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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한국서정시문학상 특집 | 대담

 

이재훈

_시원에 대한 원대한 물음을 던지는 고백록

 

대담 : 이재훈 이성혁

 

   

내면으로의 속삭임

이성혁 : 안녕하세요? 이재훈 시인, 반갑습니다. 사실 평소 이재훈 시인에게 말 놓고 지내지만 많은 독자가 보는 지면에 실리는 인터뷰이니만큼 말을 올릴게요. 이렇게 만난 게 오랜만은 아니네요. 어쩌다가 이곳저곳에서 만나곤 하니까요. 우선 2017년 한국서정시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한국서정시문학상은 백석대학교와 <시사사>가 공동주관한 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이 제3회째죠? 재작년에는 조정권 시인이, 작년에는 김명인 시인께서 수상하셨습니다. 올해는 그보다는 비교적 젊은 시인인 이재훈 시인이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보니까 지난 1년 동안 출간된 시집에 상을 주는 것 같은데요. 좀 어색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소감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이재훈 : . 반갑습니다. 이성혁 선생님. 저도 이 자리에서는 형이 아닌 문학평론가 선생님으로 말씀 올리겠습니다.(웃음) 또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지요? 학기가 끝이 나고 이렇게 마주하니 마음도 더 편하고 좋습니다. 이성혁 선생님은 특별한 비평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시단의 중요한 평론가입니다. 이렇게 대담을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국서정시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서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서정은 무엇일까. 모든 시인들은 서정을 갖고 있을 텐데요. 제 시에서 서정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상이라는 기쁘고 즐거우면서도 다소 부담스러운, 뭔가 복잡한 심사가 얽혀 있는 그런 마음이 들었고요. 이전 수상하셨던 선생님들과 비교할 때 문학적 이력이 일천하여 부끄럽고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오래 간직할지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올해부터는 시집에 상을 주는 것은 아니고 시집 속의 작품에 상을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해서 제 수상작은 동화의 세계6편이 되었습니다.

 

이성혁 : , 그렇군요. 작품상 개념이군요. 한 편이 아니라 여러 편에 상을 주는 것이 특이합니다. 그리고 한국서정시문학상이라는 명칭이 인상적입니다. 시의 본령은 서정에 있다는 말은 많이들 하는 말이지만, 2000년대 한국 시단에서 서정이라는 장르 개념에 대해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었죠. 그래서 서정시로부터 일부러 일탈하는 시들이 많이 등장했고요. 2010년대 중반에 한국서정시문학상이란 명칭의 상이 제정된 것은 최첨단의 21세기에 다소 천대(?)받게 된 서정을 다시 아끼고 보듬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이재훈 시인이 이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달받았을 때, ‘아 받을 사람이 받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한창 새로운 시에 대한 담론이 시단을 들썩일 때인 2005년에 첫 시집을 냈죠. 이 시집은 전통적인 서정시는 아닐지라도, 첫 시집 해설을 쓰신 유성호 선생님의 말씀대로 형이상학적 전율을 보여주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전율로부터 농도 짙은 서정이 뿜어져 나오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격렬한 낭만주의적 충동이 느껴지는 시집입니다. 당시 시단의 흐름 한복판에서 젊은 시인의 첫 시집으로 이러한 서정시집이 나왔다는 것이 주목할 만합니다.
이재훈 시인은 데뷔부터 지금까지 줄곧 서정시의 본령이랄까 그것을 붙잡고 시를 썼다는 생각입니다. 첫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네요. “어쩌면, 내 말은 고백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시원의 원대한 물음이 있다.” “좀 치기로 들리겠지만, 문학하는 이유가 자기 구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문학이 구원 자체는 될 수 없겠지만 구원을 욕망하게 하는 에너지는 되기 때문이다.” 쓸쓸한 날의 기록정재학에게에서는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라고도 쓰고 있고요. 이 문장들을 보면서 이재훈 시인은 정말 서정 시인이 되고자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요? 여전히 시인에게 시와 문학은 고백이자 구원의 에너지, 시원에 대한 원대한 물음인가요?

 

이재훈 : 선생님께서 한국서정시문학상의 취지를 아주 잘 설명해주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는데요. 다시 한 번 찾아보니 한국서정시문학상이 추구하는 서정시는 과거의 낡은 서정시가 아니라 미래의 새로운 서정시이고, 미학적 모더니티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는 서정시를 찾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 시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통서정시의 범주가 아니라 좀 다른 서정시 쪽에 속한다는 지점 때문에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은 것이겠지요.
어떻게 보면 모든 시는 서정시에 속합니다. 시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담지 않은 시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서정시는 시법과 전통을 모범적으로 계승한 시를 말하는 것이겠죠. 지금의 우리시는 전통을 모범적으로 계승한 시보다는 자기 나름대로 창조적으로 변용한 시편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서정시의 범주는 아주 넓게 확장됩니다. 제 시도 모범적으로 계승한 측면보다는 나름대로 비껴나간 시에 해당될 것입니다. 제 시는 정서와 생각이 솔직히 드러난, 파토스가 너무 강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그런 이유로 내 시는 서정성이 너무 과잉된 시라고 농담처럼 얘기해 왔습니다.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는 그런 의미에서 나온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제가 동료 시인들에게 실제로 했던 말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세간의 평가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어요. 서정적인 시인으로, 모더니즘 시인으로 이쪽저쪽에서 제 이름을 부르곤 했죠. 다만 제 시가 결단보다는 망설임을, 외침보다는 내면으로의 속삭임을 더 택했기에 기존의 언어와는 다른 언어습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방법적 고민보다 주제적 고민이 훨씬 더 많이 두드러진 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형이상학적 주제에 대한 고민과 탐구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제가 방법적 고민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주제에 대한 제 의지가 너무 도드라진 면이 있거든요. 누구나 알겠지만 좋은 시는 내용과 형식이 일체가 되어야 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계속 실패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유성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형이상학적 전율이라는 말은 제게 과분한 단어이지만, 정말 힘이 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세간의 평가에 귀 기울이지 말고 자신이 가고 싶은 시의 길을 혼자서 가거라 하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저는 아직도 고전적인 문학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시를 종교적인 구원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구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시가 고백이자 구원의 에너지, 시원에 대한 원대한 물음이라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제게 계속 유효한 말입니다. 첫 시집의 시인의 말은 앞으로 이런 시를 쓰고 싶다는 포부와도 같은데요. 시를 쓰면 쓸수록 어려운 길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웃음)

 

난독의 시간들

이성혁 :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제 생각으로는 문학에서는 고전적인 것이 모던한 것이라고 봅니다. 고전이란 당대에 가장 치열하게 대응함으로써 얻게 된 위상이라고 본다면 말이죠. 초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말이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문학과 만나게 되었는지 물어봐야겠어요. 방금 인용한 시인의 말의 제목은 흥미롭게도 흠의 고백입니다. 이 글을 보니, 어린 시절 말에 서툴렀으며 잦은 이사로 이사 간 동네의 방언들을 새로 익혔어야 했다고요. 그래서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의식을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이 이재훈 시인을 시로 이끌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말과 사물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니 말입니다. 그 후, 네루다의 에서처럼 시가 시인에게 왔다고 고백하고 있는데요, 이 글이 무척 짧은 글이라서 어떻게 이재훈 시인이 시를 영접(?)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기는 힘드네요. 이 기회에 이재훈 시인이 어떻게 시와 만나게 되었는지 시인의 말을 직접 들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아마 적지 않은 시간을 습작에 바쳤을 것인데 습작기의 생활도 알고 싶고요. 제가 언제 이재훈 시인이 무척 고독한 청년 시절을 보냈다는 말을 직접 들은 것 같은데요. 아주 오래전 술 마시면서 들은 것이라 구체적인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청춘의 대부분 시간을 방에 홀로 있으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보냈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 있는데 맞습니까? <벌레 신화>에 실린 불혹의 한 구절인 엎드려 시를 쓰는 사람이 바로 청춘 시절의 이재훈 시인 자신을 말하는 거겠죠? 말이 좀 엉켰습니다. 질문을 정리하자면, 등단 이전 이재훈 시인이 어떻게 시와 만나게 되었고 습작기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재훈 : 어린 시절은 전학을 많이 다녔습니다. 전학을 간 그곳에서는 늘 이방인이었죠.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로 다녔습니다. 늘 이전에 살았던 곳을 그리워했고, 늘 이전에 살았던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는 적응을 못하고, 늘 이전의 곳을 생각했던 거죠. 그리움이라는 병에 걸렸던 것 같아요. 제게 시는 예기치 않게 찾아 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거의 시를 읽지 않았어요. 책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시를 읽지는 못했는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때까지의 몇 년의 백수 시절 동안 시를 많이 읽었습니다. 저는 그때 존재론적 고민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종일 도서관에 가서 아무 책이나 찾아 읽는 난독의 시간들이 이어졌어요. 한동안 소설에 빠져 지냈습니다. 그러다 시를 만난 것입니다. 시를 읽으니 마치 운명처럼 시가 널 구원해주리라, 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이때부터 이 땅에 있는 모든 시집들을 읽어보겠다고 덤벼들었습니다. 시병, 시마에 들린 거죠. 그 이후로 시를 읽는 나날들로 이십 대를 가득 채웠죠. 그 당시의 추억과 얘기들은 대하실록 정도의 분량이 되기 때문에 이쯤에서 말을 거두겠습니다.(웃음)

 

이성혁 : . 언제 소설 형식의 청춘기를 써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재밌을 것 같은데요? 이제 이재훈 시인의 이력을 보겠습니다. 시인은 1998<현대시> 신인상을 받으면서 시단에 등단합니다. 1972년생이니 스물일곱에 등단을 했네요. 요즘 추세로는 꽤 빨리 등단한 셈입니다.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2005년에,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2011년에, 세 번째 시집 <벌레 신화>2016년에 출간됩니다. 등단한 지 20년이 다 되었는데 시집을 세 권 내었군요. 다작은 아니네요. 요즘 시인들은 삼 년에 한 권씩 내곤 하던데요.
그런데 세 권의 시집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어떤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더군요. 보통 4부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3부로 구성했을까. 이재훈 시인의 성격이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하구요. 또한 세 시집 모두 처음 시와 마지막 시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수미상관이라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시집 한 권이 어떤 시적 영혼의 모험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하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 역시 시인의 의도에 따른 것일 텐데, 시집 편집할 때 어떤 원칙이나 습벽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해요.

 

이재훈 : 습벽이 있거나 원칙을 정해 놓은 것은 아니고요. 제 시집이 한 편의 격정적인 영혼의 드라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시와 마지막 시의 배치와 중간 중간 시의 배치를 많이 고심했었죠.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3부로 짜여진 것이고요. 질문으로 시작되어 떠남과 방황과 탐험과 회귀의 드라마인 것이죠. 마치 원탁의 기사가 성배를 찾아 나서는 모험처럼 읽힐 수 있다면 하고 과욕을 부린 것인데, 시에서 그런 바람은 요원한 일이었지요. 나중에 단테의 <신곡같은 작품을 한번 써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등단 햇수에 비해서 시집이 적다고들 말씀하시는데요. 그건 시집 출간 시스템이나 저의 게으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데요. 시집의 권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의미 있는 시집을 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로 스스로 위안을 삼고는 합니다. 제가 등단했던 때에는 시를 발표하기도 시집을 출간하기도 어려웠을 때였습니다. 원고료도 없이 시를 발표한 게 훨씬 더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가장 열정적인 때였습니다. 이십 대이기도 했고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시를 쓰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제 바람은 가늘고 길게 오래오래 시를 쓰는 것입니다.(웃음)

 

이성혁 : 그리 될 것 같아요. 시를 쓰지 않으면 못살 것 같은 사람이 있는 데 이재훈 시인이 꼭 그렇습니다. 지금부터는 세 시집의 시세계에 대해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은 예전에 읽었습니다. 두 번째 시집에 대해서는 <현대시>에 평론을 쓰기도 했지요. <벌레 신화>는 이번 기회에 정독했습니다. 물론 이전의 두 시집 역시 다시 정독했어요. 첫 시집부터 질문을 드릴까요. 이재훈 시인의 첫 시집을 다시 읽으면서 , 뜨거운 시집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시인의 표현을 따르면 시원에 대한 열망이 불타오르는 시집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시집 해설에서 유성호 선생님께서는 종교적 경험을 읽어내고 계시는데, 해설을 읽기 전에 전 신화의 인유가 참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헬레니즘적일뿐만 아니라 헤브라이즘적인 신화가 다방면에서 인유되고 있어요.
이 신화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열망의 표현이 이재훈 시인의 서정을 독특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정시는 서정을 이끄는 어떤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재훈 시인의 초기 서정시에는 이 신화적 상상력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상상력이 신화적이니, 표사에서 김혜순 시인이 말씀하시듯 이재훈 시의 시공은 광대해지게 됩니다. 이재훈 시인에게 종교적 상상력 또는 신화적 상상력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이러한 상상력이 키워진 것은 젊은 시기의 독서 체험이나 실제 경험과 관계가 크겠는데, 이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이재훈 : 제 시에서 종교적 기표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신화적 기표가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접했으니까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신학을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종교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어요. 그러니까 시집을 읽기 전부터 종교서적을 읽었던 거죠. 초등학교 시절에는 산골에서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기만 했어요. 동화책이나 위인전이 있기는 했지만 전혀 읽지 않았죠. 산골에서 동화책을 읽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기억나는 것은 어린이 잡지를 좋아했어요. 어깨동무, 새소년, 소년중앙을 자주 구입해서 보았죠. 송년호나 신년호는 부록선물 때문에 빼놓지 않고 용돈을 모아 샀어요. 용돈은 동네 개울에서 민물고기를 잡거나 산에 가서 도토리를 주워 내다 팔아 모았는데요. 지금 그런 얘기를 하면 믿지를 않아요. 제가 워낙 산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윗세대들의 경험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검정고무신까지 신어봤거든요.(웃음) 특히 집에서 새벗이란 잡지를 구독했었어요. 아마 기독교잡지여서 아버지께서 구독을 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아버지는 월부 책장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객 중 한 명이었습니다. 월부 책 때문에 어머니와 많이 싸우셨죠. 살림이 궁핍해서 산에서 나무를 해왔던 시절에 책이라니요.(웃음) 어깨동무가 박근혜의 육영재단에서 발행했다는 것과 새벗을 발행한 분이 한국시협 이사이자 성서원 회장으로 있는 김영진 시인이란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었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교회를 다녔으니까 어린 시절의 종교적 체험과 성경의 언어들이 내면화되어 있었겠죠. 사춘기 시절부터 제 존재와 세상의 이치와 비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집에 있는 책들 대부분이 신학이나 종교와 관련된 책이어서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죠. 라인홀드 니이버, 워치만 니 등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저희 집에서 기독교사상이란 잡지를 구독했는데요. 그 잡지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나요. 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의 책도 신기하고 궁금해서 많이 읽었죠. 문학책으로는 보들레르의 시집과 까뮈 전집이 있었어요. 세로판으로 된 양장본인데요. 보들레르의 시집은 아직도 본가에 있을 겁니다. 그 책들도 독파했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무슨 뜻인지 알고 읽었을까 싶습니다. 그저 그때 존재의 갈망으로 무엇이라도 읽어야 했던 시절, 그 언어들이 내면화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 이후에는 헤르만 헤세, 단테, 파스칼, 몽테뉴, 조셉 캠벨, 엘리아데, 샤르뎅, 폴 리쾨르 등은 제가 자주 펼치는 목록들입니다. 그 중에서 헤르만 헤세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의 구도자적 삶과 운명적 슬픔에 대해 깊이 공감했어요. 헤세의 모든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되어 제가 마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읽었죠. 첫 번째 시집을 내던 시절에는 북유럽 신화나 성배와 연금술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 들쳐보았습니다. 요즘에는 미술사학자 노성두 선생님이 번역하신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배를 흥미롭게 들춰보고 있어요. 이런 독서에 대한 수다는 나중 뒤풀이에서 많이 말씀드리도록 할게요.(웃음) 아마 이런 독서 경험들이 제 언어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성혁 : 이재훈 시인도 대단한 독서가였군요. 시인들의 독서담을 들으면 주눅들더라구요. 내가 안 읽은 책들이 많이 언급되어서. 질문을 한 내가 잘못이지.(웃음) 시 세계로 돌아가겠습니다. 첫 시집에서 보여준 신화적 상상력은 <벌레 신화>에 이르기까지 변주되어 나타납니다만, 첫 시집은 도시적 서정 또한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재훈 시인은 도시적 상상력과 신화적 상상력을 결합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이재훈 시인 시의 독특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재훈 시인은 도시 시인중 한 명이라고 할 만큼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시를 최근 시집에까지 남겨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 공간은 웅장한 신화로 각색이 되어 환몽 속에서 도시적 서정이 표현됩니다. 이를 김혜순 시인은, 아까 인용한 표사에서 “‘빌딩나무 숲인 이곳에 사막과 우주와 원시의 시공을 겹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재훈 시인은 서울 생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지금까지 오랜 기간 살아왔잖아요. <벌레 신화>에도 도시에 대한 묵시적인 상상이 보이지만 이 첫 시집에도 도시는 부정적이고 초월해야 할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젊은 시절 이재훈 시인에게 도시에서의 생활은 어떠한 곳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 또한 도시를 이렇게 신화적 공간으로 변모시킨다는 시작詩作의 발상이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도 궁금하고요.

 

이재훈 : 저는 강원도에서 초등학교 때까지 보냈습니다. 영월, 횡성, 인제 등지에서 보냈는데요. 아주 척박한 산골 오지에서 보냈어요. 그곳의 기억과 체험이 시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거의 등장하지는 않죠. 제게 강원도의 유년 시절은 가장 그리운 원형적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곳에서의 경험은 제 기억에서 아주 아름답게 남아 있어요. 냇물을 직접 마시고, 밭의 작물을 캐 먹고, 들의 과일을 따 먹으며 돌아다녔는데요. 어쩌면 유토피아의 세계와 같은 곳이 제가 태어나고 유년시절까지 자란 강원도이죠.
도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체험했는데요. 처음엔 도시가 너무 좋았어요. 심지어 자동차의 매연을 일부러 맡으러 다녔어요. 세련된 도시 냄새 같았기 때문이죠.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경상도를 거쳐 충남 논산에서 제가 살고 있었어요. 호남선을 타고 서울로 올라와 한강철교를 지날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죠. 하지만 도시의 생활은 그런 낭만적인 곳이 아니죠. 비애의 공간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였는데요. 이제는 도시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삶이 되었죠
이런 도시의 경험은 애증이 점철된 아주 복잡한 마음입니다. 버릴 수도 없지만 사랑할 수도 없는 그런 대상이 도시가 되어버린 것이죠. 그렇기에 도시 공간이 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도시에 신화의 공간이 겹쳐지는 것은 의도한 것이라기보다 제 의지가 그리로 향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신화는 원형의 공간이며, 꿈들이 실제로 현현하는 경험의 공간인데요. 도시에서 꾸는 꿈이 바로 신화의 공간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반면에 시골의 경험은 시로 쓰기 힘들어요. 시골의 경험은 혐오가 없기 때문이죠. 실제 경험한 공간이 이상향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으니까, 시골에 대해 시를 쓰면 찬미의 형태로 나오더라구요.(웃음)

 

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순간

이성혁 : 그 점이 이재훈의 시가 미학적 모더니티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만들지 않았나 합니다. 도시는 모더니티의 공간이라고 할 때 이재훈의 서정시는 모더니티의 현장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재훈의 서정시에는 모더니즘적인 것과 낭만주의적인 것이 결합되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이재훈 시인은 이 모더니티의 공간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화하면서 시에 수용하고, 나아가 비판하고 초월해야 할 공간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미학적 모더니티의 시적 태도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미학적 모더니티를 달성하는 거리화의 방법이 이재훈의 시에서는 도시의 일상과 신화적 세계를 겹쳐놓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어요.
그런데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는 신화적 상상력보다는 도시적 삶에서 얻게 된 감수성이 더욱 농후해진 것 같아요. 이 시집에서도 역시 우주적 시야를 통해 도시적 삶이 포착되고 있습니다만, 표제작에서 시인이 도시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태양계 행성 지위를 박탈당한 명왕성에 비유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소외의식, 이방인 의식이 특히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안드로메다 바이러스에서의 그대들은/ 나를 외계인이라고 불렀지라는 표현에서도 그러한 의식을 볼 수 있고요. 외계인인 자신이 유폐되어 있는 도시 공간과 문명에 대해서 다소 직접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이 시집에서 그러한 소외의식은 자기 부정으로, 나아가 니힐리즘으로 이재훈 시인을 이끌고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혹시 2005년에서 201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 기간에 박사 논문도 제출한 걸로 아는데, 한국 근대시에서 허무의식에 대한 연구였지요? 책으로도 출간했구요.(<현대시와 허무의식>, 국학자료원, 2007) 이렇게 부정적인 의식이 심화된 이유가 실제의 삶과 연관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 허무의식을 박사 논문 주제로 삼을 만큼 니힐리즘에 대해 파고든 이유도 알고 싶고, 시에서의 허무의식에 대한 이재훈 시인의 생각을 듣고 싶기도 합니다. 자세한 것은 <현대시와 허무의식>을 읽어봐야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잠깐이라도 시인의 허무의식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재훈 : 제 시의 시공간이 아주 넓은 편인데요. 그건 제가 골몰한 창작 방법론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의 주제를 어떻게 하면 잘 담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그렇게 넓은 시공간을 사용하게 되었어요. 그게 제 언어 호흡에도 맞고 재미도 있으니까 반복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가령 도시 속에서의 자아와 우주 속에서의 자아가 만나고 사라지고, 다시 만나고 관계를 맺는 상상이 실존 속에서 아주 고통스러운 형국으로 진행되었다고 할까요. 선생님께서 얘기한 이 우주적 시야는 앞으로도 계속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니힐리즘에 관해서는 실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박사논문 주제가 허무의식입니다. 30년대부터 60년대 시인까지 허무의식을 구현한 시인들 네 명을 분석한 것이 제 논문 주제였습니다. 유치환, 박인환, 이형기, 강은교를 중심으로 그들의 허무의식을 분석했어요. 이들은 모두 허무의식이 자신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시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인들입니다. 허무의식을 연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니체와 같은 니힐리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이들 시인의 허무의식은 시대적 체험과 문명체험, 개인의 인식 체험으로부터 배태되어 시로써 구현됩니다. 한국의 문학은 시대와 문명과 굴곡진 개인사를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을 갖고 있잖아요. 그렇기에 한국의 문학에서 허무는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문학에서 허무는 보편적인 주제가 되어 버렸어요. 현대시에 나타난 허무의식을 따라간 공부가 제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석사도 이형기를 연구했고 박사에서도 이형기 시인을 살펴보았는데요. 그런 이유로 이번에 이형기 시전집을 편저하게 되었어요. 곧 현대시에서 출간하게 될 텐데요. 이형기 시전집이 앞으로 이형기 시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텍스트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성혁 : , 기대됩니다. <이형기 시전집>이 출간되는군요. 출간되면 한 권 주실 거죠?(웃음) 두 번째 시집에 대해 더 듣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시집에서 제가 주목했던 시는 대황하연작시입니다. 시집의 중추를 이루는 2부에 집중적으로 실려 있는 연작시이지요. 11편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여기서 황하는 중국 대륙의 황하가 아니라 사막의 바다를 의미하는 것이죠? 사막은 바로 문명의 공간을 의미하고요. 아니 황하는 도시라는 사막을 일차적으로 비유하는 데 그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중층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황하는 모래의 강이자 시체들의 진물에서 나온 누런 황토물이 범람하는 강입니다. 이 연작시는 이재훈 시인이 가지고 있는 도시 문명 세계에 대한 지독한 환멸을 강렬한 언어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재훈 시인의 시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시이며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미지가 근대적 삶에 대한 극한의 부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재훈 시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시를 썼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물론 이 시가 그러한 부정성에 그치면서 끝나지는 않습니다. 이 연작의 마지막 편인 대황하 11의 마지막 연에서 당신은 붉은 눈물,/ 가만히 들어와 출렁인다./ 거리를 걷고 있으면/ 온몸이 하늘로 붕 뜬다./ 병든 몸 위에 새들이 날고 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누런 진물은 붉은 눈물로 전이되고 몸은 병들었지만 새는 날아갑니다. 이러한 긍정적 전환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집의 마지막 시인 연금술사의 꿈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이 말하고 있듯이 소멸이/ 내 먹는 밥이었다는 죽음의 생성적 계기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말이 또 길어졌습니다만, 대황하연작에 대한 이재훈 시인의 구상이라든지 작시 의도 등을 듣고 싶습니다.

 

이재훈 : 이거 너무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대황하연작에 대해서는 저도 공들인 시편들인데, 평단에서는 거의 언급이 없었습니다. 시인들 사이에서는 많이들 얘기가 되었었는데요. 선생님의 대황하에 대한 해석은 제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이 적확한 것입니다. 물론 또 다른 여러 해석도 가능합니다. 제가 대황하에 대한 해석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고요. 다만 몇 가지 체험에 대해서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십 대 초반에 서울의 고시원에서 살았어요. 그때 쿠스코라는 밴드의 대황하라는 곡과 소지로의 대황하를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반복해서 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시원의 어두운 지하 골방에서 이어폰을 귀에 꼽고 대황하 연주곡을 들었던 시간들이 제게는 유일한 위안의 시간이었죠. 음악의 리듬과 음표를 따라다니며 누런 황톳물이 굽이치는 곳에서 제가 서 있는 상상을 했죠. 그럴 때면 제 존재가 전혀 다른 세계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십수 년이 훨씬 지난 후에 아주 선명하고 절절하게 다시 떠올랐어요. 모든 걸 다 우연이라고 말하면 너무 무책임하겠지만, 정말 우연히 그런 생각이 스톤헨지의 유적처럼 떠올랐지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의 들끓음이 있었고요. 숭고의 개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었죠. 그런 상상이 당시 물에서 목도한 죽음의 체험과 제 존재의 체험, 일상의 체험 등과 엮이면서 연작시가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왔어요. 모두 물이라는 매체를 통한 것인데요. 물에 대한 상상력을 극한으로 밀고 가고 싶었습니다.

 

이성혁 :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이었군요. 전 주로 도시 문명 비판이라는 측면에서 보았는데 말이죠. 그럼, 이제 작년에 출간된 <벌레 신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참 독특한 제목이에요. 여기서 벌레는 무엇을 의미할지 궁금했어요. 시집 해설자인 장은수 평론가가 포착했듯이 뿔을 잃고 난 존재가 벌레인가요? 은 이 시집에서 많은 주목을 받은 시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도 그 시를 어떤 문예지에 실린 것으로 전에 읽었어요. ‘은 시적 영혼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뼈대와 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 뿔을 잃었다고 당신은 그 시에서 말하고 있어요.
여하튼, 뿔을 잃은 시인의 존재가 벌레로 비유되고 있다고 보는데, 이때 벌레는 우리가 통상 남을 비하할 때 쓰는 그 벌레의 의미인가요? 양가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긴 합니다. 바로 그 비하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표제작에서 시인이 말하듯이 그 벌레는 대지의 증인인 흙 위를 꿈틀대며 다니고 있으니까요. 벌레는 비상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의 시체흙의 몸위를 겨우 지렁이처럼 꿈틀대며 다니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벌레로 비유되고 있는 시인은 이제 낭만적 비상을 꿈꾸는 존재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한편으로 땅을 호령하는 지배자들에게맞서서 흙을 증언하는 존재로서 벌레-시인이 강하게 긍정되고 있기도 합니다. ‘벌레가 의미하는 바를 얘기해주시면서 지금 생각하고 있는 시인이란 존재의 위상에 대해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재훈 : 아주 잘 읽어주셨습니다. 뿔과 벌레에 대해서 제가 더 보탤 말이 없습니다.(웃음) 벌레는 이 땅에 살아가는 아주 작은 존재들입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아주 쉽고 간단하게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존재이죠. 이런 존재는 현대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시인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런데 제가 끝까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그러한 벌레의 존재도 긍지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긍지를 표상하는 상징이 시인이 아닐까 생각했죠. 시인은 이 세계를 좀 다르게, 혹은 특별하게 생각하고 싶은 존재들이니까요. 또한 시인은 이 세계와 세계의 모든 관계를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자들이며,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자들이니까요. 우리도 먼 우주에서 보면 그런 존재들이죠. 인간이 벌레를 보는 것처럼 아주 작은 존재들이겠죠. 한 그늘에서 또 다른 그늘로 제 몸을 옮기는데 평생을 바치는 존재. 이 존재가 긍지를 갖는 순간,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죠. 벌레에게는 한 번쯤 희망의 순간도 있다는 것입니다. 벌레는 탈피를 하면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될 수 있으니까요. 벌레는 너덜너덜해진 육체를 벗어던지고 날개를 가진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행운을 얻기도 합니다. 우리의 영혼도 그런 희망의 순간을 찾아 매번 순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매 순간 아주 짧지만 그런 순례의 순간을 찾아 이 삶을 견디는 것은 아닐까요. 신화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순간. 우리의 영혼이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순간. 지금 이 땅의 삶 너머를 생각하는 순간. 신화의 시간이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속적으로 시 속에서 그려내었던 신화적 상상력이 벌레를 통해 발현한 사건이 그러한 시편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성혁 : , 잘 들었습니다. 비상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해주셨네요. 난 좀 더 암울한 세계를 이 시집이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만. 이 시집에 대해 더 얘기해보지요. 이 시집의 1-2부를 보면 두 번째 시집, 특히 대황하연작에서 보여준 이 문명 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전혀 바뀐 것 같지가 않습니다. 신화적 소재를 통해 현대 문명을 극히 부정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몇몇 시에서도 여전합니다. 맘몬과 달과 비라든지 스틱스같은 시가 그러하죠. 특히 후자의 시에서는 높은 건물을 지어 벽을 만들고/ 지폐를 만들어 불행을 깁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스틱스 강에서 스스로 얼음을 깨고 몸을 넣는이들로 나타납니다. 도시인들은 끔찍하게도 스스로 죽음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들로 등장하는 것이죠. 이를 보면 이 시집에는 묵시적 상상력이 더욱 짙어졌다고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3부에서는 이러한 묵시적 장면이 거의 사라집니다. 동화의 세계를 읽어봅니다. 예전에는 이재훈 시가 전개되는 시간이 주로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밤이었다면, 이 시는 저녁의 시간에 스며들어 있는 동화의 세계를 포착하고자 하는 것 같아요 이 시를 읽고는 이재훈 시인이 무시무시한 묵시론적 신화의 세계가 아닌 천진난만한 동화의 세계에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이 동화의 세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3부는 이재훈의 시세계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당신의 시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던 당신이나 우리가 이 3부의 시편들에 등장하는 것을 봐도요. 이재훈 시인의 시는 거의 독백 아니었나요? 열정과 희구, 환멸과 고통 속에 있는 영혼의 들뜬 말들이 그간 이재훈의 시를 만들었다고 생각되거든요. 희구는 시원에의 희구여서 타인이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황금의 입과 같은 시에 당신은 제 몸속 나비 한 마리가 다른 몸을 찾아가는 기적이라는 멋진 시구를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맛보는 공동체라면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약속을 맛본다네. 그 어떤 약속도 폐기할 수 없다고 쓴다네”(맛보는 공동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고요. 당신은 엎드려 이제/ 스스로의 온기로 인해 나는 살겠다”(불혹)라고도 쓰고 이제 혼자만 중얼거리지 않겠다라고도 쓰고 있습니다. 이재훈의 시세계에 정말 어떤 전환이 이루어진 건가요? 아니면 원래 이재훈의 시에는 이러한 긍정성이 녹아들어가 있었는데 내가 읽지 못한 건가요?

 

이재훈 : 뭔가 들킨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너무 꼼꼼히 읽으셔서요.(웃음) 시집의 3부와 같은 시는 예전에도 종종 써오던 세계였습니다. 문예지에 발표할 때는 종종 선보이던 세계였지요. 제가 쓰는 시는 이렇게 천차만별입니다.(웃음) 대신 그 전 시집에는 이러한 세계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얘기한 동화의 세계를 못 보여준 것이죠. 왜냐하면 제가 한 100여 편 정도 시를 발표했을 때 비로소 시집을 묶어볼까 하고 생각하거든요. 그중에서 시집에 들어갈 시를 선하다 보면 꼭 얘기하고 싶은 시들을 먼저 넣다 보니 빠진 시들이 많았던 거죠. 그러니까 시집이 추구하는 방향을 정하고 시를 꾸리다 보니 그 방향성과 조금 다른 지점에 놓인 시들은 자연스레 빠지게 되곤 합니다. 시인들은 이런 경험을 많이 할 겁니다. 저도 그런 경우인데요. 이번 세 번째 시집의 3부는 시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동화의 세계가 끼어들어갈 여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시집을 출간하고 다시 보니까 시집의 균형도 맞는 것 같아 이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분법을 넘어서는 언어를 위해

 

이성혁 : 그렇군요. 시집을 놓고 이재훈 시인의 시세계를 생각하다 보니까 두루두루 살피질 못했어요. 시집 편집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네요. 그런데 3부 시에서 보여주는 우리에의 지향이 나쁜 정치 아래 놓여 있었던 한국의 상황, 그리고 그 정치에 저항했던 많은 움직임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의 움직임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벌레 신화>의 맨 마지막 바로 앞에 있는 시인 악행극에서 시인은 당신은 물었습니다. 가슴에 촛불을 켜고 저 이글거리는 광장에 나가지 않았느냐고.”라는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을 옮겨놓고 있습니다. 그간 이재훈 시인의 시에서 거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동반하면서 숱하게 등장하지만 광장이 등장하는 건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시집을 통해 이재훈 시를 읽어서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시집이 출간된 이후입니다만, 작년 116일자 경향신문에 이재훈 시인의 광화문 촛불 집회 현장 기사가 실려 놀랐습니다. 이렇게 대통령 퇴진이라는 정치적 요구를 위해 이재훈 시인이 일간지에 글을 쓰고 실었다는 사실이 뜻밖이었습니다. 작년 말부터 일어나 대통령 탄핵 때까지 지속되었던 들불 같은 촛불이 이재훈 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재훈 : 먼저 얘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시집 출간 이후 악행극을 작년 광장의 일과 유비해서 읽고 감명을 받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시입니다. 그런데 더 정확히 얘기하면 악행극2016년 탄핵으로 인한 광화문에서의 광장이 아니라 그 전에 광우병 때 광화문에 있었던 촛불시위의 체험으로 쓴 것입니다. 촛불과 광장의 체험은 같지만 그 시기가 달랐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악행극은 몇 년 전에 쓴 시이거든요. 경향신문에 쓴 광화문 촛불집회 참관기는 문인이면서 일반 시민의 자격으로 참석했기에 그런 청탁이 들어온 것은 아닌가 합니다. 제가 115일 첫 번째 광화문 촛불집회 때 참석했는데요. 처음으로 백만 명의 인파가 모였던 날이죠. 그때 초등학생인 제 딸, 아들과 함께 광장에 나갔습니다. 문인이면서 동시에 가족을 데리고 나온 시민의 입장이었기에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진 것이죠.
저도 세월호 이후 많은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사회에 대한 생각과 판단들이 시민의 윤리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작품과 미학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런 고민들을 수반한 작품들을 몇 작품 쓰기도 했고요. 이 부분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시인들이 고민하고 있겠죠. 아마 앞으로 지금 우리 공동체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가 조금 더 나올 것 같습니다.

 

이성혁 : <벌레 신화>는 작년 촛불 시위 이전에 출간되었죠. 그런데 악행극이 몇 년 전에 쓴 시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시세계의 변화가 와서 쓴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에요. <경향신문>에 실은 글은 청탁에 의해 쓴 것이었군요. 난 시인이 투고한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시인이 생각하고 있는 서정시의 미래에 대해서 물을까 합니다. 서정시가 구태의연한 것이 아니고 언제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나간다고 할 때, 과연 한국의 서정시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요? 한국 서정시의 미래 운운하는 것이 너무 거창해서 답하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어요. 그렇다면 세 번째 시집 이후 이재훈 시인이 구상하고 있는 자신의 서정시가 나갈 방향 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해주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재훈 : 서정시의 미래나 시의 미래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제게는 없습니다. 다만 서정시의 미래가 아니라 시의 미래에 대해 희망하는 것은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시는 아주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스펙트럼도 못마땅합니다. 더 다양하고 넓은 스펙트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를 들면 영화는 컬트, 멜로, 코미디, 액션, 공포, 환타지, 공상과학, 미래, 미스테리, 서부극, 느와르, 스릴러, 전쟁, 탐정, 인권, 퀴어, 포르노, 종교, 다큐 등등 너무나 많은 스펙트럼과 장르적 언어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는 아직도 전통과 실험, 보수와 진보, 농촌과 도시, 순수와 대중, 형식과 내용 등의 이분법적 시각과 해석과 평가에 의존해 있습니다. 모두 어떤 극단에 서 있으라고 합니다. 전통의 극단, 실험의 극단에 서 있어야 관심을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명민한 시인들은 극단의 언어를 만들기에 공을 들입니다. 어떤 곳이나 극단은 예외적이죠. 그 예외는 운명처럼 우연히 나오게 됩니다. 마치 그 예외의 삶이 아니면 존재증명이 안 되는 시인들에 의해서 나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운명이 아니라 방법으로 극단에 다가가려고 합니다. 자신의 몸은 그쪽이 아닌데 언어를 과장되게 극단으로 가져가는 것이죠. 왜냐하면 외롭기 때문입니다. 시단에서 다양하고 이상하고 특별한 세계를 탐하는 시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더욱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준다면 우리의 시가 더 풍요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학의 유파는 꼭 몇 명이 비슷한 시를 써야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시인으로도 유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선례가 나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 전에 제가 관심 가졌던 세계를 계속 탐구할 생각입니다. 그쪽의 공부는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시집을 구상하게 될지 확언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일단 조금만 더 써보면 일단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요. 그 모습이 보이면 그다음 시집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성혁 : 이분법을 넘어야 한다는 말, 흥미롭네요. 한 시인으로도 유파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의미 깊게 느껴집니다. 긴 시간, 성의 있는 답변 고마웠습니다. 이 인터뷰 덕분으로 이재훈 시인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일 거라고 믿습니다. 그럼, 여름 건강하게 보내시고 건필하시길 빌어요!

 

 

이재훈 : . 감사합니다. 제겐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대담자이셨습니다. 과분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현문우답을 받아 주시느라 오랜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건강한 여름을 보내는 일이 남았습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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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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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방송에 나갔는지는 모르겠네. 작년 가을인데.
EBS라디오 <강성연의 시콘서트>에서 아래의 시를 낭송하고 짧게 코멘트 했었다.
이제 불혹에 대해 아무 느낌도 없는 나이가 되었음.^^

 


불혹

 

 

 

어른은 큰 소리내지 않는단다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고 비겁한 자가 되겠지

담배 연기만 품어대며, 다 안다는 듯

끄덕끄덕대기만 하겠지

날 어른이라 부르는 손가락들

그 모든 비겁도 눈 감고

어떠한 격정에도 미혹되지 않는

어른들의 세계

이미 네 앞의 시간들은 결정된 것

가르치려 드는 꼰대들에게

다리를 까딱거리고 딴지를 걸고 싶더라도

어른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제 소년을 간신히 넘었을 뿐인데

눈물을 참아야 하고 그리움도 참아야 하고

홀로 식당문을 들어서는 서글픔도

지루한 술자리도 참아야 한다

아직도 쓸쓸함을 사랑할 수 없나

차가운 거리를 헤매다 방안에 들어와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할 때

내 몸에 남아 있는 허약한 온기

엎드려 시를 쓰는 사람

엎드려 생각하는 사람

엎드리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라지만

엎드리는 일은 자신을 잊는 일

엎드려 이제

스스로의 온기로 인해 나는 살겠다

 


 

불혹이라는 시는 제가 마흔을 넘어가면서 쓴 시입니다. 어딜 가서 나이 얘기를 잘 안하는데요. 서른을 넘길 때와 마흔을 넘길 때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서른 때에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는데, 마흔이 되니 달라지더군요. 이제 나이 먹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마흔이 넘어가면서 꼭 ‘마흔’이라는 시간에 대해 시를 써보고자 생각했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마흔’이라는 시는 많겠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마흔의 의미가 또 있는 것이니까요. 마흔이 넘어가니 주변의 모든 분들이 이제 어른이 다 됐네, 라고 말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슨 말일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른이라는 것은 참으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눈물도, 그리움도, 외로움도, 꿈과 희망도 참아야 하고 비겁한 일도 모르는 척 넘기는 게 어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참아야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잊지는 않고 싶습니다. 모두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겠지만 그런 어른이라면 어른이 되기 싫은 거지요. 차라리 엎드리라면 엎드리는 게 낫겠지요. 눈물도, 그리움도, 외로움도, 꿈도 희망도 참지 않는 어른이면 참 근사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재훈)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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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 대담

 

  

 

내 최초의 말이 사는 영토의 영주

 

 

 

 

 

 

이재훈 ․ 조동범

 

조동범, 이재훈

조동범 : 이재훈 시인. 안녕하세요. 이번 현대시작품상 수상을 축하해요. 사석에서는 친한 형동생이지만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 마주하니 새로운 기분입니다.

 

이재훈 : 감사합니다. 대담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나는 시인이다>라는 대담집을 출간했었잖아요. 주변 사람들이 대담은 이재훈 시인이 선수겠지,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여전히 인터뷰이로서는 낯설어요. 차라리 인터뷰어가 편하죠.

 

조동범 : 그래요. 저도 인터뷰이는 힘든 것 같아요. 자기 자신 안의 이야기를 온전히 풀어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으니까요. 더구나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전 국민이 비통에 잠겨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힘겹고 조심스럽습니다.

 

이재훈 : 예. 그 사고로 인해 뉴스를 보는 게 고통스럽습니다. 사고로 죽어간 학생들과 사람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먹먹합니다. 매일 눈물이 나요. 전 국민이 이 고통을 이겨내야 할 텐데요. 이 사고가 인재라는 사실, 그리고 사고에 대응하는 안이한 태도와 구조 장면을 보면 화가 솟아오릅니다. 아직도 구조중인데 구조가 끝날 때까지 유족들이나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간절하게 기도해야죠. 인간의 사악함과 무력함을 자꾸 느끼게 되어 요즘 정신적으로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국민 모두가 정서적 우울을 경험할 텐데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조동범 : 이번이 두 번째 수상이죠? 2011년에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받으셨고요. 1998년에 등단을 했으니 등단한 지 16년이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감회가 남다를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수상이 많은 격려가 되었을 것 같은데 그동안의 소회를 밝혀줬으면 합니다.

 

이재훈 : 면구스럽다란 말이 딱 이럴 때 쓰이는 말 같아요. 주목받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이거 쑥스럽고 어색해서 어떡하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현대시>에서 주관하는 상이라 전혀 생각지도 않았어요. 심사위원 선생님들이나 동료 시인들에게 민폐는 아닌지 여전히 걱정되고요. 제가 “거 참…”이란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는데요. 상 받는 시인들은 인기가 없다던데. 저도 이제 인기가 없어지면 어쩌나 하고 거 참. 또 대담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고 거 참. 시상식 때 앞에 설 생각을 하니 거 참. 그럼에도 많은 시인들이 기뻐해주는 걸 보면서 다행인건가 거 참. 모 시인은 누리라고 하던데 내가 누릴 깜냥은 못되지 거 참, 하면서 이번 달을 보내고 있어요.

 

조동범 : 수상할 자격이 충분하니까 ‘거 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요.(웃음) 상이란 것은 그래도 언제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 같아요. 많은 격려가 되기도 하고요. 이재훈 시인도 이번 수상이 시를 계속 쓰게 하는 그 어떤 자극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해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재훈 시인의 시를 보면 자신의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던데요.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경우에도 그것이 가족사나 개인사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원형적 세계와 맞닿아 있어요. 시에 가족사나 개인사를 등장시키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이재훈 :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들을 받곤 해요. 왜 당신의 시에 이재훈의 구체적 삶이 보이지 않느냐고요. 그런데 역으로 다시 생각해봤어요. 왜 유독 제게 그런 질문들을 공통적으로 해오는 걸까 하고 말이죠. 혹시 읽는 사람들이 제 시에서 그런 모습을 바라는 건 아닌가 생각했죠. 완전히 현실의 토대를 등지고 언어를 꾸리는 시인들에게는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이때는 시적 대상으로서의 현실을 말하죠. 아마 저는 현실과 현실 너머의 경계를 이리저리 오가니까 그런 것은 아닐까 스스로 생각해봤어요. 결론을 얘기하자면 자연인 이재훈과 그에 관계된 가족사가 굳이 시에 등장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이지 않을까요. 제 구체적 삶의 모습을 시의 질료로 삼을 때 과연 어떤 매력이 있을까 생각할 때 좀 회의적이죠. 김수영은 단 한 편도 똑같은 기분으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잘 살펴보면 엄청 많은 제 일상이 시에 숨겨져 있어요.(웃음) 특히 두 번째 시집에서는 과하게 드러낸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하기도 했고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경우에는 너무 큰 상징이라 쓰기 힘들어서 일겁니다. 어떤 찬사와 그리움과 원망을 하더라도 부모님을 얘기하기엔 부족할 뿐이죠. 형이 잘 지적해주셨듯이 제 시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꼭 이재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거든요. 원형적 세계의 상징에 가깝죠. 제 가족사를 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소설감이라고들 얘기하지만 그걸 시로 써낼 재주가 제겐 없어요. 가족사나 개인사가 저의 일부를 만든 또 하나의 장본인이니 제 언어의 토대에 그런 부분이 스며들어 있겠죠. 재주 없음의 변명을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았네요.

 

조동범 : 그럼 이어진 질문을 하죠. 성장기, 특히 문학적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한 삶의 여정을 좀 들려주겠어요? 내가 이재훈 시인을 만난 게 꽤 오래전이지만 내가 아는 이재훈은 시인 이재훈의 모습 정도였던 것 같아요. 물론 그것만으로도 시인 이재훈뿐만 아니라 인간 이재훈으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내가 그동안 너무 이재훈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재훈 : 중학교 때까지 저는 신의 은총 가운데 자라났죠. 삶의 모든 역정을 다 경험해본 아버지의 세계와 그걸 온몸으로 품고 살아가는 어머니의 세계 속에서 키워졌죠.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계 위에는 종교적 세계가 있었고요. 저는 촉망받는 교회의 학생신도이자 학교의 모범생이었습니다. 저의 유년은 이주의 연속이었어요.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에 이르기까지. 그러다 본가가 충남 논산에 터를 잡으면서 그곳에서 오래 정착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프로야구에서 삼성과 한화를 응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는 거죠.

초등학교 때는 전학을 많이 다녔는데 친구들은 저를 항상 도시에서 온 전학생으로 오해했죠. 아마도 거친 세계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제 모습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운동화에 타이즈와 멜빵 반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당시 강원도 산골에서는 단연 이채로운 모습이었죠.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늦은 사춘기가 찾아왔어요. 저의 반항으로 인해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생활을 했어요. 거친 남자들의 세계와 짐승들의 세계를 맘껏 경험하며 살게 된 거지요. 그 이후의 삶은 하루하루가 마치 부조리 연극처럼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의 전리품이라면 스스로 대학포기를 선언한 것, 말도 되지 않는 사회생활을 일찍 경험한 것,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등이 있을까요.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조동범 : 얼핏 들어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네요. 언제고 그 이야기를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좀 전에 원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원형적 세계에 대한 탐구는 첫 시집은 물론이고 두 번째 시집에서도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개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를테면 우주나 미지의 세계와 같은 본질과 원형의 세계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재훈에게 그러한 원형성의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요? 내 생각에는 그것이 이재훈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세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이번 수상작의 경우에도 그런 성향은 여전하고 말이죠.

 

이재훈 : 제 시를 평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바로 원형, 신화, 우주와 같은 개념어들입니다. 신화가 시 작품의 ‘최초의 말’이라는 견해들이 있어요. 신화 창조는 신화적 상상력을 언어로 표현할 때 구현되는 것이죠. 즉 시를 쓴다는 행위는 신화 창조와 다를 바 없는 것이고요. 시는 이 땅에 없는 새로운 세계를 자신의 인식 지평 하에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잖아요.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시의 방향은 그렇다고 생각해요.

신화나 원형이라고 하면 이미 우리에게 체득된 많은 선험적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리스 로마, 북유럽 등의 신화들이 있고 탄생 설화들과 수많은 원형적 화소들이 있지요.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시를 쓰긴 힘들어요. 그 테마들은 이미 수없이 반복된 알맹이일 뿐 내 고유한 세계는 아니니까요.

제가 신화에 대해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신화의 이미지나 신화에서 발생하는 고유한 환경이나 조건들이 제 뇌리에 오래 남더라고요. 어렸을 적부터 읽었던 성경도 많은 영향이 있었을 것이고요. 폴 리쾨르, 조지 캠벨, 엘리아데, 샤르댕 등을 좋아했는데요. 그런 독서경험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하지만 그 미적 관심이 제 언어 속에서 오래도록 내재화되었다가 시를 쓸 때 그쪽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제 시원始原에 관한 대답을 스스로 던지고 싶었어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제 존재에 대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진 거죠. 그것이 제 신화성에 대한 시적 구현이라고 봅니다. 그 질문의 대답은 없어요. 질문을 던진다는 것에 의미가 있죠. 시원에 대한 질문이 나를 관통하여 어디로 향할 지가 지금 제가 바라보는 시의 길입니다. 아마 물질이 아닐까 싶은데요. 지금 ‘돌’이라는 물질을 통해 그것을 실험해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동범 : 그렇군요. 그런데 그와 같은 세계를 추구하기 때문인지 이재훈 시인의 작품은 확장된 세계라는 외연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외부로 확대된 이러한 시적 개성은 첫 시집에서부터 주요한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확장된 시적 지평을 추구하는 특별한 의도가 있나요?

 

이재훈 :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데요. 제 언어습관 때문인 것 같아요.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많이 상상해 왔거든요. 하나의 사물을 보면 그 사물의 탄생 이전이 궁금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주로까지 상상이 나아가는 거죠. 시론에서 동일성의 시학을 보면 ‘세계의 자아화’라는 말을 쓰잖아요. 이 세계의 본질을 하나의 시적 대상에 집적시켜 시인의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인데요. 저는 이 동일성이 제 자아가 자꾸 어떤 외부로 이동하고 합일해가면서 이루어지는 방식은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넓게 보면 이것도 본질적으로 동일성이 되겠죠.

 

조동범 : 그렇다면 그렇게 마련된 ‘세계’로서의 첫 시집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나요? 생각이 깊었던 만큼 특별한 느낌이었을 것 같군요. 첫 시집을 출간했을 때의 소회뿐만 아니라 시집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이랄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첫 시집을 출간하기까지의 기간이 좀 긴 편 아닌가요?

 

이재훈 : 네. 등단한 지 7년 만에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를 출간했고, 그 이후 또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를 출간했으니 요즘의 시집 출간 간격으로 보면 늦은 편이죠. 첫 시집을 준비하면서 조급해하는 후배들을 볼 때면 제 얘기를 해줘요. 나를 반면교사로 삼아 위로를 받으라고요.(웃음) 시인들은 동료들을 많이 의식하잖아요. 모두 나보다 못한 시인들이 잘되는 것 같거든요. 이런 것에 자꾸 매이면 스트레스 받아서 시를 쓰지 못하겠죠. 이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져야 오래 자기의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료들과 경쟁하지 말고 나 자신과 경쟁해야 한다고 얘기해 줍니다. 더 나아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세상의 모든 진실과 모종의 상관관계를 맺는다면 더 좋겠죠.

때때로 시에서의 경쟁이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 동력이 되기도 하겠죠. 하지만 저는 그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저 또한 시적 욕망이 많은 사람이죠. 그렇기에 지금까지 시를 쓸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여러 면에서 문학 외적인 부분을 되도록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런 생각들이 시집 출간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첫 시집을 출간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시집 출판 환경이 좋지 않았어요. 특히 첫 시집인 경우에는 더 힘들었죠. 몇 년 전부터 시집을 묶어 놓았는데요. 출판사 선정에서부터 출간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다보니 시집을 많이 손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초반에 넣고 싶었던 시들이 자꾸만 형편없어지는 거예요. 또 제가 추구하는 방향의 시집을 기획하려다 보니 여러 시들이 걸러져서 결국 44편만 남게 되었어요. 첫 시집은 제가 가고 싶은 시적 방향을 막연하게나마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애정이 있죠. 제 딴에는 첫 시부터 마지막 시까지 정말 공들여 기획을 했다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세상에 내보내는 첫 번째 책이 첫 시집이었는데 어찌 애정이 없겠어요.

 

조동범 : 첫 책, 첫 시집이라고 하니까 제 마음이 다 두근거리네요. 저 역시 첫 시집을 내던 때의 설렘을 잊을 수가 없거든요. 누구에게든 ‘첫’은 참으로 두근거리는, 그런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자, 그럼 이제 개인적인 질문을 좀 하도록 할게요. 요즘의 근황을 좀 들려주겠어요? 많은 동료들이 이재훈 시인을 시인이자 편집자로, 대학 선생으로 기억하고 있잖아요. 시인 이재훈이면서 동시에 <현대시>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편집자 이재훈이기도 한데요. 편집자로서의 일상과 선생님으로서의 일상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일상 모두가 궁금하네요.

 

이재훈 : 문예지 편집자와 대학에서의 강의를 병행하는 삶이 벌써 꽤 오래되었네요. 앞으로 제 삶이 분명 변하겠죠. 어떻게 변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요즘은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느낄 때가 있어요. 제 딸 은율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든요. 사람들이 모두 놀라더라고요. 벌써 그렇게 되었냐고.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네요. 제가 가장의 역할에 대해서는 형편없는 편이죠. 시인들의 아내는 순교자적 삶을 살아야 하잖아요. 겨우 겨우 가장의 흉내를 내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어요.

 

조동범 : 그런데 <현대시> 부주간으로 일하면 문학과 관련된 모임이 많을 텐데요. 그게 글을 쓰는데 방해가 되거나 그러지는 않는지도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할 것 같거든요. 편집자로서 지내는 시간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갖는 시간과는 다를 것이고, 퇴근 후에도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고 집에 돌아가서 가장의 역할까지 하려면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거기에 더해 일상의 고단함도 있을 거고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해요. 혹시 여행 좋아하시나요?

 

이재훈 : 문학 모임에는 저의 자발적 기분에 따라 다니고요. 제가 꼭 가야 하는 문학모임은 많지 않아요. 개인적인 모임들이 많은 편이죠. 제가 시도 쓰고, 가끔씩 평론이나 에세이도 쓰고, 강의도 하고 편집자도 하니까 걱정들을 많이 하시죠.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요.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시를 못 쓴다는 건 모두 다 핑계죠.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할 것 같지만 저는 혼자 영화도 보고, 프로야구 중계도 보고, 도서관에도 설렁설렁 다녀요. 자주 그러지는 못하지만 혼자인 시간, 고독한 단독자의 시간을 얻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죠. 밖에서 하루 놀았으면 다음날은 원고를 쓴다거나 혼자 논다거나 육아를 담당한다거나 해요. 이게 나름 균형을 맞춰가며 사는 거예요. 동범형도 자신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집안 살림을 해놓고 점수를 따놓는다거나, 밀린 원고를 후딱 써놓는다거나.(웃음)

또 낮에는 일상인의 삶이었다가 저녁이 되면 시인의 자의식으로 돌아오려고 많이 노력해요. 중요한 건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자의식의 집중도인 것 같아요. 그리고 메모하려고 하죠. 메모하지 않으면 내가 발견한 미적인 순간을 자꾸 놓쳐버리니까요.

여행은 자주 가는 편이 아니에요. 제가 어렸을 적부터 이사를 자주 다니고, 젊은 시절에 훌쩍 떠나는 시간들을 많이 가져서일까요. 낯선 곳에 대한 향수를 이젠 꽤 참을 만해요. 올 겨울엔 친구와 둘이 부산에 다녀온 것이 기억에 남네요. 광안리에서 남포동, 보수동, 태종대까지 다니며 실컷 바람맞고 왔죠. 공간이 문제는 아니죠. 그날 부산의 바람은 제게 마다가스카르의 바람과 다를 바 없었어요. 아, 물론 가족들하고는 자주 다니죠. 가족이 생기다보니 이젠 혼자 떠나는 여행이 쉽지 않아요. 꿈만 꿀 뿐이죠.(웃음)

 

조동범 : 일상을 견딘다는 건 참 쉽지 않은 문제지요. 시인이 된 이후에는 특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문단에 나와 만나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신지가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그동안 많은 시인들이 등장했고 사라져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만큼, 우리가 문단에 나오고 첫 시집을 냈던 2000년대 초중반의 시단의 모습과 요즘 시단의 모습은 또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세대교체도 많이 이루어졌고, 시세계의 변화도 감지됩니다. 등단 이후 벌써 16년인데 최근 시단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네요.

 

이재훈 : 많이 달라졌죠. 젊은 세대의 교체 주기도 빨라졌고요. 저는 아직도 선배시인들에게 젊은 시인으로 불리는데, 제 밑의 세대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제 저도 중견 아니면 선생님으로 불리는 세대가 된 거죠. 세대교체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너무 빨리 젊은 시인들을 혹사시키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렇게 쓰다가 오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이 돼요. 또한 아직 자기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인데 시단에서 저렇게 눈 치켜뜨고 주목하고 있으면 힘들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시단이 시인들에게 이것저것 여러 스타일도 실험해보고, 자기 세계를 이쪽저쪽 두드려보고 하는 여유를 허락해 주지 않는 것 같아요. 좀 더 빨리 새로운 것만 내놓으라 요구하죠. 유행이 끝나면 더 젊은 세대로 옮겨가겠죠.

어느 시대나 전통과 새로움은 서로 길항하며 발전을 해왔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 중 하나인 이분법적 갈등이 시단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시인과 독자와의 소통이 문제가 아닙니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혹은 전통과 전위의 시인들끼리 소통이 안 되고 있어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용인해 줄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 속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인들을 바라볼 수 있겠죠. 서정과 모던으로 구획 짓는 전근대적인 구분법의 프레임에 갇혀서 정말 좋은 시인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정치에서 진정한 의미의 보수와 진보가 드문 것처럼 대부분의 시인들도 서정과 모던의 경계에 있다고 보는데요. 이 경계에는 관심이 없죠. 우리 시단이 유행과 관계없이 자기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시인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토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조동범 :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일 텐데요. 시집을 내면서 늘 그렇듯 변화에 대한 시적 모색이 고민일 것 같아요. 특히 다음 시집은 지난 10여년을 마무리하고 새 출발하는 의미가 강할텐데 말이죠. 지난 시집이 2011년에 나오기는 했지만,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은 등단 이후 10여 년 동안의 문학적 궤적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물론 시적 모색이라고 하는 것이 새로운 시집을 낼 때마다 늘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제 신인이나 젊은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뭔가 다른 변화에 대한 탐색이 필요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이재훈 : 세 번째 시집은 준비 중에 있습니다. 세 번째 시집은 첫 번째 시집에서 추구하려던 세계를 확장하고, 두 번째 시집에서 고백했던 도시의 성찰이 더 처절하게 이어질 것 같습니다. 새 출발이라는 말보다는 더 확장된다는 느낌이 강할 것 같아요. 시적 대상도 다양해지고, 어조도 조금 달라지고요. 앞으로 더 가야 할 세계의 지향점에 징검돌을 놓는 기분입니다. 이제 나를 벗어나 타자와, 다른 세계에 눈을 돌리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조동범 : 이제 중견(?) 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삶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말이죠.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지도 궁금하지만, 시인으로서 어떤 문학적 삶을 살고 싶은지도 궁금해요. 앞으로 나이가 들수록 시쓰기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선배 시인들을 보더라도 문학적 삶을 지속한다는 게 참 어려워 보이거든요.

 

이재훈 : 저 아직 중견 아니에요. 중견되려면 멀었어요. 제가 중견이면 형도 중견이니 서로 그러지 맙시다.(웃음) 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삶이라… 어렵네요. 시인이 꼭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죠. 다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갈 텐데. 저도 아직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요. 제 시집의 자서에서 말한 대로 멋있게 늙는 것이 바라는 바고요. 추하거나 구차한 시인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고민 중입니다.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며 살아야겠죠.

 

조동범 :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네요. 마지막으로 <현대시>를 비롯한 한국시의 독자들과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할게요.

 

이재훈 : 저는 시인들은 모두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시인들을 살펴보세요. 특별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살아낼 수가 없어요. 때론 천형을 받은 존재들이라고 하지만, 그 형벌을 행복하게 받아낼 줄 아는 존재들이 시인들 아닙니까. 시인은 통각에 가장 예민하면서도 가장 강한 내성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시인의 한 마디 말이 삶의 어느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자신을 송두리째 전율시킬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말에 온 맘으로 귀 기울이면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조동범 : 긴 시간 고생했습니다. 다시 한 번 현대시작품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이재훈 : 네. 감사합니다. 형과 대담을 하게 되어 참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_ <현대시>, 2014년 5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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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품고 있는 도시 속의 신성함 속으로 말(言)을 타고 달려본다

 

 

이재훈, 김성규

 

 

 

 

 

건기(乾期)의 새. 시집 속에서 이재훈 시인의 모습을 찾아본다면 이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자신의 말보다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시인. 시인의 모습은 자신의 시와 닮아있다. 시에 행간의 여백이 느껴지듯 타인을 자신의 여백 속으로 깃들게 만드는 시인. 북가좌동에서 가끔 이재훈 시인을 만난다. 내가 사는 동네에 이재훈 시인의 직장이 있다 보니 같이 맥주를 마시고 시 이야기를 나눈다. 이재훈 시인이 주로 나의 고민을 들어주는 편인데 생각해보니 내가 시인의 고민을 들어준 적이 없다. 주로 후배인 내가 신세한탄을 하거나 물어보는 것이 많으니 이 빚을 언제 갚을까. 등단 15년이 가까워오지만 한결같은 모습, “햇살이 없었다면/ 저물녘이 없었다면/ 늦은 밤 빗소리와/ 시를 긁적이는 펜 소리가 없었다면(자서 부분)” 우주에서 우리는 만나지 못했으리라. 평소 궁금했던 시에 대해, 시인이 품고 있는 도시 속의 신성함 속으로 말(言)을 타고 달려본다.

 

김성규 : 이재훈 선생님 안녕하세요. 평소에 가끔 만나 뵈었는데 이런 계기로 마주 앉으니 좀 쑥스럽습니다. 겨울인데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저는 감기가 심하게 걸려 며칠을 고생했습니다.

 

이재훈 : 예. 반가워요. 김성규 시인과는 가까운 사이인데 이렇게 공적으로 마주 앉는 건 처음인 듯 싶네요. 저도 이번 겨울을 병치레로 나고 있어요. 감기를 달고 있네요.

 

김성규 : 선생님 시집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신화성, 시간성, 절대성 등입니다. 일단 약력을 보면 1972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하여,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2005), <명왕성 되다>(2011)를 출간하셨습니다. 시집으로 보면 등단 이후 많은 시간 차이를 두고 첫 시집을 냈고 이후에도 6년이 지나서 두 번째 시집을 냈습니다. 요즘같이 빨리 바뀌는 세상에서 긴 시간을 두고 출간하신 이유나 그 동안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이재훈 : 제가 작품 발표할 때에는 그렇지 않은데 시집을 묶을 때는 자기검열이 엄청 심해지더라구요. 시를 넣고 빼고 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구요. 결국 첫 시집은 44편만 남게 되었죠. 또 제가 첫 시집을 출간할 당시에는 지금과 상황이 달라서 시집 출간이 쉽지 않았습니다. 출판사를 결정하는데 또 시간이 걸려서 여러모로 늦어지게 되었어요. 두 번째 시집은 박사논문과 평론집, 대담집 등의 출간으로 생각보다 늦어지게 된 거구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평생 시를 쓰지 않겠습니까. 긴 안목으로 보면 시집의 권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몇 십 년 쓴 후에는 출간한 시집이 10권이건 5권이건 크게 중요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런 마음 때문에 출간이 더뎌지게 된 것이기도 하죠. 의미있는 시집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성규 : 첫 번째 시집보다 두 번째 시집은 보다 실재적 세계에 많이 접근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시간이 많이 지난 질문인지는 모르지만 첫 시집에 비해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하실 때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지요.

 

이재훈 : 첫 시집 이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하늘에서 내려와라. 우주와 하늘에서 신들과만 놀고 있다고. 땅에 내려와 인간들하고도 놀자고. 그런 말들에 영향 받았을 거예요. 두 번째 시집은 내 실존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렸다고 할까요.

 

김성규 : 시를 쓰고 그것에 다가가려는 시간이 짧은 순간 완성될 수 없듯이 선생님 시는 줄곧 성배, 순례라는 시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신이나 절대에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이 많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다신교적인 방식이 많이 등장합니다. 선생님 시에서 종교나 신화적 사고가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재훈 : 아마도 유년시절부터 내면화된 종교적 경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춘기 때부터 종교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어요. 전통이 아닌 비전통의 교리 등을 기웃거렸죠. 결국엔 돌아 돌아왔지만 그런 내면적 경험들이 시에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종교라는 것을 의식하고 쓴 적이 없어요. 습관화된 제 언어 속에서 그런 것들이 드러나는 건데요. 그렇기에 제 시는 영성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말인 것 같아요. 아무튼 신화와 영성 등의 주제는 계속해서 제가 탐구하고 싶은 주제입니다.

 

 

 

김성규 : 첫 시집 첫 번째 시가 「사수자리」라는 시입니다. 마지막 시는 「결별의 노래」이구요. 두 시 모두에서 빛이라는 상징이 드러나는데 이 빛(별)으로 가기 위해서는 “쭈글쭈글해진 어머니의 배”, 이마 위에 “주름이 깊어 눈이 감기고”라는 이미지가 나옵니다. 마치 성스러운 곳으로 가기 위한 통과제의처럼 보입니다.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재훈 : 「사수자리」는 존재의 시원에 관해 혼몽하는 시이고, 「결별의 노래」는 시원에서 다른 물음으로 이동하려는 다짐의 시라고 말할까요. 통과제의는 맞는데 성스러운 곳으로 갈 지는 모르겠어요. 오히려 더 속악한 곳으로 가지 않을까요? 하하.

 

김성규 :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도 크게 보면 별자리의 하나인데 이 시집에서는 「안드로메다 바이러스」같은 경우는 외계인의 침입으로 인한 지구인들의 종말이라는 SF적이라고 해야할까요 영화적이기도 하고 성경의 종말론적 버전도 보입니다.

 

이재훈 : 맞아요. 굳이 성경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보편화된 상상이죠. 영화에서도 많이 등장하죠. 아마 종말론의 상상은 앞으로 영원히 반복될 테마겠죠.

 

김성규 : 「매일 출근하는 폐인」에서 “출근길 지하철 입구에 눈먼 소녀가 앉아 있다./ 소녀의 귀에서 누렇게 익은 곡식 낱알을/ 새가 쪼아 먹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굉장히 선명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인데요 이런 상징들이 생활인으로써의 시인,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시인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재훈 : 상징은 일상이 내면화되어 나온다고 생각해요. 실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그걸 보지 않으려는 것뿐이죠. 왜냐면 끔찍하니까요. 지하철 입구의 소녀 이미지도 상상이 덧붙여지긴 했습니다만 실제 그렇게 느낀 이미지에요.

 

김성규 : 「겨울 숲」이라는 시는 <형의 이해하기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시인들에게도 그렇지만 창작이라는 허망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묘비도 없이 바람에 존재를 실어 버리는 게/ 가장 행복한 결말이라고” “신문에도 남지 않았던 그의 결말은/ 그가 진정 원하던 것이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저는 마지막 구절이 가슴 아프게 읽혔습니다. 사적인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이 시에 얽힌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이재훈 : 시의 실제 모델인 형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십대 초반에 병으로 돌아가셨죠. 방황하던 제 친구들의 정신적 우상이었어요. 병을 앓다가 독학으로 공부해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했는데 졸업도 못하고 돌아가셨죠. 그 후 십년이 훨씬 넘어 그 형에 대한 시가 나오게 된 거에요. 시 쓰는 사람들처럼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욕망이 강한 이들은 없을 겁니다. 이 땅에 무분별하게 널려 있는 시비를 봐도 그렇죠. 이름은 그렇게 남기는 게 아니란 것을 그 형이 알려주었다고 할까요. 단 한 사람의 가슴에라도 그 이름이 새겨진다면 정말 훌륭한 거죠.

 

 

 

김성규 : 「침묵의 세계」에서 보면 선생님 태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호랑이가 어머니 치맛자락을 물었다는 것인데, 일찍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뒷 구절을 보면 선생님이 평소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려집니다. 대부분 시 쓰는 선후배들이 선생님을 굉장히 포용적인 성격이고 베푸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얼핏 보면 태몽에 호랑이가 나온다는 것은 굉장히 도전적 인간형이라는 것인데, 포기하는 법을 배운 시인이 되신 이유나 어릴 적 어머니에 대한 기억 같은 것을 듣고 싶습니다.

 

이재훈 : 태몽은 실제 어머니에게서 들은 것이고요. 아마 실제 성격과 달리 내면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불덩어리를 끌어안고 사는 거 같아요. 그걸 본 사람들은 몇 없죠. 아마 그래서 시인이 되었겠죠.

 

김성규 : 다른 시인들과 달리 선생님 시에서는 유년에 대한 기억이나 현실에 밀착한 시들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시속에서도 그런 경험들이 얼핏얼핏 드러나고 전면적인 모습은 많이 감추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선생님 시의 방법론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독자로서 많이 궁금합니다. 유년시절이나 성장기는 「서태지 세대」에서 잠깐 나오는데 말씀해주세요.

 

이재훈 : 파란만장했죠. 어릴 때는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와 같은 삶이었다가 머리가 좀 굵어지고 나서는 데미안처럼 성(聖)과 속(俗)을 이리저리 방황했다고 할까요. 하지만 삶의 경험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데 대한 부끄러움이 있어요. 천성적인 성향 같은데 많이 망설이는 것 같아요. 유년시절에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그 시절에 대해 쓴 시들도 많이 있는데 「영월에서 온 편지」라는 시도 있고 다른 시편들도 많지만 시집에는 일부러 넣지 않았습니다.

 

김성규 : 「물에 대한 사소한 변론」이나 「대황하」 연작에서는 물이미지에 대해 많이 나옵니다. 물이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고 폭력적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특히 황하 연작은 무려 11편이나 나옵니다. 연작시가 거대한 서사가 없다면 쓰기가 힘들고 또 「대황하」는 시가 굉장히 역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방법론적인 특성을 보면 어조도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재훈 : 물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고, 그 이미지가 마치 돌풍처럼 제게 왔어요. 누런 황톳물이 굽이치며 제 속으로 출렁였죠. 원래 11편보다 더 많이 썼는데 선별한 거죠. 같은 이미지의 연작시이지만 모두 다른 방식으로 시가 나왔기 때문에 어조도 다르게 나온 걸 거에요.

 

김성규 : 다른 시 「돌」도 물질적 이미지인데요. 이 시를 보면 돌과 달의 유사성에서 시작해 돌이 어머니 같기도 하고 피와 온기를 가진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집니다. 전통 신앙에서 보여지는 임신과 출산에 관여하는 신적 존재, 애니미즘 적이기도 하고, 선생님의 기존 시에서 추구했던 신성성과도 연관돼 보입니다. 마지막에 돌에 머리를 숙이는 장면에서는 어떤 숭고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전봉건 선생님의 돌 연작시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한편의 시가 가진 매력으로써도 감탄한 시입니다.

 

이재훈 : 「돌」이라는 시는 지금보다 앞으로 할 말이 많은 시입니다. 지금 ‘돌’에 관한 연작시를 쓰고 있습니다. 제목은 각기 다른데 모두 돌에 대해 썼어요. 이미 10편 넘게 썼습니다. 돌은 언제든지 우리의 발에 채이지만 가장 무한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물질입니다. 돌의 기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죠. 가장 성스러운 존재였다가 가장 희화하는 존재이기도 해요. 돌을 숭배하기도 하지만, ‘돌대가리’라고 놀리기도 하죠. 전봉건 선생의 돌 연작도 제가 좋아하는 시편들이죠. 이미 많은 시인들이 돌에 대해 썼지만 저는 다른 방식으로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성규 : 자서의 마지막 구절에서 선생님을 방황하게 만들 수많은 것들과 고독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방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곧 문학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을 것 같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이제 내 바람은 멋있게 늙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혹시 다음 시집의 계획이나 앞으로의 바람 같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재훈 : 말 그대로 멋있게 늙는 게 바람이구요. 때가 되면 나오겠지만 세 번째 시집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사진을 곁들인 산문집도 한 권 내고 싶고요. 눈 오는 날 창밖을 보며 아주 천천히 따뜻한 정종 한잔 할 수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어요.

 

김성규 : 사진까지 곁들인 산문집이라면 좀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산문집이 기대됩니다. 세 번째 시집 출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든 정종 한잔 이라면 열일 제쳐놓고 나오겠습니다. 오늘 만남 즐거웠습니다.

 

이재훈 : 예, 김성규 시인도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쓰길 기대하겠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도시의 빌딩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불빛들, 어디선가 외팔이 소년이 “천사와 함께 비탄의 노래를 부르는” “아름다운 시간”(「연옥의 산」)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재훈 시인은 지금까지 두 권의 시집을 냈다.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2005), 『명왕성 되다』(2011)는 한국 시에 이제까지 부족했던 신성함과 절대성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1998년에 등단했으니 그동안 출간한 두 권의 시집은 과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발표작들을 엄선해 뽑아놓은 시집 속엔 침묵 속에서 발화하는 시의 언어들이 행간에 심겨져있다. 속된 세계에서 신성한 언어를 길어올리려는 그의 과업은 속도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무모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모든 허공과 모든 공허 속에서 이는 바람을 혼자 듣고 있는지 모른다.

 

_ <시향>, 2014년 봄호.

 


 

이재훈 : 1972년 강원도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저서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부재의 수사학』,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다.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김성규 : 1977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너는 잘못 날아왔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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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시, 함께 늙어가는 아름다운 애인

 

 

 

이재훈 이은규

 

 

 

햇살이 없었다면/ 저물녘이 없었다면/ 늦은 밤 빗소리와/ 시를 긁적이는 펜 소리가 없었다면/ 이 우주에 어쩌다 나의 동경이 되어 버린 숱한 별들과/ 아무도 원치 않던 도시에서의 고독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방황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 이재훈, <명왕성 되다>, 自序에서

 

 

 

● 명상가와 시인 사이

 

이은규: 이번 <시현실> 여름호 대담에는 이재훈 시인을 모셨습니다.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반갑습니다. 오늘 대담 장소인 쿠스코의 분위기가 이국적이네요. 흐르는 음악도 그렇고요.(^^) 함께 말씀 나누게 될 <명왕성 되다>에 「쿠스코」라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지요?

 

이재훈: 「쿠스코」라는 작품이 있죠. 쿠스코는 페루의 도시인데 잉카제국의 수도였지요. 한때 1백만 명이 거주했다고 해요. 또 세계의 배꼽이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고대문명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 이유로 쿠스코에 대한 열망이 시로 표현되었겠죠.

 

이은규: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오늘 대담 장소와 함께 나누게 될 대화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을 것 같아 흥미로워요.(^^)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약력에서 고향은 정보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72년 강원도 영월 출생이신데, 선배님 기억 속에 그곳은 어떤 곳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요. 영월하면 뭔가 아득한 느낌인데 일상은 또 다르겠지요.

 

이재훈: 제가 태어난 곳이 영월 만경대산 아래 첫 동네에요. 영월군 하동면 주문리. 일명 모운동(募雲洞),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이지요. 예전에는 그곳이 탄광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죠. 폐광된 이후로 인적이 드문 마을이 되었어요. 그곳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때까지 횡성, 인제 등 강원도 곳곳을 떠돌며 살았어요. 이렇게 이사를 자주 다니니까 헤어진 친구들에게 편지를 많이 썼어요. 그래서 그런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어요. 그래도 수줍음이 많아서 새롭게 전학 간 학교에 적응하는 건 늘 시간이 걸렸어요.

사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영월을 떠나서 연고가 없어요. 그런데 약력에는 항상 출생지를 적게 되어 있잖아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어른이 돼서 다시 가보니 많이 바뀌어있더라고요. 집집마다 벽화를 그리고 마을을 예쁘게 가꾸어서 캠핑족들에게 인기가 많은 동네가 된 거죠. ‘6시 내고향’ 등 티브이에도 많이 출현을 했다고 해요.(^^)

 

이은규: 구름이 모이는 동네…. 그윽한 이름이 인상적인 곳이네요. 갑자기 이런 말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모범생 이미지가 강하세요.(^^) 학창시절 선배님께서는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말씀해 주시면 이해가 빠를 것 같아요.

 

이재훈: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논산에 계신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어요. 고1 말부터 혼자 자취를 하게 되었어요. 연탄불 혼자 갈면서 밥 해먹고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자취 시절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어요. 사춘기가 조금 늦게 온 것 같아요.(^^) 대학을 안 가겠다고 선언했죠. 나름 지역의 명문고였기 때문에 꼴등도 대학은 갔었거든요. 일종의 반항심이었는데 남들 다 가는 대학이라서 가고 싶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인도에 가서 명상가가 되고 싶었어요. 자신을 버리고 구도를 하는 삶에 대해 관심이 많았거든요. 고등학교 때까지 나를 지배했던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와 실존적 물음 등 때문에 괴로웠던 시절이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과 대전 등지에서 지내면서 방황을 했어요. 그때 집중적으로 난독을 했어요. 특히 서울 용산도서관이 제 문학의 성지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밥값 저렴하고. 당시 우동이 천원, 김밥이 오백 원이었어요. 하루를 지내기엔 좋은 환경이었죠. 희한하게 문예지도 많이 읽었어요. 그러다가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논산에 있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가게 된 거죠.

 

● 펼치다,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이은규: 대학 진학 거부와 명상가를 향한 꿈이 내적 필연성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첫 발성인 등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대학 재학 중인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하셨는데 안팎의 반응이 상당했을 것 같아요.(^^)

 

이재훈: 대학을 간다면 국문과 말고는 생각을 안 했어요. 거기가면 책 읽을 수 있지 않나 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하지만 학교생활도 열심히 못했죠. 부모님께 억지로 끌려간 거라 1년 동안은 적응을 못했죠. 그러다 방위병으로 군대를 다녀온 후 복학해서 본격적으로 학교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문학은 계속 독학으로 했던 거라서 2학년 때부터 각종 문예지에 투고를 했어요. 그때 당시 우리 과에 평론가 우찬제 선생님께서 계셨어요. 작품을 보여드릴 용기가 없어서 연구실 문틈으로 작품을 밀어 넣었던 생각이 많이 나요. 그런 시간을 보내고 4학년 때 등단을 했어요. 학교 설립 이후 최초의 등단자였기 때문에 교문에 플랜카드가 걸렸고 졸업할 때 상도 받았죠.(^^) 막상 등단을 하고 보니 실감이 안 났어요. 삶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거의 1년 동안 청탁도 없었고요. 하지만 내적 에너지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문학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뛰쳐나가 순교할 자세가 되어 있던 거죠. 그렇게 철이 없었어요.

 

이은규: 문청 시절에 시인이 되신 거네요. 얼마나 벅차셨을까요. 현대시와의 인연이 등단지에서 근무지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현대시>와 관련된 일 또는 사람들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문학과 일상의 경계가 거의 없는 생활을 하고 계신데, 장점도 있지만 어려운 점도 있으실 것 같아요.

 

이재훈: 등단 후 중앙대대학원 문창과를 다니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현대시>에서 일을 하게 되었죠. 현대시에서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쭉 박사과정 진학을 하게 되었고 졸업한 후에는 잡지일과 강의를 하고 있지요. 30대 초반부터는 제 삶의 모든 부분이 문학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은규: 문학이라는 테두리 속에서의 삶…. 이번 기회를 통해 2005년 출간된 선배님의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를 다시 펼쳐 보았는데요. 심플한 표지와 긴 호흡의 표제작이 다시 봐도 신선했어요.(^^) 특히 표제작은 세상에 첫 시집을 내놓는 시인의 선언서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이재훈: 한 권의 시집은 나름 시인이 연출해낸 한 편의 연극이라고 생각한 거죠. 나름대로 기획을 하려고 고심을 했어요. 색깔 있는 시집, 이재훈이라는 텍스트만이 살아 있는 시집을 내고 싶었죠. 시를 통해서 잘 할 수 있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위주로 묶었어요. 첫 시집이니까 근원과 욕망 등을 탐색하는 시들이 많았고. 일반적으로 첫 시집에는 자기 살점이 뭉텅뭉텅 떨어지는 자의식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첫 시집으로 많이 아팠죠.

표제작 이야기를 조금 하면 그 작품 제목이 너무 길어서 시집 제목으로는 생각을 못했어요. 당시 추천글을 써주신 조정권 선생님께서 제안을 해주셨어요. 길어서 좀 망설여진다고 하니 그 제목이 시집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 조언으로 다소 긴 제목의 시집을 가지게 되었죠. 제목이 길기 때문에 제 시집의 제목을 외우는가 외우지 못하는가를 기준으로 저에 대한 애정을 판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은규: 참고로 저는 외울 수 있답니다.(^^) 첫 시집 자서에 보면 “문학이 구원 자체는 될 수 없겠지만 구원을 욕망하게 하는 에너지는 되기 때문이”라는 문장이 있는데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신지, 혹은 새로운 생각이 더해지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이재훈: 변함이 없다고 봐야겠죠. 시와 완벽히 논다는 개념이 제겐 없어요. 진지하고, 고민이 많죠. 세상에 놀 것들은 많지만, 진지하고 싶은 것들은 없어요. 전 숙연하게 문학을 하고 싶어요.

 

이은규: 문학을 대하는 태도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말씀이네요. 질문을 계속 이어나가자면, 시원에 대한 물음들이 주가 되어 시집 한 권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표제작인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를 포함하여 <사수자리>, <순례>, <나스카 평원을 떠난 새에 관한 이야기>, <공중정원> 등의 작품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 여행 경험과 상상력은 어떻게 만나고 또 헤어지는지요.(^^)

 

이재훈: 아까 말씀드렸듯이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않은 삶을 살아서 먼 곳에 대한 동경과 상상이 시를 통해 드러난 것 같아요. 대부분의 공간이 실제 가보지 않고 쓴 경험이 많습니다. 가보지 않고 어떻게 체험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단호히 아직 문학을 반쪽밖에 모르시는군요 하고 말하고 싶어요.

초창기에는 내 삶을 쓰는 게 너무 엄살을 떠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시를 썼을 때 마음에 들지 않았죠. 시를 통해 멋있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성향일수도 있고요. 문학을 통해 이상향을 이루자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별이라든지 가볼 수 없는 곳에 대한 상상, 우주 속을 떠도는 것이 저에게는 실존적 고민이었기에 나름대로 치열했어요. 그런 치열함이 더 문학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고요. 선입견을 가지고 생각하듯이 별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아요. 제겐 치열한 실존의 대상이죠. 아직 삶을 이야기하기엔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을 어떻게 내릴 수 있나라는 생각도 했었고. 지금은 조금 달라졌어요. 체험은 개별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나온다는 걸 알아요.

 

이은규: 우주와 실존 그리고 시적 치열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어지는 질문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여행을 하다보면 마음에 담고 싶은 풍경을 사진에 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 <현대시>의 표지를 장식하는 수많은 문인들의 사진을 찍으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이재훈: 에피소드는 아껴두기로 하고요. 대개 시인들은 사진 찍는 것을 즐겨하지 않아요. 사진 찍히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글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 익숙하다보니,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것을 꺼려해요. 그런 부분에 일견 동의합니다. 나또한 그러니까.(^^) 모델을 찍는 것보다 시인을 찍는 것이 훨씬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인을 스튜디오에 앉혀 놓고 사진을 찍는다고 상상해보세요. 금방 아시겠죠.(^^)

 

시인과 평론가 사이

 

이은규: 선배님, 굉장히 부지런하신 것 같아요.(^^) 2007년에는<현대시와 허무의식>을 출간하셨습니다. 허무의식이 현대시에 보편적인 인식의 방법임을 밝히고, 그 시의식이 어떠한 양상으로 펼쳐졌는지를 고찰한 결과물로 읽혔는데요. 허무의식에 대한 천착의 이유와 특별히 유치환, 박인환, 이형기, 강은교 시인을 호명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재훈: 제 박사논문의 주제입니다. 박사논문을 수정 보완해서 낸 책이에요. 부끄럽고요.(^^) 허무의식이라는 주제론이 많지 않다보니 써보고 싶었어요. 유치환, 박인환, 이형기, 강은교 시인은 모두 허무의식이 가장 주요한 시의식이었어요.

 

이은규: 어쩌면 시인들에게 ‘허무’는 일종의 공통감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허무를 어떻게 내면화시키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으로 드러나겠지요. 이번에는 잠시 우회로를 따라 걸어보겠습니다. 지난 3월 시집 <명왕성 되다>와 관련된 ‘북콘서트’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상상 속 독자를 직접 대면하는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더불어서 그날 사회자와 게스트로 참석해주신 신혜정, 허연, 김태형, 오은, 김안 시인 등을 보며 문우가 많으실 것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이재훈: 오로지 저만을 위한 그런 북콘서트는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있을까 싶네요. 아주 즐거웠던 체험이었어요. 함께 와준 여러 시인들에게 고맙죠. 특히 사진에는 없지만 뒷풀이를 함께 한 시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 날이었어요. 많은 문우가 있을 것 같은 인상이긴 하지만 의외로 외롭기도 하답니다.(^^)

 

이은규: 매체에 보도된 사진을 통해서도 그날의 벅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우에 대한 말씀을 아끼시는 그 모습이 더 애틋하게 다가오네요. 그런가하면 2008년에는 <딜레마의 시학>이 출간되지요. 부 구성에도 드러나듯이 현대시의 미래에 대한 탐색과 증언, 그리고 풍경들과 마주할 수 있었는데요. 시쓰기와 비평이라는 두 가지 층위의 작업을 함께 하고 계십니다. 즐거움, 괴로움 동시적으로 갖고 계실 것 같아요.(^^)

 

이재훈: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평론에 대한 자의식에 대해 자꾸 물어보시면 부끄러워요. 시인이 쓴 조금 논리적인 글로 이해를 해주시면 제 마음이 편하죠. 솔직히 말하면 괴로움이 많아요. 이것저것 붙잡다가 이도저도 아닌 게 되는 것 같아서. 시 쓸 때의 모드와 평론 쓸 때의 모드가 다르기 때문에 동시에 쓰지는 못해요. 시 쓸 때는 시만 평론 쓸 때는 평론만 쓰죠.

 

명왕성 되다, 이후

 

이은규: 이번에는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에 관해 말씀 나눠 보겠습니다. 여는 질문 하나드리자면 자서 말미에 등장하는 카프카 독서실은 시편 「카프카 독서실」의 공간과 같은 곳인지요?(^^) 시 속의 “팔뚝 위에 피리를 새겨 넣자/내 몸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는 구절을 통해 바라보면 작품의 산실인 것도 같습니다.

 

이재훈: 카프카 독서실은 제 공부방이에요.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에 얻는 저만의 시간은 참 소중하죠. 아무에게도 침해받고 싶지 않은 그 공간에게 제가 이름을 붙여줬어요.(^^)

 

이은규: 누구나 저마다의 카프카 독서실을 꿈꾸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 제목에는 어떤 에피소드가 숨어있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더불어 명왕성 등 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첫 시집부터 지속되고 있는 시원에 대한 물음의 연장선상에 있는지요. 그런 추측이 가능하다면 어떤 변화를 염두에 두고 시도하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이재훈: 어떤 변화라기보다는 별이라는 대상이 제 몸에 맞는 거겠죠. 일부러 별에만 집중한 것은 아닌데요. 존재의 시원이나 신화, 도시적 삶에 대한 성찰 등의 주제가 별이라는 대상으로 수렴된다는 게 저도 신기해요.

 

이은규: 그런 현상이 시의 ‘자기운동성’이 아닌가 싶어요. 첫 시집이 도시의 생리와 주체의 내면을 결합하며 한 시대의 쓸쓸한 풍경을 기록했다면 이번 시집은 소재와 착상의 범위가 더욱 넓고 풍요로워졌으며, 다양한 시편들을 통해 호흡과 리듬도 확장되었다는 평이 있습니다. 어떤 시인에게나 첫 시집은 생채기와 같은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그 시간을 지나온 두 번째 시집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은 어떠신 지요.

 

이재훈: 좋은 평가를 많이 내려주시니 고맙죠. 두 번째 시집에 대해서는 아마 제가 세 번째 시집을 낸다면 더 중요한 말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첫 시집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의 나를 발견하려고 애썼던 시집이었죠. 그 부분에서 공감을 많이 해주시는 것 같고요.

 

이은규: 말씀을 들으니 벌써 세 번째 시집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는데요. 나를 발견하려는 몸짓이 어떠한 방식으로 시도되고 또 드러날지 궁금해집니다. 문득 김수영 시인 이야기인데요. 김수영은 “시는 나의 닻이다”라는 말을 했지요. 선배님께 시는 무엇일까요. 더불어 이유도 함께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재훈: 제게 시는 무엇일까요란 질문은 너무 어렵고 거창하고요. 저는 시가 함께 늙어가는 애인이었으면 좋겠어요.(^^) 시와 함께 아름답게 늙고 싶어요.(^^)

 

이은규: 오늘 대담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기’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기’ 사이를 오고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리며 대담을 마칠게요.(^^) 감사합니다.

 

이재훈: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은규 |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으로 <다정한 호칭>이 있음.

 

_ <시현실>, 2012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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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포엠포엠> 봄호 VOL53 특집
기획특집 시인을 만나다 36

 

이재훈 시인

 

 

때 : 2012년 1월 2일 6시 30분 합정동 카페 <아이두 IDO>
탐방진 : 김안, 한정원. 정훈

원고 정리 : 한창옥

 

 

요즘은 지나간 흔적을 되살리는 것이 트렌드다. 부드럽지만 도발적인 그의 작품 속으로 조용히 빠져들게 하는 이재훈 시인을 빈티지풍의 카페 지하벙커에서 만난다.
매서운 칼바람은 아니지만 소한을 앞둔 차가운 날씨다. 어둑어둑해지자 부산에서 올라온 본지 편집부 정훈 평론가, 한정원 시인, 그리고 현대시 편집장 김안 시인과 오늘 주인공 이재훈 시인이 들어선다. 모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난로 불에 몸을 녹인다. 모처럼 서울에 올라온 정훈 평론가가 서두른다.

 

- 이재훈 선생님, 새해를 맞이한 느낌이나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새해 계획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아내 지인의 집에 놀러갔다 마지막 날과 새해를 아이들과 놀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에는 어떻게 해야지 하는 계획을 갖지 못하고 지나버렸어요. 지난주에는 연말이라 모임이 많았고요. 이제 좀 천천히 지난 한 해를 돌아봐야겠습니다.(미소)
올해 초에는 평론집을 한 권 낼 계획입니다. 2011년도에 시집 <명왕성 되다>를 냈고, <나는 시인이다>라는 인터뷰집을 출간했습니다. 평론집 원고도 준비가 다 되어 있었는데 한 해 책을 세 권 내는 것은 무리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미뤄왔죠. 그동안 이리저리 시집 서평이라든가 문예지 계간 평이라든가 기획특집 글들을 시인의 입장에서 써왔습니다. 평론집을 정리하고 2012년 봄학기를 맞아야겠지요. 특별한 삶의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순간순간을 누리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현대시> 잡지를 만들고 그러한 삶이 반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론집은 언제쯤 어느 출판사에서 나옵니까?

 

3월내로 계획 중입니다. 출판사는 아직 정하지 못했고요. 제목도 새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겨울에 수정, 퇴고를 할 생각입니다.

 

- 작년에 출간된 시집은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예도서로 선정되었고, 대담집은 문화관광부 올해의 교양도서가 되었는데요. 옆에서 보면서 이런저런 결실을 많이 맺는 한 해였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특히 대담집을 보니 그 안에 있는 텍스트 하나하나가 오랫동안 시를 쓰면서 지내왔던 형의 삶의 이력같이 느껴졌습니다. 형은 지난 한해를 바라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점점 이 일이 작년 일인지 재작년 일인지 3년 전 일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 거 있죠. 크리스마스 때 뭘 했는데 작년에 했던 것인지 재작년에 했던 것인지 헷갈리는 거요. 그래서 작년 한 해가 그 전 해보다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첫 번째 시집을 내고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이 나왔는데 두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는 것이 의미일 것 같고요.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 같은 경우는 2001년부터 근 10년 동안의 시인들을 만나온 기록이기에 저의 문학적 일기처럼 느껴지죠.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났을 당시의 추억이 떠오르고 어떻게 만났고, 어떤 이야기를 했고, 술자리를 어떻게 가졌고 이런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거든요. 원고를 모아놓고 나니까, 지난 10년 동안의 문학 활동이 파노라마처럼 스르르 지나가면서 대담집이 제게는 하나의 문학앨범이 되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두 책을 출간한 것이 가장 큰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창작과 강의, 문학연구 이런 활동을 오랫동안 병행하면서 정신없이 성실하게 살다보니 그런 생각이 드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학에 빠지다보면 가장이나 남편으로서 역할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양쪽 다 성실하게 잘 하시는 바람직한 한국의 남자나 아버지의 모습을 제가 잠깐 보게 되었는데요.

 

아니요. 사실 제가 아버지나 남편으로서 점수가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집사람에게 미안하죠. 항상 비판을 많이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성실한 가장은 되지 못합니다.

 

-그게 달콤한 비판으로 느껴지는데요.

 

아닙니다.(웃음)

 

- 대담집 말씀하실 때에 10여 년 동안 꾸준히 준비해 오셨다는데 특별한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까?

 

대담집을 내고 제가 인터뷰를 몇 번 했거든요. 이 찻집에서도 대담집을 출간하고 인터뷰를 했어요. MBC DMB의 <내 손 안의 책>이라는 프로그램에서요. 인터뷰할 때 항상 받는 질문인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다 에피소드 하나 정도는 있을 겁니다. 만난 장소도 다 다르니까요.
찻집에서 우아한 시간을 보내며 만난 분들도 있고, 술부터 먹기 시작해서 대담을 어떻게 했는지 나중에 정리하기 힘들었던 경우도 있고요. 시인들도 직업군이 다양하고, 각각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니까요. 또 시인들이 에고가 세죠. 자기 자존이 센 분들이라 만나면 대립각을 맞추는 게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술을 함께 마시며 긴장을 풀어야 되는 그런 부분이 종종 있어요. 아무튼 시인들마다 하나 정도씩의 에피소드는 다들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대담을 통해 의미있는 대답이 된 것들이 있죠. 이미 돌아가신 선생님들과의 대담이 그러한데요. 지금은 그 선생님들의 육성을 들을 수 없으니까요. 김춘수, 오규원, 박찬 선생님들은 지금 고인이 되셨죠. 이 분들과의 대담에 얽힌 얘기들은 다른 지면에서 많이 얘기를 했어요.

 

- 말씀을 잘 해주셔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습니다. 인터뷰어로 많은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인터뷰이로서의 역할도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웃음)

 

왜냐하면 분량을 알거든요. 말을 너무 짧게 하거나 너무 길게 하면 힘듭니다.(웃음) 적당히 한 시간 정도가 좋아요

 

- 인터뷰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따뜻한 품성의 소유자란 생각이 듭니다. 뻔한   질문이겠지만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가 2005년도에 나왔고, 지난해 2011년에 <명왕성 되다> 시집이 나왔어요, 6년 정도 시간의 간격이 있는데 첫 시집하고 시세계가 달라진 면이 있다든지 혹은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의 시세계가 변화된 부분이 있나요?

 

달라진 부분이라고 한다면, 전체적인 시세계의 성향은 비슷한 면이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신성에 대한 욕망, 시원에 대한 갈망, 이미지들을 신화적 상상력으로 구현하려는 몸짓. 이런 부분에서는 일맥상통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첫 번째 시집보다 두 번째 시집에서 구체적인 일상인으로서의 자아가 많이 들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까요.
첫 시집에선 제가 가지고 있는 주도적인 시세계를 주로 표출하려고 했죠. 그러다 보니 일상인으로서의 자아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요. 시집 준비를 오래 하다보니 자기검열이 너무 강해져서 100여 편의 발표작 중에 44편만으로 시집을 묶었어요. 자연스럽게 색깔있는 시들만 묶여지게 되었죠. 두 번째 시집에서는 그런 것들을 이어가되 일상인으로 겪는 자아의 성찰이 첫 시집에 비해서 조금 더 많이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첫 시집에서는 시적자아가 우주나 공허, 하늘을 유영하는 자아가 많은데 두 번째 시집에서는 도시라는 문명의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일상인의 모습이 많이 투영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조금 달라진 점이 있지 않을까요.

 

- 첫 시집은 우주, 하늘과 같은 높은 데 떠 있었다면, 두 번째 시집은 낮아졌다, 땅으로 내려왔다는 평이 있던데 동의하시는지요?

 

예, 그런 부분이 있죠. 제가 시골 태생인데, 고등학교 때까지 시골에서만 살았어요. 첫 시집 낼 때까지만 해도 도시에 대한 성찰이나 자의식이 그렇게 크지 않았죠. 오히려 도시는 막연한 동경과 환상의 대상이었어요. 그런데 도시에 산 지 20년 가까이 되다 보니 도시의 환상들이 무너지는 경험을 심하게 겪었죠. 도시에 대한 성찰이 30대 후반에 비로소 생긴 거 같아요.
하지만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다보니 도시를 떠날 수 없는 버거운(?) 삶이 되었죠. 도시는 제가 발 딛고 살아가야만 하는 필연적인 공간이 된 거죠. 예전에는 정신의 휴식을 외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으로 해소했다면, 이제는 도시 속에서 어떤 은둔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보니 도시 속에서 산책자로서의 자아가 자연스럽게 투영이 되었고, 이런 시들이 주변 시인들이나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봅니다.

 

- 첫 번째 시집의 시적 화자가 이 거대한 도시를 하릴없이 배회하는 산책자의 모습이었다면, 두 번째 시집의 시적 화자는 <안드로메다 바이러스>에서 보듯 이 피비린내 나는 행성에 불시착한 외계인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특히 1부에서 이런 시적 화자가 도드라져 보이고, 2부에서는 <대황하> 연작에서 보듯 특유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인 느낌이었어요. 시집의 차례를 구성하는 데 거대한 그림을 그린 것이 느껴집니다.

 

저는 기승전결의 구성보다 3부작이 편해요. 4부가 되면 머리가 복잡해져서 그런 구성을 했는데 김안 시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런 의도를 가지고 했습니다.

 

- <안드로메다 바이러스>를 말씀하시니까 생각이 나는데 시를 읽다보면 SF영화도 떠오르는데 영화를 많이 보시는지요?

 

영화를 좋아하지만 많이 보는 편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안드로메다 바이러스>라는 영화를 본 적은 없어요. 제가 시의 초고를 써 놓고 시의 제목을 어떻게 붙일까 고민하던 중에 ‘안드로메다 바이러스’라는 용어가 제게 온 거죠. 아주 매력적인 용어였어요. ‘명왕성 되다’ 처럼. (웃음)

 

- 빗나가는 질문인데 외계인이 있다고 믿으세요?

 

있겠죠. 없다면 너무 재미없잖아요.(웃음)

 

- 네. 그렇죠. 이재훈 시인은 믿을 것 같습니다. 종교가 있나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체험 신앙을 갖고 계신 분이어서, 신앙에서만큼은 엄청 엄하셨어요. 그래서 억압이 많았죠. 사춘기때 직접 반항은 못했지만 내적 방황을 많이 겪었어요. 학창 시절에 문학책보다 신학 서적을 더 많이 읽었습니다. 기독교계통의 어린이 잡지도 많이 읽었고요. 지금 우리의 기독교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완고한데 그런 부분에 좀 답답함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요.
제 시에서 기독교 성향이 있다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말하는 기독교라기보다 배교적인 느낌을 짙게 깔아놓은 신비주의적인 성향이 많아요.

 

- 시의 표현기법이 상당히 독특한데요. 종교적인 표현에 특별한 기율이 있을 거 같거든요.

 

특별한 기준은 없고 아마 독서체험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학창시절 신앙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부터 20대 전체를 신(神)에 대한 갈등과 방황으로 점철했었죠.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해방신학이 유행되었거든요. 일반 기독교에서는 이단이라고 하는데, 그쪽에도 꽤 깊게 침윤되어 있었구요.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라고, 구원의 일방성에 반기를 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신앙관을 기웃거리기도 했죠. 기독교에서는 인정을 안 해 주는 교리죠. 제가 그동안 체험했던 기독교와 너무 달라서 충격을 받았어요. 호기심이 많았던 거죠. 성경도 장자의 얘기가 아닌 서자의 얘기에 관심이 많았구요. 비교도, 그노시즘에도 관심이 있었죠. 아주 성스러운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가 매력적이었어요. 그런 관심들이 언어적으로 내면화된 것 같아요.

 

- 첫 시집에서 크고 광대한 세계를 그려나갔고, 이는 두 번째 시집에서 이어집니다. 이 두 시집에서서 시의 길이가 길어지고, 시의 호흡 역시 빠르게 가지기보단 묵직하면서도 느리게 나가는 것은 형이 말하고자 하는 시적 세계의 스케일 때문이라고 느꼈어요. 요즘 젊은 시인들이 빠른 호흡을 하고 시행과 행 사이의 간극을 벌리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천천히 시선을 옮아가며 크고 무거운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거인의 발자국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인지 박수연 선생님은 형의 시세계를 언어적 낙관주의라고 하면서 명징한 상징과 운율을 거느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의 작법상의 문제와 이 작법이나 스타일들이 시적 세계관과 연관되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쓸 때는 작법을 의식 안하고 씁니다. 이런 생각은 하죠. 어떤 세계를 그려내야 된다는 것. 길이나 분량이나 처음에는 의식을 안 하죠. 작법이나 스타일을 정해놓고 쓰는 시인들이 많은데 저는 방목하는 스타일입니다. 시의 스타일은 운명처럼, 그 시에 맞춰 생성되는 것 같아요. 태생적으로 길어야 하는 시가 있고, 짧아야 하는 시가 있는 거죠. 우선 아직까지 컴퓨터에 시를 못 써요. 노트에 시를 쓰고 그것을 컴퓨터로 옮겨 쓰면서 퇴고하는 스타일인데요. 노트에 쓰다보니까 분량에 대한 감이 잘 안 오더라고요.
저는 하나의 대상물을 깊게 파헤쳐서 써내는 인내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하나를 바라보면서 다른 곳으로 자꾸 확장시키고 싶은 시적 욕심이 있어요. 꽃을 봤다면 꽃 속으로 들어가서 우주로 확장되거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거나 확장되는 그런 생각들이죠. 이런 시적 전개가 시의 스타일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그런 식의 시적 전개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 부분도 없지 않겠죠.

 

 

- 첫 시집의 시적 화자는 혼자 배회하며 도시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시집의 시적 화자는 자신이 보는 것에 대한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안드로메다 바이러스>에서 지금 이곳에 대해 ‘피비린내 나는 행성’이라 지칭하는 것과 같이, 지금 이 도시에 대한 나름의 가치판단들이 보입니다. 이는 어쩌면 세상을 보는 시인의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시집에서 이런 부분이 더 강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명왕성 되다>라는 시집에서 엄살을 피울 만큼 피웠어요. 문명인으로서 겪는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너무 적대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그런 자기 진술들이 너무 많이 나오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게 산다고 엄살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요.
이제는 이 도시를 사랑할 수는 없어도, 적절한 거리만이라도 유지하자는 생각입니다. 너무 도시에 밀착되어서 도시 속에 푹 파묻혀 살아가기보다 도시를 빠져나와서 바라봐야겠어요. 제 스스로 엄살이 아닌 날 선 시각으로 느껴진다면 되는 거죠.

 

- 제가 보기에는 엄살 부린다기보다 현대인의 도시생활을 대변을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면적으로 한 번은 거쳐야 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두 번째 시집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2부입니다. <대황하> 연작과 그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시들에 애착이 있고, 2부의 시를 배열하면서 나름대로 기획을 했어요. 그런데 2부의 시적 세계가 부각이 안 되더라고요. 2부에 있는 시적 부분들을 세 번째 시집에서는 조금 더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 첫 시집이 도시라는 미로에 갇힌 느낌이었다면, 두 번째 시집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도시를 멀리서 관조하면서 스스로의 시선을 획득했기에 변화의 지점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2부에서 보이는 시인 이재훈만의 광활한 시세계는 첫 시집과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에 대개의 독자들이 1부에서의 변화된 지점에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변화된 지점을 이야기하다보니까 그렇겠죠. 왜냐면 첫 번째 시집을 냈을 때도 세간의 평가가 신성이나 신화적 상상력, 욕망에 대한 얘기, 낯선 낭만주의적 색채 때문에 변별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왔잖아요. 두 번째 시집은 첫 번째와 어떤 변별점이 있을까 찾다보니까 그런 맥락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 주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시와 평론을 겸하시면서 느꼈던 점이 있을까요? 시를 쓸 때와 평론이나 논문을 쓸 때 갈라지는 부분이 있는지. 행복하게 일치하는 순간이 가장 좋겠지만요. 산문하고 운문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요?

 

저는 평론을 간간히 쓰면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시들을 분석적으로 바라볼 때 또다른 시의 모습을 보게 되거든요. 제 가치판단의 흔적들이 정리가 된다는 느낌도 있고요. 하지만 이제 평론을 조금만 쓰려고 합니다. 제 비평언어의 한계도 느껴지고, 시 쓰기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서죠.
시의 언어와 평론의 언어는 많이 다르죠. 정서가 지배하는 글과 이성이 지배하는 글의 차이니까요. 평론과 시를 함께 쓰면 이런 글쓰는 주체의 모드를 교체해야 되는 부분이 힘들어요. 그런 부분들 때문에 평론 쓸 때는 시가 잘 안되죠. 우선 저의 정체성은 시인이니까. 시 쓰기에 좀 더 중점을 두어야 되겠지요.

 

- 평론 쪽은 더 확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시군요?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제 지식의 한계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써봐야 좋은 글이 나오리라는 확신이 안 들어요.

 

- 늘 공부를 하시고 계신데 겸손한 말씀이십니다.

 

아닙니다. 아직 해야 할 공부가 많습니다. 그동안 못 읽었던 책들을 읽으면서 내공을 더 다져야 합니다.(웃음)

 

- 지금까지는 선생님의 시 세계와 시를 바라보는 관점들을 다양하게 말씀해 주셨는데, 시 외부의 객관적인 시 조류라고 할까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요즘 시들이 상당히 어렵거나 시인조차 안 읽는 시가 많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반 독자들은 처음에 감동받았던 서정시 성향의 시를 계속 읽는 경향이 있고 시인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일관된 색깔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시인들이 시를 쓸 때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자를 염두할 필요가 있는데요. 시인과 독자들이 행복하게 만나기 위해 일치하는 지점, 그런 부분을 생각한 게 있다면요?

 

모든 시인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까요. 미래파 이후로 평단에서 근 몇 년 동안 소통과 난해함에 대한 담론들이 오갔는데, 저는 시라는 다양성을 이해한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봐요.
음악에 빗대어 보자면 많은 대중들이 사랑하는 음악이 있는 것이고 소수의 마니아들이 사랑하는 음악이 있어요. 록과 헤비메탈은 다수의 대중들보다는 소수의 대중들이 늘 좋아해 왔죠. 트로트나 발라드는 전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르이고요. 시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소수의 마니아들이 즐겨 읽는 시가 있어요. 낯선 언어 운용이나 기존의 시관으로는 전혀 해석이 되지 않는 그런 시들을 오히려 더 즐겁게 읽는 소수의 독자들이 있는 거죠. 따뜻한 서정시는 많은 독자들이 읽고 호응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독특한 개성을 가진 시인들이 대중들에게 더 읽히기 위해서 시를 쓸 수는 없죠. 그렇게 되면 자기 예술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잖아요. 자신이 가장 가고 싶은 시의 길을 가다보면 독자들과의 행복한 만남은 언제든 이루어진다고 봐요.

 

- 저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시, 난해시, 해석이 안 되는 시, 이런 모든 시조차도 문예사조에 기여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요. 시마다 다 운명이 있는 거죠. 시마다 개별적으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지만, 이해 못하는 사람이 당연히 있죠. 모든 사람이 어떻게 다 이해를 해요. 그런 부분들 때문에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시인들의 창작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지 않나 싶어요. 오히려 일반 대중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오만한 태도죠. 대중들은 늘 현명하게 변화합니다. 대중의 눈치를 보는 시는 대중에게 가장 먼저 들킬 겁니다.

 

- 지금까지 말씀해 오신 시의 색깔이라고 할까 지금 상황으로서는 계속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네. 계속 가야죠. 제가 바라보는 시적 세계관이 한국 시단에서는 관심이 적은 부분이라고 봐요. 저는 그런 세계가 몸에 맞아요. 하지만 다양하고 새로운 시의 방법론을 통한 변화가 담보되어야겠죠. 개인적으로는 시집의 권수보다 의미있는 시집을 내고 싶습니다.

 

- 혹시 본받고 싶은 시인이 있습니까? 생존시인이든 작고시인이든. 아니면 주목할 만한 시인이라도?

 

그것은 말하기가 곤란하네요.(웃음)

 

- 이런 것일 수도 있나요? 시는 좋은데 실제 행동거지를 보고 너무 실망을 한 거요.

 

그런 경우도 있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시인들은 다 괜찮은 사람들이에요. 시인들은 워낙 자기세계가 뚜렷하고, 그만큼 욕망이 강해요. 어떠한 세속적인 부를 갖다 주는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작품에 대한 욕망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좋은 작품에 대한 욕망은 순수한 욕망인데, 그 욕망이 술자리에서 세속적인 형태로 보일 때는 싫어지죠. 하지만 이 사람들이 아니면 누구한테 내 시를 이야기하고 고민을 하겠어요. 시를 버리지 않는 이상, 평생 보고 지낼 사람들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애증의 관계이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시인들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 <재킷을 입은 시인>이라는 시도 있지만 시인이 가져야 할 영혼의 옷, 시인이 입어야 할 옷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너무 피상적이지만 질문이 됐지만)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왜냐면 자칫하다간 상당히 계몽적인 얘기가 될까 봐서. 시인의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럽네요.
시인마다 다른 개성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아주 소수가 가진 개성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죠. 비평가도 마찬가지이고요. 비슷한 옷을 유행처럼 입고 다니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만 바라보며 거기에 대한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것도 문제죠. 촌스럽고 남들이 입고 다니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니는 시인들도 바라봐야 하겠고요. 시인들은 자신의 시에 대해 당당해야 합니다.

 

- 페루나 중국 황하에 가보셨어요?

 

못 가봤어요. 못 가보고 상상으로 쓴 거죠. 그동안 정보로만 알던 곳에 대한 상상. 그리고 너무 큰 자연을 보면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자연에 압도될 것 같아요.

 

- 2부에 있는 <대황하> 연작에서 그려지는 물은 기존의 물에 대한 상상력을 초월한 것 같아요. 이 물은 생명을 잉태하는 물이 아닌, 파괴되고/하고, 시체가 즐비하고, 무언가를 더럽히는 물이란 느낌이 강해요. <대황하> 연작 앞에 놓인 <물에 대한 사소한 변론>에서 이미 <대황하> 연작의 물이 일반적 속성의 물이 아니라고 언명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대황하>의 물은 수평적으로 흐르는 물이 아니라, 수직으로 떨어지고 침잠하는 물이란 느낌이 강해요. 넓게 퍼지는 물이 아닌 더 깊은 곳으로 곤두박질치는 물과 같은 느낌 말이죠. <대황하> 연작을 쓸 때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썼는지 궁금해요.

 

대황하 끝 시편에 물길이 솟구친다고 표현했는데, 물은 아래로 흐르는 게 속성이잖아요. 이유 없이 물길이 솟구칠 수는 없죠. 어떤 압력에 의해서든지 물길이 솟구치는 것은 이유가 있는 거죠. 또 황토물이라도 우리는 그 물을 마시고 살아야 해요. 그 물이 생명을 주고 문명을 이루고 어떻게든 사람에게 정서를 주고 그 속에서 구원자를 만납니다. 더럽지만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물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물에 대한 상상력이 워낙 흔한 거잖아요. 흔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물이 아닌 누런 물길을 상상한 거예요. 대황하는 문명을 이루는 거대한 물줄기인데, 이 줄기를 통해 내면을 표출해보고 싶었죠. 사람들이 대황하를 엿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 태아 때의 양수를 언급하시는 것 같아요.

 

네. 몇 년 전 친한 대학 동창이 하늘나라로 갔던 일이 떠오릅니다. 친하게 지냈던 몇 동창 중 한 명이었어요. 갑자기 독감으로 병원에 들어갔다가 뇌사상태가 되어 이승을 등졌죠. 그 친구 뼛가루를 인천 바다에 뿌려주었는데, 그 이야기가 대황하 4편에 나와요. 그날 비가 왔거든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바닷가에 뼛가루를 뿌리면서 물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이 가장 먼저 만나고 많이 만나는 물질이 물이잖아요. 양수에서부터 물의 질감을 느끼잖아요.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란 말도 생각났고요. 물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친구의 죽음도 쉽게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물에 대한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 2부 마지막 시 <북극의 진화>에서 “거칠게 울고 우는 소리만 가득하다./ 인간의 소리만 가득하다./ 모든 것이 까마득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대황하> 연작의 물들이 가진 황량함과 소멸에 대한 느낌을 정의내리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런 시선은 1부에서 그려낸 생활이 이루어지는 도시의 속성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도시와 황하, 이 둘 사이의 연계점들이 보였습니다.

 

마지막 시에는 “소멸이 내 먹는 밥이다”라고 했죠. 해설을 쓴 조강석 선생님이 ‘소멸의 총아’란 말도 썼고, 키에르케고르랑 이재훈을 ‘VS’로 대결시킨 사건이 되기도 했죠. 시를 쓸 당시엔 도시가 육체적 거소라 한다면, 황하는 정신의 거소라고 생각했어요. 규정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소멸은 꼭 말하고 싶었던 거죠. 결국 소멸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말이죠. 소멸이 창조의 에너지를 낸다는 걸, 몰래 말하고 싶었을까요.

 

- 첫 시집이나 두 번째 시집에 존재, 실존에 대한 시들이 유독 많아요. 존재하는 것, 존재 되어지는 것, 구원을 말하는 것은 곧 그것을 잉태한 시원에 가 닿고자하는 몸부림이죠. 그런데 이는 시인이 평생 풀어가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문제를 시의 중심 테마로 선정해 작업해 나아갈 때는 자연스레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에 변화의 지점이 생길 것 같아요. 형 나름대로의 존재의 시원에 가 닿고자하는 것, 혹 구원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무엇일까요?

 

아마 평생 가져가야 할 화두겠죠. 시 쓰는 자아의 삶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관심사가 변하면 다른 형태로 드러나겠지만. 첫 시집이 탐구의 방향을 선언적으로 보여준 시집이었다면, 두 번째는 이런 바탕 속에서 시인의 내면이 등사기처럼 비춰졌던 거고요. 세 번째는 다른 방식으로 이러 질문들이 내면화돼서 표출이 되겠죠. 제가 구원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면, 벌써 새로운 종교의 교주가 됐겠죠. (웃음)

 

- 선생님이 엄살을 많이 피웠다고 말씀하셨는데 <비비디 바비디 부>에서 ‘블랙데이’, ‘피’ 나중에는 ‘이탈자’, ‘탈락자’ 이런 말로 엄살을 피우지만 결국은 선생님은 살아남은 자, 큰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성공한자가 아닌가.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웃음)

 

- 저는 남들 경쟁할 때 멀리서 보면서 저러고들 있네 해요.(웃음)

 

그런 생각은 안 해봤고, 저는 경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자죠.

 

- 그거는 한수 위라는 거네요.

 

참여하지 않으면 이탈된 사람이거든요. 시에는 그런 자아가 나오죠. 참여를 해서 어떻게든지 뭘 얻어야만 뭔가 남는 자들보다 나은 자가 되는 건데요. 거기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이탈자 시선이 있죠. 소외되고 이탈된 자이긴 하지만 멋있고 싶었던 거죠. 사실 제가 철이 없어요. 참여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멋있게 보고 싶었고, 참여하지 않는 자의 엄살을 멋있게 떨고 싶었겠죠. 자책하거나 열등의식에 휩싸이는 모습을 내가 스스로 버렸다는 것. 그런 자아가 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거 같아요.

 

- 경쟁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감이 큰 거죠. 자신감이 없다면 참가하지 않는 것도 실천의 한 방법인데, 자신감이 없다면 그런 실천이 나오지 못했겠죠.

 

그런 건가요? 자신감인지는 몰라도 경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요.(웃음)

 

- <재킷을 입은 시인>은 작가의 어머니의 아련한 모습이 떠올랐어요. 쉽게 읽혀지면서도 내면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더군요. 아픔이 묻어났어요. 어머니는 어떤 분이세요?

 

저는 아직도 엄마라고 불러요.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왜 엄마에 대한 시는 한 편도 없냐고요. 엄마에 대한 시도 좀 써봐라.(웃음) 그런데 쉽지 않아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대상은 너무 어렵죠. <재킷을 입은 시인>은 엄마의 살로 베를 짜서 재킷을 만들어 입는 상상, 내가 엄마의 살로 만든 옷을 입고 다니며 시를 쓰고 다닌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아베 고보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잡은 작품이에요.

 

- 아베 고보가 유명한가요?

 

상당히 알려진 작가죠. 아베 고보의 알려진 작품이 많은데 <시인의 생애>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짧은 단편입니다.

 

- 어머니도 이재훈 시인처럼 조용하신 성품이세요?

 

조용하지 않죠. 여느 아줌마들처럼.(웃음) 지금은 행복하신 것 같아요.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젊었을 적에는 상당히 수줍음 많은 소녀였다가, 점점 나이 들면서 거칠어진 한국적 여인상이랄까. 따뜻한 부분도 있지만,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하시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시죠.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항상 그렇게 살아오셨어요.

 

- 어느 자리에서 이반 일리치(Ivan Illich) 말을 인용하시며 시인이 이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한 요소 중의 하나로 말씀하셨는데요.

 

계몽적으로 인용하기 좋은 말이에요. ‘이반 일리치’가 인류를 구원할 세 가지가 자전거, 도서관, 시인이래요. 왜냐면 시를 읽으면 아무래도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지잖아요. 우리가 시를 낭송하는 사람일 때, 그 자아는 가장 순수한 자아거든요. 시를 읽으면서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김현의 <한국문학의 위상>이라는 책을 보면 문학은 출세하지도 큰돈이 되지도 못하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고 했죠. 그것으로 문학이 억압하는 것의 정체를 밝힐 수 있다고요. 시가 바로 그 중심에 있겠죠. <포엠포엠>

 

_ <포엠포엠>, 2012년 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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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까요? 3월 28일

<명왕성 되다>의 저자 이재훈 편을

오디오로 중계합니다.

 

수요북콘 7회 제1편(00:00:00~00:13:27)

 

수요북콘 7회 제2편(00:13:27~00:28:18)

 

수요북콘 7회 제3편(00:28:18~00:42:02)

 

수요북콘 7회 제4편(00:42:02~00:56:02)

 

수요북콘 7회 제5편(00:56:02~01:07:35)

 

수요북콘 7회 제6편(01:07:35~01:18:34)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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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질문을 받은 후 이어진 낭독의 시간입니다.

 

 

초대 손님들이 올라오시기 전 이재훈 시인과 진행자 신혜정 시인의 낭독이 있었기에,

허연, 김태형, 오은 시인 순서로 낭독이 이어졌습니다.

좋더군요! 와우.

 










그렇게 객석에도 시의 기운이 감전되고...



행사 후 이어진 사인회 겸 포토타임~

수요북콘의 트레이드 마크 빨간 장미를 한 송이씩 선물하고~!





그리고 여기저기 있는 시인들에게 사인 받으랴 사진찍으랴 바쁩니다.


 

 

 

 

정말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시인들이 이렇게 대거 모이다니요~!

놀랍습니다. 그리고 오신 분들도 놀랍고 고맙습니다.

시인에 대한, 시에 대한 사랑이 아직까지 이렇게 뜨겁다는 것에 감동한 밤입니다.

 


진행자와 초대손님의 기념촬영 촬콱~!




민음사 장은수 편집대표님과 허양희 시인과도 한 컷~

 


 

무슨 이미지 사진 같군요. 사진 같군요. 흐흣.

 

마무리 촬.칵.

 

이렇게 제7회 수요북콘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오신 분들께 감사, 모여주신 시인들께 감사, 객석에서 함께해주신 이영주, 김종훈, 강정, 허양희, 신동옥... (아 이름을 제가 놓쳤다면 용서해주세요.~) 시인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저희 수요북콘은 앞으로도 책과 저자의 향기가 향긋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계속해서 관심 갖고 지켜봐주세요.

수요북콘의 행진은 다음주에도 계속됩니다.!

 

 

끝-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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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수요북콘은 '나는 시인이다' 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재훈 시인과 가깝게 지내는 시인 세 분을 모셨지요.

 

우측부터

신혜정, 이재훈, 허연, 김태형, 오은 시인입니다.

 

 


 

이런 자리에 관객으로도, 게스트로도, 주인공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처음 나와봤다는 허연 시인.

이재훈 시인의 전화 한 통에 바로 수락하셨다고 합니다. 와웃!


 


날카로움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모두 갖추신 분 같았어요!

 

허연 시인은...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추계예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게이오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로 재직하고 있으며, 중앙대학교와 한국사이버대학교에서 미디어 문장론과 시 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불온한 검은 피》, 산문집 《고전 탐닉》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 등이 있다.

 

 

 

말씀을 어찌나 차분하고, 진지하게 하시는지 오신 분들이 김태형 시인의 말에 고개를 계속 끄덕이셨어요.!

 

김태형 시인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2년 『현대시세계』에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로큰롤 헤븐>, <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 <코끼리 주파수>가 있다.

 

 

 



언어유희가 가득한 시집으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신 오은 시인...

오, 시와 시인이 닮았냐는 물음에 재치 센스 만점 입담으로 관객들께 웃음을 선사했지요~

 

오은 시인은...

2002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다. 2012년 현재 작란作亂 동인으로 활동중이다. 2012년, 미술 산문집 <너랑 나랑 노랑>을 출간하였다.

 

참, 이제 막 출간된 따끈한 미술 산문집 <너랑 나랑 노랑>에도 관심 가져주세요. ><





시에 대한 진지한 질문들이 이어집니다.

 

이재훈 시인에게 누구와 가장 친하냐고 물었더니 모두 자기라고 답하시네요. :-)



그리고 시에대한 진지한 물음들이 오갔어요.

 

시가 처음 찾아왔던 그 때의 느낌 말예요.

 

이재훈 : 정말 모든 게 다 시였고, 지나가면 시가 나왔어요.

허연 : 좋은 시 한 편을 써 놓으면 하루종일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안고팠지요...

김태형 : 생각하는 시간이 중요해요. 시를 쓰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문자메시지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줄여보세요~

오은 : 형이 제가 끄적인 걸 문예지들에 응모했는데, 어느날 전화가 왔어요. '등단하셨습니다...' 등단이 뭐죠? 제가 그 때 술이 안 깼거든요. (흣. 이런 귀엽고, 천재 같은 일화가!)




그렇게 '나는 시인이다'의 대화가 이어지고,

 

객석에는 여기저기 숨어 있는(?) 시인들과,

이화여대 이화문학회, 반도문학회 학생들이 화기애애 함께 웃고 박수쳐주셨지요.

 

그리고 곽객들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시적인 것부터 사적인 것까지...^^ 






 

 

열심히 답해주시는 시인들.






- 다음편에 계속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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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에 시작한 수요북콘이 어느덧 7회 행사를 치렀습니다.

제7회 수요일의 정기 북콘서트 '수요북콘'의 주인공은 2012 시인협회 주관 시인상에서 젊은시인상을 수상한 이재훈 시인입니다.  

3월 24일 막 시상식을 마치고 온 시인과,

그의 친구들(?)

'나는 시인이다' 편을 열 준비가 한창입니다.

 

북스리브로 홍대점에 이렇게 매대를 준비해 놓고,,,

시집 단독으로 책을 진열하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는데, 매우 새로운 느낌이 드네요. ^^

 


 

아아, 마이크 테스트... 오늘의 행사 전반 음향과 무대 조명을 점검중입니다.



 

카메라는 잘 돌아가고 있나요? (그렇다고 합니다.^^ )

 

관객들이 막 들어오고 있네요.

 

이제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손님들을 맞고 오프닝 낭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화여대에서 온 반도문학회 학생들.. 파릇파릇 생기가 돕니다.

시를 쓰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눈망울을 반짝반짝..




오늘의 주인공 이재훈 시인을 무대로 모셨습니다.

 

 

 

진지하게 관객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명왕성 되다... 무슨 뜻인가요?

지구의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의 아홉번째 행성인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소행성 134340으로 다시 명명되었죠..

명황성 pluto를 이용해 미국에서는 be plutoed... 라는 수동태로 부르면서,

명왕성 되다.. (나 완전히 x됐어.. 같은?^^) 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2006년 미국 방언협회에서 선정한 그 해의 방언에 be plutoed가 선정되었죠.

명왕성 되다.

아, 소외된 현대인의 고독이 느껴지지 않나요?

시인은 이 말을 캐치해서 끊임없이 도는 서울 순환선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철컥철컥 계기판 없이 흐르는 그 시간을 시로 형상화 했죠.

 

그게 바로 이 시집의 표제작 <명왕성 되다>입니다.

 

 


열심히 설명하는 이재훈 시인.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뱉어 낸다. 눈 밑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 잊혀진 얼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풍경은 서서히 물드는 것. 그리운 얼굴이 푸른 멍으로 잠시 물들다 노란 불꽃으로 사라진다. 나는 단조의 노래를 듣는다.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 소리. 단추 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 내 입술과 몸에도 푸른 멍 자국이 핀다. 아무리 하품을 해도 피로하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모두 신성한 모험이었다는 거짓된 소문들. 내 속의 거대한 허무로 걸어 들어갈 자신이 없다. 지하철 2호선의 문이 활짝 열린다. ― 명왕성 되다 전문 


 

계속 시와 시 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오늘의 깜짝 무대는 진행을 맡은 신혜정 시인이 준비해주셨습니다.

 

이재훈 시인과 오래전부터 절친! 사이라고 하네요.




무대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김건모의 <서울의 달>을 열창해 주셨습니다.

 

후후, 노래 끝나고 무척 쑥스러워 하셨습니다. ^^

 

 

- 2편에서 계속 -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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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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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詩콘서트 2011년. 9. 4일. 제1회 방송

http://home.ebs.co.kr/poem/index.html
다시듣기 1회 | 50분부터 낭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DJ : 김태용 감독 | 작품선정 : 김소연 시인.


김태용 감독의 낭송 <명왕성 되다>

멘트 : 이재훈 시인의 <명왕성 되다>를 들으셨습니다. 끝도 없이 순환하는 지하철 2호선을 탄 채로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도시인의 비애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궤도 안에 있다고 해서 항상 안전한 것만은 아닙니다.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한 명왕성의 운명처럼 소외되서 이탈되고야마는 도시인의 비극이 <명왕성 되다>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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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5회 이재훈 시인
l  2011.09.05   
- 초대손님 : 이재훈 -

주소 : http://www.munjang.or.kr/mai_radio/past/content.asp?pKind=01&pID=280

제255회
 
초대작가 : 이재훈(시인)
 
  
 
 

오프닝
음악 1 : Mike Park - Train Maps
문장의 힘 : 무코다 구니코 - <영장류 인간과 동물도감>
◆ 음악 2 : Cusco - Apurimac
작가의 방 : 이재훈 시인
문장의 소리 로고송 - <라디오, 라디오>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PD수첩
음악 3 : Sandie Shaw - <Hand In Glove>
클로징 포엠 : 이재훈, 「연금술사의 꿈」
음악 4 : Unkle - Two Hours Traffic- Just Listen
 
 
작가소개

이재훈(시인)

1972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명왕성 되다』가 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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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 대담

 

빌딩나무 숲을 거니는 비교秘敎의 사제

 

이재훈 ․ 신동옥

 

 


신동옥 : 형과 대담을 하다니! 오늘 나의 주제는 ‘형을 이해하기 위하여’다.(웃음) 최근에 대담집(이재훈, <나는 시인이다>, 팬덤북스, 2011)을 냈다. 형이 인터뷰를 진행한 십여 년, 그 오랜 행간을 좇다가 문득 이건 농축된 이재훈 스스로의 질의응답이 아닐까 여겨지기까지 하더라. 돌아가신 김춘수, 오규원, 박찬 시인과의 인터뷰를 읽고는 뭉클하기도 했다. 대담집 소개 말씀, 더불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 자리에서 들려 달라.

이재훈 : 오랜 문우인 신동옥 시인과 대담을 나누게 되어 더없이 기쁘다. 우리가 만난 지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우리가 독고다이, 언더 스타일이 서로 맞아 이렇게 오래 가는 건가?(웃음) 각설하고,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는 내게 십여 년의 세월이 집적된 문학 일기처럼 느껴진다. 이 대담집은 시인들이 직접 육성으로 풀어놓는 시에 대한 비밀을 알 수 있는 책이다. 각 시인들의 시관詩觀, 창작의 비밀, 창작배경, 성장과정, 문청시절,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문학적 삶 등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시인론을 쓰는 많은 평자들이 내 대담을 귀동냥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인의 창작배경이나 시적 의도가 큰 참고가 될 테니까. 또한 원로, 중견, 시의 성향, 계파를 가릴 것 없이 많은 수의 시인들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너무나 많다. 시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한 가지씩의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나는 서면 인터뷰보다는 거의 현장 녹음을 하고 녹취를 푸는 식으로 했다. 당연 품이 많이 든다. 그만큼, 재미난 일화도 많다. 개인적으로 이미 작고하신 김춘수, 오규원, 박찬 선생 같은 시인들을 대담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김춘수 선생은 김수영이 평생의 라이벌이었다는 얘기와 국회의원을 역임하셨던 사연 등이 기억에 남는다. 오규원 선생과의 대담은 경기도 양평의 서후리라는 동네에서 요양하고 계실 때 했다. 이메일로 대담을 주고받았는데, 대담을 시작한 2004년 여름은 지독히 더웠다.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대담의 진행과정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박찬 선생은 연세에 비해 좀 일찍 작고하셔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대담 당시 일산에 살고 계셨는데, 비가 많이 내렸던 날이다. 직접 차를 몰고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대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에피소드를 이 자리에서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또다른 자리에서 말할 기회가 있겠지. 궁금한 독자 분들은 우선 <나는 시인이다>를 참조하면 될 듯하다.

신동옥 : “1972년 강원도 영월 태생”이라고 약력에 썼다. 그런데 성인이 되기까지 강원도, 경상북도, 충청도까지 이사가 잦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린 시절 겪었다는 폭설에 대한 기억이나, 스무 살의 서울 체험에 대한 기억은 내게 이채롭게 들렸는데.) 자아가 형성되는 예민한 시기에서 막 사회화되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잦은 이사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이재훈 : 태어난 곳이 영월이지만, 영월을 고향이라고 말하기엔 내게 고향이 너무 많다. 어쩌면 고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초등학교 때까지의 유년시절은 강원도 일대에서, 중고교 시절은 경북 일대에서, 고교부터 지금까지는 충남 논산이 내가 겪은 공간들이다. 이 지역들은 모두 내 고향이나 다름없다. 그 땅의 산하들이 나를 키웠으니까. 그렇게 어린 시절을 늘 떠돌았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 이전 살던 곳을 그리워했고. 적응이 될 만하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다. 나는 늘 친구들에게 떠나는 사람이었고, 먼 곳에서 편지를 쓰는 사람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연락이 끊기는 사람인 거지. 말이 없었고, 혼자 많이 놀았고, 누군가 먼저 다가와야만 겨우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신 시인께 언젠가 얘기했던 폭설에 대한 기억은 강원도 인제의 깊은 골짝에 살 때였다. 정확히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그 동네는 여름과 겨울밖에 없었다. 9월이면 김장을 시작했고, 너무나 추운 동네였다. 심지어 내가 키우던 강아지가 얼어 죽었을 정도였으니까. 눈이 엄청 많이 내렸다. 군인들이 눈을 치워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동네였다. 눈이 많이 왔던 날은 방문을 여니 마루 위까지 쌓였던 적도 있었다. 허리 깊이까지 눈이 내려 갇혔던 기억. 대체로 아이들은 동굴을 만들어 놀았다.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산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재미난 추억들이 많다.
   어릴 때부터 공간에 대한 집착은 없었던 거 같다. 떠나면 슬퍼진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던 것은 아닐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쿨하게 떠났던 거 같다. 오히려 남아 있는 사람들이 더 눈물바람이었고. 나는 이사를 가면 늘 타던 커다란 트럭이 기억에 남는다. 정확하게는 트럭 뒷좌석의 다락방 같은 공간. 이삿짐을 싣던 트럭은 운전석 뒤에 한 사람이 누워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동생 둘과 함께 덜컹거리며, 평소에 먹지 못했던 맛난 과자를 먹으며 정말 오래도록 차를 타고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디로 가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거 같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걸 보면. 이사를 안가겠다고 떼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대충 어디 먼 곳으로 가는구나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사를 간다는 얘기를 들으면, 또 트럭의 뒷좌석에 탈 수 있겠구나 하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철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인지 뿌리의식이 없고, 정처 없는 유랑의식이 날 지배했다. 나중에 어디 조용한 데로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가끔씩 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는 내게 중요치 않다. 내가 가는 그곳이 또 다른 내 고향이 될 테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어떤 공간인지가 중요하다. 조용한 다락방 같은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신동옥 : 그래서 그런지 형의 작품에는 공간 내지는 공간성에 대한 예민한 촉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의 경우 그 공간은 첫째 도시와 일상의 공간, 둘째 신성의 거소, 셋째 비밀한 시원始原이 기루어지는 자리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개별 작품들 안에서 시적 공간을 배치하는 스킬이 놀랍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시인으로서 형의 특장이 아닌가 싶은데.

이재훈 : 시를 쓰면서 시적 공간의 배치를 크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대부분 자연스럽게 한 편의 시속에서 스스로 운용되어진 것 같다. 시적 공간들이 떠오르고 이동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둔 것이지. 그래서 시속의 자아가 많이 날아다닌다.(웃음) 시공간이 광활하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하는데. 이런 부분은 평소 상상하던 버릇 때문일 것이다. 늘 이곳 현실보다는 현실 너머를 많이 생각하고, 상상했다. 예를 들면, 우주로 날아가 외계인을 만나 놀거나, 내가 칠십 넘은 노인이 되어 새로운 사랑을 한다거나 하는 식의 상상들. 사실보다, 기적 같은 사실이 더 매력 있지 않나. 현실보다 믿을 수 없는 현실 혹은 믿고 싶은 현실에 더 강한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 상상들이 현실에 발 디디고 사는 시인의 모습에 투영되어 나온다.
   또한 성인이 될 때까지 잦은 이주와 이별 등의 시간이 유목적 감각을 낳았던 것 같다. 유목적 감각이 묵시적 꿈들이나 환상, 욕망 등과 뒤섞여 내 시적세계를 이룬 것은 아닐까. 신성의 공간이나 시원 등을 탐구하는 시적 세계는 신화나 종교, 고고학 등을 좋아하는 독서습관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관심은 지속될 것이지만, 좀 외롭겠지. 좀 낯선 것일 수 있으니까.


신동옥 : 낭만주의자라는 평가가 있다.(박수연, 「내면적 낭만의 순간」, <현대시>, 2005년 12월호) 첫 시집 시인의 말에는 이렇게 썼는데. “인간에게는 누구나 시원始原의 원대한 물음이 있다. 가령 밤하늘의 별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다소 낭만적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흠의 고백」,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시인의 말 중에서)

이재훈 : 과장된 표현으로 읽혀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겐 정말 절실했다. “밤하늘의 별을 본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썼지만, 내 존재 이전의 먼 곳을 진지하게 응시하는 일은 내겐 중요한 행위였다. 그런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나를 여러 번 죽였다. 운명이란 것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이재훈이란 인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는, 운명적으로 이렇게 타고나서 생긴 거다. 남자이고, 이런 부모와, 이런 종교와, 이런 생김새와, 이런 교육과, 이런 공간들 모두.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은 몇 개밖에 없더라.
   존재탐구나 고행, 미지의 동경 등은 오래도록 나를 치기어린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아직도 미완인 걸. 계속 치기어린 사람으로 살아야겠지. 낭만주의자. 멋있지 않나. 끝까지 낭만주의자로 남고 싶다.

신동옥 : 첫 시집 해설에서 유성호 선생은 형의 시세계에서 종교적인 맥락을 소상히 밝힌다. 김유중 선생의 통찰(「그노시스를 향한 열망」, <시와생명>, 2002년 겨울)과 형 스스로의 고백적 아포리아(「숭고한 그노시스와 연금술사」, <시와반시>, 2007 겨울)도 있었다. 모태신앙이지 않나? 형의 기독교적인 상상력은 묵시록적인 비전보다는, 일종의 영지주의靈智主義(Gnosticism)랄까 그런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것 같다. 이런 성향은 첫 시집에서 두 번째 시집으로 건너오는 동안 더 강해진 것 같고. 형 시에서 종교적인 채색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재훈 : 종교적 메타포나 질료가 시속에 그렇게 많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내가 생각지 않았는데 언어 속에 들어와 있더라.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니까 그런 부분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까지는 집과 교회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 아주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신앙생활에 대한 다짐과 계획 등으로 모든 삶의 울타리가 쳐졌던 때였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자취를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또 이사 가신 거지. <데미안>에 등장하는 싱클레어의 삶이 시작된 거다. 사춘기가 늦게 와서, 전학을 가지 않겠다고 반항을 했다. 그렇게 혼자 떨어져 지냈는데. 문득, 이 모든 주어진 삶의 굴레에서 이탈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격렬하게 몰려왔다. 그리곤 신앙생활과는 동떨어진 난삽한 생활들을 했다. 그때는 신앙생활 이외의 모든 것들은 난삽한 죄의 생활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아무튼, 정통 기독교 외의 것들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에큐메니칼, 해방신학, 중세 비교도, 그노시즘 등등. 기독교의 고집스런 구원관에 대한 회의도 있었고. 그 후로, 성聖과 속俗을 오고가는 철새 신자로 살았다.

신동옥 : 그렇다면, 형을 ‘연금술사’ 내지는 ‘그노시스트Gnosist’라고 불러도 되겠다.

이재훈 : 그렇기도 하다. 그노시스트지. 믿음보다는 앎에 더 관심이 있으니. 하지만 나는 이신론자라기보다는 크리스천이 돼야 한다.

신동옥 : 시에서 상징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다! 첫 번째 시집의 ‘황홀한’ 시리즈와 두 번째 시집의 ‘대황하’ 연작은 이런 생각을 단박에 증명하는 역작이다. 시적 상징에 대한 형 나름의 정의 같은 것이 있을 텐데. 참, 대담이 활자화될 쯤 두 번째 시집이 나올 수도 있겠다. 제목은 어떻게 정하셨는지?

이재훈 : 과찬이다. 한 편의 시에서 전달할 수 있는 상징은 미약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작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상징은 여러 편의 시 속에서 반복적으로, 혹은 다양한 변주로 전달되어야만 힘을 갖는다고 본다. 특히 ‘대황하’ 연작은 물에 대한 상징을 제대로 밀고 가본 경우인데, 앞으로도 이러한 스타일의 연작들을 생각 중이다. ‘대황하’ 연작은 우연히 시상이 다가왔다. 이십대 초반 시절 쿠스코Cusco라는 밴드의 「대황하」라는 곡을 지겹게 들었던 때가 있었다. 한 평도 안 되는 고시원에 누워 이어폰으로 그 곡을 들으며, 거대한 황토물의 휘몰아침을 생각하면서 삶을 견디던 때였다. 오래전 그때의 감성이 정말 섬세하게 다가오더라. 내겐 행운인 거지. 두 번째 시집은 아직이다. 해설도 아직 안 나왔고. 때가 되면 나오겠지. 제목도 아직 미정이고.

신동옥 : 두 번째 시집, 기쁘게 기다리겠다.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쓸쓸한 날의 기록」)라고 말했다. 이때의 ‘서정시’, ‘서정시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재훈의 정의를 듣고 싶다. 그거 아는가? 가끔 형이 “나는 실패한 서정시인이지”라고 말할 때나 “나 같은 삼류시인이 무얼”라고 할 때면, 콱 때려주고 싶을 때도 있다는 거.(웃음)

이재훈 : 편하게 읽으면 되지 무얼. 그 시는 정재학 시인과 내 자취방에서 밤새며 나누었던 얘기들을 시화한 것이다. 그래서 부제를 ‘정재학에게’ 라고 붙였다. 감수성 살아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건데. 그런 면에서 모든 시들은 다 서정시이다. 왜 서정시라 칭하는 것들만 올곧은 정서와 예민한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얘기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론에서 흔히 말하는 ‘서정시’에 대한 개념도 새롭게 정립해야 될 시점이지 않을까.
    가끔 입버릇처럼 말하는 ‘자기부정’은 날 채찍질하기 위해서다. 자기비하, 자기부정 등을 통해 최소한 내가 그런 시인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최고의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때가 간혹 있는데, 그 순간 아찔하다. 너무 천박하고 유치한 생각이지 않나. 그 생각을 덜기 위해 끝없는 자기부정을 하는 것이다. 자기부정만이 살 길이다.

신동옥 : 동감同感, 상련相戀이다. 첫 번째 시집의 세계가 노래 특히나 영가靈歌의 세계였다면, 두 번째 시집의 가장 특징적인 무늬는 ‘침묵’과 ‘고요’의 깊고 너른 울림이 아닌가 싶다.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이재훈 : 그렇게 읽히는가. 아마도 침묵과 고요의 시간들을 얻고 싶어서겠지. 요즘 도통 침묵과 고요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수다스러워졌고, 주위는 산만하고 시끄러워졌다. 유폐의 공간과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 열망이 시에 드러나지 않았을까. 또한 첫 번째 시집이 하늘 위에서 부르는 노래였다면, 두 번째 시집은 하늘과 땅의 중간쯤에서 부른 노래이지 않을까. 아마 세 번째 시집은 좀 더 땅으로 내려와 부르는 노래가 될 것이다.

신동옥 : 「新林洞」, 「매일 출근하는 폐인」, 「비비디 바비디 부」, 「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 등등 두 번째 시집에서는 일상의 공간에 대한 재해석이 눈에 띈다. 그 공간을 성찰하는 눈이 깊고 차분해졌고. 청년과 장년, 미혼과 기혼의 차이인가? 시인 이재훈에게 생활인 이재훈의 일상은 어떤 주제인가?

이재훈 : 두 번째 시집의 십여 편 정도는 내 일상 공간들이 시에 직접 드러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내게 새로운 탐구의 대상이다. 스무 살 때 처음, 서울을 와봤다. 물론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 영락교회에서 초청한 강원도 오지마을 어린이탐방단에 뽑혀 서울에 온 적이 있긴 하다. 그때 국회의사당과 KBS를 견학했었는데. 스무 살 때 본 서울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너무나 큰 한강과 책으로만 보던 63빌딩, 아파트, 수많은 차들. 시골에서 서울로 기차를 타고 올라오면 괜히 도시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멀리 서울의 빌딩 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땐 알싸한 도시의 매연도 좋았으니까.
   이런 서울이 지금은 부정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숨이 막히고, 날 옥죄는 공간으로. 하지만 어쨌든 내가 발 디디고 살아가야 할 공간이지 않나. 아마 서울에서 인간처럼 살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통과제의일 것이다. 시에서는 몽상하는 산책자로 남고 싶다. 도시 속의 은둔자로 살아가고픈 욕망 때문이다. 욕망의 서울 속에서 겨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러한 도시성찰이라도 있어야 하니까.
   청년이건 장년이건 별 생각이 없다. 결혼을 했으니, 그저 고맙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에 많은 게 담겨 있다. 가장으로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밥벌이를 해야 하고, 그런 일상들이 시속에 스며들지 않았겠나 생각한다.

신동옥 : 두 번째 시집 원고를 읽으면서, 소재나 착상의 범위가 더욱 넓고 풍요로워진 것을 보았다. 호흡과 리듬이 첫 번째 시집보다 더욱,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 시 속에서 이재훈은 젊음 쪽으로 역진逆進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재훈 : 정신연령이 낮아서일 거다. 그런 평가가 기분은 좋다. 젊음 쪽으로 역진이라니. 하하. 그런데 나이는 먹어가고 있지 않는가. 올해로 사십이다.(웃음) 두 번째 시집은 첫 번째 시집에 비해 좀 더 다양한 시편들을 묶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동옥 : 난 여전히 형이 사십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각설하고) 현재 월간 <현대시> 부주간이다. 국가대표 편집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텐데. 그만큼 성별과 연령, 시력詩歷을 불문하고 유연한 교우관계를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문학 현장에 있었는데, 그간 어떤 변화를 지켜봐 왔나? 시단이 달라진 점과 형 스스로가 달라진 점은 무얼까?

이재훈 : <현대시> 1999년 12월호부터 편집에 이름을 달고 일했다. 발행인 원구식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대학원 공부와 병행하며 일하기 시작했다. 그새 만 십년이 훌쩍 넘었다. <현대시>에 내 청춘과 삼십대를 고스란히 바쳤다. 억울한 건 없다. 좋아서 한 일이니. 나 같은 시인도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좋은 문학지를 만들기 위해 나름 바닥부터 고생했다. <현대시>는 한국 시단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대표적인 시전문지이다. 많은 시인들이 아끼는 잡지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또한 가장으로서의 내 생활을 걱정해주는 분들이 많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최근 시단의 변화는 젊은 편집진들로 세대교체가 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앞으로의 시단을 위해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또한 시단은 아직까지 다른 집단에 비해 권위적인 부분이 남아 있다. 자유로울 것 같지만 위계를 중요시한다. 그런데 젊은 세대의 시인들은 이런 부분을 견디지 못한다. 어른들이 뭘 시키거나 가르치려드는 게 싫은 거지. 또 윗세대들은 달라진 젊은 세대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선생 노릇 안하고, 권위적이지 않고 친구 같은 어른들이 젊은 시인들에게 인기가 좋지 않은가.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차이는 언제나 있어 왔던 것 같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랫세대들이 윗세대가 되면 또 이해하겠지. 원래 시인은 제각각 하나의 공화국 아닌가. 이형기 선생은 “시인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했다.
   유연한 교우관계는 따지고 보면 외롭다는 말과도 같다. 인간관계는 깊이가 중요하지 않나. 아무래도 시전문 월간지에 있다 보니 대부분의 시인들을 한 번씩은 보게 된다. 신동옥과 같은 시인이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깊고 청명한 고독 속으로 들어가는 길 위에 영혼의 동반자인 문우들이 있다는 게 고맙고 든든하다.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얼까. 잘 모르겠다. 내 꿈은 멋있게 늙는 것이다. 나잇값 못하고 추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지도.

신동옥 : 이재훈이라는 ‘첫정’ 선배가 있어 든든하다.(웃음) 형은 소문난 독서광이기도 한데. ‘이재훈이 꼽은 책 베스트 3’을 부탁한다면.

이재훈 : 소문났다니 무슨 말인가.(동옥 : 내가 소문냈다) 독서광은 신동옥 시인을 따라갈 자가 없는데. 옛날 말이다. 헌책방을 돌며 책을 모을 땐 좀 읽었었지. 지금은 많이 읽지 못한다. 책 베스트는 통과하자.

신동옥 : 마지막으로, 시인 이재훈으로서 생활인 이재훈으로서, 형 스스로에게 하는 당부와 다짐은 무언가? 이 자리에 명문화시켜서 남겨놓자.

이재훈 : 그러지 말자. 명문화라니. 명문화시켜 놓아도 내일이면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 시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의 생각들이 자주 바뀐다. 특히 삶의 무게에 어깨가 무거워지는 요즘은 더욱더. 결국 시인과 생활인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것을 알면서도, 두 마리 토끼를 쫓아가야만 하는 운명 아닌가. 다만 내 시에 등장하는 “나는 백 년의 무명을 견딜 것이다” 같은 철없는 폼은 계속 재고 싶다.

신동옥 : 그 다짐 함께 간직하겠다. 오랜 시간 고생 많으셨다.

이재훈 : 고맙다. 오늘이 기억날 것이다.

2002년 이즈음, ‘현대시동인상’ 시상식장이다. 머리는 삭발을 하고 붉은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는, 커단 화분에 앉아 호프를 먹었다. 대학로 비어할레 3층 화분 위에서 형과 첫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 돌아가고 술집 불이 꺼지고 보도블록에서 새벽 훈김이 올라오는데, 무슨 열병에 들떴는지 근처에 여관을 잡기로 한다. 함기석, 김태형, 김참, 정재학, 김언, 이재훈 형들 틈에 함께였다. 태형 형이 앞장섰다. 모두들 아스팔트 한 가운데로 스크럼을 짜듯 나란히 허청허청 느릿느릿 폴랑 폴랑 걸었다. 그러고는 서울대병원 뒤쪽 여인숙 2~3인실에 들었다. 재훈 형과 재학 형과 나는 카운터 밑으로 주인 몰래 기어들어간다. 염소 똥만한 방에 장정 일곱이 ‘빤쓰’만 덜렁 입고 앉아 할 말은 무에 그리도 많은지. 새벽 어스름 재훈 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가 막 뜨는 좁은 골목길로 재훈 형이 나서자 ‘빤스’만 입은 장정 몇이, 어디 먼 길 떠나는 사람 보내는 모양 술기운에 아득한 손을 오래 흔들고 섰던 거다. 재훈 형은 이 날의 멤버들을 일러 ‘첫정’이라고 부른다.
내가 형을 처음 만나고 함께 밤을 지새운 다음날, 형은 전농동 시립대 후문 ‘관방’에서 또 어디로 집을 옮긴 거다. 그리하여 내게 남은 형의 첫인상은, 해가 뜰 무렵 혼자 떠나는 사람, 무시로 집을 옮기는 사람, 좁은 어깨에 하늘같은 것을 잔뜩 얹은 사람, 그러고도 내처 흔들리며 걷는 사람…… 형이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 헤세가 쓴 ‘크눌프’ 같은 사람. 형이 어디서 어디로 방을 옮기고 서가를 옮기는 동안 내가 함께 한 셈이 된다. 형은 형대로 아우 녀석이 어디서 어디로 옮겨서 빌빌대는 내내 함께 한 셈이 된다. 세포가 자라고 커서 소멸하는 저 알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시공간 감각으로 그렇게 형은 ‘부동의 포에지’를 짊어지고 또 옮기며 사십 세에 이른 건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와 지난 십년 동안의 형을 돌이킨대도 형의 장난기 가득한 빙그레 웃음 한방이면 내사 와그르르 무너지고 마는 것. 그러니 내편에 실재하는 형이라는 품 넓은 웃음―실재의 포에지를 가만 가만 들여다보는 수밖에. 부디 이재훈이라는 그노시스엔 바닥없이 천공이 깊어라. 이재훈이라는 연금술사에게는 촉매 없이 치환이 자재하라. 기도를 더하며 함께 하는 것. 함께 할 수 있어 내내 고맙고 든든한 것.



신동옥 | 시인. 1977년 전남 고흥 출생. 2001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으로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가 있음.


_ <현대시> 2011년 6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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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령_ 시인





만난 지 몇 년인가. 어쩌다 만났는가. 생각해보네. 구체적 답을 요要하기란 옹색해지는 법, 허나 인색함 그 자체가 우리가 만났던 그때 우리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네. 왜 우리들은 만나더라도 대로의 환한 빛 뒤편, 허름한 구석으로 스며들어 만나곤 했을까. 싼 곳을 찾느라 그런다 했지만 그것보단 어쩌면 우리 마음의 옹색함 저편 후미진 곳에 도사리고 있는 음습한 살기를 드러내 놓는 것이 부담스러워서는 아니었을까. 자네의 말대로 ‘어떤 폐부의 한 골짜기를 기억’한다는 것이 결국 시라면, 그 기억을 우리는 서로 들켜야만 하는 옹색함을 만날 때마다 견뎌야 되지 않았겠는가. 환한 대로를 걷기에는 너무 불편한 몸인 ‘자존심’을 가지고 그때 자네는 그리고 우리는 “구원의 문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기 망설여지게 하는” 시를 말했었던가. 우리 사이에 놓여있던 술들은 외피에 불과한 것. “구원을 욕망하게 하는 에너지”가 되는 시를 통해서 오히려 ‘구원의 문’이 단단히 잠겨 있음을 거듭 확인하는 곤혹스러움이 우리들이 나누었던 술 안쪽에 도사린 살기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그때 자꾸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졌던 자네를 기억하며, 자네의 시집 후기의 말을 잡고 더듬어 생각해보니 그런 듯 하단 말이네.


이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텨왔다 그러나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뜨개질을 하신다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뜨고 계신다

- 「마루」

자네 촌사람 아닌가. 그러나 얼핏 보면 사람들은 자네를 서울사람으로 착각하기 쉬울 것이네. 물론 서울사람과 시골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라든지, 시골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또 무엇이냐 라든지의 성의 있는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내 말이 무모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내가 볼 때 자네를 서울사람으로 보기 쉬울 듯 허네. 대부분 옷을 조이기보다는 풀어 입되, 정갈하게 풀어 헤쳤으며, 풀어진 곳에 적절히 배치된 안경, 액세서리, 그리고 내 기억엔 언젠가 자네 귀에 반짝이던 귀걸이. 그러나 이런 말은 처음 잠시 잠깐의 인상기일 뿐. 좀더 깊이 보면 그것들이 어쩌면 부유의 흔적일 거라는 생각.  저 강원도 영월에서 시작해 논산을 거쳐 서울에 자리 잡기까지 여정의 흔적일 거라는,  그리고 시 전문 문예지 편집장으로서 자네가 만나야 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또한 부유하는 자들 아니겠는가. 그 만만치 않았을 여정을 자넨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티는” 자로 걸어 온 게 아니었겠는가. 그것이 옷을 풀어 헤쳤으되 산만하지 않은 감각적이되 진지한 자네의 풍모를 만든 게 아니었겠는가.

자 그럼 이쯤에서 내 말을 바꿔야겠네. 자넨 부유하는 자처럼 보이지만 좀더 자세히 보면 자네의 부유엔 중심이 도사리고 있다고. 이별의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는 믿음이,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 올 때 무릎을 꿇고” 어머니가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짜 올린 슬픔이, 그리고 그 힘으로 “어느새 푸른 피가 발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깊은 시간 속을, 자꾸만 걷”(「숲」)는 고집이 자네의 부유 속 중심이라고. 아니 이 말은 너무 내가 고집스럽게 말한 듯하니 다시 사족을 달겠네. 내가 보기엔 그런 것 같다고. 갈수록 무엇은 그렇다고 단언하기엔 내 스스로가 불안해져 가기에. 차라리 조금은 비겁하게 말하는 게 낫겠네.


말 위에서 견디는 삶

그곳엔 조용한 잠도 없었지

열두 밤이 지나자 황도십이궁의 한 모퉁이에

나는 떨어졌지


새벽녘 어머니가 내 머리칼을 만지고 있었지

나는 쭈글해진 어머니 배에 귀를 갖다댔지

말발굽 소리와 활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지

그 큰 어둠을 품고 어머니는 새벽 기도를 가셨지

나는 어머니가 믿는 神의 안부가 궁금해졌지

- 「사수자리」 부분

내가 자네를 처음 볼 때부터 자네의 눈빛은 멀리 있었지. 가끔 자네를 마주칠 때 자넨 아주 멀리서 온 듯한 혼곤한 눈빛이었지. 어디를 갔다 온 것인지. 무엇을 본 것인지. ‘밤이 되면 말을 타’고 달려 자네가 달려가려 한 곳이 어디였는지.

그렇군. ‘신의 안부가 궁금한 자’가 그것을 묻기 위해 ‘말 위에서 견디는 삶’을 사는 자 어찌 ‘조용한 잠’의 안식을 찾을 수 맛볼 수 있었겠는가. 결국 자네의 눈빛은 ‘불면의 눈빛’이었나. 조용한 잠 대신, ‘십자가 없는 어둠’ 속에서 ‘활을 쏘아’대는 고투의 길을 달리는 말로 언어로 가득 찬 불면의 눈빛이 내가 본 자네의 눈빛이었나. 그래서 자네가 본 것은 무엇이었나. 아니네 이러한 질문은 부질없는 것.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는가가 아니라 보려 했다는 것, 보려 한다는 것. 그 자체일 테니.

시 쓰는 자가 문학하는 자가 이 세상 삶에 대한 답을 주는 자는 아니지 않겠는가. 답은 시인보다 훨씬 위대한 존재자의 영역일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네 말대로 다만 그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을 사랑으로 보지 않고, 균열을 균열로 보지 않고 그 위에 주저앉아 사랑을 통해 균열을 균열을 통해 사랑을 그리고 또 다시 거듭, 돌고 도는 해결점 없는 미로를 확인하고 절망하고 자멸해 가는 것. 스스로의 흔적을 말을 지우는 것. 그것이 시 쓰는 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경지 아니겠는가.  

작년 우리는 자네의 결혼식에 갔었지. 시골 교회에서 올려진 자네의 결혼식은 참했고 깊었지. 그 깊고 깊은 속에서 자네의 아름다운 사람이 이젠 자네의 머리칼을 만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신의 안부를 묻기 위해 달려가는 자에게 그 정도의 호사는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나는 자네에게 못된 욕심을 내네. 자네의 ‘불면의 언어’가 더욱 지속되기를. (계간 <시인시각>, 2006년 여름호 게재)



장무령
충남 홍성 출생.

1999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선사시대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다>가 있음.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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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습니다 | 시인 이재훈

이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텨왔다 그러나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뜨개질을 하신다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뜨고 계신다

이재훈의 시 ‘마루’ 전문


마치 얼굴로 시를 쓰는 듯한 따뜻한 미소의 이재훈 시인

다시 한 해가 저문다…

세월로 치자면 저문다는 것은 일어선다는 말의 프롤로그 정도 될 것이다. 한 해가 가면 예기치 못하는 새해가 다가서므로. 그러나 마치 세월을 역행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월간 문예지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 가는데 옛 모습 그대로 문학의 텐트 속에서 라면을 끊이는 사람들이다. 문예지를 만드는 사람들 중에서 시 전문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더욱 고전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월간 ‘현대시학’과 ‘현대시’의 존재는 가련하면서도 경이롭다. 월간 ‘현대시’를 방문 하려면 이재훈이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 이재훈 시인이 줄곧 수문장과 공장장 노릇을 하다가 첫 시집을 상재했다.

ㅂ ㅊ

반갑습니다.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를 잘 읽었습니다. 우선 첫 시집을 낸 소감을 한 번 듣고 싶군요.

ㅇㅈㅎ

반갑습니다. 저 또한 선생님 시의 애독자인데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집 출간을 계획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먼저 부끄러움이 앞서 앞으로는 어떤 시를 써야 하나, 또 시집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 이제 시집이 한 권 있는 시인이 되었구나, 하는 스스로의 위안도 함께 있었지요.

ㅂ ㅊ

강원도 영월 생인데 언제까지 살았으며 어떤 청소년기를 보냈습니까?

ㅇㅈㅎ

강원도 영월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즈음까지만 살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제천, 횡성, 인제 등 강원도 일대를 옮겨 다니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영월군 하동면 주문리인데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 하여 ‘모운동’이라고 불리워졌습니다. 해발 800미터 가까이 되는 하늘 아래 첫 동네입니다. 원래 화전민들이 살고 있다가 탄광이 개발되면서 탄광촌으로 바뀐 동네였습니다. 부친께서는 그곳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지요. 지금은 폐광된 지 오래되었고, 인적이 드문 고요하고 깊은 산중 동네로 바뀌었습니다. 초등학교 이후로 문경새재를 넘어 경북으로 이사를 왔는데, 아무튼 제 청소년기는 잦은 이사로 늘 낯선 풍경과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로 보냈던 것 같습니다.

ㅂ ㅊ

왜, 어쩌다가 이 자본주의 시대에 시인이 되었습니까?

ㅇㅈㅎ

만약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어 있을까. 좀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 생리적으로 맞기 때문일 거에요. 시를 쓴다는 것이 자본주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겠지요. 독자와의 소통은 자본주의가 매개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반대로 자본주의의 원리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글이 시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ㅂ ㅊ

이번 시집에 도시를 배경으로 한 글이 많이 보입니다. 이시인의 시 속에 나오는 도시와 종교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요.

ㅇㅈㅎ

도시생활은 이십대가 되어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줄곧 읍면 단위의 시골에서만 자랐으니까요. 도시에서의 생활은 제 이십대에 상당한 활력을 주었지만 또한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여전히 도시는 낯선 곳이고, 그러면서 이제 도시가 아니면 불편해하는 제 모습이 여러 가지 시적 감성을 갖게 만드는 겁니다. 종교는 제가 운명적으로 지고가야 하는 십자가 같은 것입니다. 저는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고 모태신앙이지요. 그러니 그냥 자연스럽게 제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ㅂ ㅊ

월간 “현대시”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지요. 이재훈 시인하면 현대시를 떠올릴 정도로 밀착되어 있습니다. 시의 범람 속에 묻혀있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또 상식적인 질문이지만 이시인의 창작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ㅇㅈㅎ

문예지에 근무하고 있으니 문학 활동하는 데 많은 제도적인 도움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잡지에 있다보니 저보다는 다른 시인을 먼저 챙겨야 하고, 잡지에 있다는 이유가 오히려 이러저러한 시선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문학잡지 편집자로서 남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시인’으로 남고 싶다는 것입니다. 시 속에 살고 있어서 때로는 시에서 벗어나고도 싶습니다. 너무 오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시 속에 있어서 시를 바라보는 눈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ㅂ ㅊ

약력을 보니 두 대학에서 강의를 하더군요. 이 자리야 이 시인을 만나는 자리지만 이 시인이 놓인 특별한 위치를 감안해 특별한 것을 좀 물어보지요. 독자들을 위해 한국 시인들의 관심사를 개괄적으로라도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가령 어떤 연령층은 어떤 문제에 관심이 크고 어떤 부류는 어떻게 쓴다 등 말이지요. 아니면 전혀 그런 변별성이 보이지 않던지...

ㅇㅈㅎ

간단히 얘기하기엔 어려움이 있는 질문인데요. 최근 들어 전 세대와 달라진 시적 경향이 뚜렷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세대론적인 문제이기보다는 취향의 문제인 것 같은데, 우선 대중문화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중요한 기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념 시대를 넘어 탈근대를 살고 있는 지금, 시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관심사를 말하기엔 무리입니다. 굳이 세대별로 따진다면 전통의 고양과 새로운 감수성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전통적인 시적 덕목과 가치관을 더 깊이 이어나가려는 관심과, 자본주의의 극점에서 느끼는 정신적 공황을 새로운 자아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말해 볼 수 있습니다.

ㅂ ㅊ

오랜 얘기지만 문학이 독자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대부분이 미디어와 영상물의 탓으로 돌리는데 문학 내부의 문제는 없을까요.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보다 실감나게 느끼는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ㅇㅈㅎ

문학 독자층이 감소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현 출판계의 상황이 이를 가장 잘 말해줍니다. 저는 멀티미디어의 시대에서 본격 문학의 독자수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내의 시간들을 견뎌야만 얻을 수 있는 독서의 경험들을 재밌고 환상적인 멀티미디어가 대체하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히려 문학이 문학 본연의 모습을 가질 때 더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사회를 보면 억압 없는 민주사회에서 문학의 모습은 더 진지하게 오리지널리티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중요한 것은 문학 자체의 형질변화가 아니라 문학을 재가공해서 독자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인프라와 기술의 개발일 것입니다.

ㅂ ㅊ

문단 교유의 폭이 넓겠어요. 주로 어울리는 선배 동료들이 누구인지요. 만나면 뭐 합니까? 이시인 주변의 문화풍토가 궁금하군요.

ㅇㅈㅎ

아무래도 그런 편이겠지요. 지속적으로 어울리는 문인들은 비슷한 또래의 시 쓰는 친구들입니다. 만나면 대개 술 마십니다. 시인 축구단도 있고 하지만 운동도 좋아하지 않고 해서요. 참 요즘은 산엘 자주 다니려고 노력합니다.

ㅂ ㅊ

앞으로 계획이나 가고자 하는 길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ㅇㅈㅎ

계획이 있다면 시를 좀 열심히 쓰고 싶다는 것과 예전엔 다른 장르의 글쓰기에도 열심이었는데 시간을 핑계 삼아 게을렀습니다. 좀 열심히 써보고 싶습니다.

ㅂ ㅊ

마지막으로 근간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으면 두 세권 말씀해 주시지요.

ㅇㅈㅎ시는 여전히 읽고 있고요. 최근에 읽은 소설은 프랑스 작가 미쉘 우엘벡의 [소립자]이구요. 요즘은 신간보다는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강석경, 이승우 등의 작가들과 비교신화학자 조셉 캠벨 등등.

앞글에 문예지 만드는 사람들을 가련하다고 했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들은 하나의 권력이다. 지면이 점점 줄어들면서 권력은 속성을 알게 될 것이다. 내노라 하는 시인들을 상대하면서 터수를 자랑하고 목에 힘을 줄만도 한데 이재훈 시인은 늘 겸손하다. 점잖다. 그의 벗들과 허물없이 지낼 때는 어떨지 모르지만 이방인에게는 항상 따듯한 미소를 보낸다. 마치 얼굴로 시를 쓰는 사람 같다. 이 세상에 그런 시만 나돌아 다닌다면 얼마나 따뜻할까. 돌아서기 전 나눈 악수의 온기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 초겨울이다.


작가 박철
- 60년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과 졸업.
- 87년 『창작과 비평』에 시 <김포> 외 15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을] [새의 全部]
[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등이 있다.
- 97년 『현대문학』에 단편 <조국에 드리는 탑>이 추천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출처|
http://www.booxen.com/book_readers_view.asp?sabo_ho=81&part=3&subpart=1&page=1&seq_no=791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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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의 아들’을 위한 바람의 계보



김태형



첫 시집을 낸 이재훈 시인을 나는 어디엔가 “영원한 꿈의 시민(市民)”이라고 적어놓았다. “불을 타고 오르거나 허공에 발을 내미는”(「공중정원3」) 새로운 공중의 시민이라 했다. 그를 불러 ‘바빌로니아의 후예’라고 한 것은 혼돈의 어원, 저 바벨(Babel)의 도시로부터 그의 언어들이 이제 막 태어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시의 음울한 리듬을 빌어 꿈꾸는 것들은 모두가 그 기원에 도달하려는 슬픈 몸짓이었다.

이십대 후반에 등단한 이후 이재훈 시인은 그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그만의 푸른 언어의 휘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와 나는 거의 나이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의 언어들은 나에게도 예외 없이 낯선 것이었다. 간혹 나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거처했던 집들을 매번 찾아다녔다. 그와 알게 된 이후 그는 세 번 거처를 옮겼다. 그때마다 나는 그의 방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한 번도 혼자 살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그의 삶을 부러워했다. 나는 그의 방이 점차 커지고, 책이 늘어나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의 방은 책으로 가득 쌓여 비좁을 수밖에 없었다. 밤늦게 찾은 손님은 겹겹이 쌓아놓은 책들을 칸막이 삼아 새벽녘 잠시 잠이 들었다가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문 밖을 조금 나서면 대도시의 빌딩숲마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가득했지만 그의 방은 늘 7,80년대쯤의 고전적인 향기가 배어 있었다.

연희동의 자취방으로 늦은 시간 술병을 싸들고 찾아가거나, 꽤 늦은 시간에도 밖으로 불러내어 그와 만났다. 그는 매번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나를 만나러 왔고, 그럴 때면 늘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매캐한 담배 연기 속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는 사이 그도 나처럼 이십대를 건너왔다.

언젠가 평론을 하는 오형엽 선생과 함께 한 자리였는데, 그때 “이재훈 시인은 위아래 20년은 거뜬히 커버한다”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무릎을 쳤다. 이재훈 시인은 그만큼 삶의 폭이 넓고 깊다. 넓고 깊은 자는 또한 고요하고 느리다. 느리고 기다릴 줄 알면서도 늘 바삐 걸음을 옮긴다. 그와 만나면서 알게 된 일이지만, 그는 꽤 많은 곳을 옮겨가며 살아 왔다.

언젠가 정재학 시인이 쓴 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형은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더듬거리며 태어난 동네를 찾고 있었어요. 눈덮인 들판에서 전화도 했었죠. “엄마, 내가 태어난 곳이 어디에요?” 나는 하필 바람과 다투며 지도를 쫓아 들판을 뛰어다녔습니다.”(「편지, 영월에서」) 이 시를 읽으며, 역시 내가 알던 이재훈이구나 생각했었다. 삼각지의 어느 뒷골목 술집에서 지면에 실린 이 시를 함께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순간만큼 시가 살아 꿈틀거리는 때가 어디 또 있을까.

나는 나 자신을 늘 ‘언덕의 아들’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이재훈 시인 역시 이 ‘언덕의 아들’ 계보에 넣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실은 누구나 ‘언덕의 아들’이지만 모두가 이 언덕을 떠나고 없다. ‘언덕의 아들’은 이미 언덕을 잃어버린 아들이지만, 언제나 언덕으로 가고자 하는 아들이다. 이들은 지금 언덕이 사라진 “눈덮인 들판”에 서 있는 자이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바람을 느낄 줄 안다. 늘 바람을 맞고 살기 때문이다. 이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모두가 바람이 어디로 불어 가는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동안 이들은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묵묵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나에게 이재훈 시인을 만나는 일은 어느덧 지극한 시간이 되었다. 그를 안지도 꽤 오래 되었지만 늘 만날 때마다 새롭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참된 사람이다. 그의 시가 그렇고, 그의 삶이 그렇다. 나는 여간해서 옆자리를 잘 안 내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의 성품 앞에서는 언제나 흔쾌히 열려 있는 사람이 되고는 한다.

그가 찾는 바빌로니아의 언덕은 어디에 있는가. 바람에 날리는 지도를 바라보던 그때도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람 속에 지도가 날려간 것이 아니라 정작 그 바람이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아마도 지금쯤 또 다른 바람을 따라가려 할지 모른다. 가던 길을 돌려 어느덧 푸른 지평선을 건너려 할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가던 길을 조금만 더 가보자고 그의 손을 잡는 일뿐이다.



김태형
1970년 서울 출생.
1992년 『현대시세계』 가을호로 등단.
시집 『로큰롤 헤븐』『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


출처 : 계간 [시와세계] 2006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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