 오르며 쬔

그 햇살의 순간처럼.

―「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


키르케고르가 유한과 무한, 필연성과 가능성의 문제를 종교로 풀어냈다면, 그는 이 문제를 종교가 아닌 시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유한이 무한의 반대가 아니라, 무한의 일부임을 깨닫고, 시적 상상력을 통해 유한한 시간을 펴서 무한한 시간에 잇대어 유한성과 필연성을 뛰어넘는다. 그의 초월은 현실을 탈출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초월적 공간으로 바꿔 놓는다. 또한 그는 끊임없이 구원을 꿈꾸고 있는데, 그에게 ‘구원’은 곧 ‘근원’이다. 이 시집은 바로 그 ‘근원’, 즉 존재의 시원에 대한 물음과 상상력을 통해 유한과 무한, 필연성과 가능성의 문제를 풀어내고자 하는 시적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시에서는 기계적인 ‘심장’과 존재의 비밀을 깨칠 ‘순간’의 대립이 선명하게 이미지화 된다. 그리고 다시 그것은 퇴근길의 행선지인 월곡과 장 그르니에의 미적 처소인 산타크루즈의 이미지로 보다 또렷하게 구상화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제 월곡과 산타크루즈의 대립이 아니라 월곡을 산타크루즈로 ‘발견’할 수 있느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촛불도 아니고 감나무도 아니다.

(중략)

나는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이었다.

(중략)

그러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겠다.

그 비밀의 성소(聖所)가 내 집이었다.

소멸이

내 먹는 밥이었다.

―「연금술사의 꿈」


그는 “존재의 비밀을 한순간에 깨칠 그런 순간”이 소멸의 순간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그는 끊임없이 소멸을 꿈꾼다. 우주 속으로, 거대한 대황하 속으로, 허공 속으로,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침묵 속으로, 빛 속으로, 영원 속으로 흔적조차 없는 완전한 소멸을 꿈꾼다. “바람은 불어야 제 몸을 갖”고, “눈물은 흘려야 제 몸을 갖”(「비비디 바비디 부」)듯이 그는 소멸함으로써 비로소 제 몸을 갖는다. 그는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처럼,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는 시인이다.


■ 작품 해설에서

 

이 시집의 기저를 맴도는 덩어리진 목소리는 일용근로자의 피로와 백수건달의 자책과 독학자의 자부심과 시인의 기상이 한데 배어나는 것이다. 시인의 소멸에 대한 열망은 슬픔의 내력을 시간의 이력으로 전화시키려는, 다시금 유한한 것들을 무한에 대고자 하는 상상적 결단에 의한 것이다. 소멸이 슬픔의 발견, 슬픔의 과장, 슬픔의 소진마저 지난 후에야 얻는 신명의 성소(聖所)라는 것, 그러니 근대인 키르케고르가 비약의 귀재라면 이재훈은 소멸의 총아다. — 조강석(문학평론가)

 

■ 추천의 말


이재훈은 중무장한 중세의 기사와 같다. 그는 영주에게 충성하지 않고 연인에게 헌신한다. 그러나 그 연인은 비밀의 화원에 은신해 있지 않고 시인의 갑주 속에 내장되어 있다. 시인은 연인을 위한 투쟁에서 연인을 훼손시키고야 마는 운명에 처한다. 그것이 이재훈이 파악한 현대 시인의 궁지이다. 자신이 보존할 가치를 기치로 내세울 때마다 그것은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와도 같이 부스러지고 문드러진다. 그러나 그 덕분에 우리는 진실 앞에 놓인 현실의 아득한 해자를 본다. 진정한 세계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말에 채찍을 가해야 한다. 언어의 기교는 현실을 일격에 무너뜨리기 위한 필사의 계책이다. — 정과리(문학평론가, 연세대 국문과 교수)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애련에 젖게 한다. 시인 이재훈에게 그 정조는 무척 각별하다. 지금은 사라진 고대 문명이나 사라져 가는 시원적 자연에 감응하는 그의 상상의 촉수는 매우 예민하다. 문명의 늪을 거슬러 태초의 궁륭으로 다가서는 소리의 환(幻)이 웅숭깊다. 때로는 혼돈으로 들끓고, 때로는 명상으로 침묵하는 그 소리의 환은 격렬한 듯 단정하고, 단정한 듯 격렬하다. 그 소리의 환의 스펙트럼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거역하거나 크게 순응하는 연금술사의 꿈의 폭과 깊이를 가늠케 한다. 사라져 감 혹은 부재라는 그리움의 양식을 통해 이재훈은 존재의 시원적 리듬을 새삼 환기한다. 그리고 헝클어진 동시대의 존재의 리듬에 반성적 감촉을 제안한다. 큰 슬픔이라는 통과제의를 거친 우리네 존재의 신명은 아득한 듯 가깝고, 오래인 듯 여기이고, 사라져 가는 듯 되돌아온다. — 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 국문과 교수)

Posted by 이재훈이
,


나는 시인이다


우리시대 시인 서른다섯 명의 내밀한 고백

 

           지은이  이재훈

              판  형  140*210/ 무선

              발행일  2011년 4월 15일

              페이지 576페이지

              분  야  문학 > 비소설

              ISBN  978-89-94792-14-9  13810

              가  격  18,000원

 

 

서른다섯 명의 시인이 고백하는 육성은 그들의 시를 더욱 풍성하고 적확하게 읽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저자의 말대로 시인은 특별하다. ‘이율배반적인 인간형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어느새 시인의 머릿속으로, 가슴속으로 들어가는 행복한 경험을 할 것이다.

시인은 시 안으로 숨는다. 비의(秘義)다.
그 비의를 읽기 위해 시인과 시인의 대화를 엿듣는다.
다시 시(詩)의 시대는 오는가?

어떻게 쓸 것인가? 시인의 고민이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독자의 고민이다. ‘어떻게’라는 화두는 같지만, 시인은 쓰고, 독자는 읽는다. 최근의 시들은 그 시인과 독자 사이가 너무 멀게 느껴지게 한다.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우주적 깊이라고 할 만하다.
1980년대를 문단에서는 시의 시대라 했다. 1990년대 소설의 시대를 거쳐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한때 문학의 위기, 시의 죽음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참여와 비참여를 떠난 지점에서 무의미시, 비대상시, 날이미지시, 해체시 등의 방법론적 분류가 난립했다. 그러다 느닷없이(과연?) 미래파가 등장했다. 미래파는 창작론적으로, 의미론적으로, 정서적으로 새로웠다. 문단은 새로워하면서도 내심 당황했다. 내부로의 침잠, 암호화된 정서, 독특한 상상력, 극단으로 치닫는 표현과 형식, 낯선 은유 등은 새롭지만 해독이 어렵다는 독자들의 불평을 들어야 했다. 미래파라는 용어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아직도 유효한 가운데, 문제는 시 독자들의 수가 반토막되었다는 상황은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 책임이 소위 미래파라 불리는 시인들에게 있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미래파에 맞서 극서정시를 주창하며 최근 조정권, 이하석, 최동호 시인들이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시인도, 독자도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중이라 해야겠다.
와중에 문학 전문 출판사들은 새로운 시집 출간에 열을 올린다. 문학동네 출판사는 획기적인 판형의 시집을 선보였고, 잠시 주춤하던 민음사와 문예중앙 등의 출판사 들도 새로운 기획을 펼치고 있다. 시 전문 문예지들도 의욕적이다. 다시 시의 시대가 올 것인가?
마침 의미 있는 책이 하나 나왔다. 월간《현대시》부주간인 이재훈 시인이 다른 시인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묶어 대담집을 펴냈다. 대담은 멀리 2001년부터 올해 봄에 걸쳐 이루어졌다. <현대시>, <유심>, <열린시학> 등에 실렸던 원고를 모았다. 이미 작고한 김춘수, 오규원, 박찬 시인을 포함한 서른다섯 명이다. 시인들이 직접 말하는 자신의 시와 시론(詩論), 그리고 내밀한 개인사를 읽고 나면 새삼 시들이 다시 읽힌다.
시인 인터뷰는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니다. 인터뷰 대상에 대해 상당히 많은 준비를 요한다. 최대한 그 시인의 시를 읽어야 하고, 그에 대한 평론도 꼼꼼히 찾아야 한다. 이전의 인터뷰도 챙긴 후에 적절한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 모르면 시인의 답변에 대응을 못해 대담이 산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인터뷰어인 이재훈 시인이 꼼꼼한 시/시인 읽기를 통해 유효적절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에 있다. 시인의 일상으로 들어가 마음을 열기도 하고, 유년 또는 문청 시절에 겪은 여러 경험들을 통해 시인의 시관, 시 세계를 엿보기도 한다. 그러다 시인의 시에 대해 전격적으로 공격한다. 질문하는 시인과 답변하는 시인 사이에 긴장이 흐르는 순간이다. 아마도 독자는 그 긴장이 즐거우리라.
서른다섯 명의 시인이 고백하는 육성은 그들의 시를 더욱 풍성하고 적확하게 읽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저자의 말대로 시인은 특별하다. ‘이율배반적인 인간형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어느새 시인의 머릿속으로, 가슴속으로 들어가는 행복한 경험을 할 것이다.

월간《현대시》부주간인 이재훈 시인이 다른 시인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묶어 대담집을 펴냈다. 이미 작고한 김춘수, 오규원, 박찬 시인을 포함한 서른다섯 명이다. 시인들이 직접 말하는 자신의 시와 시론(詩論), 그리고 내밀한 개인사를 읽고 나면 새삼 시들이 다시 읽힌다.

평소 다방식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고 김춘수 시인이 평생의 라이벌로 여긴 시인은 김수영뿐이었다. 역사허무주의자였지만 현실에 대한 울분 같은 것도 가지고 있던 시인은 ‘김수영의〈풀〉같은 작품을 보면서 내가 써보고 싶었던 것을 벌써 썼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일종의 라이벌 의식, 질투’를 느꼈고, ‘그래서 의식적으로 더 내면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시인이 역사허무주의자가 된 일본에서의 경험과 후배 시인들에게 주문하는 ‘큰 시인’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30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시집《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로 ‘지난 천 년의 막바지에 마치 스톤헨지의 유적처럼 발굴되었다(정과리)’는 찬사를 받은 허만하 시인. 그가 밝히는 독특한 사유와 시론은 30년간 묵묵히 시인의 길을 걸어온 내공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나는 끝까지 시인입니다”라는 그의 말에서 이 대담집의 제목《나는 시인이다》가 나왔다.

이승훈 시인은 자아 탐구, 모더니즘과 해체, 그리고 선(禪)에 이르기까지의 삶과 문학 여정을 밝힌다. 시인은 ‘삶과 시의 경계뿐만 아니라 시와 비시의 경계도 깨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이제 ‘삶에서도 시에서도 한결 자유’를 느낄 경지의 깨달음에 이르렀다.

고 오규원 시인은 김춘수의 무의미시론과 자신의 날이미지시론을 서로 비교하며 설명하여 독자의 눈을 밝게 만든다. 그에 의하면 무의미시는 ‘심리적, 주관적 묘사의 세계’이다. 반면 날이미지시는 ‘관념화되기 이전의 의미’여서 ‘존재의 현상을 날것 그대로’ 묘사한다. 사실적, 발견적, 직관적 세 가지로 구분하는 날이미지는 시인 자신의 시를 빌려 설명해 이해를 돕는다.

시를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유년 시절과 목월의 제자가 된 사연을 들려주는 유안진 시인. 고교 문사에서 문학청년 시절을 거쳐 등단하기까지의 이야기와 그만의 세계관, 인간에 대한 애정을 말하는 정호승 시인. 쇳물은 물도 불도 아니라는 연금술적 상상력을 보이는 노동자 시인 최종천. 서른다섯 명의 시인이 고백하는 육성은 그들의 시를 더욱 풍성하고 적확하게 읽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한편 1992년《현대시세계》로 같이 등단하여 우리 시의 확장성을 선보이는 동년배 시인 강정과 김태형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저자의 말대로 시인은 특별하다. 특별한 시인도 역시 한 사람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시인의 머릿속으로, 가슴속으로 들어가는 행복한 경험을 할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 내 생애에 시인으로서 라이벌 의식을 가진 시인은 김수영뿐입니다. - 김춘수

* 나는 끝까지 시인입니다.  - 허만하

* 자아 탐구에서 자아가 없다는 인식에 도달하기까지 30년이 걸린 셈입니다. - 이승훈

* 시인은 모국어의 창조자이니까 시어까지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 유안진

* 날이미지시는 관념화되기 이전의 의미를 존재의 현상에서 찾아내어 이미지화하는 시입니다.       - 오규원

* 시의 본질이라는 게 서정의 물기 같은 게 아닐까요. - 정호승

* 나이가 드니까 시를 투명하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 한영옥

* 살아 숨 쉬는 정신주의는 육체성이 깃들어야 합니다. - 최동호

* 주변 장르로 전락한 시의 화려한 부활 혹은 변모를 꿈꿔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 있어요. - 원구식

* 자연이든 사회든, 서정시든 서사시든 본질적인 것은 인간이고, 인간의 관계고, 인간의 태도입      니다. - 김정환

* 시의 죽음이야말로 새로운 시의 탄생을 가능케 하는 최고의 질료. - 남진우

* 두 번째 은유, 곧 은유를 은유한 언어가 시가 되는 것이지요. - 이사라

* 굳이 저의 이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휴머니즘밖에 없다고 말할 겁      니다. - 박찬

* 존재론적 성찰을 통해 내 안의 적들과 싸우는 관계가 성립되는 거죠. - 이재무

* 시인은 일종의 물(物)에 최면을 거는 샤먼. - 김명리

* 저는 시를 절대로 작위적으로 쓰지 않습니다. ……즉발적으로 나올 때 씁니다. - 서지월

* 쇳물은 물도 아니고 불도 아닙니다. 물인 동시에 불이고, 불인 동시에 물입니다. - 최종천

*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지고 황폐해진 내 삶을 다시 구원해 준 건 시였습니다.

  - 이진영

* 저는 의도하지 않음을 통해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고진하

* 저의 언어가 가장 반발하는 것은 의미 과잉 내지는 주도의 언어이지요. - 손진은

*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바로 물속이고 아틀란티스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 성선경

* 상징이니 은유니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백병전으로 몸과 싸워 보고자 했습니다. - 서규정

* 내 시의 말들이 통각의 말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장대송

* 내가 꿈꾸는 나의 궁극은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날이죠. - 허연

* 저는 되레 더 큰 배반과 더 예리한 당착을 추구합니다. - 강정

* 이제는 이미지들이 안으로 집중되면서 소용돌이치는 상징의 힘에 제 몸을 맡기는 쪽입니다.       - 김태형

* 저는 밝고, 화려하고, 강한 것보다는 어둡고, 쓸쓸하고, 약한 것들에 천성적으로 마음이 가닿      는 쪽이거든요. - 김선태

 * 사물보다는 사물과 사물 사이, 어떤 한 세계보다는 세계와 세계 사이, 그곳에 자꾸 시선이       갑니다. - 김소연

* 한 편의 시가 교란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나요. - 이수명

* 결국 일상이 만들어 내는 파장에 제 귀는 쏠려 있습니다. - 유종인

* 저는 기본적으로 ‘시란 내 사고가 만들어 내는 상품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 김영남

* 경험 과학이나 실증 과학의 언어로 말할 수 없으니까 상징적 언어(시적 언어)로 말하는 거 아      닌가요? - 김점용

* 방법론이지만 전 영화를 만들 듯이 시를 씁니다. - 배용제

* 시인은 창조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 배한봉

* 의미를 사유하는 문장보다는 이미지를 사유하는 문장이 더 구체적 언어에 가깝지 않을까요.       - 여정


저자의 말


시인들은 특별한 인간들이다. 한없이 천진난만하다가도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 있고, 무(無)와 유(有), 욕망과 버림의 사이에서 늘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면서도, 누구보다 자기 세계가 확고하다. 하지만 안주하는 법은 없다. 남들이 가지 않았던 또 다른 세계를 넘보려 기를 쓰는 족속들이다. 질서보다 혼돈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고요한 침묵을 즐길 줄 안다. 자본 문명의 시대에 가장 이율배반적인 인간형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담이란 핑계로 시인들과 나눈 말과 시간들. 내 문학적 청춘의 가장 잊지 못할 추억거리로 남았다. 대담을 진행하면서 아주 즐거웠다. 내가 만난 시인들은 문청 시절 내 문학 공부의 텍스트가 되었던 장본인들이었다. 그들의 시를 읽고 평하면서 문학 수련의 담금질을 했던 내가 그들과 직접 만나 육성을 듣는다는 것은 대단히 흥분되는 일이었다.”


본문 내용


<김춘수 시인>

이재훈 : 60년대 김수영이 참여의 길을 가게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그 반대 진영 쪽이라 할 수 있는 내면세계로 더 침잠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김춘수 : 그 말이 옳기는 옳은 말입니다. 저는 아까 말했다시피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상과 역사라는 것에 대한 회의가 생겼습니다. 지금도 이 역사허무주의자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 부딪히면 현실에 대한 울분 같은 것도 또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같은 시도 썼지만, 내 본래 의식은 역사허무주의였습니다. 역사나 현실의 문제에 대해 등을 돌리고 있었지요. 그때 김수영의 〈풀〉 같은 작품을 보면서 내가 써보고 싶었던 것을 벌써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종의 라이벌 의식, 질투가 생긴 거지요. 나보다 선수를 쳤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의식적으로 더 내면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재훈 : 선생님은 김수영을 가장 큰 라이벌로 생각하셨나요?

김춘수 : 했지. 그때뿐만 아니라 내 생애에 시인으로서 라이벌 의식을 가진 시인은 그 사람뿐입니다. 미당 같은 시인도 있었지만, 나와는 시적 세계관이 너무 다르니까 그런 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었지요.


<이승훈 시인>

김춘수의 무의미시론은 관념의 제거를 노리는, 이른바 묘사적 이미지에서 자유연상, 통사 해체로 발전합니다. 오규원의 날이미지시론은 말 그대로 관념의 흔적이 없는 날이미지를 추구하고, 그런 점에서 김춘수의 묘사적 이미지를 발전적으로 계승합니다. 내가 주장한 비대상시론은 김춘수의 자유연상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지만, 나는 자유연상보다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의 논리, 곧 억압된 무의식의 투사를 강조했습니다. 김춘수가 대상의 재구성, 대상과 이미지의 거리를 강조하고, 이때 대상의 의미, 곧 지시적 의미의 소멸을 강조한다면, 오규원 역시 이런 재구성, 곧 대상의 날이미지를 계속 추구하고, 나는 이런 대상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요컨대 김춘수, 오규원은 대상을 전제로 무의미, 날이미지를 추구하지만, 난 출발부터 그런 대상이 없고, 따라서 나의 내면, 무의식이 문제였습니다. 시의 경우엔 김춘수는 이상과 정지용 사이에 있고, 오규원은 이상과 김수영 또는 김수영과 김춘수 사이에 있고, 나는 이상과 김춘수 사이에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

시는 본질적으로 은유에요. 은유가 없는 진술은 공허할 수밖에 없고요. 시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은유의 품 안에서 진술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어떤 진술적 시라도 하나의 은유성을 띠고 있는 거죠.



지은이 


이재훈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하여 시를 쓰기 시작했다.

국문학과 문예창작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현대시》 부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지은 책으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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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의미와 무의미의 변증법을 찾아서 _ 김춘수

풍경과 실존과 시인 _ 허만하

비대상에서 선(禪)까지 _ 이승훈

‘봄비 한 주머니’ 들고 온 세상의 누이 _ 유안진

날이미지시와 무의미시 그리고 예술 _ 오규원

슬픔과 사랑이 자아내는 서정의 원리 _ 정호승

적극적 마술로 잉태한 마음사람 _ 한영옥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에 대한 명상 _ 최동호

시인, 名기타리스트 그리고 순교자 _ 원구식

황색예수 이후, 또 다른 서시(序詩)를 찾아서 _ 김정환

사과나무 아래로 귀환한 오르페우스의 꿈 _ 남진우

‘미학적 슬픔’의 참된 모습과 조우하며 _ 이사라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의 미학 _ 박찬

몸에 피는 추억, 그 보폭을 따라서 _ 이재무

고통과 즐거움이 상생하는 귓속말 _ 김명리

햇살 나리는 산모롱이에 핀 서정의 꽃 _ 서지월

수렵의 시인에서 관능의 시인까지 _ 이진영

문화에서 건져 올린 한 노동자 시인의 인간학 _ 최종천

우화등선을 꿈꾸는 호랑나비돛배를 타고 _ 고진하

숲을 설레게 하는 두 힘을 생각하며 _ 손진은

물속에서 비상하는 고래에 대하여 _ 성선경

상채기 많은 진눈깨비의 아름다움 _ 서규정

검은빛 기억을 날아다니는 새 _ 장대송

일찍이 허무를 알아 버린 푸른 낭만주의자 _ 허연

처형극장에서 세상을 보다 _ 강정

메탈 지프를 타고 노란 잠수함으로 가라앉기 _ 김태형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 _ 김선태

세상의 변죽들에게 바치는 매혹의 언어 _ 김소연

투명한 착란과 자유로운 공황의 미학 _ 이수명

‘미친 누이’에게 보내는 아득하고 근사한 기다림 _ 유종인

오브제 올라타기, 혹은 감싸 안기 _ 김영남

벗겨지지 않는 시의 ‘빤쭈’ 벗기기 _ 김점용

이 달콤한 감각의 세계에서 _ 배용제

신령스런 은자의 맑고 투명한 저 힘 _ 배한봉

지금도 21C 콜로세움에서 꿈틀대는 벌레 11호 _ 여정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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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자료원. 23,000원. 양장본. 290쪽




























[책소개]

"급하고 좁은 눈으로 바라본 작품의 세계는 어느 순간, 멀리서 뒤돌아보았을 때 그동안 보지 못했던 밑그림을 선사해 줄 경우가 많다. 또한 전혀 논리적 맥락이 필요하지 않는 시의 언어도 있으며, 간혹 시의 언어가 논리적 해석을 강력히 거부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러나 시를 비평하는 행위는 결국 시가 가진 형식이나 내용의 한 지점을 붙잡고 의미를 불어넣는 일이다. 논리성이 필요없는 시에 대해서도 일정한 논리를 불어넣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를 바라보는 가슴과 머리가 서로 길항하고 공모하는 가운데 배태된 언어들이 이 책에 가득 고여 있다. 그 속에서 시가 가진 언어의 몸을 이곳저곳 눌러볼 수 있었다. 필자의 글은 어쩌면 가치평가나 의미부여 혹은 비판과 해석의 궁지에서 헤어 나오려는 몸부림의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 <책머리에> 중에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라는 개성있는 시집으로 시단에 활기를 불어 넣은 바 있는 이재훈 시인의 첫 번째 문학평론집. 이재훈 시인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현재 시단에서 활발한 비평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젊은 시인의 눈으로 본 시읽기는 과연 어떠한 탐색, 증언, 풍경으로 이어질까. 이번 평론집에서는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시의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시인의 감수성으로 시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흔적이 책의 곳곳에 남아 있다. 날 서 있거나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고 있는 비평의 언어는 아니지만 감수성 있고 풍부한 수사를 가진 비평적 언어가 매력이다. ‘딜레마’는 창작행위와 비평행위 사이에서의 고민에서 비롯한 상징적 언어이다. 이재훈은 시를 읽고 이해하고 가치평가하는 과정 중에서 논리적 전개가 아닌 감상적 직관이 자꾸만 글 속에 개입함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논리적 맥락으로 시를 읽어야 하는 이중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번 책에서는 이러한 딜레마들을 극복해가면서 성실한 시읽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저자 약력]

1972년 강원 영월에서 출생했다. 1998년 「현대시」 신인상에 <수선화>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연구서로 <현대시와 허무의식>이 있다. 현재 「현대시」편집장, 「시와세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중앙대, 경기대, 열린사이버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건양대, 서울산업대에에서 강의하고 있다.

[구성]

1부는 탐색(探索)의 장이다. 한국 현대시의 공시적 단면을 조감하거나 주제론을 다룬 글들이다. 먼저 1970년대 시문학을 다룬 글이다. 산업화시대라고 말하는 70년대 시문학을 극복의 과제와 새로운 활로를 찾는 관점으로 파악했다. 다음으로 1950~60년대 시 중에서 모더니즘 시를 다룬 글이다. 모더니즘의 계보 속에서 50~60년대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구체적인 텍스트 분석을 통해 해명한 글이다. 기독교적 상상력을 다룬 글은 현대시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구현한 중요한 시인들을 중심으로 그 형상화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2부는 증언(證言)의 장이다. 증언은 현장에서 발표한 시에 대한 나름의 분석보고서이다. 계간평이나 월평을 통해 2000년대 이후에 잡지의 현장에서 발표된 시편을 탐색한 글들이다. 최근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시인들의 개성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3부는 풍경(風景)의 장이다. 시집 해설이나 서평 혹은 한 시인의 시세계를 다룬 글들을 모았다. 김영태, 이윤택, 김백겸, 김영남, 배용제, 위선환, 장석원 등을 비평하고 있다. 각 시인들은 저마다 개성있는 어법과 세계관으로 자신의 집을 짓고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 풍경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제1부 탐색
근대라는 딜레마, 혼돈의 질서
부정과 극복의 시학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기독교적 상상력

제2부 증언
새로운 증언의 목소리들
변신과 귀환
일상성의 몇 가지 양상과 전망
구멍의 시학
언어의 사원과 불멸의 노래
삶과 죽음이라는 운명의 변증법
풍경의 미학적 전거(典據)들
성찰의 풍경

제3부 풍경
무욕(無慾)과 정적(靜寂)의 세계 - 김영태 시집 『누군가 다녀갔듯이』
야성의 회복과 상생(相生)의 세계 - 이윤택 시집 『나는 차라리 황야이고 싶다』
비밀정원을 향한 영혼의 모험 - 김백겸의 시세계
성찰의 시학 - 김정희 시집 『세상을 닦고 있다』
치유와 구원의 시학 - 이원로 시집 『모자이크』
꽃과 신(神)의 기호 찾기 - 전길자 시집 『꽃의 기호』
자연의 전사록(轉寫錄) - 유승도 시집 『차가운 웃음』
유폐된 원형의 꿈과 그리움의 시학 - 윤지영 시집 『물고기의 방』
'흥'의 시학 - 김영남 시집 『푸른 밤의 여로』
소멸의 자리에서 진화하는 生의 감각 - 배용제 시집 『이 달콤한 감각』
기원(起源)과 관계의 시학 - 박강우 시집 『병든 앵무새를 먹어보렴』
관통의 수사학 - 위선환 시집 『새떼를 베끼다』
'검은 새'의 알과 아프락사스 - 장석원 시집 『아나키스트』
몽상의 감각들 - 박장호의 시세계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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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첫 연구서인 <현대시와 허무의식>을 출간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학술정보 ISBN 978-89-534-7797-1 93810 2007.11.15일 발행 15,000원


허무의식은 단순한 역사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유의 근본성격이며 근대에 들어서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중요한 인식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로 인해 허무의식은 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적 사유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책머리에]
이 책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문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창작뿐 아니라 문학에 대한 많은 이론적인 부분들을 연구할 수 있었다. 특히 필자가 ‘허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연구 주제를 찾을 때부터였다. 창작과 학업과 생업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힘든 나날 속에서 문득 모든 일들이 회의적일 때였다. 노을과 구름과 꽃의 이름도 잊은 채 이 무슨 몸짓인가. 힘들 때마다 읽었던 헤르만 헤세, 니체, 파스칼을 들고 다녔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구원의 완성을 향해 온 정신을 불사른 자들이었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능한 모든 신념에 회의(懷疑)하는 고투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거대한 역설이다. 그들은 삶의 모든 회의와 절망을 의지로 변화시킬만한 내공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리고 허무의 에너지를 가진 시인들이 눈에 들어 왔다.
허무의식은 일반적인 허무주의의 사상적 입장이 시를 통해 미학적으로 구현된 시의식을 말한다. 허무의식이 시세계를 이해하는 주요 개념어로 사용된 역사는 짧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허무’는 시에 나타난 주요한 정신적 요소였다. 허무의식은 세계와의 불화를 나타내는 인식적 방법이며, 세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역사적 현실 속에서 불화와 부정에 기반한 태도나 지향은 역사적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선명히 부각된다. 이런 맥락에서 유치환, 박인환, 이형기, 강은교는 각각 특수한 연대의 역사적 상황을 동력으로 삼는 현실인식을 가져왔으며 한국 현대시사에서 허무의식을 자신의 가장 중심적인 시세계로 삼아 왔다. 즉 이들에게 허무의식은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며,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의 지향점을 찾는 인식의 핵심 내용에 속한다.
논문을 쓰면서 특히 어려웠던 부분은 허무주의의 이론적 기반이 한국의 현대시에 어떻게 투영되었는가를 탐색하는 점이었다. 필자의 철학에 대한 지식이 짧고 공부가 부족하여 이 부분을 심도있게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해 아쉽다. 대신 꼼꼼한 나름의 시분석을 통해 허무의식이 한국의 현대시에 어떠한 양상으로 투영되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번 책은 허무의식이 현대시에 보편적인 인식의 방법임을 밝히고, 그 시의식이 어떠한 양상으로 펼쳐졌는지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결과물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문제의식만 던졌을 뿐이다. 이번 책이 가진 문제의식을 통해 허무의식이 현대시에 어떻게 수용되고 표출되는지를 더 깊게 파악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필자에게는 이 책이 문학 연구의 첫 이정표가 되는 셈이다. 많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해 세상에 책을 내놓는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선생님들의 은혜를 입었다. 먼저 학위논문을 지도하여 세심하게 연구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시고 가르쳐주신 오세영, 감태준, 최문자, 구수경, 유성호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동안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잘 가르쳐주시고 지도해주신 신상웅, 이동하, 전영태, 이승하, 박철화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대학에서부터 학업뿐 아니라 참된 인간상을 몸소 가르쳐주신 김동기, 정경일, 김병국 선생님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원구식 선생님을 비롯한 현대시 식구들, 김영남 선생님, 함께 대학원에서 공부한 동학들, 그밖에 도와주고 격려해주신 많은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곁에서 지켜준 가족들의 배려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새벽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루도 빠짐없는 부모님의 기도가 내 삶의 가장 큰 재산일 것이다. 논문을 쓴다는 핑계로 매일 늦은 귀가와 부족한 관심을 잘 참고 도와준 아내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나의 논문 집필을 지켜보아준 이제 막 태어난 복둥이딸 은율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비 내리는 밤이다. 포근한 밤이다.

2007년 한여름에
이재훈

[목차]

Ⅰ. 서론
1.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2. 연구사 검토
3. 연구범위와 연구방법
4. 허무의식의 이론적 고찰

Ⅱ. 生의 의지와 생명성 - 유치환의 시
1. 식민지체험과 현실인식
2. 허무의지와 생명성
3. 아나키즘과 관념성

Ⅲ. 神의 부정과 절망의식 - 박인환의 시
1. 전후체험과 현실인식
2. 반신적(反神的) 태도와 비극적 세계 인식
3. 근대허무주의와 지적 감상성

Ⅳ. 소멸과 생성의 변증법 - 이형기의 시
1. 문명체험과 현실인식
2. 문명비판과 소멸인식
3. 변증법적 인식과 초월성

Ⅴ. 역설과 순환의 서사 - 강은교의 시
1. 내면체험과 존재탐구
2. 죽음의식과 공동체 서사
3. 역설적 인식과 순환성

Ⅵ. 결론

Posted by 이재훈이
,



* 2005년 9월 28일 초판 발행
* 121*186|112쪽|7,500원
* ISBN 89-546-0046-8 02810
* 문학동네

1998년 『현대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명료한 이미지와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들을 선보여온 이재훈 시인의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가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총 44편의 시들은 머릿속에 자유로이 떠돌던 혼돈을 지난 기억들에 하나하나 끼워넣는, 독특한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존재의 두려움에 이끌리다
이재훈의 시는 마치 불의 뜨거움을 알고도 그 바알간 빛에 이끌리는 것처럼, 두려움에 대한 내밀한 경험들을 꿈속에 혹은 현실의 어느 곳에 고스란히 드러낸다. “내 영혼이 하루 동안 수십 바퀴의 절망과 환희를 돌아오면, 하얀 꿈이 몇백 년을 지나 내 앞에 멈추곤 한다”(「어느 꿈길」)라고, “밤이 되면 말을 타러 갔었지/잠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는/깊은 동굴이었지”(「사수자리」)라고 고백하는 그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고독한 모습들은 ‘거리’라는 확장된 장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도시의 거리를 걷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내 기억을 훔쳐간 그 거리. 나는 땅바닥에 입술을 갖다대었어. 수많은 발자국들과 친해지고 싶었던 그 거리. 사람들이 뱉어놓은 말들이 거리에 흩날렸지. 말들이 글자가 되고, 무거운 책이 되었어.”(「거리를 훔치다」) 친해지고 싶던 곳이지만 그곳엔 툭 뱉어놓은 말들만이 흩날리고 그것들이 결국 무거운 책이 되어 자신을 힘겹게 만들고 마는 거리. 그 거리를 쏘다닌 발을 부끄럽다고 하는 고독과 나르시시즘에 대한 반성에 대해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그 ‘곤고함’과 ‘견딤’과 ‘비명’ ‘목마름’과 ‘배회’야말로 거리에서의 젊은 날을 함의하는 이재훈의 생의 형식들”이라고 이야기한다.
내면(자신)을 드러내는 또하나의 방법으로서 이재훈은 소리에 집중한다. “한밤중이 되면 내 몸에 수선화가 핀다, 방 안의 모든 소리가 잠을 잘 무렵이면, 내 몸에 꽃씨 앉는 소리가 들린다, (……) 내 몸에 피는 꽃, 어머 내 몸에 핀 꽃, 나르키소스의 영혼이 노랗게 물든, 수선화가 핀다,”(「수선화」)라고 말하는 그는 자기 자신에게, 자신한테서 보여지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몰입하는 나르키소스처럼 자신과 또다른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인다. 소리에서 말과 노래로 한 발자국 나아간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이재훈의 시는 세상에 대한 응시와 관찰 그리고 내면의 ‘신성(神聖)경험’에 대한 고백과 보고이다.

어느 순간, 시가 내게로 왔다
시가 ‘사랑의 대상이었다가 고백의 성소였다가 다시 불안의 자리로 옮겨가면서 여전히, 존재를 옥’죈다고 말하는 이재훈 시인은 자신의 시가 ‘반성’이 아닌 ‘고백’이라고 이야기한다.

‘고백’은 생각 이전에 눈물이 앞서는 경험이다. 상징이 불러일으키는 그 무엇. 그 무엇의 생각. 내게 그것은 ‘흠’으로부터 출발된다. 어쩌면 내 말은 고백이다. 내 말이 간신히 시가 되는 이유는 눈물을 애써 감추기 위해 다른 부족의 동화(童話)를 꿈꾸기 때문이다. 먼 이방의 부족들 속에 들어가 말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꿈이다. 언제나 이곳에서 저곳을 그리워하기만 한다. ―‘시인의 말’ 중에서
어린 시절 말에 서투르고 머뭇거리는 시간조차 견디지 못해 속으로 말을 되삼키던, 여전히 낯선 이방인이라 자신을 여기는 시인에게 문학에의 욕망, 시원(始原)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고통과 아픔에 비명을 지르며 내달리는 이재훈의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는 시에 대한 새로운 자유로움과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하프를 잃어버린 도시의 오르페우스……

우기(雨期)를 견디는 도마뱀의 숨소리처럼 처녀성을 지니고 있는 이재훈의 시는 오늘의 시에 대한 새로운 보고서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이 신선함은 미래의 어디서 훈풍처럼 감지되는 것일까. 시인은 이 도시에서 온몸에 파란 움이 터진 시의 이파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삶을 노래하고 있다. 시 도처에서 발견되고 갈망되고 있는 낙원의식, 오염되지 않은 자신의 부족과 종족언어에 대한 향수. 그가 속해 있는 부족은, 최초의 말이 태어나 번식하는 마을이요, 밤하늘의 사수자리가 대초원을 이루는 곳이다. 그곳에 하프를 잃고 온 그는 이렇게 반문한다. ‘왜 하필, 이 늙은 땅에서 절 잃으셨나요?’ 챙 넓은 솜브레로 모자와 차우를 걸친 현대의 오르페우스처럼 그의 음조는, 도시의 우수와 자연의 웃음과 밤이 낳은 미아, 그리고 일상적으로 돌아갈 한 얼굴의 죽음이나 거북이처럼 엎드려 살면서 병들어가는 아침의 영광에 바쳐지기도 한다.
이 첫 시집에는 새로운 언어의 처녀성에 처음으로 눈뜬 자의 설렘과 감동을 포획하는 그 최초의 눈이 있다. 조정권(시인)

이재훈 시의 시공은 광대하다. 그 광대함은 ‘겹침의 시학’에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시인은 ‘빌딩나무 숲’인 이곳에 사막과 우주와 원시의 시공을 겹친다. 그러자 몸의 결핍과 영어(囹圄)는 깊어지고, 영혼의 시공은 광대해진다. 깊음과 광대함은 ‘태양이여’라고 시인이 그 광대함을 부르는 행위, 시인의 시작(詩作)을 통해 시인의 몸 속 깊은 곳에서 겹쳐지고, 만난다. ‘태양이여’ 하고 시인이 외치자 시인의 ‘항문으로 뱀(태양)이 숯머리를’ 깊이, 뜨겁게 ‘들이민’다. 그리하여 광대함에 머리를 둔 시인이 잠자리에서 깨어날 때마다, 우주는 별자리 하나씩을 새로이 탄생시키고, 모세는 다시금 출애굽하며, 시인은 창세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마치 처음인 듯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인 이 시집의 시들을 쓰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김혜순(시인)

이재훈
1972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현대시』 편집장, 『시와세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중앙대, 건양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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