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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02 MBC DMB 내 손안의 책 <나는 시인이다> 인터뷰
  2. 2012.01.29 한국시인협회상 유안진씨 · 젊은 시인상 이재훈씨 1
  3. 2012.01.18 [릴레이 편지] 시간이 멈추면 우리는 날겠지 - 김참 시인께_ 이재훈
  4. 2012.01.18 [릴레이 편지] 쓸쓸한 날의 기록들 - 이재훈 시인께_ 정재학
  5. 2012.01.03 MBC FM라디오, 아침의 행진_ <연금술사의 꿈>
  6. 2012.01.03 EBS 詩콘서트 <명왕성 되다>
  7. 2011.12.25 이재훈 시집 <명왕성 되다> 광고
  8. 2011.12.14 <현대시> 2011년 12월호 '올해의 좌담' 내용 중에서
  9. 2011.12.09 <명왕성 되다> 문화예술위 우수문예도서, <나는 시인이다> 문화관광부 올해의 교양도서로 선정!! 3
  10. 2011.12.07 '시우주' 시낭송회 특강
  11. 2011.12.02 문학동네 시랑사랑 낭독회 <시판사판>
  12. 2011.10.12 열림원 문학창작교실_ 이재훈 강의 시작
  13. 2011.10.06 장미가 있는 산책길의 메모_ 이운진의 시편지
  14. 2011.10.05 [아이뉴스24] 시인들은 어떤 사람일까…이재훈의 <나는 시인이다>
  15. 2011.10.05 [문학라디오] 문장의소리 작가 황정은 DJ와 인터뷰
  16. 2011.10.04 [문장] 김선우의 문학집배원_ 재킷을 입은 시인
  17. 2011.10.04 [주간 동아 / 시인 오은의 vitamin 詩] 카프카 독서실
  18. 2011.10.04 [한국일보] 진은영의 시로 여는 아침_ 명왕성 되다
  19. 2011.10.04 [매일경제] 이재훈 두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 출간
  20. 2011.10.04 [연합뉴스] 도시의 생태와 내면의 쓸쓸한 풍경
  21. 2011.10.04 이재훈 시집_ 명왕성 되다(민음사, 2011)
  22. 2011.09.13 도시의 감각, 글귀들, 귀신들 / 박서영
  23. 2011.09.09 첨단의 위기 속 우리의 자화상 / 김선주
  24. 2011.06.10 [대담] 빌딩나무 숲을 거니는 비교秘敎의 사제_ 이재훈-신동옥
  25. 2011.06.10 작품론_ <더 많은 햇살을!>_ 강동호
  26. 2011.06.10 별의 시인 윤동주_ 주제로 읽는 현대시 산책 ⑫
  27. 2011.06.10 비움의 시인 김관식_ 주제로 읽는 현대시산책 11
  28. 2011.06.10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29. 2011.06.10 문학집배원 | 시배달 | 김선우_ 박성룡의 <교외>(이재훈 낭송)
  30. 2011.06.10 [단신기사들] <나는 시인이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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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한국시인협회상 유안진씨 · 젊은 시인상 이재훈씨
  • 입력시간 : 2012.01.25 20:17:23
한국시인협회(회장 이건청)는 제44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자로 유안진씨를 선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둥근세모꼴>. 유씨는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후 시집 <달하> <월령가 쑥대머리>, 산문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등을 냈다. 제8회 젊은 시인상에는 시집 <명왕성되다>를 낸 이재훈씨가 선정됐다. 시상식은 3월 24일 오후 예장동의 '문학의 집 서울'에서 열린다.

[한겨레] ‘한국시인협회상’에 유안진 시인
등록 : 20120125 19:45

 

한국시인협회는 25일 ‘44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자로 유안진(사진) 시인선정했다. 수상작은 시집 <둥근세모꼴>. ‘8회 젊은 시인상’은 시집 <명왕성되다>의 이재훈 시인이 받는다.

[연합뉴스] 한국시인협회상에 유안진 시인, '젊은 시인상'은 이재훈씨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한국시인협회(회장 이건청)는 제44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자로 유안진 시인을 선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둥근세모꼴'.

유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후 시집 '달하' '월령가 쑥대머리' '봄비 한 주머니', 산문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등 다수의 작품을 냈다.

제8회 젊은 시인상에는 시집 '명왕성되다'의 이재훈 시인이 선정됐다.

시상식은 3월24일 오후 예장동의 '문학의 집 서울'에서 있을 예정이다.

mihye@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2/01/25 15:41 송고


[동아일보] 한국시인협회상 유안진씨, 젊은시인상 이재훈씨

기사입력 2012-01-26 03:00:00 기사수정 2012-01-26 03:00:00

유안진 시인(71)이 제44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 시집은 ‘둥근세모꼴’. ‘젊은 시인상’에는 시집 ‘명왕성 되다’의 이재훈 시인(40)이 뽑혔다. 시상식은 3월 24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 집, 서울’에서 열린다.

[조선일보]

한국시인협회상 유안진 젊은시인상은 이재훈씨

입력 : 2012.01.26 01:17

유안진 시인의 시집 '둥근세모꼴'(서정시학)이 제44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또 제8회 젊은시인상은 이재훈 시인의 시집 '명왕성되다'(민음사)가 뽑혔다. 심사위원은 신달자·나태주·허형만·한영옥·박주택 시인. 시상식은 3월 24일 3시 서울 문학의 집.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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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추면 우리는 날겠지
― 김참 시인께

 

이재훈

 

 

참 형, 오랜만이네. 지난 8월 부산 광안리에서 허만하 선생님을 함께 뵌 후 아직 보지 못했네. 그날 바다 위를 흐르는 검은 구름은 정말 내 취향이었는데. 나는 비오기 전의 그런 하늘과 구름이 좋네. 날씨는 꾸물꾸물했지만, 함께한 사람들과 축축한 바다 내음으로 인해 가슴이 따스해지는 날이었네. 그날도 집에 간다는 형을 붙잡고 덕천동까지 갔더랬지. 그러고 보니 올해는 두 번 만났네. 올 2월에는 정재학, 오은 시인과 부산과 김해로 놀러갔었지. 그때 형의 보금자리가 있는 김해로 가서 뒷고기를 참 맛있게 먹었네. 뒷고기란 말은 정육업자들이 맛있고 희귀한 부위의 고기를 뒤로 숨겨놓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형이 말해줬지. 형의 작은 아파트에는 책들로 빼곡하고, 침실에는 LP를 틀 수 있는 전축이 있었네. 늦은 밤까지 LP를 맘껏 들을 수 있어 귀가 호강했지. 그때 들었던 산울림과 정난이, 김지연과 리바이벌크로스는 아직도 귀에 쟁쟁해. 또 다음날에는 계획에도 없었던 거제도로 달려가 해변가 돌멩이를 주웠지.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난蘭을 캐러 다니는 일도, 물고기를 키우는 일도 형에게 모두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네. 참!, 형에겐 음악이 있었지. 아트록의 마니아인 형의 음악취향에 한때 나도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기억나나?
지난호 정재학 시인의 편지를 받고 여러 상념들이 떠올랐네. 뭐랄까, 우정이란 게 어떤 걸까 하는 생각. 이런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네. 참형과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보는 사이지만, 늘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그걸 문학적 동지의식이라고 해둘까. 형의 시를 처음 읽은 건 내가 습작하던 시절이었지. 가장 처음 읽었던 것은 <문학사상>에 발표한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기억은 확실치 않네. 가장 확실한 기억은 <문학지평>이라는 부산에서 발간하던 잡지였네. 정확히 <문학지평> 1997년 가을호(통권 10호). 발행인은 이상개 시인, 편집장은 김형술 시인. 당시에는 열렬한 문청이어서 한국에서 발간하던 모든 문예지들을 다 읽어치울 때였지. 대학시절, 우연히 교수님 방에 들렀다가 구해가지고 온 잡지에서 형의 시를 읽었지. 신작소시집이라는 지면에 「굴뚝」 외 7편의 시가 게재되어 있었네. 그 지면에는 「굴뚝」, 「간빙기의 추억」, 「그렇다」, 「사차원 지구」, 「독버섯 요리」, 「늑대 인간」 등 첫 시집에 수록된 많은 시들이 발표되었지. 그중 나는 「독버섯 요리」라는 작품을 좋아했는데 시를 프린트해 문학동아리에 나눠주며 마구 떠들던 생각이 나네. “시끄러운 비둘기를 마구 두들겨 주었다 비둘기들이 축 늘어졌다 비둘기들을 마당에 집어던졌다 굶주린 개들이 달려들었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서 내려와 파란 버섯 두 개를 쇠솥에 집어넣으며 노란 버섯 한 조각을 씹어먹었다 머리 속에서 댕댕댕 종소리가 울려퍼졌다”(「독버섯 요리」 부분). 친구들은 쟤가 왜 저래? 하는 표정이었지. 그날 머리 속에서 댕댕댕 종소리가 울리도록 술을 먹었지. 벌써 한참이나 멀찍이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 젊은 시인을 보며 질투라도 났던 걸까. 그 뒤로 나는 형의 애독자였는데, 드디어 등단 이후 형을 만나게 되었지.
1999년 5월 <현대시>가 주최한 대구세미나. 둘째날 오후, 일행은 세미나를 마치고 대구 두류산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지. 형은 부산에서 김경수, 노혜경 시인 등과 함께 행사에 참석했더랬지. 그때 현대시 편집위원이었던 김정란 선생님께서 내 손을 잡아끌고 김참 시인에게 데리고 갔지. 이재훈과 김참이 서로 또래이고 시적으로 통하는 점이 많을 테니 친하게 지내보라는 말씀. 그때는 데면데면하게 인사한 기억이 나네. 나는 쑥스러워 마음속의 반가움을 제대로 표현 못했었지.
곧이어 1999년 6월쯤에 형이 <현대시동인상>을 받았는데, 형은 시단의 가장 촉망받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었지. 소위 모던한 풍을 가지고 있었던 시인들은 모두 김참이라는 젊은 시인의 시를 얘기했으니까. 첫 시집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1999)를 출간하고 이어 <미로여행>(2002), <그림자들>(2006)까지 형은 누구보다 성실히 자기만의 세계를 확장하며 시를 써왔네. 특히 이미지를 통한 시공간의 이동과 역전하는 서사의 구축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적 방법론은 탁월했지.

네가 잠을 자기 위해 거울로 된 방바닥에 드러누우면 거울 안 깊고 깊은 곳에 있는 그들이 낮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일년이 지나자 달에서 날아온 비행접시들이 쉴새없이 지붕들 위를 날아다녔고 불길한 검은 새들이 들판을 가득 메웠다. 너는 거울 속에 있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바깥에서는 하얀 밤은 계속되었다. 하얀 밤 하얀 밤 하얀 밤들이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좀처럼 잠들 수 없었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너는 거울 속에 있는 그들을 하나씩 잡아먹었다. 나는 이빨을 딱딱거렸다. 너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두려웠다. 마침내 너는 거울의 방에서 걸어나왔다. 그러나 나는 어두운 골방에 틀어박혀 흑백영화를 보며 시간을 죽였다. 그건 길고도 지루한 일이었다. 나는 더 이상 볼 영화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하얀 밤에 자막이 내려왔다. 사람들과 동물들, 나무들과 물고기들의 길고 긴 이름이 천천히 내려왔다.
― 「거울 속으로 들어가다」 부분

우리는 거울 속의 일들이 저 먼 꿈속의 일이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극적인 실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체득했을까. 형을 십년 넘게 보면서 점점 신뢰가 더 쌓여간다는 느낌이 들어. 그건 인간적이며 문학적인 게 모두 교차된 지점에서의 신뢰이겠지. 눈치보지 말고 혼자 가버리라는 말. 우리에겐 그런 것밖에 없잖아. 형은 현재에도 열심히 읽고 쓰고 듣고 생각하겠지. 2002년 <현대시동인상> 시상식 후 새벽 예닐곱 명이 여인숙에 모여 팬티바람으로 무슨 말들을 그리 많이 했을까. 다들 제각각 독고다이 스타일의 시인들이 2004년 청주에 모여 하룻밤을 지내면서 어떤 열정의 잔해들이 재처럼 마음에 남았을까. 그때도 지금 아니면 우리가 언제 또 모이겠어, 하는 말을 했었지. 조금은 게으르고, 무심하고, 데면데면한 우리지만 서로 지켜봐주며 함께 길을 간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날이네.
날씨가 춥네. 참 형, 이 겨울이 가기 전 한번 모이자구.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모이겠어.

_ <현대시>, 2011년 12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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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날의 기록들
― 이재훈 시인께

 

정재학

 

 

자주 그리운 재훈 형,
편지 자체를 정말 오랜만에 써보네. 정보화시대 자체가 편지 쓰기를 방해하고 있으니 나도 그 영향을 받나봐. 나는 스마트폰을 쓰지도 않고 016 구형 핸드폰을 쓰는 사람이지만 말이야. 사람들끼리 접촉은 많아지지만 깊은 교류는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 그래서 형이 나의 깊은 친구라는 것이 항상 든든하고 고마워.

난 모든 것은 결국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서 ‘운명’이라든지 ‘필연’이라는 것은 별로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형과의 만남은 ‘좋은 우연’을 넘어 ‘필연’이라는 말을 붙여도 좋을 것 같아. 우리는 드물게, 처음 본 이후 바로 특별한 친구가 되었으니까.
2001년 봄이었지. <현대시> 원고 마감을 넘겨 보내게 되어 미안한 마음으로 형에게 메일로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형의 아름다운 등단작 「수선화」를 비롯해서 발표작들을 감명 깊게 읽었던 터라 형을 보고 싶었어. 찾아보니 그때 내가 보낸 메일은 지워졌는데 형의 답장은 남아 있더군. 우리는 지금도 변함없이 그때와 같은 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지. ‘나는 시인이다’와 같은 자부심이 느껴지는 아이디 ipoet,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이 뷰캐넌’의 buchanan. 내가 최초로 받은 형의 메일에 “저도 꼭 뵙고 싶군요./ 정 시인의 시를 인상 깊게 읽고 있어서…/ 연락드릴게요” 하고 적힌 것을 보니 10년 전의 봄기운이 느껴지는 듯 해. 메일을 나눈 이후에 약속을 잡고 우리는 종로 대폿집에서 밤늦게까지 정종을 마셨어. 그 이후 나의 20대 후반과 30대는 형 없이는 얘기 할 수 없는 시절이 되었어. 평생 마실 술을 그 시절에 다 마셔버리고 평생 피울 담배도 그때 다 태워버린 것 같아. 2004년 여름밤 종로 어디에선가 막걸리와 파전을 먹고 내가 요즘 너무 무기력하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지.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무기력했을까. 실험적인 시에 대한 고민이었을까. 사는 것 자체가 버거웠을까. 복합적이었겠지만 그 말을 했던 순간은 또렷이 기억에 남아. 다시 그 술집에 가도 그때 우리가 마셨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쓸쓸한 날의 기록
― 정재학에게


무기력하다 했던가
마지막 술잔을 남겨놓고
우리가 귀가하는 순간
하늘 아래 어디쯤에선 꽃이 피었을 거다
꽃을 보고도 그걸 표현할 방법을 몰라
그렇게 헤매었던가 우리 한낱
일렉기타의 음률과 철 지난 유행가에
더 감상적이었잖은가
네게도 말했지만
나는 백 년의 무명을 견딜 것이다
그렇게 철없이 살리라
 
더 이상 만질 것도, 들을 것도, 말할 것도 없는 어둠
소주 몇 병 먹고 어둠과 말할 수도 있지만
그만한 자족으로 그 어둠 속
텅 빈 공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옥상 위에 올라가 날아보자
네 몸이 땅에 떨어져 옆구리가 찢어지고
사람들의 입가에 오르내린다 해도
내가 믿는 예수처럼
그 옆구리를 기억할 수 있을까
어느 요절한 시인처럼
흉흉한 소문 속에 네 아픔이 기억될 수 있을까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실패한 서정시인
서럽고 아름다운 자연은 이미 다 해먹고
남은 상상으로 목울대를 울리는,
이제 우리의 가난도 팔지 못하는,
 
거울 속에서 내 눈을 보았다
무얼 견디는지도 모르는
몽롱한 얼굴이 날 바라보고 있다

메타시로도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시야. 형이 발표하기 전에 나에게 며칠 전 쓴 시가 있다며 전화로 들려주었는데 그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서럽고 아름다운 자연은 이미 다 해먹고/ 남은 상상으로 목울대를 울리는”, 이 구절은 마치 우리 세대의 시인들을 대변하는 것 같아. 무기력했지만 우리의 몸짓과 말이 시가 되는 아름다운 시절이었지. 형의 시만큼 좋은 시는 아니지만 나도 답시를 썼지. 그러고 보니 편지였어.

편지, 영월에서
― 이재훈 兄의 「쓸쓸한 날의 기록」에 부쳐


그때 우리가 있었던 곳은 형의 고향 강원도 영월이었습니다. 형은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더듬거리며 태어난 동네를 찾고 있었어요. 눈 덮인 들판에서 전화도 했었죠. “엄마, 내가 태어난 곳이 어디에요?” 나는 하필 바람과 다투며 지도를 쫓아 들판을 뛰어다녔습니다. 지도가 얼마나 뒹굴었을까. 그때 하늘에서는 새 한 마리 날고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바람이 멀리 데려간 지도를 한참 만에 잡을 수 있었지요. 형이 태어난 곳은 이미 지도상에는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폐광촌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름이 없다고 그곳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형은 저에게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물론입니다. 형은 시를 썼을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서정시인입니다. 저에게 ‘서정시’는 늘 이상한 개념입니다. 시 자체가 서정인데 마치 그 말은 동어반복처럼 느껴집니다.
…(하략)…

형이 어머님께 전화를 하는 동안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서, 들고 있던 지도가 날아가서 한참을 지도를 잡으러 뛰어다녔던 기억이 생생해. 형은 고향에 갔지만 고향을 만날 수 없었지. 지도는 그저 현재의 지리적 기록일 뿐 형의 역사를 담을 수는 없어. 시적인 순간을 그대로 옮긴 편지였어. 갑자기 형의 두 번째 시집 중 한 구절이 생각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통각이 없는 시간들./ 모든 사물은 그저 멀리 있는 상징일 뿐입니다.// 요즘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제 존재가 바뀝니다./ 때론 동물이었다가 때론 식물이고/ 때론 명징했다가 때론 무질서합니다./ 나 또한 상징에 불과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것인데, 머리가 맑았으면 좋겠어. 왜 이리 내 머리 속은 항상 구름이 껴 있는지……. 언제 우리 머리가 시리도록 찬바람 부는 산이나 겨울바다로 떠나보자. 우리가 맑아지지 않더라도 우리의 몽롱한 눈동자라도 만나러.

_ <현대시>,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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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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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30일, 금요일, MBC FM라디오, 아침의 행진, 시가 있는 아침]


연금술사의 꿈

 

이재훈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촛불도 아니고 감나무도 아니다.
미끈한 자동차도 아니고
달콤한 솜사탕도 아니다.
차갑고 텅 빈 사물에
쇳물을 들이붓고 싶다.
나는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이었다.
꿈을 꾸면
붉은 별 하나가 내게 떨어지는 사건이었다.
손이 댈까 만지지도 못한 별이
마당에 내려와 날 또렷이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엎드려 울지 않겠다.
슬픔을 우스운 몸짓으로 과장하지 않겠다.
해거름에 사양(斜陽)을 보며 사흘을 울겠다.
그러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겠다.
그 비밀의 성소(聖所)가 내 집이었다.
소멸이
내 먹는 밥이었다.


*Q 배한봉 시인을 모셨습니다. 오늘 소개할 시는?

*A 오늘은 이재훈 시인의 시 <연금술사의 꿈>을 소개합니다.

*Q 이재훈 시인은 어떤 시인인가요?

*A 이재훈 시인은 [현대시]로 등단한 중견시인인데요. 최근 민음사에서 [명왕성 되다]라는 시집을 펴낸 바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시 <연금술사의 꿈>은 바로 이 시집의 제일 마지막에 실린 작품입니다.

*Q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A ‘mbc fm라디오 아침의 행진 가족’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나요? 그 꿈을 금(金)이나 은(銀)과 같은 귀금속에 비유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얻기 위해 날마다 노력하는 연금술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시 <연금술사의 꿈>은 바로 우리 모두의 꿈이자 이 시를 쓴 이재훈 시인의 꿈인 것입니다. 이재훈 시인은 시인이니까 ‘좋은 시를 쓰는 꿈’을 꾸겠군요. 그러니까 이 시의 제목을 직접적으로 한 번 바꿔보면 ‘좋은 시를 쓰려는 자의 꿈’ 정도가 될 수 있겠지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자기를 녹이고 소멸시켜 새로운 것으로 탄생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스스로를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이라고 규정합니다. 그 “빛”은 바로 “꿈”속에서 “날 또렷이 노려보는” “붉은 별”의 빛입니다. 붉은 별은 바로 ‘시’의 상징인 것이지요. 시인들은 대부분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밤을 새우며 끙끙거리는 일이 다반사인데요. 이재훈 시인은 그동안 참 많이도 엎드려 울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이제는 엎드려 울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 대신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겠다.”고 다짐하는군요. 그러니까 이 시 <연금술사의 꿈>은 자신을 녹여 성스러운 에밀레종을 만들어내듯 자신의 진기를 다 뽑아서 좋은 시를 쓰겠다는 시인의 다짐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시인 것입니다. 소멸함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것. 이것은 재생적이고 윤회적인 불교 정신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묵은 한 해가 감으로써 새해가 시작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출근하면 종무식이며 여러 가지 일로 바쁜 일들이 많겠지요? 올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우리 모두 멋진 ‘연금술사’가 되어 새해에는 꼭 마음속 꿈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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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詩콘서트 2011년. 9. 4일. 제1회 방송

http://home.ebs.co.kr/poem/index.html
다시듣기 1회 | 50분부터 낭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DJ : 김태용 감독 | 작품선정 : 김소연 시인.


김태용 감독의 낭송 <명왕성 되다>

멘트 : 이재훈 시인의 <명왕성 되다>를 들으셨습니다. 끝도 없이 순환하는 지하철 2호선을 탄 채로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도시인의 비애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궤도 안에 있다고 해서 항상 안전한 것만은 아닙니다.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한 명왕성의 운명처럼 소외되서 이탈되고야마는 도시인의 비극이 <명왕성 되다>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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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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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중 문학평론가 허윤진의 말...


<벌레 11호>에서 나타나는 자기 부정의 신학적/존재론적 목소리는 이재훈의 <명왕성 되다>에서도 다른 양태로 나타납니다. 「연금술사의 꿈」 같은 시편에서 시 속의 목소리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선언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은 곧 소멸한다는 것이죠. 이재훈 시인의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도 그렇지만 이 시집에서도 저는 시인의 정신이 지닌 격格의 미학적 가치를 봅니다. 조정권이나 윤의섭, 정재학의 시에서 제가 감동을 받을 때는 절제된 수사 이면에서 투명하게 빛나는 시인의 인격을 볼 때거든요.

이재훈 시인의 경우에는 시인이 위대한 영광이 아니라 사소한 패배를 인정할 때 그의 인격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시집의 표제작인 「명왕성 되다」는 한때는 태양계의 행성이었으나 태양계에서 이제는 제외된 명왕성에서 파생된 ‘명왕성 되다(plutoed)’라는 표현을 주제화하고 있습니다. 내부에 들어설 수 없는 자, 인정과 부정 사이의 간극을 살아본 자는 명왕성처럼 어둡고 차가운 빛을 발합니다.

- <현대시>, 2011년 12월호 기획좌담 <세파에 흔들리며 세파를 흔들며> 중에서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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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간한 두 권의 책, 좋은 소식이 있었습니다.
<나는 시인이다>(팬덤북스)가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올해의 교양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http://www.mcst.go.kr/web/notifyCourt/notice/mctNoticeView.jsp?pCurrentPage=1&pSeq=6788

<명왕성 되다>(민음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11년 우수문학 도서보급사업에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아래는 선정평입니다.~^^

http://www.for-munhak.or.kr/idx.html?Qy=book3&fld=cGFydF9ib29rc195ZXNfYWE=&words=2011-4&nid=9158&page=1



"별자리의 혼처럼 볼 수 없는, 시의 검은 여백에서는 시인의 젖은 눈빛과 호흡이 심장처럼 뛰고 있을 것이다. 시집 『명왕성 되다』의 표정은 생각보다 멀리 뛰는 말이었고, 그 뜨거운 빛을 방울처럼 울려댔다. 일용근로자의 피로와 백수건달의 자책과 독학자의 자부심과 시인의 기상이 한 별자리로 앉아있다 ‘동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독자는 화들짝 놀란 유성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아쉬움을 햇빛처럼 눈이 부시게 보다 잃었을 때, 시인은 소멸의 그림자를 자신의 무릎에 가벼이 올려놓는다. 슬픔을 소진한 시인이 새로 얻은 별자리의 흔적을 감추고 있는 시집이다."


선정위원 /  이기인 안상학 강형철 유안진


'민음의 시' 175권. "이재훈 시의 시공은 광대하다. '빌딩나무 숲'인 이곳에 사막과 우주와 원시의 시공을 겹친다."(김혜순 시인), "그의 시는 오늘의 시에 대한 새로운 보고서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조정권 시인)라는 평을 받은 이재훈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

도시의 생태와 자신의 내면을 결합하며 한 시대의 쓸쓸한 풍경을 기록한 첫 번째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로 큰 주목을 받았던 그는, 이번 시집에서 소재와 착상의 범위가 더욱 넓고 풍요로워졌으며, 다양한 시편들을 통해 호흡과 리듬도 점점 확장되고 있다.

이재훈 시인에게 도시는 늘 새로운 탐구의 대상이다.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도시를 성찰한다. 시집 곳곳에서 지하철, 버스, 독서실, 저녁의 거리, 도서관, 골목 등 시인의 일상 공간들이 직접 드러나는데, 존재의 시원(始原)에 가닿고자 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도시 속에서 환상적이고도 동화적인 색채의 공간을 펼쳐 놓는다.

그 도시 속에서 '육십억 분의 일일 뿐'인, 그저 '먼지'처럼 '아무것도 아닌' '매일 출근하는 폐인'들의 고단한 삶이 펼쳐지며, 시인은 그 속에서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을 진하게 그려 낸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명왕성 되다(plutoed)'라는 말은,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한 사건에 빗댄 신조어다. 익명과 소외, 그리고 기계적 규칙성이라는 도시 생활자의 삶에서 그는 '명왕성'이 됨으로써 스스로 궤도를 벗어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끊임없이 구원을 꿈꾸고 있는데, 그에게 '구원'은 곧 '근원'이다. 이재훈의 시에서 근원적인 곳은 머나먼 어딘가가 아닌, 세속 도시의 구석구석에 내재되어 있다. 이 도시 안에서 시인은 세속적인 이미지 속에서 성스러움을 체험한다.


이재훈

1972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명왕성 되다』가 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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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낭송모임인 '시우주' 초청으로 특강을 했다.
11월 19일(토) 오후 3시, 남산 <문학의집>.
2000년대 문예지와 시의 현황과, 신화적 상상력에 대해 얘기했다.
끝난 후 저녁을 먹고, 노래방까지 갔다 왔다.
대단한 열정을 가진 모임이었다. 따뜻하게 환대해줘서 감사했다.
이들에게 시는 과연 무엇일까를 오래 생각했던 밤이었다.
시우주 카페에서 사진을 업어 왔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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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 시인의 <오빠생각> 출간 기념 낭독회.
김안의 게스트로 출연했다. 역시 무대 체질은 타고나야...

자세한 공연 후기는 아래 링크(문학동네 네이버 카페)를 참조.
시인과 게스트들의 시낭송하는 동영상도 볼 수 있다.

cafe.naver.com/mhdn/31887
cafe.naver.com/mhdn/31959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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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원과 함께하는 문학창작교실>을 오픈합니다!

30년 전통의 문학전문 출판사 열림원에서는, 고급 문학의 창작 저변과 향유 계층을 넓히고 재능 있는 문화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문학창작교실을 오픈합니다.
첫 번째 강좌로서 이재훈 시인과 신동옥 시인의 시창작교실을 개강하고 아래와 같이 가능성과 열정을 갖춘 예비 시인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 참고로 소설창작교실은 추후 개설할 예정입니다.


열림원과 함께하는 문학창작교실 시 강좌 제1기 수강생 모집

1. 모집대상 및 자격

* 좋은 시를 가려내고 좋은 시를 쓰고자 하는 분.
* 신춘문예나 문예지 공모 등을 통해 등단을 준비하시는 분.

2. 교실 운영 방법

* 주 1회(매주 화요일, 금요일) 2시간 강의로 두 개의 교실을 총 12주 동안 동시에 진행. 총 24시간 스터디. 수업 시작은 오후 일곱 시. 장소는 마포구 서교동 열림원 2층 회의실
* 시창작의 이론과 실제를 함양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특강을 포함해 다양한 형식의 교육 및 학습.(상세한 커리큘럼은 추후 공개)
* 기성 시인의 작품과 수강생의 작품을 심층적으로 분석, 합평하고 시의 기본 구조와 유형 등을 스터디함.

3. 수강 인원 및 수강료

* 집중적이고 효율적인 수업을 위해 선착순 화요반, 금요반 각 8인만 모집.
* 12주 기준 24만원.(수강료는 전액 강사에게 지급될 예정입니다.) 

4. 수강신청 방법

* 이메일로 이름(본명)과 나이, 성별과 직업, 주소와 연락처 등 필수적인 신상정보와 함께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보내주세요. 자기소개서에는 시를 쓰고자 하는 동기, 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등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희망하는 교실을 꼭 명시해주세요. 예) 화요반 희망, 금요반 희망.

* 열림원 문학창작교실 담당자 이메일 : drybook@yolimwon.com / drybook@naver.com

5. 창작교실 오픈

* 화요반 11월 1일 화요일 첫 수업 예정
* 금요반 11월 4일 금요일 첫 수업 예정


강사 소개

금요일반 이재훈 시인
1972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났고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하여 시를 쓰기 시작했다. 국문학과 문예창작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현대시』 부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문학동네), 『명왕성 되다』(민음사)가 있고, 그 외에 지은 책으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시인 인터뷰집인 『나는 시인이다』 등이 있다.

화요일반 신동옥 시인
1977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고 한양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시와반시』신인상 공모를 통해 시단에 나왔다. 펴낸 시집으로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랜덤하우스중앙)가 있고 곧 문학동네에서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현재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인스턴트 동인 결성을 주도해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전위적인 시운동에 참여했고 2010년 윤동주문학상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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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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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있는 산책길의 메모

_이운진

 

 

거리를 걷다 보면 자꾸 온몸이 붕 뜬다

바퀴가 싫어 걷다 보면

빌딩의 키가 커진다

핵폭발처럼 밝은 도시

기하학적인 철구조물로 가득한 낭만의 도시

밤마다 폭죽이 울린다

다리도 아프고, 목이 말라

시냇가로 가면 물이 바짝 말라 있다

차도 없고 집도 없고 양복도 구두도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도시는 저 멀리 있다

가녀리게 풀벌레 신음하는

시냇가에 앉아 풀피리를 분다

도시에서 흘러나온 검은 물소리가

박자를 맞춘다

도시의 무관심이 차라리 행복하다면

위안이 될까

냄새나는 숲의 향기 때문에 마스크를 쓴다

차라리 예술을 할까

예술을 한다면 이해해줄지도

아주 잠깐 부요해진 듯하다

꼬깃꼬깃 접어놓은 그날들을 펴보는

옛사람의 산책

 

-이재훈,「미적인 궁핍」전문 (『시인시각』2011 여름)

 

  우리는 물질과 문명의 정점이라는 위대한 시대사를 함께 쓰는 영광을 안았지만, 그 영광만큼이나 큰 시대의 병리 또한 가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자명한 도덕도, 순수함도, 자연도 상실해 버렸습니다. 현실과의 모순이 첨예할수록 정신적 상처는 깊어졌고 도시에서 잃어버린 내면의 깊이가 깊을수록 우리는 더 큰 극빈을 느꼈습니다. 속도와 크기로 짓누르는 도시의 풍경 속에서는 내 것이 아닌 시간들로 하루가 채워지고 그 하루도 모두가 질주 중에 있습니다. 보이는 것 말고는 믿을 것이 없고 믿는 것은 영원함을 잃어버린 그 앞에서 생은 한없이 초라해질 밖에요. 이러한 시대의 노이로제를 앓는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이 무거운 구원의 책임을 예술이나 시에게 모두 다 지워도 되는 것일까요? 시인의 마음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도시의 거리는 눈부시고 화려합니다. 그 아름다운 불빛과 아우토반의 속도는 분명 매혹적이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깁니다. 어쩌면 시인의 말대로 핵폭발처럼 밝게 빛나고 사라져야 하는 것이 도시의 최종지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 도시에서 본래의 본성을 지키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지요. 그런 이유 때문이었겠죠. 도시와 욕망의 몰락을 예감한 시인은 아무것도 없이 도시를 벗어나 봅니다. ‘양복도 구두도 없이’ 떠나온 곳에서 조그만 시내를 만나 다리를 쉬며 풀피리를 불어봅니다. 그러나 그곳도 ‘도시에서 흘러나온 검은 물’이 지나고 풀벌레가 신음하는 곳이었습니다. 아, 시인의 안타까운 탄식이 들립니다. 어디에서 위안을 찾아야 하냐고 묻는 간절한 질문이 들립니다. 그 순간 예술을 떠올립니다. 예술이라면, 문학이라면, 시라면 잿빛 장미 곁을 지켜주고 불가능한 회복을 믿게 해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정 우리 모두의 소망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다가 나는 미美, 아름다움이라는 말 쪽으로 무게를 실어 생각을 다시 짚어 봅니다.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짐작해보건대,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는 우아한, 고귀한, 숭고한, 선한 것의 성질을 다 아우르는 말인 듯싶습니다. 생경한 놀라움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소유나 욕망의 느낌을 배제한 상태에서도 즐기고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에 미적이다라는 말을 허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시인이 자연과 예술에 대해서 ‘미적인 궁핍’을 느꼈을 거라는 확신을 다시 하고선 깊은 공감을 표하는 것입니다.

  시를 덮고나서 나는 불 밝힌 도시의 밤거리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자연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스팔트가 동맥처럼 뻗어 있습니다. 저 핏줄에 힘을 대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생각합니다. 삶에 지친 장미와 시인이 하나의 모습으로 겹쳐집니다. 그것은 나와 당신이기도하고, 별빛과 별빛의 감정이기도 하고, 강물과 물소리이기도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 둘 사이의 틈새를 채우는 슬픔이 유목의 도시에서 부유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중세의 어느 마을에서 겨울을 맞는 듯한 권태도 가득합니다. 동서남북 어디서나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내는 불행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이 모든 것들을 견디기 위해 나는 장미와 시를 기록할 방식들을 고민해 봅니다. 내가 다시 감성의 풍요를 느낄 수 있는 일이란 몽환이라는 혁명뿐일까, 아니면 정말 꼬깃꼬깃한 옛사람들의 산책로를 펴는 일일까, ‘창조하며 나는 회복될 수 있었고 창조하며 나는 건강해졌노라’는 하이네처럼 창조적 열망에 온 몸을 기대야 하는 것일까? 당신의 대답이 담긴 가을 편지를 장미 꽃잎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_ 계간 <시인시각> 2011 가을 / 이운진의 시편지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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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행복] 시인을 찾아서

8월 첫째주 추천 전자책…<나는 시인이다>와 <대설주의보>
2011.08.05, 금 13:21 입력

◆시인들은 어떤 사람일까…이재훈의 <나는 시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시의 일부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들어보고 읊어봤을 대표 시이다. 국어 책에도 나온다. 몇 번을 고쳐 쓴 연애편지에 인용했던 기억들은 없는지... 괜히 맘에 드는 이성을 붙잡고 '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객기를 부린 적은 또 없는지...

김춘수 시인은 의미와 무의미의 관계를 두고 시를 써 온 시인이었다. 김춘수 시인은 자신을 '역사 허무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시인은 니콜라이 베르자예프(러시아 작가)의 말을 빌려 "지금까지는 역사가 인간을 심판했지만, 이제부터는 인간이 역사를 심판해야 한다"라고 까지 했다. 그만큼 역사는 김춘수 시인에게 있어 이념이자 폭력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다.

이재훈의 <나는 시인이다>는 한국의 시단을 움직여 왔던 35명의 시인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가 직접 시인들을 만나 때론 집에서, 때론 카페에서 대화한 내용을 기본으로 시인들의 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시인들에게 시의 의미는 무엇이었으며, 자신이 자라고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 어떻게 자신의 시에 녹아들어 있는지를 시인들의 육성으로 직접 들어볼 수 있다.

<나는 시인이다-우리시대 시인 서른다섯 명의 내밀한 고백>
장르: 시/에세이/기행
저자: 이재훈
출판사: 팬덤북스
가격: 7천200원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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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5회 이재훈 시인
l  2011.09.05   
- 초대손님 : 이재훈 -

주소 : http://www.munjang.or.kr/mai_radio/past/content.asp?pKind=01&pID=280

제255회
 
초대작가 : 이재훈(시인)
 
  
 
 

오프닝
음악 1 : Mike Park - Train Maps
문장의 힘 : 무코다 구니코 - <영장류 인간과 동물도감>
◆ 음악 2 : Cusco - Apurimac
작가의 방 : 이재훈 시인
문장의 소리 로고송 - <라디오, 라디오>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PD수첩
음악 3 : Sandie Shaw - <Hand In Glove>
클로징 포엠 : 이재훈, 「연금술사의 꿈」
음악 4 : Unkle - Two Hours Traffic- Just Listen
 
 
작가소개

이재훈(시인)

1972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명왕성 되다』가 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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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문학광장 > 문장 > 문학집배원
이재훈, 「재킷을 입은 시인」 낭송 이재훈 | 201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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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재킷을 입은 시인>
 
  
재킷을 입고 시를 쓴다.
어머니가 없는 공허한 시를 쓴다.
예술가들은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머리에 뿔을 단다. 광대의 옷을 입는다.
거친 발걸음으로 거리에 나가 거죽을 벗긴
날짐승을 전시한다.
대중은 환호하고, 예술은 진지하다.
재킷을 입고 시를 쓴다.
고독한 오만으로 공허한 시를 쓴다.
재주 좋은 시인은
높은 나무에 올라 나뭇잎의 형상을 그린다.
시든 나뭇가지의 슬픔을 노래한다.
재킷을 입고 시를 쓴다.
사로잡힌 유니콘의 뿔에 대해.
사랑하는 말발굽 소리에 대해.
문명인의 실험에 훼손당한 별의 슬픔에 대해.
스삭스삭 재킷의 말로 쓴다.
실상 외투는 어머니의 살로 만들어진 것.
재킷, 재킷! 하면* 어머니의 뇌와 심장이 실이 되어
올올이 풀려나온다.
재킷을 입고 추위를 견딘 나는
어머니에 대해 쓸 수 없다.
잠자는 숲에 들어가 촛불을 켜고
재킷을 태우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태어날 텐데.
재킷의 재가 나무에 뿌려져
울창한 숲이 되면,
앙상한 내 겨드랑이에 날개가 생길 텐데.
재킷을 입고 시를 쓴다.
너무 추워 재킷을 꼭 껴입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게 재킷, 재킷 말을 건다.
 
 
* 아베 고보의 소설 <시인의 생애>에서.
 
 
 
시낭송_ 이재훈 - 1972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현대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가 있음.
 
출전_ <명왕성 되다>(민음사)
음악_ 임승태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
 
 
아베 고보의 짤막한 단편소설 「시인의 생애」에서 모티브를 얻은 시이지만, 이 시를 즐기기 위해 그 단편소설을 꼭 읽어야할 필요는 없다는 것 알고 계시죠? 스스로 물레에 감긴 실이 되고 마침내 재킷이 된 노파의 이야기가 나오는 아베 고보의 「시인의 생애」는 퍽 의미심장한 소설인데, 저는 아베 고보가 이 시를 보면 아주 즐거워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과는 전혀 다른 경로의 즐거움을 주는 시입니다. 풍자와 알레고리가 예리하게 살아있는, 어딘지 허를 꿰뚫는 느낌의 시. 이만하면 소설과 시의 상호작용이 퍽 아름다운 진경을 펼쳐보이는 셈.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를 읽고 임철우 소설가가「사평역」을 쓴 것처럼, 시와 소설이 서로에게 미칠 수 있는 좋은 관계들이 많이 만들어질수록 독자는 즐거워지지요. 이제 저는 흥미로운 마음으로 재킷에 몰두해봅니다. 시인이 공허한 시를 쓰는 이유는 재킷을 입었기 때문인데, 재킷은 어머니이고, 어머니를 입어버렸으니 시인이 쓰는 시에는 어머니가 없고, 그러니 공허하고, 공허한데 아닌 척 허세를 부리고, 그러느라 점점 세상은 춥고, 재킷 없이는 추위를 견딜 수 없고, 그럴수록 시는 더 공허해지고, 나는 재킷을 더 꼭 껴입고…… 생명력 있고 진실 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어머니를 재킷으로부터 해방시켜 드려야 하는데 재킷 없이 시인은 이 거리의 추위를 견딜 수 없으니, 이 모순을 어떻게 견딜까. 눈치 채셨겠지만 이것은 비단 시인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당신은 어떤 재킷을 입고 있나요? 당신의 재킷은 안녕한가요? 당신의 어머니는 무탈하신가요.
 
문학집배원 김선우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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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8.16 800호(p72~73)

[시인 오은의 vitamin 詩] 


카프카 독서실



카프카 독서실


벽이다.

엎드려 잘 때마다 이곳은

바닥이 아니라 무른 껍질이라 생각했다.

배에 힘을 주면 지그시 열릴 것 같은

그 껍질을 깨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몸을 마음껏

비벼 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주장해야 했다.

쿵, 말문이 열리면 긴 오솔길이 펼쳐지곤 했다.

한참을 걸었을 때 울창한 숲이 보였다.

나는 구름을 먹고,

신성한 사랑에 대해 논했다.

풀숲에는 소리가 고여 있었다.

풀을 헤치니 소리가 서로 밥을 먹고 있다.

갑자기 구역질이 나서

나무의 텅 빈 몸에 구름을 토했다.

검은 말들이 꿈틀댔다.

가련한 밤,

문신을 새기는 꿈을 꾸었다.

팔뚝 위에 피리를 새겨 넣자

내 몸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창밖엔 십자가가 흐른다.

가로등이 떠다닌다.

감정 없이 장단만 있는 노래.

이 방은 어둠이 몸 푸는 자리,

얼굴도 없고 가슴도 없다.

빗방울도 없이

빗소리가 내리는 방.

엎드려 자고 있으면

살포시 몸에 감기는

빈 말들의 뼈.

― 이재훈 ‘명왕성 되다’(민음사, 2011)에서


빈말을 채워야 할 시간이 닥쳤다

재수 시절, 나는 학원 대신 독서실에 다녔다. 유독 아침잠이 많았던 나는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11시에 퇴근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독서실도 일부러 집에서 좀 먼 데로 잡았다. 그래야 마음이 덜 흔들릴 것 같아서였다. 컴퓨터, TV, 그리고 침대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했다. 독서실은 밤낮으로 어둡고 습했다. 스탠드를 켜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에어컨에선 물이 뚝뚝 떨어졌다. 눅눅해진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퍽 서글퍼졌다. 시간 가는 줄도 알고, 시간이 잘 안 가는 줄도 알던 시기였다.

혼자서 저녁 먹고 들어와 식곤증에 고개를 끄덕거리다 보면 “창밖엔 십자가가 흐”르는 게 예삿일이었다. 어떤 종교도 나를 붙잡아주지 못할 것 같았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으면 눈앞에 둥둥 “가로등이 떠다”녔다. 가로등은 점멸등처럼 자꾸 깜박거렸다. 그만큼 나는 불안했다. 기약 없는 일을 남들보다 일 년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자책하는 날이 늘어났다. 나는 왜 이토록 유약한가. 나는 왜 사소한 것에 쉬 휘둘리는가. 카프카가 아니어서 나는 감히 ‘성’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사방에 덫이 깔린 것 같았다.

어느 날이었다. 저녁 먹고 들어왔더니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정신이 좀 들까 해서 독서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후 8시, 여느 때처럼 가로등이 켜지던 순간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뜬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릿속에 빛줄기가 흡사 빗줄기처럼 내리쳤다. 그날이었다. 내가 독서실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나는 줄기차게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면서도 그게 시라고는, 시가 될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았다. “오솔길”과 “울창한 숲”을 요리조리 헤치고 나가는 게 그저 즐거웠을 뿐이다. 계절이 바뀌고 히터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지만, 이미 나는 마음속으로 시원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할 말은 아직도 “풀숲”처럼 곱슬곱슬 우거져 있었다.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독서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됐다. 하루가 점점 짧게 느껴졌다. 인수분해를 하고 판구조론에 대해 공부해야 할 시간에 나는 말을 처음 배우는 심정으로 단어들을 장난감 블록처럼 가지고 놀았다. “팔뚝 위에 피리를 새겨 넣”으면 “내 몸에서 노래가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독서실은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 됐다. 어쩌면 나는 그곳에서 내 운명을 발견한 셈이다. 그래서 오늘도 “완성되지 않은 몸”들은 기꺼이 독서실에 간다. 시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만의 방’을 찾아든다. 지금도 분명 “빈 말”들이 “뼈”가 돼 누군가의 “몸”에 “감기”고 있을 것이다. 빈말을 채워야 할 시간이 또다시 닥친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종이를 꺼내야겠다. 더는 창백할 수 없는, 더없이 새하얀 것으로. 그리고 나는, 곧, 너를 채울 것이다.

 

오은 |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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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명왕성 되다(plutoed)

이재훈

입력시간 : 2011.08.21 20:39:35  수정시간 : 2011.08.21 21:36:42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뱉어 낸다. 눈 밑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 잊혀진 얼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풍경은 서서히 물드는 것. 그리운 얼굴이 푸른 멍으로 잠시 물들다 노란 불꽃으로 사라진다. 나는 단조의 노래를 듣는다.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 소리, 단추 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 내 입술과 몸에도 푸른 멍자국이 핀다. 아무리 하품을 해도 피로하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모두 신성한 모험이었다는 거짓된 소문들. 내 속의 거대한 허무로 걸어 들어갈 자신이 없다. 지하철 2호선의 문이 활짝 열린다.


아름다운 시 한 구절을 외우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미국 방언협회는 'plutoed(명왕성 되다)'를 2006년의 새 단어로 선정했대요. '태양계로부터 소외당했다'는 뜻입니다. 그 해 명왕성은 태양계의 행성 지위에서 퇴출당했거든요. 명왕성이 태양 궤도를 돌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강제로 잊혀진 별이 되었을 뿐. 깊은 피로감에 휩싸여 우리는 이탈한 적도 없으나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는 얼굴들을 떠올립니다.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고 싶던 별같이 환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어요. 아직도 몸을 뚫지 못한 폭풍 같은 열망이 살갗에 멍을 남깁니다. 그 멍 때문에 지하철에서 내려 일상의 궤도를 향해 뛰어가지 못해요. 그냥 문이 닫혀주길 기다립니다. 오늘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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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두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 출간
도시순례자의 눈으로 본 세상
명왕성 되다 / 이재훈 지음 / 민음사 펴냄
기사입력 2011.08.12 17:02:4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참 애처롭고 쓸쓸하다. 도시 남자의 일생이 애벌레처럼 느껴지다니. 이재훈 시인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수컷의 고충을 시 `남자의 일생`으로 토로한다.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툭,/떨어진 애벌레.//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온 생을 바쳤다.//늦은 오후./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그림자 잦아들고/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나비 한 마리./공중으로 날아간다.//풀잎이 몸을 연다.`

살벌한 세상과 사투를 벌이듯 살다 초라하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 남자의 숙명을 애벌레에 비유했다. 숨 막힐 정도로 끊임없이 옥죄는 사회에서 버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는 수컷의 피로감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민음사 펴냄) 속에는 도시 노동자의 핍진한 삶과 성찰이 담겨 있다. 거대한 기계의 부품처럼 존재감 없이 그저 살아내는 데 급급한 일상이 황량하게 펼쳐진다. 지하철과 버스, 독서실, 골목 등 시인의 일상 공간 속에서 느낀 소외감과 외로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시인은 각박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상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 남자를 명왕성에 빗댔다. 궤도가 불안정하고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퇴출된 명왕성 사건을 떠올린 것이다. 도시에서 버려지지 않기 위해, 구원받기 위해 넥타이를 매고 만원 지하철에 오르는 남자의 하루가 시 `매일 출근하는 폐인`을 통해 애잔하게 다가온다.

`의욕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미소를 연습한다. 수많은 거울 앞의 표정들. 낯선 얼굴, 낯선 침묵.//다른 말은 없다./너를 자위케 하던 기호들. 새, 별, 그리고 꽃과 나무. 아무 생각 없이 잠들 수 있었던 그대, 라는 말을 향해.(중략) 나는 육십억 분의 일일 뿐. 페트병에 가득 담긴 담배꽁초와 찌그러진 맥주 캔. 먹다 남긴 컵라면. 참기 힘든 소음. 역겨운 화장 냄새와 비둘기 똥 냄새로부터.//계곡의 하얀 물보라를 헤치고, 난파된 얼음 위에 올라서 저물어 가는 사람들의 삶을 감상하고 싶다. 그러면 아주 쓸쓸하겠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아무도 없이 고독하겠다.(중략)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밤의 형벌이었다.`

현실은 비루하지만 시인은 비관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정확하게 인지한다. 도피하려 하지도 않는다. 시 `명왕성 되다`를 통해 오히려 현실을 초월적 공간으로 바꿔 놓는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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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생태와 내면의 쓸쓸한 풍경


이재훈 시집 '명왕성 되다' 발간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Plutoed(명왕성 되다)'는 미국 방언협회에 의해 '2006년의 단어'로 선정된 신조어다. 국제천문연맹(IAU)이 명왕성의 태양계 행성 지위를 박탈한 뒤 'Pluto(명왕성)'라는 단어에 '가치를 떨어뜨리다, 소외되다'는 의미가 추가됐다.

시인 이재훈(39)은 도시 속 익명과 소외를 드러내는데 이 단어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2005년 이후 6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민음사 펴냄)에서다.

시인은 이 시에서 출퇴근길 지하철 2호선을 탄 도시 생활인의 팍팍한 정신세계를 전했다. 이 '도시인'은 주변 제약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눈만 감고 만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중략)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 소리. 단추 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명왕성 되다(Plutoed)' 중)

시인은 이처럼 시집에서 도시를 탐구 대상으로 삼았다. 도시의 생태와 자신의 내면을 결합해 쓸쓸한 풍경을 그렸다.

"의욕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미소를 연습한다. 수많은 거울 앞의 표정들. 낯선 얼굴, 낯선 침묵. (중략) 나는 육십억 분의 일일 뿐. 페트병에 가득 담긴 담배꽁초와 찌그러진 맥주 캔. 먹다 남긴 컵라면. 참기 힘든 소음. 역겨운 화장 냄새와 비둘기 똥 냄새로부터.('매일 출근하는 폐인' 중)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고 노래한 '남자의 일생'은 이 시대에 남자로 살아가는 고충을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과정으로 씁쓸하게 비유했다.

제약과 구속에 시달린 시인은 마침내 초월을 꿈꾼다. 하지만 그 시도는 현실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초월적 공간을 꿈꾼다. '근원'을 찾는 것이다.

"나는 근원을 바랐다./기적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중략) 언덕이 있는 곳은 월곡(月谷),/달빛이 있는 골짜기다./언덕을 오르고/또 한 언덕을 오르면/마치 기적처럼 달빛에 닿는,/존재의 비밀을 한순간에 깨칠/그런 순간이 올 수 있을까."('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 중)

문학평론가 조강석은 "이 시집의 기저를 맴도는 덩어리진 목소리는 일용근로자의 피로와 백수건달의 자책과 독학자의 자부심과 시인의 기상이 한데 배어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48쪽. 8천원.

c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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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시원(始原)을 응시하며 세속 도시를 순례하는 시인 이재훈

슬픔의 소진마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얻는 소멸의 미학



“이재훈 시의 시공은 광대하다. ‘빌딩나무 숲’인 이곳에 사막과 우주와 원시의 시공을 겹친다.”(김혜순 시인), “그의 시는 오늘의 시에 대한 새로운 보고서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조정권 시인)라는 평을 받은 이재훈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가 출간되었다. 도시의 생태와 자신의 내면을 결합하며 한 시대의 쓸쓸한 풍경을 기록한 첫 번째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로 큰 주목을 받았던 그는, 이번 시집에서 소재와 착상의 범위가 더욱 넓고 풍요로워졌으며, 다양한 시편들을 통해 호흡과 리듬도 점점 확장되고 있다.

이재훈 시인에게 도시는 늘 새로운 탐구의 대상이다.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도시를 성찰한다. 시집 곳곳에서 지하철, 버스, 독서실, 저녁의 거리, 도서관, 골목 등 시인의 일상 공간들이 직접 드러나는데, 존재의 시원(始原)에 가닿고자 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도시 속에서 환상적이고도 동화적인 색채의 공간을 펼쳐 놓는다. 그 도시 속에서 “육십억 분의 일일 뿐”인, 그저 “먼지”처럼 “아무것도 아닌” “매일 출근하는 폐인”들의 고단한 삶이 펼쳐지며, 시인은 그 속에서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을 진하게 그려 낸다. 시집 안에서는 끊임없이 “일용근로자의 피로와 백수건달의 자책과 독학자의 자부심과 시인의 기상”이 한데 배어나고 있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명왕성 되다(plutoed)’라는 말은,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한 사건에 빗댄 신조어다. 익명과 소외, 그리고 기계적 규칙성이라는 도시 생활자의 삶에서 그는 ‘명왕성’이 됨으로써 스스로 궤도를 벗어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끊임없이 구원을 꿈꾸고 있는데, 그에게 ‘구원’은 곧 ‘근원’이다. 이재훈의 시에서 근원적인 곳은 머나먼 어딘가가 아닌, 세속 도시의 구석구석에 내재되어 있다. 이 도시 안에서 시인은 세속적인 이미지 속에서 성스러움을 체험한다.


이재훈

1972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가 있다.


■ 편집자 리뷰

침묵과 고요의 깊고 너른 ‘울음’을 통한 거대한 ‘울림’


첫 번째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가 하늘 위에서 부르는 노래, 특히 ‘영가(靈歌)’의 세계였다면,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는 하늘과 땅의 중간쯤에서 부르는 ‘침묵’과 ‘고요’의 깊고 너른 ‘울음’을 통한 거대한 ‘울림’이다. 이재훈 시인에게 도시는 늘 새로운 탐구의 대상이다. 숨이 막히고, 끊임없이 옥죄는 공간이지만, 어쨌든 발 디디고 살아가야 할 공간인 욕망의 도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도시를 성찰한다. 「新林洞」, 「매일 출근하는 폐인」, 「비비디 바비디 부」, 「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  등의 시에서 시인의 일상 공간들이 직접 드러나는데, 존재의 시원(始原)에 가닿고자 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도시 속에서 환상적이고도 동화적인 색채의 공간을 펼쳐 놓는다.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진 애벌레.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

온 생을 바쳤다.


늦은 오후.

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

그림자 잦아들고

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


나비 한 마리.

공중으로 날아간다.


풀잎이 몸을 연다.

―「남자의 일생」


이 시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하는 과정의 알레고리 속에 처절한 생존 게임과도 같은 인생의 과정 전체를 담아내며, 이 시대에 남자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우회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의욕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미소를 연습한다. 수많은 거울 앞의 표정들. 낯선 얼굴, 낯선 침묵.


다른 말은 없다. 너를 자위케 하던 기호들. 새, 별, 그리고 꽃과 나무. 아무 생각 없이 잠들 수 있었던 그대, 라는 말을 향해.


(중략)


나는 육십억 분의 일일 뿐. 페트병에 가득 담긴 담배꽁초와 찌그러진 맥주 캔. 먹다 남긴 컵라면. 참기 힘든 소음. 역겨운 화장 냄새와 비둘기 똥 냄새로부터.


계곡의 하얀 물보라를 헤치고, 난파된 얼음 위에 올라서 저물어 가는 사람들의 삶을 감상하고 싶다. 그러면 아주 쓸쓸하겠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아무도 없이 고독하겠다.


(중략)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밤의 형벌이었다.

―「매일 출근하는 폐인」


이 시를 통해 우리는 견고한 생활의 필연적 조건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비관’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스스로 정확히 ‘인지’한다. 이 인지의 결과는 바로 다음과 같은 시에 나타난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뱉어 낸다. 눈 밑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 잊혀진 얼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풍경은 서서히 물드는 것. 그리운 얼굴이 푸른 멍으로 잠시 물들다 노란 불꽃으로 사라진다. 나는 단조의 노래를 듣는다.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 소리. 단추 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 내 입술과 몸에도 푸른 멍 자국이 핀다. 아무리 하품을 해도 피로하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모두 신성한 모험이었다는 거짓된 소문들. 내 속의 거대한 허무로 걸어 들어갈 자신이 없다. 지하철 2호선의 문이 활짝 열린다.

―「명왕성 되다(plutoed)」


이 시의 제목이자,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명왕성 되다(plutoed)’라는 말은,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한 사건에 빗댄 표현인데, 사물이나 사람이 갑자기 평가절하 되거나 혹은 소외되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이 시의 배경은 규칙적인 리듬의 기계 소리만 들리는 2호선 지하철 안으로, 화자는 익명과 소외, 그리고 기계적 규칙성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이것이야말로 도시 생활자의 정신적 삶을 규정하는 필연적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의 화자는 바로 그런 제약들로부터 비켜서고자 눈을 감는다. 그는 ‘첩자’나 ‘폭풍’과 같은, 기계적 삶의 리듬을 뒤흔들 파국을 스스로 필요로 하고 있다. ‘명왕성 되다’는 말은 즉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궤도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재훈의 시에서 근원적인 곳은 머나먼 어딘가가 아닌, 세속 도시의 구석구석에 내재되어 있다. 시적 자아는 세속 도시의 세속적인 이미지 속에서 성스러움을 체험한다. 지하철의 문은 계속해서 열리지만, 우리를 진정한 삶으로 인도할 출구는 없다. 하지만 시인은 그 공간 안에서 출구를 찾는 방법을 터득했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 존재의 비밀을 한순간에 깨칠 소멸의 순간을 꿈꾸다


나는 근원을 바랐다.

기적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중략)

지혜로운 자가 되고 싶었다.

장 그르니에가 산타크루즈를 오르며 쬔

빛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었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환호하지도 분노하지도 못하는,

심장을 꺼내 거리에 내던지고 싶었다.

심장이 몸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은,

그 짧은 시간만큼은 황홀하겠지.

언덕이 있는 곳은 월곡(月谷),

달빛이 있는 골짜기다.

언덕을 오르고

또 한 언덕을 오르면

마치 기적처럼 달빛에 닿는,

존재의 비밀을 한순간에 깨칠

그런 순간이 올 수 있을까.

산타크루즈를 오르며 쬔

그 햇살의 순간처럼.

―「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


키르케고르가 유한과 무한, 필연성과 가능성의 문제를 종교로 풀어냈다면, 그는 이 문제를 종교가 아닌 시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유한이 무한의 반대가 아니라, 무한의 일부임을 깨닫고, 시적 상상력을 통해 유한한 시간을 펴서 무한한 시간에 잇대어 유한성과 필연성을 뛰어넘는다. 그의 초월은 현실을 탈출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초월적 공간으로 바꿔 놓는다. 또한 그는 끊임없이 구원을 꿈꾸고 있는데, 그에게 ‘구원’은 곧 ‘근원’이다. 이 시집은 바로 그 ‘근원’, 즉 존재의 시원에 대한 물음과 상상력을 통해 유한과 무한, 필연성과 가능성의 문제를 풀어내고자 하는 시적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시에서는 기계적인 ‘심장’과 존재의 비밀을 깨칠 ‘순간’의 대립이 선명하게 이미지화 된다. 그리고 다시 그것은 퇴근길의 행선지인 월곡과 장 그르니에의 미적 처소인 산타크루즈의 이미지로 보다 또렷하게 구상화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제 월곡과 산타크루즈의 대립이 아니라 월곡을 산타크루즈로 ‘발견’할 수 있느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촛불도 아니고 감나무도 아니다.

(중략)

나는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이었다.

(중략)

그러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겠다.

그 비밀의 성소(聖所)가 내 집이었다.

소멸이

내 먹는 밥이었다.

―「연금술사의 꿈」


그는 “존재의 비밀을 한순간에 깨칠 그런 순간”이 소멸의 순간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그는 끊임없이 소멸을 꿈꾼다. 우주 속으로, 거대한 대황하 속으로, 허공 속으로,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침묵 속으로, 빛 속으로, 영원 속으로 흔적조차 없는 완전한 소멸을 꿈꾼다. “바람은 불어야 제 몸을 갖”고, “눈물은 흘려야 제 몸을 갖”(「비비디 바비디 부」)듯이 그는 소멸함으로써 비로소 제 몸을 갖는다. 그는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처럼,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는 시인이다.


■ 작품 해설에서

 

이 시집의 기저를 맴도는 덩어리진 목소리는 일용근로자의 피로와 백수건달의 자책과 독학자의 자부심과 시인의 기상이 한데 배어나는 것이다. 시인의 소멸에 대한 열망은 슬픔의 내력을 시간의 이력으로 전화시키려는, 다시금 유한한 것들을 무한에 대고자 하는 상상적 결단에 의한 것이다. 소멸이 슬픔의 발견, 슬픔의 과장, 슬픔의 소진마저 지난 후에야 얻는 신명의 성소(聖所)라는 것, 그러니 근대인 키르케고르가 비약의 귀재라면 이재훈은 소멸의 총아다. — 조강석(문학평론가)

 

■ 추천의 말


이재훈은 중무장한 중세의 기사와 같다. 그는 영주에게 충성하지 않고 연인에게 헌신한다. 그러나 그 연인은 비밀의 화원에 은신해 있지 않고 시인의 갑주 속에 내장되어 있다. 시인은 연인을 위한 투쟁에서 연인을 훼손시키고야 마는 운명에 처한다. 그것이 이재훈이 파악한 현대 시인의 궁지이다. 자신이 보존할 가치를 기치로 내세울 때마다 그것은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와도 같이 부스러지고 문드러진다. 그러나 그 덕분에 우리는 진실 앞에 놓인 현실의 아득한 해자를 본다. 진정한 세계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말에 채찍을 가해야 한다. 언어의 기교는 현실을 일격에 무너뜨리기 위한 필사의 계책이다. — 정과리(문학평론가, 연세대 국문과 교수)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애련에 젖게 한다. 시인 이재훈에게 그 정조는 무척 각별하다. 지금은 사라진 고대 문명이나 사라져 가는 시원적 자연에 감응하는 그의 상상의 촉수는 매우 예민하다. 문명의 늪을 거슬러 태초의 궁륭으로 다가서는 소리의 환(幻)이 웅숭깊다. 때로는 혼돈으로 들끓고, 때로는 명상으로 침묵하는 그 소리의 환은 격렬한 듯 단정하고, 단정한 듯 격렬하다. 그 소리의 환의 스펙트럼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거역하거나 크게 순응하는 연금술사의 꿈의 폭과 깊이를 가늠케 한다. 사라져 감 혹은 부재라는 그리움의 양식을 통해 이재훈은 존재의 시원적 리듬을 새삼 환기한다. 그리고 헝클어진 동시대의 존재의 리듬에 반성적 감촉을 제안한다. 큰 슬픔이라는 통과제의를 거친 우리네 존재의 신명은 아득한 듯 가깝고, 오래인 듯 여기이고, 사라져 가는 듯 되돌아온다. — 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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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문(拷問), 나의 주인
대자본의 영웅인 바퀴들
톱니바퀴에 대해서라면 얘기하고 싶어
나는 정치를 모르고 돈을 모르지
감각의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광대
모호한 질서들이 난무하는 도시의 산책자
- 이재훈 「결락(缺落)」중에서

바람이 분다. 아니나 다를까 목이 다시 아파온다. 고추장을 찍어 한 입 먹다가 창밖을 본다. 누가 고추장 같은 벌건 노을을 하늘에 처발라놓았다. 언젠가는 남해바닷가 끝자락에 가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유보된 삶이 도시변방을 산책 한다. 누가 말한다. 남해 끝자락이라고! 요즘은 그런 곳이 더 비싸!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운 각본을 쓴다. 때때로 운명을, 예언을, 고통을 몸에 문지르며 자본주의에서 자꾸 멀어져 가는 일에 대해 쓴다. 다가가면 자꾸 멀어지는 이상한 삶이다. 이 도시의 ‘톱니바퀴’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와 분배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뜻일 테다. 그 속에서 소외와 고독, 불안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뜻일 테다. 문학행위가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하여, 문학이 노동이 되기 위하여서는 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 계획 속에는‘언젠가는’이라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숨겨져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끝없이 마찰을 일으킨다. 제대로 맞물리지 않은 톱니바퀴들은 끝없이 제 살에 상처를 내며 또한 고장이 나고 만다.

이재훈 시인은 톱니바퀴의 세상에서의 불화를 ‘결락’으로 표현하고 있다. 낸시 헤드웨이의 <세계 신화 사전>에 의하면 어리석은 험담꾼과 뇌물을 건네는 자들을 위한 방으로 ‘톱니의 방’이 있다. 시인에게 이 ‘톱니의 방’은 “아주 작은 나사와 구멍들이 얽혀있는 공장”이다. “톱니바퀴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자신의 심리에 대해 거울 속의 자신에게 속삭이듯이 어조는 다정하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누구에게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들어갈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톱니바퀴’속에서의 삶은 ‘몸’과 ‘톱니바퀴’를 동일하게 만들어버린다.

톱니바퀴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이 세계는 아주 작은 나사와 구멍들이 얽혀있는 공장
사실 말이야
하늘도 구름도
빛과 공기의 구멍들이
서로 교합한 증거물들
톱니바퀴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쉬지 않고 몸에서 소리가 나지
째깍째깍 죽음을 단축시키는 소리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톱니바퀴
- 이재훈,「결락」(<시와표현>, 2011년 창간호) 부분

이재훈 시인에게 도시는 “모호한 질서들이 난무”하는 곳이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모호하게 잘 어울려 돌아가는 곳. 시인은 적응해야 하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이재훈 시인의 다른 시 「밀랍蜜蠟」을 보자.

나의 기착지는 어디일까
뼈들이 비대하게 자라고
피의 색깔이 변하는 이 도시
스스로의 시간에 묶여
하늘의 목소리는 듣지 못하지
어제는 네 시간을 준비하고
두 시간을 강의하여 차비를 얻어왔지
싸우고 차지하는 법을 배우고 가르치지
내장을 편하게 하는 법칙들
홀로 슬프고, 홀로 애달픈 몸의 성분들
-이재훈,「밀랍 蜜蠟」(<현대문학>, 2011년 6월호) 부분

위 시에서 자본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고통이 배여있음을 알 수 있다. 정작 시인 자신은“싸우고 차지하는 법을”살아내지 못하면서도 누군가에게 그런 삶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 서있다. 두 편의 시에서 만져지는 것은 자아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야하는 이의 고독과 원죄의식이다.「결락缺落」에서 “잉태의 소리가 가득해”라는 문장은「밀랍蜜蠟」에서 다시 “그렇다고 너무 억울해 마오/ 이 땅이 당신에게 어머니를 선사했잖소/어머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이오/당신의 피를 받아 마시는 신비의 여인이오/당신이 체험했던 가장 깊고 따뜻한 말”이라는 문장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 두 문장의 의미는 서로 다르다. 「결락缺落」에서의‘잉태’가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다면 ‘어머니’는 한없이 따뜻한 의미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톱니바퀴’의 몸은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무언가를 잉태하지만 정작 중요한‘어머니’를 잃어버렸다. “당신이 체험했던 가장 깊고 따뜻한 말”인 ‘어머니’에서 시인은 상실한 존재자, 시인 자신을 찾아 방황하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 정치와 노동, 분배의 문제는 언제나 불리하다. 그 어떤 싸움에서도 유리하지 않다. 시인은 “감각의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도시의 산책자”이기에 “정치를 모르고 돈을” 모른다. 그러나 정치와 노동, 분배와 연대에 익숙해져버린 자들과 함께 생존해가야 한다. 몸의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몸이 끈적끈적하게 녹아내리는 곳. 이런 도시의 풍경을 이재훈 시인은“비릿한 고통의 풍경들”이라고 한다.

몸을 만져보면
구멍 난 몸 여기저기서 물컹한 피가 흐르지
아프지않고 따뜻해
추억이라 하기엔 낭만적이지
이미 오래전 언약된 여행
자 이제 갈 때가 되었지
-이재훈,「밀랍蜜蠟」(<현대문학>, 2011년 6월호) 부분

시인의 예언처럼 “이제 갈 때가” 되었다. ‘언젠가는’은 너무 빨리 올 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있는 이의 얼굴을 몇 번이나 더 보게 될까. 몇 번이나 더 만나 밥과 술을 먹고 남의 험담을 하고 손을 흔들게 될까. 언젠가는 남해끝자락 작은 마을에 가서 살고 싶다가도 이런 생각을 하면 이 도시의 변방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당신을 향한 증오와 사랑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에.

_ <시와경계>, 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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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작품상 이달의 추천작 / 이재훈


숭고한 셀러던트


중얼거릴 수 없다
뱀이 온몸을 감고 있어 숨쉬기 힘들다
언제나 위기가 아닌 적은 없었다
고통 이후를 생각하는 시간들
늘 속도에 의지했으며
숨 쉬는 것들을 혐오하며 살았다

검은 바닷가 모래 위
구름은 낡았고 파도는 헤졌다
내 고통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멀리서 날 지켜보고 있다
낯설지만 또 낯익은 순간
오직 한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이 비릿한 고통의 풍경

사람들은 대체로 첨단을 잘 견딘다
그는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던가
울며 흐느끼고 있었던가
새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물비린내도 없이
파도소리만 가난하게 들렸다

칼로 내 가죽을 벗기려 한다
아, 이 극악한 자본의 성실함
생살을 찢어 슬금슬금 도려내야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이 땅과 하늘
밤이 되면 일하러 간다
삼인칭으로만 불리는 인생 공부의 완성을 위해
― <현대시>, 6월호

 


현대시작품상 추천작을 읽고

 

첨단의 위기 속 우리의 자화상

 

김선주

 

 


배고픔의 시기를 거치면 또 다른 세계가 암울한 공간을 비워놓고 삶의 모든 것들을 견뎌내는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가령 세계가 말하지 않는가?
“무엇을 보고 있니?”
“무엇이 보이니?”
이재훈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마치 맨발로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착취와 억압의 공간에 힘겨운 자존을 투사하고 있다. 이해하는 척 하면서 상대에게 오히려 버거운 도회의 ‘소 공간 점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미래를 잃어버린 세대의 노동현장은 허튼 몇 마디의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지난 시간은 되찾으려 하면할수록 스스로의 권리와 자유는 ‘자살’이라는 극단의 처방으로 이어진다. ‘목숨의 방’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인간이 가지는 참 존재는 ‘꿈’의 공간에서 ‘현실’의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방향성과 정체성의 혼란은 이재훈의 시 “숭고한 셀러던트”에 그 의지를 담고 있다.
이재훈의 시에서는 ‘개인의 일상’에 침투하여 마침내 그 영혼까지 잠식해 버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함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각 개인이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과 가치를 발휘하기 어렵다. 개별성이 없는 삶은 획일적이며,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때 프로이트는 노동의 윤리가 지배하는 삶을 ‘현실원칙’에 의해 성립된 삶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억압된 ‘쾌락원칙’의 비극으로 보았다. 자본주의 역사의 상당부분을 노동에 수반된 억압으로 엮고, 모든 문명의 특징이자 인간 충동의 본능적인 ‘쾌락 지향성’에 근원한 필연으로 일반화한 것이다. 또한 노동에 대한 사회적 필요 때문에 사람들은 언제나 ‘문명화된 조절’의 규칙에 복종하도록 강제되어야 한다고 서술했다.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한 개인을 발견해보자. 그 인생은 초라하지만 어쩌면 가장 소중한 가치의 실재이다. 어느 날 무심코 바라본 자리에서, 형편없이 시들어버린 한 송이 인생이 ‘우리의 자화상’으로 떠오른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시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숭고한 셀러던트(saladent)”는 결국 샐러리맨이 사회 현실에서 겪는 괴리감을 ‘인생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표현하고 있다.
1연의 시작부터 “중얼거릴 수”도 없고 “숨쉬기 힘들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그만큼 고달프다는 것인데, 이는 ‘뱀’이라는 동물이 평소 자신의 몸을 휘감는 모습에 빗대어 현실로부터의 갑갑함을 호소하는 것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런 힘든 시기를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힘든 만큼 이런 현실을 더욱 더 못견뎌하는 모습이 세상의 “속도”와 “숨을 쉬는 것들을 혐오하며 살았다”에서 잘 드러난다.
2연에서도 부정적인 단어들이 보인다. “검은 바닷가”로 시각화하여 현실의 사나움과 비정함 등을 잘 살렸고, “낡고 헤졌다”는 시어를 통해 화자의 현재가 비참할 정도로 너덜너덜함을 보여준다. 그런 화자의 고통을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누구인지 명백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3연에서의 “하모니카를 불고, 울며 흐느끼고 있었던가.”라는 시구로 보았을 때 화자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동반자 내지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 혹은 그런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혈연 정도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또한 ‘첨단’이라는 단어를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견디”고 있으나 그것은 기꺼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화자가 이런 현실에 직면하고 있지만, 별다른 해결책 없이 그냥 그 속에서 살고 있음이 느껴진다.
반면 <이방인>에서의 주인공 뫼르소는 오후 4시에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 뜨거운 태양을 부조리의 대상으로 간주해 보면, 부정의 타파를 위해서 행해지는 가혹한 행위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지난 과오를 돌이켜보면, 인류의 ‘빛나는 이성’은 서로의 상처에 흠집을 내며 전쟁이란 빅 이벤트를 행함에 있었다. 전쟁의 상흔이란 결국 인간 모두에게 치유 할 수없는 고통을 준다. 세상을 사는 방법론은 인간이 추구하는 내면적 가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재훈의 시는 시대를 살아가는 샐러리맨의 비애라기보다는 한 인간이 가지는 삶에 대한 극복 과정이다. 자유와 희망을 품은 “새소리는 들리지 않”고 현실 속에 순응하려해도 돌아오는 것은 짙은 ‘허무’와 마음의 “가난”뿐인 것이다.
4연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가난”으로 인해 살이 찢어지고 가죽이 벗겨져 나가는 듯 극심한 고통을 시작으로 하는데 이런 현실을 “극악한 자본의 성실함”으로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철저히 자본주의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구조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서민층을 비롯한 화자 등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 이재훈은 생계를 유지시킬 수 있는 상황을 “생살을 찢어 슬금슬금 도려내야 도덕적으로 아름다운”의 구절을 통해 현 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도 아닌 억지로 해야 하는 이 인생의 굴레를 “공부”라고 표현하였고, 그 삶의 주체를 “삼인칭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현실에서 버텨나가고 있는 화자 자신 그리고 이 시대를 힘겹게 살고 있는 모든 가장들에게 반어법(irony)을 차용하여 “숭고한 셀러던트”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셀러던트” 참 슬픈 시어로 다가온다. 치열한 삶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싸워 이겨야 한다. 샐러리맨으로 성공해야 하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행복은 곧 성공이라는 불가사의한 등식이 성립하고 있는 요즈음 모두 “인생 공부다, 인생 공부다.”라고 외치지만, 그로 인하여 너와 나는 더 이상 가까울 수 없고 늘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삼인칭”으로 매번 차갑게 만나야 하는 것이다.
결국 시인 이재훈은 ‘달빛이 비치는 숲의 세계’를 그리며 ‘유토피아’로 향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 도피는 아니며, 한바탕 열정을 다해 나름대로 현실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근원적 낭만주의 기질을 토대로, 현실너머 ‘진실의 세계’를 염원하며 그 안에서 진정한 ‘자기세계’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으리라. 그는 지금 이 순간도 현실 ‘저 너머의 미학’을 조용히 꿈꾸고 있을 것이다.

- <현대시>, 2011년 7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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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 대담

 

빌딩나무 숲을 거니는 비교秘敎의 사제

 

이재훈 ․ 신동옥

 

 


신동옥 : 형과 대담을 하다니! 오늘 나의 주제는 ‘형을 이해하기 위하여’다.(웃음) 최근에 대담집(이재훈, <나는 시인이다>, 팬덤북스, 2011)을 냈다. 형이 인터뷰를 진행한 십여 년, 그 오랜 행간을 좇다가 문득 이건 농축된 이재훈 스스로의 질의응답이 아닐까 여겨지기까지 하더라. 돌아가신 김춘수, 오규원, 박찬 시인과의 인터뷰를 읽고는 뭉클하기도 했다. 대담집 소개 말씀, 더불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 자리에서 들려 달라.

이재훈 : 오랜 문우인 신동옥 시인과 대담을 나누게 되어 더없이 기쁘다. 우리가 만난 지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우리가 독고다이, 언더 스타일이 서로 맞아 이렇게 오래 가는 건가?(웃음) 각설하고,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는 내게 십여 년의 세월이 집적된 문학 일기처럼 느껴진다. 이 대담집은 시인들이 직접 육성으로 풀어놓는 시에 대한 비밀을 알 수 있는 책이다. 각 시인들의 시관詩觀, 창작의 비밀, 창작배경, 성장과정, 문청시절,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문학적 삶 등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시인론을 쓰는 많은 평자들이 내 대담을 귀동냥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인의 창작배경이나 시적 의도가 큰 참고가 될 테니까. 또한 원로, 중견, 시의 성향, 계파를 가릴 것 없이 많은 수의 시인들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너무나 많다. 시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한 가지씩의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나는 서면 인터뷰보다는 거의 현장 녹음을 하고 녹취를 푸는 식으로 했다. 당연 품이 많이 든다. 그만큼, 재미난 일화도 많다. 개인적으로 이미 작고하신 김춘수, 오규원, 박찬 선생 같은 시인들을 대담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김춘수 선생은 김수영이 평생의 라이벌이었다는 얘기와 국회의원을 역임하셨던 사연 등이 기억에 남는다. 오규원 선생과의 대담은 경기도 양평의 서후리라는 동네에서 요양하고 계실 때 했다. 이메일로 대담을 주고받았는데, 대담을 시작한 2004년 여름은 지독히 더웠다.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대담의 진행과정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박찬 선생은 연세에 비해 좀 일찍 작고하셔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대담 당시 일산에 살고 계셨는데, 비가 많이 내렸던 날이다. 직접 차를 몰고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대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에피소드를 이 자리에서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또다른 자리에서 말할 기회가 있겠지. 궁금한 독자 분들은 우선 <나는 시인이다>를 참조하면 될 듯하다.

신동옥 : “1972년 강원도 영월 태생”이라고 약력에 썼다. 그런데 성인이 되기까지 강원도, 경상북도, 충청도까지 이사가 잦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린 시절 겪었다는 폭설에 대한 기억이나, 스무 살의 서울 체험에 대한 기억은 내게 이채롭게 들렸는데.) 자아가 형성되는 예민한 시기에서 막 사회화되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잦은 이사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이재훈 : 태어난 곳이 영월이지만, 영월을 고향이라고 말하기엔 내게 고향이 너무 많다. 어쩌면 고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초등학교 때까지의 유년시절은 강원도 일대에서, 중고교 시절은 경북 일대에서, 고교부터 지금까지는 충남 논산이 내가 겪은 공간들이다. 이 지역들은 모두 내 고향이나 다름없다. 그 땅의 산하들이 나를 키웠으니까. 그렇게 어린 시절을 늘 떠돌았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 이전 살던 곳을 그리워했고. 적응이 될 만하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다. 나는 늘 친구들에게 떠나는 사람이었고, 먼 곳에서 편지를 쓰는 사람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연락이 끊기는 사람인 거지. 말이 없었고, 혼자 많이 놀았고, 누군가 먼저 다가와야만 겨우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신 시인께 언젠가 얘기했던 폭설에 대한 기억은 강원도 인제의 깊은 골짝에 살 때였다. 정확히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그 동네는 여름과 겨울밖에 없었다. 9월이면 김장을 시작했고, 너무나 추운 동네였다. 심지어 내가 키우던 강아지가 얼어 죽었을 정도였으니까. 눈이 엄청 많이 내렸다. 군인들이 눈을 치워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동네였다. 눈이 많이 왔던 날은 방문을 여니 마루 위까지 쌓였던 적도 있었다. 허리 깊이까지 눈이 내려 갇혔던 기억. 대체로 아이들은 동굴을 만들어 놀았다.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산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재미난 추억들이 많다.
   어릴 때부터 공간에 대한 집착은 없었던 거 같다. 떠나면 슬퍼진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던 것은 아닐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쿨하게 떠났던 거 같다. 오히려 남아 있는 사람들이 더 눈물바람이었고. 나는 이사를 가면 늘 타던 커다란 트럭이 기억에 남는다. 정확하게는 트럭 뒷좌석의 다락방 같은 공간. 이삿짐을 싣던 트럭은 운전석 뒤에 한 사람이 누워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동생 둘과 함께 덜컹거리며, 평소에 먹지 못했던 맛난 과자를 먹으며 정말 오래도록 차를 타고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디로 가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거 같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걸 보면. 이사를 안가겠다고 떼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대충 어디 먼 곳으로 가는구나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사를 간다는 얘기를 들으면, 또 트럭의 뒷좌석에 탈 수 있겠구나 하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철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인지 뿌리의식이 없고, 정처 없는 유랑의식이 날 지배했다. 나중에 어디 조용한 데로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가끔씩 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는 내게 중요치 않다. 내가 가는 그곳이 또 다른 내 고향이 될 테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어떤 공간인지가 중요하다. 조용한 다락방 같은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신동옥 : 그래서 그런지 형의 작품에는 공간 내지는 공간성에 대한 예민한 촉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의 경우 그 공간은 첫째 도시와 일상의 공간, 둘째 신성의 거소, 셋째 비밀한 시원始原이 기루어지는 자리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개별 작품들 안에서 시적 공간을 배치하는 스킬이 놀랍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시인으로서 형의 특장이 아닌가 싶은데.

이재훈 : 시를 쓰면서 시적 공간의 배치를 크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대부분 자연스럽게 한 편의 시속에서 스스로 운용되어진 것 같다. 시적 공간들이 떠오르고 이동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둔 것이지. 그래서 시속의 자아가 많이 날아다닌다.(웃음) 시공간이 광활하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하는데. 이런 부분은 평소 상상하던 버릇 때문일 것이다. 늘 이곳 현실보다는 현실 너머를 많이 생각하고, 상상했다. 예를 들면, 우주로 날아가 외계인을 만나 놀거나, 내가 칠십 넘은 노인이 되어 새로운 사랑을 한다거나 하는 식의 상상들. 사실보다, 기적 같은 사실이 더 매력 있지 않나. 현실보다 믿을 수 없는 현실 혹은 믿고 싶은 현실에 더 강한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 상상들이 현실에 발 디디고 사는 시인의 모습에 투영되어 나온다.
   또한 성인이 될 때까지 잦은 이주와 이별 등의 시간이 유목적 감각을 낳았던 것 같다. 유목적 감각이 묵시적 꿈들이나 환상, 욕망 등과 뒤섞여 내 시적세계를 이룬 것은 아닐까. 신성의 공간이나 시원 등을 탐구하는 시적 세계는 신화나 종교, 고고학 등을 좋아하는 독서습관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관심은 지속될 것이지만, 좀 외롭겠지. 좀 낯선 것일 수 있으니까.


신동옥 : 낭만주의자라는 평가가 있다.(박수연, 「내면적 낭만의 순간」, <현대시>, 2005년 12월호) 첫 시집 시인의 말에는 이렇게 썼는데. “인간에게는 누구나 시원始原의 원대한 물음이 있다. 가령 밤하늘의 별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다소 낭만적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흠의 고백」,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시인의 말 중에서)

이재훈 : 과장된 표현으로 읽혀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겐 정말 절실했다. “밤하늘의 별을 본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썼지만, 내 존재 이전의 먼 곳을 진지하게 응시하는 일은 내겐 중요한 행위였다. 그런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나를 여러 번 죽였다. 운명이란 것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이재훈이란 인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는, 운명적으로 이렇게 타고나서 생긴 거다. 남자이고, 이런 부모와, 이런 종교와, 이런 생김새와, 이런 교육과, 이런 공간들 모두.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은 몇 개밖에 없더라.
   존재탐구나 고행, 미지의 동경 등은 오래도록 나를 치기어린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아직도 미완인 걸. 계속 치기어린 사람으로 살아야겠지. 낭만주의자. 멋있지 않나. 끝까지 낭만주의자로 남고 싶다.

신동옥 : 첫 시집 해설에서 유성호 선생은 형의 시세계에서 종교적인 맥락을 소상히 밝힌다. 김유중 선생의 통찰(「그노시스를 향한 열망」, <시와생명>, 2002년 겨울)과 형 스스로의 고백적 아포리아(「숭고한 그노시스와 연금술사」, <시와반시>, 2007 겨울)도 있었다. 모태신앙이지 않나? 형의 기독교적인 상상력은 묵시록적인 비전보다는, 일종의 영지주의靈智主義(Gnosticism)랄까 그런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것 같다. 이런 성향은 첫 시집에서 두 번째 시집으로 건너오는 동안 더 강해진 것 같고. 형 시에서 종교적인 채색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재훈 : 종교적 메타포나 질료가 시속에 그렇게 많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내가 생각지 않았는데 언어 속에 들어와 있더라.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니까 그런 부분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까지는 집과 교회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 아주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신앙생활에 대한 다짐과 계획 등으로 모든 삶의 울타리가 쳐졌던 때였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자취를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또 이사 가신 거지. <데미안>에 등장하는 싱클레어의 삶이 시작된 거다. 사춘기가 늦게 와서, 전학을 가지 않겠다고 반항을 했다. 그렇게 혼자 떨어져 지냈는데. 문득, 이 모든 주어진 삶의 굴레에서 이탈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격렬하게 몰려왔다. 그리곤 신앙생활과는 동떨어진 난삽한 생활들을 했다. 그때는 신앙생활 이외의 모든 것들은 난삽한 죄의 생활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아무튼, 정통 기독교 외의 것들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에큐메니칼, 해방신학, 중세 비교도, 그노시즘 등등. 기독교의 고집스런 구원관에 대한 회의도 있었고. 그 후로, 성聖과 속俗을 오고가는 철새 신자로 살았다.

신동옥 : 그렇다면, 형을 ‘연금술사’ 내지는 ‘그노시스트Gnosist’라고 불러도 되겠다.

이재훈 : 그렇기도 하다. 그노시스트지. 믿음보다는 앎에 더 관심이 있으니. 하지만 나는 이신론자라기보다는 크리스천이 돼야 한다.

신동옥 : 시에서 상징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다! 첫 번째 시집의 ‘황홀한’ 시리즈와 두 번째 시집의 ‘대황하’ 연작은 이런 생각을 단박에 증명하는 역작이다. 시적 상징에 대한 형 나름의 정의 같은 것이 있을 텐데. 참, 대담이 활자화될 쯤 두 번째 시집이 나올 수도 있겠다. 제목은 어떻게 정하셨는지?

이재훈 : 과찬이다. 한 편의 시에서 전달할 수 있는 상징은 미약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작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상징은 여러 편의 시 속에서 반복적으로, 혹은 다양한 변주로 전달되어야만 힘을 갖는다고 본다. 특히 ‘대황하’ 연작은 물에 대한 상징을 제대로 밀고 가본 경우인데, 앞으로도 이러한 스타일의 연작들을 생각 중이다. ‘대황하’ 연작은 우연히 시상이 다가왔다. 이십대 초반 시절 쿠스코Cusco라는 밴드의 「대황하」라는 곡을 지겹게 들었던 때가 있었다. 한 평도 안 되는 고시원에 누워 이어폰으로 그 곡을 들으며, 거대한 황토물의 휘몰아침을 생각하면서 삶을 견디던 때였다. 오래전 그때의 감성이 정말 섬세하게 다가오더라. 내겐 행운인 거지. 두 번째 시집은 아직이다. 해설도 아직 안 나왔고. 때가 되면 나오겠지. 제목도 아직 미정이고.

신동옥 : 두 번째 시집, 기쁘게 기다리겠다.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쓸쓸한 날의 기록」)라고 말했다. 이때의 ‘서정시’, ‘서정시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재훈의 정의를 듣고 싶다. 그거 아는가? 가끔 형이 “나는 실패한 서정시인이지”라고 말할 때나 “나 같은 삼류시인이 무얼”라고 할 때면, 콱 때려주고 싶을 때도 있다는 거.(웃음)

이재훈 : 편하게 읽으면 되지 무얼. 그 시는 정재학 시인과 내 자취방에서 밤새며 나누었던 얘기들을 시화한 것이다. 그래서 부제를 ‘정재학에게’ 라고 붙였다. 감수성 살아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건데. 그런 면에서 모든 시들은 다 서정시이다. 왜 서정시라 칭하는 것들만 올곧은 정서와 예민한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얘기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론에서 흔히 말하는 ‘서정시’에 대한 개념도 새롭게 정립해야 될 시점이지 않을까.
    가끔 입버릇처럼 말하는 ‘자기부정’은 날 채찍질하기 위해서다. 자기비하, 자기부정 등을 통해 최소한 내가 그런 시인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최고의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때가 간혹 있는데, 그 순간 아찔하다. 너무 천박하고 유치한 생각이지 않나. 그 생각을 덜기 위해 끝없는 자기부정을 하는 것이다. 자기부정만이 살 길이다.

신동옥 : 동감同感, 상련相戀이다. 첫 번째 시집의 세계가 노래 특히나 영가靈歌의 세계였다면, 두 번째 시집의 가장 특징적인 무늬는 ‘침묵’과 ‘고요’의 깊고 너른 울림이 아닌가 싶다.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이재훈 : 그렇게 읽히는가. 아마도 침묵과 고요의 시간들을 얻고 싶어서겠지. 요즘 도통 침묵과 고요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수다스러워졌고, 주위는 산만하고 시끄러워졌다. 유폐의 공간과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 열망이 시에 드러나지 않았을까. 또한 첫 번째 시집이 하늘 위에서 부르는 노래였다면, 두 번째 시집은 하늘과 땅의 중간쯤에서 부른 노래이지 않을까. 아마 세 번째 시집은 좀 더 땅으로 내려와 부르는 노래가 될 것이다.

신동옥 : 「新林洞」, 「매일 출근하는 폐인」, 「비비디 바비디 부」, 「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 등등 두 번째 시집에서는 일상의 공간에 대한 재해석이 눈에 띈다. 그 공간을 성찰하는 눈이 깊고 차분해졌고. 청년과 장년, 미혼과 기혼의 차이인가? 시인 이재훈에게 생활인 이재훈의 일상은 어떤 주제인가?

이재훈 : 두 번째 시집의 십여 편 정도는 내 일상 공간들이 시에 직접 드러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내게 새로운 탐구의 대상이다. 스무 살 때 처음, 서울을 와봤다. 물론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 영락교회에서 초청한 강원도 오지마을 어린이탐방단에 뽑혀 서울에 온 적이 있긴 하다. 그때 국회의사당과 KBS를 견학했었는데. 스무 살 때 본 서울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너무나 큰 한강과 책으로만 보던 63빌딩, 아파트, 수많은 차들. 시골에서 서울로 기차를 타고 올라오면 괜히 도시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멀리 서울의 빌딩 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땐 알싸한 도시의 매연도 좋았으니까.
   이런 서울이 지금은 부정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숨이 막히고, 날 옥죄는 공간으로. 하지만 어쨌든 내가 발 디디고 살아가야 할 공간이지 않나. 아마 서울에서 인간처럼 살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통과제의일 것이다. 시에서는 몽상하는 산책자로 남고 싶다. 도시 속의 은둔자로 살아가고픈 욕망 때문이다. 욕망의 서울 속에서 겨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러한 도시성찰이라도 있어야 하니까.
   청년이건 장년이건 별 생각이 없다. 결혼을 했으니, 그저 고맙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에 많은 게 담겨 있다. 가장으로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밥벌이를 해야 하고, 그런 일상들이 시속에 스며들지 않았겠나 생각한다.

신동옥 : 두 번째 시집 원고를 읽으면서, 소재나 착상의 범위가 더욱 넓고 풍요로워진 것을 보았다. 호흡과 리듬이 첫 번째 시집보다 더욱,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 시 속에서 이재훈은 젊음 쪽으로 역진逆進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재훈 : 정신연령이 낮아서일 거다. 그런 평가가 기분은 좋다. 젊음 쪽으로 역진이라니. 하하. 그런데 나이는 먹어가고 있지 않는가. 올해로 사십이다.(웃음) 두 번째 시집은 첫 번째 시집에 비해 좀 더 다양한 시편들을 묶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동옥 : 난 여전히 형이 사십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각설하고) 현재 월간 <현대시> 부주간이다. 국가대표 편집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텐데. 그만큼 성별과 연령, 시력詩歷을 불문하고 유연한 교우관계를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문학 현장에 있었는데, 그간 어떤 변화를 지켜봐 왔나? 시단이 달라진 점과 형 스스로가 달라진 점은 무얼까?

이재훈 : <현대시> 1999년 12월호부터 편집에 이름을 달고 일했다. 발행인 원구식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대학원 공부와 병행하며 일하기 시작했다. 그새 만 십년이 훌쩍 넘었다. <현대시>에 내 청춘과 삼십대를 고스란히 바쳤다. 억울한 건 없다. 좋아서 한 일이니. 나 같은 시인도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좋은 문학지를 만들기 위해 나름 바닥부터 고생했다. <현대시>는 한국 시단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대표적인 시전문지이다. 많은 시인들이 아끼는 잡지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또한 가장으로서의 내 생활을 걱정해주는 분들이 많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최근 시단의 변화는 젊은 편집진들로 세대교체가 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앞으로의 시단을 위해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또한 시단은 아직까지 다른 집단에 비해 권위적인 부분이 남아 있다. 자유로울 것 같지만 위계를 중요시한다. 그런데 젊은 세대의 시인들은 이런 부분을 견디지 못한다. 어른들이 뭘 시키거나 가르치려드는 게 싫은 거지. 또 윗세대들은 달라진 젊은 세대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선생 노릇 안하고, 권위적이지 않고 친구 같은 어른들이 젊은 시인들에게 인기가 좋지 않은가.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차이는 언제나 있어 왔던 것 같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랫세대들이 윗세대가 되면 또 이해하겠지. 원래 시인은 제각각 하나의 공화국 아닌가. 이형기 선생은 “시인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했다.
   유연한 교우관계는 따지고 보면 외롭다는 말과도 같다. 인간관계는 깊이가 중요하지 않나. 아무래도 시전문 월간지에 있다 보니 대부분의 시인들을 한 번씩은 보게 된다. 신동옥과 같은 시인이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깊고 청명한 고독 속으로 들어가는 길 위에 영혼의 동반자인 문우들이 있다는 게 고맙고 든든하다.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얼까. 잘 모르겠다. 내 꿈은 멋있게 늙는 것이다. 나잇값 못하고 추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지도.

신동옥 : 이재훈이라는 ‘첫정’ 선배가 있어 든든하다.(웃음) 형은 소문난 독서광이기도 한데. ‘이재훈이 꼽은 책 베스트 3’을 부탁한다면.

이재훈 : 소문났다니 무슨 말인가.(동옥 : 내가 소문냈다) 독서광은 신동옥 시인을 따라갈 자가 없는데. 옛날 말이다. 헌책방을 돌며 책을 모을 땐 좀 읽었었지. 지금은 많이 읽지 못한다. 책 베스트는 통과하자.

신동옥 : 마지막으로, 시인 이재훈으로서 생활인 이재훈으로서, 형 스스로에게 하는 당부와 다짐은 무언가? 이 자리에 명문화시켜서 남겨놓자.

이재훈 : 그러지 말자. 명문화라니. 명문화시켜 놓아도 내일이면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 시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의 생각들이 자주 바뀐다. 특히 삶의 무게에 어깨가 무거워지는 요즘은 더욱더. 결국 시인과 생활인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것을 알면서도, 두 마리 토끼를 쫓아가야만 하는 운명 아닌가. 다만 내 시에 등장하는 “나는 백 년의 무명을 견딜 것이다” 같은 철없는 폼은 계속 재고 싶다.

신동옥 : 그 다짐 함께 간직하겠다. 오랜 시간 고생 많으셨다.

이재훈 : 고맙다. 오늘이 기억날 것이다.

2002년 이즈음, ‘현대시동인상’ 시상식장이다. 머리는 삭발을 하고 붉은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는, 커단 화분에 앉아 호프를 먹었다. 대학로 비어할레 3층 화분 위에서 형과 첫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 돌아가고 술집 불이 꺼지고 보도블록에서 새벽 훈김이 올라오는데, 무슨 열병에 들떴는지 근처에 여관을 잡기로 한다. 함기석, 김태형, 김참, 정재학, 김언, 이재훈 형들 틈에 함께였다. 태형 형이 앞장섰다. 모두들 아스팔트 한 가운데로 스크럼을 짜듯 나란히 허청허청 느릿느릿 폴랑 폴랑 걸었다. 그러고는 서울대병원 뒤쪽 여인숙 2~3인실에 들었다. 재훈 형과 재학 형과 나는 카운터 밑으로 주인 몰래 기어들어간다. 염소 똥만한 방에 장정 일곱이 ‘빤쓰’만 덜렁 입고 앉아 할 말은 무에 그리도 많은지. 새벽 어스름 재훈 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가 막 뜨는 좁은 골목길로 재훈 형이 나서자 ‘빤스’만 입은 장정 몇이, 어디 먼 길 떠나는 사람 보내는 모양 술기운에 아득한 손을 오래 흔들고 섰던 거다. 재훈 형은 이 날의 멤버들을 일러 ‘첫정’이라고 부른다.
내가 형을 처음 만나고 함께 밤을 지새운 다음날, 형은 전농동 시립대 후문 ‘관방’에서 또 어디로 집을 옮긴 거다. 그리하여 내게 남은 형의 첫인상은, 해가 뜰 무렵 혼자 떠나는 사람, 무시로 집을 옮기는 사람, 좁은 어깨에 하늘같은 것을 잔뜩 얹은 사람, 그러고도 내처 흔들리며 걷는 사람…… 형이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 헤세가 쓴 ‘크눌프’ 같은 사람. 형이 어디서 어디로 방을 옮기고 서가를 옮기는 동안 내가 함께 한 셈이 된다. 형은 형대로 아우 녀석이 어디서 어디로 옮겨서 빌빌대는 내내 함께 한 셈이 된다. 세포가 자라고 커서 소멸하는 저 알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시공간 감각으로 그렇게 형은 ‘부동의 포에지’를 짊어지고 또 옮기며 사십 세에 이른 건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와 지난 십년 동안의 형을 돌이킨대도 형의 장난기 가득한 빙그레 웃음 한방이면 내사 와그르르 무너지고 마는 것. 그러니 내편에 실재하는 형이라는 품 넓은 웃음―실재의 포에지를 가만 가만 들여다보는 수밖에. 부디 이재훈이라는 그노시스엔 바닥없이 천공이 깊어라. 이재훈이라는 연금술사에게는 촉매 없이 치환이 자재하라. 기도를 더하며 함께 하는 것. 함께 할 수 있어 내내 고맙고 든든한 것.



신동옥 | 시인. 1977년 전남 고흥 출생. 2001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으로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가 있음.


_ <현대시> 2011년 6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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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햇살을!

 

강동호

 

 


진정성 같은 것 따위는 그야말로 초토화 되어버린 오늘날 시인은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타인의 아픔마저 생중계로 전시되고 교환가치로 변환되는 시대에, 스스로 의식의 최전방에 앞장서면서 세계의 고통을 온몸으로 증언했던 시의 악전고투는 여전히 독자의 폐부에 가닿을 수 있을 것인가.
일상을 도륙하는 악무한의 욕망에 투항하는 현대인의 나날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재훈의 신작시들은 우리로 하여금 또 한 번 그와 같은 난제 앞에 서게 만든다. 이재훈의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문학동네, 2005)를 읽어본 독자라면 존재의 시원始原의 자리에 가닿고자 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도시 공간 속에서 환상적이고도 동화적인 색채의 공간을 펼쳐놓는 장면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 근대의 도시라는 폐색 지대에서, 시인은 “시대가 없는 거리의 시”(「거리를 훔치다」)를 씀으로서 잘못 태어난 자들의 운명을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아름답게 그려내었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는 현실의 납빛 공간과 모든 존재의 기원의 자리에 가닿으려는 언어의 꿈 같은 운동이 기묘하게 동거하는 장면이 연출되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독자가 읽게 된 신작 시편들은 이러한 상상과 현실의 접경지대에서 보다 현실의 편 쪽으로 당겨져 같다는 인상을 준다. 이를테면 그는 자본주의적 욕망이 하달하는 가르침을 성실하게 익히는 우리들의 일상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중얼거릴 수 없다
뱀이 온몸을 감고 있어 숨쉬기 힘들다
언제나 위기가 아닌 적은 없었다
고통 이후를 생각하는 시간들
늘 속도에 의지했으며
숨 쉬는 것들을 혐오하며 살았다

검은 바닷가 모래 위
구름은 낡았고 파도는 헤졌다
내 고통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멀리서 날 지켜보고 있다
낯설지만 또 낯익은 순간
오직 한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이 비릿한 고통의 풍경

사람들은 대체로 첨단을 잘 견딘다
그는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던가
울며 흐느끼고 있었던가
새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물비린내도 없이
파도소리만 가난하게 들렸다

칼로 내 가죽을 벗기려 한다
아, 이 극악한 자본의 성실함
생살을 찢어 슬금슬금 도려내야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이 땅과 하늘
밤이 되면 일하러 간다
삼인칭으로만 불리는 인생 공부의 완성을 위해
― 「숭고한 셀러던트」 전문

직장인(셀러리맨)과 학생(스튜던트)의 합성어인 ‘셀러던트’라는 표현이 적시하는 것처럼 위 시의 시적 화자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더 일을 잘하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이 시대 일상인들의 공회전과 같은 삶을 보여주고 있다. “삼인칭으로만 불리는 인생 공부의 완성”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화자는 한 번도 자신의 것, 삶을 소유해본 이력이 없다. 그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삶에 기생하면서 목숨이라도 연명하기 위해, “속도에 의지”한 채 어디론가 방향 없이 불철주야 이동중일 뿐이다. “첨단을 잘 견”디는 삶이란 이처럼 빠르게 내 일상을 몰아가는 가운데 현재의 고통에 무심해지고 오로지 “고통 이후를 생각하는 시간”에만 주관의 지향성을 집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현재를 완벽하게 미래에 저당 잡힌 삶 속에서만 겨우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서 오는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자본이 선사하는 아픔, “칼로 내 가죽을 벗기”고 “생살을 찢어 슬금슬금 도려내”는 것 같은 느낌이 더 이상 체험되지 않는 것이다. 아픔이 더 이상 아픔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 마취된 감각은, 병들었으나 고통을 어느새 망각해버린 현대인들의 고장 난 통각을 증언한다.
이재훈의 시에서 현실로 육박해 들어오는 실재는 이처럼 마비된 주체의 피로한 감각의 파노라마에서부터 비롯된다. 하여 “새소리”도 “물비린내”도 없는 삶, 그저 “검은 바닷가”의 가난한 파도소리만 울리는 인공적인 풍경만이 전경화 되는 것이다. 시적 화자의 실존을 ‘현실’과 ‘생존’이라는 이름에 결박시키는 나날들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와 같은 생활의 세계로부터 물러서지 못하고 언제나 삶 속으로 귀환 중이다.

햇살이 창가에 와서 눕는다
우리는 저 찬란한 햇살을 의지하지 못한다
강의실은 학생들로 빼곡하다
사육당하는, 사육당하고 싶은 청년들
먼 대양의 꿈도
격정적인 연애의 꿈도 잊었다
따닥따닥 볼펜이 책상을 찧는 소리
얼굴 모두에 수상한 간판이 붙어 있다
강사는 얘기한다
꽃잎 떨어지는 날들을 탐하지 말라
햇살보다 형광등이 우리에겐 더 소중해
― 「꿈꾸는 강의실」 부분

사정이 이러하거니와, “사육당하는, 사육당하고 싶은” 인간들, 그저 “수상한 간판”만을 달고 활보하는 인간들의 틈에서는 설사 무엇이 씌어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책상을 찧는 소리”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펜의 머리를 눌러야만 중심이 나오는/ 저 결박의 세계/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종이와 펜으로 묶는/ 상생의 세계”라는 표현이 냉소적으로 꼬집고 있듯, 위 시의 화자가 처해 있는 세계는 ‘상생의 세계’라는 미명으로 치장된, 그러나 실상은 모든 이들을 숨 막히게 만드는 결박과 구속의 끈으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 극도의 강박적인 자기 결박을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언제나 “햇살보다 형광등”이다. 꿈마저 사육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저 잔인한 공간, 장밋빛 미래를 인질 삼아 인간의 열정을 삭막한 노동으로 전환시키는 저 끝 모르는 욕망의 세계를 휘감는 근본 기분은 지루함과 무기력함이다.
이러한 권태와 무력함은 일상의 나날들을 파르마콘pharmakon으로 바치는, 거짓된 번제燔祭의 풍경으로도 빚어진다. 이를테면 그의 또 다른 시 「번제燔祭」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내 모독을 치유”하고 “타인을 용서”한다는 명분으로 벌어지는 어떤 속물적이고 반윤리적인 장면이다. 때로 우리는 현실을 위한 알리바이로 신성을 도용하는 법 아니겠는가. 그러니 신앙으로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니라 “신앙은 눈물의 산물”인 것이고, 종교적으로 경건하고 엄숙해지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숫양을 학대하고 태”울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이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널브러지고, 피가 솟고, 사나운 개들이 짖고, 젊은 남녀들이 허리를 돌리며 춤을 추”는 시적 광경을 보고 어딘지 모르게 머쓱해진다면, 그것은 저 광기어린 이미지들이 바로 우리의 삶 자체를 저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재훈의 냉소적이고, 다소 비극적인 세계 인식이 온전히 검은 페이지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그의 시편들에는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던 우리의 죽어 있는 삶을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햇살이다.

늘 어두웠다. 구석진 곳으로만 들고 났다. 대지가 아닌, 동굴의 습한 곳이 내가 꿈꾸는 곳. 어스레한 어둠 사이로 햇살 한 줄기. 길게 뻗어 내 눈을 찔렀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터질 것 같은 안압眼壓을 느끼다 이내 평온해졌다. 뒷덜미가 서늘해 만져보니 가늘고 날카로운 칼끝. 한 줄기 칼이 머리를 관통했다. 박힌 칼을 뽑아냈다. 뜨겁고, 살 타는 냄새가 나고, 나는 혼절했다.

다시 절벽. 아래엔 검은 물이 흘렀다. 구름은 빠른 속도로 바위를 훔치고 달아났다. 나는 절벽에 달라붙어 기어올랐다. 저 아래의 검은 물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가기 위해. 등허리가 따끔따끔했다. 먼 산에서 몇 줄기 햇살이 긴 협곡을 빠져나와 내 등에 박혔다. 절벽의 난간에 동굴이 있었다. 나는 패배한 것일까.

온몸에 박힌 햇살을 하나씩 뺐다. 고통스러웠으며 황홀했다. 동굴을 나가 하늘을 봤다. 파란 하늘 가득,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얼른 옷을 벗었다. 알몸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수많은 햇살이 내 몸에 박혀 반짝반짝 빛을 냈다.

몸은 뜨겁게 허물어져 갔다. 저 아래 검은 물을 향해 햇살 한 줌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밝고 뜨거운 칼이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텅 빈 계곡을 날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투명한 몸이고 싶었다.
― 「햇칼」 전문

“햇살보다는 형광등”(「꿈꾸는 강의실」)에 길들여진 채 그저 풍경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셀러던트의 감관에 순간 “햇살 한 줄기”가 드리워지자 그야말로 극도의 고통이 수반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저 기계에 지나지 않았던 시적 화자의 마비된 의식을 쪼개는 “한 줄기 칼”과 같은 것이다. 햇볕을 쬐는 ‘나’의 의식이 마치 칼로 관통당한 것 같은 환상통으로 허덕이고, 도처에서는 “뜨겁고, 살 타는 냄새”가 진동하면서 저 무료했던 시적 공간이 일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로 변모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눈치 채야 하는 것은 이 극심한 감각적 고통을 견디는 과정에서 시적 화자가 일대 존재의 전환을 겪게 된다는 사실이다. “온몸에 박힌 햇살”을 하나씩 빼면서 화자는 “고통스러웠으며 황홀”하다고 고백하는데, 저 고통이 황홀을 동반한다는 것은 이 아픔에 시적 화자의 지향성이 개입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이때의 아픔은 그저 즉자적으로 우리에게 내던져 있는 질료적인 수준의 감각이 아니라, 시적 화자로 하여금 자신이 처한 사태를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어떤 의식의 계기에 가까운 것이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 속 수인囚人이 동굴 밖을 나서는 순간 진리의 태양빛 때문에 고통과 경이를 동시에 느꼈던 것처럼, 오로지 형광등 빛에 의거하여 사태를 파악하던 내가 실재의 풍경을 맞이했을 때 눈멂에 가까운 상태에 처하는 것이다. 이 전환은 나의 전부를 바꾸는 과정에 가까워서, 실로 내 온몸을 태우고 살가죽을 벗기는 작업(“얼른 옷을 벗었다”)으로 느껴진다. 그 경험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이 고통에 의존하여 새로운 내가 될 수 있다는 어떤 희망 또한 비로소 스며들기 시작한다(“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투명한 몸이고 싶었다”).
3연을 기점으로 시적 화자의 목소리를 떠받들고 있는 정조에 어떤 반전의 계기가 스며드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일견 기쁨으로 가득해 보이는 이러한 어조에서 우리는 더 이상 죽어 있는 고통이 아니라, 신선하게 살아 날뛰는 고통의 전조를 듣게 된다. 고통이 살아 있다고? 더 정확히 말하면 고통을 온전하게 감각하는 와중에 ‘나’의 존재론적 쇄신이 일어나면서, ‘나’의 있음이 분명하게 인지되기에 이른다. 물론 그러한 고통은 시적 화자는 온전한 행복을 선사하지는 못하지만, 나로 하여금 고통의 주인으로 거듭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자아의 살아 있음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게 만든다. 이 비약에 가까운 긍정으로 인해, 시의 화자는 삶에 대한 다른 가능성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햇살로 고독하자
햇살과 마주치자
햇살 따라 걸어가면
풀꽃을 만나고
햇살이 몸 누이는 곳에 뒤엉키면
과거를 잊고 슬픔을 잊고
햇살 따다 술 빚어
맑고 투명하게 발효되고 싶다

햇살이 새들의 길목을 마련하고
비쩍 마른 소나무의 몸을 어루만지는
사월의 오후
햇살이 만든 평평한 산 위로
빨간 구두의 여인이 앉아 있다
― 「전위적 풍경」 부분

그러므로 시인에게 ‘햇살’은 우리의 인공적인 삶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는 ‘자연’을 표상하고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감한 감각 기관 자체를 곤두서게 만드는 모든 ‘충격 체험’(벤야민)들의 총칭을 일컫는 것이다. “햇살로 고독”하고 “햇살과 마주치”며, 그 햇살로 내가 “맑고 투명하게 발효”될 때 비로소 신생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물론 그러한 가능성은 천지가 개벽하는 놀라운 사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일상의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것에 대한 범속한 각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의 눈에 비친 ‘전위적인 풍경’은 햇살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적층되어 있는 셈이다. “햇살이 만든 평평한 산 위로/ 빨간 구두의 여인이 않아 있”는 이 기묘하고도 동화적인 풍경 또한 시적 화자의 상상력이 빚어낸, 어떤 환시의 풍경이다. 그의 눈에 이제 세계는 그저 무기력하게 내던져 있는 것이 아니라, 미약한 잠재성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체의 형상을 지니지 않은 ‘햇살’이 수도 없이 낮게 축적되어 이루어진 “평평한 산”은 실상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감각적 잠재성을 비유하는 이미지가 아니겠는가. 무료한 일상 속에서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린 그와 같은 비가시적인(invisible) 가능성을 감지하고 드러내려는 예민한 시인의 촉수 덕분에 우리의 무딘 일상이 조금이나마 아픔을 되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바라건대 시인이여, 우리에게 조금 더 많은 고통을, 더 많은 햇살을!

_ <현대시> 2011년 6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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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시인 윤동주

 

이재훈
(시인, 현대시 부주간)

 

 

 


별의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1945). 그는 28세의 짧은 생을 살다갔으나 우리 시단에서 잊히지 않는 큰 별과 같은 시인이다.
시인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암울한 조국의 현실에 대해 늘 고민하는 지식인이었다. 또한 조국의 앞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부끄러움 의식’을 시로 승화시킨 뛰어난 시인이었다. 윤동주는 살아 있는 동안 문학적 영화를 단 한 번도 누리지 못했다. 그는 사후(死後)에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에서 출생했다. 그의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서 평생 기독교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 1925년에 명동소학교에 입학하는데 이때 조선의 역사를 배우고 민족의식과 독립 사상을 깨우치게 된다. 이후 집이 용정으로 이주하여 은진중학교에 입학하고, 이 시절 교내 문예지를 발간하여 문예작품 등을 발표하는 활동을 했다. 1935년 평양으로 이주하여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으나 이듬해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되자 용정에 있는 광명학원으로 다시 편입했다. 이 당시 <카톨릭 소년>에 「병아리」 「빗자루」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1938년에는 지금의 연세대학교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연희전문학교에서는 최현배 선생으로부터 조선어와 민족의식을, 이양하 선생으로부터 영시(英詩)를 배웠다. 1941년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졸업 기념으로 출간하려다 실패했다. 이듬해엔 일본 동경으로 유학하여 릿쿄[立敎] 대학 영문과 입학하여,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로 옮겼다.
1943년 조국으로 귀향을 앞두고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조국 해방을 6개월 남겨 놓고 옥사했다.
윤동주는 생전에 시집을 간행하지 못했다. 1948년이 되어서야 유작 31편을 실은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가 간행되었다. 이 시집은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에 의해 간행되었으며 시인 정지용이 서문을 썼다.
윤동주의 대표시는 아마도 <서시>일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로 시작하는 전 국민의 애송시 <서시>는 국민의 뇌리와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또한 대표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등도 사랑을 많이 받는 시이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자화상> 전문

위의 시 <자화상>은 윤동주의 내면의식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시이다.
시에 등장하는 ‘우물’은 자신을 성찰하는 시적 대상이다. 이 우물은 아주 조용한 곳에 존재한다. 산모퉁이를 돌아야 하고 논가 외딴 곳에 위치해 있다. 우물은 자아를 생각하고 성찰하는 장소이다. 시인은 다른 시에서도 그렇듯 늘 자신을 성찰하고, 고백한다.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물을 통해 자아를 성찰하고 자아의 내면을 고요히 응시한다. “한 사나이”는 시인의 모습과도 동일시된다. 즉 자신의 모습이 우물에 비췄을 때 미워졌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돌아가다 생각하니 다시 그 사나이가 가엾어지는 것이다. 사내는 아무런 변화없이 늘 그 자리에 있다.
시에서는 우물에 비친 사내의 모습이 미워졌다가, 가엾어졌다가, 다시 미워졌다가, 그리워진다. 미워졌지만 가엾어지는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당시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나약한 지식인의 초상이 그대로 시속에 드리워져 있다. 우물 속에는 아름다운 자연의 흐름이 그대로 존재한다. 즉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사나이가 있고, 그 사나이는 추억처럼 존재한다.
우리는 윤동주의 시를 통해 자신을 스스로 바라보고, 성찰하는 법을 깨우치게 된다. 윤동주는 치열하게 자신을 성찰하며, 늘 부끄러움 의식으로 괴로워했던 지식인이다.
우리는 성찰이 부재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위정자들부터 성찰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다. 괴로워하지도 않고 늘 핑계하며, 숨기고 속여 쉽게 넘어가기만을 바란다. 많은 이들이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감동하고 환호하는 것은 성찰과 부끄러움 속에 담긴 진실함을 읽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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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시인 김관식

 

이재훈
(시인, 현대시 부주간)

 

 


시인 김관식(金冠植, 1934~1970)은 충남 논산 출신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시인 김관식하면 그의 독특한 인생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는 심한 주벽과 기행으로 많은 일화와 화제를 낳았다. 1960년 ‘대한민국 김관식’이라는 명함 하나로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시 거물 정치인이었던 장면(張勉)과 겨루었던 사건은 대표적인 일화 중의 하나다. 그 이후로 김관식의 별호는 ‘대한민국 김관식’이 되었다. 고은 시인은 김관식을 가리켜 ‘단군 이래의 한국 기인’이라 칭하기도 했다. 김관식의 부친 김낙희씨는 한약방을 운영했다. 1952년 강경상고를 졸업한 뒤 충남대학교에 입학했다가 고려대학교로 편입, 1953년 다시 동국대학교 농과대학으로 옮겼으나 중퇴했다.
김관식과 미당 서정주와의 인연 또한 화제였다. 당시 전주로 피난 가 있던 서정주를 직접 찾아가 인사드리고 문학에 순교하겠다고 열정을 불태웠다. 이러한 서정주와의 인연으로 1954년 서정주의 처제인 방옥례(方玉禮)와 혼인했다. 데뷔는 1955년 <연(蓮)>, <계곡에서>, <자하문 근처> 등의 작품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여주농고, 서울공고, 서울상고 등의 교사를 지냈으며 1958년 <세계일보> 논설위원을 지내다 결국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직했다. 이 무렵부터 결핵과 위장병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기나긴 투병 생활에 접어들게 된다. 그는 투병 중에도 한문 실력을 발휘하여 <서경>을 번역하여 간행하였으며, 작품 활동도 쉬지 않았다. 김관식의 시비는 대전 보문산 공원, 강경상고 교정, 논산공설운동장 등 세 곳에 세워져 있다. 대표작으로 <연>, <귀양 가는 길>, <동양의 산맥>, <다시 광야에> 등이 있다. 시집으로는 <김관식시선>(자유세계사, 1956), <낙화집>(창조사, 1952), <다시 광야에>(창작과비평사, 1976), 역서로 <서경(書經)> 등이 있다.
김관식은 어려서부터 한학과 서예를 익히고 성리학과 동양학을 배웠다. 때문에 당시 한국 사회에서 실력있는 한학자였다. <김관식시선>의 서문 ‘동양인 선언’ 등의 글을 통해 그의 문학적 지향점이 어떤 지점에 있는지를 확연하게 표출한다. 김관식은 전국의 유명한 한학자들을 찾아 나서며 한학을 익혔다. 공주의 권중하(權重夏), 전주의 성리학 대가 최병심(崔秉心), 서예가 오세창(吳世昌), 육당 최남선과 위당 정인보 등을 찾아 사사했다. 당시 육당 최남선이 김관식을 수제자로 받아들이면서 김관식은 한학자로서의 천재성을 인정받는다.

귀를 씻고 세상 일 듣지 말꺼나
피에 젖은 아우성
고달픈 삶에, 가쁜 호흡을 지키기 위해
사나이는 모름지기 곡괭일 들고
여자여. 너는……

세리(稅吏)도 배고파 오지 않는 곳.
낫거미 집을 짓는 바람벽에는
썩은 새끼에 시래기 두어 타래……

가난 가난 가난 아니면
고생 고생 고생이렸다.
(시름없이 튕겨 보는 가야금 줄에 청승맞게 울면서 흐느끼는 가락은)

단정학(丹頂鶴)은 야위어 천년을 산다.
성인(聖人)에의 지름길은 과욕의 길.
밭고랑에서 제 땀방울을 거둬들이는
부지런한 지나(支那)의 꾸리[苦力]와 같이
기나긴 세월을 두루미 목에 감고 견디어 보자.

가만히 내 화상(畵像)을 들여다본 즉
이렇게, 언구렁창에 내던져 괜찮은 건가.
<눈으로 눈이 들어가니>
<눈물입니까.> <눈물입니까.>
요지경 같은 세상을 떠나

오늘도 나는, 누더기 한 벌에 바릿대 하나.
눈포래 윙윙 기승부리고
사람 자국이 놓인 일 없이
흰곰의 떼 아프게 소리쳐 우는, 저
천산(天山) 북로(北路)를 넘어가노나
- <가난 예찬(禮讚)> 전문

김관식은 가난과 10여 년 동안의 병마와 싸우다 간염으로 36세에 요절했다. 시인은 나라가 위급할 때 도와야 한다며 국회의원에 출마하지만 참패한다. 당시 1백표도 못 되는 득표를 얻고 남아 있던 재산인 과수원마저 처분한다. 그 후 자하문 밖 언덕의 홍은동 골짜기로 들어가 술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그의 선비정신은 고독하고 타협없는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큰 무기였다.
김관식의 시가 동양의 정신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지만, 실상 시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위의 시 <가난 예찬>도 마찬가지다. 가난을 예찬하기는 쉽지 않다. 가난과 고생의 삶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태도는 모든 것을 비우는 비움의 철학을 생각하게 한다. “귀를 씻고 세상 일 듣지 말”자는 얘기는 세상과 절연하자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시인과 한학자로서의 기품을 잃지 말자는 의미일 것이다. 시에서 ‘단정학’은 세간의 타협과 유혹에 굴하지 않는 꼿꼿한 선비의 정신을 생각하게 한다. 오로지 재화만이 능력이고 선(善)이라 추앙받는 현대문명사회에서 김관식의 가난 예찬은 기억할만한 깨우침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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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이재훈
(시인, 현대시 부주간)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말이 있다. 사회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울수록 상식을 지키라는 말이 더 횡행한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상식이란 무엇일까.

상식이 지식의 양을 가리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취업 준비할 때 공부하는 상식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얘기하는 상식은 다른 의미이다. 최고 학부를 나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했다고 해서 상식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 내에서 서로 용인하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와 원칙을 지키라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상식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까. 위정자들은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으며, 반인륜적인 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사회의 전부면에는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으며, 노사는 갈등하고 싸운다. 놀이동산이나 공원에 가면 가족 이기주의로 몸살을 앓고, 연이은 자살 소식은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만든다.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의 시장에 몰려나와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으며,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청년들은 희망 없는 미래를 간신히 부여잡고 살아간다.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최소한의 원칙을 잘 지키는 상식 있는 사회라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비전 있는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회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두 가지의 상식을 말하고 싶다. 먼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부끄러움’을 중시해 왔다. 우리 가족이나 집안은 타인들이 보았을 때 부끄러움이 없는 구성원이 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행위 속에서 타인들을 이해하고 서로 도와주며,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 부끄러움을 안다면 공중예절을 지키고 타인들을 배려하며, 남을 먼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위정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비리와 잘못에 대해 뼈아픈 참회를 할 것이며, 욕망이 점철된 사회의 모든 공간에서 원칙과 도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 다.

또 하나는 저항할 줄 아는 청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항은 청년의 특권이며, 이 사회를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에너지이다. 문제는 그 저항이 ‘객관적 분노’여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대부분이 이해하고 긍정하는 차원에서의 분노여야 한다. 얼마전 많은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하 문제로 거리에 나왔다. 등록금 문제는 학교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렇기에 많은 시민들이 등록금 문제로 목소리를 부르짖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비단 등록금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생각한다면 더욱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늘 얘기하듯 젊음의 특권은 누리는 자만이 갖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특권을 누릴만한 토대를 기성세대가 마련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장 등록금과 취업 문제로 막막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대학생들이 현실에 매몰되거나 패배적인 생각으로 힘들게 시간을 보낸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당하게 기성세대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지 않을까. 왜 우리를 이렇게 막다른 곳으로 내몰았냐고. 우리 세대들도 정말 잘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또한 이럴 때일수록 더욱 근본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말이 선거 때에만 공약으로 유행되는 것이 아니라, 늘 최소한의 원칙과 도리가 통하는 사회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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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無毛)한 생활에선 이미 잊힌 지 오랜 들꽃이 많다.
 
더욱이 이렇게 숱한 풀벌레 울어 예는 서녘 벌에
한 알의 원숙한 과물(果物)과도 같은 붉은 낙일을 형벌처럼 등에 하고
홀로 바람의 외진 들길을 걸어 보면
이젠 자꾸만 모진 돌 틈에 비벼 피는 풀꽃들의 생각밖엔 없다.
 
멀리 멀리 흘러가는 구름 포기
그 구름 포기 하나 떠오름이 없다.
 
 
 
풋물 같은 것에라도 젖어 있어야 한다.
풀밭엔 꽃잎사귀,
과일 밭엔 나뭇잎들,
이젠 모든 것이 스스로의 무게로만 떨어져 오는
산과 들이 이렇게 무풍(無風)하고 보면
아, 그렇게 푸르기만 하던 하늘, 푸르기만 하던 바다, 그보다도 젊음이란 더욱 더 답답하던 것,
한 없이 더워 있다. 한없이 식어 가는
피 비린 종언(終焉)처럼
나는 오늘 하루
풋물 같은 것에라도 젖어 있어야 한다.
 
 
 
바람이여,
 
풀섶을 가던, 그리고 때로는 저기 북녘의 검은 산맥을 넘나들던 그 무형(無形)한 것이여,
너는 언제나 내가 이렇게 한낱 나뭇가지처럼 굳어 있을 땐
와 흔들며 애무했거니,
나의 그 풋풋한 것이여.
불어다오,
저 이름 없는 풀꽃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아직은 이렇게 가시지 않았을 때
다시 한 번 불어 다오. 바람이여,
아, 사랑이여.
 
 
 
 
◆ 시_ 박성룡 -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으며, 1956년 《문학예술》에 「화병전경」등이 추천되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춘하추동』『동백꽃』, 『휘파람새』, 『꽃상여』, 『고향은 땅끝』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 시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수상함.
 
낭송_ 이재훈 - 1972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현대시》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가 있음.
출전_ 『풀잎』(창비)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로 시작하는 시를 기억하실 거예요. 시인 박성룡을 저는 ‘풀잎의 시인’이라 기억합니다. 풀잎 풀잎 자꾸 부르면 우리 몸과 마음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된다고 하던…… 풀이 아니라 풀잎! 그리고 여기, 그 청신한 풀잎의 감각을 ‘풋물 같은 것’으로 펼쳐 놓고 우리 몸 어딘가 작은 일부라도 풋물에 적셔두고 살자는 ‘풀잎 마음’을 전합니다. 동시처럼 해맑은 시 「풀잎」의 어른 버전, 혹은 클래식 버전이라고 할까요. 시는 기본적으로 아날로그의 영혼을 가진 장르입니다만, 오래된 시인들이 보여주는 고품격 아날로그의 타전에 숙연해지는 때 많습니다. ‘모진 돌 틈에 비벼 피는 풀꽃’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나를 흔들어주는 바람에 감사합니다. 그래요 우리, 흔들리면서, ‘풋물 같은 것에라도 젖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몫이 그러하듯이. 교외― 그 푸른 틈처럼.
 
문학집배원 김선우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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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4월 18일 (월)
우리시대 시인 서른다섯 명을 만날 수 있는 대답집으로 월간 <현대시> 부주간인 이재훈 시인이 지난 2001년부터 올해 봄까지 시인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이미 작고한 작고한 김춘수, 오규원, 박찬 시인을 포함해 정호승, 남진우, 여정, 고진하, 성선경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말하는 시와 시인이란 무엇인지 알아 볼 수 있는 기회제공한다.
■ 나는 시인이다
이재훈 지음  | 팬덤북스 펴냄 | 570쪽  | 18,000원

[한국일보] 4월 1일 (금)
▦나는 시인이다 이재훈 지음. 월간지 현대시 부주간이자 시인인 저자가 35명의 시인과 만나 나눈 대담집. 시인의 내밀한 육성을 들을 수 있다. 팬덤북스ㆍ576쪽ㆍ 1만8,000원

[조선일보] 4월 11일 (월)
이재훈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
'현대시' 부주간인 이재훈 시인이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팬덤북스)를 펴냈다. 김춘수 허만하 이승훈 유안진 오규원 정호승 한영옥 최동호 원구식 김정환 남진우 이사라 허연 강정 김소연 여정 등 시인 35명과 만난 인터뷰와 대담이다.

[연합뉴스] 3월 31일 (목)
▲나는 시인이다 = '현대시' 부주간인 이재훈 시인이 서른다섯 명의 시인과 만나 나눈 대담을 정리했다.
   2001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뤄진 대담은 김춘수, 오규원, 박찬 등 작고 시인부터 유안진, 정호승, 최동호, 김정환, 남진우, 이재무, 김영남, 여정 등 활발히 활동 중인 시인까지 다양한 시와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팬덤북스. 576쪽. 1만8천원.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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