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들


이재훈


물길을 다스리지 않았다
대신 날았다
허공을 향해 매일 목청껏 부르짖었다
붉은 새 한 마리
내 울음을 채간다
햇살이 내린다
가득 내린다
투명한 햇살 사이를 날아다녔다
언제 저렇게 운 적이 있었을까
앵앵,
타인들도 모두 도망갔다
울다 지치면, 낯선 몸을 찾았다
참을 수 없는 모멸을 가득 쏟아놓았다
비가 내렸고 습도가 높았다
높은 곳에서 듣기 싫은 울음이 들렸다
그럴 땐 슬픔을 탐했다
결정적으로 영혼을 판 적도 있다
소금 가득한 물 위를 날아
독침을 질질 흘렸다
황홀하게 죽는 것처럼, 황홀하게
봄바람이 불자 온몸이 노랗게 익었다
영혼까지 맑았다

갈대 사이에 안개가 있었고
안개를 헤치면 꽃이 보인다
달콤한 꿀 위에 알몸으로 누워 있으면
말벌들이 온몸에 달라붙는다
붉은 얼굴,
벌에 잔뜩 쏘여 퉁퉁 부었다
잉잉대는 소리 들린다
나는 증명받고 싶지 않았다
고백은 얼마나 사치스러운 말인가
먼 불빛 먼 창에서
안개 흩어지는 소리
나무 부서지는 소리
앵앵, 들린다

_ 창작과 비평, 2010년 여름호




나무 부서지는 소리 앵앵, 들린다


김미정
 

  언제부턴가 울림이 있는 것들이 좋아졌다. 시도, 사람도……. 아무 맛도, 느낌도 없는 편편하고 딱딱한 관계들 속에 우리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앵~앵 소리가 내 귀를 파고든다. 치명적 독을 품고 사는 너와 나의 앵앵거림이 시 전체를 덮고 주위를 에워싼다.

  “물길을 다스리지 않”기 위해 날아오르는 날개들, 힘겨운 날개짓이며 자유를 향한 뜨거운 몸짓이다. 부조리한 현실의 삶 속에 우리는 때론 울음이 울림이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벌에 잔뜩 쏘여 퉁퉁 부”은 너와 나의 “붉은 얼굴”은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그 무엇도 증명되지 않는다. 진실은 있기는 한 것일까. 우리는 얼마나 서로에게, 또 자신에게 독침을 날릴 것인가. “달콤한 꿀 위에 알몸으로 누워있으면” 안 되는 것인가. “참을 수 없는 모멸”이 비처럼 내리고 “슬픔을 탐”하며 “영혼을 파”는 말벌들의 세상, 그 세상에서 고백은 사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고통이 없으면 생의 실감(實感)도 없으리라. 관계에 대한, 자아에 대한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의 물결이 행과 행 사이를 천천히 건너며 증폭되고 있다. 모든 상징과 비유는 일그러진 현실로 귀결된다. 현대의 삶속에 내재된 불온성과, 낯설고 혹은 날카로운 징후들을 시의 곳곳에 배치시킨다. 삶이란 상처를 치열하게 끌어안는 것인가. 삶의 이면에 숨겨진 희망의 기미를 찾아내는 시인의 아름다운 귀가 보이는 듯하다. 울음이 울림이 되고 울림이 생의 리듬이 되며 노래가 되는 삶을 꿈꾸어 본다. 한편의 시가 우리의 투명한 뒷모습을 위로한다. 잉~잉 앵~앵 끊어질 듯 이어지는 6월이다.

_ 웹진 시인광장 7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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