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

 

‘남자의 일생’ 부분
- 이재훈 (1972~ )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진 애벌레.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
온 생을 바쳤다.
늦은 오후.
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
그림자 잦아들고
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



양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음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나는 음지를 좋아하는 편이다. 저녁에도 불끄고 있기를 즐겨 한다. 안경도 색이 들어간 안경을 주로 쓴다. 햇빛 알레르기가 없다고 할 수 없다. 햇빛을 싫어하는 마음도 햇빛 알레르기의 일종이다. 이재훈은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 온 생을 바치는 것을 “남자의 일생”이라고 했다. 혹시 여자는 현실주의, 남자는 이상주의(혹은 낭만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낭만주의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욕을 그동안 많이 들었다. ‘현실에 대한 적극적 외면’이라고 말하면 점잖은 표현이 된다. 현실주의도 나무랄 생각은 없다. 현실주의가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고 잠을 재웠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법. 나는 요즘 햇빛이 들라치면 차양을 거두어 올린다. 햇볕을 쬐고 싶어서.
<박찬일 시인>
2008. 11. 6일자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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