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품고 있는 도시 속의 신성함 속으로 말(言)을 타고 달려본다

 

 

이재훈, 김성규

 

 

 

 

 

건기(乾期)의 새. 시집 속에서 이재훈 시인의 모습을 찾아본다면 이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자신의 말보다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시인. 시인의 모습은 자신의 시와 닮아있다. 시에 행간의 여백이 느껴지듯 타인을 자신의 여백 속으로 깃들게 만드는 시인. 북가좌동에서 가끔 이재훈 시인을 만난다. 내가 사는 동네에 이재훈 시인의 직장이 있다 보니 같이 맥주를 마시고 시 이야기를 나눈다. 이재훈 시인이 주로 나의 고민을 들어주는 편인데 생각해보니 내가 시인의 고민을 들어준 적이 없다. 주로 후배인 내가 신세한탄을 하거나 물어보는 것이 많으니 이 빚을 언제 갚을까. 등단 15년이 가까워오지만 한결같은 모습, “햇살이 없었다면/ 저물녘이 없었다면/ 늦은 밤 빗소리와/ 시를 긁적이는 펜 소리가 없었다면(자서 부분)” 우주에서 우리는 만나지 못했으리라. 평소 궁금했던 시에 대해, 시인이 품고 있는 도시 속의 신성함 속으로 말(言)을 타고 달려본다.

 

김성규 : 이재훈 선생님 안녕하세요. 평소에 가끔 만나 뵈었는데 이런 계기로 마주 앉으니 좀 쑥스럽습니다. 겨울인데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저는 감기가 심하게 걸려 며칠을 고생했습니다.

 

이재훈 : 예. 반가워요. 김성규 시인과는 가까운 사이인데 이렇게 공적으로 마주 앉는 건 처음인 듯 싶네요. 저도 이번 겨울을 병치레로 나고 있어요. 감기를 달고 있네요.

 

김성규 : 선생님 시집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신화성, 시간성, 절대성 등입니다. 일단 약력을 보면 1972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하여,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2005), <명왕성 되다>(2011)를 출간하셨습니다. 시집으로 보면 등단 이후 많은 시간 차이를 두고 첫 시집을 냈고 이후에도 6년이 지나서 두 번째 시집을 냈습니다. 요즘같이 빨리 바뀌는 세상에서 긴 시간을 두고 출간하신 이유나 그 동안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이재훈 : 제가 작품 발표할 때에는 그렇지 않은데 시집을 묶을 때는 자기검열이 엄청 심해지더라구요. 시를 넣고 빼고 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구요. 결국 첫 시집은 44편만 남게 되었죠. 또 제가 첫 시집을 출간할 당시에는 지금과 상황이 달라서 시집 출간이 쉽지 않았습니다. 출판사를 결정하는데 또 시간이 걸려서 여러모로 늦어지게 되었어요. 두 번째 시집은 박사논문과 평론집, 대담집 등의 출간으로 생각보다 늦어지게 된 거구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평생 시를 쓰지 않겠습니까. 긴 안목으로 보면 시집의 권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몇 십 년 쓴 후에는 출간한 시집이 10권이건 5권이건 크게 중요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런 마음 때문에 출간이 더뎌지게 된 것이기도 하죠. 의미있는 시집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성규 : 첫 번째 시집보다 두 번째 시집은 보다 실재적 세계에 많이 접근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시간이 많이 지난 질문인지는 모르지만 첫 시집에 비해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하실 때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지요.

 

이재훈 : 첫 시집 이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하늘에서 내려와라. 우주와 하늘에서 신들과만 놀고 있다고. 땅에 내려와 인간들하고도 놀자고. 그런 말들에 영향 받았을 거예요. 두 번째 시집은 내 실존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렸다고 할까요.

 

김성규 : 시를 쓰고 그것에 다가가려는 시간이 짧은 순간 완성될 수 없듯이 선생님 시는 줄곧 성배, 순례라는 시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신이나 절대에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이 많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다신교적인 방식이 많이 등장합니다. 선생님 시에서 종교나 신화적 사고가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재훈 : 아마도 유년시절부터 내면화된 종교적 경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춘기 때부터 종교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어요. 전통이 아닌 비전통의 교리 등을 기웃거렸죠. 결국엔 돌아 돌아왔지만 그런 내면적 경험들이 시에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종교라는 것을 의식하고 쓴 적이 없어요. 습관화된 제 언어 속에서 그런 것들이 드러나는 건데요. 그렇기에 제 시는 영성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말인 것 같아요. 아무튼 신화와 영성 등의 주제는 계속해서 제가 탐구하고 싶은 주제입니다.

 

 

 

김성규 : 첫 시집 첫 번째 시가 「사수자리」라는 시입니다. 마지막 시는 「결별의 노래」이구요. 두 시 모두에서 빛이라는 상징이 드러나는데 이 빛(별)으로 가기 위해서는 “쭈글쭈글해진 어머니의 배”, 이마 위에 “주름이 깊어 눈이 감기고”라는 이미지가 나옵니다. 마치 성스러운 곳으로 가기 위한 통과제의처럼 보입니다.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재훈 : 「사수자리」는 존재의 시원에 관해 혼몽하는 시이고, 「결별의 노래」는 시원에서 다른 물음으로 이동하려는 다짐의 시라고 말할까요. 통과제의는 맞는데 성스러운 곳으로 갈 지는 모르겠어요. 오히려 더 속악한 곳으로 가지 않을까요? 하하.

 

김성규 :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도 크게 보면 별자리의 하나인데 이 시집에서는 「안드로메다 바이러스」같은 경우는 외계인의 침입으로 인한 지구인들의 종말이라는 SF적이라고 해야할까요 영화적이기도 하고 성경의 종말론적 버전도 보입니다.

 

이재훈 : 맞아요. 굳이 성경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보편화된 상상이죠. 영화에서도 많이 등장하죠. 아마 종말론의 상상은 앞으로 영원히 반복될 테마겠죠.

 

김성규 : 「매일 출근하는 폐인」에서 “출근길 지하철 입구에 눈먼 소녀가 앉아 있다./ 소녀의 귀에서 누렇게 익은 곡식 낱알을/ 새가 쪼아 먹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굉장히 선명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인데요 이런 상징들이 생활인으로써의 시인,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시인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재훈 : 상징은 일상이 내면화되어 나온다고 생각해요. 실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그걸 보지 않으려는 것뿐이죠. 왜냐면 끔찍하니까요. 지하철 입구의 소녀 이미지도 상상이 덧붙여지긴 했습니다만 실제 그렇게 느낀 이미지에요.

 

김성규 : 「겨울 숲」이라는 시는 <형의 이해하기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시인들에게도 그렇지만 창작이라는 허망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묘비도 없이 바람에 존재를 실어 버리는 게/ 가장 행복한 결말이라고” “신문에도 남지 않았던 그의 결말은/ 그가 진정 원하던 것이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저는 마지막 구절이 가슴 아프게 읽혔습니다. 사적인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이 시에 얽힌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이재훈 : 시의 실제 모델인 형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십대 초반에 병으로 돌아가셨죠. 방황하던 제 친구들의 정신적 우상이었어요. 병을 앓다가 독학으로 공부해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했는데 졸업도 못하고 돌아가셨죠. 그 후 십년이 훨씬 넘어 그 형에 대한 시가 나오게 된 거에요. 시 쓰는 사람들처럼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욕망이 강한 이들은 없을 겁니다. 이 땅에 무분별하게 널려 있는 시비를 봐도 그렇죠. 이름은 그렇게 남기는 게 아니란 것을 그 형이 알려주었다고 할까요. 단 한 사람의 가슴에라도 그 이름이 새겨진다면 정말 훌륭한 거죠.

 

 

 

김성규 : 「침묵의 세계」에서 보면 선생님 태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호랑이가 어머니 치맛자락을 물었다는 것인데, 일찍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뒷 구절을 보면 선생님이 평소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려집니다. 대부분 시 쓰는 선후배들이 선생님을 굉장히 포용적인 성격이고 베푸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얼핏 보면 태몽에 호랑이가 나온다는 것은 굉장히 도전적 인간형이라는 것인데, 포기하는 법을 배운 시인이 되신 이유나 어릴 적 어머니에 대한 기억 같은 것을 듣고 싶습니다.

 

이재훈 : 태몽은 실제 어머니에게서 들은 것이고요. 아마 실제 성격과 달리 내면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불덩어리를 끌어안고 사는 거 같아요. 그걸 본 사람들은 몇 없죠. 아마 그래서 시인이 되었겠죠.

 

김성규 : 다른 시인들과 달리 선생님 시에서는 유년에 대한 기억이나 현실에 밀착한 시들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시속에서도 그런 경험들이 얼핏얼핏 드러나고 전면적인 모습은 많이 감추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선생님 시의 방법론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독자로서 많이 궁금합니다. 유년시절이나 성장기는 「서태지 세대」에서 잠깐 나오는데 말씀해주세요.

 

이재훈 : 파란만장했죠. 어릴 때는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와 같은 삶이었다가 머리가 좀 굵어지고 나서는 데미안처럼 성(聖)과 속(俗)을 이리저리 방황했다고 할까요. 하지만 삶의 경험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데 대한 부끄러움이 있어요. 천성적인 성향 같은데 많이 망설이는 것 같아요. 유년시절에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그 시절에 대해 쓴 시들도 많이 있는데 「영월에서 온 편지」라는 시도 있고 다른 시편들도 많지만 시집에는 일부러 넣지 않았습니다.

 

김성규 : 「물에 대한 사소한 변론」이나 「대황하」 연작에서는 물이미지에 대해 많이 나옵니다. 물이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고 폭력적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특히 황하 연작은 무려 11편이나 나옵니다. 연작시가 거대한 서사가 없다면 쓰기가 힘들고 또 「대황하」는 시가 굉장히 역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방법론적인 특성을 보면 어조도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재훈 : 물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고, 그 이미지가 마치 돌풍처럼 제게 왔어요. 누런 황톳물이 굽이치며 제 속으로 출렁였죠. 원래 11편보다 더 많이 썼는데 선별한 거죠. 같은 이미지의 연작시이지만 모두 다른 방식으로 시가 나왔기 때문에 어조도 다르게 나온 걸 거에요.

 

김성규 : 다른 시 「돌」도 물질적 이미지인데요. 이 시를 보면 돌과 달의 유사성에서 시작해 돌이 어머니 같기도 하고 피와 온기를 가진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집니다. 전통 신앙에서 보여지는 임신과 출산에 관여하는 신적 존재, 애니미즘 적이기도 하고, 선생님의 기존 시에서 추구했던 신성성과도 연관돼 보입니다. 마지막에 돌에 머리를 숙이는 장면에서는 어떤 숭고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전봉건 선생님의 돌 연작시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한편의 시가 가진 매력으로써도 감탄한 시입니다.

 

이재훈 : 「돌」이라는 시는 지금보다 앞으로 할 말이 많은 시입니다. 지금 ‘돌’에 관한 연작시를 쓰고 있습니다. 제목은 각기 다른데 모두 돌에 대해 썼어요. 이미 10편 넘게 썼습니다. 돌은 언제든지 우리의 발에 채이지만 가장 무한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물질입니다. 돌의 기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죠. 가장 성스러운 존재였다가 가장 희화하는 존재이기도 해요. 돌을 숭배하기도 하지만, ‘돌대가리’라고 놀리기도 하죠. 전봉건 선생의 돌 연작도 제가 좋아하는 시편들이죠. 이미 많은 시인들이 돌에 대해 썼지만 저는 다른 방식으로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성규 : 자서의 마지막 구절에서 선생님을 방황하게 만들 수많은 것들과 고독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방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곧 문학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을 것 같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이제 내 바람은 멋있게 늙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혹시 다음 시집의 계획이나 앞으로의 바람 같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재훈 : 말 그대로 멋있게 늙는 게 바람이구요. 때가 되면 나오겠지만 세 번째 시집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사진을 곁들인 산문집도 한 권 내고 싶고요. 눈 오는 날 창밖을 보며 아주 천천히 따뜻한 정종 한잔 할 수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어요.

 

김성규 : 사진까지 곁들인 산문집이라면 좀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산문집이 기대됩니다. 세 번째 시집 출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든 정종 한잔 이라면 열일 제쳐놓고 나오겠습니다. 오늘 만남 즐거웠습니다.

 

이재훈 : 예, 김성규 시인도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쓰길 기대하겠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도시의 빌딩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불빛들, 어디선가 외팔이 소년이 “천사와 함께 비탄의 노래를 부르는” “아름다운 시간”(「연옥의 산」)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재훈 시인은 지금까지 두 권의 시집을 냈다.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2005), 『명왕성 되다』(2011)는 한국 시에 이제까지 부족했던 신성함과 절대성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1998년에 등단했으니 그동안 출간한 두 권의 시집은 과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발표작들을 엄선해 뽑아놓은 시집 속엔 침묵 속에서 발화하는 시의 언어들이 행간에 심겨져있다. 속된 세계에서 신성한 언어를 길어올리려는 그의 과업은 속도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무모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모든 허공과 모든 공허 속에서 이는 바람을 혼자 듣고 있는지 모른다.

 

_ <시향>, 2014년 봄호.

 


 

이재훈 : 1972년 강원도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저서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부재의 수사학』,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다.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김성규 : 1977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너는 잘못 날아왔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가 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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