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무령_ 시인





만난 지 몇 년인가. 어쩌다 만났는가. 생각해보네. 구체적 답을 요要하기란 옹색해지는 법, 허나 인색함 그 자체가 우리가 만났던 그때 우리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네. 왜 우리들은 만나더라도 대로의 환한 빛 뒤편, 허름한 구석으로 스며들어 만나곤 했을까. 싼 곳을 찾느라 그런다 했지만 그것보단 어쩌면 우리 마음의 옹색함 저편 후미진 곳에 도사리고 있는 음습한 살기를 드러내 놓는 것이 부담스러워서는 아니었을까. 자네의 말대로 ‘어떤 폐부의 한 골짜기를 기억’한다는 것이 결국 시라면, 그 기억을 우리는 서로 들켜야만 하는 옹색함을 만날 때마다 견뎌야 되지 않았겠는가. 환한 대로를 걷기에는 너무 불편한 몸인 ‘자존심’을 가지고 그때 자네는 그리고 우리는 “구원의 문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기 망설여지게 하는” 시를 말했었던가. 우리 사이에 놓여있던 술들은 외피에 불과한 것. “구원을 욕망하게 하는 에너지”가 되는 시를 통해서 오히려 ‘구원의 문’이 단단히 잠겨 있음을 거듭 확인하는 곤혹스러움이 우리들이 나누었던 술 안쪽에 도사린 살기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그때 자꾸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졌던 자네를 기억하며, 자네의 시집 후기의 말을 잡고 더듬어 생각해보니 그런 듯 하단 말이네.


이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텨왔다 그러나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뜨개질을 하신다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뜨고 계신다

- 「마루」

자네 촌사람 아닌가. 그러나 얼핏 보면 사람들은 자네를 서울사람으로 착각하기 쉬울 것이네. 물론 서울사람과 시골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라든지, 시골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또 무엇이냐 라든지의 성의 있는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내 말이 무모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내가 볼 때 자네를 서울사람으로 보기 쉬울 듯 허네. 대부분 옷을 조이기보다는 풀어 입되, 정갈하게 풀어 헤쳤으며, 풀어진 곳에 적절히 배치된 안경, 액세서리, 그리고 내 기억엔 언젠가 자네 귀에 반짝이던 귀걸이. 그러나 이런 말은 처음 잠시 잠깐의 인상기일 뿐. 좀더 깊이 보면 그것들이 어쩌면 부유의 흔적일 거라는 생각.  저 강원도 영월에서 시작해 논산을 거쳐 서울에 자리 잡기까지 여정의 흔적일 거라는,  그리고 시 전문 문예지 편집장으로서 자네가 만나야 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또한 부유하는 자들 아니겠는가. 그 만만치 않았을 여정을 자넨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티는” 자로 걸어 온 게 아니었겠는가. 그것이 옷을 풀어 헤쳤으되 산만하지 않은 감각적이되 진지한 자네의 풍모를 만든 게 아니었겠는가.

자 그럼 이쯤에서 내 말을 바꿔야겠네. 자넨 부유하는 자처럼 보이지만 좀더 자세히 보면 자네의 부유엔 중심이 도사리고 있다고. 이별의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는 믿음이,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 올 때 무릎을 꿇고” 어머니가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짜 올린 슬픔이, 그리고 그 힘으로 “어느새 푸른 피가 발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깊은 시간 속을, 자꾸만 걷”(「숲」)는 고집이 자네의 부유 속 중심이라고. 아니 이 말은 너무 내가 고집스럽게 말한 듯하니 다시 사족을 달겠네. 내가 보기엔 그런 것 같다고. 갈수록 무엇은 그렇다고 단언하기엔 내 스스로가 불안해져 가기에. 차라리 조금은 비겁하게 말하는 게 낫겠네.


말 위에서 견디는 삶

그곳엔 조용한 잠도 없었지

열두 밤이 지나자 황도십이궁의 한 모퉁이에

나는 떨어졌지


새벽녘 어머니가 내 머리칼을 만지고 있었지

나는 쭈글해진 어머니 배에 귀를 갖다댔지

말발굽 소리와 활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지

그 큰 어둠을 품고 어머니는 새벽 기도를 가셨지

나는 어머니가 믿는 神의 안부가 궁금해졌지

- 「사수자리」 부분

내가 자네를 처음 볼 때부터 자네의 눈빛은 멀리 있었지. 가끔 자네를 마주칠 때 자넨 아주 멀리서 온 듯한 혼곤한 눈빛이었지. 어디를 갔다 온 것인지. 무엇을 본 것인지. ‘밤이 되면 말을 타’고 달려 자네가 달려가려 한 곳이 어디였는지.

그렇군. ‘신의 안부가 궁금한 자’가 그것을 묻기 위해 ‘말 위에서 견디는 삶’을 사는 자 어찌 ‘조용한 잠’의 안식을 찾을 수 맛볼 수 있었겠는가. 결국 자네의 눈빛은 ‘불면의 눈빛’이었나. 조용한 잠 대신, ‘십자가 없는 어둠’ 속에서 ‘활을 쏘아’대는 고투의 길을 달리는 말로 언어로 가득 찬 불면의 눈빛이 내가 본 자네의 눈빛이었나. 그래서 자네가 본 것은 무엇이었나. 아니네 이러한 질문은 부질없는 것.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는가가 아니라 보려 했다는 것, 보려 한다는 것. 그 자체일 테니.

시 쓰는 자가 문학하는 자가 이 세상 삶에 대한 답을 주는 자는 아니지 않겠는가. 답은 시인보다 훨씬 위대한 존재자의 영역일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네 말대로 다만 그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을 사랑으로 보지 않고, 균열을 균열로 보지 않고 그 위에 주저앉아 사랑을 통해 균열을 균열을 통해 사랑을 그리고 또 다시 거듭, 돌고 도는 해결점 없는 미로를 확인하고 절망하고 자멸해 가는 것. 스스로의 흔적을 말을 지우는 것. 그것이 시 쓰는 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경지 아니겠는가.  

작년 우리는 자네의 결혼식에 갔었지. 시골 교회에서 올려진 자네의 결혼식은 참했고 깊었지. 그 깊고 깊은 속에서 자네의 아름다운 사람이 이젠 자네의 머리칼을 만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신의 안부를 묻기 위해 달려가는 자에게 그 정도의 호사는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나는 자네에게 못된 욕심을 내네. 자네의 ‘불면의 언어’가 더욱 지속되기를. (계간 <시인시각>, 2006년 여름호 게재)



장무령
충남 홍성 출생.

1999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선사시대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다>가 있음.  

 


Posted by 이재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