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한국서정시문학상 특집 | 대담
이재훈
_시원에 대한 원대한 물음을 던지는 고백록
대담 : 이재훈 이성혁
♣ 내면으로의 속삭임 이성혁 : 안녕하세요? 이재훈 시인, 반갑습니다. 사실 평소 이재훈 시인에게 말 놓고 지내지만 많은 독자가 보는 지면에 실리는 인터뷰이니만큼 말을 올릴게요. 이렇게 만난 게 오랜만은 아니네요. 어쩌다가 이곳저곳에서 만나곤 하니까요. 우선 2017년 한국서정시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한국서정시문학상’은 백석대학교와 <시사사>가 공동주관한 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이 제3회째죠? 재작년에는 조정권 시인이, 작년에는 김명인 시인께서 수상하셨습니다. 올해는 그보다는 비교적 젊은 시인인 이재훈 시인이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보니까 지난 1년 동안 출간된 시집에 상을 주는 것 같은데요. 좀 어색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소감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이재훈 : 네. 반갑습니다. 이성혁 선생님. 저도 이 자리에서는 형이 아닌 문학평론가 선생님으로 말씀 올리겠습니다.(웃음) 또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지요? 학기가 끝이 나고 이렇게 마주하니 마음도 더 편하고 좋습니다. 이성혁 선생님은 특별한 비평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시단의 중요한 평론가입니다. 이렇게 대담을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성혁 : 아, 그렇군요. 작품상 개념이군요. 한 편이 아니라 여러 편에 상을 주는 것이 특이합니다. 그리고 ‘한국서정시문학상’이라는 명칭이 인상적입니다. 시의 본령은 서정에 있다는 말은 많이들 하는 말이지만, 2000년대 한국 시단에서 서정이라는 장르 개념에 대해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었죠. 그래서 서정시로부터 일부러 일탈하는 시들이 많이 등장했고요. 2010년대 중반에 ‘한국서정시문학상’이란 명칭의 상이 제정된 것은 최첨단의 21세기에 다소 천대(?)받게 된 서정을 다시 아끼고 보듬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이재훈 : 선생님께서 한국서정시문학상의 취지를 아주 잘 설명해주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는데요. 다시 한 번 찾아보니 ‘한국서정시문학상’이 추구하는 서정시는 “과거의 낡은 서정시가 아니라 미래의 새로운 서정시이고, 미학적 모더니티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는 서정시를 찾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 시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통서정시의 범주가 아니라 좀 다른 서정시 쪽에 속한다는 지점 때문에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은 것이겠지요. ♣ 난독의 시간들 이성혁 :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제 생각으로는 문학에서는 고전적인 것이 모던한 것이라고 봅니다. 고전이란 당대에 가장 치열하게 대응함으로써 얻게 된 위상이라고 본다면 말이죠…. 초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말이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문학과 만나게 되었는지 물어봐야겠어요. 방금 인용한 ‘시인의 말’의 제목은 흥미롭게도 「흠의 고백」입니다. 이 글을 보니, 어린 시절 말에 서툴렀으며 잦은 이사로 이사 간 동네의 방언들을 새로 익혔어야 했다고요. 그래서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의식을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흠’이 이재훈 시인을 시로 이끌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말과 사물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니 말입니다. 그 후, 네루다의 「시」에서처럼 시가 시인에게 왔다고 고백하고 있는데요, 이 글이 무척 짧은 글이라서 어떻게 이재훈 시인이 시를 영접(?)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기는 힘드네요. 이 기회에 이재훈 시인이 어떻게 시와 만나게 되었는지 시인의 말을 직접 들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아마 적지 않은 시간을 습작에 바쳤을 것인데 습작기의 생활도 알고 싶고요. 제가 언제 이재훈 시인이 무척 고독한 청년 시절을 보냈다는 말을 직접 들은 것 같은데요. 아주 오래전 술 마시면서 들은 것이라 구체적인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청춘의 대부분 시간을 방에 홀로 있으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보냈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 있는데 맞습니까? <벌레 신화>에 실린 「불혹」의 한 구절인 “엎드려 시를 쓰는 사람”이 바로 청춘 시절의 이재훈 시인 자신을 말하는 거겠죠? 말이 좀 엉켰습니다. 질문을 정리하자면, 등단 이전 이재훈 시인이 어떻게 시와 만나게 되었고 습작기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재훈 : 어린 시절은 전학을 많이 다녔습니다. 전학을 간 그곳에서는 늘 이방인이었죠.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로 다녔습니다. 늘 이전에 살았던 곳을 그리워했고, 늘 이전에 살았던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는 적응을 못하고, 늘 이전의 곳을 생각했던 거죠. 그리움이라는 병에 걸렸던 것 같아요. 제게 시는 예기치 않게 찾아 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거의 시를 읽지 않았어요. 책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시를 읽지는 못했는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때까지의 몇 년의 백수 시절 동안 시를 많이 읽었습니다. 저는 그때 존재론적 고민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종일 도서관에 가서 아무 책이나 찾아 읽는 난독의 시간들이 이어졌어요. 한동안 소설에 빠져 지냈습니다. 그러다 시를 만난 것입니다. 시를 읽으니 마치 운명처럼 시가 널 구원해주리라, 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이때부터 이 땅에 있는 모든 시집들을 읽어보겠다고 덤벼들었습니다. 시병, 시마에 들린 거죠. 그 이후로 시를 읽는 나날들로 이십 대를 가득 채웠죠. 그 당시의 추억과 얘기들은 대하실록 정도의 분량이 되기 때문에 이쯤에서 말을 거두겠습니다.(웃음) 이성혁 : 네. 언제 소설 형식의 청춘기를 써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재밌을 것 같은데요? 이제 이재훈 시인의 이력을 보겠습니다. 시인은 1998년 <현대시> 신인상을 받으면서 시단에 등단합니다. 1972년생이니 스물일곱에 등단을 했네요. 요즘 추세로는 꽤 빨리 등단한 셈입니다.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가 2005년에,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가 2011년에, 세 번째 시집 <벌레 신화>가 2016년에 출간됩니다. 등단한 지 20년이 다 되었는데 시집을 세 권 내었군요. 다작은 아니네요. 요즘 시인들은 삼 년에 한 권씩 내곤 하던데요. 이재훈 : 습벽이 있거나 원칙을 정해 놓은 것은 아니고요. 제 시집이 한 편의 격정적인 영혼의 드라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시와 마지막 시의 배치와 중간 중간 시의 배치를 많이 고심했었죠.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3부로 짜여진 것이고요. 질문으로 시작되어 떠남과 방황과 탐험과 회귀의 드라마인 것이죠. 마치 원탁의 기사가 성배를 찾아 나서는 모험처럼 읽힐 수 있다면 하고 과욕을 부린 것인데, 시에서 그런 바람은 요원한 일이었지요. 나중에 단테의 <신곡』 같은 작품을 한번 써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성혁 : 그리 될 것 같아요. 시를 쓰지 않으면 못살 것 같은 사람이 있는 데 이재훈 시인이 꼭 그렇습니다. 지금부터는 세 시집의 시세계에 대해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은 예전에 읽었습니다. 두 번째 시집에 대해서는 <현대시>에 평론을 쓰기도 했지요. <벌레 신화>는 이번 기회에 정독했습니다. 물론 이전의 두 시집 역시 다시 정독했어요. 첫 시집부터 질문을 드릴까요. 이재훈 시인의 첫 시집을 다시 읽으면서 ‘아, 뜨거운 시집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시인의 표현을 따르면 ‘시원’에 대한 열망이 불타오르는 시집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시집 해설에서 유성호 선생님께서는 종교적 경험을 읽어내고 계시는데, 해설을 읽기 전에 전 신화의 인유가 참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헬레니즘적일뿐만 아니라 헤브라이즘적인 신화가 다방면에서 인유되고 있어요. 이재훈 : 제 시에서 종교적 기표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신화적 기표가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접했으니까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신학을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종교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어요. 그러니까 시집을 읽기 전부터 종교서적을 읽었던 거죠. 초등학교 시절에는 산골에서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기만 했어요. 동화책이나 위인전이 있기는 했지만 전혀 읽지 않았죠. 산골에서 동화책을 읽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기억나는 것은 어린이 잡지를 좋아했어요. 『어깨동무』, 『새소년』, 『소년중앙』을 자주 구입해서 보았죠. 송년호나 신년호는 부록선물 때문에 빼놓지 않고 용돈을 모아 샀어요. 용돈은 동네 개울에서 민물고기를 잡거나 산에 가서 도토리를 주워 내다 팔아 모았는데요. 지금 그런 얘기를 하면 믿지를 않아요. 제가 워낙 산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윗세대들의 경험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검정고무신까지 신어봤거든요.(웃음) 특히 집에서 『새벗』이란 잡지를 구독했었어요. 아마 기독교잡지여서 아버지께서 구독을 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아버지는 월부 책장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객 중 한 명이었습니다. 월부 책 때문에 어머니와 많이 싸우셨죠. 살림이 궁핍해서 산에서 나무를 해왔던 시절에 책이라니요.(웃음) 『어깨동무』가 박근혜의 육영재단에서 발행했다는 것과 『새벗』을 발행한 분이 한국시협 이사이자 성서원 회장으로 있는 김영진 시인이란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었습니다. 이성혁 : 이재훈 시인도 대단한 독서가였군요. 시인들의 독서담을 들으면 주눅들더라구요. 내가 안 읽은 책들이 많이 언급되어서. 질문을 한 내가 잘못이지.(웃음) 시 세계로 돌아가겠습니다. 첫 시집에서 보여준 신화적 상상력은 <벌레 신화>에 이르기까지 변주되어 나타납니다만, 첫 시집은 도시적 서정 또한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재훈 시인은 도시적 상상력과 신화적 상상력을 결합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이재훈 시인 시의 독특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재훈 시인은 ‘도시 시인’ 중 한 명이라고 할 만큼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시를 최근 시집에까지 남겨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 공간은 웅장한 신화로 각색이 되어 환몽 속에서 도시적 서정이 표현됩니다. 이를 김혜순 시인은, 아까 인용한 표사에서 “‘빌딩나무 숲’인 이곳에 사막과 우주와 원시의 시공을 겹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재훈 : 저는 강원도에서 초등학교 때까지 보냈습니다. 영월, 횡성, 인제 등지에서 보냈는데요. 아주 척박한 산골 오지에서 보냈어요. 그곳의 기억과 체험이 시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거의 등장하지는 않죠. 제게 강원도의 유년 시절은 가장 그리운 원형적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곳에서의 경험은 제 기억에서 아주 아름답게 남아 있어요. 냇물을 직접 마시고, 밭의 작물을 캐 먹고, 들의 과일을 따 먹으며 돌아다녔는데요. 어쩌면 유토피아의 세계와 같은 곳이 제가 태어나고 유년시절까지 자란 강원도이죠. ♣ 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순간 이성혁 : 그 점이 이재훈의 시가 미학적 모더니티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만들지 않았나 합니다. 도시는 모더니티의 공간이라고 할 때 ‘이재훈의 서정시는 모더니티의 현장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재훈의 서정시에는 모더니즘적인 것과 낭만주의적인 것이 결합되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이재훈 시인은 이 모더니티의 공간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화하면서 시에 수용하고, 나아가 비판하고 초월해야 할 공간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미학적 모더니티의 시적 태도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미학적 모더니티를 달성하는 거리화의 방법이 이재훈의 시에서는 도시의 일상과 신화적 세계를 겹쳐놓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어요. 이재훈 : 제 시의 시공간이 아주 넓은 편인데요. 그건 제가 골몰한 창작 방법론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의 주제를 어떻게 하면 잘 담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그렇게 넓은 시공간을 사용하게 되었어요. 그게 제 언어 호흡에도 맞고 재미도 있으니까 반복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가령 도시 속에서의 자아와 우주 속에서의 자아가 만나고 사라지고, 다시 만나고 관계를 맺는 상상이 실존 속에서 아주 고통스러운 형국으로 진행되었다고 할까요. 선생님께서 얘기한 이 ‘우주적 시야’는 앞으로도 계속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성혁 : 아, 기대됩니다. <이형기 시전집>이 출간되는군요. 출간되면 한 권 주실 거죠?(웃음) 두 번째 시집에 대해 더 듣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시집에서 제가 주목했던 시는 「대황하」 연작시입니다. 시집의 중추를 이루는 2부에 집중적으로 실려 있는 연작시이지요. 11편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여기서 ‘황하’는 중국 대륙의 황하가 아니라 사막의 바다를 의미하는 것이죠? 사막은 바로 문명의 공간을 의미하고요. 아니 황하는 도시라는 사막을 일차적으로 비유하는 데 그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중층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황하는 모래의 강이자 시체들의 진물에서 나온 ‘누런 황토물’이 범람하는 강입니다. 이 연작시는 이재훈 시인이 가지고 있는 도시 문명 세계에 대한 지독한 환멸을 강렬한 언어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재훈 시인의 시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시이며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미지가 근대적 삶에 대한 극한의 부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재훈 시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시를 썼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이재훈 : 이거 너무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대황하」 연작에 대해서는 저도 공들인 시편들인데, 평단에서는 거의 언급이 없었습니다. 시인들 사이에서는 많이들 얘기가 되었었는데요. 선생님의 대황하에 대한 해석은 제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이 적확한 것입니다. 물론 또 다른 여러 해석도 가능합니다. 제가 대황하에 대한 해석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고요. 다만 몇 가지 체험에 대해서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성혁 : 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이었군요. 전 주로 도시 문명 비판이라는 측면에서 보았는데 말이죠. 그럼, 이제 작년에 출간된 <벌레 신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참 독특한 제목이에요. 여기서 ‘벌레’는 무엇을 의미할지 궁금했어요. 시집 해설자인 장은수 평론가가 포착했듯이 뿔을 잃고 난 존재가 벌레인가요? 「뿔」은 이 시집에서 많은 주목을 받은 시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도 그 시를 어떤 문예지에 실린 것으로 전에 읽었어요. ‘뿔’은 시적 영혼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뼈대와 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 뿔을 잃었다고 당신은 그 시에서 말하고 있어요.
이재훈 : 아주 잘 읽어주셨습니다. 뿔과 벌레에 대해서 제가 더 보탤 말이 없습니다.(웃음) 벌레는 이 땅에 살아가는 아주 작은 존재들입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아주 쉽고 간단하게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존재이죠. 이런 존재는 현대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시인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런데 제가 끝까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그러한 벌레의 존재도 긍지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긍지를 표상하는 상징이 시인이 아닐까 생각했죠. 시인은 이 세계를 좀 다르게, 혹은 특별하게 생각하고 싶은 존재들이니까요. 또한 시인은 이 세계와 세계의 모든 관계를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자들이며,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자들이니까요. 우리도 먼 우주에서 보면 그런 존재들이죠. 인간이 벌레를 보는 것처럼 아주 작은 존재들이겠죠. 한 그늘에서 또 다른 그늘로 제 몸을 옮기는데 평생을 바치는 존재. 이 존재가 긍지를 갖는 순간,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죠. 벌레에게는 한 번쯤 희망의 순간도 있다는 것입니다. 벌레는 탈피를 하면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될 수 있으니까요. 벌레는 너덜너덜해진 육체를 벗어던지고 날개를 가진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행운을 얻기도 합니다. 우리의 영혼도 그런 희망의 순간을 찾아 매번 순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매 순간 아주 짧지만 그런 순례의 순간을 찾아 이 삶을 견디는 것은 아닐까요. 신화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순간. 우리의 영혼이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순간. 지금 이 땅의 삶 너머를 생각하는 순간. 신화의 시간이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속적으로 시 속에서 그려내었던 신화적 상상력이 벌레를 통해 발현한 사건이 그러한 시편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성혁 : 네, 잘 들었습니다. 비상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해주셨네요. 난 좀 더 암울한 세계를 이 시집이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만. 이 시집에 대해 더 얘기해보지요. 이 시집의 1-2부를 보면 두 번째 시집, 특히 「대황하」 연작에서 보여준 이 문명 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전혀 바뀐 것 같지가 않습니다. 신화적 소재를 통해 현대 문명을 극히 부정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몇몇 시에서도 여전합니다. 「맘몬과 달과 비」라든지 「스틱스」 같은 시가 그러하죠. 특히 후자의 시에서는 “높은 건물을 지어 벽을 만들고/ 지폐를 만들어 불행을 깁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스틱스 강에서 “스스로 얼음을 깨고 몸을 넣는” 이들로 나타납니다. 도시인들은 끔찍하게도 스스로 죽음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들로 등장하는 것이죠. 이를 보면 이 시집에는 묵시적 상상력이 더욱 짙어졌다고도 느껴집니다.
이재훈 : 뭔가 들킨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너무 꼼꼼히 읽으셔서요.(웃음) 시집의 3부와 같은 시는 예전에도 종종 써오던 세계였습니다. 문예지에 발표할 때는 종종 선보이던 세계였지요. 제가 쓰는 시는 이렇게 천차만별입니다.(웃음) 대신 그 전 시집에는 이러한 세계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얘기한 ‘동화의 세계’를 못 보여준 것이죠. 왜냐하면 제가 한 100여 편 정도 시를 발표했을 때 비로소 시집을 묶어볼까 하고 생각하거든요. 그중에서 시집에 들어갈 시를 선하다 보면 꼭 얘기하고 싶은 시들을 먼저 넣다 보니 빠진 시들이 많았던 거죠. 그러니까 시집이 추구하는 방향을 정하고 시를 꾸리다 보니 그 방향성과 조금 다른 지점에 놓인 시들은 자연스레 빠지게 되곤 합니다. 시인들은 이런 경험을 많이 할 겁니다. 저도 그런 경우인데요. 이번 세 번째 시집의 3부는 시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동화의 세계’가 끼어들어갈 여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시집을 출간하고 다시 보니까 시집의 균형도 맞는 것 같아 이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분법을 넘어서는 언어를 위해 이성혁 : 그렇군요. 시집을 놓고 이재훈 시인의 시세계를 생각하다 보니까 두루두루 살피질 못했어요. 시집 편집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네요. 그런데 3부 시에서 보여주는 ‘우리’에의 지향이 나쁜 정치 아래 놓여 있었던 한국의 상황, 그리고 그 정치에 저항했던 많은 움직임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의 움직임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벌레 신화>의 맨 마지막 바로 앞에 있는 시인 「악행극」에서 시인은 “당신은 물었습니다. 가슴에 촛불을 켜고 저 이글거리는 광장에 나가지 않았느냐고.”라는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을 옮겨놓고 있습니다. 그간 이재훈 시인의 시에서 거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동반하면서 숱하게 등장하지만 광장이 등장하는 건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시집을 통해 이재훈 시를 읽어서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시집이 출간된 이후입니다만, 작년 11월 6일자 『경향신문』에 이재훈 시인의 광화문 촛불 집회 현장 기사가 실려 놀랐습니다. 이렇게 대통령 퇴진이라는 정치적 요구를 위해 이재훈 시인이 일간지에 글을 쓰고 실었다는 사실이 뜻밖이었습니다. 작년 말부터 일어나 대통령 탄핵 때까지 지속되었던 들불 같은 촛불이 이재훈 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재훈 : 먼저 얘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시집 출간 이후 「악행극」을 작년 광장의 일과 유비해서 읽고 감명을 받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시입니다. 그런데 더 정확히 얘기하면 「악행극」은 2016년 탄핵으로 인한 광화문에서의 광장이 아니라 그 전에 광우병 때 광화문에 있었던 촛불시위의 체험으로 쓴 것입니다. 촛불과 광장의 체험은 같지만 그 시기가 달랐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악행극」은 몇 년 전에 쓴 시이거든요. 『경향신문』에 쓴 광화문 촛불집회 참관기는 문인이면서 일반 시민의 자격으로 참석했기에 그런 청탁이 들어온 것은 아닌가 합니다. 제가 11월 5일 첫 번째 광화문 촛불집회 때 참석했는데요. 처음으로 백만 명의 인파가 모였던 날이죠. 그때 초등학생인 제 딸, 아들과 함께 광장에 나갔습니다. 문인이면서 동시에 가족을 데리고 나온 시민의 입장이었기에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진 것이죠.
이성혁 : <벌레 신화>는 작년 촛불 시위 이전에 출간되었죠. 그런데 「악행극」이 몇 년 전에 쓴 시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시세계의 변화가 와서 쓴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에요. <경향신문>에 실은 글은 청탁에 의해 쓴 것이었군요. 난 시인이 투고한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시인이 생각하고 있는 서정시의 미래에 대해서 물을까 합니다. 서정시가 구태의연한 것이 아니고 언제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나간다고 할 때, 과연 한국의 서정시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요? 한국 서정시의 미래 운운하는 것이 너무 거창해서 답하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어요. 그렇다면 세 번째 시집 이후 이재훈 시인이 구상하고 있는 자신의 서정시가 나갈 방향 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해주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재훈 : 서정시의 미래나 시의 미래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제게는 없습니다. 다만 서정시의 미래가 아니라 시의 미래에 대해 희망하는 것은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시는 아주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스펙트럼도 못마땅합니다. 더 다양하고 넓은 스펙트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를 들면 영화는 컬트, 멜로, 코미디, 액션, 공포, 환타지, 공상과학, 미래, 미스테리, 서부극, 느와르, 스릴러, 전쟁, 탐정, 인권, 퀴어, 포르노, 종교, 다큐 등등 너무나 많은 스펙트럼과 장르적 언어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는 아직도 전통과 실험, 보수와 진보, 농촌과 도시, 순수와 대중, 형식과 내용 등의 이분법적 시각과 해석과 평가에 의존해 있습니다. 모두 어떤 극단에 서 있으라고 합니다. 전통의 극단, 실험의 극단에 서 있어야 관심을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명민한 시인들은 극단의 언어를 만들기에 공을 들입니다. 어떤 곳이나 극단은 예외적이죠. 그 예외는 운명처럼 우연히 나오게 됩니다. 마치 그 예외의 삶이 아니면 존재증명이 안 되는 시인들에 의해서 나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운명이 아니라 방법으로 극단에 다가가려고 합니다. 자신의 몸은 그쪽이 아닌데 언어를 과장되게 극단으로 가져가는 것이죠. 왜냐하면 외롭기 때문입니다. 시단에서 다양하고 이상하고 특별한 세계를 탐하는 시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더욱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준다면 우리의 시가 더 풍요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학의 유파는 꼭 몇 명이 비슷한 시를 써야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시인으로도 유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선례가 나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성혁 : 이분법을 넘어야 한다는 말, 흥미롭네요. 한 시인으로도 유파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의미 깊게 느껴집니다. 긴 시간, 성의 있는 답변 고마웠습니다. 이 인터뷰 덕분으로 이재훈 시인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일 거라고 믿습니다. 그럼, 여름 건강하게 보내시고 건필하시길 빌어요!
이재훈 : 네. 감사합니다. 제겐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대담자이셨습니다. 과분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현문우답을 받아 주시느라 오랜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건강한 여름을 보내는 일이 남았습니다.
한국서정시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서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서정은 무엇일까. 모든 시인들은 서정을 갖고 있을 텐데요. 제 시에서 서정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상이라는 기쁘고 즐거우면서도 다소 부담스러운, 뭔가 복잡한 심사가 얽혀 있는 그런 마음이 들었고요. 이전 수상하셨던 선생님들과 비교할 때 문학적 이력이 일천하여 부끄럽고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오래 간직할지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올해부터는 시집에 상을 주는 것은 아니고 시집 속의 작품에 상을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해서 제 수상작은 「동화의 세계」 외 6편이 되었습니다.
이재훈 시인이 이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달받았을 때, ‘아 받을 사람이 받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한창 새로운 시에 대한 담론이 시단을 들썩일 때인 2005년에 첫 시집을 냈죠. 이 시집은 전통적인 서정시는 아닐지라도, 첫 시집 해설을 쓰신 유성호 선생님의 말씀대로 “형이상학적 전율”을 보여주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전율로부터 농도 짙은 서정이 뿜어져 나오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격렬한 낭만주의적 충동이 느껴지는 시집입니다. 당시 시단의 흐름 한복판에서 젊은 시인의 첫 시집으로 이러한 서정시집이 나왔다는 것이 주목할 만합니다.
이재훈 시인은 데뷔부터 지금까지 줄곧 서정시의 본령이랄까 그것을 붙잡고 시를 썼다는 생각입니다. 첫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네요. “어쩌면, 내 말은 고백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시원의 원대한 물음이 있다.” “좀 치기로 들리겠지만, 문학하는 이유가 자기 구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문학이 구원 자체는 될 수 없겠지만 구원을 욕망하게 하는 에너지는 되기 때문이다.” 시 「쓸쓸한 날의 기록―정재학에게」에서는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라고도 쓰고 있고요. 이 문장들을 보면서 ‘이재훈 시인은 정말 서정 시인이 되고자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요? 여전히 시인에게 시와 문학은 고백이자 구원의 에너지, 시원에 대한 원대한 물음인가요?
어떻게 보면 모든 시는 서정시에 속합니다. 시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담지 않은 시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서정시는 시법과 전통을 모범적으로 계승한 시를 말하는 것이겠죠. 지금의 우리시는 전통을 모범적으로 계승한 시보다는 자기 나름대로 창조적으로 변용한 시편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서정시의 범주는 아주 넓게 확장됩니다. 제 시도 모범적으로 계승한 측면보다는 나름대로 비껴나간 시에 해당될 것입니다. 제 시는 정서와 생각이 솔직히 드러난, 파토스가 너무 강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그런 이유로 내 시는 서정성이 너무 과잉된 시라고 농담처럼 얘기해 왔습니다.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는 그런 의미에서 나온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제가 동료 시인들에게 실제로 했던 말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세간의 평가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어요. 서정적인 시인으로, 모더니즘 시인으로 이쪽저쪽에서 제 이름을 부르곤 했죠. 다만 제 시가 결단보다는 망설임을, 외침보다는 내면으로의 속삭임을 더 택했기에 기존의 언어와는 다른 언어습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방법적 고민보다 주제적 고민이 훨씬 더 많이 두드러진 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형이상학적 주제에 대한 고민과 탐구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제가 방법적 고민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주제에 대한 제 의지가 너무 도드라진 면이 있거든요. 누구나 알겠지만 좋은 시는 내용과 형식이 일체가 되어야 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계속 실패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유성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형이상학적 전율”이라는 말은 제게 과분한 단어이지만, 정말 힘이 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세간의 평가에 귀 기울이지 말고 자신이 가고 싶은 시의 길을 혼자서 가거라 하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저는 아직도 고전적인 문학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시를 종교적인 구원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구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시가 고백이자 구원의 에너지, 시원에 대한 원대한 물음이라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제게 계속 유효한 말입니다. 첫 시집의 시인의 말은 앞으로 이런 시를 쓰고 싶다는 포부와도 같은데요. 시를 쓰면 쓸수록 어려운 길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웃음)
그런데 세 권의 시집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어떤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더군요. 보통 4부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3부로 구성했을까. 이재훈 시인의 성격이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하구요. 또한 세 시집 모두 처음 시와 마지막 시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수미상관이라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시집 한 권이 어떤 시적 영혼의 모험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하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 역시 시인의 의도에 따른 것일 텐데, 시집 편집할 때 어떤 원칙이나 습벽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등단 햇수에 비해서 시집이 적다고들 말씀하시는데요. 그건 시집 출간 시스템이나 저의 게으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데요. 시집의 권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의미 있는 시집을 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로 스스로 위안을 삼고는 합니다. 제가 등단했던 때에는 시를 발표하기도 시집을 출간하기도 어려웠을 때였습니다. 원고료도 없이 시를 발표한 게 훨씬 더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가장 열정적인 때였습니다. 이십 대이기도 했고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시를 쓰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제 바람은 가늘고 길게 오래오래 시를 쓰는 것입니다.(웃음)
이 신화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열망의 표현이 이재훈 시인의 서정을 독특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정시는 서정을 이끄는 어떤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재훈 시인의 초기 서정시에는 이 신화적 상상력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상상력이 신화적이니, 표사에서 김혜순 시인이 말씀하시듯 “이재훈 시의 시공은 광대”해지게 됩니다. 이재훈 시인에게 종교적 상상력 또는 신화적 상상력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이러한 상상력이 키워진 것은 젊은 시기의 독서 체험이나 실제 경험과 관계가 크겠는데, 이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교회를 다녔으니까 어린 시절의 종교적 체험과 성경의 언어들이 내면화되어 있었겠죠. 사춘기 시절부터 제 존재와 세상의 이치와 비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집에 있는 책들 대부분이 신학이나 종교와 관련된 책이어서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죠. 라인홀드 니이버, 워치만 니 등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저희 집에서 『기독교사상』이란 잡지를 구독했는데요. 그 잡지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나요. 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의 책도 신기하고 궁금해서 많이 읽었죠. 문학책으로는 보들레르의 시집과 까뮈 전집이 있었어요. 세로판으로 된 양장본인데요. 보들레르의 시집은 아직도 본가에 있을 겁니다. 그 책들도 독파했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무슨 뜻인지 알고 읽었을까 싶습니다. 그저 그때 존재의 갈망으로 무엇이라도 읽어야 했던 시절, 그 언어들이 내면화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 이후에는 헤르만 헤세, 단테, 파스칼, 몽테뉴, 조셉 캠벨, 엘리아데, 샤르뎅, 폴 리쾨르 등은 제가 자주 펼치는 목록들입니다. 그 중에서 헤르만 헤세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의 구도자적 삶과 운명적 슬픔에 대해 깊이 공감했어요. 헤세의 모든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되어 제가 마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읽었죠. 첫 번째 시집을 내던 시절에는 북유럽 신화나 성배와 연금술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 들쳐보았습니다. 요즘에는 미술사학자 노성두 선생님이 번역하신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배』를 흥미롭게 들춰보고 있어요. 이런 독서에 대한 수다는 나중 뒤풀이에서 많이 말씀드리도록 할게요.(웃음) 아마 이런 독서 경험들이 제 언어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재훈 시인은 서울 생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지금까지 오랜 기간 살아왔잖아요. <벌레 신화>에도 도시에 대한 묵시적인 상상이 보이지만 이 첫 시집에도 도시는 부정적이고 초월해야 할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젊은 시절 이재훈 시인에게 도시에서의 생활은 어떠한 곳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 또한 도시를 이렇게 신화적 공간으로 변모시킨다는 시작詩作의 발상이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도 궁금하고요.
도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체험했는데요. 처음엔 도시가 너무 좋았어요. 심지어 자동차의 매연을 일부러 맡으러 다녔어요. 세련된 도시 냄새 같았기 때문이죠.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경상도를 거쳐 충남 논산에서 제가 살고 있었어요. 호남선을 타고 서울로 올라와 한강철교를 지날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죠. 하지만 도시의 생활은 그런 낭만적인 곳이 아니죠. 비애의 공간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였는데요. 이제는 도시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삶이 되었죠.
이런 도시의 경험은 애증이 점철된 아주 복잡한 마음입니다. 버릴 수도 없지만 사랑할 수도 없는 그런 대상이 도시가 되어버린 것이죠. 그렇기에 도시 공간이 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도시에 신화의 공간이 겹쳐지는 것은 의도한 것이라기보다 제 의지가 그리로 향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신화는 원형의 공간이며, 꿈들이 실제로 현현하는 경험의 공간인데요. 도시에서 꾸는 꿈이 바로 신화의 공간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반면에 시골의 경험은 시로 쓰기 힘들어요. 시골의 경험은 혐오가 없기 때문이죠. 실제 경험한 공간이 이상향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으니까, 시골에 대해 시를 쓰면 찬미의 형태로 나오더라구요.(웃음)
그런데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는 신화적 상상력보다는 도시적 삶에서 얻게 된 감수성이 더욱 농후해진 것 같아요. 이 시집에서도 역시 ‘우주적 시야’를 통해 도시적 삶이 포착되고 있습니다만, 표제작에서 시인이 도시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태양계 행성 지위를 박탈당한 명왕성에 비유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소외의식, 이방인 의식이 특히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안드로메다 바이러스」에서의 “그대들은/ 나를 외계인이라고 불렀지”라는 표현에서도 그러한 의식을 볼 수 있고요. 외계인인 자신이 유폐되어 있는 도시 공간과 문명에 대해서 다소 직접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이 시집에서 그러한 소외의식은 자기 부정으로, 나아가 니힐리즘으로 이재훈 시인을 이끌고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혹시 2005년에서 201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 기간에 박사 논문도 제출한 걸로 아는데, 한국 근대시에서 허무의식에 대한 연구였지요? 책으로도 출간했구요.(<현대시와 허무의식>, 국학자료원, 2007) 이렇게 부정적인 의식이 심화된 이유가 실제의 삶과 연관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 허무의식을 박사 논문 주제로 삼을 만큼 니힐리즘에 대해 파고든 이유도 알고 싶고, 시에서의 허무의식에 대한 이재훈 시인의 생각을 듣고 싶기도 합니다. 자세한 것은 <현대시와 허무의식>을 읽어봐야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잠깐이라도 시인의 허무의식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니힐리즘에 관해서는 실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박사논문 주제가 허무의식입니다. 30년대부터 60년대 시인까지 허무의식을 구현한 시인들 네 명을 분석한 것이 제 논문 주제였습니다. 유치환, 박인환, 이형기, 강은교를 중심으로 그들의 허무의식을 분석했어요. 이들은 모두 허무의식이 자신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시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인들입니다. 허무의식을 연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니체와 같은 니힐리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이들 시인의 허무의식은 시대적 체험과 문명체험, 개인의 인식 체험으로부터 배태되어 시로써 구현됩니다. 한국의 문학은 시대와 문명과 굴곡진 개인사를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을 갖고 있잖아요. 그렇기에 한국의 문학에서 허무는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문학에서 허무는 보편적인 주제가 되어 버렸어요. 현대시에 나타난 허무의식을 따라간 공부가 제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석사도 이형기를 연구했고 박사에서도 이형기 시인을 살펴보았는데요. 그런 이유로 이번에 『이형기 시전집』을 편저하게 되었어요. 곧 현대시에서 출간하게 될 텐데요. 『이형기 시전집』이 앞으로 이형기 시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텍스트가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이 시가 그러한 부정성에 그치면서 끝나지는 않습니다. 이 연작의 마지막 편인 「대황하 11」의 마지막 연에서 당신은 “붉은 눈물,/ 가만히 들어와 출렁인다./ 거리를 걷고 있으면/ 온몸이 하늘로 붕 뜬다./ 병든 몸 위에 새들이 날고 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누런 진물은 붉은 눈물로 전이되고 몸은 병들었지만 새는 날아갑니다. 이러한 긍정적 전환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집의 마지막 시인 「연금술사의 꿈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이 말하고 있듯이 “소멸이/ 내 먹는 밥이었다”는 죽음의 생성적 계기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말이 또 길어졌습니다만, 「대황하」 연작에 대한 이재훈 시인의 구상이라든지 작시 의도 등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이십 대 초반에 서울의 고시원에서 살았어요. 그때 쿠스코라는 밴드의 대황하라는 곡과 소지로의 대황하를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반복해서 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시원의 어두운 지하 골방에서 이어폰을 귀에 꼽고 대황하 연주곡을 들었던 시간들이 제게는 유일한 위안의 시간이었죠. 음악의 리듬과 음표를 따라다니며 누런 황톳물이 굽이치는 곳에서 제가 서 있는 상상을 했죠. 그럴 때면 제 존재가 전혀 다른 세계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십수 년이 훨씬 지난 후에 아주 선명하고 절절하게 다시 떠올랐어요. 모든 걸 다 우연이라고 말하면 너무 무책임하겠지만, 정말 우연히 그런 생각이 스톤헨지의 유적처럼 떠올랐지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의 들끓음이 있었고요. 숭고의 개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었죠. 그런 상상이 당시 물에서 목도한 죽음의 체험과 제 존재의 체험, 일상의 체험 등과 엮이면서 연작시가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왔어요. 모두 물이라는 매체를 통한 것인데요. 물에 대한 상상력을 극한으로 밀고 가고 싶었습니다.
여하튼, 뿔을 잃은 시인의 존재가 벌레로 비유되고 있다고 보는데, 이때 벌레는 우리가 통상 남을 비하할 때 쓰는 그 ‘벌레’의 의미인가요? 양가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긴 합니다. 바로 그 비하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표제작에서 시인이 말하듯이 그 벌레는 “대지의 증인”인 흙 위를 꿈틀대며 다니고 있으니까요. 벌레는 비상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의 시체”인 “흙의 몸” 위를 겨우 지렁이처럼 꿈틀대며 다니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벌레로 비유되고 있는 시인은 이제 낭만적 비상을 꿈꾸는 존재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한편으로 “땅을 호령하는 지배자들에게” 맞서서 흙을 증언하는 존재로서 ‘벌레-시인’이 강하게 긍정되고 있기도 합니다. ‘벌레’가 의미하는 바를 얘기해주시면서 지금 생각하고 있는 시인이란 존재의 위상에 대해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3부에서는 이러한 묵시적 장면이 거의 사라집니다. 「동화의 세계」를 읽어봅니다. 예전에는 이재훈 시가 전개되는 시간이 주로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밤이었다면, 이 시는 저녁의 시간에 스며들어 있는 “동화의 세계”를 포착하고자 하는 것 같아요 이 시를 읽고는 이재훈 시인이 무시무시한 묵시론적 신화의 세계가 아닌 천진난만한 동화의 세계에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이 동화의 세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3부는 이재훈의 시세계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당신의 시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던 ‘당신’이나 ‘우리’가 이 3부의 시편들에 등장하는 것을 봐도요. 이재훈 시인의 시는 거의 독백 아니었나요? 열정과 희구, 환멸과 고통 속에 있는 영혼의 들뜬 말들이 그간 이재훈의 시를 만들었다고 생각되거든요. 희구는 시원에의 희구여서 타인이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황금의 입」과 같은 시에 당신은 “제 몸속 나비 한 마리가 다른 몸을 찾아가는 기적”이라는 멋진 시구를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맛보는 공동체”라면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약속을 맛본다네. 그 어떤 약속도 폐기할 수 없다고 쓴다네”(「맛보는 공동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고요. 당신은 “엎드려 이제/ 스스로의 온기로 인해 나는 살겠다”(「불혹」)라고도 쓰고 “이제 혼자만 중얼거리지 않겠다”라고도 쓰고 있습니다. 이재훈의 시세계에 정말 어떤 전환이 이루어진 건가요? 아니면 원래 이재훈의 시에는 이러한 긍정성이 녹아들어가 있었는데 내가 읽지 못한 건가요?
저도 세월호 이후 많은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사회에 대한 생각과 판단들이 시민의 윤리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작품과 미학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런 고민들을 수반한 작품들을 몇 작품 쓰기도 했고요. 이 부분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시인들이 고민하고 있겠죠. 아마 앞으로 지금 우리 공동체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가 조금 더 나올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전에 제가 관심 가졌던 세계를 계속 탐구할 생각입니다. 그쪽의 공부는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시집을 구상하게 될지 확언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일단 조금만 더 써보면 일단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요. 그 모습이 보이면 그다음 시집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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