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서의 하룻밤
이재훈
헤아려보니 내가 운전을 시작한 지도 8년이 넘어 간다. 그러고 보면 난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다. 8년의 시간 동안 큰 교통사고 한번 나지 않고 별탈없이 지냈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참 감사하다.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운전을 하면서도 사고 한번 나지 않고 무고한 것 또한 감사하다.
아마 지금까지 차 때문에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을 꼽으라면 단연 주차문제일 것이다. 서울살이를 시작할 무렵, 당시 별도로 주차공간이 없었던 집에 세를 들어 살았다. 그러다보니 저녁마다 주차로 인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동네를 몇 바퀴 돌다가 다행히 자리를 찾아 주차를 하고 들어오면 여지없이 전화가 온다. “차 좀 빼주세요.” 그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나가야 했다. 전화라도 받지 못한 날에는 갖은 욕설과 원망을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내가 집을 옮긴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주차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차로 인해 생긴 몇 가지 추억할만한 사건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자동차가 내게 귀중한 잠자리 역할을 해준 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일이다. 대부분 차를 잠자리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장기 운전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예를 들면 트럭 기사나 택시 기사들이 그러하다. 자동차에서 자는 잠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다리도 불편하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잠자리가 없었을 때 차안은 그야말로 따뜻한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
대학시절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 충남 대천해수욕장에 바다를 보러 갔었다. 때가 겨울이었는데 당시 문학동아리를 같이 하던 친구들은 모두 겨울바다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넷이서 한 차에 타고 들뜬 기분으로 대천으로 향했다. 바닷가에 가서 차가운 바람과 무섭게 넘실대는 겨울바다를 마음껏 느끼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되돌아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문제는 시작되었다. 자동차에 휘발유가 부족했던 것이다. 우리에겐 돈이 없었고 시간은 이미 자정을 지나 있었다. 자동차에 연료부족을 알리는 경고등이 계속 켜지고 이 상태로 집까지 가기에는 무리였다. 우리는 고심한 끝에 직불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은행부스 앞에서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아침 8시가 되면 직불카드를 사용할 수 있어서 연료를 보충하고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 안에서의 하룻밤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더불어 우리의 고통도 시작되었다. 히터를 틀어서 추위는 면할 수 있었지만 넷이 차 안에서 밤을 새우는 건 고통이었다. 잠은 오지 않고 다리와 허리는 불편했다. 한 겨울 밖은 그야말로 매서운 추위로 창문조차 열 수 없었다. 밤을 지새우는 동안 우리는 라디오를 듣다가 얘기도 했다가 시간을 보냈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느끼며 우리는 설핏 잠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붉게 충혈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한없이 웃었다.
그렇게 차 안에서의 하룻밤은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중 생각하니 차가 없었다면 그 매서운 겨울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싶다. 또한 그 사건 이후로 친구들과 더 깊이 든 정(情)은 하룻밤 고통의 기억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_ <자동차생활>, 2002년 12월호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후감 (0) | 2010.10.11 |
---|---|
선후감 (0) | 2010.10.11 |
하루 (0) | 2010.02.07 |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9년 10~11월호 선후감 (0) | 2009.09.24 |
지금, 여기 (사진과 글) (0) | 2009.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