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

산문 2013. 1. 30. 23:09

옛 화일들을 뒤지다가 우연히 설문에 응답한 내 글을 찾았다.

<현대시> 2002년 2월호에 발표한 '동인특집' 설문에 대한 나의 답변내용이다.

'천몽'과 '시원'을 한국 시단의 젊은 시동인으로 초대하여 특집을 했었다.

나는 '시원' 동인의 자격으로 참여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뭐가 달라졌을까.

뭐가 달라졌을까. 뭐든 달라졌겠지.

 


 

1) 2000년대에 들어 동인활동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지금 현시대에 있어 동인활동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난 연대의 동인 목적이 실천적 행위, 사상적 기치, 담론의 생성이라고 거칠게 말해본다면 이는 모두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의도적 혹은 자생적 발로였다. 그 당시는 하나의 문학적 사실이 공동의 목소리와 친밀히 협력되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다름은 여기에 있다. 지금의 동인은 바깥을 향하지 않고 안으로 향해 있다. 하나의 문학적 사실이 각 개인의 내적인 동인(動因)에 의해서 미학적으로 규정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것 또한 필요라면 필요이고 자발적 발로라면 발로다.

 

2) 자신이 속한 동인이 한국시에 어떤 새로움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동인이라는 이름으로서의 새로움보다 동인에 속한 각 시인의 이름에 새로움이라는 꼬리표가 붙여지기를 원한다.

 

3) 무성한 시의 위기론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젊은 시인으로서 시의 미래를 점쳐본다면?

 

시의 위기론은 문학을 보는 편협한 잣대에 의해서 유포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시가 경제적 논리로 환원될 때는 그 질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되고 사회적 효용가치로 매김될 때 그 자리가 좁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엔 이러한 시의 경제적, 정치적 측면은 배후에 있다. 근대문학이 한 세기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아직도 같은 맥락의 준거틀로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향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근대를 통과한 새로운 자아와의 싸움을 시인들은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4) 일각에선 시의 위기가 아니라 시비평의 위기라는 지적도 있다. 시비평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겠는가.

 

문학적 안목과 열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비평이 학문 성과의 수단으로 역할을 한다면 문제가 되겠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에 대한 애정이다. 텍스트 자체에 대한 애정없이 출발한 비평은 곡해되기 마련이다. 애정을 갖고 텍스트와 같이 산다면 창조적 비평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5) 인터넷을 비롯한 사이버 공간이 자신의 문학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사이버 공간이 시쓰고 생각하는 시간을 빼앗는다는 점에선 큰 영향을 끼친다. 사이버 공간은 많은 일상 중에서 하나의 일상일 뿐이다. 영향이라면 현실 공간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 공간이 내 시쓰기 자체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는 소통과 정보창고의 역할이 큰 것 같다. 가상공간이 창작자들에게 절실히 체감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사이버 공간이 문학자체의 질을 변화시킨다는 예단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6)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 시단(문학 출판사, 문예지 등)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는가.

 

앞으로 시의 가장 큰 문제는 젊은이들이 시단으로 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를 쓰고 시인을 꿈꾸었던 젊은 인재들이 영상매체나 광고, 대중매체 쪽에 몸을 헌신하고 있다.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려고 하는 자들은 소수이다. 신인등용문의 응모자가 많다해도 대부분 고령화되어 있고 젊은 응모자 중에도 대다수가 고학력 문학전공자들이다. 등단했다해도 얼마 못가서 시단을 떠나버린다. 점점 시인은 자유로운 예술가가 아니고 촉망받는 문학전공자들이 갖는 자격증처럼 돼버렸다. 시가 다양화되지 못하고 유행에 맞춰 획일화되는 것은 이런 연유가 아닐까. 기성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젊고 패기있는 신인들의 발굴과 육성에 모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국 시단(문학출판사, 문예지 등)의 문제 중에 두 가지만 말하고 싶다. 하나는 가난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연중심주의라는 점이다. 사실 가난한 것은 문제라기보다는 이 시대에서 문학하기의 어려움이다. 가난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의 상품화, 부적절한 문예지 운영 등이 발생한다. 이것은 시인들의 제살 깎아먹기다. 또한 인연 중심주의(학연, 지연, 잡지) 때문에 에콜의 문제가 대두되고 정실비평을 주고받고, 시인과 비평가들이 주변의 눈치를 본다. 시단이 가난하지 않으려면 정부의 문예정책에 호소해 지원을 받거나 환금성을 가질 수 있는 문학아이템을 개발하는 일밖에 없다. 제대로 시를 쓰면서 먹고 살기가 무엇보다도 어려운 시대다. 이를 위해 원로부터 신진 시인들에 이르기까지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시단이 인연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면 문학인들이 순수해져야 한다. 문학의 인연을 통해 과대평가를 하거나 받거나 하는 등등의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다.

 

_ <현대시> 200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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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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