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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17 ‘왕’과 ‘노릇’ 사이에서의 탈주, 시의 운명_ 전소영
  2. 2013.06.05 호젓이 몽해와 들길을 소요하는 석자_ 장석주 대담
  3. 2013.06.05 20130601_ 진주 이형기문학제 참석
  4. 2013.06.05 20130530_ 현대시작품상 시상식
  5. 2013.06.05 찍혔다...
  6. 2013.06.05 울산 정토사 시화전
  7. 2013.05.10 장석주 선생님 <수졸재> 다녀오다 1
  8. 2013.05.03 압구정역 <마루>
  9. 2013.05.03 故김충규 시인 1주기 맞아 유고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출간
  10. 2013.04.19 이재훈의 <고분(古墳)>을 읽고
  11. 2013.04.15 김충규 유고시집 추모시제에서
  12. 2013.03.20 사막과 구름을 오고간 시인_ 김충규 유고시집 발문
  13. 2013.03.13 황하에서 돌까지
  14. 2013.02.20 뜨거운 삶의 상징이자 존재의 이유, 어머니
  15. 2013.02.04 신생의 사건으로서의 시_ 정과리
  16. 2013.01.30 설문
  17. 2013.01.23 우리 모두는 138번째 선언자다
  18. 2013.01.02 문복주 시집 <철학자 산들이> 표4글
  19. 2012.12.07 대선과 크리스마스
  20. 2012.12.03 김태형 산문집 <작가와의 만남>
  21. 2012.11.16 <시사사> 신인상 심사평
  22. 2012.10.18 육성(肉聲)을 얻기 위한 영혼의 드라마_ 이성혁
  23. 2012.10.18 시의 심급(深級)과 심금(心琴)_ 신진숙
  24. 2012.10.17 윤성근의 시 <엘리엇 생각> 낭독
  25. 2012.10.10 송종원, <시 쓰는 일의 비밀에 관한, 혹은 시가 쓰는 비밀에 대하여>
  26. 2012.10.05 EBS 시콘서트 <詩.詩한 시간> 방송~
  27. 2012.09.26 문화예술위 <문학나눔> 패러디백일장 심사평
  28. 2012.09.23 소리없이 쌓이는 행복이라는 말
  29. 2012.09.09 [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29) 명상하는 명왕성의 부족… 시인 이재훈
  30. 2012.09.05 행복한 문학편지_ 나 명왕성 되었어(이 땅의 소외된 이들에게)

현대시작품상 이달의 추천작 / 이재훈

 

 

거리의 왕 노릇

 

 

하늘에 다리를 놓고 싶었지

구름이 다리에 걸터앉아 쉬는 풍경을 꿈꾼 거지

속도가 폐부를 훑고 지나가는 아침

햇살은 더 이상 찬란하지 않고

지루한 시간을 못 견뎌 핸드폰을 만지작대지

언제부터인가 그리워하는 시간이 내겐 없지

플래카드엔 권유와 명령만 있을 뿐

전투력 가진 말들이 길거리 여기저기서 뽐을 내지

문명의 한 구석에 제 이름을 새기려는 영혼들

왕 노릇하려고, 서로 왕 노릇하려고

생명을 능가하고, 죽음을 능가하는 이웃들

나는 왕의 언어가 없고

법의 언어가 없고

왕을 심판하는 언어가 없지

부끄러움이 없는 언어의 세계를 꿈꿀 뿐이지

이 세계에 없던 언어를 찾아 나설 뿐이지

아름다운 운율은 규칙이 아니라

당신의 입술 때문에 만들어지지

 

중얼거리는 입술로 거리의 왕이 되지

죄와 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머리들이

거리에 둥둥 떠다니고 광장엔 사람들이 자꾸 모이지

새벽녘 농부가 곡괭이를 들고 집을 나서지

새벽녘 회사원이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지

느릿하다 때론 떠들썩한 발소리가 거리에 가득하지

문득 신들이 사는 세계를 구경하고 싶었지

 

― <문학사상>, 5월호

 


 

현대시작품상 추천작을 읽고

 

 

 

‘왕’과 ‘노릇’ 사이에서의 탈주, 시의 운명

 

 

 

전소영(문학평론가)

 

 

 

 

 

 

명왕성의 사람이 있었지. 아니 그렇게 자처하는 이가 있지. 공전 구역에서, 말하자면 구심력에서 멀어졌다 하여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추방당한 지 얼마간이 흘렀나. 현실 밖의 이데아를 꿈꾸어서가 아니라 내부의 환부를 응시하기 위해, 먼 외부에 고독한 자리를 마련한 누군가는 시인이었지.

빛의 속도만큼이나 기민하게 지구에 닿는 그의 시선은 늘 첨예하게 흐벅져 있었지. 고성능의 망원경과 현미경을 번갈아 들이대는 시인 앞에서 파헤쳐지고 들추어지고 더듬어졌던 현실, 뼈아픈 자리들. 그럼에도 그의 시에서 감상을 강요하는 슬픔의 말들은 탈수되었지. 시인의 목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왔기 때문. 음파의 날개를 빌려 시가 지구에 도착할 무렵, 그것은 물기가 없어 더 서글프고 아름다워졌지.

다시 명왕성의 시인이 보낸 시에서 시대는 여전히 격발하는 것들로 웅성대고 있지. 구름이 하늘 다리에 걸터앉은 한갓진 풍경은 꿈결에서나 볼 수 있을 뿐. 도시인들은 하루의 속도가 낙오의 정도와 정확히 반비례하기라도 하듯 제 생 안에서 쉼과 틈을 지워 없앴지. 속도계처럼 몸에 붙은 휴대폰이 징표.

오래 배양되어야 하는 감정마저 옛 나라의 유물처럼 부식되는 중이지. 시인에 따르면 그리움이 유독 그렇지. 그리움이 생겨나는 과정, 지난하고 무료한 탓. 누군가를 만나 각인한다, 어떤 까닭으로 그가 부재한다, 실물은 사라져도 뇌리에 남는다, 그런데도 그를 향한 감정만은 현재형이다, 독할 만큼 선명한 현재형이다. 그리움처럼 절실하게 발아하고 단단해진 끝에 잊히지 않는 감정을 지으며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되지. 시간에 장악되는 대신 시간을 삶 속으로 초대하지. 하여 스스로가 주체임을, 살아 있음을 확인하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리워하는 시간이 내겐 없지.”

숙성의 시간을 대신하는 것은 돌진하는 말들. 흡사 심리전 때 나부꼈던 삐라의 언어들과 같은 성급한 권유, 실은 명령의 언사들에 둘러싸여 우리는 숙고를 잃고 피동형의 인간이 되었지. 호전적으로 육박하는 말들의 배후에 문명과 시스템을 장악했다 여기는 누군가가 있지. “서로 왕 노릇하려고” 타인의 생명과 죽음, 존재 자체를 간과하는 자들. 자명한 사실은 그들이 왕이 아니라는 것. 그저 왕 ‘노릇’을 하고 있을 뿐.

 

문명의 한 구석에 제 이름을 새기려는 영혼들

왕 노릇하려고, 서로 왕 노릇하려고

생명을 능가하고, 죽음을 능가하는 이웃들

나는 왕의 언어가 없고

법의 언어가 없고

왕을 심판하는 언어가 없지

부끄러움이 없는 언어의 세계를 꿈꿀 뿐이지

이 세계에 없던 언어를 찾아 나설 뿐이지

아름다운 운율은 규칙이 아니라

당신의 입술 때문에 만들어지지

― 「거리의 왕 노릇」 부분

 

시인도 시를 통해 말을 하지만 저들처럼 왕의 언어나 법의 언어, 왕을 심판하는 언어를 바라지 않지. 오히려 그가 “부끄러움이 없는 언어의 세계를 꿈”꾸기에, 그의 말은 ‘왕’과 ‘노릇’의 간극에서 빠져나와 ‘노릇’이라는 허황 자리에서 제 주인을 물러서게 하지. 부끄럽지 않은 시의 언어란 무엇이던가.

시가 노래에서 해리解離되는 것이 활자 시대의 불가피한 운명이라 해도 노래가 되지 못하는 시는 쓸쓸하지. 적어도 음유시인의 목소리가 아직 울림을 지녔던 시기, 속도는 어떤 미덕도 아니었지. 누군가의 입술을 떠난 시가 다른 누군가의 귀에 느리게 가닿을 때, 여하한 시차를 사이에 두고서라도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발견될 수 있었지. “아름다운 운율은 규칙이 아니라 당신의 입술 때문에 만들어지지”.

가닿을 이 없어 허공으로 흩어지는 언술들, 소모적이어서 부끄럽지. 수치를 몰라 일 방향적 연설을 곤두세웠던 독재자 중에는 대개 어리석은 자가 많았지. 플래카드로 대변되는 말들 대신, 시인은 새로운 시의 언어를 찾아가려 하지. ‘나’와 ‘당신’의 공존을 확인하게 하는, 내 시를 읊는 “당신의 입술”에서 완성될 “아름다운 운율”을 발굴하고자.

그럴 때 시인은 왕 노릇하는 가짜와 달라지지. 이것은 시대 안에서 시가 담당해야 할 몫을 환기시키지. 노래의 시, 혹은 운율을 매개로 ‘나’와 ‘당신’, ‘우리’를 절박하게 연결하는 것. “사람들이 자꾸 모이”는 ‘거리’를 ‘광장’답게 하며 억압적인 언어와 폭력적 구심성과 거리가 먼 새 연대의 징후나 징표로 남는 것.

이것이 시의 숙명이라 말하는 명왕성의 사람이 있지. 명왕성이 태양계의 완연한 외부가 된 지 얼마간이 흘렀나. 현실 밖의 이데아를 꿈꾸어서가 아니라 내부의 환부를 응시하기 위해, 가장 고독한 외부에 이냥 자리를 마련한 그는 시인이자 왕이었지. 거리(street)의 왕이었고 거리(distance)의 왕이었지.

 

_ <현대시>, 2013년 6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

호젓이 몽해와 들길을 소요하는 석자(錫子)

 

 

 

대담 : 장석주 이재훈

 

 

 

 

 

 

 

2013년 5월 5일. 어린이날.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장석주 시인의 <수졸재>를 찾았다. 금광저수지를 앞에 두고 책과 음악과 시가 있는 문학의 성채를 온몸으로 느꼈다. <일상의 인문학>에 나오는 약력을 보면 시인은 자신을 가리켜 ‘문장 노동자’라고 칭한다. 문장 노동자라니. 눈을 감고 깊은 세계에 빠져들고 있는 시인의 프로필 사진에서 문장가로서의 고독한 고뇌와 자부심 같은 것들이 함께 느껴졌다. 시인은 뇌의 모든 부분이 읽고 쓰는 데 최적화된 것 같다고 했다. 마치 김연아 선수의 뇌가 피겨스케이팅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듯이. 안성으로 내려와 <월든>을 집필한 숲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그 스스로 나무가 되고 풀이 되고 숲이 되는 시간들을 견뎌 마침 ‘석자(錫子)’라는 별칭을 얻게 된 내력을 어떻게 들여다봐야 할까.

이제 노년의 초입에 들어선 시인은 제주도에 새로운 집필실과 <여행자 도서관>을 만드는 게 꿈이라 했다. 이미 땅을 사 놓았고, 설계할 건축가도 있다고 했다. 몇 년 뒤 그 건축물이 지어지면 노년은 제주도에서 보낼 계획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바람 냄새를 온몸에 가득 담은 채 제주도의 <여행자 도서관>에 닿아 시인과 만나는 상상을 했다. 대담 후 우리는 중앙대 안성캠퍼스 후문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카레라이스와 돈가스를 먹었다. 그곳은 이해선 사진작가가 운영하는 <셰므아>. 사진작가가 시인을 위해 직접 내놓은 레드와인도 한잔씩 했다. 일요일 오후, 시인들의 이야기처럼 와인도 진하게 폭 익어 있었다.

 

이재훈 : 선생님 안녕하세요. 시집 <오랫동안>으로 받으신 11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몇 년 전에 제1회 질마재문학상을 받으셨지요. 그 시상식에 저도 갔었는데요. 시인으로 받는 첫 상이라는 수상소감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상은 또 다른 느낌이셨을 텐데요. 감회를 듣고 싶습니다.

 

장석주 : 첫 번째로 받은 질마재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얼떨떨했어요. 문학상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번 영랑시문학상 수상 소식은 순수하게 기뻤어요. 무엇보다도 심사위원인 김남조 선생님이나 고은 선생님 같은 대선배시인들의 따뜻한 격려 같은 게 느껴졌어요. 상이란 건 즐거운 해프닝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당대 최고의 작품들이 문학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최고’라는 합의 역시 심사위원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요. 수상자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판단은 엄연한 것이겠지만, 그것을 재는 객관적 잣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심사자의 주관적 정념이 객관성을 뒤집는 경우가 잦아지는 탓에 문학상이 결정되는 그 이면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그 복잡함을 이루는 요소는 문학‘성’과 심사위원들의 취향, 우연의 작동, 연륜과 인연의 그물들 같은 것들이겠죠.

 

이재훈 : 토지문화관에서 집필을 하시다가 어제 수졸재로 드셨다고 들었습니다. 근황이 궁금합니다.

 

장석주 : 4월 1일부터 5월말까지 원주의 토지문화관 입주작가로서 글을 쓰고 있어요. 올해 말까지 내야 할 책들, 새로운 시집 등을 준비하고 있고요. 토지문화관을 나오면 6월 하순에서 7월 중순까지 터키와 그리스 여행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MBC 네트워크의 ‘장석주의 지중해 인문학 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기 때문인데요. 프로듀서와 촬영감독 등 6명 정도가 함께 여행할 예정입니다. 에게해 중심으로 이스탄불, 카잔차키스의 무덤이 있는 크레타 섬까지 돌아볼 겁니다. 에게해 문명과 신화, 역사,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프로그램이에요. 올해 일정은 모두 다 잡혀 있는 상태죠.

지난주에는 <철학자의 사물들>이라는 신간이 나왔고요. 5월에 <동물원과 유토피아>라는 철학적 사회비판 책이 나올 예정이구요. 그리스를 다녀오면 7, 8월 중에 다시 2권의 저서가 출간 예정이고 하반기에 4권 정도가 더 나올 예정이어서 올해만 8권 정도가 출간되겠지요. 지금이 내 인생에서 생산력이 가장 왕성할 때인 것 같네요. 20년 전에는 내가 죽을 때까지 50~60권 정도 쓸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벌써 70여권을 썼으니까요.

 

이재훈 : 선생님의 생산력에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 생산력을 지탱하는 일상들이 궁금합니다. 최근 발표하신 시 「큰 찰나」는 곤궁한 기억의 추체험을 통한 찰나의 순간을 보여줍니다. 제가 곤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상 그때의 시간은 오히려 순일한 시간으로 표현됩니다. “튀긴 두부 두 모를 삼키던 추분”, “두드려 펼친 북어 한 쾌를 끓이던 상강”, “삶은 고등어 한 손에 찬밥을 먹던 중양절”의 시간들은 지금 선생님께서 바라보는 지향점을 은근히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평론가 조강석은 이를 ‘마음의 섭생’으로 풀었더군요. 큰 찰나의 순간은 잡다한 일상들이 모두 거세되고 남는 단순함 속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요. 산책과 독서, 집필로 대표되는 선생님의 순일한 일상은 어떠신지요?

 

장석주 : 튀긴 두부, 북엇국, 고등어조림은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입니다. 최근에 읽은 장-뤽 낭시의 책에 “먹는 것은 먹은 것을 몸으로 합병하는 행위가 아니라 몸을 제가 삼킨 것을 향해 여는 것, ‘안’을 가령 생선이나 무화과의 맛으로 발산하는 행위”라고 했더군요. 음식을 먹고 삼키는 행위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몸으로 ‘합병’하고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향해 내 몸을 여는 것, ‘안’을 그 매개물에 의지해서 그것의 맛으로 저를 ‘발산’하는 행위라는 것이죠. 미각의 만족감이 삶의 행복과 연결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먹고 마셔라! 그리하면 행복해질 것이니! 몸은 마음의 외부가 아니고, 따라서 마음은 몸의 내부가 아닙니다. 다만 몸의 자명함에 견줘서 마음은 자명하지 않습니다만 몸의 섭생과 마음의 섭생이 그리 멀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에피쿠로스라는 고대 철학자의 철학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요. 추분, 상강, 중양절은 몸을 제약하는 시간의 분절들이지만, 역시 마음의 현동을 제약하기도 하겠지요. 제 일상은 대체로 단순해요. 새벽에 일어나 신문과 인터넷을 보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해요. 날마다 쓰고, 날마다 이러저러한 책들을 읽습니다. 오후에는 산책을 하고, 단골 찻집에 들러 즐기는 차를 마십니다.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고, 그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이재훈 : 경기도 안성의 수졸재(守拙齋)의 ‘수졸’이 “재주와 기교가 뛰어난 사람이 이를 감추고 소박하고 투박하게 사는 것을 말하며,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을 말한다”(장인수)고 합니다. 많은 문인들은 부러워하기도 하죠. 하지만 조용한 곳에서의 생활이 오히려 시가 더 안 나오더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수졸재로 터전을 옮길 당시 마음과 계획 같은 것들이 있었을텐데요. 그런 마음과 계획들이 문학적으로 잘 실천되고 있는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장석주 : 안성으로 내려갈 때는 몸도, 마음도, 돈도 다 거덜나버린 상태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어요. 생계를 걱정하고, 미래의 불안을 견뎌야 했지요. 게다가 딱히 대상이 없는 분노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러다 죽겠다는 자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도 마음을 다독여야 할 필요성이 있었어요. 그래서 노자와 장자를 무작정 읽었어요. 그리고 안성의 들길과 산길들을 찾아 걸었어요. 내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니다, 다만 잠정적으로 ‘점유’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내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면 이것을 억지로 쥐고 있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어졌지요. 욕심과 욕망은 내 몸과 마음이 내 소유라는 확신 속에서 번성하는 겁니다. 벌써 안성 생활이 13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만족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자기 위로의 시간들을 보내고, 덕분에 창작의 활화산 같은 시간들을 맞고 있는 느낌입니다. 씩씩하게 책들을 써서 밥벌이를 하고 있고, 메말랐던 감성도 충만해졌어요.

 

이재훈 : 위의 질문과 더불어 최근 관심가지고 계시는 노장에 대한 깊은 관심은 일상과 산책자의 관조 사이에서 체화된 것은 아닌지요?

 

장석주 : 노자와 장자 읽기는 안성에 정착하면서 우연으로 시작한 것이지만,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떤 필연성이 있었어요. 우선 노자와 장자를 읽을 수 있는 자유가 조건 없이 풍성하게 주어졌다는 점이지요. 안성에서의 첫 시작은 백수 노릇이었으니까요. 그랬으니 노자와 장자를 100번 이상씩 읽어낼 수 있었어요. 물론 지금도 노자와 장자의 그 심오한 철학을 다 이해하고 체화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노자> 1장에 나오는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은 아직도 제 화두예요. 가끔씩 이 화두를 붙잡지만 안성에 내려와 살면서 제 심성이 너그러워진 부분이 있다면 이건 그 두 현자의 힘이 크겠지요. 인생에 대한 긍정과 여유, 넉넉한 관조적 시선, 잃어버렸던 웃음을 되찾게 했으니까요.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덜어내니까, 인생이 훨씬 더 살만한 것으로 다가오더군요. 삶을 가능한 한 단순화시키면서 책읽기와 명상, 들길이나 산길 걷기에 집중했기 때문에 지난 13년간 그 많은 책들을 읽어내고, 지치지 않고 서른 권이 넘는 책들을 써낼 수 있었지요.

 

이재훈 : 연보를 보면 유년 시절 충남 논산 외가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사셨지요. 그 후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선생님의 전체적인 스타일 ―문학적 양식까지 포함해서―은 도시풍의 세련됨입니다. 하지만 10여년 정도를 보낸 유년 시절은 또 다른 선생님의 문학적 토대일지도 모릅니다. 유년 시절의 원체험이 선생님의 문학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궁금합니다.

 

장석주 : 네, 맞습니다. 10살 무렵까지 논산의 외가에서 자랐어요. 제가 태어난 곳은 한반도의 전형적인 농촌 취락 형태로 발생한 마을이었어요. 다들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지요. 언덕을 넘으면 논으로 이루어진 평평한 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곳인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너른 들을 처음 봤을 때 현기증이랄까, 알 수 없는 공포감 같은 걸 느꼈어요. 외삼촌들을 따라 그 들로 나갔는데 논과 수로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더군요. 시선의 경이랄까요, 그 엄청난 유년기의 자연체험은 무의식에 새겨진 원체험이지요. 그 뒤 서울로 올라와서 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며 40여년을 살지만, 그 원체험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제 안에는 유년기의 긍정적인 자연체험과 성장기의 부정적인 도시체험이 함께 들어 있어요. 그 둘은 융합하지 않고 서로 불화하며 겉돕니다. 제 의식은 그 ‘사이’에서 분열과 상처를 끌어안고 있지요. 아마 제 가장 중요한 시적 상상력은 그 ‘사이’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재훈 : 중학교 때부터 당시의 청년문단인 <학원>지에 시를 발표하고 학교에서도 책만 읽었던 외톨이였다고 증언합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교련수업 거부 사건으로 제도적 교육과의 자발적 결별을 선택하게 되는데요. 지금 들어보면 상당히 주체적이고 조숙한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책으로서만 세계와 소통하던 20대 초반까지의 시간들이 천재적인 문학가가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을 텐데요. 그 고독한 시간들 이면에 다른 회한이나 후회 같은 것들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장석주 : <학원>지에 중학교 2학년 때 첫 투고한 시가 고은 시인이 뽑아 활자화 되었어요. 그때는 고은 시인이 누구인지도 모를 때였습니다. 어쨌든 그게 크게 자극이 되었어요. 7, 8편의 시들을 연속으로 발표하고, 이듬해 학원문학상에서 우수작 1석으로 뽑혔어요. 그 뒤로 고등학교에 와서는 또 단편소설을 써서 투고했는데, 소설가 임옥인 선생이 선을 해서 활자화되었고요. 그러면서 전국의 문학소년들 사이에 이름이 나고 그들과 편지를 주고받읍며 교류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 시절에 주변에 저를 이끌어줄 만한 스승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었지요. 혼자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제 길은 스스로 찾아야만 했어요. 이 모든 일들이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졌어요. 제도 교육에서 자발적으로 이탈한 것은 나중에 더 자세하게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진 거예요. 동년배의 다른 친구들이 다들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할 때 저는 무적자(無籍者)가 되어 방황을 하거나 몇 년간을 시립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밖에 없었으니까요. 결국 시립도서관에 처박혀 쓴 시와 평론이 1970년대의 마지막 해에 두 군데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 문단에 나오고, 그게 연줄이 되어 출판사 편집부에 입사했지요. 아주 가끔 그때 혼자 외롭게 시립도서관에 처박혀 문학이나 철학 책들을 읽는 대신에, 대학에 가서 자연과학 쪽 공부를 했으면 내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고 생각해 볼 때도 있습니다. 아마 그랬다면 삶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겠지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여유도 없었고, 삶과 세계를 꿰뚫어보는 지적 능력이나 균형잡힌 ‘인지적 자각’같은 게 없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20대 초반에 이미 문학을 숙명으로 수락하고 고분고분 받아들였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이재훈 : 선생님의 젊음을 가리켜 “고독과 가난, 주체할 수 없는 청춘이라는 이름의 70년대”(김태형)라고 표현했던데요. 당시는 사회참여 민중시의 시대였지 않습니까. 또 다른 대척점에는 실험시가 있었을텐데, 이도 상당히 정치적인 측면이 있죠. 당시 시문학사에서 선생님께서는 이쪽과 저쪽도 아닌 미학주의자로서 독자적인 길 쪽에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바로 밑 선생님의 후배들로부터 바슐라르에 영향받은 미학주의자들이 시단에 나타났구요. 당시 선생님의 문학적 지향점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장석주 : 제 20대는 고독과 가난을 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그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겁니다. 그 결핍이 있었기에 문학과 음악에 대한 강렬한 열망 같은 걸 품게 된 게 아닐까요? 20대 초반 시립도서관에서 책만 읽은 게 아니라 서울 광화문에 있던 ‘르네상스’나 명동에 있던 ‘필하모니’, ‘전원’, ‘티롤’ 같은 고전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제 초기시의 미학주의적 성향은 서양 고전음악들을 접하며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이재훈 : 선생님의 청년 독서목록에는 헤세, 카프카, 사르트르, 카뮈, 니체, 바슐라르 등의 이름이 열거됩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당시 철학과 인문학의 거센 광풍은 지금보다 훨씬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독서가 추후 양서를 출판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겠죠. 지금 선생님의 사유체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가나 철학자라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요.

 

장석주 : 10대 후반에 한국문학전집들을 독파하고 헤르만 헤세, 알베르 카뮈, 카프카, 헤밍웨이와 같은 널리 알려진 서구 작가들,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다자이 오사무와 같은 일본작가들의 소설들을 남독하며 보냈다면, 20대 초반에는 시립도서관의 참고열람실에서 보내면서 서양 철학자들의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게 니체와 바슐라르였어요. 일종의 황홀경 같은 걸 느끼면서 그 책들을 읽었거든요. 그리고 김현과 김우창 선생의 책들을 읽으면서 내 공부가 얼마나 하찮은가를 깨달으며 엄청난 지적 자극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초기 지적 자양분은 전적으로 이 분들에게서 얻은 것들입니다. ‘고려원’에 막 입사해서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서전인 <영혼의 자서전>의 교정을 봤는데요, 작가의 방대한 지적 편련에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국내에 소개가 그다지 많이 되지 않은 생소한 작가였어요. <영혼의 자서전>에서 깊은 감명을 받고 그의 전집을 만들어보자고 출판사 사장에게 건의를 해서 그 전집이 나오게 되었지요. 나중에 ‘고려원’ 편집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출판사를 차린 것은 ‘니체 전집’을 새로 번역해서 내야 되겠다는 결심 때문이었어요. 일종의 보은(報恩)이었던 것이지요.

 

이재훈 : 선생님의 연보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1991, 청하) 사건입니다. 당시 이 일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이 전 국민에게 전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입니다. 외설스런 내용의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저자를 구속한 세계 최초의 사례였다고 평가하는데요. 이 사건으로 출판 책임자로써 선생님께서도 징역형을 선고받으셨죠. 이 일로 선생님께서 출판에 대한 뜻을 접습니다. 아까운 일이었죠. 저 또한 지금까지 가장 아까운 출판사로 ‘청하’를 1순위로 꼽습니다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일로 우리는 시인이자 작가 ‘장석주’를 새롭게 얻습니다. 출판사가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왕성한 시인이자 집필자로서의 장석주를 얻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텐데요. 동의하시는지요?

 

장석주 : 마광수 선생의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은 참 어처구니도 없고 안타까운 일이지요. 제 인생에도 엄청난 타격이 된 ‘마이너스 체험’입니다. 그때 입은 내상(內傷) 같은 게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그 분노와 실망이 출판사를 접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출판사를 할 때 제 젊음 전체를 담보로 하는 것이었기에 치열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기획, 편집, 교정, 디자인, 영업 같은 걸 다 했었죠. 출판사가 커져서 직원이 20명, 30명으로 느니까, 출판 일과 무관한 ‘인력 관리’ 같은 게 필요해지더라구요. 그런 일들에 내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는 게 싫었어요. 필화사건을 계기로 출판사를 접고자 결단했을 때, 한편으로, 이젠 내 길을 가자, 이런 생각도 있었어요. 결국 내 길이란 내 문학, 내 글쓰기지요. 이건 일종의 역설이겠지만, 사실 출판사를 경영할 때 책을 가장 못 읽었어요. 출판사를 그만 두고 난 뒤, 출판사를 경영할 때보다 10배는 더 책을 읽게 되더군요. 이것만 보더라도 출판사를 그 시점에서 접은 것은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재훈 : 선생님의 시집은 14권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 외 2권의 시선집을 내셨구요. 끊임없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 시집 <햇빛사냥>(1979) 이후 몇 년 간의 터울로 계속해서 시집을 발간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시집뿐 아니라, 평론 에세이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활발히 창작하셨는데요. 그런 가운데에서 쉬지 않고 시집에 큰 에너지를 쏟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다른 장르 글쓰기와의 관계 하에서 시창작의 통과의례를 듣고 싶습니다.

 

장석주 : 그 무렵은 한창 출판사가 커가고, 그에 따른 업무들이 팽창할 땐데, 그 시들을 어느 틈에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를 쓰는 건 일종의 숨쉬기 같은 게 아니었을까. 숨을 쉬지 않으면 죽으니까,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시를 썼던 거지요. 그 시절의 시에는 아쉬운 바가 있어요. 그 시절의 시들은 좋은 시가 품어야 할 긴 시간, 느릿한 숙성, 자애의 적요(寂寥) 같은 게 모자랍니다. 일하면서 짬짬이 짧은 시간을 들여 썼으니까요.

 

이재훈 : 선생님의 시세계를 크게 본다면 두 갈래의 변화지점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번째 시집인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2002, 그림같은세상)는 안성에 내려가셨을 때 쓴 시집인데요. 안성에 정착한 이후로 시세계가 바뀌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장석주 :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2002, 그림같은세상), <붉디붉은 호랑이>(2005, 애지), <절벽>(2007, 세계사)은 ‘안성 3부작’으로 꼽을 만한 시집들입니다. 안성의 물, 바람, 흙이 들어 있고, 제가 먹은 밥과 젊은 벗들, 밤과 고독들이 고스란히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이전의 시집들에 있던 도시적 메마른 감성 대신에 그늘과 여린 것들에 대한 자애, 자연의 관능성에서 연유된 활발함이 눈에 띄는데, 이것들은 제 안의 촉기가 풍성해진 결과일 겁니다. 김영랑 시인은 이 촉기를 두고 “같은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탁한 데 떨어지지 않고, 싱그러운 음색과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이라고 했는데, 바로 그런 뜻에서 그렇습니다. ‘안성 3부작’에 어떤 풍성함이 있다면 자연과 제 오감이 비벼지면서 얻어진 이 촉기 때문일 겁니다.

 

이재훈 : 좀 더 세분화해서 살펴본다면 네 번째 시집까지는 어둡고 절망적인 청춘의 열망이 고스란히 집약된 세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완전주의자의 꿈」을 보면 “채 끝내지 못한 교정지와/ 빈 책상들만 어둠 속에 남아 있을/ 사무실과 내가 방금 내려온 어두운 계단들이/ 내 뒤에 남겨져 있는 모든 것이다./ 나를 열기 위하여, 활짝 열려진 문처럼/ 혹은 나를 닫기 위하여, 쾅쾅 못질하여 닫아버린 문처럼/ 나는 일년을 살았다. 아니 일년을 죽었다.”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당시 세계를 절망적으로 보는 시선에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장석주 : <햇빛사냥>(1979, 고려원), <완전주의자의 꿈>(1981, 청하), <그리운 나라>(1984, 평민사), <새들은 황홀 속에 집을 짓는다>(1986, 나남)로 이어지는 초기 시편들은 청년의 순수한 자아 제일주의, 세계와 자아 사이의 찢김, 상처와 분열증, 관념주의의 우월성 따위가 두드러지지요. 물론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지만. 체험의 직접성, 영감의 번뜩임, 광기 같은 건 희박했어요. 그저 소시민적 생활인의 옅은 비애와 메마름, 거기에 약간의 관념들이 섞여서 만들어진 세계지요.

 

이재훈 : 이후 중기의 시집들이라고 할 수 있는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1991, 문학과지성사), <크고 헐렁헐렁한 바지>(1996, 문학과지성사),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1998, 세계사), <간장 달이는 냄새가 진동하는 저녁>(2001, 세계사) 등의 작품세계는 다양한 형태로 변주됩니다. 쓸쓸하고 절망적인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은 여전하지만, 다양한 이미지의 변주와 시적 대상들을 통해 좀 더 활발해집니다.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었던 때입니다. 사랑을 테마로 한 시집도 있었고, 이때부터 구체적 일상이 활발하게 드러납니다. “왜 생활은 완성되지 않는가/ 왜 생활은/ 미완성으로만 완성되는가/ 왜 생활은/ 미완성일 때 아름다운가”(「왜 생활은 완성되지 않는가」)라는 시적 전언들은 이를 잘 드러내줍니다. 「크고 헐렁헐렁한 바지」의 추억을 통한 사유도 마찬가지고요. 1990년대에는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미학적 담론들이 생성될 때인데요. 문학쪽에서 다양한 담론들이 새롭게 형성된 시기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이런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의식하셨는지요?

 

장석주 :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1991, 문학과지성사), <크고 헐렁헐렁한 바지>에는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끊임없이 타자와 자신에게 착취당하는 느낌이 불가피하게 침착되어 있지요. 자아의 궁핍함과 메마른 도시에서의 무의미함과 건조함이 격렬하게 표출되었던 시기였어요. 제대로 살려면 서울을 벗어나야하는 게 아닌가하는 강박적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숲이나 강과 같은 자연에 가까이 접하려는 열망이 있었죠. 서울 삶에 대한 진절머리 같은 것들이 나던 시기였고요. 끊임없이 가속화되는 속도 속에 갇히고 삶속에서 자아는 죽어버리고 노동기계가 되는 시간들을 견딘 거죠. 그 집단적 인식 안에 나도 속해 있었죠. 그러니까 당시에는 메마르고 어둡고 비극적인 정조의 시가 나왔어요.

좀 이색적인 시집이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인데요. 그 시집도 사실은 시를 통해 나락에 빠진 나를 필사적으로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능동적 의지가 있었어요. 그 시집에 사랑시가 몇 편 있기는 하지만, 제목과는 달리 사랑 시집은 아니예요. 그 시집의 반 정도가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 화집을 보면서 떠올린 영감으로 쓴 시들이에요. 뭉크의 비극적인 삶과 내 삶이 겹쳐지죠. 그 시집에는 어떻게든 시를 붙들고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려는 몸부림, 자기 치유와 성찰, 상처와 슬픔과 모욕을 끝끝내 견뎌내려는 불굴의 의지 같은 것이 오롯합니다. 그 시들을 통해 생의 시련들을 견뎌냈어요. 2000년 여름 안성에 내려오면서 삶의 외관이나 내면의식, 감성이 커브를 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내 몸에 은닉된 도시의 자명성이 해체되고, 물, 나무, 안개, 새벽, 뱀, 너구리 따위의 자연 체험, 농약을 삼킨 개들의 죽음, 함께 놀아줄 귀신이라고 있었으면 하는 지독한 심심함, 소름끼치는 근본으로서의 고독 속에서 시가 나오니까, 그 전의 쓰던 시와는 전혀 다른 시세계가 만들어지더군요. 시골도 이미 지고지순은 아니예요. 밋밋한 시골의 삶에는 도시보다 더 끔찍한 지옥이 숨어 있어요. 그런 걸 시골에 와서 열세 해를 살면서 겪어낸 것이지요.

 

이재훈 : 안성에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가 그 시집들에 담겨 있는 거네요. 도시에서의 삶에 대해 사유의 극점을 찍고 그 세계를 통과해야 새로운 세계로 입성할 수 있는 거니까 말이죠.

 

장석주 : 우리가 철학적인 어휘로 얘기를 나눴는데요. 사실은 돈이 없었어요.(모두 웃음) 제 재산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안성의 땅에 내려올 수밖에 없었죠. 안성에 살면서 초기 2년 동안은 참으로 고요했어요.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할 일도 없고. 2년이 지나니까 여성잡지사들 10여 군데에서 취재를 오고, EBS에서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찍어가고요. 말하자면 사람들은 시인이 호수가에 전원주택을 짓고 내려와 근사한 전원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게 당시 중산층들의 꿈이고 열망인데. 그것을 마치 내가 선점한 것처럼 비췄던 거겠죠. 여성잡지와 방송 매체를 타고 평이한 시골살림이 근사한 전원생활로 탈바꿈되어 소개되고 나니 여기저기서 원고청탁이 밀려들고, 대학에서는 강의 제안이 들어오고, 신문과 잡지에서는 연재를 하게 되었지요. 그 바람에 시골의 고요한 삶은 다 깨져버리고 서울에서보다 더 많이 바빠졌어요.

 

이재훈 : <절벽>(2007, 세계사) 이후의 작품들은 좀 더 인문학적, 혹은 철학적 사유가 내재화되어 드러난다고 봅니다. 가장 최근의 시집인 <오랫동안>(2012, 문예중앙)은 그 결실이 직접적으로 드러났다고 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 전 시집인 <몽해항로>(2012, 민음사)는 선생님의 전체적인 시세계 속에서 독특한 지점에서 빛이 나는 매력적인 시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몽해’라는 특별한 상징을 통해 내면의 사유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말이죠. 특히 상징을 통해 관념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내면의 여정이 더욱 미학적으로 완성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최근 작품들의 시가 발아하는 계기나 앞으로의 시작 향방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장석주 : <몽해항로>는 안성에 내려온 지 만 10년 되는 해에 나왔습니다. 안성 3부작이라고 불리는 세 시집을 낸 뒤 상상력의 중심이 안성에서 벗어나, 다시 죽음과 같은 사유와 상상력으로 회귀하더군요. 장소마다 장소의 목소리가 있는데, 이제 내 시에는 안성의 목소리가 잦아들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일부러 의식해서 쓴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안성하고는 결별하더라구요. 이재훈 시인이 잘 지적했듯이 초기의 내 시들은 죽음이나 존재의 본질에 대한 사유로 들어가니까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죠. 초기시의 관념과 지금의 관념성은 달라요. 초기시에는 체험이라는 거름망을 통과하지 않은, 책읽기를 통한 간접성에 연루된 형이상학이었다면 <몽해항로>에서 드러나는 관념성은 상당 부분 직접적이고 날 것인 체험과 연륜이 체화되고 육화된 것의 분출 같은 것이지요. 내 안에 있는 본래적인 것들의 목소리를 낸다고나 할까요. 평생 붙든 화두라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가 왜 태어났느냐, 왜 인간은 죽는가, 하는 형이상학적 것들인데, 그것이 깊이를 매개로 하면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더라구요.

‘몽해’는 상징적인 시공이지요. ‘몽해항로’ 연작시들은 ‘몽해’라는 상상의 차가운 바다, 죽음이 무시로 출몰하는 그 가상의 시공을 통해서 존재의 유한성, 죽음에 대한 사유를 드러내는 시편들이었고요.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슬프니까, 시에도 슬픔과 애조가 깔려 있죠. 시에는 북풍이라든지, 차가운 바다라든지 털만 남기고 죽은 비둘기라든지 하는 죽음을 은유하는 이미지들이 많이 등장하죠. 그것이 의도적이기보다는 내 안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숙성된 사유와 상상력을 도약대 삼아 튀어 나온 것이죠. <몽해항로>를 기점으로 다시 인간 본질에 대한 물음을 나에게 던지고 있는 중이죠. 그와 함께 제 시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는 예감 같은 것도 하지요.

 

이재훈 : 시인, 소설가, 평론가, 출판인, 인문학자, 독서광이자 장서가, 대학교수, 방송인 등의 명명 중 가장 아쉬운 호칭이 있다면? 그 이유도 듣고 싶습니다.

 

장석주 : 호칭은 외부에서 내게 붙여준 거니까 크게 의식을 안 하고요. 처음부터 먹고 살기 위해 써야만 하는 생계형 글쓰기, 살아남기 위해 써야만 하는 생존형 글쓰기를 하고 있죠. 원고료나 인세를 받아 애들도 키우고, 쌀도 사고, 전기세도 내고, 의료보험도 내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게으름을 부릴 수가 없었어요. 시골에 내려올 때는 느긋하게 게으름을 좀 피울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는데, 그게 다 가망없는 희망이 되고 말았지요. 참 아이러니죠. 출판 편집, 기획자, 대학 강의, 방송 진행자, 자유기고가와 같은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은 행운이죠. 나를 규정하는 여러 호칭들에서 그저 ‘시인’ 하나로 족합니다. 가장 애착이 가고요. 예술의 본질은 시가 선점하고 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삶의 물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 편집자로서 출발하여 출판사 운영까지 가게 되었는데요, 그때는 정말 열심히 나를 던져 일을 했고요. 그 일에 대해서는 한 점의 회한도 남아 있지 않아요.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벌써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사람들이 물어봐요. 출판사를 하느냐, 고요. 혹은 출판 기획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것들이 까마득하게 먼 옛날 일 같은데. 가끔 내가 정말 출판 일을 하기는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그때는 최선을 다했고 인연이 다해서 출판 일에서 물러나왔을 때는 돌아보지 않았어요. 과거는 미래의 일로써만 의미가 있겠지요. 지금은 앞날과 미래의 삶이 더 중요하죠.

지금이 노년기의 초입인데, 인생 전체의 마무리에 대해 숙고할 단계가 왔다고 생각해요. 당장은 여러 출판사들과 계약된 책을 써내는 게 우선 중요하고요.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모두 성장해서 제 앞가림을 하니까 가족부양의 의무에서 좀 일찍 해방되어서 사는데 그렇게 큰돈이 필요치는 않다는 거요.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말년의 양식(樣式)’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합니다. 시와 철학을 오가며 사유하고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내 사유와 인식의 세계를 어떻게 총체적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양식(樣式)에 대한 고민이지요.

 

이재훈 : 최근에 <철학자의 사물들>이라는 신간을 출간하셨고 시집 포함해서 저서가 70여권이 있습니다. 많은 대중들에게 인문학적 사유나 지식을 교양서로 풀어내어 들려주는 작업들을 하고 계시는데요. 이런 집필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지식인으로 출판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시인이 쓰는 철학과 인문학의 글쓰기에는 어떤 자의식이 존재하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런 글이 시와 어떤 연결 접점에서 서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전혀 다른 모드와 방식으로 생산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장석주 : 그렇지는 않아요. 20대 초반에 문학 계통의 책만 읽은 게 아니라 철학이나 미학 공부를 했어요. 그쪽 분야의 책을 나름대로 계통을 잡아서 읽었지요. 그 뒤로도 니체에서 들뢰즈로 이어지는 서양철학에 대한 독서를 꾸준히 해왔고요. 개별자로서 삶의 경험이 철학적 사유라든가 인식들과 만나고 섞이는 과정, 즉 융합을 통해 만들어진 사유의 영역이 시적 상상력과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 제 시의 자리가 생겨나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시와 철학적 사유가 따로 가는 게 아니라 상호호응하고, 상호삼투하지요. 철학, 미학, 예술에 관한 책들만이 아니라 분자생물학, 뇌과학, 양자물리학, 천문과학 같은 책들도 열심히 찾아 읽어요. 거기에 더해 건축, 요리, 축구, 야구와 같은 분야의 책들도 읽습니다. 이런 것은 다 새로운 지식들에서 제 시적 상상력의 동력을 구하기 위한 노력이지요.

인문학 주제에 대한 책쓰기는 계속되겠지요. 다행히 작년 연말에 낸 『일상의 인문학』과『마흔의 서재』가 독자 반응이 좋았어요. 지금도 인문학적 사유를 담은 교양서를 몇 권 준비하고 있는데요. 이런 것의 기초적 토대가 되는 게 독서입니다. 끊임없는 책읽기를 통해 어떤 사유의 극점까지 자신을 몰아가지요. 그런 끊임없는 책읽기를 통해 체화된 것들이 있기에 인문학적 주제에 대한 저술이 가능합니다. 책을 떠나서 ‘장석주’라는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내 시, 내 삶, 그 바탕에는 내가 읽은 수많은 책들과 그것들에 의해 만들어진 내면의 확장이 있어요.

 

이재훈 : 요즘 생계형 글쓰기 때문에 바쁘시잖아요. 바둑이나 포커 등에 상당한 고수이시고 문단에서 즐겨하시면서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요즘은 많이 못하시겠어요.

 

장석주 : 다른 건 할 줄 모르고 바둑과 포커가 제가 할 줄 아는 잡기인데요. 요즘은 전혀 못하죠. 바둑은 어려서 배웠고요. 아마 3단 정도 실력이예요. 바둑 자체가 동양 철학의 집대성이예요. 그 안에 우주가 있고, 도가 있고, 세상을 움직이는 이치가 다 녹아있어요. 바둑 둘 때는 지독하게 몰입합니다. 그 몰입이 좋은 거지요. 한때 시인 후배들하고 푼돈을 걸고 포커 게임을 즐겼는데, 온몸이 소진될 때까지 뭔가를 하고 난 뒤에 그 보상으로 뭔가에 몰입하는 기쁨 같은 것에 탐닉하는 거죠. 아주 유쾌한 탐닉이지요. 후배들 하고 게임을 할 때는 나름의 원칙이 있어요. 내가 따면 안 된다는 거예요.(웃음) 다 가난뱅이 시인들인데, 그들의 푼돈을 갈취하면 안되지요. 늘 얼마쯤 잃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며 즐겼는데. 이젠 그런 시간도 낼 수가 없어요. 술을 안마시니까, 벗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는 도락의 즐거움 같은 것도 없어요. 삶이 단순화되었어요. 내 자신의 사유에 집중하고 지속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단순화한 측면도 있죠. 대신에 혼자 고전음악을 듣거나 산책을 많이 해요. 혼자 걷는데 이게 자기 충족감이나 행복감을 주죠. 하이데거가 ‘들길’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나를 나에게 되돌려주는 시간, 사색의 능력을 풍성하게 일구는 호젓한 시간이 필요한 거죠.

 

이재훈 : 일요일 오후, 귀한 시간을 내주시고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많은 것을 담고 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장석주 : 고생 많았어요. ‘수졸재’에는 6월 하순쯤이면 반딧불이가 나타나요. 반딧불이들이 어둔 수풀 위에서 사파이어처럼 반짝이며 군무를 추는 여름밤은 정말 근사해요. 그때 아이들 데리고 함께 놀러 와요. 

 

 

출전 : <열린시학>, 2013년 여름호.

 

 

이재훈 | 1972년 강원도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저서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부재의 수사학>,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다.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수상.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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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사가 주관하는 진주 이형기문학제에 다녀왔다.

매년 진주를 찾아서인지 이제 진주가 낯설지 않다.

이형기문학상을 수상한 함기석 형의 수상작 중 1편을 낭송했다.

오다가다 사진 몇 장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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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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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현대시작품상 시상식에서 사회를 보았다.

사회는 그만 봐야 하는데.

어눌한 말로, 다소 어색한 진행으로.

하지만 많이 늘었다는 의외의 얘기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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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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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혔다...

시시각각 2013. 6. 5. 16:38
찍고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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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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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정토사에서 시화전이 있었다고 한다.
내 시 <고분>이 전시되었다고.
시화를 이미지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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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장석주 선생님의 수졸재, 호접몽에 다녀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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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자 받는 재미가 있다.~^^
압구정역에서 본 <마루>라는 시를 모시인이 찍어서
보내주셨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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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낙타처럼 외롭게 떠난 그가 보고싶다

 

 

고 김충규 시인. 그가 남기고 간 59편의 시가 유고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문학동네 제공

 

 

김충규 시인(1965∼2012)은 생전 ‘낙타 시인’으로 불렸다. 그의 시편에 낙타가 유독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의 삶 자체가 외로이 사막을 걷는 낙타 같았기 때문이다.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는 2003년 출판사 문학의전당을 차린 뒤 시집과 계간지를 왕성하게 펴냈다. ‘1인 출판’을 하며 격무에 시달렸던 그는 지난해 3월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떴다. 과로가 이유였다.

그가 떠난 지 1년. 고인의 유고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문학동네·사진)이 출간됐다. 유족은 유품을 정리하다 시집 한 편 분량(총 59편)의 원고 뭉치를 발견했다. “시집을 내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고인이 남기고 간 원고였다. 유족과 문우들은 원고를 정리해 1주기에 맞춰 이번에 유고시집을 펴냈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뚜벅뚜벅 서쪽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지 못하지만/꼭 봐야 할 건 아니지/잠자면서 잠꼬대를 종달새처럼 지저귈 때/바람 매운 날 이파리와 이파리가 서로 입술을 부비듯/한껏 내 입술도 부풀지/더 깊은 잠을 자도 돼요 당신.’(시 ‘잠이 참 많은 당신이지’에서)

 

고인은 영면에 들어갔지만 아직도 문우들은 치열했던 그의 삶을 기억한다. 후배인 이재훈 시인은 시집에 실린 추모 발문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사막을 홀로 터덕터덕 걷는 낙타의 상징을 온몸에 분칠한 채 시에 온 생을 밀어 넣는 모습에서 시인의 가장 매력 있는 순간을 언뜻 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그는 행복을,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았다. 아름답게 그려냈지만 종내 남는 것은 아픈 말들이었다.’

김충규 시인은 세상을 뜨기 두 달 전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 글은 그대로 유고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이 됐다. ‘허공에 바치는 시를 쓰고 싶은 밤이다. 비어 있는 듯하나 가득한 허공을 위하여. … 소멸에 대해 생각해보는 밤이다. 소멸 이후에 대해, 그 이후의 이후에 대해… 구름이란 것, 허공이 내지른 한숨… 그 한숨에 내 한숨을 보태는 밤이다.’(2012년 1월 16일 밤 10시 25분)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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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古墳)

 

이재훈

 

 

벽에 귀를 갖다 대면 물소리가 들린다. 아득하다. 눈을 감으면 당신의 소리가 들린다. 나는 늘 아득한 것만을 탐했다. 물소리, 물소리. 축축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몸이 소리가 된다. 어떤 채비도 없이 탐험은 시작된다. 돌로 된 벽. 사이사이 틈. 틈 사이사이 어둠. 슬며시 그 얇은 어둠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간다. 내 몸은 돌이 되지 못하고, 역사가 되지 못하고, 흐물흐물 유형도 무형도 아닌 정욕의 애액이 되어 돌 속에 분신한다. 돌 속에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 파닥거리며 지느러미를 움직인다. 돌이 흔들거린다. 돌 속에서, 돌 속의 물속에서 노래를 부르자니 숨이 가빴다. 내 몸의 구멍으로 물이 들어왔다. 살갗이 울퉁불퉁하게 딱딱해진다. 온몸이 물이 된다. 물속에서 돌이 되는 순간. 물이 돌이 되는 꿈. 돌이 된 몸속에서 아득한 물결 소리가 철썩인다.

_ <시인동네> 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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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잘 다니지 않는 도로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금은 몇 년 동안 선을 조금씩 더 벌려 그곳에 민들레가 피었다. 고분은 도굴당했거나 오래되어서 텅 비어 있을 것이다. 시적 화자는 물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물이 있는 곳은 늘 축축하기도 하지만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틈은 소우주를 확장시키고 융합하며 또 다른 개별성을 존재하게 한다.

화자는 틈을 만들기 위해 축축함을, 물소리를 끌고 왔다. 그리고 틈을 만들고 어둠의 틈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간다. 다시 돌 속을 축축하게 하고 고체의 개념을 녹여서 물이 되게 한다. 돌 속에 강이 흐른다. "돌 속의 물속에서 노래를 부르자니 숨이 가빴다" 현대의학으로 인해 오래 살고 있는 우리도 하나의 고분이다. 돌 같은 육체 속에 갇혀 다시 물 같은 흐름 속에 갇혀 시의 노래를 부르는 시인은 숨이 가쁠 것이다. 고단할 것이다. 하지만 돌 속에 강물을 만들고 살아가는 시인의 가슴은 행복할 것이다.

돌이 된 몸속에서도 시인은 몸에 새겨진 물무늬를 바라보며 물결소리를 잃지 않는다.

(이인철 시인)

 

_ <시와세계>, 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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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과 구름을 오고간 시인

 

 

이재훈

(시인)

 

 

 

김충규 시인은 2012년 봄 「잠이 참 많은 당신이지」를 발표하고 마치, 오래도록 잠을 자려고 작정한 것처럼 이승의 옷을 서둘러 벗었다. 정말 ‘아무 망설임 없이’ 훌쩍, 잠들어버려 남아 있는 많은 이들을 애통하게 했다. 우리는 어느 지방 행사에 축시를 낭송하러 함께 간 인연으로 친해졌다. 처음엔 지방행사 귀퉁이에서 홀대받아 서러운 마음을 서로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너무나 빤히 들여다보이는 서로의 속마음에 헛헛한 웃음만 지었다. 저녁이 되자 너나없이 속엣 것을 다 풀어헤치며 시인으로서의 삶과 시 쓰기의 지난함을 고해성사하듯 한풀이했다. 그날 우리는 서울로 올라오지 못했다. 통음을 하며 비슷한 족속들끼리 주고받는 쓴웃음을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구겨넣으려 했다. 그 후로 나는 과분하게 충규형의 사랑을 많이 받는 동생이자 시의 동력자로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김충규의 시는 사막에서 일구어낸 뜨거운 통증이었다. 마치 마음이 데일 것처럼 뜨거운 그의 통각과 허무는 시간성이 탈각된 언어 이전의 어떤 느낌이었다. 사막을 홀로 터덕터덕 걷는 낙타의 상징을 온몸에 분칠한 채 시에 온 생을 밀어 넣는 모습에서 시인의 가장 매력있는 순간을 언뜻 보기도 했다. 김충규의 시는 사막에서 혼자만 울부짖은 건 아니었다. 사막은 시인이 가장 빠르게 혹은 무모하게 먼저 택한 공간일 뿐이다. 그 길고 긴 사막을 빠져나와 물을 찾고 물속의 사원을 찾았다. 그러면서 시인에게 투영된 통증의 그림자를 수도자의 모습으로 변화하는데 시간을 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충규의 시는 늘 남과는 다른 강력한 고통의 자양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또 김충규만의, 김충규에게 가장 적절한 언어의 옷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그는 행복을,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았다. 아름답게 그려냈지만 종내에 남는 것은 아픈 말들이었다.

김충규의 시가 사막에서 물을 찾아 나서고, 그것도 모자라 공중을 배회하다가 몽상의 숲에까지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며 머리를 몇 번이나 끄덕였는지 모른다. 완전하고 완벽한 시는 이 세상에 없을 테지만, 완전한 시를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는 김충규의 뒷모습을 보며 또한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김충규는 나중 ‘구름’에 제 존재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어둡고 축축한 비극이 구름으로 치환되는 찰나가 참 멋있었다. 그의 유고시집이 나온다니 그 구름 한가운데 “공중의 화원에서 수확한 빛”을 “몰래 당신의 침대 머리맡에 놓아주”고 싶은 날이다. 김충규 시인이 제 “심장을 꺼내 먹여” “숨을 얻고 허공을 헤엄친” 수많은 독자들을 향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한 날이다. 그 흔한 그립다는 말이 너무 모자란 날이다.

 

_ 김충규 유고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문학동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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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에서 돌까지

산문 2013. 3. 13. 10:20

황하에서 돌까지

 

 

 

이재훈

 

 

 

 

 

요즘 돌에 대한 시를 쓰고 있다. 왜 돌인가 라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할 말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돌이 어떤 계시나 운명처럼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렇듯 시적 만남은 늘 벼락처럼 찾아온다. 세계는 모두 이런 우연한 만남의 반복 과정 속에서 지탱된다. 이런 우연한 만남을 필연이라고 의미부여하고, 나름의 연관성을 찾고, 게다가 가장 고귀한 사건으로 미화시키는 경우도 자주 발견하곤 한다.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에 실린 대황하 연작시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시와세계>, 2008년 가을호) 황하의 상징은 물에 대한 상징이고, 이 상징을 통해 나는 정신의 극점을 향하는 길목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리고 황하는 내 존재가 걸어가다 만나는 수많은 풍경 중의 하나이며 앞으로 만나게 될 풍경이 또 어떤 풍경이 될지는 모른다고 적었다.

돌에 관해서라면 옥타비오 파스를 얘기하고 싶다. 물로 시작한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 속에서 나는 물을 거쳐 돌로 가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던 것이다.

 

땅속 깊은 곳의 물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파도가 해변을 덮는 것처럼, 현존은 표면으로 떠오른다. 모든 것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고동친다. 존재와 겉모습은 하나이며 동일하다. 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은 자신으로 충만해져서 빛을 발하며 자신을 나타낸다. 존재의 조수. 존재의 물질에 이끌려서 나는 너에게로 다가가서, 너의 가슴을 만지고, 너의 피부를 쓰다듬고, 네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세계는 사라진다. 이제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다. 사물과 사물의 이름, 숫자, 기호는 우리 발밑에 떨어진다. 이제 우리는 말을 벗어 던졌다. 우리 이름을 잊어버리고 대명사들은 서로 혼동되고 얽힌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우리는 위를 향해 솟구쳐 오른다. 이름과 형태가 흘러가며 소실되는 동안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 얽매여 추락한다.

― 옥타비오 파스, 「시적 계시」, <활과 리라> 중에서

 

물의 솟아오름은 존재의 지평을 확산시킨다. 우리 존재는 이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세계는 사라지고, 내 존재는 사라져도 내가 명명했던 이름들과 그 이름들을 지켜보던 돌은 남아 있을 것이다.

파스는 「태양의 돌」이라는 장시를 썼다. ‘태양의 돌’은 고대 아즈텍 문명의 우주관을 기록한 거대한 원형의 돌이다. 일명 ‘아즈텍의 역’이라고도 불린다. 그 돌의 중앙에는 태양신이 있었고, 그 주위에는 과거에 멸망한 4개의 시대를 상징하는 신의 그림이 있다. 또 바깥쪽에는 아즈텍 역의 날짜를 나타내는 20의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돌은 오래된 시간이다. 시간의 표상이며,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물질이다. 아마 이 우주가 탄생하기 시작할 때부터 함께 했을 것이다. 돌로 시작된 우주. 돌로 시작된 수많은 별.

 

부러진 돌부리에 채인다

굴러다니는 돌이 아니라

올곧게 서 있다가, 부러진 돌

창과 칼 혹은 바람이

돌의 몸을 반 동강 냈을 것이다

사방이 어둠이었고

나를 길에 내던졌던 사람들의 눈빛만

어둠 속에서 반짝하던 밤들이었을 때

발바닥 돌덩이가 내 존재를 떠받칠 때가 있다

돌이 내 집을 떠받치고,

아버지의 약속을 떠받칠 때

돌 위에 피의 흔적이 있다

돌은 깨져도 죽지 않는다

돌은 썩어갈 육체를 갖고 있지 않아

언제나 채이고 밟히고 놀아난다

돌에 의해 소멸한 것과 태어난 자리가 한 몸이 되는

이 모든 찰나를 지켜본 돌

어둠 속에서 세상이 어지럽게 돌기 시작하면

나는 흔들거리는 운명을 본다

흔적 없이 왔다간

당신의 영혼에 몰래 깃들고 마는 돌

부처의 얼굴도 만들고, 예수의, 마리아의 몸도 만드는

성육신인 돌

영원을 살고 있는 길 위의 돌

돌로 만들어진 뭇사람 하나

그 무성한 골짜기의 돌

― 졸시, 「돌의 환(幻)」 전문

 

위의 시처럼 돌을 만났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에 채인 돌을 만났다. 그 누구도 지금 내가 만난 돌의 기원을 알 수 없다는 미지의 생각이 날 미혹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돌과 꽤 많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도 돌이라는 물질에 대해서는 그런 친연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왜 ‘환(幻)’인가 하면 돌의 실체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 정신의 지평으로 다시 환의 지평으로까지 몰고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그 가능성의 시작을 알리는 시였기 때문이다. 성육신의 돌을 넘어 영원을 살고 있는 길 위의 돌과 오래도록 만날 것 같은 느낌이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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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아프셨다. 허리가 너무 아파 걷지도 못하겠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울먹거리는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오죽 아프셨으면 아들에게까지 하소연하실까. 당장 서울로 모셨다. 큰 대학병원 통증클리닉을 찾았다. 치료를 받기 위해 전국에서 환자들이 모인다 했다. MRI 촬영을 했다. 통증클리닉에서는 척추 부근 MRI 사진에 이상한 게 발견된다고 했다. 정형외과의 진단확인서를 가져와야 치료를 해줄 수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혹시 암이 아닐까 걱정하셨다. 이제야 살만한데. 혹시 암이면 어떡하니. 아예 암이라고 단정짓듯 말씀하셨다. 어머니, 괜찮아요. 걱정마세요. 암은 아닐 거예요. 그렇게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마음 한 구석의 불안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확정 진단을 받기 위해 서울의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다. 걷기도 힘든 어머니를 들쳐 업고 제발, 어머니 힘을 내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며 기도를 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암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서울에 머물며 한 달간 치료를 했다. 드디어 어머니는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웃음을 되찾았다. 감사함이 물밀듯 가슴을 휩쓸었다. 어머니께 너무 고마웠다.

우리 세대의 어머니들 대부분이 그래왔듯 내 어머니도 고생 꽤나 하셨다. 아버지는 만학의 뜻을 두고 가족들을 남겨둔 채 서울로 상경하셨다. 어머니는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삼남매를 혼자 키우셨다. 땔감을 구하기 위해 산을 오르셨고, 돼지를 키우기도 했다. 충북 영동의 부잣집에서 태어나신 어머니는 험한 일을 해보신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을 한 후, 온갖 험한 일을 많이 하셨다. 첫째인 나를 임신했을 때 어머니는 먹을 게 없어 썩은 사과를 한 자루 얻어와 한 달 내내 드셨다. 그 이유 때문인지 나는 어릴 적부터 사과를 유난히도 좋아했다. 둘째 여동생을 낳았을 때는 젖이 돌지 않아, 술지개미를 먹였다. 여동생은 아직도 많이 마르고 작다. 또한 집착적으로 고기를 탐한다. 어머니는 그때 못 먹여서 그런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을 하시곤 했다. 셋째인 막내 남동생은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막내의 장애 때문에 어머니의 고생은 더 깊은 골짝으로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막내를 업어 등하교시켰다. 막내는 다혈질적인 타고난 성격 때문에 싸움도 많이 했다. 장애인이라는 열등감과 너무나 완강한 자존심으로 인해 늘 막내는 사고뭉치였다. 막내의 사고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계속 이어져 어머니의 슬픔은 끊이지 않았다. 중학교 때 싸움으로 인해 앞니 3개가 부러졌을 때 어머니는 참 많이도 우셨다. 어떤 험한 일이 벌어져도 어머니는 무릎을 꿇으셨다. 자존심밖에 남지 않았던 어머니는 그렇게 무릎을 꿇고 또 꿇었다. 어느 날에는 동생을 얼싸안고 같이 죽자고 하셨던 적도 있었다.

어머니의 희생 덕분인지 우리 삼남매는 그런대로 잘 컸다. 속을 많이 썩혀드렸지만 성인이 되고, 자신의 앞가림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는 어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막내는 이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어머니가 아파 몸져누우실 때가 오면 자신이 모든 걸 그만두고 병간호를 할테니, 그 누구도 막지 말아 달라고 한다. 나는 어머니께 늘 고만고만한 아들이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어머니의 위로가 되는 아들이었다. 첫째 장남이었기 때문인지 당신의 어려운 속내를 내게 많이도 말씀하셨다.

공부를 마치고, 밥벌이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서 나는 어머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자식이 시인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때로는 창피할 정도로 동네에 자랑을 하고 다니실 때도 있었다. 그런 어머니에 대한 시를 나는 단 한편도 쓰지 못했다.

어머니는 내 삶의 가장 뜨거운 상징이었다. 또한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신봉하는 공통의 종교는 바로 ‘어머니’라는 종교이다. 우리는 어머니를 통해 기쁨을 얻고 슬픔을 얻고 위안을 받는다. 어머니는 내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고 신봉할 수 있는 믿음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들 때쯤, 간신히 어머니에 대한 시를 쓸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 모든 인생의 슬픔을 감싸 안고 함께 사셨다. 인고(忍苦)의 세월이라고, 신산(辛酸)한 세월이었다고 다들 말하지만, 어머니는 너희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늘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아직도 허리가 아프시다. 수술을 해서도 완치되지 않기에 평생 통증을 함께 안고 가야 한다. 어머니, 유독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이 봄날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벚꽃놀이라도 가야겠다.

이재훈(시인)

 

_ <연꽃마을신문>, 2011년 04월 15일, 2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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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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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종합한다면 시가 다른 예술 장르와 구별해본다고 할 때, 시는 무엇보다도 예술적 충동의 맨 앞자리에 놓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적 충동의 맨 앞자리에 놓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다시 한다면, 앞자리에 놓인다는 것을 다른 말로 치환해보건대 시는 시원始原의 자리에 있으려고 한다, 탄생의 자리에 있고자 한다, 라는 것입니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인 장 뤽 낭시Jean-Luc Nancy의 말을 인용해보면 더 확고해집니다. 

 

우리가 어떤 방식을 통해 의미의 시원에 도달한다면, 그 방식은 ‘시적으로!’라는 방식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시가 그런 도달의 수단 혹은 중개를 이룬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의 뜻인데, 즉 오직 그런 도달만이 시를 구성한다는 것, 그리고 시는 그런 도달이 일어날 때에만 생겨난다는 뜻이다.

 

이 말대로, 우리가 시를 쓴다는 것은 시를 쓰는 행위 자체가 의미의 시원에 다다르는 행위라는 겁니다. 의미의 시원에 다다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의미의 시원 그 자체입니다. 좀 더 말을 바꿔보자면, 시를 쓴다는 것은 언제나 ‘신생의 사건’이 되려고 하는 충동과 관련된다고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항상 ‘신생의 사건’을 스스로 겪거나 체험하거나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

 

어쨌거나 프로이트가 생각할 때, 아이가 반복적으로 팽이를 던지는 행위는 쾌락원칙 너머에 있다고 봅니다. 쾌락원칙에 충실히 따르면 몇 번 하고 스스로 만족해야 되는데, 만족하지 못한다는 얘기죠.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가 있다, 이게 반복강박이죠. 쾌락원칙 너머의 이 반복강박은 ‘생의 충동’이 아니라 ‘죽음의 충동’과 관계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 ‘죽음의 충동’의 현장이 바로 앞서 읽었던 보들레르의 「여행」이라는 시입니다. “죽음이여,…(중략)… 닻을 올리자!”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죠?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우리는 죽어야 다시 살아납니다. 죽지 않으면, 언제나 낡은 생의 찌꺼기가 남아 있습니다. 낡은 생의 찌꺼기를 완전히 버려야지만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진짜로 죽으면 다시 살지 못하잖아요.(웃음) 그러니까 죽되 죽지 않아야 합니다. 죽되 죽지 않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게 바로 시 쓰기라는 얘기입니다. 시를 쓰는 것, 그게 언제나 ‘신생의 사건’이 되는 거라면, ‘신생의 사건’은 결국 무엇인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완전히 새로 사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꼭 시에만 있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시에 유별나게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왜 유별나게 많은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시는 언제나 예술적 충동의 맨 앞자리에 놓이기 때문이죠.

이 신생의 분출은 창조하는 자로서, 창조하는 행위로서, 창조하는 내용으로서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하려는 욕망에 밀착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사람은 새로워질 때에야 항상 나다워진다고 느낍니다. 신생은 나의 회복인 것입니다. 즉, 신생에 대한 충동은 자신의 진면목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욕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일성으로의 회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진짜 모습(true identity)의 세움이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시를 씀으로써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진면목―진정한 자기 모습으로 도달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여느 시인들보다도 더 시적인 소설을 썼던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는 가장 환상적인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언제나 ‘인공적인 것’에 대한 저항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다.” 현실에 대한 저항이 뭡니까?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거죠. 즉, 이 말은 시가 ‘자연스러움’(‘당연함’)의 회복임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괴테도 이미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순수한 본질 안에서 고려된 시는 말(parole)도 예술―기술(art)도 아니다. 말이 아닌 것은, 시는 완성을 위해서 리듬과 노래와 육체의 운동과 시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이 아닌 것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움(le naturel)’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움은 규칙들을 존중해야 하지만, 장인적 훈련의 억압적인 강제를 따라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언제나 영감이 피어오르는 고양된 정신이 특별한 목표나 계획도 없이 토로하는 진솔한 표현으로 존재한다.” 그렇습니다, 시는 말로 썼지만 우리는 그것을 쓰는 순간 이미 춤추고 노래하고 몸짓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까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말씀드렸잖아요. ‘앵도를 먹고 무서운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어’의 뜻이 무엇인지 물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앵도를 먹고 무서운 아이를 낳’으세요. 이것이 시입니다. 순수한 본질 안에서 시는 말이 아니니까요. 이미 몸짓이고 운동이고 무용이에요. 더불어 시가 예술이 아닌 까닭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움에 근거하기 때문이라고 괴테는 말했습니다. 자연스러운 규칙들, 규칙들이되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있는 이야기는 서로 모순될 수는 있겠으나 크게 두 가지예요. 어쨌든 시는 우선적으로 자기표현의 발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기 표현은 단순히 있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순수하게 토로된 세계의 창조이자 의미의 시원 혹은 신생의 사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아닌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결국 시 쓰기로서의 자기표현은 자기로부터 세계가 되는 일입니다. 이것을 다른 것이 되는 것, 이화異化, 독일어로 ‘Entfremdung’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ntfremdung’을 자주 쓰이는 의미대로 잘못 이해하면 ‘소외’가 됩니다만, 소외는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버려지는 것이거든요. 헤겔에 따르면 ‘Entfremdung’은 자기로부터 이화될 때 비로소 자기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는 논지에서 쓰인 용어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정리하자면, 시의 표현은 곧 이화이고, 이화는 곧 창조입니다. 그리고 그 창조는 자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행위입니다. 이 때문에 시는 언제나 생성의 첫 순간에 늘 있는 것입니다.

왜 시가 ‘쓰는 것’만으로 충족되는 것인지, 그 이유는 이재훈 시인의 시를 통해서 확인해봅시다.

 

산책길엔 언덕이 있다.

그날은 이상했다.

오르고 올라도 닿지 않는 거리를 헤맸다.

혼을 빼앗긴 것처럼.

늪에 빠진 것처럼.

뒷덜미를 놓아주지 않는 불빛이 있었다.

사위가 어둠에 둘러싸이면서

상점엔 불이 하나씩 켜졌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근원을 바랐다.

기적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어둠이 안겨주는 거대한 정적을,

위대한 침묵을

나는 알지 못했다.

상처받은 한 친구를 생각했고

갚아야 할 빚의 액수를 생각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바쁜 거리의 일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산책길엔 언덕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길목과 길목이 혀를 내밀어

내 몸을 떠받치고 있을 뿐.

타인의 인격을 규정하지 않기로 했다.

지혜로운 자가 되고 싶었다.

장 그르니에가 산타크루즈를 오르며 쬔

빛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었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환호하지도 분노하지도 못하는,

심장을 꺼내 거리에 내던지고 싶었다.

심장이 몸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은,

그 짧은 시간만큼은 황홀하겠지.

언덕이 있는 곳은 월곡月谷,

달빛이 있는 골짜기다.

언덕을 오르고

또 한 언덕을 오르면

마치 기적처럼 달빛에 닿는,

존재의 비밀을 한순간에 깨칠

그런 순간이 올 수 있을까.

산타크루즈를 오르며 쬔

그 햇살의 순간처럼.

― 이재훈, 「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명왕성 되다>, 민음사, 2011) 전문

 

이재훈 시인은 여기서 “나는 근원을 바랐다./ 기적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라는 말로 시가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그 이유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근원으로 돌아가는 자인데 절대로 기적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시를 쓰되 온전히 다 이해되고 전부 해석되기를 희망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시원의 순간에 있으려고 하는 시적 충동은 시의 존재론적 양태들 중 하나로 들어갑니다. ‘묘사’는 이미 있는 것을 그리는 거잖아요. ‘묘사가 아닌 표현’이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복수성이 아닌 단수성, 시는 언제나 단수성을 지향합니다. 이것을 황동규 시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어느 누구도/ 옆놈 모습 닮으려 애쓰지 않는다”(「제비꽃」)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시는 공간적으로는 전개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압축됩니다. 왜냐하면 고밀도로 압축될 때에만 빅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압축되지 않는 것들은 폭발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가 터져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는 시간적으로는 흐름이 아닌 순간입니다. 이재훈 시인의 「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에서 계속 ‘순간’이 지시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시는 순간에 대해서만 다루고 순간에 의해서만 다루어질 뿐, 흐름으로 의식화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시는 드러냄이 아닌 암시입니다. 왜냐하면 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창조는, 우리가 눈을 뜨는 시간에 금방 사라져버려요. 어느 한 순간에 창조되어버렸는데, 눈을 뜨는 그 시간에 이미 사라져버려요. 그러므로 우리는 시의 진지한 창조를 언제나 암시로써만 들여다볼 수 있는 거죠.

 

_ <현대시>, 2013년 2월호 중에서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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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산문 2013. 1. 30. 23:09

옛 화일들을 뒤지다가 우연히 설문에 응답한 내 글을 찾았다.

<현대시> 2002년 2월호에 발표한 '동인특집' 설문에 대한 나의 답변내용이다.

'천몽'과 '시원'을 한국 시단의 젊은 시동인으로 초대하여 특집을 했었다.

나는 '시원' 동인의 자격으로 참여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뭐가 달라졌을까.

뭐가 달라졌을까. 뭐든 달라졌겠지.

 


 

1) 2000년대에 들어 동인활동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지금 현시대에 있어 동인활동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난 연대의 동인 목적이 실천적 행위, 사상적 기치, 담론의 생성이라고 거칠게 말해본다면 이는 모두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의도적 혹은 자생적 발로였다. 그 당시는 하나의 문학적 사실이 공동의 목소리와 친밀히 협력되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다름은 여기에 있다. 지금의 동인은 바깥을 향하지 않고 안으로 향해 있다. 하나의 문학적 사실이 각 개인의 내적인 동인(動因)에 의해서 미학적으로 규정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것 또한 필요라면 필요이고 자발적 발로라면 발로다.

 

2) 자신이 속한 동인이 한국시에 어떤 새로움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동인이라는 이름으로서의 새로움보다 동인에 속한 각 시인의 이름에 새로움이라는 꼬리표가 붙여지기를 원한다.

 

3) 무성한 시의 위기론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젊은 시인으로서 시의 미래를 점쳐본다면?

 

시의 위기론은 문학을 보는 편협한 잣대에 의해서 유포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시가 경제적 논리로 환원될 때는 그 질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되고 사회적 효용가치로 매김될 때 그 자리가 좁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엔 이러한 시의 경제적, 정치적 측면은 배후에 있다. 근대문학이 한 세기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아직도 같은 맥락의 준거틀로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향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근대를 통과한 새로운 자아와의 싸움을 시인들은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4) 일각에선 시의 위기가 아니라 시비평의 위기라는 지적도 있다. 시비평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겠는가.

 

문학적 안목과 열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비평이 학문 성과의 수단으로 역할을 한다면 문제가 되겠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에 대한 애정이다. 텍스트 자체에 대한 애정없이 출발한 비평은 곡해되기 마련이다. 애정을 갖고 텍스트와 같이 산다면 창조적 비평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5) 인터넷을 비롯한 사이버 공간이 자신의 문학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사이버 공간이 시쓰고 생각하는 시간을 빼앗는다는 점에선 큰 영향을 끼친다. 사이버 공간은 많은 일상 중에서 하나의 일상일 뿐이다. 영향이라면 현실 공간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 공간이 내 시쓰기 자체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는 소통과 정보창고의 역할이 큰 것 같다. 가상공간이 창작자들에게 절실히 체감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사이버 공간이 문학자체의 질을 변화시킨다는 예단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6)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 시단(문학 출판사, 문예지 등)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는가.

 

앞으로 시의 가장 큰 문제는 젊은이들이 시단으로 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를 쓰고 시인을 꿈꾸었던 젊은 인재들이 영상매체나 광고, 대중매체 쪽에 몸을 헌신하고 있다.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려고 하는 자들은 소수이다. 신인등용문의 응모자가 많다해도 대부분 고령화되어 있고 젊은 응모자 중에도 대다수가 고학력 문학전공자들이다. 등단했다해도 얼마 못가서 시단을 떠나버린다. 점점 시인은 자유로운 예술가가 아니고 촉망받는 문학전공자들이 갖는 자격증처럼 돼버렸다. 시가 다양화되지 못하고 유행에 맞춰 획일화되는 것은 이런 연유가 아닐까. 기성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젊고 패기있는 신인들의 발굴과 육성에 모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국 시단(문학출판사, 문예지 등)의 문제 중에 두 가지만 말하고 싶다. 하나는 가난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연중심주의라는 점이다. 사실 가난한 것은 문제라기보다는 이 시대에서 문학하기의 어려움이다. 가난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의 상품화, 부적절한 문예지 운영 등이 발생한다. 이것은 시인들의 제살 깎아먹기다. 또한 인연 중심주의(학연, 지연, 잡지) 때문에 에콜의 문제가 대두되고 정실비평을 주고받고, 시인과 비평가들이 주변의 눈치를 본다. 시단이 가난하지 않으려면 정부의 문예정책에 호소해 지원을 받거나 환금성을 가질 수 있는 문학아이템을 개발하는 일밖에 없다. 제대로 시를 쓰면서 먹고 살기가 무엇보다도 어려운 시대다. 이를 위해 원로부터 신진 시인들에 이르기까지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시단이 인연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면 문학인들이 순수해져야 한다. 문학의 인연을 통해 과대평가를 하거나 받거나 하는 등등의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다.

 

_ <현대시> 200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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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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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 137인 선언문

 

 

 

 

 

 

 

 

 

 

 

 

 

 

 

 

 

 

 

 

 

 

 

 

 

 

 

 

 

 

 

 

 

 

 

벌써부터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려는가!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신 권력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통제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첫 인사로 자신의 입인 수석대변인 자리에 거칠고 표독한 언사로 절반의 국민을 ‘국가전복세력’으로 몰아간 극우 언론인 출신을 임명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선보였다.

 

문재인 전 후보를 지지한 인사들을 두고 “정치적 창녀”라고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내뱉고, "박근혜 당선인에게 투표하지 않은 48%의 국민은 반(反)대한민국 세력이고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는 세력"이라며 절반의 국민을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망언으로 모욕한 자를 수석대변인으로 임명한 박 당선자는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려는 것인가.

 

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은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대선 과정에서 언론매체에 정권 교체를 염원하는 광고를 실었다는 이유로 문학인 137명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판정을 내리고 이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손홍규 소설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사태다.

 

137명의 젊은 문학인들은 자신들의 문학적, 사상적 양심이 이끄는 바에 따라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적법하게 공표했을 뿐이다. 그들은 선언문에서 “우리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은 조금이라도 삶의 고통이 덜어질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조금이라도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세상을 바란다. 그 출발이 정권교체에 있음을 절실히 공감한다”고 주장했다. 무엇이 잘못인가. 그들 의 주장 중 어떤 대목이 선거법을 위반했는가.

 

문학인은 ‘표현의 자유’란 이름의 산소를 마시는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존재들이다. 작가가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시인이 양심을 노래하지 못하는 세상은 이미 죽은 사회다. 박근혜 당선자는 문학인들을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현대판 홍길동으로 만들려 하는가.

 

극우 파시스트 칼럼니스트를 대통령 당선인의 수석대변인으로 임명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젊은 작가들의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 박근혜식 대통합인가. 선거가 끝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런 반민주적 행태부터 보이는 것인가. 취임도 하기 전에 공안통치를 시작하겠다는 것인가. ‘분서갱유’에 나서겠다는 것인가.

 

민주주의는 절차로 시작되고 내용으로 완성된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국민은 물론 그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도 투표라는 절차에 승복해 차기 정부가 성공적으로 출범하기를 원하고 있다. 박 당선인이 이명박 정권 아래서 상처 입은 한국 민주주의를 치유하고 그 내용을 채워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첫 조치가 48%의 국민을 반(反)대한민국 세력이라고 침 뱉은 인사의 중용인가. 작가들의 선언문 발표에 대한 보복과 탄압인가.

 

박 당선인은 분명히 답해야 한다. 지금 일련의 조치들이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사고체계의 소산인지를. 이게 그가 앞으로 펼칠 문화예술 정책의 실체인지를.

박 당선인은 윤창중 수석대변인의 임명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선관위도 젊은 문학인들에 대한 고발을 즉각 취하하고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 국민들이 자신의 행보를 눈 부릅떠 지켜보고 있음을 박 당선인은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2012년12월26일

부산작가회의

 

 

 

국민대통합을 위하여 분열과 보복 행위를 중단하기를 촉구한다

- 선거관리위원회의 젊은 문인 137명에 대한 고발을 규탄한다 -

1987년 6월 항쟁의 뜨거운 열정의 대가로 이룩한 대한민국 제6 공화국은 이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반세기에 걸친 민주화의 대장정은 때로 난관에 부딪치기도 하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때로는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정부가 구성되기도 했고, 민주화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조차도 민의를 담은 결과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묵묵히 민주주의의 구현에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일반인들에게는 하나의 정치적 행사에 불과했을 수도 있는 18대 대통령 선거를 실낱같은 희망으로 삼고 있다가 급기야 목숨을 바쳐 시대에 항변했던 노동자, 시민활동가들을 생각하면 목메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반이 느꼈을 좌절과 절망에 연민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선거 절차를 걸쳐 정권을 연장한 대통령 당선인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였을 때 부르짖었던 새 시대, 국민대통합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러나 공약으로 부르짖었던 국민대통합의 메아리가 채 사라지기 전에 분열과 보복의 징후가 먼저 드러나고 있다. 젊은 문인 137명이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정치적 견해를 언론매체의 광고지면을 통하여 공개하였다는 이유로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을 한 것이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사실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이다. 그러한 문학을 창작하는 문인은 시대정신을 누구보다도 먼저 감지해야 한다. 그것은 현실과 괴리되어 이루어질 수없는 것이다. 문인들은 우리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고, 때로 당위와 현상이 유리될 때는 과감히 자신의 신념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문인의 사명이고 존재 이유인 것이다. 문인으로 하여금 일상을 외면하게 한다면 결국 음풍농월이나 일삼는 사문으로 전락시키거나 용비어천가를 외치는 어용기사를 양산할 뿐이다. 설사 그것이 독단과 편견으로 점철된 것이라 하더라도 문인이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는 권력이나 재력으로 눌러서는 안 된다. 하물며 정당한 방식과 합리적 절차에 의거하며 전개한 문인의 목소리를 처단하려하는 것은 시대와 역사를 거스르는 착오가 아닐 수 없다.

 

공정한 선거 관리는 금권이나 압력에 의해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거기에 유권자로 하여금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비밀선거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공개함으로 파생되는 사회적 정서적 불이익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일련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공개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 정당한 권리이며 합법적 정치 행위이다. 현행 선거법에서 단체 명의의 지지선언을 금지하는 것은 단체의 구성원의 일부 혹은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목소리가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다.

 

따라서 개인 명의의 선언 또는 공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독재자’라는 단어나 ‘정권교체’라는 명제가 포함되었다고 위법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선거법이 가진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말꼬리 잡기일 뿐이고, 결국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는 18대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일련의 문화예술인들에게 날리는 경고일 것이고, 문인의 입에 재갈을 물려 결국 자기검열을 하도록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가 이를 필두로 의사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적 절차에 의한 신념의 개진을 위축시키려 는 의도로 보인다. 이것이 과연 18대 대통령 당선인이 언급했던 국민대통합에 걸맞은 것인가. 혹시 대통합이라는 것이 획일성과 교조성을 지향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 국가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서 당연히 다양성과 당파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를 어우르는 것이다. 효율성과 추진력이 떨어지더라도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때까지 설득을 하고, 그 결과는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의 온당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의견과 상반되는 것이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설득하며, 절차적 민주성을 담보해 내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고발된 문인들에 대한 검경의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며, 선거관리위원회는 더 이상 분열과 반목를 획책하는 행위를 중단하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차기 정부를 구성할 당선인과 그 세력은 보복과 압력으로 국민을 위협하는 행위를 할 것이 아니라, 비판과 저항을 겸허히 수용하여 국민대통합을 이루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12년 12월 27일

(사) 한국작가회의 대구광역시지회 (대구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성명서] 군사정권 검열의 잣대로 표현의 자유를 포박하려는가!

‘새 시대, 국민대통합’을 내세우고 정권을 연장한 새로운 권력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당혹스럽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대선을 앞두고 137명의 양심적인 젊은 작가들이 경향신문에 낸 광고를 문제 삼아 12월 25일 손홍규 소설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새로운 권력의 눈치 보기로 밖에 볼 수 없는 이 조치는 서명에 동참한 137명의 작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작가적 양심에 입각해서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모든 작가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협박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늘,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회원 작가들은 이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우리 작가들은 지난 이명박 정권하에서 유인촌 문화부장관이라는 자가 휘두르는 칼날에 의해서 충분히 상처받았다. 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과 KBS사장이 보복성 사퇴를 강요당했고 한국작가회의의 경우 “정부보조금을 줄 테니 집회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강요받기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박근혜 당선자의 아버지이자 18년간이나 이 나라의 언론과 문화예술계 숨통을 조여 온 박정희 군사정권의 압제에 의해서 수많은 언론인 작가가 투옥되고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 과정까지도 목도했다.

 

새 시대, 국민대통합을 외치던 당선자 진영의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정권이 채 출범도 하기 전에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선관위가 뒤늦게 작가적 양심과 그에 입각한 표현의 자유를 선거법이라는 법적 저울대 위에 올려놓고 시험하려드는 이 반문화적 작태에 대해서 우리 작가들은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한 정권이 이 땅의 진보적 작가들을 향한 문학적, 정치적 상상력에 대한 검열이자 문학적 위의(威儀)에 대한 도전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근혜 당선인과 서울시선관위에 요구한다. 이 시대의 가장 낮은 자들 곁에 서서 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대변하려했다는 이유만으로 알량한 법조항을 들이대고 젊은 작가들의 정치적 상상력에 칼날을 들이대는 그 모든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이 문제는 작가 손홍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처벌하려한다면 서명한 137명 모든 작가들을 소환해서 처벌하라. 그리고 그들과 같은 꿈을 꾸었으나 서명에 동참하지 못한 나머지 작가들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처벌하라. 우리도 137명의 작가들처럼 “조금이라도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세상”을 바랐고“ 또한 ”그 출발이 정권교체에 있음을 절실히 공감“해 왔다.

 

 최근 정치적 반대자를 향해 “국가전복세력” "정치적 창녀"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 윤창중 인수위 수석대변인 임명과 국민대통합위원회 김중태 부위원장 임명을 보면서, 부자감세는 포기하고 국채를 발행해서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일련의 반민중적 정책들에 대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만일 이러한 우리들의 요구를 외면할 경우 박근혜 정부는 출범도 하기 전에 137명의 작가가 아니라 한국작가회의를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진보적 작가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2012년 12월 28일

(사)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

 

 

 

 

[인천작가회의 성명서] 작가적 양심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을 엄중히 규탄한다!

―선관위의 젊은 작가와 시인 137명 고발에 대한 인천작가회의 성명서―

그 어느 대선보다 치열했던 18대 대선이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선관위는 기습적으로 137명의 젊은 작가와 시인들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집권 여당 측의 공공연한 선거부정 행위에 대해서는 그토록 미온적이었던 선관위의 행태를 고려할 때, 이번 137명의 젊은 작가와 시인들에 대한 발 빠른 고발 행위 속에는 분명 불순한 저의(底意)가 있는 것이 아닌 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들은 ‘현행법 상 위법 행위’ 운운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겠지만, 시대의 양심을 대변하고, 올바른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에 입각한 정당한 권리를 그들의 표현수단인 ‘글’을 통해 행사한 젊은 작가와 시인들을 고발한 것은 문화와 예술에 대한 몰상식의 극치이자 그악스런 도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권 5년을 돌아보라. 노동자와 시민들은 일터를 잃고 죽음의 상황으로 내몰리기 일쑤였고, 주요 매스컴들은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으며, 아름다운 조국 강산은 안보와 자본의 논리 속에서 철저히 훼손돼 오지 않았던가. 국민들의 고통은 한계상황에 이르렀고, 절망 속에서 분노를 키워가야만 했던 통한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통스런 현실을 혁파하고, 좀 더 나은 삶을 희구하는 것은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이자 자존(自尊)을 위한 최소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이번 선거에 임했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바로 이런 마음을 품고 투표장에 들어섰을 것이다.

 

137명의 젊은 작가와 시인들은 바로 위와 같은 비민주적, 반민중적 현실에 주목하고, 그러한 현실을 타파하는 것이 시대정신의 구현이자 작가적 양심의 발로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문학은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이라는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는 당위적 명제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 속에서도 검증되는 바가 아니던가. 일제치하와 독재 정권 시절, 칠흑 같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 조국과 민중을 위한 등불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허다한 작가와 시인들의 희생적 목소리와 선구적 실천을 이 자리에서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에 인천작가회의는 젊은 작가와 시인 137명의 ‘선언’에 대해 뜨거운 공감과 연대의 마음을 재삼 확인하며, 선관위와 사건을 담당할 검찰, 그리고 박근혜 당선자에 대해 아래와 같이 결연하게 요구하는 바이다.

 

일(一), 선관위는 특정 권력의 주구(走狗)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당장 고발을 취하하고 젊은 작가와 시인들에게 사과하길 바란다. 법의 집행에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시기상 그리고 성격상 이번 고발 행위는 분열과 반목을 획책하는 행위이자 문학인 길들이기라는 혐의가 짙다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

 

일(一), 사건을 담당하게 될 검찰은 문화예술인들의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꿰어 맞추기식 수사를 통해 훼손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어느 권력기관보다 우선적 개혁의 대상이 바로 검찰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一), 이번 사건에 박근혜 당선자의 의중이 반영되었든 그렇지 않든, 사건 처리 방식은 새 정부(권력)의 문화 정책과 예술에 대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이다. 자신이 선거 기간 내내 언급했던 국민대통합의 의지를 몸소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만약 위와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인천작가회의는 이것을 문학에 대한 권력의 길들이기이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간주하고, 이 땅의 양심적 문화 예술인들과의 전국적 연대를 통해 지속적인 싸움을 전개해 나갈 것을 밝혀 두는 바이다.

2012년 12월 28일

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

 

 

 

 

우리의 동료 · 벗들은 시대정신을 대변했다

암울했던 유신독재 시절에도 우리의 선배 문인들은 시대를 읽으려고 노력했고 작가정신을 바탕으로 시대와 함께 했다. 그것은 작가의 책무이고 의무이자 사명감이었다. 시대가 작가를 부르고 그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은 작가로서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다. 우리의 동료 · 벗들 137명은 그 시대정신에 부합하려 노력했다.

 

2012년 또 다시 우리는 시대정신을 요구받았고 그 답을 했다는 이유로 동료이자 벗이 서울선관위에 의해 검찰 수사를 받게 되었다. 젊은 시인 · 소설가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시대 상황, 더 이상 지켜볼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성명서로 이어졌다. 기륭전자,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 제주해군기지 등 수 없이 많은 이 땅의 힘없는 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렸고 하루가 멀다며 죽어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서민들의 눈물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수 없기에 나선 것이다.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가. 누가 작가들에게 글을 쓸 시간을 빼앗고 글로 밤을 새워야 할 시간에 성명서를 쓰게 만들었는가.

 

우리의 젊은 동료 · 벗이 고발당하고 작가의 사상을 검증하겠다는 시대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 이들은 앞으로 우리 문학을 이끌어갈 주역들이다. 그들이 느끼는 세상, 사람들, 소외, 가난, 공권력, 소통은 지난 5년간 절망 그 자체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역사를 거스르고 시대를 거슬러 저 유신시대로 회귀하고 있지는 않은가. 137명의 젊은 시인 · 소설가들이 던진 화두는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닌 희망을 잃고 사는 사람들의 삶과 좌절을 그동안 목격했기 때문이다. 피폐해져만 가는 삶들을 보고 모른 체 한다는 것은 작가정신이 아니다. 시대정신이 아니다.

 

이 땅의 젊은 시인 · 작가들은 그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고통스러워했다. 137명의 시인 · 소설가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20·30세대들 역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현실과 미래 앞에 서 있다. 이런 시대에 어떤 글을 써야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젊은 시인 · 소설가들은 말하고 싶다.

 

젊은이들의 입과 귀를 막는 것은 그 어떤 곳이 되었든 미래의 희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통합이라는 말도 쓸 수 없을 것이다. 희망 없는 미래, 희망 없는 우리의 이웃들, 그들을 누가 돌아보았는가. 이런 현실을 바꾸어 보자고 말하는 것은 작가의 의무요 책임이다.

 

서울 선관위가 고발한 작가는 미래 대한민국의 문학을 꽃피울 작가이다. 작가에게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생각의 자유에 대해 스스로 검열을 하게 만든다면 대한민국의 문학도, 표현의 자유도 함께 사장되고 말 것이다. 문학이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 세상에 미래가 없음이 자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한국작가회의 대전지회

 

 

 

 

우리 모두는 138번째 선언자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박근혜 당선자는 선거 기간 내내 국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100퍼센트 대한민국’, ‘정권교체’를 뛰어넘는 ‘시대교체’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당선인 대국민 인사에서는 화해와 대탕평책을 통해서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극복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보듬어 모두가 행복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선거 이후의 상황은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넘어서 ‘화해’의 시대를 열겠다는 당선자의 의지를 선뜻 신뢰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치가 어떤 희망도 줄 수 없다고 판단한 몇몇 노동자들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해’와 ‘행복’을 약속했던 정치세력은 동요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인수위원회의 인사를 둘러싸고 들려오는 잡음은 ‘화해’와 ‘100퍼센트’라는 약속이 한낱 정치적 수사에 그칠 것이라는 의심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선거 기간에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의 의지는 찾아볼 수 없고,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았으리라 여겨지는 세력에 대한 고소·고발과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면서 다수의 국민들은 이것이 긴 ‘겨울공화국’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은 아닌지 벌써부터 두려워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신문매체에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광고를 게재했다는 이유로 실무를 맡은 손홍규 소설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은 비록 한 명의 작가를 고발했을 뿐이지만 경찰조사가 끝나면 나머지 136명도 모두 같은 혐의를 적용해 기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해당 ‘선언문’의 형식을 띤 광고 중에 ‘독재자’, ‘새로운 대통령을 간절히 기다린다.’, ‘정권교대가 아닌 정권교체’라는 부분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로 판단될 수 있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세상을 바란다”라는 문학인들의 선언이 야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해석되어 법의 심판을 받는 상황을 ‘화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는 이 상황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때문에 생긴 선거법 위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견제를 봉쇄하려는 기득권 세력의 탄압이라고 판단한다.

 

문학은 ‘자유’의 공기를 호흡하며 성장한다. ‘자유’가 없는 곳에는 ‘문학’도 없다.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은 권력과 긴장관계를 유지해왔고, 그 긴장을 자양분으로 삼아 창조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돌이켜볼 때 중요한 역사의 장면들에 문학인들이 깊이 관여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정치적 행보는 비단 특정한 권력에 대한 비판을 넘어 모든 권력적인 것에의 저항을 통해서 ‘자유’를 호흡하려는 외침이었다.

 

‘자유’의 공기를 들이마신 문학인들의 ‘기침’, 그것이 문학이다. 우리는 이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불러왔거니와, 그것은 창작에의 자유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정당히 누려야 할 헌법에 명시된 권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특정 후보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상태로 ‘정권 교체’와 ‘삶의 가치’를 주장한 문학인들의 진의를 현실 정치의 논리로 재단하여 수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민주주의의 시간을 되돌리는 반(反)역사적인 구태에 불과하다. 이에 우리는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가 문학인에 대한 고소·고발을 즉각 취하할 것과 검찰이 이 사건을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역사라는 넓은 안목을 갖고 판단할 것을 촉구한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없다면 ‘화해’와 ‘통합’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낡은 구호 이상의 의미가 아닐 것이다. 서울시 선관위와 검찰은 그 선언문에 서명한 137명의 문인들이 같은 뜻을 지녔던 문학인들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간이 촉박해 동참하지 못한 수많은 문학인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기꺼이 138번째 선언자가 될 의사가 있다.

 

기록적인 한파가 한반도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이 유독 추운 것은 비단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울산과 평택의 송전탑 위에선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이 진행되고 있고, 제주도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함께 살자”라고 절박하게 외치는 가난한 자들이 있다. 이들의 삶에 희망을 드리우지 못하는 한 ‘100퍼센트 대한민국’은 또 다른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되고 말 것이다. 진정한 ‘화해’란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헌법적 권리에 따른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권력기관의 압력에 의해 저지당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서울시 선관위와 검찰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2012년 12월 28일

(사)한국작가회의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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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복주의 시에는 해학이 있고 철학자의 사유가 깃들어 있다. 개라는 비극적 운명을 똥개의 습벽(習癖)과 퉁치고, 이를 다시 지혜의 말로 뱉어 놓는다. 시인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개의 말은 세속의 말인 동시에 스승의 말이다. 시에 등장하는 개들은 일상적인 개짓을 하기도 하지만 발레를 추거나 명상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부조리한 풍경들이 우리 인간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대변해준다. 시인이 풍자를 넘어 또다른 사유의 품을 보여주기까지에는 여러 정신적 굴곡이 있었던 듯 싶다. 속리(俗離)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서기까지의 도정을 시집에서는 파란(波瀾)과 만장(萬丈)의 언어로 보여준다. 신산(辛酸)한 삶의 내력과 새로운 고향이 된 함양(咸陽)의 공간들은 시인에게 ‘야생의 정신사’를 쓸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산속의 개 산들이와 순일(純一)한 무아지경을 누리는 시인. 앞으로 우리는 지리산의 시인이 된 문복주가 펼치는 유곡의 사유를 오래도록 지켜볼 것이다.

 

_ 이재훈 (시인)

 

시집 정보 : http://blog.naver.com/mhjd2003?Redirect=Log&logNo=8017742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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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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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과 크리스마스

산문 2012. 12. 7. 10:28

대선과 크리스마스

 

   

이재훈 (시인) 

 

 

 

 

 

내가 처음 대선을 치른 것은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에서였다. 당시에는 김대중과 김영삼이라는 양김의 시대가 마지막으로 시대를 호령하는 때였다. 영원한 라이벌로 불리우는 정치스타 김대중과 김영삼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정치계의 화두이며 핵심이었다. 김영삼 후보는 민정당의 노태우와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과 합당, 적들과의 동침을 자행하며 민자당을 출범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14대 대선에서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문민정부에 이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에 이르기까지의 대선 여정들은 내 청춘의 정점을 수놓은 추억들과 함께 했다.

14대 대선 때 나는 재수생이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배부른 사치처럼 느껴졌고, 사회에 대한 불만과 자신에 대한 열등감은 극도로 높아져 있었다. 대학생들의 시위와 시민들의 공분과 가열차게 돌아가는 대선 정국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들처럼 여겨졌다. 혼자만의 내면에 파묻혀 세상을 바라볼 때였다. 가끔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무정부주의자를 꿈꾸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생이 되었고, 졸업을 하였고, 힘들게 공부를 하였으며 결혼을 했고 자녀를 키우고 있다. 지금은 비정규직의 삶을 살며 도시인으로서의 명분을 합리화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나이가 들고 삶의 규모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지금은 여러 열린 창을 통해 정치에 대해 일거수 일투족을 관람하고 얘기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은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염원이 피로 승화된 우리 시대의 아픈 역사이자 상징이다. 5.18의 뜨거운 피와 가슴과 열망과 눈물이 없었다면 민주화의 정치사는 아마 한참 뒤늦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중학교 시절 성당 지하실 사진전에서 본 광주 민주화운동의 처참한 모습들을 잊을 수 없다. 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우리의 역사이며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도저히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주위를 돌아보면 별달리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공권력에 의해 인권은 유린되고 있으며 가난하고 낮은 자들에게는 이전보다 더한 모욕을 안기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예의도 상식도 배려도 없이 오로지 개인의 이기심만 팽배한 사회에서 오로지 돈만이 모든 삶의 지표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각박한 현실, 신자유주의로 치장한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려본다. 지금이야말로 5.18의 희생과 민주화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숭고한 피의 의미를 생각할 때 아닌가.

정치는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정책 하나 하나가 직접적으로 우리 삶과 밀착되어 있다. 삼포세대(취업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라 불리는 청년들의 미래, 사교육과 등록금으로 인해 자녀들을 교육하기 어려운 환경, 명예 퇴직이나 조기 퇴직으로 인한 50대 이상의 실업문제, 노인층의 증가로 인한 복지 문제 등등이 지금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 할 난제들 중 하나이다. 정책 하나가 달라진다는 의미는 이런 문제들이 하나씩 풀어질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기존 청치에 대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는 투표를 하는 행위이다. 투표행위를 통해 위정자들에게 국민들의 뜻을 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찍을 사람 없고, 좋아하는 후보자가 없다고 해서 투표권을 포기한다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 아닐까. 의무를 다했을 때에야 정치권에 불만을 제기할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 얼마나 더 위정자들에게 당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뜩하기만 하다.

역대 대선 투표율은 14대 81.9%, 15대 80.7%, 16대 70.8%, 17대 63%로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투표율이 더 이상 낮아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정치권에서는 투표시간 연장안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투표시간 연장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들어보면 투표율을 높이자는 취지에 대한 반론이 빈약하기 그지없다.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자들의 토론회도 찾아볼 수 없다. 15대 대선에서는 54회, 16대에서는 27회, 17대에서는 11회의 대선 후보자 TV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18대 대선에서는 투표일이 한 달 남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토론회도 열리지 않았다. 국민들에게 무엇을 보고, 듣고, 판단하라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올바른 판단과 투표행위를 통해 5.18의 정신은 올곧게 이어질 것이다. 국민들의 참정권 행사가 없이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바꾸고 싶으면 행동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 첫걸음이 투표행위가 아닐까. 13대 직선제 때부터 대선일은 늘 12월 중순이었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가 있다. 축제의 마지막 달이다. 대선 또한 우리에게 축제이고 싶다. 벌써부터 12월의 그날이 기다려진다.

 

_ 5.18기념재단 계간지 <주먹밥> 2012년 겨울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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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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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우의 시는 자연을 매개로 자신의 정서를 이리저리 감각적으로 궁굴린다. 대상을 어떻게 선취하고 이를 시적 감각으로 형상화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적 대상을 자신의 정서와 같은 맥락으로 드러냄으로써 결국 ‘지금 여기’의 ‘나’를 보여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당선작인 「하늘은 도대체 몇 개의 물뿌리개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는 모든 자연의 대상물이 의인화되어 시인의 감각 속에서 춤을 춘다. ‘구름’과 ‘바람’이 지휘를 하고, 음악 소리가 총 소리와 겹치면서 다양한 감각의 일탈을 보여준다. 시인이 더듬어내는 감각의 촉수는 ‘된장 끓는 냄새’와 ‘물먹는 하마’와 벤치에 있는 ‘츄리닝아저씨’까지 다다른다. 이런 장면들 속에서 시적 자아는 ‘아가미 없는 나’로 자신의 존재증명을 하고 있다. 서연우의 화자는 늘 자신의 존재증명에 시달린다. “나는, 두렵고 위험한 존재”(「슬픔증」)이며 “나는 치명적이”(「마음이 푸른 모든 이의 달」)라고 말한다. 서연우의 시는 ‘땅의 숨소리’를 그리워하고 ‘근원 모를 불안’과 매트릭스의 혼돈 속에서 ‘꿈꾸다 깬 사실조차 꿈’일 수밖에 없는 언어의 틈바구니를 이리저리 헤집고 있다. 앞으로 더 활달하게 펼쳐질 언어의 유랑이 기다려진다. (이재훈)

 

_ <시사사>, 2012년 11~12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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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이재훈의 시집 <명왕성 되다>에는 육성(肉聲)이 담겨 있다. 많은 젊은 시인들의 시가 현란하긴 하지만 그들의 시에서 삶의 무게가 직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재훈의 시집에는 2000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환멸과 고뇌가 격렬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재훈의 시는 ‘나’로부터 벗어나지 않지만 그 ‘나’는 사회로부터 오는 자극에 대해 격렬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그만큼 시대의 인장이 찍혀 있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 더욱 지독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전형적인 영혼을 살펴볼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 영혼은 시대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만 반응하지 않는다. 세계로부터 고통 받는 그 감수성 짙은 영혼은 어떤 도주로를 뚫고자 한다. 그래서 영혼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시집을 여는 시인 「비비디 바비디 부」는 시인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눈은 카메라를 닮았다.

노출을 열고

몇 시간 동안 창밖을 보면

불빛만 남은 세계.

칼 맞고 피 흘리는 거룩한 세계.

지친 육체는 허공이 가져 가고

영혼만 달랑달랑 소란하다.

 

이재훈 시인의 눈에 비치는 세계는 어떠한 곳인가? 세계엔 불빛만 남아 있다. 그 불빛은 현란한 도시의 야경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시인의 눈에는 폭력으로 인한 희생의 피가 묻어 있는 핏빛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 폭력적인 세계는 희생자로 가득 찬 ‘거룩한 세계’다. 핏빛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시인의 육체는 지칠 대로 지치고 영혼은 “달랑달랑 소란”해질 정도로 빈곤해진다. 파괴된 영혼이 일으키는 소란은 도시의 소란과 관련된다. 이재훈 시인에게 서울이란 도시는 “나의 메디나,/ 시인들의 공화국”(위의 시)이다. 하지만 시인은 「만신전(萬神殿)」에서 “도시는 너무 시끄럽습니다. 가슴속에서 귀신들이 포식하고 구역질하는 소리 들립니다”고 하여 도시에 대한 구토감을 드러낸다. 시인에게 서울은 시인들의 공화국이자 귀신들이 시끄럽게 토하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도시에 대한 이러한 양가적인 태도는 보들레르 이후 현대 시인의 전형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재훈 시인은 그러한 태도를 직접적으로 격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포식하고 토하는 귀신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시인은 언제나 비상을 꿈꾸는 존재이다. 하지만 도시에서 사는 시인은 “마음껏 날고 싶었지만,/ 이곳에 살기 위해선 참아야 했”(「안드로메다 바이러스」)다고 한다. 이재훈 시인은 그러한 시인에 대해 ‘외계인’이라고 명명한다. 그 외계인―시인은 지구에 유폐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탈출을 꿈꾼다. 즉, “서로의 키를 재고 우쭐거리”는 수학의 미학이 지배하는 지구에서 다시 날고 싶어 하는 이 외계인은 “살아 나갈 도주로를 찾”(같은 시)는다. 그 도주로란 “아름다운 북극의 얼음 위에서/ 지혜의 말들을”(같은 시) 얻는 데로 나아가는 길이다. 하지만 그를 묶어 놓은 이 세계의 밧줄은 쉽게 풀리지 않을 테다.

이 세계에서 사는 삶이란 “육십억 분의 일일 뿐”으로 사는 것이며 “페트병에 가득 담긴 담배꽁초와 찌그러진 맥주 캔. 먹다 남긴 컵라면.”(「매일 출근하는 폐인」)과 같은 폐품으로 버려진 채 사는 것이다. 시인은 “하루하루를 버티다” “외치고 울부짖”(같은 시)을 수 있을 뿐이다. 지구에 유폐된 외계인의 삶은 이렇듯 쓰레기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환멸과 구토 속에서 외치고 울부짖는 그는 언제나 ‘거대한 허무’에 맞닥뜨린다. 시인은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그렇듯이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살아나간다. 그는 시끄러운 도시 생활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도 가지지 못하고 갖가지 노동에 파묻혀 살아가야 한다. 「명왕성 되다」를 보면, 시인은 몽상에 잠기고 영혼을 비상시키기 위한 시간을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겨우 얻는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 시인만이 아는 내밀한 기억들로 가기 위해서 시인은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는다. 눈을 감은 시인은 자유로운 연상에 들어서고 “잊혀진 얼굴들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그리운 얼굴이 푸른 멍으로 잠시 물들다 노란 불꽃으로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몽상은 지하철의 기계소리에 방해받고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런 리듬”은 시인의 몽상에 지속적으로 개입해서 “아무리 하품을 해도 피로”한 현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 리듬은 시인을 옥죄는 오랏줄이다. 도시의 일상에 묶인 시인으로서는 “내 속의 거대한 허무로 들어갈 자신이 없”으며 “신성한 모험”도 의심스럽기만 하다.

「다정한 재봉사의 재판」을 보면, 이 세상은 “유리로 만든 방”이며 몽상하는 시인을 죄인 취급하기도 한다. 이 세계는 재봉사로 비유된 시인을 ‘유리방’에 가두고는 유리를 통해 보이는 세상을 보고 “그대로 옷감을 짜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몽상하는 시인으로서는 그러한 명령을 따라야 하는 일이 고통이다. 그는 “하늘을 날고 있는 제 모습을 짜고 싶었”으며 “저 먼 세계를 비상하는 영혼의 고난함을 짜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만한 이미지”만을 보여주는 세계―“문명의 숲”―는 시인이 “매일매일 똑같은 무늬를” 짜도록 강요할 뿐이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시인은 탈출을 더욱 더 열망하게 될 터,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다./ 열대를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킬리만자로」)라는 담담한 진술은 이러한 열망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고 하겠다. 시인이 원하는 것은 문명의 숲으로부터 벗어나 “위대한 숲의 시를 쓰”(같은 시)는 것이다. 그 숲은 열대와는 멀리 떨어진 겨울 숲이다. 겨울 숲은 “목숨까지 다 토한”(「겨울 숲」) 어떤 兄이 먼저 떠나간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문명의 숲’에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시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도시 생활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상황과 도주하고 싶은 열망 사이에서 시인의 말이 빚어진다. 하지만 ‘형’처럼 겨울 숲으로 떠나지 못하고 있던 자책감이 어떤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내 입술은 봉인되지 못하고/ 부끄러운 고백들을 나불댔네”(「진흙의 봉인」)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인의 시는 “결국 슬픔이 되고 공허가 될 말들”이였으며 “징그러운 말들의 시체”(같은 시)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시인은 이 말들이 “반성의 포즈로 모두를 속일 수 있었”(「침묵의 세계」)다고도 말한다. 이러한 자기 부정은 또 하나의 반성으로도 볼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 어떠한 도주로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모색으로서도 읽을 수 있다. 위대한 숲의 시를 쓰고 싶었다는 고백만으로는 이 문명의 숲에서 겨울 숲으로 통하는 도주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는 우선 “혀를 깨무는 연습”(같은 시)부터 하여 ‘침묵의 시민’이 되는 데서부터 다시 출발하고자 한다. 왜 혀를 깨물고 침묵하고자 하는가? 침묵 속에서 소멸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소멸은 또 다른 생성으로의 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촛불도 아니고 감나무도 아니다.

미끈한 자동차도 아니고

달콤한 솜사탕도 아니다.

차갑고 텅 빈 사물에

쇳물을 들이붓고 싶다.

나는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이었다.

꿈을 꾸면

붉은 별 하나가 내게 떨어지는 사건이었다.

손이 델까 만지지도 못한 별이

마당에 내려와 날 또렷이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엎드려 울지 않겠다.

슬픔을 우스운 몸짓으로 과장하기 않겠다.

해거름에 사양(斜陽)을 보며 사흘을 울겠다.

그러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겠다.

그 비밀의 성소(聖所)가 내 집이었다.

소멸이

내 먹는 밥이었다.

― 「연금술사의 꿈」 전문

 

이 시집의 마지막에 실린 이 시는 앞으로의 시작(詩作)에 대한 시인의 각오를 보여준다. 슬픔을 과장하지 않겠다는 각오는 앞에서 언급한 “혀를 깨무는 연습”과 통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그 침묵의 연습은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시를 통해 드러난다. 그 침묵은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는 작업이다. 그 작업을 통해, 시는 에밀레종처럼 몸을 녹여 소멸시키고는 “에밀레 에밀레”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은 무엇이 될 수 있을 터이다. 그리하여 시의 목소리에는 몸이 녹아 들어가 있게 된다. 시는 육성(肉聲)을 내게 되는 것이다. 소멸을 통과하여 육성을 드러내는 시. 말의 연금술사가 되고자 하는 시인은 이 경지에 다다르고자 꿈꾼다. 이때 “차갑고 텅 빈 사물”은 시의 내밀한 세계―쇳물이 출렁대는 비밀의 성소―속으로 용해되고는 새로이 탄생할 것이다. 세계와의 지독한 불화와 이에 따른 자기비판은 이렇게 단단한 영혼의 다짐으로 나아간다. 이 시집의 첫 번째 시는 철저히 공허하기만 한 세계 속에서 “달랑달랑 소란”하기만 한 영혼을 보여주었다면, 이 시집의 마지막 시에서는 “빛나는/ 뜨거운 강철”의 영혼이 등장한다. 이렇듯 이 시집은 공허에서 단단함으로 나아가는 영혼의 드라마를 엮어내고 있다.

그런데 위의 시의 자기 다짐이 손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시집의 중추를 이루는 2부는 「대황하」 연작이 실려 있는데, 이 연작시는 불모의 세계 속에서 시인이 겪어야 하는 환멸과 고통을 뜨겁게 그려내고 있는 역작이다. 강렬한 이미지의 연쇄로 전개되는 이 연작시는 시인과 환멸스러운 세계와 뒤섞임을 환몽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세계는 모래의 강과 같은 황하로 비유된다. 「대황하 1」을 보면 “작열하는 사막에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있는 시인은 누런 모래의 세계 속에 빠지고 있다. 그런데 그 모래는 흡혈귀와 같이 시인의 피를 빨아먹는다. 시인은 “서서히 내 몸이 모래에 잠기지. 모래가 살갗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지. 물과 피가 다 빨려 가죽만 남았지. 모래가 사각사각 살가죽까지 갉아먹”는다고 진술한다. 시인의 기다림은 아마도 하늘로의 비상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막은 그에게 비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막의 모래는 그의 몸에 달라붙어 그의 피를 빨아먹고는 결국 가죽만 남은 시인을 쓰레기처럼 폐기해버릴 것이다. 이 사막에서 비정한 현 한국 사회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시인이 현 한국 사회가 가하는 압력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한편, 시인은 더 나아가 “끝없이 깊은 모래 밑으로 물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사막은 역설적으로 강이었다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가 툭 꺽였다. 만져 보니 문드러져 툭 떨어져 나간다. 배를 만지니 손가락이 푹 들어가 내장이 만져졌다. 누웠다.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생은 연습이 없다. 단 한 번이면 족하다. 누웠다. 온몸에서 진물이 흘렀다. 누런 물이 땅으로 스민다. 누웠다. 스민다. 쏟아지는 모든 것들이 스민다.

― 「대황하 2」 부분

 

피를 빨아먹는 사막은 육체를 부패시키는 누런 황하임이 드러난다. 시체들이 누워 있는 이 세계에서 시적 화자의 육체 역시 부패하면서 누런 물을 흘린다. 즉 황하는 시체들의 진물로 이루어진 강이다. 「대황하 3」의 “누런 황토물이 거리에 솟구친다.”라는 구절을 보면 황하란 바로 도시의 거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는 부패해가는 시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얼굴을 가린 채 눈빛만 쏘아 대는 사람들”(「대황하 3」)이다. 자신의 마음을 가리고 상대방에게 가하는 공격적인 눈빛은 삶의 부패를 드러낸다. 그 눈빛이 바로 ‘진물’일 것이며 ‘황토물’일 터, 「대황하 7」에서는 그 시체와 같은 얼굴 가린 사람들이 제법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다음은 이 시의 후반부다.

 

뜨거운 김을 쐬고 퇴근 무렵 자동차에 몸을 싣는다. 내 얼굴에 붉은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사람들은 이미 죽음 직전의 표정을 연습하고 있다. 나는 두통을 이기기 위해 투구를 쓴다. 도도한 웃음을 연습한다. 열기를 보았다. 빛이 열기 속에서 반짝반짝 드러났다. 시장(市場)이다. 죽음의 얼굴을 파는 시장이다. 뜨거운 빛 속이다.

 

도시의 거리인 황하는 또한 시장이기도 하다. 그들은 얼굴을 가리고 “죽음 직전의 표정을 연습”한다. 시인 역시 투구를 쓰고 얼굴을 가린 채 “도도한 웃음을 연습”하고 있다. 그 웃음이란 아마도 시장에 팔리기 위한 웃음일 것이며 결국 진실한 삶을 죽이는 웃음일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 직전의 표정 짓기를 연습하면서 살아나가야 한다. 팔리기 위해 사는 이들은 경쟁자인 상대방을 공격적인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 “뜨거운 빛”이 사막―황하의 열기를 만들어낸다. 시인은 이들 삶 속의 죽음을 ‘붉은 물줄기’로 상징화한다. 죽음의 표정을 짓는 이들의 얼굴엔 죽음을 가리키는 붉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죽어가는 삶에는 언제나 시체 냄새가 날 것이다. 시인은 “몸 가죽을 슬쩍 잡아 찢는다. 온몸에 누런 물 내음이 가득 퍼진다”(「대황하 8」)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누런 물이란 물론 부패해가는 육체가 흘리는 진물이다. 그러므로 마실 수 없는 물이다. 죽음의 삶, 거짓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황하에서는 “실체는 없고, 허상만 가득”해서 “바닥이 보이지 않”(「대황하 9」)는다. 그곳에서는 “강물에서 물을 먹지 못”하며 “재갈을 물린 입으로 소리를 질러”야 하고, 그래서 “갑판에 비명이 가득”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생수 위에서 목말라 죽어”(같은 시)가야 한다.

「황하」 연작은 이 세계에 대한 시인의 지독한 환멸을 보여준다. 그 세계는 구체적으로 서울을 가리킨다. 서울은 “한여름에도 눈이 내리고/ 한겨울에도 태풍이 오는 곳”으로서 “일찍 배운 증오로/ 뼈와 살을 태우는 곳”(「비상」)이다. 나라가 망하기 전에 나타나곤 하는 이상 기온 현상이 수시로 닥치는 도시, 증오 속에서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도시가 서울이다. “죽는 법을 배우지 못”하여 죽지 못한 시인은 이 속에서 “새들의 노래를” 부르는 자다. 그러나 어떻게 이 시체들로 가득 차 있는 공간에서 비상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대황하」 연작을 마무리하는 시인 「대황하 11」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쓴다. 다음은 이 시의 마지막 연이다.

 

붉은 눈물,

가만히 들어와 출렁인다.

거리를 걷고 있으면

온몸이 하늘로 붕 뜬다.

병든 몸 위에 새들이 날고 있다.

 

죽은 삶을 상징하는 ‘붉은 물줄기’가 이 시에서는 ‘붉은 눈물’로 변환되어 나타난다. 죽어가는 삶에서 비롯되는 슬픔, 그 슬픔이 ‘붉은 눈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은 이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비상의 힘을 마련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죽음 속에서 슬픔으로 마음이 출렁이게 될 때, “온몸이 하늘로 붕” 뜨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병든 몸 위에 새들이 날고 있”음을 발견한다. 더 나아가 시인은 날아가고 있는 저 새들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 역시 발견한다. 「건기(乾期)의 새」에 따르면, 새들은 “하늘 귀퉁이 구름을” 밀고 있다. 그런데 그 행위는 “어떤 운명을 잠시” 미는 것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구름을 미는 행위는 “물 쪽으로 향한 구름에 몸을 던”지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물이란 황하에서와 같은 누런 물이 아니라 “이슬의 영롱함과 풀잎의 생명”과 같은 맑은 물일 터이다. 이 맑은 물을 함유하고 있을 구름 쪽으로 몸을 미는 행위는 황하 같은 세상에서 삶의 운명을 바꾸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꿈꾸는 비상이란 맑은 삶에의 의지를 의미한다.

시인이 북극을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최초의 물”이 결빙되어 이루어진 북극의 얼음이야말로 ‘맑음’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 맑음은 인간의 세계를 넘어선 어떤 세계다. “언젠가 인간의 시간은 멈추겠지만/ 얼음의 시간은 멈추지 않겠지.”(「북극의 진화」)라고 시인이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얼음의 시간대에서 인간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시인은 좀 더 광활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시인의 인식에 따르면, 대자연의 순수성이라고 할 북극의 얼음은 인간 세계 밑바탕에서 세계를 세우고 허문다. 「북극의 진화」는 인간 세계 바깥의 시야에서 “인간의 소리”를 인식하고 있는 대작이다. 이 시의 후반부를 다시 읽으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최초의 물은 멈추지 않고 질퍽대면서

어느새 허벅지까지 올라온다.

솔직히 나는 진화했다.

물이건, 얼음이건 간에

먹고 버리고 회피하면서 몸뚱이를 지켜왔다.

상점에 들어오면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푸르스름한 기억을 소환해

이 도시를 담금질한다.

한 달 새 교차로엔 거대한 빌딩이 들어섰다.

대형 마트와 옷가게가 들어서고 그 위에 사람들이 산다.

지도는 또 바뀔 것이다.

대륙의 한 점이, 또 한 점이 되고,

다시 한 점이 덧입혀져 거대한 점이 될 때까지.

저 멀리 철새는 날아오르고

꽃잎은 몽우리를 틔울 것이다.

내 숨은 어느 산맥을 따라 이동할까.

밤이 되면 지도의 소리는 막힌다.

거칠게 울고 우는 소리만 가득하다.

인간의 소리만 가득하다.

모든 것이 까마득하다.

 

 

_ <현대시>, 2011년 9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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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제물론(齊物論)〉에는 이런 말이 있다. “지금 또 여기에 말[言]이 있다고 하자. 그것이 이와 같이 밝은 지혜[明知]인가 이와 같지 않은 것인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같은 것과 같지 않은 것이 모두 비슷한 것이기 때문에 곧 궤변(詭辯)과 다를 것이 없다[今且有言於此, 不知其與是類乎, 其與是不類乎, 類與不類, 相與爲類, 則與彼無以異矣].” 인간은 언어 없이는 어떤 이치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러나 언어는 완전하지 않다. 언어는 한정된 세계만을 지시할 뿐이다. 세계 밖으로 누락된 진실에는 도달할 수 없다. 말로써 다른 입장들은 억압되고, 하나의 가능한 의미만이 진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완전한 소통은 없다. 통상적인 의사소통은 언어의 바깥을 간신히 배제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언어로써 ‘명지(明知)’할 수 없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라캉이 말한 ‘문자’의 개념을 떠오르게 한다. 문자는 하나의 동일하고 안정적인 기원을 투명하게 지닐 수 없다. 문자가 지시하는 대상/의미는 문자의 표면에 머문다. 모든 문자는 은유의 구조와 같다. 문자가 열어 놓은 것은 의미의 전달 가능성이자 불가능성이다. 문자 내부에는 문자화할 수 없는, 억압되고 누락된 것, 즉 ‘그 무엇’이 실재한다. 따라서 아무리 정교한 언어라 해도 의미는 불확정적이며 불명료하다. 라캉의 견지에서 본다면, 문자의 심급(深級)은 바로 이 불가능성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말이 문자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자는 의미화할 수 있는 것과 의미화할 수 없는 것을 ‘누빔점(quilting point)’으로 맞물린다. 이를 통해 문자는 의미와 비의미 모두를 흐르도록 한다. 바로 그 점에서 라캉의 언어에 대한 이해가 장자와 만난다. 즉, 언어로써 모든 소통을 대신할 수 있다는 믿음은 곧 환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소통 혹은 소통의 주체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호주관적인 언어에 대한 믿음 역시 그 바탕으로 돌아가 다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통은 문자 내부에 혹은 문자의 바깥으로 누락되거나 망기된 것, 그래서 문자의 이면에 머무는 의미의 실재 혹은 비의미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소통보다 앞서는 것은 모호하고 결코 표현될 수 없는 말의 ‘심급’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에서 더욱 자명하다.

(...)

 

문자의 심급과 편향성


그러나 나는, 이토록 성급하기만 한 물음들을 뒤로 한 채, 다만 심급이 아닌 심금(心琴)을 이야기하려 한다. 말장난처럼 들릴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지금 내가 심금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심급이 지닌 모호하고 (비)의미에 가까운 어둠을 실제의 삶과 일시적으로나마 누벼 주는 지점이다. 즉, 라캉의 실재이자 장자가 말한 지혜와 지혜 아닌 것 모두를 뛰어넘는 심급에서 시작되는 문자의 은유에도 소통은 ‘있다’.

여기서 문자의 두 번째 중요한 특징이 드러난다. 문자는 보이지 않는 (비)의미를 심급으로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누군가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문자의 진정한 역설이 발생한다. 즉, 문자의 의미를 지탱하는 것은 누락된 (비)의미에 있음이 밝혀진다. 소통이란 불가능한 것들이 전달될 때, 비로소 마음을 움직인다. 문자 그대로의 표면적 의미만으로는 소통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한다. 불가능성의 영역은 내가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상호주관적으로 얽힐 가능성의 조건이다. 그것이 문자만으로 시가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유일 것이다. (불가능한 의미의) 심급이 (의미의) 소통을 보증한다. 그러므로 소통은 관념과 구체, 투명함과 투명함의 문제가 결코 될 수 없다.

이에 나는 소통의 의미를 동일성이 아닌 ‘편향성’에서 찾으려 한다. 그리고 그 논의의 출발점을 “도시”에 대한 시인의 상상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도시는 소통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모두 드러내며, 대부분의 현대 시인들이 도시에 대한 애증을 멈출 수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도 좋으리라.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등을 맞았다
뒤를 돌아보니 신비한 빛이 발밑으로 들이쳤다
등이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화살을 등에 꽂고 거리를 지나다녔다
겨울엔 찬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천천히 바람을 가르며
거리 위를 새겨 나간다

길의 감촉도 모른 채 떠남을 탐했다
길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명의 숲에서 충혈된 눈으로
비만한 이미지를 본다
모두 집안에 묘지를 두어 엎드려 절한다

어둠에 잠긴 강은 늘 소리를 낸다
소리의 환각을 타고
긴 여행을 떠난다
살갗을 타고 흐르는
차갑고 낯선 공기
모두 마법에 걸려 있다
복잡한 사람이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은
단 한 가지만 생각하는 삶
―이재훈 〈방랑의 도시〉 전문(《시로 여는 세상》 2011 여름)

근대 이후 시인에게 도시는 영감과 이러한 영감을 구속하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공간이 되었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시인의 삶을 추동하는 동시에 가혹할 정도로 건조시킨다. 모든 혁명을 대체한 기술의 자가발전 능력에 수치를 느끼면서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도시 안에 머문다. 시인은 날마다 이해할 수 없는 군중의 얼굴을 낯설게 마주하는가 하면 그 속에서 같은 감정, 이를테면 고독과 같은 것을 발견하고 안도한다. 우리는 모두 “화살을 등에 꽂고 거리를 지나다”니지만 알지 못한다. 피 흘리고 있다는 것을 감각할 수 없다. 바로 그 점에서 도시인은 절대적으로 동일한 삶을 산다. 따라서 도시는 현대의 시인에게는 꿈의 통로이자 감옥이다. 시인은 도시 어디엔가 살면서 정착하지 못하는 존재들로 남겨진다. 이재훈 시인이 정확히 읽어내고, 또 우리가 공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도시는 딱딱한 건조물로 이루어진 미로이며, 시인은 이 미로 속을 끝없이 헤매 다니는 동안, 의미화할 수 없었던 수많은 (비)의미들로써 시를 쓴다. (이에 대하여 시인은 “여행”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재훈 시인은 에두르지 않는다. 그의 사유는 정직하다. “비만한 이미지”를 뚫고 단 하나의 의미(“소리의 환각”)를 듣고자 한다. 그의 관념에 대한 편애는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나 또한 시인이 말하는 “단 한 가지만 생각하는 삶”을 그렇게 편향되게 상상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소통은 편향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닐까. 이때 편향이란 나르시시즘적 동일화가 아닌 것, 전체화할 수 없는 기우뚱한 기울임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심급에 존재하는 의미의 불가능성이 소통의 장으로 올라올 때 그것이 지니는 진정한 의미는 세계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자기동일성의 무대를 깨트리고 편향과 편애로 흘러가도록 놔두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전체주의적 기획과도 연결되지 않는다. 소통은 그야말로 파열점에서 만들어진다. 심금은 하나의 주제, 하나의 이야기로 번역될 수 없다. 심급의 불가능성이 소통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만 이해되어야 한다.

 

_ <유심>, 2011년 7~8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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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근의 시 낭독

 http://www.munjang.or.kr/mai_multi/djh/content.asp?pKind=14&pID=24

 

 

윤성근, 「엘리엇 생각」

 
 
내가 짧은 능력과 식견으로 돼먹지 않은 두 편의
미간행 장시를 발표한 것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나는 당신을 닮고 싶었던 것.
 
그러나 될 일도 될 턱도 없어 가슴에 묻고
예이츠도 키츠도 셰이머스 히니도 딜런 토마스도 아닌
많은 시인들 가운데 또 김수영도 정지용도 미당도 이상도 아닌
그 숱한 위대한 시인들 가운데 유독 당신 하나만을
칭송케 되었는데
 
어느 해 크리스마스 무렵 술 취해 막 이사한 아파트를 못 찾아
택시에서 어추어추 30분 이상 헤맬 때
당신의 시 「네 사중주」의 일 절 우리가 부단히 애써 인생을 살면
처음인 그 끝자리로 돌아오게 되리란 구절이 떠올라
곧장 택시 내린 곳으로 돌아와
뒤돌아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 성큼 집으로 찾아 들어갔던 것.
 
혹시 이런 모습을 시인이 내려다보고 있지나 않을까 해서
일순 계면쩍어하면서.
 
 
시_ 윤성근 - 1960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 시집 『우리가 사는 세상』『먼지의 세상』『소돔』『나는 햄릿이다』『나 한사람의 전쟁』 등이 있음. 2011년 영면함.
낭송_ 이재훈 - 시인.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가 있음.
출전_ 『나 한사람의 전쟁』(마음산책)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발표했다는 시인의 미간행 장시가 궁금하다. ‘도시서정’이라는 말이, 요즘의 ‘미래파’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시단에 회자되던 시절이었다. 윤성근은 이 도시, 서울의 ‘착란과 착란으로 얼빠진 얼굴들’(엘리엇의 「네 사중주」에서)의 잿빛 그림자를 시니컬하게, 그러나 유머러스하게 보여준 시인이었다. 참으로 유니크한 시를 썼던 이이가 생전에 마지막 시집을 낸 게 1992년이니, 20년 가까이 그는 대체 왜 침묵했단 말이냐? 하긴 20년이란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지만, 너무도 짧은 하루들의 한 덩어리일 따름이다. 20년, 금방이다. 아주 가끔, 윤성근 씨는 이제 시 안 쓰나 생각했을 뿐, 20년이나 지난 줄 나도 몰랐다. 미안하다…….
  「엘리엇 생각」이 실린 『나 한 사람의 전쟁』은 유고시집이다. 절박한 병상에서 쓴 시들이 어찌나 맑고 따뜻하고, 꾸밈없고 거침없는지! 「엘리엇 생각」도 찬물을 들이키듯 시원스레 썼다. 만취해서도 시를 줄줄이 욀 정도라니. 엘리엇에 대한 시인의 순정이 미소롭다.
  친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그를 ‘차도남’ 혹은 ‘까도남’이라 생각했었는데, 『나 한사람의 전쟁』을 보고 좀 놀랐다. 실은 이렇게 정 많고 온유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받은 그 인상은 그의 수줍음 때문이었나? 아니면, 그의 시에서 받아온 인상 때문?
  그가 소장한 SF소설을 한 트렁크씩 몇 차례 빌려 본 기억이 난다. 그의 아내를 통해 빌린 것이지만, 그가 아주 까칠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던 듯하다.
  술과 헤비메탈과 SF소설을 사랑했던 시인, 윤성근. 삼가 명복을 빈다.
 
문학집배원 황인숙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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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어떤 시들은 「동경」과 같이 모호하고 막연한 추측들을 불러일으킨다. 좋은 시는 비평의 언어는 물론이고 스스로 시 자신의 언어까지 망설이고 머뭇거리게 하는 동시에 거리낌 없이 질문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든다. 즉, 비평이 그리고 시가 시를 동경하도록 이끈다는 말이다. 구체적인 감각 속에 모호하고 신비한 추상을 숨겨놓은, 이 동경의 힘은 이재훈 시를 이끄는 주요 동력임이 틀림없다.

 

(…)

 

소멸을 먹는다니, 이 기이하고 신비한 허기는 분명 시인의 것이라 불릴만 하겠다. 거식증 환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자가 아니라 무(無)를 먹는 자라는 라깡의 말을 변주하면, 시인이 먹는 것은 소멸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울음과 슬픔을 먹는 시들이 있다. 그것을 먹고 그것을 누설하며 어떤 비밀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시들. 이에 반해 이재훈의 시는 울음과 슬픔의 소멸을 먹는 시다. 이재훈은 울음과 슬픔을 양식으로 삼지 않는 그것들을 울음으로 울겠다고 하며 그 울음이 자신의 몸을 녹여서 비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비밀이 되지 않는 슬픔이란 얼마나 누추한 것인가. 울음과 슬픔의 격식이 상실되기 쉬운 자기 과시의 시대에 시인은 그것을 단단한 종의 울림처럼 쏟아내려 하는 중이다.

 

(…)

 

이재훈의 시는 그렇게 고통 속에서 망각과 소멸과 파멸을 말하지만, 그의 시는 망각되지도 소멸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명왕성 되다>에 실린 그의 시들은 모호한 신비의 안개를 걷어내고 한층 더 분명한 뼈를 보여줄 것만 같다. 그래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날 때마다 이 시집을 다시 꺼내 읽는 일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나는 아직 그가 보여준 고통의 뼈를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한층 더 분명해지기를 기다리겠다는 말이다. 그가 건축한 미궁 속에 이제야 처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

 

_ 송종원, 「시 쓰는 일의 비밀에 관한, 혹은 시가 쓰는 비밀에 대하여」, <시현실>, 2012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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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라디오 시콘서트(DJ 배우 강성연) <詩詩한 시간> 추석특집에 출연했다.

손택수 형이 고정게스트로 참여하는데, 택수형과의 친분으로 한번 더 방송에 나가게 되었다.

고향에 관한 시를 낭송하고 얘기하는 자리.

나는 내 시 <모운동>과 김영남 시인의 <그리운 옛집>을 낭송했다.

<모운동>이라는 시는 <영월에서 온 편지>라는 시를 개작한 작품이다.

그럼으로 나는 <모운동>이라는 작품을 2편 가지게 되었다.

'모운동'은 내가 태어난 곳,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주문리(모운동)의 지명이다.

지금은 지명이 김삿갓면으로 바뀌었다.

지명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모운동'이 가진 구름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을 곱씹었다.

'모운동'은 구름처럼 떠돌며 살다간 김삿갓((난고 김병연)을 이곳으로 다시 오게 했고

탄광마을로 북적이던 사람들이 구름처럼 흩어져 고요한 마을로 되돌려 놓았다.

모운동은 지금 산골오지마을 트래킹 코스 등으로 새롭게 알려지고 있다.

 

나는 김삿갓의 혼이 담긴 곳과 가장 가까이에서 태어난 시인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운명이라는 걸까. 이십대까지 구름처럼 전국을 떠돌며 살았고, 시를 쓰고 있다.

 

방송듣기

http://home.ebs.co.kr/reViewLink.jsp?command=vod&client_id=story&menu_seq=23&enc_seq=3121737

 


모운동(募雲洞)

 


이재훈

 


최초로 지상의 하늘을 보여준 건 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하늘을 이고 다녔고
광업소 앞에는 검은 작업복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광부들은 하늘을 보며 눈살을 지푸렸는데
하늘이 너무 무거워 그런 거라고 했다
옥동중학교 창가로 새어드는 햇살
나는 학생들의 까까머리 위로 날리는 백묵가루를
손에 쥐려고 울기도 했다
아버지는 나무 강단에서 하루 종일 백묵가루를 마셨다
저녁이 되면 아버지의 어깨엔 하늘이 뱉어놓은
검은 말의 찌꺼기가 내려앉았다
비가 새는 방에 누워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려고
양은냄비를 머리맡에 놓아두기도 했다
그런 날엔 노래부르는 꿈을 꾸었다
새벽에 목이 마르면 냄비에 고인 빗물을 벌컥 들이켰다
하늘이 내게 준 건 달았다
관념의 허위와도 곤궁한 생활과도 바꿀 수 없는
쓸쓸함을 하늘에게서 배웠다
그땐 겨드랑이 밑에 어둠이 있었는지 몰랐다
광부들이 하늘을 보며 왜 눈살을 찌푸리는지 몰랐다
새벽녘 예배당 마룻바닥에 엎드려 자고 있는 아이
방석에 축축이 얼룩진 영혼의 땀내
내 슬픔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구름이 모인다는 하늘 아래 첫 동네
우리는 그 해 그곳을 떠나왔다

 

* 모운동(募雲洞)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하동면) 주문리. 만경대산이 품고 있는 해발 700미터 마을.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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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패러디 백일장

 

출처 : http://www.for-munhak.or.kr/idx.html?Qy=play_parody&nid=632&page=1



[심사평]


             제5회 문학나눔 패러디 백일장 심사평 발표

 

 

글/이재훈(시인)

 

이번 백일장에서는 응모작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힘든 모양이다. 응모작들을 한 편씩 읽으면서 각박한 삶의 세목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때론 히죽히죽 웃음을 지었고 때론 공감했으며 때론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다.

<남자의 일생>은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한 평범한 남자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애벌레의 느리고 질기고 고통스러운 시간은 우리네 삶의 형편과 많이 닮아 있다. 응모작들 중 많은 수의 작품들이 각자의 위치 속에서 이런 고통스럽고 힘든 삶을 잘 표현해 주었다.

패러디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위트와 풍자가 담긴 수사법이다. 원작을 변용시킬 때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위트가 살아 있는가,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전달해 줄 수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Red S님의 <개똥의 일생>은 위트와 해학이 넘쳤다. 한참 웃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미지가 살아 있으면서 개똥이 거름이 되어 새로운 열매를 맺는다는 생명 순환의 의미도 담겨 있다.

토머스님의 <노숙인의 하루>는 관찰자의 시선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노숙인의 일상을 유심히 관찰하여, 노숙인이 가진 허기가 육체적 허기만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신혁님의 <지아의 일생>은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작품이다. 신지아에게 온 생은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는 시간일 것이다. 아기의 일상을 몸소 체험하여 아기의 세상을 이해하게 한다. 지아에게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수상으로 선정한 미립님의 <김씨의 일생>은 죽음의 순간을 사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평생 농사일만 하다가 쓰러진 김씨는 자식들 잘되는 것을 위해 온 생을 바쳤다. 우리 부모님들은 대개 이런 분들이다.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내기에 충분한 작품이고 표현도 깔끔하다. 특히 마지막 연에 모처럼 단잠이 든다는 구절이 시를 더욱 의미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이번 백일장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우리의 일생이 어떤 문장을 남기게 될까 궁금해지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수상 : <김씨의 일생>(미립)

장려상 : <개똥의 일생>(Red S), <노숙인의 하루>(토머스), <지아의 일생>(신혁)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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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의 이야기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유학까지 다녀온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습니다. 수의학을 전공한 농촌운동가였으며 가난한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봉사하던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 3도 화상을 입게 됩니다. 얼굴은 모두 문드러지고 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으며, 손과 팔은 휘어지고, 한쪽 눈은 시력을 잃었고 남은 눈마저도 시력이 1미터에 불과했습니다. 눈물샘마저 타버려 울 수가 없었습니다. 6개월 동안 스물일곱 번의 수술을 받은 그는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 몸이 말야, 이래뵈도 무지 비싼거야. 수십명이 달려들어 만든 걸작품이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람 손 안 간 데가 없단 말야.” 그리고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의 모태가 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운동을 시작하고, 1986년에는 경기 가평의 두밀리에서 ‘두밀리자연학교’라는 대안학교를 설립합니다. 그의 별명은 ET 할아버지. 주말마다 전국에서 모여든 아이들은 그를 이티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랐습니다. ‘이티 할아버지’는 ‘이미 타버린 할아버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바로 사회사업가이자 교육운동가인 채규철(1937~2006)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이티할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사람입니다.

 

현실과 마주한 희망이라는 끈

 

이제 제법 찬바람이 옷깃 속을 파고듭니다. 몸을 움츠리게 되고 더불어 우리의 마음도 서글퍼질 때가 많습니다. 출퇴근 시 교통체증은 짜증나기만 합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겨울 난방 걱정과 치솟는 집값 걱정이 커져만 갑니다. 김장도 해야 되는데 물가는 연일 치솟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차가운 밤바람이 가슴을 더 서늘하게 합니다. 눈이라도 내리면 더 걱정이 많아지겠지요. 뉴스에서는 정치인들이 나와 연일 서민복지를 부르짖지만, 실제 우리 몸에 와닿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십억이니 백억이니 하는 말들은 그저 뉴스에나 등장하는 허황된 단어들에 불과합니다. 은행잎과 단풍잎들은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데 우리의 현실은 어두운 먹구름으로 가득합니다.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여기저기 들립니다.

하지만, 언제나 늘 그렇듯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옵니다. 가랑잎들은 땅에 떨어져 서로 모여 있습니다. 서로 속삭입니다. 모이고 속삭이고 웅성이다 보면 어느새 땅속에 스미고, 새로운 싹을 틔웁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우주의 질서는 세상일들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정직하게 운행합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우리들은 서로 아웅다웅하며, 눈을 흘기며 때론 자신을 미워합니다. 이 속에서 서로 용서와 희망을 말들을 속삭이고 나누면서 함께 모여 있다면 어떨까요.

어떤 사람은 그 시간들 속에서 감사하기도 바쁘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감사한 일들이 지천입니다. 유명한 화가 르느아르는 퇴행성 류머티즘으로 몸이 마비됐고, 전쟁 중 아들 둘이 부상을 당하는 불운에 아내까지 잃었습니다. 하지만 마비된 손가락 사이에 붓을 끼워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르느아르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주변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르느아르가 자신이 불행하다고 자책하며 절망했다면 그 위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불행은 불행을 느끼는 자에게 돌아갑니다. 행복은 행복을 느끼는 자에게만 돌아갑니다.

 

행복이라는 토씨 찾기

 

행복의 반대말은 뭘까요? 불행일까요? 행복의 반대말은 외우지도 입에 올리지도 않는 게 상책입니다. 불행의 반대말을 외워야 할 때입니다. 용서하고 아끼고 이겨내고 참아내는 말들을 가슴에 품고 읊조리면 가슴이 따뜻해 집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늘 소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당신은 행복과 희망이라는 말을 하루에 몇 번씩 말하며 살고 있나요. 당신에게, 참 좋은 당신에게, 행복하다고 그래서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매번 이번 가을은 참 특별한 가을이 될거야 라고 혼잣말을 합니다. 이런 말들이 널리널리 퍼져간다면 지금의 현실보다는 훨씬 나은 현실이 오겠죠. 이번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가을이 되겠죠.

 

 

_ 중앙대학병원 사보 <참좋은 중앙>, 2011년 11~12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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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29) 명상하는 명왕성의 부족… 시인 이재훈

 

 


퇴출의 ‘고독’ 일탈로 달래다

2006년 8월 국제천문연맹(IAU)은 태양계 행성에서 명왕성을 제외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지름이 2200㎞ 정도인 명왕성은 목성의 위성인 가니메데나,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보다도 작고 중력이 상대적으로 약해 해당 공전 구역 내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재훈(40)은 명왕성 퇴출에서 도시인의 고독을 읽어낸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뱉어 낸다. 눈 밑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명왕성 되다(plutoed)’ 부분)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이라는 지위를 박탈당하고 ‘소행성 134340’으로 다시 명명된 명왕성(pluto)의 수동태 동사형인 ‘be plutoed’(명왕성 되다)’는 ‘완전히 새 됐어’와 같은 의미로 통용되면서 2006년 미국방언협회에서 선정한 ‘올해의 방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재훈은 이 말을 캐치해서 끊임없이 도는 서울 순환선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철컥철컥 계기판 없이 흐르는 그 ‘새 된 시간’을 시로 형상화했다. 궤도를 이탈한 현대인의 고독이 궤도가 불안정하고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된 명왕성 사건과 겹쳐진다.

이재훈은 강원도 영월군 만경대산 아래 첫 동네인 하동면 주문리 태생이다. 일명 모운동(募雲洞).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의 탄광촌이었다. 탄광촌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그는 초등학교 때까지 횡성, 인제 등 강원도 곳곳을 떠돌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래도 수줍음이 많아 새롭게 전학 간 학교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고교 때는 생업 때문에 충남 논산에 안착한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 고1 말부터 혼자 연탄불을 갈고 밥을 해먹는 자취생활을 했다. 사춘기가 늦게 왔던지, 일종의 반항심으로 나름 지역의 명문고 출신이면서도 대학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졸업 후 서울과 대전 등지를 전전하며 방황할 때 집중적으로 책을 붙들었고 문예지도 많이 읽었다. 그는 지금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밥값 저렴한 서울 용산도서관이 내 문학의 성지”라고 말한다. 당시 우동 1000원, 김밥 500원이었다.

명상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부모의 간곡한 설득으로 논산에 있는 건양대 국문과에 진학했고 방위병으로 병역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문학공부를 했다. 2학년 때부터 각종 문예지에 투고를 했고 은사인 평론가 우찬제 교수의 연구실 문틈으로 작품을 밀어 넣기도 했다. 4학년 때 월간 ‘현대시’로 등단했을 때 교문에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월간 ‘현대시’와의 인연은 등단지에서 근무지로 이어져 지금은 ‘현대시’ 부주간으로 있다.

“의욕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미소를 연습한다. 거울 앞의 수많은 표정들. 낯선 얼굴, 낯선 침묵.// 다른 말은 없다. 너를 자위케 하던 기호들. 새, 별, 그리고 꽃과 나무. 아무 생각 없이 잠들 수 있었던 그대, 라는 말을 향해.// 기록하지도 나서지도 않았던 길에 대해. 악마의 다리를 건너는 법에 대해. 꽃의 길이 아닌, 모험의 길목에 대해. 협곡 위 아슬하게 나 있는 다리에 대해. 이 땅과 영원히 이별할 수 있는 길들에 대해.”(‘매일 출근하는 폐인’ 부분)

도시 생태와 자신의 내면적 생태를 결합해 시대의 쓸쓸한 풍경을 포착하는 이재훈은 욕망으로 가득 찬 도시를 배회하는 명상가이자 ‘명왕성의 부족’을 자처함으로써 스스로 태양계 밖의 궤도를 꿈꾸고 있다. 그 궤도는 세속을 벗어나 성스러움을 체험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393349&cp=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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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for-munhak.or.kr/idx.html?Qy=letter&nid=484&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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