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29) 명상하는 명왕성의 부족… 시인 이재훈

 

 


퇴출의 ‘고독’ 일탈로 달래다

2006년 8월 국제천문연맹(IAU)은 태양계 행성에서 명왕성을 제외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지름이 2200㎞ 정도인 명왕성은 목성의 위성인 가니메데나,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보다도 작고 중력이 상대적으로 약해 해당 공전 구역 내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재훈(40)은 명왕성 퇴출에서 도시인의 고독을 읽어낸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뱉어 낸다. 눈 밑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명왕성 되다(plutoed)’ 부분)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이라는 지위를 박탈당하고 ‘소행성 134340’으로 다시 명명된 명왕성(pluto)의 수동태 동사형인 ‘be plutoed’(명왕성 되다)’는 ‘완전히 새 됐어’와 같은 의미로 통용되면서 2006년 미국방언협회에서 선정한 ‘올해의 방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재훈은 이 말을 캐치해서 끊임없이 도는 서울 순환선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철컥철컥 계기판 없이 흐르는 그 ‘새 된 시간’을 시로 형상화했다. 궤도를 이탈한 현대인의 고독이 궤도가 불안정하고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된 명왕성 사건과 겹쳐진다.

이재훈은 강원도 영월군 만경대산 아래 첫 동네인 하동면 주문리 태생이다. 일명 모운동(募雲洞).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의 탄광촌이었다. 탄광촌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그는 초등학교 때까지 횡성, 인제 등 강원도 곳곳을 떠돌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래도 수줍음이 많아 새롭게 전학 간 학교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고교 때는 생업 때문에 충남 논산에 안착한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 고1 말부터 혼자 연탄불을 갈고 밥을 해먹는 자취생활을 했다. 사춘기가 늦게 왔던지, 일종의 반항심으로 나름 지역의 명문고 출신이면서도 대학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졸업 후 서울과 대전 등지를 전전하며 방황할 때 집중적으로 책을 붙들었고 문예지도 많이 읽었다. 그는 지금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밥값 저렴한 서울 용산도서관이 내 문학의 성지”라고 말한다. 당시 우동 1000원, 김밥 500원이었다.

명상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부모의 간곡한 설득으로 논산에 있는 건양대 국문과에 진학했고 방위병으로 병역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문학공부를 했다. 2학년 때부터 각종 문예지에 투고를 했고 은사인 평론가 우찬제 교수의 연구실 문틈으로 작품을 밀어 넣기도 했다. 4학년 때 월간 ‘현대시’로 등단했을 때 교문에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월간 ‘현대시’와의 인연은 등단지에서 근무지로 이어져 지금은 ‘현대시’ 부주간으로 있다.

“의욕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미소를 연습한다. 거울 앞의 수많은 표정들. 낯선 얼굴, 낯선 침묵.// 다른 말은 없다. 너를 자위케 하던 기호들. 새, 별, 그리고 꽃과 나무. 아무 생각 없이 잠들 수 있었던 그대, 라는 말을 향해.// 기록하지도 나서지도 않았던 길에 대해. 악마의 다리를 건너는 법에 대해. 꽃의 길이 아닌, 모험의 길목에 대해. 협곡 위 아슬하게 나 있는 다리에 대해. 이 땅과 영원히 이별할 수 있는 길들에 대해.”(‘매일 출근하는 폐인’ 부분)

도시 생태와 자신의 내면적 생태를 결합해 시대의 쓸쓸한 풍경을 포착하는 이재훈은 욕망으로 가득 찬 도시를 배회하는 명상가이자 ‘명왕성의 부족’을 자처함으로써 스스로 태양계 밖의 궤도를 꿈꾸고 있다. 그 궤도는 세속을 벗어나 성스러움을 체험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393349&cp=du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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