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이재훈
(시인, 현대시 부주간)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말이 있다. 사회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울수록 상식을 지키라는 말이 더 횡행한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상식이란 무엇일까.

상식이 지식의 양을 가리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취업 준비할 때 공부하는 상식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얘기하는 상식은 다른 의미이다. 최고 학부를 나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했다고 해서 상식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 내에서 서로 용인하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와 원칙을 지키라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상식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까. 위정자들은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으며, 반인륜적인 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사회의 전부면에는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으며, 노사는 갈등하고 싸운다. 놀이동산이나 공원에 가면 가족 이기주의로 몸살을 앓고, 연이은 자살 소식은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만든다.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의 시장에 몰려나와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으며,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청년들은 희망 없는 미래를 간신히 부여잡고 살아간다.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최소한의 원칙을 잘 지키는 상식 있는 사회라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비전 있는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회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두 가지의 상식을 말하고 싶다. 먼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부끄러움’을 중시해 왔다. 우리 가족이나 집안은 타인들이 보았을 때 부끄러움이 없는 구성원이 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행위 속에서 타인들을 이해하고 서로 도와주며,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 부끄러움을 안다면 공중예절을 지키고 타인들을 배려하며, 남을 먼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위정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비리와 잘못에 대해 뼈아픈 참회를 할 것이며, 욕망이 점철된 사회의 모든 공간에서 원칙과 도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 다.

또 하나는 저항할 줄 아는 청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항은 청년의 특권이며, 이 사회를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에너지이다. 문제는 그 저항이 ‘객관적 분노’여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대부분이 이해하고 긍정하는 차원에서의 분노여야 한다. 얼마전 많은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하 문제로 거리에 나왔다. 등록금 문제는 학교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렇기에 많은 시민들이 등록금 문제로 목소리를 부르짖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비단 등록금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생각한다면 더욱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늘 얘기하듯 젊음의 특권은 누리는 자만이 갖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특권을 누릴만한 토대를 기성세대가 마련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장 등록금과 취업 문제로 막막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대학생들이 현실에 매몰되거나 패배적인 생각으로 힘들게 시간을 보낸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당하게 기성세대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지 않을까. 왜 우리를 이렇게 막다른 곳으로 내몰았냐고. 우리 세대들도 정말 잘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또한 이럴 때일수록 더욱 근본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말이 선거 때에만 공약으로 유행되는 것이 아니라, 늘 최소한의 원칙과 도리가 통하는 사회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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