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감

 

투고된 작품들 중에서 최종심에 오른 이들은 모두 다섯 분이었다. 박병수, 이일옥, 정운희, 예외석, 하미애 제씨들이다. 다섯 분의 작품을 놓고 논의한 결과 비교적 쉽게 당선자를 선할 수 있었다. 예외석과 하미애 씨는 신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새로움과 시적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먼저 제외되었다. 정운희 씨는 기존의 시적 관습에서 일탈하여 새로운 시적 문법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그러나 시가 전체적으로 정제되지 않고 풀어져 있었다. 요즘 긴 산문시가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어서 선뜻 선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수사력은 만만치 않아 앞으로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선자로 선정된 박병수, 이일옥 씨는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시적 세계를 가지고 있는 시인들이었다.

박병수 씨는 선 굵은 진술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상상력의 시공이 크고 행간을 성큼성큼 뛰어넘는 언어의 보폭이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월식의 일종인 반영월식은 달이 빛을 잃어 어두우면서도 부드럽게 보이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짐승”에서 “별들”로, 다시 “물고기”에서 “날아가는 새”로, 또다시 “천사”에서 “새들의 조상”으로 시적 대상을 이동하면서 사유의 폭넓음을 보여준다. 결국 화자의 시선은 “남자”로 시적대상이 이동하면서 자아의 내면을 응시하고, 마지막에 월식의 이미지로 수렴된다. 박병수 씨는 시 속에서 언어를 배치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달콤한 칩거」에서 보듯 적재적소에 아포리즘과 감각이 지나간다. 시인의 일상 속으로 “낙타들”과 “악어떼”를 끌어들여 시적 자아와 함께 방목하는 상상력, 「알키투더스 추모기」에서 보이는 우화적 상상력 또한 시인을 신뢰하게 할 만하였다.

이일옥 씨는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이 인상적이었다. 「수화」에서 볼 수 있듯이 모녀가 손짓으로 주고받는 수화를 “손가락으로 말을 뜨고 있다”고 표현하면서 그 이미지를 끝까지 시에서 살려내고 있다. 또한 수화의 이미지를 ‘소통’과 ‘상실’이라는 주제로까지 결합하는 능력은 눈여겨볼 만 했다. 「검은 방문」에서 “수백 마리의 까마귀 떼,/ 검고 앙상한 군집들은 저녁 무렵 죽음을 발라내듯/ 노을 몇 줌 서쪽 허공에 게워내곤 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결코 흔치 않은 이미지이다. ‘흉’의 상징인 까마귀를 묘사하는 게 상투적일 수 있는데 그러한 점을 잘 극복해나가고 있다. 「도둑이 사는 집」에서도 술 취한 한 사내가 골목 입구로 들어가는 이미지를 “어둠의 내부를 따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일옥 씨는 오랜 동안 회화의 영역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표현해왔다. 시인은 이런 점을 잘 진화시켜 자기만의 개성적인 언어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당선자들껜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그렇지 못하신 분들껜 다음을 기약하며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본심 심사위원 : 이수익, 원구식, 이재훈(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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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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