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의 아들’을 위한 바람의 계보
김태형
첫 시집을 낸 이재훈 시인을 나는 어디엔가 “영원한 꿈의 시민(市民)”이라고 적어놓았다. “불을 타고 오르거나 허공에 발을 내미는”(「공중정원3」) 새로운 공중의 시민이라 했다. 그를 불러 ‘바빌로니아의 후예’라고 한 것은 혼돈의 어원, 저 바벨(Babel)의 도시로부터 그의 언어들이 이제 막 태어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시의 음울한 리듬을 빌어 꿈꾸는 것들은 모두가 그 기원에 도달하려는 슬픈 몸짓이었다.
이십대 후반에 등단한 이후 이재훈 시인은 그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그만의 푸른 언어의 휘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와 나는 거의 나이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의 언어들은 나에게도 예외 없이 낯선 것이었다. 간혹 나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거처했던 집들을 매번 찾아다녔다. 그와 알게 된 이후 그는 세 번 거처를 옮겼다. 그때마다 나는 그의 방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한 번도 혼자 살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그의 삶을 부러워했다. 나는 그의 방이 점차 커지고, 책이 늘어나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의 방은 책으로 가득 쌓여 비좁을 수밖에 없었다. 밤늦게 찾은 손님은 겹겹이 쌓아놓은 책들을 칸막이 삼아 새벽녘 잠시 잠이 들었다가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문 밖을 조금 나서면 대도시의 빌딩숲마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가득했지만 그의 방은 늘 7,80년대쯤의 고전적인 향기가 배어 있었다.
연희동의 자취방으로 늦은 시간 술병을 싸들고 찾아가거나, 꽤 늦은 시간에도 밖으로 불러내어 그와 만났다. 그는 매번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나를 만나러 왔고, 그럴 때면 늘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매캐한 담배 연기 속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는 사이 그도 나처럼 이십대를 건너왔다.
언젠가 평론을 하는 오형엽 선생과 함께 한 자리였는데, 그때 “이재훈 시인은 위아래 20년은 거뜬히 커버한다”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무릎을 쳤다. 이재훈 시인은 그만큼 삶의 폭이 넓고 깊다. 넓고 깊은 자는 또한 고요하고 느리다. 느리고 기다릴 줄 알면서도 늘 바삐 걸음을 옮긴다. 그와 만나면서 알게 된 일이지만, 그는 꽤 많은 곳을 옮겨가며 살아 왔다.
언젠가 정재학 시인이 쓴 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형은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더듬거리며 태어난 동네를 찾고 있었어요. 눈덮인 들판에서 전화도 했었죠. “엄마, 내가 태어난 곳이 어디에요?” 나는 하필 바람과 다투며 지도를 쫓아 들판을 뛰어다녔습니다.”(「편지, 영월에서」) 이 시를 읽으며, 역시 내가 알던 이재훈이구나 생각했었다. 삼각지의 어느 뒷골목 술집에서 지면에 실린 이 시를 함께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순간만큼 시가 살아 꿈틀거리는 때가 어디 또 있을까.
나는 나 자신을 늘 ‘언덕의 아들’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이재훈 시인 역시 이 ‘언덕의 아들’ 계보에 넣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실은 누구나 ‘언덕의 아들’이지만 모두가 이 언덕을 떠나고 없다. ‘언덕의 아들’은 이미 언덕을 잃어버린 아들이지만, 언제나 언덕으로 가고자 하는 아들이다. 이들은 지금 언덕이 사라진 “눈덮인 들판”에 서 있는 자이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바람을 느낄 줄 안다. 늘 바람을 맞고 살기 때문이다. 이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모두가 바람이 어디로 불어 가는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동안 이들은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묵묵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나에게 이재훈 시인을 만나는 일은 어느덧 지극한 시간이 되었다. 그를 안지도 꽤 오래 되었지만 늘 만날 때마다 새롭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참된 사람이다. 그의 시가 그렇고, 그의 삶이 그렇다. 나는 여간해서 옆자리를 잘 안 내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의 성품 앞에서는 언제나 흔쾌히 열려 있는 사람이 되고는 한다.
그가 찾는 바빌로니아의 언덕은 어디에 있는가. 바람에 날리는 지도를 바라보던 그때도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람 속에 지도가 날려간 것이 아니라 정작 그 바람이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아마도 지금쯤 또 다른 바람을 따라가려 할지 모른다. 가던 길을 돌려 어느덧 푸른 지평선을 건너려 할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가던 길을 조금만 더 가보자고 그의 손을 잡는 일뿐이다.
1970년 서울 출생.
1992년 『현대시세계』 가을호로 등단.
시집 『로큰롤 헤븐』『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
출처 : 계간 [시와세계] 200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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