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포엠포엠> 봄호 VOL53 특집
기획특집 시인을 만나다 36

 

이재훈 시인

 

 

때 : 2012년 1월 2일 6시 30분 합정동 카페 <아이두 IDO>
탐방진 : 김안, 한정원. 정훈

원고 정리 : 한창옥

 

 

요즘은 지나간 흔적을 되살리는 것이 트렌드다. 부드럽지만 도발적인 그의 작품 속으로 조용히 빠져들게 하는 이재훈 시인을 빈티지풍의 카페 지하벙커에서 만난다.
매서운 칼바람은 아니지만 소한을 앞둔 차가운 날씨다. 어둑어둑해지자 부산에서 올라온 본지 편집부 정훈 평론가, 한정원 시인, 그리고 현대시 편집장 김안 시인과 오늘 주인공 이재훈 시인이 들어선다. 모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난로 불에 몸을 녹인다. 모처럼 서울에 올라온 정훈 평론가가 서두른다.

 

- 이재훈 선생님, 새해를 맞이한 느낌이나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새해 계획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아내 지인의 집에 놀러갔다 마지막 날과 새해를 아이들과 놀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에는 어떻게 해야지 하는 계획을 갖지 못하고 지나버렸어요. 지난주에는 연말이라 모임이 많았고요. 이제 좀 천천히 지난 한 해를 돌아봐야겠습니다.(미소)
올해 초에는 평론집을 한 권 낼 계획입니다. 2011년도에 시집 <명왕성 되다>를 냈고, <나는 시인이다>라는 인터뷰집을 출간했습니다. 평론집 원고도 준비가 다 되어 있었는데 한 해 책을 세 권 내는 것은 무리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미뤄왔죠. 그동안 이리저리 시집 서평이라든가 문예지 계간 평이라든가 기획특집 글들을 시인의 입장에서 써왔습니다. 평론집을 정리하고 2012년 봄학기를 맞아야겠지요. 특별한 삶의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순간순간을 누리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현대시> 잡지를 만들고 그러한 삶이 반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론집은 언제쯤 어느 출판사에서 나옵니까?

 

3월내로 계획 중입니다. 출판사는 아직 정하지 못했고요. 제목도 새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겨울에 수정, 퇴고를 할 생각입니다.

 

- 작년에 출간된 시집은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예도서로 선정되었고, 대담집은 문화관광부 올해의 교양도서가 되었는데요. 옆에서 보면서 이런저런 결실을 많이 맺는 한 해였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특히 대담집을 보니 그 안에 있는 텍스트 하나하나가 오랫동안 시를 쓰면서 지내왔던 형의 삶의 이력같이 느껴졌습니다. 형은 지난 한해를 바라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점점 이 일이 작년 일인지 재작년 일인지 3년 전 일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 거 있죠. 크리스마스 때 뭘 했는데 작년에 했던 것인지 재작년에 했던 것인지 헷갈리는 거요. 그래서 작년 한 해가 그 전 해보다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첫 번째 시집을 내고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이 나왔는데 두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는 것이 의미일 것 같고요.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 같은 경우는 2001년부터 근 10년 동안의 시인들을 만나온 기록이기에 저의 문학적 일기처럼 느껴지죠.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났을 당시의 추억이 떠오르고 어떻게 만났고, 어떤 이야기를 했고, 술자리를 어떻게 가졌고 이런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거든요. 원고를 모아놓고 나니까, 지난 10년 동안의 문학 활동이 파노라마처럼 스르르 지나가면서 대담집이 제게는 하나의 문학앨범이 되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두 책을 출간한 것이 가장 큰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창작과 강의, 문학연구 이런 활동을 오랫동안 병행하면서 정신없이 성실하게 살다보니 그런 생각이 드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학에 빠지다보면 가장이나 남편으로서 역할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양쪽 다 성실하게 잘 하시는 바람직한 한국의 남자나 아버지의 모습을 제가 잠깐 보게 되었는데요.

 

아니요. 사실 제가 아버지나 남편으로서 점수가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집사람에게 미안하죠. 항상 비판을 많이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성실한 가장은 되지 못합니다.

 

-그게 달콤한 비판으로 느껴지는데요.

 

아닙니다.(웃음)

 

- 대담집 말씀하실 때에 10여 년 동안 꾸준히 준비해 오셨다는데 특별한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까?

 

대담집을 내고 제가 인터뷰를 몇 번 했거든요. 이 찻집에서도 대담집을 출간하고 인터뷰를 했어요. MBC DMB의 <내 손 안의 책>이라는 프로그램에서요. 인터뷰할 때 항상 받는 질문인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다 에피소드 하나 정도는 있을 겁니다. 만난 장소도 다 다르니까요.
찻집에서 우아한 시간을 보내며 만난 분들도 있고, 술부터 먹기 시작해서 대담을 어떻게 했는지 나중에 정리하기 힘들었던 경우도 있고요. 시인들도 직업군이 다양하고, 각각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니까요. 또 시인들이 에고가 세죠. 자기 자존이 센 분들이라 만나면 대립각을 맞추는 게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술을 함께 마시며 긴장을 풀어야 되는 그런 부분이 종종 있어요. 아무튼 시인들마다 하나 정도씩의 에피소드는 다들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대담을 통해 의미있는 대답이 된 것들이 있죠. 이미 돌아가신 선생님들과의 대담이 그러한데요. 지금은 그 선생님들의 육성을 들을 수 없으니까요. 김춘수, 오규원, 박찬 선생님들은 지금 고인이 되셨죠. 이 분들과의 대담에 얽힌 얘기들은 다른 지면에서 많이 얘기를 했어요.

 

- 말씀을 잘 해주셔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습니다. 인터뷰어로 많은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인터뷰이로서의 역할도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웃음)

 

왜냐하면 분량을 알거든요. 말을 너무 짧게 하거나 너무 길게 하면 힘듭니다.(웃음) 적당히 한 시간 정도가 좋아요

 

- 인터뷰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따뜻한 품성의 소유자란 생각이 듭니다. 뻔한   질문이겠지만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가 2005년도에 나왔고, 지난해 2011년에 <명왕성 되다> 시집이 나왔어요, 6년 정도 시간의 간격이 있는데 첫 시집하고 시세계가 달라진 면이 있다든지 혹은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의 시세계가 변화된 부분이 있나요?

 

달라진 부분이라고 한다면, 전체적인 시세계의 성향은 비슷한 면이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신성에 대한 욕망, 시원에 대한 갈망, 이미지들을 신화적 상상력으로 구현하려는 몸짓. 이런 부분에서는 일맥상통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첫 번째 시집보다 두 번째 시집에서 구체적인 일상인으로서의 자아가 많이 들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까요.
첫 시집에선 제가 가지고 있는 주도적인 시세계를 주로 표출하려고 했죠. 그러다 보니 일상인으로서의 자아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요. 시집 준비를 오래 하다보니 자기검열이 너무 강해져서 100여 편의 발표작 중에 44편만으로 시집을 묶었어요. 자연스럽게 색깔있는 시들만 묶여지게 되었죠. 두 번째 시집에서는 그런 것들을 이어가되 일상인으로 겪는 자아의 성찰이 첫 시집에 비해서 조금 더 많이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첫 시집에서는 시적자아가 우주나 공허, 하늘을 유영하는 자아가 많은데 두 번째 시집에서는 도시라는 문명의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일상인의 모습이 많이 투영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조금 달라진 점이 있지 않을까요.

 

- 첫 시집은 우주, 하늘과 같은 높은 데 떠 있었다면, 두 번째 시집은 낮아졌다, 땅으로 내려왔다는 평이 있던데 동의하시는지요?

 

예, 그런 부분이 있죠. 제가 시골 태생인데, 고등학교 때까지 시골에서만 살았어요. 첫 시집 낼 때까지만 해도 도시에 대한 성찰이나 자의식이 그렇게 크지 않았죠. 오히려 도시는 막연한 동경과 환상의 대상이었어요. 그런데 도시에 산 지 20년 가까이 되다 보니 도시의 환상들이 무너지는 경험을 심하게 겪었죠. 도시에 대한 성찰이 30대 후반에 비로소 생긴 거 같아요.
하지만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다보니 도시를 떠날 수 없는 버거운(?) 삶이 되었죠. 도시는 제가 발 딛고 살아가야만 하는 필연적인 공간이 된 거죠. 예전에는 정신의 휴식을 외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으로 해소했다면, 이제는 도시 속에서 어떤 은둔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보니 도시 속에서 산책자로서의 자아가 자연스럽게 투영이 되었고, 이런 시들이 주변 시인들이나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봅니다.

 

- 첫 번째 시집의 시적 화자가 이 거대한 도시를 하릴없이 배회하는 산책자의 모습이었다면, 두 번째 시집의 시적 화자는 <안드로메다 바이러스>에서 보듯 이 피비린내 나는 행성에 불시착한 외계인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특히 1부에서 이런 시적 화자가 도드라져 보이고, 2부에서는 <대황하> 연작에서 보듯 특유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인 느낌이었어요. 시집의 차례를 구성하는 데 거대한 그림을 그린 것이 느껴집니다.

 

저는 기승전결의 구성보다 3부작이 편해요. 4부가 되면 머리가 복잡해져서 그런 구성을 했는데 김안 시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런 의도를 가지고 했습니다.

 

- <안드로메다 바이러스>를 말씀하시니까 생각이 나는데 시를 읽다보면 SF영화도 떠오르는데 영화를 많이 보시는지요?

 

영화를 좋아하지만 많이 보는 편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안드로메다 바이러스>라는 영화를 본 적은 없어요. 제가 시의 초고를 써 놓고 시의 제목을 어떻게 붙일까 고민하던 중에 ‘안드로메다 바이러스’라는 용어가 제게 온 거죠. 아주 매력적인 용어였어요. ‘명왕성 되다’ 처럼. (웃음)

 

- 빗나가는 질문인데 외계인이 있다고 믿으세요?

 

있겠죠. 없다면 너무 재미없잖아요.(웃음)

 

- 네. 그렇죠. 이재훈 시인은 믿을 것 같습니다. 종교가 있나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체험 신앙을 갖고 계신 분이어서, 신앙에서만큼은 엄청 엄하셨어요. 그래서 억압이 많았죠. 사춘기때 직접 반항은 못했지만 내적 방황을 많이 겪었어요. 학창 시절에 문학책보다 신학 서적을 더 많이 읽었습니다. 기독교계통의 어린이 잡지도 많이 읽었고요. 지금 우리의 기독교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완고한데 그런 부분에 좀 답답함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요.
제 시에서 기독교 성향이 있다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말하는 기독교라기보다 배교적인 느낌을 짙게 깔아놓은 신비주의적인 성향이 많아요.

 

- 시의 표현기법이 상당히 독특한데요. 종교적인 표현에 특별한 기율이 있을 거 같거든요.

 

특별한 기준은 없고 아마 독서체험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학창시절 신앙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부터 20대 전체를 신(神)에 대한 갈등과 방황으로 점철했었죠.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해방신학이 유행되었거든요. 일반 기독교에서는 이단이라고 하는데, 그쪽에도 꽤 깊게 침윤되어 있었구요.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라고, 구원의 일방성에 반기를 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신앙관을 기웃거리기도 했죠. 기독교에서는 인정을 안 해 주는 교리죠. 제가 그동안 체험했던 기독교와 너무 달라서 충격을 받았어요. 호기심이 많았던 거죠. 성경도 장자의 얘기가 아닌 서자의 얘기에 관심이 많았구요. 비교도, 그노시즘에도 관심이 있었죠. 아주 성스러운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가 매력적이었어요. 그런 관심들이 언어적으로 내면화된 것 같아요.

 

- 첫 시집에서 크고 광대한 세계를 그려나갔고, 이는 두 번째 시집에서 이어집니다. 이 두 시집에서서 시의 길이가 길어지고, 시의 호흡 역시 빠르게 가지기보단 묵직하면서도 느리게 나가는 것은 형이 말하고자 하는 시적 세계의 스케일 때문이라고 느꼈어요. 요즘 젊은 시인들이 빠른 호흡을 하고 시행과 행 사이의 간극을 벌리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천천히 시선을 옮아가며 크고 무거운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거인의 발자국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인지 박수연 선생님은 형의 시세계를 언어적 낙관주의라고 하면서 명징한 상징과 운율을 거느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의 작법상의 문제와 이 작법이나 스타일들이 시적 세계관과 연관되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쓸 때는 작법을 의식 안하고 씁니다. 이런 생각은 하죠. 어떤 세계를 그려내야 된다는 것. 길이나 분량이나 처음에는 의식을 안 하죠. 작법이나 스타일을 정해놓고 쓰는 시인들이 많은데 저는 방목하는 스타일입니다. 시의 스타일은 운명처럼, 그 시에 맞춰 생성되는 것 같아요. 태생적으로 길어야 하는 시가 있고, 짧아야 하는 시가 있는 거죠. 우선 아직까지 컴퓨터에 시를 못 써요. 노트에 시를 쓰고 그것을 컴퓨터로 옮겨 쓰면서 퇴고하는 스타일인데요. 노트에 쓰다보니까 분량에 대한 감이 잘 안 오더라고요.
저는 하나의 대상물을 깊게 파헤쳐서 써내는 인내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하나를 바라보면서 다른 곳으로 자꾸 확장시키고 싶은 시적 욕심이 있어요. 꽃을 봤다면 꽃 속으로 들어가서 우주로 확장되거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거나 확장되는 그런 생각들이죠. 이런 시적 전개가 시의 스타일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그런 식의 시적 전개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 부분도 없지 않겠죠.

 

 

- 첫 시집의 시적 화자는 혼자 배회하며 도시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시집의 시적 화자는 자신이 보는 것에 대한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안드로메다 바이러스>에서 지금 이곳에 대해 ‘피비린내 나는 행성’이라 지칭하는 것과 같이, 지금 이 도시에 대한 나름의 가치판단들이 보입니다. 이는 어쩌면 세상을 보는 시인의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시집에서 이런 부분이 더 강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명왕성 되다>라는 시집에서 엄살을 피울 만큼 피웠어요. 문명인으로서 겪는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너무 적대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그런 자기 진술들이 너무 많이 나오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게 산다고 엄살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요.
이제는 이 도시를 사랑할 수는 없어도, 적절한 거리만이라도 유지하자는 생각입니다. 너무 도시에 밀착되어서 도시 속에 푹 파묻혀 살아가기보다 도시를 빠져나와서 바라봐야겠어요. 제 스스로 엄살이 아닌 날 선 시각으로 느껴진다면 되는 거죠.

 

- 제가 보기에는 엄살 부린다기보다 현대인의 도시생활을 대변을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면적으로 한 번은 거쳐야 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두 번째 시집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2부입니다. <대황하> 연작과 그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시들에 애착이 있고, 2부의 시를 배열하면서 나름대로 기획을 했어요. 그런데 2부의 시적 세계가 부각이 안 되더라고요. 2부에 있는 시적 부분들을 세 번째 시집에서는 조금 더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 첫 시집이 도시라는 미로에 갇힌 느낌이었다면, 두 번째 시집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도시를 멀리서 관조하면서 스스로의 시선을 획득했기에 변화의 지점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2부에서 보이는 시인 이재훈만의 광활한 시세계는 첫 시집과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에 대개의 독자들이 1부에서의 변화된 지점에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변화된 지점을 이야기하다보니까 그렇겠죠. 왜냐면 첫 번째 시집을 냈을 때도 세간의 평가가 신성이나 신화적 상상력, 욕망에 대한 얘기, 낯선 낭만주의적 색채 때문에 변별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왔잖아요. 두 번째 시집은 첫 번째와 어떤 변별점이 있을까 찾다보니까 그런 맥락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 주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시와 평론을 겸하시면서 느꼈던 점이 있을까요? 시를 쓸 때와 평론이나 논문을 쓸 때 갈라지는 부분이 있는지. 행복하게 일치하는 순간이 가장 좋겠지만요. 산문하고 운문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요?

 

저는 평론을 간간히 쓰면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시들을 분석적으로 바라볼 때 또다른 시의 모습을 보게 되거든요. 제 가치판단의 흔적들이 정리가 된다는 느낌도 있고요. 하지만 이제 평론을 조금만 쓰려고 합니다. 제 비평언어의 한계도 느껴지고, 시 쓰기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서죠.
시의 언어와 평론의 언어는 많이 다르죠. 정서가 지배하는 글과 이성이 지배하는 글의 차이니까요. 평론과 시를 함께 쓰면 이런 글쓰는 주체의 모드를 교체해야 되는 부분이 힘들어요. 그런 부분들 때문에 평론 쓸 때는 시가 잘 안되죠. 우선 저의 정체성은 시인이니까. 시 쓰기에 좀 더 중점을 두어야 되겠지요.

 

- 평론 쪽은 더 확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시군요?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제 지식의 한계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써봐야 좋은 글이 나오리라는 확신이 안 들어요.

 

- 늘 공부를 하시고 계신데 겸손한 말씀이십니다.

 

아닙니다. 아직 해야 할 공부가 많습니다. 그동안 못 읽었던 책들을 읽으면서 내공을 더 다져야 합니다.(웃음)

 

- 지금까지는 선생님의 시 세계와 시를 바라보는 관점들을 다양하게 말씀해 주셨는데, 시 외부의 객관적인 시 조류라고 할까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요즘 시들이 상당히 어렵거나 시인조차 안 읽는 시가 많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반 독자들은 처음에 감동받았던 서정시 성향의 시를 계속 읽는 경향이 있고 시인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일관된 색깔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시인들이 시를 쓸 때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자를 염두할 필요가 있는데요. 시인과 독자들이 행복하게 만나기 위해 일치하는 지점, 그런 부분을 생각한 게 있다면요?

 

모든 시인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까요. 미래파 이후로 평단에서 근 몇 년 동안 소통과 난해함에 대한 담론들이 오갔는데, 저는 시라는 다양성을 이해한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봐요.
음악에 빗대어 보자면 많은 대중들이 사랑하는 음악이 있는 것이고 소수의 마니아들이 사랑하는 음악이 있어요. 록과 헤비메탈은 다수의 대중들보다는 소수의 대중들이 늘 좋아해 왔죠. 트로트나 발라드는 전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르이고요. 시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소수의 마니아들이 즐겨 읽는 시가 있어요. 낯선 언어 운용이나 기존의 시관으로는 전혀 해석이 되지 않는 그런 시들을 오히려 더 즐겁게 읽는 소수의 독자들이 있는 거죠. 따뜻한 서정시는 많은 독자들이 읽고 호응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독특한 개성을 가진 시인들이 대중들에게 더 읽히기 위해서 시를 쓸 수는 없죠. 그렇게 되면 자기 예술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잖아요. 자신이 가장 가고 싶은 시의 길을 가다보면 독자들과의 행복한 만남은 언제든 이루어진다고 봐요.

 

- 저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시, 난해시, 해석이 안 되는 시, 이런 모든 시조차도 문예사조에 기여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요. 시마다 다 운명이 있는 거죠. 시마다 개별적으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지만, 이해 못하는 사람이 당연히 있죠. 모든 사람이 어떻게 다 이해를 해요. 그런 부분들 때문에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시인들의 창작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지 않나 싶어요. 오히려 일반 대중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오만한 태도죠. 대중들은 늘 현명하게 변화합니다. 대중의 눈치를 보는 시는 대중에게 가장 먼저 들킬 겁니다.

 

- 지금까지 말씀해 오신 시의 색깔이라고 할까 지금 상황으로서는 계속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네. 계속 가야죠. 제가 바라보는 시적 세계관이 한국 시단에서는 관심이 적은 부분이라고 봐요. 저는 그런 세계가 몸에 맞아요. 하지만 다양하고 새로운 시의 방법론을 통한 변화가 담보되어야겠죠. 개인적으로는 시집의 권수보다 의미있는 시집을 내고 싶습니다.

 

- 혹시 본받고 싶은 시인이 있습니까? 생존시인이든 작고시인이든. 아니면 주목할 만한 시인이라도?

 

그것은 말하기가 곤란하네요.(웃음)

 

- 이런 것일 수도 있나요? 시는 좋은데 실제 행동거지를 보고 너무 실망을 한 거요.

 

그런 경우도 있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시인들은 다 괜찮은 사람들이에요. 시인들은 워낙 자기세계가 뚜렷하고, 그만큼 욕망이 강해요. 어떠한 세속적인 부를 갖다 주는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작품에 대한 욕망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좋은 작품에 대한 욕망은 순수한 욕망인데, 그 욕망이 술자리에서 세속적인 형태로 보일 때는 싫어지죠. 하지만 이 사람들이 아니면 누구한테 내 시를 이야기하고 고민을 하겠어요. 시를 버리지 않는 이상, 평생 보고 지낼 사람들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애증의 관계이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시인들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 <재킷을 입은 시인>이라는 시도 있지만 시인이 가져야 할 영혼의 옷, 시인이 입어야 할 옷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너무 피상적이지만 질문이 됐지만)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왜냐면 자칫하다간 상당히 계몽적인 얘기가 될까 봐서. 시인의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럽네요.
시인마다 다른 개성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아주 소수가 가진 개성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죠. 비평가도 마찬가지이고요. 비슷한 옷을 유행처럼 입고 다니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만 바라보며 거기에 대한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것도 문제죠. 촌스럽고 남들이 입고 다니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니는 시인들도 바라봐야 하겠고요. 시인들은 자신의 시에 대해 당당해야 합니다.

 

- 페루나 중국 황하에 가보셨어요?

 

못 가봤어요. 못 가보고 상상으로 쓴 거죠. 그동안 정보로만 알던 곳에 대한 상상. 그리고 너무 큰 자연을 보면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자연에 압도될 것 같아요.

 

- 2부에 있는 <대황하> 연작에서 그려지는 물은 기존의 물에 대한 상상력을 초월한 것 같아요. 이 물은 생명을 잉태하는 물이 아닌, 파괴되고/하고, 시체가 즐비하고, 무언가를 더럽히는 물이란 느낌이 강해요. <대황하> 연작 앞에 놓인 <물에 대한 사소한 변론>에서 이미 <대황하> 연작의 물이 일반적 속성의 물이 아니라고 언명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대황하>의 물은 수평적으로 흐르는 물이 아니라, 수직으로 떨어지고 침잠하는 물이란 느낌이 강해요. 넓게 퍼지는 물이 아닌 더 깊은 곳으로 곤두박질치는 물과 같은 느낌 말이죠. <대황하> 연작을 쓸 때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썼는지 궁금해요.

 

대황하 끝 시편에 물길이 솟구친다고 표현했는데, 물은 아래로 흐르는 게 속성이잖아요. 이유 없이 물길이 솟구칠 수는 없죠. 어떤 압력에 의해서든지 물길이 솟구치는 것은 이유가 있는 거죠. 또 황토물이라도 우리는 그 물을 마시고 살아야 해요. 그 물이 생명을 주고 문명을 이루고 어떻게든 사람에게 정서를 주고 그 속에서 구원자를 만납니다. 더럽지만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물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물에 대한 상상력이 워낙 흔한 거잖아요. 흔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물이 아닌 누런 물길을 상상한 거예요. 대황하는 문명을 이루는 거대한 물줄기인데, 이 줄기를 통해 내면을 표출해보고 싶었죠. 사람들이 대황하를 엿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 태아 때의 양수를 언급하시는 것 같아요.

 

네. 몇 년 전 친한 대학 동창이 하늘나라로 갔던 일이 떠오릅니다. 친하게 지냈던 몇 동창 중 한 명이었어요. 갑자기 독감으로 병원에 들어갔다가 뇌사상태가 되어 이승을 등졌죠. 그 친구 뼛가루를 인천 바다에 뿌려주었는데, 그 이야기가 대황하 4편에 나와요. 그날 비가 왔거든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바닷가에 뼛가루를 뿌리면서 물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이 가장 먼저 만나고 많이 만나는 물질이 물이잖아요. 양수에서부터 물의 질감을 느끼잖아요.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란 말도 생각났고요. 물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친구의 죽음도 쉽게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물에 대한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 2부 마지막 시 <북극의 진화>에서 “거칠게 울고 우는 소리만 가득하다./ 인간의 소리만 가득하다./ 모든 것이 까마득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대황하> 연작의 물들이 가진 황량함과 소멸에 대한 느낌을 정의내리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런 시선은 1부에서 그려낸 생활이 이루어지는 도시의 속성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도시와 황하, 이 둘 사이의 연계점들이 보였습니다.

 

마지막 시에는 “소멸이 내 먹는 밥이다”라고 했죠. 해설을 쓴 조강석 선생님이 ‘소멸의 총아’란 말도 썼고, 키에르케고르랑 이재훈을 ‘VS’로 대결시킨 사건이 되기도 했죠. 시를 쓸 당시엔 도시가 육체적 거소라 한다면, 황하는 정신의 거소라고 생각했어요. 규정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소멸은 꼭 말하고 싶었던 거죠. 결국 소멸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말이죠. 소멸이 창조의 에너지를 낸다는 걸, 몰래 말하고 싶었을까요.

 

- 첫 시집이나 두 번째 시집에 존재, 실존에 대한 시들이 유독 많아요. 존재하는 것, 존재 되어지는 것, 구원을 말하는 것은 곧 그것을 잉태한 시원에 가 닿고자하는 몸부림이죠. 그런데 이는 시인이 평생 풀어가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문제를 시의 중심 테마로 선정해 작업해 나아갈 때는 자연스레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에 변화의 지점이 생길 것 같아요. 형 나름대로의 존재의 시원에 가 닿고자하는 것, 혹 구원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무엇일까요?

 

아마 평생 가져가야 할 화두겠죠. 시 쓰는 자아의 삶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관심사가 변하면 다른 형태로 드러나겠지만. 첫 시집이 탐구의 방향을 선언적으로 보여준 시집이었다면, 두 번째는 이런 바탕 속에서 시인의 내면이 등사기처럼 비춰졌던 거고요. 세 번째는 다른 방식으로 이러 질문들이 내면화돼서 표출이 되겠죠. 제가 구원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면, 벌써 새로운 종교의 교주가 됐겠죠. (웃음)

 

- 선생님이 엄살을 많이 피웠다고 말씀하셨는데 <비비디 바비디 부>에서 ‘블랙데이’, ‘피’ 나중에는 ‘이탈자’, ‘탈락자’ 이런 말로 엄살을 피우지만 결국은 선생님은 살아남은 자, 큰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성공한자가 아닌가.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웃음)

 

- 저는 남들 경쟁할 때 멀리서 보면서 저러고들 있네 해요.(웃음)

 

그런 생각은 안 해봤고, 저는 경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자죠.

 

- 그거는 한수 위라는 거네요.

 

참여하지 않으면 이탈된 사람이거든요. 시에는 그런 자아가 나오죠. 참여를 해서 어떻게든지 뭘 얻어야만 뭔가 남는 자들보다 나은 자가 되는 건데요. 거기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이탈자 시선이 있죠. 소외되고 이탈된 자이긴 하지만 멋있고 싶었던 거죠. 사실 제가 철이 없어요. 참여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멋있게 보고 싶었고, 참여하지 않는 자의 엄살을 멋있게 떨고 싶었겠죠. 자책하거나 열등의식에 휩싸이는 모습을 내가 스스로 버렸다는 것. 그런 자아가 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거 같아요.

 

- 경쟁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감이 큰 거죠. 자신감이 없다면 참가하지 않는 것도 실천의 한 방법인데, 자신감이 없다면 그런 실천이 나오지 못했겠죠.

 

그런 건가요? 자신감인지는 몰라도 경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요.(웃음)

 

- <재킷을 입은 시인>은 작가의 어머니의 아련한 모습이 떠올랐어요. 쉽게 읽혀지면서도 내면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더군요. 아픔이 묻어났어요. 어머니는 어떤 분이세요?

 

저는 아직도 엄마라고 불러요.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왜 엄마에 대한 시는 한 편도 없냐고요. 엄마에 대한 시도 좀 써봐라.(웃음) 그런데 쉽지 않아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대상은 너무 어렵죠. <재킷을 입은 시인>은 엄마의 살로 베를 짜서 재킷을 만들어 입는 상상, 내가 엄마의 살로 만든 옷을 입고 다니며 시를 쓰고 다닌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아베 고보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잡은 작품이에요.

 

- 아베 고보가 유명한가요?

 

상당히 알려진 작가죠. 아베 고보의 알려진 작품이 많은데 <시인의 생애>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짧은 단편입니다.

 

- 어머니도 이재훈 시인처럼 조용하신 성품이세요?

 

조용하지 않죠. 여느 아줌마들처럼.(웃음) 지금은 행복하신 것 같아요.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젊었을 적에는 상당히 수줍음 많은 소녀였다가, 점점 나이 들면서 거칠어진 한국적 여인상이랄까. 따뜻한 부분도 있지만,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하시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시죠.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항상 그렇게 살아오셨어요.

 

- 어느 자리에서 이반 일리치(Ivan Illich) 말을 인용하시며 시인이 이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한 요소 중의 하나로 말씀하셨는데요.

 

계몽적으로 인용하기 좋은 말이에요. ‘이반 일리치’가 인류를 구원할 세 가지가 자전거, 도서관, 시인이래요. 왜냐면 시를 읽으면 아무래도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지잖아요. 우리가 시를 낭송하는 사람일 때, 그 자아는 가장 순수한 자아거든요. 시를 읽으면서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김현의 <한국문학의 위상>이라는 책을 보면 문학은 출세하지도 큰돈이 되지도 못하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고 했죠. 그것으로 문학이 억압하는 것의 정체를 밝힐 수 있다고요. 시가 바로 그 중심에 있겠죠. <포엠포엠>

 

_ <포엠포엠>, 2012년 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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