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섬광


이재훈


폭발하였지
구름이었어
빌딩은 연기를 머금고
도시를 달구었지
사람들은 밤을 숭배했어
큰절을 하며 인육들을 토해내는 소리
어디나 골목은 있어
나뒹굴 가슴을 찾아 헤매
아빠도 엄마도 없이 오빠들만 가득한 저녁
어떤 일몰은 두려웠지
하늘로부터 천천히 내려와 정수리를 누르곤 해
눈동자가 터질듯하고
기침이 나지
이 세계는 깨끗한 것만을 전시해
구더기도, 박쥐도, 검은 피도, 집 잃은 고양이도,
모두 숨겨
지렁이가 나올까 싶어 시멘트를 바르지
신성한 것들만 숨기는 음모들

언 땅에 도끼질을 해
먼 숲을 동경하는 일로 산책을 마무리하지
도끼의 이빨이 땅에 박히는 순간,
빌딩들은 붉은 조명을 켰어
어떤 빌딩은 핏빛으로 깜박이고
어떤 빌딩은 질질 흘러 내려

광석을 모르는 고대인들은 운석을 주웠다지
별의 살껍질을 주워 칼을 만들고
우주의 상상으로 날고기들을 잘랐겠지
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자꾸만 믿게 되는
불민의 밤이 몸에 불을 지펴
여기저기 녹색 불이 펑펑 터지고 있어
_ <웹진 문장>, 2010년 6월호


시인이 우리의 손을 잡고 순식간에 데려다 놓은 곳은 종말의 순간이다. 뒷걸음칠수록 더 빨리 다가오는 우리들의 마지막을 소녀의 걸음을 따라 보여주고 있다. 폭발과 연기가 난무하고, 골목마다 나뒹구는 우리들의 사체, 우리가 내려다보고 있는 이 광경은 깰 수 있는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의 죽음을 보며 한없이 울던 스크루지의 회한을 가져보지 못하고 우리는 빅뱅의 세상을 떠나야 할 지도 모른다. 소녀가 맨발로 겪어내는 종말의 걸음이 이렇게 아픈 건 바로 거의 소멸해버린 우리들의 영혼이 저 작은 몸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소녀가 힘겹게 휘두르는 ‘도끼의 이빨이 땅에 박히는 순간’ 빌딩은 괴물이다. 핏빛으로 깜박이고, 질질 흘러내리는 빌딩은 한때 우리가 그토록 숭배하던 문명의 아지트였지 않은가. 우리의 손을 잡아준 것이 스크루지의 천사가 아니라 문명이라는 악마였으므로 우리는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인형을 안고 폐허를 한없이 떠도는 소녀를 남겨둔 채 떠나야 한다. 언 땅을 다 풀어헤쳐도 소녀가 꿈꾸는 별의 살껍질은 찾지 못할 것이다. 너무 오래 전에 우리들이 부셔버린 약속들이 언 땅에서 자결하는 소리만 가득 메아리칠 뿐, 녹색 섬광이 펑펑 터지는 소리들,
_ 정푸른, <시와지역> 2010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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