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연꽃

시詩 2008. 2. 23. 00:4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재훈



아무 말도 없는 밤. 모든 진실은 추악해졌고, 냄새는 역겨워졌다. 잠에서 깬 설익은 밤. 당신의 지느러미가 물의 품에서 파닥거리는 소리. 아무 것도 믿지 않는 밤. 정작 내세울 것이라곤 뜨거운 마음뿐. 침묵을 거느린 그대의 말과 말 사이. 그 행간으로 여명은 왔다. 뜨거운 마음 하나가 붉은 햇살을 따라 간다.

저 홀로 빛나는 존재들이 있다. 오만 가득한 몸. 축복에 싸인 아름다운 몸. 다른 시선들을 의식하며, 가장 완전한 자신을 드러낼 때. 아픈 밤의 시간이 흘렀다. 빈 가지를 부여잡고 깊은 잠을 잤다. 하늘에서 달콤한 사과향기가 났다. 그리고 오랜 폭우가 내렸다.

신열로 뜨거웠던 밤. 길섶에 엎드려 고요한 늪을 지켜보았다. 가슴은 차가워졌고 달그락대며 나사가 굴러다녔다. 검붉은 연기가 머릿속에서 뿜어나왔다. 당신의 비늘 부딪히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렸다. 설익은 달밤이었다.

_ 웹진 <문장>, 2007년 8월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의 일생  (1) 2008.03.06
봉숭아  (0) 2008.02.27
비상  (0) 2008.02.18
당나귀  (0) 2008.02.18
만신전(萬神殿)  (0) 2008.02.14
Posted by 이재훈이
,

비상

시詩 2008. 2. 18. 13:45

이재훈


1. 겨울
이후, 꽃봉오리는 망울지지 않았다
나는 땅바닥을 기며
가만가만 숨 죽였다
딱딱한 땅에서 몇 오라기
풀을 지나칠 때
비로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짐작하지 마라
기어가다 만난 돌의 시간도
훔쳐보지 마라
누구의 소유도 아닌
몸에겐 연혁이 없다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권태로운 계절에
그렇게 한 백 년은 기다렸다

2. 오늘
이후, 아무 것도 태어나지 않았고 아무 것도 소멸하지 않았다
어떤 하늘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밤을 주었고 어떤 밤은 공중이 없는 하늘을 주었다 새벽녘 술이 깨어 일어나 보면 사방이 꽃천지고 앉은 자리마다 꽃자리일 때가 있다 그곳에서 연꽃 위를 기어가는 뱀을 지켜보다 혼절한 밤 다시 깨어 보면 뱀이 내 목을 휘감고 있다 휘영청 뜬 달에 내 몸을 비추어보며 깔깔 웃고 난 밤 아무 것도 태어나지 않았고 아무 것도 죽지 않았다

3. 유폐
이후, 누구에게 밟히거나
공중에 던져져도 괜찮았다
나는 자꾸 진화한다
詩人이었다가 일용근로자였다가 백수건달이었다가 독학자가 된다
어떤 모습에도 아파하지 않는 내성(耐性)의 몸
썩은 내가 풀풀 날린다
죄 지은 손 하나 빌려
하늘에 돌을 힘껏 던진다
메아리 하나 아득하게 들리다가
하늘로부터 빙폭(氷瀑)이 서서히 내려와 깔린다
나는 배꼽을 움켜쥐고
아프고 흐트러진 머리를 움켜쥐고
차가운 흙 위에 앉았다
그렇게 오래도록 갇혀 있었다

4. 서울
이후, 한 어미의 뱃속을 만나기 전부터
기다렸다 내 머리에 깃털을 꼽고
부싯돌을 따각따각 친다
발가벗은 몸으로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도솔천인가 연옥인가
이 도시는 한여름에도 눈이 내리고
한겨울에도 태풍이 오는 곳
일찍 배운 증오로
뼈와 살을 태우는 곳
나는 죽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차가운 흙 위에 앉아
새들의 노래를 부른다

_ <시평>, 2007년 봄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숭아  (0) 2008.02.27
가시연꽃  (0) 2008.02.23
당나귀  (0) 2008.02.18
만신전(萬神殿)  (0) 2008.02.14
할례의 연대기  (0) 2008.02.13
Posted by 이재훈이
,

당나귀

시詩 2008. 2. 18. 13:43

이재훈


터덕터덕 걸었을 뿐이다
모래바람 따라 그랬던 건 아니다
보리가 살갗에 닿는 쓰라림 같은 것
그렇게 하늘 끝을 향해 걸어갔다
차도르를 걸친 채 외줄을 탔다
그때부터 귀향지를 생각했다
도랑창에서 잠을 자다 일어나면
귓구멍에 개미가 한가득 기어 다녔다
우주의 날씨는 늘 맑은 것처럼
무더위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뒤채는 모래처럼
한 알의 몸, 한 숨의 잠이었을까
사랑을 배운 죄로
이 넓은 광야를 걷고 있는 것일까
이슬의 영롱함과 풀잎의 생명이
더 맑다고 얘기하고 싶은데
자꾸 과거만 투명하게 보인다

뼈와 살이 풍화되는 겨울 저녁
아무도 나의 고향을 말해주지 않았다
아무도 나의 노래를 들어주지 않았다
어느 마구간 구유에 입을 넣고
소리없이 여물만 삼켰다
나는 원래 들판의 아들이었지
아름다운 황혼은 뱃속에 숨겨두고
퀭한 눈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이제는 도시의 골목을 기웃거리며
킁킁 냄새나 맡으며
예술을 아는 척 피카소전엘 간다
어깨 구부정한 늙은 포유류가
저기 보인다

_ <시현실>, 2007년 봄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시연꽃  (0) 2008.02.23
비상  (0) 2008.02.18
만신전(萬神殿)  (0) 2008.02.14
할례의 연대기  (0) 2008.02.13
만(灣)  (0) 2008.02.03
Posted by 이재훈이
,

만신전(萬神殿)

시詩 2008. 2. 14. 17:39

이재훈


저는 오래전 아버지를 죽이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 뒤로 수많은 신들이 제 속에 들어와 소리를 지릅니다. 홀짝홀짝 살들을 빨아 먹습니다. 가슴이 휑뎅그렁해져서 사다리를 타고 허공 위에 올라갔습니다. 십자가가 네온을 켜고 붕붕 하늘을 날아 다닙니다. 오리온을 찾으려고 별자리를 하나씩 짚어보았습니다. 거인의 눈과 코와 활 오늬의 도톰한 입에 손가락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도시는 너무 시끄럽습니다. 가슴 속에서 귀신들이 포식하고 구역질하는 소리 들립니다. 밤거리를 나서면 골목의 이곳저곳에서 토하는 소리 들립니다. 저는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는 술집을 찾아 헤맵니다. 너무 시끄러워 고독합니다. 어제 올랐던 사다리를 허방지방 오르다가 기우뚱합니다. 차라리 길 위에 몸을 던질까요. 공중으로 힘껏 차올라 활갯짓을 합니다. 귀신들이 아우성을 칩니다. 몸이 터져 귀신들을 내놓으면 사람들은 변할까요. 기도의 시간도 포기할까요. 그러나 나는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사랑이 완성됩니다.

촛불을 집어 삼키고 가슴에 등을 켭니다. 환한 가슴으로 지나가는 개에게 절을 합니다. 허공의 사다리엔 긴 목을 가진 시체들이 걸려 있습니다. 이전 세상에서 쫓겨난 귀신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갑니다. 제 목이 점점 뻣뻣해지고 코끝이 찡해집니다. 어머니가 자꾸 저를 부르십니다. 아들아, 아들아 문 밖에 나와 목이 쉬도록 부르십니다. 칼날이 제 목젖을 지그시 누르고 천천히 들어옵니다.

_ <작가와 사회>, 2008년 봄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상  (0) 2008.02.18
당나귀  (0) 2008.02.18
할례의 연대기  (0) 2008.02.13
만(灣)  (0) 2008.02.03
올랭피아  (0) 2008.01.31
Posted by 이재훈이
,

할례의 연대기

시詩 2008. 2. 13. 11:22

이재훈



큰 물고기를 잡았다.
한 아름이 넘치는 몸집이었다.
혹시나 죽을까 물고기를 수족관에 넣었다.
물고기의 눈이 나와 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고기는 내 자랑이었다.
눈물도 없이 날 바라보며
몸을 뒤채는 성실한 영혼.
동네 형들이 내게 침을 뱉던 날.
하얗다며 얼굴에 진흙을 바르던 날.
공중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오줌을 내갈겼다.
붉은 얼굴로 욕하는 연습을 했다.
다행히 집엔 물고기가 있었다.
수족관 유리에 입술을 대고 혀를 내밀었다.
차갑고 막막하여 아름다운 감촉.
침묵을 알아버린 호흡.
나는 방안에 박혀 물고기와 놀았다.
온몸이 달아올라 수족관에 다리를 비볐다.
물고기 때문이었다.
악한 아이를 죽이지 못하고
풀밭 위에 누워 한없이 울게 된 것은.
나는 시퍼런 칼을 든 모험의 소년이고 싶었다.
영원한 슬픔에 이르는 방법쯤은 알고 있었다.
침착하고 고요하게 모두 죽이고 나면,
평정이 온다는 것을.
그것이 운명일지라도.
물고기를 호수에 풀어주었다.
물에 놓자마자 내 발등을 핥고
허벅지를 핥고 사타구니를 깨물고는
서서히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슬쩍, 물 위에 비치는 내 몸.
온몸에 비린내가 났다.
가랑이에서 썩은 내가 났다.
난삽한 사랑이 시작되었다.
과분하게 영원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 <리토피아>, 2008년 봄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나귀  (0) 2008.02.18
만신전(萬神殿)  (0) 2008.02.14
만(灣)  (0) 2008.02.03
올랭피아  (0) 2008.01.31
진흙의 봉인  (0) 2008.01.30
Posted by 이재훈이
,


김춘수 이재훈






대여(大餘) 김춘수 선생은 지난 2004년 1월 <김춘수 시전집>(현대문학 刊)을 상재하셨다. 이 시선집은 1152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그간 60여년 가까이 해오신 문학 활동을 총결산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시선집에 그치지 않고 <김춘수 시론 전집> 1, 2권을 연이어 냄으로써 김춘수 문학의 총체적인 정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김춘수 선생은 4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한국 문학의 한 경지를 이룩한 시인이다. 관념시와 무의미시, 그리고 이 둘의 변증법적 지양을 거친 의미로 되돌아오기까지 선생의 문학적 역정은 언제나 가장 문제적이었으며 또한 독특한 경지에 스스로 계셨다. 특히 이번 전집 출간은 선생의 미발표작 뿐만 아니라 최근 발표작까지를 모두 담은 것이어서 그 의미는 각별하다. 2004년 3월 15일. 김춘수 선생을 찾아 뵙고 선생께서 그 동안 살아오신 삶과 문학을 육성으로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춘수 선생(1922~2004) (C)현대시


풍경

선생은 건강해 보였다. 성남시 분당구 까치마을의 한 아파트. 나는 몇 번 헤맨 후에야 선생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약속 시간에는 늦지 않았다. 아파트 바깥의 풍경과는 다르게 선생의 집안 풍경은 한가로웠다. 마치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의 별장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거실에는 선풍기 모양의 회전하는 전기난로가 돌아가고 있었고 선생은 무릎 위에 담요를 올려놓고 앉아 계셨다. 우리가 들어가자 선생은 일어서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선생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전하였고, 오후의 햇살이 베란다와 거실의 경계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내가 등단을 하고 난 후 선생의 모습을 제일 처음 뵌 것은 어느 시상식장에서였다. 김춘수 선생이 저렇게 정정한 모습으로 내 앞에 있다는 게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내게 선생은 늘 교과서와 책들 속에서만 존재하는 신화였다. 그 큰 그늘 속에서 잠시뿐이지만 함께 숨쉬고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나는 선생에게 무슨 말을 던질 것인가. 그냥 편안한 옛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선생은 분당의 집에서 외손녀 두 명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외손녀는 서울의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새벽에 나가 늦은 밤 귀가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 번 밖에 얼굴을 볼 수 없다고 했다. 낮에는 가정부가 와서 집안일을 돌봐주고 있었다. 동행한 <현대시> 원구식 주간은 곧이어 작년에 처음으로 치러졌던 <현대시 통일마라톤대회> 얘기를 꺼냈다. 작년 임영조, 김강태 시인의 죽음으로 촉발된 통일 마라톤대회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시단의 행사였다. 올해 행사 때에는 시단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함께 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말씀드리니 선생은 옳다고 반갑게 말씀하셨다. “문단도 정치하는 사람들처럼 갈라지지 말고 화합하고 어울렸으면 좋겠습니다. 경향이 다르다고 사람까지 갈라지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경향은 다 제 각각 다를 수 있는 거지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인터뷰하러 간 날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신문을 통해, 탄핵과 관련해서 어떤 말씀을 하셨다는 얘기를 귀동냥으로 들을 터여서 그것부터 여쭈어 보았다.

김춘수:중앙일보에서 전화가 왔어요. 나는 앙케이트하는 것인 줄만 알았지 내 이름이 나오는지는 몰랐지요. 각계 원로를 대표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크게 나왔습디다. 그런 줄 알았으면 내 생각도 가다듬고 신중히 말할 것을… 하지만서도 근본은 같으니까 뭐. 어느 쪽이 잘했는가 잘못했는가의 경중을 따질 수는 없다. 사태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그런 조의 말을 했지요.

선생은 정치에 대해 특히 노무현 정부에 대해 몇 마디의 말씀을 더 하시려다가 이내 말문을 닫으셨다. 이런 인터뷰 자리에서까지 정치얘기를 하고 싶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구름과 장미

연보를 보면, 선생의 유년에서부터 학창 시절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통영에서의 유소년의 시기, 두 번째는 서울 경기중학의 시절과 일본대학의 시기, 마지막으로는 일본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이다.

선생은 1922년 경남 통영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유복한 가정환경과 개방적 사고를 가진 부친 때문에 그 당시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는데 그때 체험이 시인에게 각별하게 다가온다. 유년시절의 삶에서 선생에게 가장 기억나는 체험은 호주 선교사가 운영하는 유치원에서의 경험일 것이다. 그 체험이 독특한 시적 세계관과 미적 관심에 대한 최초의 자각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미 시집 <거울 속의 천사>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다시 한번 자세하게 알고 싶어졌다.

김춘수:자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무렵의 정서적인 체험이 오랫동안 잠재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러니까 영향이 큰 것으로 봐야지요. 간혹 그때 얘기가 내 시에도 나오거든. 그때 교회체험이라든가 선교사가 밖에서 앉아 있는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호주의 선교사가 경영하는 미션 계통의 유치원에 다녔다고 하는 것이 에그조티즘(exoticism, 이국정조-필자주)을 준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나고 나니 큰 자극이 된 것 같아요. 선교사 아들 딸들의 파란 눈이 생각납니다. 유치원의 경계가 탱자나무 울타리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탱자나무 틈으로 들여다보면 간혹 우리 또래의 서양 남매가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지요. 눈이 파래서 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쪽 세상은 이쪽과 다를 것 같았지요. 바람도 구름도 다를 것 같고. 그때 장미라는 꽃을 처음 봤어요. 그 남매가 작은 삽을 가지고 장미를 심는 장난을 하고 있어요. 그때 참, 이상한 꽃도 있구나 생각했지요. 모든 게 낯설었지요. 그때 호주라는 말을 들었는데 바람도 구름도 모두 호주에서 가져온 것 같았지요.

선생의 말로 미루어 보면 독특한 미의 관심을 알 수 있다. 통영은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을 대표하는 고장인데 선생이 체험하고 기억하는 것은 호주 선교사가 운영하는 유치원이다. 이것은 선생이 생래적으로 우리가 한국적 혹은 민족적이라고 부르는 여타의 미적 가치관과 차별됨을 말해준다. 선생의 첫 시집 <구름과 장미>는 이런 자각의 은유적 표현이다. 우리의 토속적인 생활환경에서 오는 정서와 이국적인 정서가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구름’은 유치원 담 바깥, 즉 생장 본거지로서의 통영이다. ‘장미’는 유치원 안쪽, 즉 그곳에는 바람도 구름도 다를 것 같은 관념의 세계이다. 장미에 대한 선생의 체험이 고스란히 시집의 표제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선생은 통영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의 경기중학에 입학한다. 경기중학 시절에 대해 잘 몰랐는데 마침 선생은 뜻밖의 얘기를 해주었다.

김춘수:경기중학이 당시에는 5년제였습니다. 5학년 2학기 때 조금만 있으면 졸업이었는데 담임선생과 트러블이 있었지요. 이거 말하기가 참 쑥스러운데… 국민감정하고 연결된 것이지요. 그 당시엔 대부분이 일본 선생이었지요. 굉장히 역겨웠어요. 학교 가기 싫고… 그게 5학년 2학기 때 폭발한 거지요. 담임은 내가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겠지요. 선친께서도 많이 나무라셨습니다. 동경으로 가서 학교를 알아보는데 중학 4년만 수료하면 대학 예과에 갈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는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대학에 가는 코스였습니다. 왜 제국대학 코스인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느냐 하면. 식민지 학생이 일본의 고등학교에 가려면 모교 담임의 소견표가 필요합니다. 그 소견표가 사상적인 내용을 담는 것이었지요. 그게 첨부돼야 원서 제출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담임이 그걸 안 써주었어요. 중학을 마치고 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험시기도 놓치고, 내년이 된다고 해도 그걸 써주기는 만무하고. 그러다가 마침 소견표가 필요없는 대학에 가게 된 것이지요.

선생은 당시 담임선생과 민족적인 감정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선생은 이 대목에서 자세히 말하기에는 시간이 없으니 다음 기회에 하겠다고 하셨다. 선생이 일본대학에 처음 입학할 때에는 법학과를 지망했다. 그것으로 보면 당시에는 문학을 하고 싶은 절박함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생은 이 당시에 릴케를 만나게 된다. 릴케와의 만남에 대해 <두 번의 만남과 한 번의 헤어짐>(<의미와 무의미>, 문학과 지성사, 1976)이라는 글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 글을 보면 일본에서 대학 입학하기 전 고서점에서 릴케를 만난다. 그때 만난 릴케의 시는

사랑은 어떻게 너에게로 왔던가

햇살이 빛나듯이

혹은 꽃눈보라처럼 왔던가

기도처럼 왔던가

― 말하렴!

사랑이 커다랗게 날개를 접고

내 꽃피어 있는 영혼에 걸렸습니다.

와 같다. 선생은 릴케가 하나의 계시처럼 왔다고 했다. 이 만남으로 선생은 예술대학의 창작과를 선택하게 된다. 또 한번의 큰 만남은 해방 이후이다. 그때 릴케의 시와 <말테의 수기>를 다시 읽게 된다. 이후 선생의 초기시는 릴케에게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시 김춘수 선생 분당 자택(2004)


역사허무주의자

일본대학 시절 천황비판으로 옥살이를 한 경험은 최근 일간지 기자들과 나눈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대학에서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추방되어 퇴학당하고 한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선생에게는 기질적으로 독립운동이 맞지 않는다. 한 개인의 실존이 역사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선생의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당시의 체험에 기인한 바가 크다. 특히 도쿄대 좌파 교수들과의 체험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다시 물었다.

김춘수:한국 고학생들을 따라서 호기심에 갔지요. 나는 집에서 학비가 충분히 왔었기 때문에 일을 하러 갈 필요는 없었는데. 그 친구들 따라서 가와사키라는 부두에서 하역을 했습니다. 일하다가 휴식시간에 한국 고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때 천황도 비방하고 총독정치를 비판을 하고 그랬지요. 우리끼리니까 우리말로 그렇게 한 거지요. 그런데 거기에 한국 스파이가 있었던 거라. 한국 사람인데 헌병대에 헌병보로 있으면서 한국 사람들을 감찰하는 스파이가 염탐하다 고발한 거지요. (역사관에 영향을 준 사건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짐)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지요. 그게 뭐냐하면 이데올로기에 대한 불신이 생겼습니다. 철학이나 사상에 대한 불신이 생겼지요. 그 혐의로 붙들려가서 한 1년 정도 고생했는데, 학교도 퇴학당하고. 당시 같은 교도소에 인민전선파인 제국대학 교수가 있었습니다. 제국대학 교수라면 가장 영향력있는 교수들이었지요. 인민전선파인 좌파 경제학자 교수 중의 하나가 고등계에 붙들려 왔습니다. 하루는 그 교수와 함께 취조를 받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 교수를 취조하는 형사는 안보이고 내 담당 형사만 있었어요. 조금 있으니까 교수집에서 사식이 들어오데요. 김이 모락모락나는 갓 구은 빵이 들어왔지요. 그때는 모두 배급시대고 어려운 시대인데 특권계급 아니면 먹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런 사람이 저런 빵을 먹고 있나도 좀 이상했고. 조금 있으니까 나를 취조하던 형사도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그 교수와 나와 둘만 남게 되었지요. 그때 나는 몇 개월 동안 너무 굶어서 피골이 상접했지요. 먹을 거 있으면 눈에 불이 켜지고 목구멍에서 손이 나오는 것 같았지요. 그런데 나는 자연히 그것을 나누어 줄줄 알았는데… 민중을 생각하는 지식인인데, 식민지 어린 학생이 있으면 자네도 하나 먹어라 응당 그럴 줄 알았는데…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상하고 인격하고는 다른 것이구나. 사상은 믿을 게 못되는 구나. 내가 오히려 부끄러웠습니다.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봤구나. 저런 사람을 존경해야 하는 것인데…

이 사건은 선생의 역사의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질곡의 역사인 한국 정치현실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면서 예술지상주의의 문학관을 가지게 된 점과 실제 창작에 있어서도 깊은 내면 세계를 탐색하는 점은 이 사실과 연관이 있다.

선생은 이 후에도 5공 정권 때 전국구 의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선생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선생은 당신이 정계생활을 한 것에 대해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고 하셨다. 타의에 의해 시작한 4년 여의 정계생활이 시인으로서의 자신에게는 상처였으며 문학적으로 여간한 손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길게 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며 이제 말할 때도 되었는데 자전소설을 쓰게 되면 그때 자세하게 말할 생각이라고 하셨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이유경 선생이 쓴 인터뷰집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이유경, <시인의 시인 탐험>, 월간조선사, 2002) 선생은 자신의 정계생황을 “처량한 몰골로 외톨이가 되어 앉은 것도 아니고 선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쩔 줄 모르고 보낸”것으로 말하고 있다. 나는 선생님께 역사라는 것은 능동적인 참여가 아니고 어떻게 보면 피해자라는 생각이 강하신 것 같다는 말로 질문을 시작하면서 선생님에게 역사란 어떤 의미입니까, 라는 질문을 드렸다. 선생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김춘수:어떻게 보면 피해자가 아니고 실제로 큰 피해자이지요. 저는 한국의 역사라는 것 뿐만아니라 역사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 나는 스스로 역사 허무주의자이다, 라는 말을 씁니다. 역사, 이데올로기, 폭력은 삼각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입니다. 이데올로기는 결국 폭력입니다. 모든 역사가 그렇게 되었지요. 그 삼각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역사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인식이 생겼습니다. 역사라는 게 어디 있습니까. 이데올로기가 있고 폭력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역사를 아주 회의적으로 본 것이지요.

갑자기 학생 때 읽은 책이 하나 생각납니다. 러시아의 니콜라이 베르자예프의 책이지요. 그는 러시아 혁명 때 볼셰비키에 동조를 했지요. 그러다 불란서로 망명을 해서 쓴 책이 있었습니다. <현대에 있어서의 인간의 운명>이라고. 거기에 그런 말이 나옵니다. “지금까지는 역사가 인간을 심판했지만, 이제부터는 인간이 역사를 심판해야 한다.” 나는 그 말에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 말이 옳다고 봅니다. 역사라는 이름 때문에 개인이 얼마나 짓밟혔나요. 역사, 이러면 악 소리도 못하고 꼼짝 못하게 됩니다. 역사에 저항하면 죄인이 되니까요. 이때의 인간은 개인으로서의 인간이지요.

역사의 歷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것은 과거 일이지요. 史는 기록입니다. 기록하는 사람도 史에 속하고요. 역사는 사실로서 있었던 것을 기록하는 것이지요. 사실은 객관적인 것이고 기록하는 것은 사람이지요. 사람이 기록한다는 것은 주관적이지요. 그런데 기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사실이 달라지지요. 그러니까 역사는 모순 개념입니다. 그러니 쉽게 말하면 역사는 없다, 이겁니다. 학교 교과서에나 있는 거지요. 어떤 사실의 단편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역사라고 하는 것은 강자의 역사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가 바뀝니다. 역사는 없고 강자, 힘센 사람이 그려 놓은 사실만 있을 뿐입니다.

의문 하나

한국전쟁 중 선생은 대표적인 모더니스트들의 모임인 <후반기> 동인에는 가담하지 않고 구상, 이정호, 김윤성 등과 함께 <시와시론>이라는 동인을 결성했다. 문학적 성격으로 본다면 선생은 <후반기> 모임에 있어야 한다. <시와시론>은 문학적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되는데 <후반기>와는 어떤 관계였을까 궁금해졌다.

김춘수:후반기 동인 중에 조향은 나하고 해방 직후, 그러니까 1946년에 김수돈 시인과 함께 <로만파>라고 하는 동인지를 냈습니다. 김수돈 시인은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지로 나온 시인이지요. 이 둘 다 마산에 살고 있었는데 나는 처가가 마산이라 자주 드나 들면서 동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다 50년 전쟁 때 부산 임시수도에서 조향하고 내가 만났지요. 그때 조향은 부산 동아대의 교수로 있었을 때고요. 조향이 <후반기> 동인을 같이 하자고 권유를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조금 망설였습니다. 조향은 알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어서 좀 불편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생각해 보지요, 하고 살짝 빠져나갔습니다.

그 이후에 진주에서 설창수 시인이 하는 <개천예술제>에 청마 유치환 선생과 함께 갔습니다. 그때 김윤성, 구상 시인 등과 어울리게 되었지요. 그때 우연히 말이 나와서 <시와시론>이라고 하는 걸 내게 되었지요. 그때 문학적인 경향이나 뜻이 같아서 한 것은 아니고, 한번 낸 것이지요. 1권 나오고 말았습니다.

김수영과 김춘수

선생은 김수영과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다. 김수영이 죽기 얼마 전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왔다가 종로의 한 여관에서 김수영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밤에 심심하여서 수첩을 뒤적이다가 전화번호가 나와서 걸어본 것이다. 김수영이 집에 있긴 했지만 술이 만취해서 도저히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통화도 못하고 다음 날 선생은 볼 일을 마치고 곧바로 내려가게 된다.

60년대 김수영이 참여의 길을 가게 되고 김춘수는 <타령조> 연작을 쓰면서 의식적인 트레이닝의 시작(詩作)을 하고 있었다. 이미지와 관념 사이, 무의식과 의식의 사이에서 끊임없는 사생과 추상을 거쳐 <처용단장> 연작으로 이어지게 된다. 당시의 순수와 참여의 대립 구도에서 선생은 젊은 모더니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순수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김수영은 참여 진영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좀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김춘수와 김수영을 이런 거친 분류 속에 넣는 것은 무리이다. 그럼에도 당시 김수영이 참여로 갔기 때문에 그 반대 진영 쪽이라 할 수 있는 내면세계로 더 침잠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춘수:그 말이 옳기는 옳은 말입니다. 저는 아까 말했다시피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상과 역사라는 것에 대한 회의가 생겼습니다. 지금도 이 역사허무주의자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 부딪히면 현실에 대한 울분 같은 것도 또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같은 시도 썼지만 내 본래 의식은 역사허무주의였습니다. 역사나 현실의 문제에 대해 등을 돌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때 김수영의 <풀> 같은 작품을 보면서 내가 써보고 싶었던 것을 벌써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종의 라이벌 의식, 질투가 생긴 거지요. 나보다 선수를 쳤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의식적으로 더 내면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때 김수영을 가장 큰 라이벌로 생각하셨나요?)

김춘수:했지. 내가 그때 뿐만 아니라 내 생애에 시인으로서 라이벌 의식을 가진 시인은 그 사람뿐입니다. 미당 같은 시인도 있었지만, 나와는 시적 세계관이 너무 다르니까 그런 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었지요.

의미에서 무의미, 다시 변증법적 지양을 거친 의미로

김춘수 선생은 40년대 후반 <로만파>라는 동인지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니까 통상적으로 시인의 길을 걷게 되는 신춘문예나 잡지의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선생의 술회에 따르면 40년대 후반 4~5년은 아류의 시절이었다고 말한다. 즉 선배 시인들의 시를 모범으로 트레이닝을 하던 시절이었다.

50년대에 들어서 선생은 자신의 시에 대한 자성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자성의 시가 바로 릴케와 실존주의 철학에 영향받은 꽃을 소재로 한 일련의 연작시이다. 소위 관념시라 부르는 김춘수의 시는 스스로 ‘플라토닉 포에트리’라고 부르고 있다.

60년대에 들어서 새로운 시적 실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김춘수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무의미시’이다. 대상과의 거리가 상실된다는 것. 대상을 지울 때에 대상의 구속으로부터 시인은 해방되고, 어떤 의미부여의 행위로부터도 해방된다. 그러나 무의미시가 가지고 있는 서술적 이미지의 세계에서 이미지는 의도하지 않아도 의미를 띄게 된다. 이 의미를 지우기 위해 탈이미지로 가게 된다. 탈이미지는 리듬만으로 시를 쓴다는 것인데 이것은 시인이 고백한대로 언어도단의 세계이다. 이러한 무의미시의 변화 양상을 이승훈 선생은 <부두에서>, <봄바다>, <인동 잎>에서 보이는 서술적 이미지의 세계, <처용단장> 2부에서 드러나는 탈이미지의 세계, 즉 무의식의 세계로 전환되는, 이미지조차 마침내 소멸되는 시기, 그리고 이러한 되풀이로 인해 오로지 리듬만 남게 되는 시기(<이중섭>, <예수>, <중국 유적지> 연작)로 나누기도 한다.

무의미시의 막다른 골목에서 시인은 다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다시 의미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이 의미의 세계는 이전의 관념시와는 다른 변증법적 지양을 거친 세계이다. 이 관념시와 무의미시의 변증법적 지양을 통해 형성된 시집들이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거울 속의 천사>, <쉰 한 편의 비가> 등이다. 이런 시편들이 나에게 된 내면 정황을 선생은 전집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선적 세계에 들어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상 시는 더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나의 무의미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또 의미의 세계로 발을 되돌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물론 무의미시 이전의 세계로 후퇴할 수는 없다.

무의미시로 대표되는 선생의 작품세계에서 실제로 일반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시는 무의미의 시편들이 아니다. 오히려 의미의 시, 그러니까 초기 관념시와 후기에 다시 의미로 되돌아온 시기이다. 아무래도 무의미시가 일반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선생에게 독자는 어떤 의미인가. 선생은 “내 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소수의 독자들을 염두해 두면서 쓴다”고 했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 않은가. 어쩌면 선생의 무의미시도 하나의 과정인지 모른다. 무의미시는 어느 한 소실점으로 모일 수 있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출구 같은 게 아닐까.

선생은 젊은 후학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까. 그간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이번에는 모더니즘 계열의 젊은 시인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렸다. 큰 틀을 놓고 봤을 때 선생의 시세계를 이끌어갈 만한 시인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선생은 후학들이라면 어떤 연배를 두고 말해야 하는지 잠시 고심하셨다. 30, 40십대 젊은 후학들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천천히 말을 이으셨다.

김춘수:그동안 젊은 후학들이 우리 나이 때보다는 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은 대학에서 어학력도 갖추고 일본을 통하지 않고도 원서를 읽을 수 있고 외국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정보력이 있기 때문에 시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습니다.

그런데 우선 내가 봐도 이해 안 되는 시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박상순, 송찬호 같은 시들입니다. 이들의 시는 과격 모더니즘에 속하죠. 전위성이 있는… 그런데 이 사람들의 전위는 이승훈이나 황지우의 전위와는 또 다릅니다. 이승훈은 존재론적이고 황지우는 사회성을 띄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상순이나 송찬호는 전혀 그런 게 없습니다. 이미지가 그려내는 환상세계만 있을 뿐입니다. 허무의 입장에서 본다면 앞의 두 사람에 비해 훨씬 허무적입니다. 의식상태가 그런 거 같습니다. 믿고 기대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거지요. 철저한 비대상 세계, 말하고 싶은 대상이 없는 거지요. 환상세계가 이미지를 통해서만 펼쳐지고 있는데, 아무 의미없는 세계입니다. 그런데 그 허무를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요. 허무는 견뎌내기 어렵습니다. 뭔가 기대는 게 있어야 됩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육체를 가진 이상, 허무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허무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자유, 완전히 해방된 상태입니다. 그 자유를 견디지 못합니다. 내가 무의미시를 견디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이런 시만 못씁니다.

의식이라고 하는 건 언어입니다. 언어와 의식은 이콜 아닙니까. 언어에서 해방된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에서 해방된다고 하는 건데 결국 언어에서 완전히 해방된다는 건 시를 못쓴다는 것입니다. 시를 못쓰거나 다른 상식적인 세계와 타협하거나가 되지요. 그러니까 상식적인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찾는 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시사는 굉장히 진일보했습니다. 시 자체를 극한으로까지 끌고 갔으니까요. 그러나 진일보라는 게 어느 한계에 가면 막다른 골목 아닙니까. 우리 시도 막다른 골목에 있습니다. 시가 없어지는 단계에까지 와있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서정을 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서정주의를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입니다. 시에 대한 자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내 시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왜 이런 시를 썼는가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충동적으로 쓰고 마는 것은 아마추어가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게 통했지요. 그러나 이제는 안됩니다. 내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떤 예술가적 자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시는 자연발생적으로 나올 수가 있지만 그걸 의식하고 제어하는 이성이 있어야 합니다. 19세기 시대의 로맨티스트들처럼 자연발생적으로 부르짓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우리 시는 대체로 단순해요. 소품이고, 입체성이 없고 논리도 없고 평면적이지요. 좋은 시들의 시가 대체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볼륨이 있는 시, 논리전개도 입체적이고, 파라독스나 아이러니를 깔아놓은 입체적인 전개 등의 양적으로 무게가 있는 큰 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릴케하고 엘리엇처럼 말이죠. 그런 큰 시인이 나와 주었으면 싶다는 생각입니다.

선생은 1시간 30여분 이상 이어진 인터뷰 시간 동안 뜨거운 열정으로 세심하게 하나씩 짚어주시며 말씀하셨다. 선생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든 시간들이 문학적 열정으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생에게 문학 이외의 것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선생에게는 사회적 지위도 국가적 명예도 귀찮고 빨리 벗어나고 싶은 굴레였을 뿐이다. 선생은 지금도 공부하고 계신다. 끊임없는 자기 갱신과 반성과 회의야말로 오래도록 문학을 지속하는 힘이 아닌가.

선생은 당신이 앞으로 어떤 세계로 또 나아갈 지는 당신 자신도 모른다고 하셨다. 선생은 시 <강설降雪>에서 “오지 않는 것이 오는 거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인간은 늘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시를 쓰게 하는 건 아닐까. 이 비껴 서지 않는 역사 앞에서 선생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참 오랜만에 멀리 통영의 생가에 눈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지만, 의식은 먼 끝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 시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바로 그것일까.

강설降雪

역사는 비껴 서지 않는다.

절대로, 그러나

눈이 저만치 찢어지고 턱이 두툼한

(그 왜 있잖나?)

그는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것이 오는 거다.

그는,

기다림이 겨울에도 망개알을 익게 하고

익은 망개알을 땅에 떨어뜨린다.

또 한 번 일러주랴.

역사는 비껴서지 않는다.

절대로, 땅에 떨어진

망개알을 겨울에도 썩게 한다.

썩게 하여 엄마가 아기를 낳듯 그렇게

땅을 우비고 땅을 우비게 한다.

그는 온다고 지금도 오고 있다고,

오지 않는 것이 오고 있는 거라고,

바라보면 멀리 통영

내 생가가 눈을 맞고 있다. 내 눈에

참 오랜만에 보인다.

기왓장 우는 소리.


_ <현대시>, 2004년 4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

만(灣)

시詩 2008. 2. 3. 00:32

이재훈


웃음이 사방에 번지는 날.
선생님께서 묶어놓은 밧줄을 풀고
거리를 나섰다.
몸에 핀 동그란 열꽃이
펑펑 터져 붉고, 푸르고, 검은 파문이
살갗에 차올랐다.
얼굴 없는 안개의 밤,
죽음의 그림자를 막연하게 살피던 밤,
한밤 내 웃었다.
접힌 주름 사이로 웃음의 까닭을 세어보는데
온몸이 얽어 있었다.
밤새 축축하고 끈적해진 공기가
얽은 피부를 핥고 있었다.
숯덩이처럼 뜨거운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보석을 입안 가득 물고 있었다.
몇 백 년이 흘렀을까.
놀라운 비약이 있었고,
시대는 공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행복과는 먼 밤들을 채워나갔다.
간혹 알몸으로 욕조에 들어가
낯선 배꼽을 만졌다.
움푹, 깊숙한 골이 생겼다.
웃음의 까닭도 모르고
자꾸 웃고만 있었다.

_ <작가와사회>, 2008년 봄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신전(萬神殿)  (0) 2008.02.14
할례의 연대기  (0) 2008.02.13
올랭피아  (0) 2008.01.31
진흙의 봉인  (0) 2008.01.30
난장  (0) 2008.01.28
Posted by 이재훈이
,

[맛있는 시] 쓸쓸한 날의 기록





 

무기력하다 했던가

마지막 술잔을 남겨놓고

우리가 귀가하는 순간

하늘 아래 어디쯤에선 꽃이 피었을 거다

꽃을 보고도 그걸 표현할 방법을 몰라

그렇게 헤매었던가 우린 한낱

일렉기타의 음률과 철 지난 유행가에

더 감상적이었잖은가

네게도 말했지만

나는 백 년의 무명을 견딜 것이다



- 이재훈, '쓸쓸한 날의 기록' 중에서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문학동네, 2005)


= 젊은 시인의 우수에 찬 내면을 읽는다.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동상이몽 아닌가. 이상을 추구하지만 현실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젊음, 하지만 때로는 이상을 위해 현실을 내팽개칠 때도 있다. 그 몽상의 역동적인 작동이야말로 삶이라는 뿌리와 싹의 본질에 피를 돌게 하는 근원일 것이다. 시의 우주적인 힘도 그 변화와 굴곡에서 태어날 것이니! 무명이여, 백 년 동안 쓸쓸하라. 배한봉/시인

/ 입력시간: 2008. 01.21. 11:06


Posted by 이재훈이
,

올랭피아

시詩 2008. 1. 31. 10:33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네, 올랭피아

얼굴을 폭로하지 않겠다. 다만 네 몸만 열 수 있으면 되겠다. 나는 단정하며, 울지도 않으며, 매달리지도 않는다. 널 바라보는 내 시선에는 관심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람들만 보았으면 더없이 좋겠다. 나는 검고 너는 하얗고, 나는 몸을 숨기고 너는 발가벗었다.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는 너는, 파렴치한 부자들도 풍요롭게 받아들일 줄 아는 너는, 신성한 오로라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병적이고, 너는 유희적이야. 나는 머릿기름을 발라 올린 단정한 남자를 좋아하고, 너는 술 취한 밤처럼 헝크러진 머리칼을 가진 남자를 좋아하지. 나는 영혼이 없고, 갈망이 없고, 희망도 없지. 너는 사랑 하나면 된다 했지.

금빛 구두를 벗지 않았으면 좋겠다. 금빛 팔찌를 풀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 머리의 꽃장식과 별처럼 앙징맞은 귀걸이도 그냥 그대로면 좋겠다. 이방인의 세계야, 아아, 분신(焚身)이 아름다운 세계야. 코카인을 가득 털어 넣고 몸을 내어주면 더더욱 황홀한 세계야. 그렇지만 내 꽃은 빼앗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도둑처럼 훔쳐만 보고, 너는 성녀처럼 기도하지. 내 몸엔 새가 쪼은 흔적으로, 꽃가지가 할퀸 상처로 가득하지. 나는 온몸에 덮을 천이 필요하고, 너는 목과 손과 발에 장식할 금이 필요하지. 왼손으로 가린 너의 음부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너는 언제나 아름다운 행위만을 원하지. 아아, 나는 눕고 싶어. 네 몸을 잊고 신비한 밤을 맞고 싶어. 달창난 내 피부가 아니라, 네 몸에 풍기는 값싼 향내를 사랑하고 싶어. 너무 많이 생각했어, 너무 많이 두려워했지. 너는 아름답고, 나는 추한 하녀지. 하얀 침대가 젖빛으로 가득한, 나른한 오후지.

_ <작가와 사회>, 2008년 봄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례의 연대기  (0) 2008.02.13
만(灣)  (0) 2008.02.03
진흙의 봉인  (0) 2008.01.30
난장  (0) 2008.01.28
사이코 패스  (0) 2008.01.24
Posted by 이재훈이
,

진흙의 봉인

시詩 2008. 1. 30. 10:53

이재훈


햇발에 눈을 뜨면
진흙 속에 누워 있었네
어스름한 구름 사이로
밤새 하늘을 날다 지친듯한
새의 다리가 언듯 보이네
피곤한 탓일까 병일까 생각하다
부드럽고 안락한 흙의 감촉에
자꾸만 잠이 오네
리모컨을 두드려 텔레비전을 켜자
사바나 초원에서 쫓겨난 마사이족이
물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네
피곤한 탓일까 병일까 생각하다
문 밖의 일들이 궁금해 뒤척여보지만
어느새 진흙의 손길이 온 몸을 쓰다듬네
춤이라도 춰볼까 몸을 일으키면
흙의 찰기가 내 발목을 쥐고 날 눕히네
유폐와 어둠의 아침

이집트의 술항아리와 미이라의 관(棺)에는
진흙이 발라져 있었지
앗수르에서 온 편지도 그렇게 봉인되었다지
내 입술은 봉인되지 못하고
부끄러운 고백들을 나불댔네
결국 슬픔이 되고 공허가 될 말들
입술 주위를 차지한 구순 염증들
간지럽고 따가운 존재로 남은
저, 징그러운 말들의 시체

갯벌에는 망울망울 숨구멍이 열려 있었네
풍경이 아니라 목숨을 위한 문(門)
그 구멍을 내 서툰 발로 짓이기곤 했네
진흙은 뜨거울수록 더욱 단단해져
억울한 죽음과 거짓된 약속과
세상을 지배하는 음모들이
진흙으로 마감된 시간 속에 묻히지
약을 먹고 진흙 뻘에서 춤을 추고
아무 고통도 없는 날을 보내고 싶네
암흑 속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부르고 싶네
향기로운 흙의 향기가
내 숨을 막을 때
모든 것과 이별하고 싶네

_ <시와세계>, 2005년 겨울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灣)  (0) 2008.02.03
올랭피아  (0) 2008.01.31
난장  (0) 2008.01.28
사이코 패스  (0) 2008.01.24
귀신과 도둑  (0) 2008.01.21
Posted by 이재훈이
,

난장

시詩 2008. 1. 28. 14:34

이재훈


1. 골짜기
빛의 동네다.
도로 위에 빛의 뼈들이 달그락거리고
뭉텅한 안개 몸을 뒤엎으며 흐느적거린다.
아무리 먹고 먹어도 배가 고프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달빛 교교한 언덕으로 올랐다.
하늘에 혀를 내밀었다.
달콤한 달빛으로 목을 축이는데
뒷덜미를 훑고 지나가는 어떤 손.

2. 달
고요히 체념한 얼굴이다.
익숙한 손짓으로
제 눈과 코를 짓누른다.
애꾸눈이 된다.
먼지로 만들어진 얼굴.
아름다운 그림자를 가진 얼굴,
마지막 숨을 남겨 놓고 있다.
동살에 얼굴이 문드러져도
저렇게 늙어갈 수만 있다면.

3. 꼽추
새벽이 오면 늘 목이 막힌다.
내 등껍질에는 냄새가 난다.
고깃덩이가 익는 냄새.
빠른 걸음에 허벅지가 맞닿아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난다.
얼굴을 가린 채 희미한 빛을 바라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공기를 매만진다.
푸석푸석하고 누렇게 변한
빛의 몸.
달의 핏물이 배어 있다.

4. 묘지
날이 밝았다.
아침을 메우는 발자국 소리들.
귀가 따갑다.
귀를 막고 무릎을 꿇었다.
몸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구멍난 뼈에서 벌레가 기어나왔다.
깊은 땅 속에 박힌 손 하나.
골짜기에서 합창이 들렸다.

_ <시평>, 2008년 봄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랭피아  (0) 2008.01.31
진흙의 봉인  (0) 2008.01.30
사이코 패스  (0) 2008.01.24
귀신과 도둑  (0) 2008.01.21
카프카 독서실  (0) 2008.01.17
Posted by 이재훈이
,

사이코 패스

시詩 2008. 1. 24. 11:34


이재훈


어떤 경우, 시험이 아닌 고통도 있다.
겪지 않아도 되는 재해 같은 것.
악창 같은 것.
발바닥까지 닿는
나의 괴로움은 오늘로 족하다.
반지를 낀 여인의 손가락을 보면,
잘라버리고 싶다.
애인은 왜 이렇게 늦게 오는가.
폭포처럼, 떨어지는
고통을 질겅질겅 씹고,
엉겅퀴 줄기로 피부를 문지르고,
오늘도 슬럼가에 있는 작은 공장으로 가야 한다.
꺾인 무릎을 또 꺾어야 하는 게 삶의 지혜인 줄을 몰랐다.
먼지 풀풀 날리는, 공장 바닥에 앉아
나를 위해 기도한다던 개척교회 목사를 생각했다.
영생의 권태로움을 겪을 자신이 없다.
바닥을 긁어대는 저항의 소리 한 번 못내 봤다.
언제나 꿈처럼 저 혼자 빛나는
별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목이 따갑다, 목에서 쇳소리가 난다.
느린 전자오르간 소리에 맞춰
아주 성스럽게 한 여인의 피부를 도려낼 것이다.
난, 그렇게 얘기하고 싶었다.
사방엔 바람만 남아 있다.
바람이 분다.
차가운 혀가 내 뒷덜미를
슥 핥고 지나간다.

_ <다층>, 2006년 겨울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흙의 봉인  (0) 2008.01.30
난장  (0) 2008.01.28
귀신과 도둑  (0) 2008.01.21
카프카 독서실  (0) 2008.01.17
흠향(歆饗)  (0) 2008.01.11
Posted by 이재훈이
,

귀신과 도둑

시詩 2008. 1. 21. 16:52

이재훈



지하철을 탔다. 男子가 바닥에 구토를 한다. 女子가 토사물을 손으로 쓸어담아 내게 건네준다. 누가 볼까 토사물을 내 옷가슴에 넣었다. 옆 사람의 가슴에서도 역겨운 냄새가 났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 때문에 구역질이 났다. 모두 핸드폰을 들고, 걸고, 만지고, 본다. 시끄러워, 시끄럽다니까! 소리를 질렀다. 골짜기에 나는 갇혔다.

지하철을 탔다. 쓰레기장 냄새가 났다. 무료 일간지들이 선반에 쌓였다. 한 노인이 내 무릎을 비집고 들어와 선반의 신문을 자루에 담는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도 날 바라보지 않는다. 칼을 꺼내 손목을 그었다. 나는 칼을 의지하며 살았어요. 나는 벌레요. 나는 사람이 아니에요. 아무도 날 바라보지 않았다. 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가슴을 그으며 지나갔다.

지하철을 탔다. 시체 썩는 냄새가 났다. 다음 내리실 역은 무덤의 골짝입니다. 심장은 슬픔을 견디기 위해 존재하는 것. 손톱으로 손목의 상처를 긁어냈다. 심장을 파멸하기 위해 매가 날아 왔다. 사랑과 긍휼이 전혀 없는 목소리가 말했다. 나는 비애로 태어났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무덤 안에도 사람이 살고 있느냐. 매의 등에 칼을 꽂았다. 지하철에 깃털이 날렸다.

어쩌면 무덤을 지나, 폭풍을 지나 당신을 보았을지도. 나는 영혼까지 죽이는 법을 모른다. 어미의 젖 빠는 법을 배우지 말았어야 했다. 영원히 잠들어야 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존재만 사랑해야 했다. 그 이후로 아무에게도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다.


_ 시와사상, 2007년 여름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장  (0) 2008.01.28
사이코 패스  (0) 2008.01.24
카프카 독서실  (0) 2008.01.17
흠향(歆饗)  (0) 2008.01.11
매일 출근하는 폐인  (0) 2007.12.18
Posted by 이재훈이
,

흠향(歆饗)

시詩 2008. 1. 11. 17:14

이재훈


1.
신음이 들렸지. 햇살이 벌판에 누워 피를 쏟고 있었지. 땅 위가 흥건했지. 나는 새의 꿈을 꾸었어. 길들여지지 않은, 몸의 꿈. 시드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했지. 깃털의 자유, 먼지의 자유. 세상을 유랑하며 흙 위에 앉아 붉은 핏물을 빨아먹고 싶었지. 핏자국이 덕적덕적한 햇살의 겨드랑이에 달라붙어 먼 생애를 생각했어. 나는 나를 죽일 수 없을 거라고. 그리워서 울었던 것은 아니라고.

2.
풀숲에 소리가 고여 있다.
잎사귀를 헤치니 소리가 서로 머리를 깨물고 있다.
가련한 밤.
사각사각,
머리를 뜯어먹는 소리.
살곰살곰,
살인자를 찾는 발자국 소리.
얼굴도 없고
가슴도 없고
빗방울도 없는
소리의 환幻.
향기를 빨아들여
영혼을 훔치는 아우성들.

3.
그냥 그런 바람이었지.
탄생도 구원도 없는 검은 소리가 내 몸에 와 잠겨.
싹이 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법궤를 들고
저 신산의 땅으로 걸어갔지.
징기스칸의 대초원으로, 무굴제국의 타지마할로
잉카의 마추픽추 언덕으로 모두 떠나가.
이제 세속적으로 살기 위해
가벼운 날개를 달 것이야.
물렁해져 가는 몸에
단단한 근육을 만들 거야.
슬픈 짐승의 뼈를 고아 먹고
십자가 가득한 도시의 밤을 먹을 거야.
아무 것도 거둘 수 없는 몸.
냄새나는 몸.
위로할 것 없는 몸.
깊숙한 어둠 속,
엉킨 조명 아래에서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이
내 몸에 불을 지르겠지.
훨훨 불타 벌판에 누워
노을이 되겠지.

_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8년 1-2월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신과 도둑  (0) 2008.01.21
카프카 독서실  (0) 2008.01.17
매일 출근하는 폐인  (0) 2007.12.18
병든 미아  (0) 2007.11.15
명왕성 되다(plutoed)  (2) 2007.11.12
Posted by 이재훈이
,

매일 출근하는 폐인

시詩 2007. 12. 18. 15:29


이재훈


1.
의욕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미소를 연습한다. 거울 앞의 수많은 표정들. 낯선 얼굴, 낯선 침묵.

2.
다른 말은 없다. 너를 자위케 하던 기호들. 새, 별, 그리고 꽃과 나무. 아무 생각없이 잠들 수 있었던 그대, 라는 말을 향해.

3.
기록하지도 나서지도 않았던 길에 대해. 악마의 다리를 건너는 법에 대해. 꽃의 길이 아닌, 모험의 길목에 대해. 협곡 위 아슬하게 나있는 다리에 대해. 이 땅과 영원히 이별할 수 있는 길들에 대해.

4.
나는 육십억 분의 일일 뿐. 페트병에 가득 담긴 담배꽁초와 찌그러진 캔맥주병. 먹다 남긴 컵라면. 참기 힘든 소음. 역겨운 화장냄새와 비둘기똥 냄새로부터.

5.
계곡의 하얀 물보라를 헤치고, 난파된 얼음 위에 올라서 저물어가는 사람들의 삶을 감상하고 싶다. 그러면 아주 쓸쓸하겠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아무도 없이 고독하겠다.

6.
애초에 로마는 없었다.
그곳에 이르는 신비한 밤과 방황만 있을 뿐.

7.
바람이 부는 날.
출근길 지하철 입구에 눈 먼 소녀가 앉아 있다.
소녀의 귀에서 누렇게 익은 곡식 낱알을
새가 쪼아먹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런 소리의 길이
눈을 어지럽힌다.

8.
숭고한 저녁의 기다림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다
드디어 주장을 하고
외치고 울부짖었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밤의 형벌이었다.

_ 2007 문청 동인지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프카 독서실  (0) 2008.01.17
흠향(歆饗)  (0) 2008.01.11
병든 미아  (0) 2007.11.15
명왕성 되다(plutoed)  (2) 2007.11.12
킬리만자로  (0) 2007.10.22
Posted by 이재훈이
,

이재훈의 첫 연구서인 <현대시와 허무의식>을 출간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학술정보 ISBN 978-89-534-7797-1 93810 2007.11.15일 발행 15,000원


허무의식은 단순한 역사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유의 근본성격이며 근대에 들어서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중요한 인식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로 인해 허무의식은 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적 사유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책머리에]
이 책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문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창작뿐 아니라 문학에 대한 많은 이론적인 부분들을 연구할 수 있었다. 특히 필자가 ‘허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연구 주제를 찾을 때부터였다. 창작과 학업과 생업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힘든 나날 속에서 문득 모든 일들이 회의적일 때였다. 노을과 구름과 꽃의 이름도 잊은 채 이 무슨 몸짓인가. 힘들 때마다 읽었던 헤르만 헤세, 니체, 파스칼을 들고 다녔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구원의 완성을 향해 온 정신을 불사른 자들이었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능한 모든 신념에 회의(懷疑)하는 고투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거대한 역설이다. 그들은 삶의 모든 회의와 절망을 의지로 변화시킬만한 내공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리고 허무의 에너지를 가진 시인들이 눈에 들어 왔다.
허무의식은 일반적인 허무주의의 사상적 입장이 시를 통해 미학적으로 구현된 시의식을 말한다. 허무의식이 시세계를 이해하는 주요 개념어로 사용된 역사는 짧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허무’는 시에 나타난 주요한 정신적 요소였다. 허무의식은 세계와의 불화를 나타내는 인식적 방법이며, 세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역사적 현실 속에서 불화와 부정에 기반한 태도나 지향은 역사적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선명히 부각된다. 이런 맥락에서 유치환, 박인환, 이형기, 강은교는 각각 특수한 연대의 역사적 상황을 동력으로 삼는 현실인식을 가져왔으며 한국 현대시사에서 허무의식을 자신의 가장 중심적인 시세계로 삼아 왔다. 즉 이들에게 허무의식은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며,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의 지향점을 찾는 인식의 핵심 내용에 속한다.
논문을 쓰면서 특히 어려웠던 부분은 허무주의의 이론적 기반이 한국의 현대시에 어떻게 투영되었는가를 탐색하는 점이었다. 필자의 철학에 대한 지식이 짧고 공부가 부족하여 이 부분을 심도있게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해 아쉽다. 대신 꼼꼼한 나름의 시분석을 통해 허무의식이 한국의 현대시에 어떠한 양상으로 투영되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번 책은 허무의식이 현대시에 보편적인 인식의 방법임을 밝히고, 그 시의식이 어떠한 양상으로 펼쳐졌는지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결과물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문제의식만 던졌을 뿐이다. 이번 책이 가진 문제의식을 통해 허무의식이 현대시에 어떻게 수용되고 표출되는지를 더 깊게 파악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필자에게는 이 책이 문학 연구의 첫 이정표가 되는 셈이다. 많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해 세상에 책을 내놓는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선생님들의 은혜를 입었다. 먼저 학위논문을 지도하여 세심하게 연구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시고 가르쳐주신 오세영, 감태준, 최문자, 구수경, 유성호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동안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잘 가르쳐주시고 지도해주신 신상웅, 이동하, 전영태, 이승하, 박철화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대학에서부터 학업뿐 아니라 참된 인간상을 몸소 가르쳐주신 김동기, 정경일, 김병국 선생님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원구식 선생님을 비롯한 현대시 식구들, 김영남 선생님, 함께 대학원에서 공부한 동학들, 그밖에 도와주고 격려해주신 많은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곁에서 지켜준 가족들의 배려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새벽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루도 빠짐없는 부모님의 기도가 내 삶의 가장 큰 재산일 것이다. 논문을 쓴다는 핑계로 매일 늦은 귀가와 부족한 관심을 잘 참고 도와준 아내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나의 논문 집필을 지켜보아준 이제 막 태어난 복둥이딸 은율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비 내리는 밤이다. 포근한 밤이다.

2007년 한여름에
이재훈

[목차]

Ⅰ. 서론
1.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2. 연구사 검토
3. 연구범위와 연구방법
4. 허무의식의 이론적 고찰

Ⅱ. 生의 의지와 생명성 - 유치환의 시
1. 식민지체험과 현실인식
2. 허무의지와 생명성
3. 아나키즘과 관념성

Ⅲ. 神의 부정과 절망의식 - 박인환의 시
1. 전후체험과 현실인식
2. 반신적(反神的) 태도와 비극적 세계 인식
3. 근대허무주의와 지적 감상성

Ⅳ. 소멸과 생성의 변증법 - 이형기의 시
1. 문명체험과 현실인식
2. 문명비판과 소멸인식
3. 변증법적 인식과 초월성

Ⅴ. 역설과 순환의 서사 - 강은교의 시
1. 내면체험과 존재탐구
2. 죽음의식과 공동체 서사
3. 역설적 인식과 순환성

Ⅵ. 결론

Posted by 이재훈이
,

병든 미아

시詩 2007. 11. 15. 13:27


이재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할 때 궁창이 열렸습니다. 저는, 그 작은 골짜기에서 푸른 씨앗을 주웠습니다. 그때 물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간은 망각을 가져다주더군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았는데, 저 그만, 큰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 푸른 씨앗을 한 자궁 속에다 잃었습니다. 이 땅의 푸른 날숨과 들숨들은 모두 광년을 넘어왔다는 걸 알고 있을까요. 서기 이천 년도 인간이 만들어낸 시간이 아닌가요. 무소부재無所不在라고 저, 가난한 뱃속에서 막걸리 찌꺼기로 취하며 이 작은 몸뚱아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기쁘시죠? 태초부터 저와 함께한 그대들, 정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왜 하필 이 늙은 땅에서 저를 잃으셨나요?
쇠지랑물과 땅더껑이 속에서 벌레들이 슬금슬금 기어나옵니다.
숨소리가 들리세요?
거북이처럼 엎드려 살아도 자꾸 병들어갑니다.

-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중에서

----------------------------------------------------------

탄생이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뒷말은 아마도 축복이 아닐까. 어미의 자궁을 빠져나온 신생아의 울음소리에 사람들은 기쁨의 박수와 함께 덕담을 보낸다. 그러나 산모의 통증보다, 빠져나오느라 더 많이 아팠던 아기는 여전히 울고 있다. 탄생을 신비와 경이,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시인은 외로운 미아로 부르고 있다.

가난한 뱃속에서 막걸리 찌꺼기로 취하며 제 몸을 만들고 푸른 씨앗을 잃어버린 죄 값으로 병들어간다. 탯줄이 끊어지고 첫울음이 터지는 순간부터 나는 미아다. 어미가 손을 놓고 나를 잃어버린 거다.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전도서 1:9)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 늙은 땅에서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혼자뿐이다. 탄생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이미 정한 바 되어 있었으니, 속수무책으로 나는 태어날 수밖에 없다. 태중에서 나를 잃어버린 어미를 탓할 수도 없다. 벌레들이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땅바닥을 보면 온몸에 소름이 돋아도 거북이처럼 엎드려 살아야한다. 잘려진 탯줄을 궁창에 던지고 살아 팔딱여야 한다. 적어도 살아 있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얻어먹은 막걸리 찌꺼기 값을 갚으려면 병든 몸으로 신음소리라도 팔아야 한다. 찬바람 부는 새벽 병든 미아들의 쿨럭이는 기침소리로 골목 안이 술렁인다.  (허은희 시인)

_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11-12월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흠향(歆饗)  (0) 2008.01.11
매일 출근하는 폐인  (0) 2007.12.18
명왕성 되다(plutoed)  (2) 2007.11.12
킬리만자로  (0) 2007.10.22
동경(銅鏡)  (0) 2007.10.08
Posted by 이재훈이
,

명왕성 되다(plutoed)

시詩 2007. 11. 12. 00:00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뱉어낸다. 눈 밑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 잊혀진 얼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풍경은 서서히 물드는 것. 그리운 얼굴이 푸른 멍으로 잠시 물들다 노란 불꽃으로 사라진다. 나는 단조의 노래를 듣는다.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음 소리. 단추 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 내 입술과 몸에도 푸른 멍자국이 핀다. 아무리 하품을 해도 피로하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모두 신성한 모험이었다는 거짓된 소문들. 내 속의 거대한 허무로 걸어 들어갈 자신이 없다. 지하철 2호선의 문이 활짝 열린다.

_ 시현실, 2007년 봄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일 출근하는 폐인  (0) 2007.12.18
병든 미아  (0) 2007.11.15
킬리만자로  (0) 2007.10.22
동경(銅鏡)  (0) 2007.10.08
헌책  (0) 2007.09.16
Posted by 이재훈이
,

킬리만자로

시詩 2007. 10. 22. 16:16


이재훈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다
열대를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텅 빈 숲의 적막이
털끝을 살살 오므려 움을 틔우는 시간
이름 모를 나무의 향기를 맡으며
허무의 군락 사이를 헤맸다
저녁마다 매연을 맡으며 구역질을 했다
벌거벗은 육체 사이에서 신음했다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없이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 시간,
꽃담을 지나 땀 흐르는 폭포를 지나
힘겹게 절정을 찾아 다녔다
빈 무덤을 넘어가며
전생의 길을 물었다
큰 호수를 만났을 때는
열망하던 일들이 모두 잠잠했다
위대한 숲의 시를 쓰고 싶었다
숲 속에 한 평짜리 오두막을 짓고
밤마다 호랑이의 배고픈 소리를 들으며
늘 지저귀고, 사분거리고, 비벼대는 숲을
노래하고 싶었다
그 싱그러움의 머리맡에서
토닥토닥 바람을 잠재우고
풀잎의 향기에 취해 혼절하고 싶었다
독수리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빙빙 돈다
폭우가 올 것 같다
빛나는 산은 신의 눈물과
천수관음인(千手觀音人)의 예언으로 존재하는 곳
화신(化身)으로 지속된 땅에서
솟구치는 피를 즐겼다
저 산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날아라
이 땅은 자꾸 따뜻해져
만년의 눈[雪]이 제 몸을 녹여
앙상한 피부를 드러냈다
황혼에 몸을 적셔 본다
금빛으로 스러지는 내 몸이
아스팔트에 널려져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순백의 저 암암한 몸과
뒤엉킬 꿈을 꾸며

_ [시와사상], 2007년 여름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병든 미아  (0) 2007.11.15
명왕성 되다(plutoed)  (2) 2007.11.12
동경(銅鏡)  (0) 2007.10.08
헌책  (0) 2007.09.16
비오는 일요일 오후  (0) 2007.09.13
Posted by 이재훈이
,

동경(銅鏡)

시詩 2007. 10. 8. 22:29

   이재훈(李在勳)



   깨진 기왓장을 주워 주머니에 넣으면, 그 속에서 비닐에 덮여 자고 있는 여인을 볼 수 있다. 콧대와 턱이 뿌연 비닐과 뒤엉켜, 툭 건드리면 바삭 부서질 것 같다. 팔딱팔딱, 손가락 사이로 심장 소리가 뛰어 올랐다. 모든 소리들이 긴 줄에 매달려 그네를 탔다. 녹색의 밤.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었던 밤. 나는 단지, 일생을 꿈꾸었을 뿐인데. 챙, 소리에 놀라 보니 사방에 깨진 파편들이 반짝였다. 깜박깜박, 수많은 눈동자가 길을 물었다. 그네는 삐걱거리며 보랏빛 옷만 남겼다. 깊은 숲길에 안개가 뿌옇고, 여인은 안개를 덮었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 천년을 건너온 어떤 눈동자에 손을 베인다. 스윽.

_ 문학사상, 2007년 7월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왕성 되다(plutoed)  (2) 2007.11.12
킬리만자로  (0) 2007.10.22
헌책  (0) 2007.09.16
비오는 일요일 오후  (0) 2007.09.13
사랑시  (0) 2007.07.06
Posted by 이재훈이
,
 

오규원․이재훈






이재훈:오랫동안 병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양평 서후리에서 창작과 요양을 하고 계신데요. 건강은 어떠신지요? 근황을 여쭙고 싶습니다.


오규원:내 지병은 폐기종이라는 만성질환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숨 쉬는 기능이 약해지는 병입니다. 무엇보다도 맑은 공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서후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모든 만성질환이 그렇겠지만 리듬을 깨뜨리지 않고 적절하게 조절을 하며 지냅니다. 여러 가지 제약을 많이 받기 때문에 집 밖 외출을 하기는 힘들고 공기가 따뜻한 시간에 집의 뜰을 산책합니다. 여느 건강한 사람들처럼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작품을 쓰려고 노력합니다(그러나 모두 잘 아시겠지만 작품을 쓸 때는 그 선을 자주 잊어버리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재훈:선생님의 유년 시절은 삼랑진이라는 산골, 어머니의 죽음, 기숙과 기식의 학창시절로 요약됩니다. 이러한 유년 시절에 대해서는 다른 산문들을 통해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의 유년 또한 그 세대들의 삶이 그러하듯 평탄치는 않았습니다. 시인들은 대개 평탄치 않은 삶을 담보로 삶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충만한 감정으로 풀어나가기 마련입니다. 선생님의 작품 속에서는 문학 감수성의 모태라 할 수 있는 고향 내지 유년이 어떠한 방식으로 투영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오규원:초등학교 6학년을 경계로 나의 유년은 대조적으로 그 양상을 전개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전까지는 정미소, 복숭아 과수원, 꽤 많은 농토를 가진 집의 막내아들로서 결핍을 모르고 지낸 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이후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가세의 몰락, 기숙과 기식이라는 연속적인 결핍과 불행이 발생하는 시기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내 삶과 의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어머니의 죽음이 가로놓인 초등학교 6학년 전과 후는 어머니의 자궁 안의 세계와 자궁 밖의 세계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부재는 고향을 관념화시키는 쪽으로 내 의식을 몰고 가게 되었습니다. 즉 어머니의 부재는 현실적으로 엄연히 고향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으로, 회복될 수 없는 존재로 느껴지게 하는 요인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내내 그런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향을 생각하면 지극히 평화로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고향에서는 바람이 안 붑니다. 어머니와 함께 고향이 관념화되어 있어서, 현실적인 고향은 내 고향이 아니라고 부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는 외지 생활과 연결되어 있고, 기숙과 기식의 시절이 됩니다. 삼랑진을 떠나 부산으로 유학을 간 것이지만, 내게는 이 시기가 끊임없는 긴장과 자괴감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었습니다. 내가 현실을 늘 의식하고 있는 것은 그때부터 내면화된 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기숙과 기식은 자기 현실을 낯설게 보게 하고 끊임없는 결핍을 느끼게 했습니다. 남이 아닌 형이나 누이나 숙부의 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이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이라는 의식이 강했습니다. 체질적으로 예민한 데서 연유하는지 또는 삶의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면서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부재=내 집의 상실=고향의 상실은 지금까지도 내가 사는 현실에 대해 내 스스로 집이 없는 자의 의식을 갖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삶이 기숙과 기식의 시간 안에 있다는 인식은 우리 사회도 기숙과 기식의 세계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의식을 갖게 합니다. 결국 이러한 의식들이 나를 리얼리스트로 만들고, 주체중심의 의식이 아닌 반(反)주체 중심의 의식을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재훈:선생님께서는 4.19세대로 일컬어지는 문지 계열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그 계열에서도 언어와 자아의 문제에 대해 가장 예민하고 독창적인 작품과 그에 따른 문학론을 펼쳐왔습니다. 문학사의 측면에서 볼 때 선생님의 작품 세계가 이전 세대인 50년대, 더 거슬러 30년대 모더니스트들과의 변별성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규원:30년대나 50년대 모더니스트 시인들은 몸과 머리의 토대가 다릅니다. 풀어서 얘기한다면 몸은 농경사회에 토대를 두고 태어났고 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머리는 서구 산업사회가 토대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몸과 머리의 간격이 그 시대의 모더니스트 시인들을 난감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 시인들의 시가 실패했다면 그런 시대나 사회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60년대까지 농경사회였다는 것을 한 눈에 보여주는 예는 박정희 정권이 그때까지도 새마을 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30년대는 이상이 유일하게 성공을 거둔 예인데, 이상은 우리 시대나 사회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몸과 머리가 일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 우리 사회를 노래했다면 농경 사회와 산업 사회의 간격이 생겨 시가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 ‘나의 삶’에만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모더니스트의 현실인 몸과 모더니스트의 언어인 머리가 현실의 괴리를 일으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다행스럽게도 한국에 모더니티가 발생한 70년대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선배들처럼 수입이론이 아닌 자생이론을 가질 수 있는 모더니스트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재훈:동시대의 시인들과의 변별성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승훈 선생이 가장 적확한 대상일 듯 싶은데요. 동시대의 시인이면서 또한 동류의 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평가 면에서는 각각 독립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듯합니다. 동시대 시인들과의 변별점과 그 연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오규원:잘 알려진 대로 이승훈 시인은 김춘수 시인의 무의미시론을 자기 나름대로 새롭게 개척해서 80년대부터 ‘비대상시론’을 발표했습니다.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서 시론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는 시인입니다. 나는 관념의 재해석, 관념의 해체에 이어 현재 관념을 배제한 ‘날이미지시’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두 사람 사이의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면 김준오 선생의 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김준오 선생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한국 모더니즘 시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긴 분입니다. 선생은 모더니즘시론은 조향․김춘수․이승훈의 계열과 김기림․김수영․오규원의 계열로 이원화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이 분류를 참고하면 두 사람 사이의 변별성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재훈:많은 평자들이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젊은 시인들을 선생님의 영향관계 하에 평가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이는 선생님의 작품과 시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후학들의 창작과정에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요. 자아와 내면의 문제에 탐구, 사회성을 띄고 있다는 점, 형태적인 실험 등등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그 영향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 또한 선생님의 이전 세대에서도 행해진 것이었는데요. 선생님의 영향을 받았다 할 수 있는 후배 시인들의 문제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오규원:내가 예로 잘 드는 집이라는 건축물을 가지고 얘기해보겠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구조와 공법을 가지고 건축한 우수한 집 한 채가 있다고 칩시다. A라는 사람은 그 집의 거실과 주방을 본 떠서 자기 집의 거실과 주방을 개조했습니다. 또 B는 그 집의 지하 서재를 모델로 해서 자기 집의 서재를 개조했고 C는 그 집의 다락방을 보고 자기 집의 새로운 다락방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했을 경우에 현실적으로 A B C 세 사람의 집은 좋아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A의 집을 보고 이 집은 거실과 주방 때문에 이 집 전체 구조가 좋아졌다, B 집을 보고는 집의 내부구조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C 집은 이 집에 새로운 날개를 하나 더 단 것 같다는 칭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X 라는 사람은 이 집의 구조와 건축 공법을 연구하고 그 기초의 정신을 이해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건축물을 만들었습니다. 시의 관계도 위와 같이 A B C와 X의 두 종류의 영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건축 미학적으로 볼 때 X의 건축물은 독자적으로 평가를 받지만 A B C는 건축학적으로는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모방 건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영향을 받을 바에는 X와 같이 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A B C는 현실적으로는 다소 이점이 있을지 모르나 근본적으로는 그 시의 세계가 발전적으로 될 가능성을 없을 것입니다.


이재훈:선생님의 시론은 김춘수, 이승훈과 더불어 우리 시사에서 독창적인 시적 방법론으로 평가됩니다. 김춘수의 무의미시와 이승훈의 비대상시, 선생님의 날이미지의 시는 각각 고유한 방법론을 내재해 있는 독특한 시론으로 비견됩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 김춘수, 이승훈, 오규원 선생의 시론을 읽고 알고 있지만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시인들까지도 각 시론의 차이와 특성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를 봅니다. 얼마 전 제가 김춘수 선생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게 있었는데요. 시인의 시론을 당사자의 육성을 통해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할 듯 싶습니다. 잘못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소지를 줄일 수도 있겠고요. 선생님의 시론과의 차이와 개별적 특성은 무엇인지 간략히 말씀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오규원:김춘수 시인의 무의미시와 내 날이미지시를 비교해보겠습니다. 아니 변별점을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무의미시는 ‘무의미를 지향’하고 날이미지시는 ‘의미를 지향’하는 시입니다. 시의 차원에서는 가치가 있고 통상적인 의미에서는 대상도 주제도 의미도 없는, 그런 개념을 가진 것이 무의미시론 입니다. 이 개념을 좀더 명확하게 해 보자면 김종삼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매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북치는 소년」에 보면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이라는 시 구절이 나오는데, 이 구절을 ‘내용 없는=무의미’ ‘아름다움=시’로 대체해보면 무의미시가 어떤 시인지 그 윤곽이 드러납니다. 시의 내용이 무의미하니까 시인은 시의 형태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그래서 무의미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처용단장」을 보면 서술시, 주술시, 해체시, 그리고 접붙이기시라는 형태들이 실험되고 있습니다. 날이미지시는 사변화되거나 개념화되기 이전의 의미, 즉 관념화되기 이전의 의미를 존재의 현상에서 찾아내어 이미지화하는 시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 시의 의미는 관념을 배제한 날 것 상태, 관념화되기 이전의 의미입니다. 그런 시의 내용, 즉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특성 때문에 날이미지시에서는 이미지의 성격 변화가 무의미시의 형태적 변화처럼 중요하게 됩니다. ‘사실적 날이미지’ ‘발견적 날이미지’ ‘직관적 날이미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날이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설명한 바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간략하게 설명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보다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내 작품을 보기로 들겠습니다.


그때 나는 강변의 간이주점 근처에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주점 근처에는 사람들이 각각 있었다

두 손으로 가방을 움켜쥔 여학생이 지는 해를 보고 있었다

젊은 남녀 한 쌍이 지는 해를 손을 잡고 보고 있었다

주점의 뒷문으로도 지는 해가 보였다

한 사내가 지는 해를 보다가 무엇이라고 중얼거렸다

가방을 고쳐 쥐며 여학생이 몸을 한 번 비틀었다

젊은 남녀가 잠깐 서로 쳐다보며 아득하게 웃었다

나는 옷 밖으로 쑥 나와 있는 내 목덜미를 만졌다

한 사내가 좌측에서 주춤주춤 시야 밖으로 나갔다

해가 지고 있었다

― 「지는 해」


이 작품은 보는 바와 같이 ‘사실적 날이미지’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강변의 간이주점 근처”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만 나타나 있습니다. 10행의 ‘아득하게’라는 표현이 정서가 개입된 유일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그 표현 또한 웃는 모습이라는 사실성을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처럼 사실성 그 자체만으로 날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사실적 날이미지입니다.


담쟁이덩굴이 가벼운 공기에 업혀 허공에서

허공으로 이동하고 있다


새가 푸른 하늘에 눌려 납짝하게 날고 있다


들찔레가 길 밖에서 하얀 꽃을 버리며

빈 자리를 만들고


사방이 몸을 비워놓은 마른 길에

하늘이 내려와 누런 돌멩이 위에 얹힌다


길 한켠 모래가 바위를 들어올려

자기 몸 위에 놓아두고 있다

― 「하늘과 돌멩이」


이 작품은 ‘발견적 날이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실적 날이미지’로 되어 있는 「지는 해」와는 다르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느낄 것입니다. ‘발견적 날이미지’로 되어 있는 날이미지시는 사실성 위에 새롭게 발견된 다른 의미가 부과되어야 합니다. 이 작품을 사실적 날이미지로 쓴다면 “담쟁이 덩굴이 뻗어 있다/하늘에서 새가 날고 있다/들찔레 꽃이 졌다/돌멩이 위로 하늘이 있다/길에 바위가 놓여 있다”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 사실적 날이미지가 발견적 날이미지로 바뀌는 것은 그 뜻 그대로 발견적 시선이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들찔레가 길 밖에서 하얀 꽃을 버리며/빈 자리를 만들고”라는 현상을 그 예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이 현상의 사실적 표현은 “들찔레 꽃이 졌다”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인 내가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들찔레의 시선으로 본다면 꽃을 떨어뜨리는 순간은 자신의 일부를 버리는 시간인 동시에 또한 자신의 일부로서의 빈 자리를 만드는 시간인 것입니다. 존재가 사라지면 빈 자리가 생긴다는 인식과 사라지면서 존재는 빈 자리를 만든다는 인식의 차이를 생각해보십시오. 주체 중심의 시선이 아닌 반주체 중심의 시선이 발견적 이미지를 가능하게 합니다. 발견적 날이미지는 관념적으로나 비유적으로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려져 있던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낯설지만 분명 사실적이고 객관적입니다.


어제는 펑펑 흰 눈이 내려 눈부셨고

오늘은 여전히 하얗게 쌓여 있어 눈부시다

뜰에서는 박새 한 마리가

자기가 찍은 발자국의 깊이를

보고 있다

깊이를 보고 있는 박새가

깊이보다 먼저 눈부시다

― 「발자국과 깊이」


이 작품은 「하늘과 돌멩이」와는 또 다릅니다. 이 작품과 같은 ‘직관적 날이미지’는 그 이미지가 깨달음을 동반한 상태에서 사실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발견적 날이미지와 변별되는 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하늘과 돌멩이」에서 “모래가 바위를 들어올려/자기 몸 위에 놓아두고 있다”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발견입니다. 바위는 분명 모래 위에 놓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발자국과 깊이」에서의 “깊이”라는 표현은 어떤 깨달음을 동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즉 박새가 쳐다보는 것은 발자국이 아니라 발자국의 깊이입니다. 발자국을 쳐다보는 것은 사실적이지만, 발자국의 깊이까지를 보는 것은 깨달음으로 보는 시선이므로 직관적 날이미지가 됩니다. 이렇듯 직관적 날이미지가 깨달음을 동반하는 데도 관념적이지 않게 되는 것은, 그 깨달음 또한 분명 사실성 위에서 직조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잠깐, 재미있는(?) 차이점 한 가지를 말해 볼까요. 김춘수 시인은 ‘허무’를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나는 ‘허무’를 한번도 언급한 바 없습니다. 그것도 무의미 지향과 의미 지향과 관계있지 않을까요? 나는 위와 같은 차이 때문에 형태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김춘수 시인은 ‘예술적 인식’의 차원에서, 이미지의 내용을 추구하는 나는 ‘인식적 예술’의 차원에서 시의 구조를 짜고 있다는 구분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둘째, 무의미시는 ‘서술적 언어 체계’속에서 이루어지고 날이미지시는 ‘환유적 언어 체계’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김춘수 시인은 이미지를 의미가 발생하는 않는 서술적 이미지와 의미가 발생하는 비유적 이미지로 나누고, 무의미시를 서술적 이미지에서 구합니다. 나는 언어학에서 인접성에 근거하는 환유적 체계와 유사성에 근거하는 은유적 체계를 차용하고, 환유적 언어 체계 속에서 날이미지시를 구합니다. 그러나 서술적 이미지에서도 의미는 발생하며 환유적 언어 속에서도 은유가 발생하므로 무의미시와 날이미지시는 각각 나름의 조심스러운 수사적 장치와 행보를 해야 합니다.

셋째, 무의미시는 ‘주체 중심의 심리적 세계’이며, 날이미지시는 ‘반주체 중심의 사실적 세계’입니다. 무의미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통상적으로 대상도 없고 주제도 없는 시입니다. 주제나 대상도 없으면 당연히 그 세계가 심리적일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또한 관념적인 일면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연유로 무의미시는 시의 행간 어딘가에 관념을 숨겨놓고 있습니다. 아이디얼리스트가 어떻게 관념을 배제하겠습니까. 외견상 관념의 배제로 드러나는 이 무의미시와 날이미지시가 만나는 접점이 바로 이곳, 관념의 배제라는 지점입니다. 왜냐하면 날이미지시도 관념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체 중심의 심리적 세계인 무의미시는 그 특성상 관념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투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날이미지시는 존재의 현상을 반주체중심의 시선으로 이미지화하기 때문에 관념이 은폐되지 않고 배제되어 투명합니다.  


활자 사이를

코끼리가 한 마리 가고 있다.

잠시 길을 잃을 뻔하다가

봄날의 먼 앵두밭을 지나

코끼리는 활자 사이를 여전히

가고 있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코끼리,

코끼리는 발바닥도 반짝이는

은회색이다.

― 「은종이」


김춘수 시인의 이 작품을 보면 그 차이를 좀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외견상 객관적 묘사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사실은 심리적 주관적 묘사의 세계입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은종이 한 장 끼어 있었다”는 한 줄의 부제가 유일한 연상의 통로인 이 작품은 ‘코끼리가 가고 있는 것은 활자 사이이고, 그 코끼리는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고, 그러나 잘 보이지도 않는 코끼리의 발바닥은 반짝이는 은회색’이라는 모순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모순은 대소(大小) 관념의 조작이라는 숨겨진 의식의 놀이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습니다. 이 결과 발생한 난센스(무의미)는 서정적인 다른 시행과 결합하여 시가 되고, 시인의 관념은 작품 뒤에 숨게 됩니다.

심리적 주관적 묘사의 세계인 무의미시와는 달리 날이미지시는 관념화되기 이전의 의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존재의 현상을 날 것 그대로, 객관적으로 묘사합니다. 그 세계는 심리적 세계가 아닌 사실적 세계이며, 주체 중심의 시인 무의미시와는 달리 반주체 중심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나비가 동에서 서로 가고 있다

돌이건 꽃이건 집이건

하늘이건 나비가 지나가는 곳에서는

모두 몸이 둘로 갈라진다 갈라졌다가

갈라진 곳을 숨기고 다시

하나가 된다

그러나 공기의 속이 굳었는지

혼자 길을 뚫고 가는 나비의 몸이

울퉁불퉁하게 심하게 요동친다

― 「봄과 길」


이 작품은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 짧은 순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이 사실적 풍경이 낯설게 보이는 것은 발견적 이미지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나비와 만나는 때는 모든 존재의 몸이 둘로 갈라지는 순간이며, 나비는 날아가는 모습이 불균형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넷째, 김춘수 시인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서구 문화의 이원론에 발을 붙이고 있고 나는 경(經) 중심의 관념 불교가 아닌 실천 중심의 선불교의 일원론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내 경우는 김춘수 시인과는 달리 종교가 직접적으로 작품에 개입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재훈:최근 몇 년 사이의 선생님의 시가 호흡이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되기도 합니다. 한쪽에서는 건강 때문에 그러하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날이미지의 시가 근본적으로 시를 짧게 요구하는 일면이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오규원:날이미지가 시의 길이를 짧게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해야겠습니다. 날이미지의 특성이 행갈이와 연갈이의 호흡을 바꾸고 시의 길이에도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시의 구조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10년쯤 전부터 짧은 시에 관해서 따로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건강 때문에 시가 짧아진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짧은 형식의 시를 탐구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여러 가지 책들을 다시 찾아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내 체질에 맞는 어떤 형식의 짧은 시가 없을까 하고 말입니다. 근년에 발표되는 나의 짧은 시는 그러한 관심의 일환입니다. 그러므로 내 시에서 보편적인, 그리고 종래부터 가지고 있던 내 호흡의 길이의 형태를 띠고 있는 시와 근래의 내 짧은 시를 따로 나누어 읽어야 합니다.


이재훈:시인은 시로 얘기할 뿐이다. 내 시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시인들도 많습니다. 대개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시인이 가고자하는 세계를 읽을 수 있는 시겠지요. 시인의 시론이 시를 쓰는데 얼마만큼의 필요충분조건이 될까요.


오규원:독자적이고 독창적인 구조와 공법을 가진 건축물이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히 설계도와 공사 지침서가 있을 것입니다.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기이한 일일 것입니다. 시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구조와 수사법을 가진 작품이 있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시론이 있을 것입니다. 없다면 그 또한 기인한 일일 것입니다. 단 시론이 존재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명문화(明文化)되어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시인의 머리 속에만 있고 명문화되어 있지 않은 경우입니다. 그 어느 쪽이든 있기만 하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시론이라고 해서 꼭 논문 형식으로 되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상관없습니다.


이재훈:얼마 전 한 시전문지에서 “우리 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연속기획을 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다른 여러 잡지에서도 시의 문제점에 대해 논구하는 많이 특집들이 있었습니다. 특집들을 토대로 살펴볼 때 우리 시의 문제점에 대해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실험의식의 부재와 복고적 서정성으로의 퇴행이고 또 하나는 소통불능의 자폐적 내면으로의 갇힘입니다. 앞의 문제는 소위 일컫는 서정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고 뒤의 문제는 모던한 시에서 발생되는 문제점입니다.

시인들 스스로는 어디를 바라봐야 할지 새로운 유토피아나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복고’와 ‘유폐’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첫 시집이나 두 번째 시집을 낸 이후로 지쳐서 시작을 포기할까도 생각하는 시인들도 많이 눈에 띕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오규원:우리 시의 문제가 서정시의 ‘복고’와 모던한 시의 ‘유폐’로 정리되고, 전망의 부재가 ‘복고’와 ‘유폐’를 선택하게 한다고 젊은 시인들이 스스로 인정하는 한, 한국시의 미래는 밝다고 봅니다. 젊은 시인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한 그들에게 전망 있는 시학이 개척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망 있는 시학이 반드시 ‘복고’와 ‘유폐’를 벗어난 곳에서만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철저하고 절실한 ‘복고’와 처절하고 막다른 ‘유폐’의 시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는 그 어디에서든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새로 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서정시의 ‘복고’니 모던한 시의 ‘유폐’니 하는 시적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감각조차 할 수 없는 다수의 시인들에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위의 지적은 수정되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생산한 문학은 한국 사회가 그대로 땅 속에 묻어버릴 것이므로 문제가 될 것도 없겠습니다. 얼마간의 종이 낭비가 따르겠지만 그런 정도의 낭비란 문화가 언제나 감당해야 할 몫인 탓입니다.


이재훈:시를 쓰는 젊은 후학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요.


오규원:예술이란 중도라든지 타협이라든지 모범이라든지 하는 것에 있지 않고 극단에 있습니다. 이 점에 유의해 주었으면 합니다. 대중도 없고 환호도 없고 독자도 없는 곳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자리 잡으면 당신의 독자가 새로 창조될 것입니다.



* [시와세계], 2004년 가을호.


Posted by 이재훈이
,

―젊은 시인들의 서정성 변모를 중심으로


김지선


1. 서정성 논란과 서정의 변화 

2006년의 시단은 서정시 논란으로 뜨거웠다. 환유적, 환상적, 언어 분절의 심화 등의 키워드를 특징으로 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를 "다른 서정"으로 지칭하며 시의 지평을 넓힌 시로 지지하는 쪽과 이들의 시에 회의적 시선을 드리우며 전통을 잇는 서정시를 옹호하는 쪽의 열띤 논쟁이 오고 갔다. 서정시에 대한 논란은 서정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을 통해 우리의 시대성을 담아내는 장르로써 서정시의 지평과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재 우리 시가 배태한 서정의 질에 대한 회의가 담긴 문제이다.
"다른 서정"에 쏟아지는 부정의 시선은 무엇보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의식이 없으며, 놀이, 유희에만 경주하는 기법의 시라는 점에 집중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시는 중심부재의 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자기 정체를 회의하고 고민하는 시대성을 담지한 시로서의 의의를 지닌다는 평가 또한 받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평가는 상당부분 시에 접근하는 독법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새로운 서정"의 가능성에 대한 성급한 판단에 앞서 우리의 시단은 시의 독법간의 단절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반시적이며 혁신적 언어의 사용과 기법이 이들 시의 성취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들 시의 일부는 팽팽한 시적 긴장감을 찾을 수 없으며 도식성과 반복성에서 오는 지루함이 상투성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정과 반서정의 대립이야말로 문학사에서 되풀이 되어온 쟁점이다. 이러한 시의 반성과 전망의 모색을 통해 문학사는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논쟁은 서정과 반서정의 논란이라기보다는 서정의 확장이라는 변화의 지점에서 나타나는 충돌의 양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논란이 재래적 서정성의 재구축을 위한 노력으로 환원된다면 이는 다원화된 시의 양상을 획일화하고 단순화시킬 위험을 안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시의 화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논의가 전통 서정시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촉발되어서는 안 된다. 시가 시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에 서정의 질에 대한 고민이 실려야지 기존 시에 대한 권위와 고집이 담겨서는 위험하다.
장르는 무소불위의 권위나 고정불변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 굳건한 실체가 아니다. 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와 역사의 장에 부딪히며 각개전투를 해 나가는 사이에 마모되고 잘려나가며 새롭게 형성해나가는 과정의 산물인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고정불변의 정체성이야말로 서정시가 지닌 고질적인 병폐가 될 것이며 관습적 틀에 안주하려는 안일함이 될 것이다. 이들의 논의가 재래적 서정으로의 후퇴라는 퇴보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는 작품 하나 하나에 대한 질의 반성과 더불어 현대적 삶과 조우하여 빚어내는 시적 주체의 다각적인 삶의 양상과 반응, 그에 따른 시적 변화를 감지하고 살펴보려는 노력이 불가결하다.


  2. 풍경, 주체, 시선의 변화

풍경은 오래도록 서정의 원천이었다. 시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자아소멸의 시점에서 시작되어 세계와의 균열된 틈이 없는 조화와 화합의 계기가 되거나, 인간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한 해석된 자연이었다. 박라연의 시에 자연은 적극적으로 해석된 자연으로 나타난다.
 
매 순간 태어나고 죽는
뗏장 묻을 시간도 문상의 시간도 없는
지상에서 가장 단명한 목숨인
물, 속에 어룽대는
얼굴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며
어이! 이 사람아!
오래 사는
몸값으로 죄조차 짓지 않는다면
어찌 산목숨이겠는가?

내 몸 위에서 반짝이는 저 햇살들은
대쪽같이 살겠다며 저를 분질러버린 이들이
세상 그리워
눈부시게 다시 한번 왔다
가는
혼불이라네
아무렴!
―박라연, [영산호湖 생각], [우주 돌아가셨다], 랜덤하우스 중앙)

위 시의 발원지는 인간과 자연의 전도된 시선이다. 완전무결한 우주적 존재가 사유하는 인간은 찰나라는 순간을 통해 영원으로 회귀하지 못하는 연민의 대상이다. 우리는 이 무한한 너그러움 속에서 위안을 받을 뿐 아니라 불완전함마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겉으로 완전무결해 보이는 이 시선은 인간적 해석에 의해 가능할 뿐이다. 이 거시적 시선이 우리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이분법적 대립이라는 몇 가지 고정된 전제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인간은 하잘 것 없는 존재이며 대자연은 영원하고 완전무결하다. 찰라라는 짧은 순간과 영원은 같은 차원으로 통하는 시간의 겹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주적 차원의 거시적 시선이 시적인 울림을 일으키기에 시적 사유의 주체인 시인의 담론이 너무 거대하고 관념적이다. 지나치게 초연한 자세는 미적 거리의 소멸을 일으키며 때로 미적 거리의 소멸은 미적 교감의 소멸로 나타나기도 한다.
김선우의 시 역시 풍경을 주된 시적 제재로 삼아 해석된 자연을 묘사한다. 그러나 그의 풍경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어쩐지 묘한 인상을 남긴다. 

하루가 저물어간다, 참 잘 곰삭은 저 저녁 풍경이 실은 천연스레 뒤를 보이고 앉아 볼일을 보는 크낙한 엉덩이라면 저물녘 저 태양이 문이라면
금빛 항문 ― 어슴푸레 열리는 새벽으로부터 한낮 지나 저물녘에 이른 우리의 하루가 뒤를 보이고 앉아 시름없이 일을 보는 크낙한 엉덩이의 한 오분 시원한 용변과 같다면
수성이랄지 목성은 그녀의 젖가슴쯤 명황성이랄지 천왕성은 쌔근거리는 정수리 문쯤이 될까
금빛 거웃 바람결에 흔들려 드문드문 하늘자리 젖는 저 풍경이 우리가 셈하지 못하는 어떤 하루의 한 오분 마지막 순간이라면
저물어간다, 허방지방 거미줄 치고 있는 목마른 나의 하루는 긴가 너무 짧은가 아득한 물병자리 옆얼굴이 슬몃 보였는데 뭉게구름 느릿느릿 금빛 항문을 닦아주며 흐르는데
―김선우, [어느날 석양이], [도화 아래 잠들다], 창비)

시는 완전히 인간적으로 해석된 자연임에도 낯선 인상을 준다. 그녀의 시를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보기에는 적극적 판단의 개입이 애매하며, 에로틱하게 보기에는 지나치게 질펀하다. 시인의 상상력으로 포착되는 석양무렵의 풍경은 여성의 몸이다. 여기까지는 다른 시들과 비교해 그다지 다를 게 없는 듯하지만 이때의 여성은 관습적으로 우주와 여성을 신성시하고 신비화하는 여타의 상상력과는 차별화된다. 석양 무렵 번지는 노을을 두고 몸이 배출하는 용변을 떠올리는 시인의 연상도 범상치 않지만 그보다는 배출의 순간을 '저 풍경이 우리가 셈하지 못하는 어떤 하루의 한 오분 마지막 순간이라면'이라는 시구로 표현함으로써 우리의 몸과 세계를 동시에 긍정하는 것이 놀랍다. 그러나 이 긍정은 딱 오분이라는 시간으로 제한된다. 뒤를 이어 흐르는 정서는 모호하고 허무하게 흔들림으로써 세계를 주체가 판단할 수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연기한다. 여기서의 풍경은 완전하게 의인화되어 인간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대상도 아니며 주체와의 거리를 소멸시키고 대타자에 이입되는 존재로써의 자연도 아니다. 김선우의 시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주체의 시선은 풍경에 닿을 수  없는 일정한 거리를 견지한다. 이 거리야말로 그녀의 시를 투명하게 의미화할 수 없는 해석의 모호한 지점으로 데려가지만 동시에 그녀 시의 매혹적인 면모로 작용한다.  
문태준의 시는 정감있는 문체와 수려한 언어로 뛰어난 미학적 성취를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가재미][맨발]과 같은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며 미학적으로 매끄러운 휴머니즘의 시편들보다는 풍경과 주체가 만나는 애매한 거리의 지점을 형상화한 시가 더 좋다.  

배꽃이거나 석류꽃이 내려오는 길이 따로 있어
오디가 익듯 마을에 천천히 여럿 빛깔이 내려오는 길이 있어서
가난한 집의 밥 짓는 연기가 벌판까지 나가보기도 하는 그런 길이 분명코 있어서
그 길이 이 세상 어디에 어떻게 나 있나 쓸쓸함이 생기기도 하여서
그때 걸어가본 논두렁길이나 소소한 산길에서 봄 여름 다 가고
아, 서리가 올 때쯤이면 알게 될는지
독사에 물린 것처럼 굳어진 길의 몸을
―문태준, [길], [가재미], 문학과지성사)

여타의 서정시에서 동일성이 가능해지는 것은 대상과 일체가 된 시적 자아가 풍경의 안을 사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 시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주체의 시선은 정직한 거리를 확보한다. 시적 주체는 풍경의 바깥에서 균열이나 틈을 바라본다. 풍경은 바깥의 타자로써 존재하지만 동경의 대상이나 닮고 싶은 존재는 아니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전원을 그려내는 듯 싶던 시는 후반부 문득'독사에 물린 것처럼 굳어진 길의 몸'이라는 뜻하지 않은 세계의 낯선 풍경으로 귀결된다.

장대비 속을/멧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彈丸처럼 빠르다/너무 빠른 것은 슬프다/갈 곳이 멀리/마음이 멀리에 있기 때문이다/…/저 全速力의 힘/그리움의 힘으로/멧새는 어디에 가 닿을까/집으로?/오동잎같이 넓고 고요한 집으로/中心으로?/아, /다시 생각해도/나는/너무 먼/바깥까지 왔다
―문태준, [바깥], [가재미], 문학과지성사)

[바깥]의 시적 주체는 바깥을 서성이는 존재다. 세계의 중심, 세계의 근원을 알 수 없는 바깥의 존재로서 그리움의 실체에 가닿기는 요원해 보인다.
전통을 잇는 서정시의 문제는 해석된 자연을 묘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해석이 상투적이고 관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데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위 시들은 전통을 잇는 서정시 장르의 관습적 장점을 고스란히 취하면서도 달라진 세계 인식의 어느 지점을 사유하게 한다. 특히 중심을 향한 의지와 동일성의 희구가 자동화된 인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중심을 향한 갈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사유할 수 없는 주체의 위치를 직시하기 때문이라는 게 적절할 것이다. 시를 정서의 투사로만 바라보는 시는 낭만성의 과잉으로 흘러가기 쉽고, 서정적 주체와 현실 간의 갈등이 우주적 차원의 포월을 통해 비현실적으로 해소되고 있는 시의 구조는 후기현대의 다차원적이고 복잡다단한 실을 비추기에는 너무 소박하다. 김선우와 문태준의 위의 시들은 주체 중심의 권력적 시선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대성을 성취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내면의 풍경, 타자성을 복기하는 서정적 주체

서정의 변화는 20~30대의 젊은 시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들의 시에는 비동일성의 원리와 반서정의 원리가 적극적으로 시에 내재되고 있다. 그러나 김경주, 박상수, 이재훈, 박진성, 안현미 등의 시인들을'다른 서정'계열의 시를 쓰는 시인으로만 범주화하기 모호한 점이 있으며 동시에 전통적 서정 계열의 시를 쓰는 시인으로 구분하기도 힘들다. 사실 이들 시인들을 굳이 하나의 계열로 범주화할 필요는 없다. 반서정과 서정의 원리가 얼마만큼 적절하게 녹아들어 시적 미학으로 승화되고 있는가하는 미적 성취의 문제가 보다 중요하다.  
젊은 시인들의 서정이 이전의 서정과 달라지는 확연한 지점은 우리 사회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시의 모티프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무엇보다 단일 주체에서 벗어나 복합 주체로서의 자아를 인식한다는 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들은 시적 자아의 내면 속에서 주체가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타자성)을 끄집어낸다. 이재훈의 시에서 주체가 환기하려는 것은 세계와 불화하기 이전의 순수한 시적 언어이다.

…말은 내게 뱃속을 열어 보여준다
건강한 줄기를 먹고 자란 말
빨갛게 화장(化粧)한 말의 뱃속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뱃속에 질서 있게 자리잡은 내장의 곡선에
손가락을 갖다대본다
아프다, 말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다
뱃속에서 말의 새끼들이 뛰어나온다

…말이 쏟아져내린다 초원에 내려 거칠게 달려나간다 내가 지겹게 머무는 도시의 거리까지 와서 내 머릿속을 후드득후드득 내달린다

…믿음엔 증거가 있어야 한다
내가 검은 말을 타고 요정의 검을 차고
맥베스처럼 "눈앞의 이것이 나인가" 되뇌이며
내 목을 자르고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 속으로 들어갔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 이재훈,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부분

이재훈의 시는 존재의 시원에 대한 물음과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에게 풍경은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복원된 시원의 풍경이며 내면 깊숙이에 가라앉아 있는 선험적 기억의 흔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시적 언어에 대한 믿음이며 완전무결한 태초의 언어를 복기해내고자 하는 시인의 욕망의 발화이다. 낭만적이며 비현실적인 풍경은 동시에 시적 언어의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말의 중의적인 의미는 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근간이면서 동시에 시 인식을 파악하는 중요한 실마리로 작용한다. 맥박이 요동치는 야생의 말이 지닌 생기가 고스란히 말(언어)의 메타포가 되어 말은 생명력을 부여받게 된다. 말은 순수한 약동의 에너지가 되어 시적 자아에게서 도시적 삶을 베어버리고 오롯이 태초의 말이 뛰노는 세계로 시적 자아를 데려간다. 시적 언어는 현실을 재현하려 하지 않는 투명한 질료로서의 언어로 짐작된다. 현실의 언어는 분절의 틈을 지닌 불완전한 기호이다. 실용성을 목적으로 한 현실의 언어는 우리 사회의 원리만큼이나 자본화되고, 경제적 가치로 운영되는 것이기에 존재의 동질성을 재현할 수 없으며 타자와의 완전한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시인이 꿈꾸는 언어는 이와는 다른 언어, 꿈을 생성하는 언어,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언어, 펄펄 살아 날뛰는 태초의 생명력을 지닌 언어이다. 그러나 이재훈의 시는 시의 인식을 언어 실험을 통해 형식화하기보다는 낭만적이며 목가적인 서정으로 그려내는 데에 경주한다.       
김경주의 시 역시 형식은 전통적 서정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가 구사하는 시적 언어의 의미는 앞의 이재훈의 시만큼 투명하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가 서정성을 획득하는 것은 비전 없는 세계에 대한 체념과 허무의 정서가 낭만적 정조를 자아내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시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귀기 어린 묘한 매혹이 있어 이를 낭만이라는 추상으로 획일화하고 끝내기 어려운 지점에 가 닿는다.'나를 조금씩 인용하고 있는 이 침묵은/바닥에 널브러진 말들의 독해처럼/나에게 있는 또 하나의 육체, 이미지인 것이다'는 그의 표현처럼 그의 시는 육체, 이미지라서 말로 해석할 수 없는 구체적 몸을 감각하게 한다.     

오늘 밤은 취한 말들만 생각하기로 한다
잠든 말들을 깨워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술을 먹인다
구유를 당겨 물 안에 차가운 술을 부어준다
무시무시한 바람과 산맥이 있는 국경을 넘기 위해
나는 말의 잔등을 쓸어주며
시간의 체위(體位)를 바라본다
암환자들이 새벽에 병실을 빠져나와
수돗가에서 고개를 박은 채
엉덩이를 들고 물을 마시고 있듯
갈증은, 이미지 하나 육체로
무시무시하게 넘어오는 거다

말들이 거품을 뱉어내며 고원을 넘는다
눈 속에 빨간 김이 피어오른다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취한 말들이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이 말들의 고삐를 놓치면
전속력으로 취해버릴 것을 알기에
나는 잠시 설원 위에 나의 말을 눕힌다
말들의 뱃살에 머리를 베고
(우리는 몇 가지 호흡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둥둥둥 북을 울리듯 고동치는 말의 염통!
말의 배 안에서 또 다른 개인들이 숨쉬는 소리
들려오는 것이다
밤하늘, 동굴의 내벽에서 들려오는 바람의 연령
나를 조금씩 인용하고 있는 이 침묵은
바닥에 널브러진 말들의 독해처럼
나에게 있는 또 하나의 육체, 이미지인 것이다
나는 말의 등에서 몇 개의 짐들을 떼어내준다

말들이 다시 눈 덮인 고비 사막을 넘기 시작한다
그중엔 터벅터벅 내가 아는 말들도 있고
터벅터벅 내가 모르는 말들도 있다
그렇지만 오늘 밤엔 취한 말들만 생각하기로 한다
음악 속으로 날아가는 태어날 때부터
바퀴가 없는 비행기랄지
본능으로 초행을 떠난 내감(內感) 같은 거, 말이
비틀거리고 쓰러져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분만을 시작하려는 것인지
의식을 향해 말은 제 깊은 성기를 꺼낸다
기미(機微)란 얼마나 육체의 슬픈 메아리던가

그 사랑은 인간에게 갇힌 세계였다
  ― 김경주,[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 이 말들을 타고 모든 음악의 출생지로 가볼 수는 없을까],([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램덤하우스중앙)
 
혹한의 추위를 이기기 위해 취한 말을 끄는 풍경은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라는 시집의 제목처럼 이 세상에는 없는 공간의 형상화이다. 시적 자아의 내면 깊숙이 묻혀있는 풍경은 몹시도 황량하고 스산하다. 그것은 이미 황폐한 정신의 내부지만 시적 주체의 집념은 강하다. 그에게 취한 말을 타고 달리는 시간은 순수의 결정체인 음악에 도달하는 수단이기에 깊고 무서운 집중의 순간이다. 여기서의 말을 말(馬)이지만 동시에 말(言)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끝없이 깊은 나락을 거침없이 미끌어져가는 시인의 언어는 삶의 어떤 비전도 꿈꾸지 않으며 여기에서 어떤 휴머니즘의 감정도 찾아보기 힘들다. 낯선 자신의 세계를 떠도는 유령처럼 그의 언어는 외로움을 견디며 아무도 닿은 적 없는 주체의 정신의 영역을 홀로 떠돌아다닐 뿐이다.   
 

4. 서정의 확장과 서정의 질

서정시는 고도의 산업사회인 후기 현대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우리의 복잡한 삶의 면모를 담아낼 수 있는 장르인가? 전근대적이며 현실과 괴리된 낡은 세계관의 복사는 아닌가? 서정의 원리를 주체와 대상간의 합일에 의한 동일성의 시학에 한정한다면 이러한 의문은 고스란히 서정시에 대한 회의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서정시는 이미 동일성의 원리로 환원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성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서정의 원리인 동일성은 대상의 자아화와 일체감을 통해 세계를 소외시키지 않고 연속시킨다. 그러나 절대이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시대에 서정적 주체의 불완전성을 사유하고 주체와 현실의 길항이 시적 동기로 나타나는 것은 이미 일반화된 서정의 원리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시에서 동일성의 구조를 나타내는 은유만큼이나 환유적 비유가 일반화된 것 또한 서정 장르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특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준오는 90년대의 여성주의시, 도시시, 일상시 등을 신서정으로 명명한다. 여성주의시는 비판적 시쓰기로서의 반서정주의 경향을 보이며 전통적 시 문법을 파괴하고 일상 회화체를 도입하여 탈중심화된 서정적 자아의 통제와 간섭없이 순간적 충동에 맡겨버리는 경향을 드러낸다. 또한 도시시는 도시라는 일상적 삶 속에서 새로운 서정을 찾았으며 일상시는 희극적 가벼움을 통해 90년대의 변모한 서정적 자아의 탄생을 알린다. 이들 시에서 서정적 자아가 과거와는 달리 탈중심화되는 징후(인격분열-자아분열)을 보이며 선, 악, 미, 추, 이성과 충동 등이 공존하는 인간성의 양면성에서 신서정을 발견하게 한다. 자학과 자기연민의 서정이 융합되어 있고 우리 시대의 문제성의 책임을 자신과 세계쪽에 공평하게 분할하는 모순된 서정을 찾아볼 수 있다. (김준오, [서정, 반(反)서정, 신서정],[현대시의 환유성과 메타성], 살림, 1997) 이들 서정은 반서정과 재래적 서정이 모호하게 겹쳐진 지점에서 사유된다. 비교적 쉽게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서정시 본래의 장점을 잃지 않으면서 낯설고 참신한 감각을 끌어들이고 있는 시들이 시적 성취를 얻고 있는 현상은 현재의 우리 시에서 서정의 확장이 얼마만큼 진행되고 있는가하는 사실을 목도하게 한다. 2000년대의 서정시는 90년대의 서정시의 연장선상에 있다.
따라서 문제는 서정과 반서정의 대립각의 심화가 아니라 시가 일반화, 보편화되며 양식화, 고착화되는 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자연과 주관적 내면의 동일화 구조가 많은 시인들에게서 자동화되고 있으며 반시의 기법과 세계인식마저 관습화되는 현상이야말로 시에의 교감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계간지의 확대로 인해 매 계절마다 배출되는 시의 양이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개성적인 시를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반면 세계 인식이나 감수성이 일반화를 넘어 상투화되어 가고 있는 시는 쉽게 눈에 띤다. 가령 생태시는 늘 자연을 모성이라는 가두리에 가두고 둥근 것, 조화로운 것, 삶의 이치와 깨달음을 주는 닮아가야 하는 존재로 그리고 있으며, 여성시는 남성의 권력과 횡포하에 희생당하는 여성의 아픔을 그려낸다. 선시가 가진 문제점도 인식의 단순화와 알레고리화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승호, 정일근, 차창룡 등의 시에 이르기까지 불교적 색채를 띤 시들은 대체로 피안/차안의 이분적 대립의 방식으로 세계를 나누고, 피안이라는 초월적 세계를 지향해왔다. 소박한 휴머니즘이 추구하는 따뜻한 인간애와 대자연의 부드러운 모성이 비인간화된 산업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은 시에서 하나의 교조주의로 굳어져 버린 것은 아닌가?  
서정의 확장은 현대시에서 이미 오래전에 진행된 현상이다. 시적 경향이 다른 시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와 고집스럽게 시의 전통적 원리만을 고집하기보다 타장르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포에시스의 확장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이끌어가는 태도야말로 지금 이 자리의 서정시보다 나은 서정시를 배출해내는 데 필수불가결한 시인의 자세일 것이다.

_ [시인시각], 2007년 봄호.

Posted by 이재훈이
,

헌책

시詩 2007. 9. 16. 10:30

이재훈


모퉁이에서 책을 뽑았어. 선풍기는 털털 돌고 불빛이 수직으로 내린 서가. 냄새가 났어. 겉장을 넘기니 굵직한 서명. 가장 먼저인 자가 차지한 잉크 내음. 알싸했어. 책등에 서식하는 곰팡이. 암내를 풍겼어. 책을 반쯤 열고 코를 갖다 대었어. 수르르 분진이 콧구멍으로 들어와. 달창난 먼지의 몸. 푸석한 살내음. 만질해진 책 모서리를 잡았어. 아릿한 분내음. 부서질까 만질 수 없는 글자의 몸. 읽지 못하고 만져야만 하는 몸. 가령, 꽃과 나무와 별과 사랑 따위. 말년휴가 때 여관에서 들었던 김현식의 노래도 그랬어. 창문없는 먼지의 방. 닳고 닳은 몸들이 가득한 방. 냄새가 났어. 또 한 生을 뽑아 들었어.

_ [서시] 2007년 가을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킬리만자로  (0) 2007.10.22
동경(銅鏡)  (0) 2007.10.08
비오는 일요일 오후  (0) 2007.09.13
사랑시  (0) 2007.07.06
빗소리  (0) 2007.05.28
Posted by 이재훈이
,

비오는 일요일 오후

시詩 2007. 9. 13. 10:13


목소리가 심하게 잠겼지.
일요일 오후에.
비 들이치는 창문을 닫고
한 달된 아이를 들쳐 업고
예배당에 갔었지.
뿌옇고 어두운 일요일 오후에.
분봉왕 헤롯이 세례요한의 목을 잘라
소반에 담았다는데, 잔칫날이었다는데.
소나기 때문에 교인이 별로 없는
일요일 오후에.
쉰 목소리로 사도신경을 외우고
친구 寅의 병마와 딸아이의 건강과
탈레반에 피랍된 청년들을 위해 기도했지.
빗소리가 기도소리와 몸을 섞는 일요일 오후에.
예배 후 멍하게 앉아 있다가 스르르 눈이 감기는
모든 것이 자꾸 늙어가는 일요일 오후에.
이젠 그 무엇도 파괴하지 못하는
나의 사랑, 나의 분노를 그저 바라보는
무심한 일요일 오후에.
풀무불에 온 머릿카락을 태우고
찬물에 머릴 집어넣고 싶은 일요일 오후에.
누구의 손도 잡고 싶지 않은
끈적끈적한 일요일 오후에.
소반에 라면 하나 끓여 놓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는 일요일 오후에.
낮인데도 컴컴한 하늘,
아무 것도 보이는 게 없지만
자꾸만 모든 걸 믿게 되는 일요일 오후에.
한 달된 딸을 보면 가슴이 축축해져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일요일 오후에.

_ [서시], 2007년 가을호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경(銅鏡)  (0) 2007.10.08
헌책  (0) 2007.09.16
사랑시  (0) 2007.07.06
빗소리  (0) 2007.05.28
빗소리  (0) 2007.03.02
Posted by 이재훈이
,

김옥성


서정시에서 회상(Erinnerung)은 일상적인 기억과는 다르다. 그것은 경험이나 대상,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경험으로 구축된 기억을 시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재구성하는 시적 사유와 상상의 방식이다. 시적 회상은 현재의 것, 과거의 것, 심지어 미래의 것도 서정시의 어떠한 상태성 속에 펼쳐 보일 수 있다. 그러한 시적 회상의 영역에는 현생뿐만 아니라 전생과 내생까지 포함된다.

시적 회상의 가장 전통적인 방식은 근원에 대한 사유와 상상이다. 여기에서 근원은 존재방식에 있어서 근원적인 영역이지, 과거나 현재, 미래로 구획될 수 있는 시간적으로 제약된 특수한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흔히 근원은 과거의 형상으로 회상된다. 오랜 세월 동안 시인들은 결여된 지금-여기의 현실의 배후에 근원적인 영역을 설정하고, 그것을 회상해 들임으로써 결여를 충당하여 왔다. 그러한 근원적인 것에 대한 회상은 결여된 현실에서 부유하는 자아의 정체성 설정과 관련된다.

권혁웅의 『마징가 계보학』과 이재훈의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는 그러한 근원적인 것에 대한 시적 회상의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양자는 근원적인 것의 회상을 통해 자아의 시적인 정체성을 설정하는 방식에서는 유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매우 상반된 지향성을 드러낸다. 가령, 권혁웅 시의 시적 주체는 자신의 근원을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이라는 달동네로 내세우고 있는 반면, 이재훈 시의 시적 주체는 ‘이방의 신화’로 설정하고 있다.

…(중략)…

이재훈의 시적 회상은 이 셋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징을 지닌다. 이재훈 시의 시적 주체는 근원적인 것을 경험적 과거가 아니라 선험적인 과거로서 신화적인 영역에 상정한다. 그는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의 맨 앞에 수록한 「사수자리」라는 시에서 자신의 고향이 저 밤하늘의 사수자리임을 고백한다. 시적 자아에게 별자리의 신화에서 떨어져 나온 지상에서의 삶은 이방인의 생(生)이다. 그리하여 그는 「빌딩나무 숲」에서 자기 사신을 빌딩 숲에 갇힌 이교도라고 말한다. 「수선화」에 구체적으로 드러나듯이 그러한 시적 회상은 “나르키소스”적인 것이다. 권혁웅이 경험적 과거를 동화적인 것, 만화적인 것, 영화적인 것과 뒤섞어서 세속적인 축제의 분위기를 마련하여 지금-여기의 시적 주체의 공허한 내면을 충만하게 채우는 것과 달리, 이재훈 시의 시적 주체는 자신의 고향을 신화의 영역에 설정하여 자아를 신비화하면서 지금-여기의 공허함을 신비롭고 성스러운 분위기로 충만하게 한다.

이재훈 시의 이러한 나르키소스적인 자아의 신비화는 자칫 과대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시적 주체는 시집 곳곳에 그러한 함정에 빠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지금-여기의 자아의 상황이다. 황사가 불어오는 거리의 풍경(「공중정원」), 아침도 거른 채 빌딩으로 출근하는 세일즈맨(「세일즈맨의 오후」), 시청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 신촌 네거리에서 찬송으로 전도하는 신도(「당신은 가짜다」) 등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경험적 현실의 이미지이다. 시적 자아는 그러한 이미지로부터 신화를 상기한다. 시적 자아에게 신화의 환기는 곧 파편화된 선험적 기억의 복원이다. 「시인 세헤라자데」에서 시적 자아는 “빼앗긴 내 기억들을 처음부터 다시 조립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있다. 시적 자아는 구체적인 현실을 배회하면서, 비루한 거리의 이미지들로부터 신성한 과거의 기억을 호출해내는 것이다.

그러한 시적 회상의 방식은 비록 신화적인 영역을 근원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지상으로부터 초월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시적 주체는 세속 도시의 이미지들로부터 신성한 기억을 환기하고 그것을 통해 세속 도시를 성화한다. 그리하여 자아를 에워싼 세속 도시 자체가 성화된다. 그와 함께 세속 도시에서의 삶 또한 “순례”라는 신성한 여행으로 인식된다. “순례”는 물론 일상에서 벗어나 근원적인 혹은 성스러운 곳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경험의 구조적인 측면을 주목할 경우 “순례”는 세속과 신성의 중간지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재훈의 시에서는 그러하지 않다. 이재훈의 시에서 근원적인 곳은 머나먼 어딘가라기 보다는 세속 도시의 구석구석에 내재되어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시적 자아는 세속 도시의 세속적인 이미지 속에서 성스러움을 체험한다. 그러므로 이재훈 시에서 “순례”는 신비화된 혹은 성화된 세속적 삶 자체라고 이해할 수 있다.

_ [시인시각], 2006년 봄호

Posted by 이재훈이
,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힌다. 눈을 감아라, 소리만 남은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에서 갈 곳을 모르는 시적 자아는 과거의 시간을 되짚어 보지만 그 시간조차 자신을 증명해내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모두 신성한 모험이었다는 거짓된 소문들”이 과거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다시 열리는 문 앞에 설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삶이 첩자의 삶이었는지, 먼지의 삶이었는지를 확인하여 스스로를 부스러기로 만들 “거대한 허무”로 침잠하지 않기 위해서다.

다시 삶. “지하철 2호선의 문이 활짝 열렸다”.

명왕성처럼, 분명히 존재하는 별이었는데 돌연 지위를 박탈당하고 태양계 행성으로부터 소외된 명왕성처럼 우리의 존재는 잠시 명멸한다. 무엇으로 스스로를 증명할 것인가?

_ [시와세계], 2007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


허만하 이재훈





허만하 시인이 1999년 3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들고 문단에 다시 얼굴을 비췄을 때 한국 시단은 모두 놀랐다. ‘어설픈 사고와 감상과 대중적 푸닥거리와 쉬운 위안이 유행하는 시대에 있어서 이만큼 깊이 생각하고 끈질기게 생각하는 시인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김우창), ‘지난 천년의 막바지에 마치 스톤헤지의 유적처럼 발굴되었다’(정과리)는 평을 받았다. 한때 “시의 순결이 사라지고 있는 이 무잡한 시대에 시집 없는 시인으로 남는 것이 아름다운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시인 허만하. 시인은 이제 한국 시단에서 가장 활발히 시와 비평을 생산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허만하 시인과는 몇 번의 소중한 인연이 있다. 부산에서의 만남과 이산문학상 수상시 대표시 낭송을 했던 일이다. 그중 2001년 부산에 서규정 시인을 인터뷰하러 내려갔을 때의 뵈었던 일은 더욱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부산에 살고 있던 손택수 시인과 함께 찾아 뵈었다. 늘 뵈었던 광한리 파크호텔.(그 이후로도 김참, 김언 등의 시인과 몇 번 더 찾아뵈었는데 늘 파크호텔에서 뵈었다. 김참 시인은 허만하 선생의 호를 파크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우스개소리도 했었다.) 시인과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아쉽다며 내일 다시 만나자고 했다. 다음날 파크호텔로 다시 찾아뵈었을 때, 시인은 택시를 한 대 대절하여 타라고 손짓을 했다. 택시를 타고 우리는 푸르디 푸른 쪽빛 바다를 보기 위해 기장군 철마라는 동네로 찾아 들어갔다. 그때 먹었던 국수와 온통 바다만 보였던 카페, 그리고 큰 품으로 끝없이 시에 대한 애정을 보내주시던 선생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이재훈:선생님과 정담을 나누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건강은 어떠신지요?

 

허만하:책을 읽고 글쓰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재훈:2001년 부산에서 선생님을 뵈었던 일이 떠오릅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이고 오래도록 제 기억에 깊이 남습니다. 그때 부산 근처 철마란 곳에서 바다가 바라보이는 카페에 갔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직접 구경시켜주셨지요. 그곳의 풍광을 보며 감탄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런 풍경들과 조우하면서 시가 탄생되는구나 생각했고요. 요즘도 여행을 많이 다니시나요?

 

허만하:나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이 떠오릅니다. 기장의 갈치고개는 부산시내이면서도 아주 조그마하고 소박한 자연이 남아 있는 곳이지요. 나는 그때 이재훈 시인이 내 「지명에 대하여」라는 시에 강원도의 골짝 서화 마을 이름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 물으면서 아버지 직장관계로 어린 시절을 서화에서 보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공연히 반가웠었지요. 나들이는 여전히 제 생활의 한 부분입니다. 그제는 거창을 거쳐 무주를 다녀왔습니다, 계절에 따라 밟는 길을 달리하지요.

 

이재훈:이미 선생님의 작품 세계와 산문을 통한 사유들이 많이 소개된 터라 제가 어떤 질문을 드려야 될지 스스로 부족한 게 많이 느껴집니다. 이런 점에서 빌 모이어스가 신화학자 조셉 캠벨을 인터뷰한 <신화의 힘>이란 책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자괴감 같은 것들이 일었습니다. 치열한 사유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직무유기 같은 것들 말입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생각하겠습니다. 따뜻한 애정으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허만하:나도 그 대담을 읽고 캠벨의 생애가 지적인 여행의 연속이었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그가 광범위한 문화철학적 언저리를 거느린 뛰어난 신화학자이면서도 대단히 유능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대담 들머리에서 켐벨과 모이어스 사이에 나누어진 수준 높은 대담 이야기를 들으니 공연히 긴장이 됩니다.

 

이재훈:‘만남’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문학에 중요한 만남 몇 가지가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릴케’와의 만남, ‘실존주의’와의 만남, 그리고 ‘풍경’과의 만남이 그것입니다. 그 밖에 여러 철학자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먼저 ‘릴케’와의 만남이 선생님의 문학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여 김춘수 선생께서도 릴케와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본 유학시절 고서점에서 릴케를 만났었지요. 선생님께서 만난 릴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덧붙여 ‘천사’가 아닌 ‘죽음’의 관점으로 파악되는 릴케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만하:의예과 시절 독일어 교수이면서 의예과 부장이었던 김달호 교수님의 가르침으로 릴케를 처음 알았습니다. 그 무렵, 내가 접했던 둘레의 시들이 사물의 본질에 파고들지 못하고 흔히 서정의 표면을 스치는 감상에 머물고 있는데 절망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릴케의 시가 계시처럼 제 발로 다가 왔던 것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읽었던 릴케의 시집은 가다야마 도시히고(일)의 <신역 릴케시집>(1942)이라는 일역 시집이었습니다. 그 날자는 Aug.26/52입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이 책의 안표지에 적혀 있는 내 서명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의예과 1학년을 마친 여름방학 때입니다. 열심히 철학서적을 탐독하던 무렵이지요. 그 무렵 우리나라에 온전한 릴케 번역 시집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릴케는 끊임없이 죽음과 대결하면서 자기 정신의 발전을 이룩하고 마지막으로 죽음과의 실존적 만남을 가졌던 시인이라 생각합니다. 릴케는 하이데거에 앞서서 죽음을 내면화하고 인간화하였지요. 젊은 시절의 그의 희곡 「백의의 공작부인」에 나오는 “죽음과 탄생은 날마다 우리 안에 있다”는 데서 시작해서 「말테의 수기」의 무의미한 죽음을 거쳐 「두이노의 비가」에 이르는 긴 과정은 고유한 죽음에 이르는 험난한 도정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제1비가에서부터 죽음의 문제를 둘러싸는 시적 사유를 펼치고 있지요. 제1비가에서 릴케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뚜렷하게 구별하는 것은 “산 자들이 항시 범하는 잘못”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두이노의 비가>는 장대한 죽음의 현상학이라 이름 지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죽음을 주제로 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총체적으로는 전반부에서는 인간존재의 무상성이 다루어져 있고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죽음과 생이 하나가 되는 열린 세계 안에서 인간존재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물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재훈:당시 대구에서 발간된 <시와비평>의 편집동인으로 참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문학예술>로 데뷔하기 전이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시와비평>을 상당히 중요한 동인지로 말씀하신 것을 다른 글을 통해 읽었습니다. 동인지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정체성이 있을 겁니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활동하시는 <현대시> 동인이 60년대 문학사에서 가지는 정체성처럼 말입니다. <시와비평>이 3집까지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더라도 한번 참고해봐야 할 텍스트가 아닌가 합니다. 가령, <후반기> 동인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한 권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문학사 속에 중요한 동인지로 존재해 있으니까요. 문학사에서 <시와비평> 동인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허만하:<시와비평>은 3집으로 끝났습니다. 이 3집에 나는 스펜더의 「비행장 부근의 풍경」과 맥타가트 교수(미 공보원장직에서 영남대학교 교수직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쓴 시론 한편(오든과 스펜더를 비교한 정치한 평론으로 나의 청탁으로 <시와비평>을 위하여 집필해 주었다)을 번역 게재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나는 이 잡지의 의미를 단독으로 다루기보다 그 무렵 한국시단이 맞이해야 했던 변신의 증후의 하나로 보는 거시적인 시점에 서고 싶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영도의 글쓰기>에서 제호로 딴 것으로 짐작되는 동인지 <영도>가 광주에서 김정옥, 강태열, 주명영. 박봉우, 박성룡, 정현웅 이일을 주축으로 1955년에 발간되었고(창간동인의 이름은 정확하지 않음), 대구에서 김윤환, 이영일, 허만하에 의해서 <시와비평>이(1956/2), 부산에서 김춘수와 고석규가 중심이 된 <시연구>(1956/5)가 거의 같은 해 또는 한해 터울로 발간된 연대기적 사실과, 발행 주체가 외국 문학의 새로운 물결에 관심을 가졌던 젊은 세대에 의한 것이었던 사실, 그리고 서울에서 떨어진 주변부에서 발행되었다는 점이 눈에 띄는 일입니다. 한국시의 방향을 외국문학과의 어울림 속에서 찾아보려는 비평적 시각이 지역을 뛰어넘어 번지던 지열 같은 열기를 우리는 느꼈던 것입니다.

 

이재훈:<시와비평>을 통해 오든 그룹의 영시와 영미 평론을 번역, 소개하고 시작품도 발표하셨습니다. 또한 김종길 선생의 <20세기영시선> 같은 책들을 탐독했지요. 오든, 스티븐 스펜더 등은 과격한 발언으로 사회성이나 혁명성이 강하고 실험적 기법이 두드러진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관의 측면에서는 엘리엇과 사뭇 다른 세계인데요. 김수영도 초기에 이런 영미 시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영향이 실험시와 참여시를 쓰게 된 것으로도 생각됩니다. 당시 탐독하셨던 오든 그룹의 영미 시와 담론들이 선생님의 문학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허만하:동굴에서 벗어나 동굴 바깥의 눈부신 신록의 세계가 현전하는 것을 느꼈고 그 세계 속으로 뛰어들게 해주었습니다. 첫 시집 <해조>에 수록되어 있는 일부 작품에서 그 영향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종길 시인의 「낙렵론」은 스펜더 투를 빼닮았다는 견해를 엽서에 써 보내주셨고, 김춘수 시인은 또 다른 의견을 그의 시론에서 언급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습니다. 항간의 사정을 최근 <문예중앙>(2004년 겨울호)에서 피로한바 있습니다,

 

이재훈:1957년 조지훈, 이한직, 박남수 시인의 추천으로 <문학예술>을 통해 추천완료하시고 1969년 첫 시집 <해조>를 발간하기까지 12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데뷔 후 첫 시집내기까지의 상황들이 궁금합니다.

 

허만하:이 세 분의 완전합의제가 <문학예술>의 실질적인 추천방식이었지만 나는 그들을 대표하는 이한직 시인의 추천으로 시단에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데뷔 후 외롭게 지냈습니다. 드물게 청탁이 있으면(<사상계>의 청탁이 인상적이었지요) 이에 응하며, 종합병원 병리과장, 대학 강사로 강단에 서기도하며 멀리서 시를 바라보며 지냈습니다. 마침 이 무렵의 내 동태를 비치는 객관적 데이터가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한 분이 기별해주었습니다. 그것은 1964년 1월 2일자 동아일보 문화면에 실려있는 박남수 시인의 「전진 없는 후퇴」라는 제목의 2회에 걸친 ‘시단시평’이었습니다. 그 글은 그의 사후에 간행된 그의 전집에도 수록되어 있지 않은 글이라 했습니다. 꼭 한 줄의 언급이지만 중앙문단에 비친 그 무렵의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면구스러움을 무릅쓰고 그 한 줄을 이 <시와세계> 지면을 빌려 소개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가끔 재치 있는 작품을 발표하여 심심찮은 화제를 던지기도 하는 박성룡과 오랜 침묵을 깨뜨리고 역동감이 있는 작품을 발표하는 허만하들이 없는 것도 어니다.”라는 반줄입니다.
등단 십 년이 지난 시인으로 시집이 없는 시인의 시집을 내는 기획에 들어갔으니 원고를 보내달라는 기별을 해주었던 사람이 전봉건 시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등단한지 오래된 김종길, 김구용 같은 선배시인도 그때까지 시집 내기를 자제하여 이 프로젝트에 따라 첫 시집을 내었던 것으로 압니다. 방순한 술은 긴 발효기간을 가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 부름에 선선히 응했습니다. 그 무렵은 요즘 같이 시집 발행이 풍성한 문화풍토가 아니었습니다.

 

이재훈:청마 유치환과의 만남 또한 선생님께 중요한 의미를 가지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2001년에 청마에 관한 시와 사상과 선생님의 사유를 담은 <청마풍경>이란 책도 내셨고요. <청마풍경>에 보면 청마 선생 스스로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천문학자가 되었을 것이란 일화도 있는데요. 청마가 가지고 있었던 우주, 무한에 대한 웅장한 세계관과 선생님의 세계관과의 일정 부분 공통된 시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청마와 선생님의 세계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허만하:릴케가 말했던 내면세계 공간을 우주의 넓이 이상으로 확대하는 인식과 한자를 매개로 한 표현이 많은 점이 닮아 있겠고, 청마가 가지는 ‘위대한 소박’에 비해서 나는 더 당대의 외국 문학 사조에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또 나는 일상성에서 평면적으로 시적 모티브로 잡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재훈:두 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출간하셨을 때 문단과 언론에서는 큰 주목을 하였습니다. “20세기말 문단의 일대 사건”, “허만하는 마치 스톤헨지의 유적처럼 발굴됐다. 망각의 석관을 열고 저벅저벅 걸어 나와 부동의 자세로 우뚝 섰다”와 같은 찬사가 이어졌습니다. 당시 선생님의 느낌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선생님의 작품을 알고 있었던 시인들은 이제야, 라는 말들을 많이 했었는데요. 저는 30년 만에 낸 시집, 같은 문구들은 좀 거슬리기도 했습니다. 밝은 눈을 가지지 못한 우리 문단에 대해 부끄러움도 느꼈고요.

 

허만하:어리둥절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 한편 둘레의 지나친 격려가 행여 나의 오만에 이어지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타이르며 더 열심히 고유한 자기 언어를 다져야 한다고 조용히 결심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런 한편 그때의 소용돌이를 통하여 나에게 내재하는 시적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긍정적인 국면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명이었던 내 시집을 낼 의향이 있다는 솔 출판사의 평론가 임우기씨의 전화를 통한 중후한 목소리가 아직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목소리가 나를 다시 시의 광장으로 불러내었던 것입니다.

 

이재훈:2004년 선생님께서 수상하신 청마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김춘수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허만하 시인은 관념시를 쓰는데, 당대의 문학 100년사에 이런 경향의 시인으로 가장 앞에 기록될 시인이다. 신라의 향가 이후로 잡더라도 허 시인의 시는 보기 드문 시이다. (…) 허만하 시인은 후배이니 만큼 같은 계통의 시를 썼다고 볼 수 있는 청마보다 진일보했다”고 평가하셨는데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허만하:단상에 앉아 있기는 했어도 마이크의 방향 때문에 듣지 못했던 이 이야기를 식이 끝난 뒤, 평론가 임우기씨와 손택수, 유홍준 시인, 그리고 최학림 부산일보 문화부차장이, 대형 유리창 넘어 한려수도가 보이는 다방에서 함께 담소하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듣고 웃어 넘겼지만, 귀가 후 부산일보 문화면 기사(3/25)로 읽었을 때, 나는 김춘수 시인의 <들림,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지는 관념시의 새로운 수평을 떠올렸습니다. 이어 친숙하고도 낯선 사물에 독특한 언어철학을 먹이는 프랑시즈 퐁주의 시를 생각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그날 평은 다양한 암시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그의 고향에서 그의 격려와 함께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 행운은 드문 일이지요.

 

이재훈:좀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선생님의 문학을 우리 시사의 어떤 지점에 있느냐 생각하면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른 시인들이 가지 않은 독특한 지점에 가닿아 있다는 말입니다. 문학사는 어쩔 수 없이 통시적 전후(前後)의 영향관계와 공시적인 유사성에 의해 진단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스스로 생각하실 때 어떠한 시인들과 근친관계 혹은 영향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허만하:한국시의 통시적인 또 공시적인 지형도에 유난히 어두운 나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더욱 거울은 자신을 볼 수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다만 평론가 김주연 교수가 나의 시에 대해서 “김수영, 김춘수, 김종삼을 잇는 유니크한 시세계”를 가진 것으로 읽어 준 사실이 이재훈 시인의 질의에 대답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세 번째 시집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에 대해서는 “그의 시는 언어에 대한 독특한 시선과 자의식으로 세계를 새롭게 번역해 낸다. 그 새로운 풍경은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서로 넘나들고 전체와 부분이 뒤섞이며 묘한 이미지를 직조해낸다”는 <문학과사회>의 평설을 읽고 거울에 비친 내 시의 초상을 조용히 한 번 쳐다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깊이를 더하며 내 시를 몰아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시를 쓰고 있습니다만 때로 그런 궤도에서 미끄러지기도 합니다. 영향은 그렇게 가시적인 것만은 아니고 안으로 스며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국내 시인의 영향보다 외국 시인의 영향이 더 큰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도 단일한 것이 아니고 폴리포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재훈:‘풍경’과의 만남에 대해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작품 세계 속에서 중요하게 얘기되어지는 것들이 ‘풍경’에 대한 발견입니다. ‘풍경’이라는 요약어는 이제 시 속에서 하나의 중요한 방법론입니다. 풍경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보거나 풍경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보는 방식이지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풍경을 보는 방식은 좀 다른 근거에 존재해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말하자면 풍경을 보며 그 풍경을 형이상학적 사유로 체화하여 읽는 방식입니다. 또한 본다는 것과 보여지는 것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게 생각되고요. 선생님에게 ‘풍경’이 가지는 의미는 어떠한 것인지요?

 

허만하:풍경은 세계의 동의어이면서 세계의 시적 은유라는 이중성을 가진 말이라 생각합니다. 경치가 풍경이 되는 것은 경치가 형이상학적 성격을 가지는 그 순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때 자연의 일부가 목숨을 얻어 숨쉬는 풍경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어를 가지기 이전의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었지만 언어를 가지고부터 인간은 풍경의 일부가 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내가 종래의 시학 용어에 속하지 않는 ‘풍경’이란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은 기존의 문화적 전통에서 형성된 지적 체계를 떠나서 새로운 출발을 위한 발판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용어를 찾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 ‘풍경’이란 말이 인간과 세계의 교섭을 다루는 모든 방법(철학. 시를 위시한 예술)을 수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또 인식의 기반이 되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변증법적인 관계를 나타내는데도 손색이 없는, 무한한 가변성(용량)을 가진 언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무렵 길 위에서 현전하는 풍경을 사귀고 있었습니다. 시는 정신적 풍경의 창조라 할 수 있지요. 우연한 일치이겠지만 두 사람의 실존주의 철학자가 풍경 속에서 그들 철학적 원리를 찾았던 것은 흥미 있는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케르케고르는 쉐란 섬 북단의 길레라이(Gilleleie) 벼랑 바닷가에서 실존을 깨달았고, 니체는 스위스의 실스 마리에서 영겁회귀사상을 얻었던 것입니다. 두 곳에서 있는 기념비를 풍경과 인간 사유의 극한이 하나가 된 자리를 기념하는 표시라 나는 생각합니다.

 

이재훈:선생님의 시는 객관적인 묘사이기보다 감수성의 통로를 통과한 이미지입니다. 시인의 표정과 사유가 덧입혀진 묘사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미지의 방식은 때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독자를 압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묘사는 그야말로 진경입니다. 저는 이 풍경의 발현 방식이 형이상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념’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저 또한 이 방법론에 대해 무척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에서 ‘관념어’는 무척 위험한 언어로 치부되지 않습니까. 잘 된 시를 쓰기 위해 관념을 어떻게 시 속에 투영해야 하는지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허만하:묘사와 설명이 다른 것을 미리 말했던 것은 프랑시즈 퐁주의 시학입니다. 시에서 관념이 미덕이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반-미덕이 될 수는 전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나는 다만 세계와의 만남에서 잉태하는 관념이 결정화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헐벗은 관념은 철학의 영역이 아닌 시의 영역에서는 보기 민망할지 모르지만, 관념이 없는 시또한 지나치게 시적이라 나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따금 제도화된 느낌을 만나고 실망합니다. 그 실망에서 벗어나는 길에서 시인은 새로운 관념을 만들어 냅니다. 릴케와의 만남 때 이야기 한대로 나는 처음 시를 쓸 때부터 그랬습니다. 랜섬은 형이상학적 시의 존재 이유를 밝힌 것으로 압니다. 만년의 하이데거가 사유는 정의랑 논의를 벗어난 곳에 사는 것이며 시와 가장 가까운 관계를 가진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던 사실을 나는 주목합니다. 그 무렵 그의 글은 거의 시론이지요. 사유는 노래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만물을 낳는 어머니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김현승 시인의 「검은 빛」일 수 있습니다. “노래하지 않고/노래할 것을/다 생각하고 있는/빛”(「검은빛」)일 수 있습니다. 시는 “아픔보다 더 아픈/빛을 넘어/빛에 닿는/단 하나의 빛”입니다. 백화점에서 넥타이 고르기 이야기라는 기호의 문제에 환원될지 모르지만 나는 관념이 없는 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탈구축할 지층의 두께가 없는 엷은 시보다, 외견상 반시적(?)으로 보일 수 있는 관념이 배어 있는 감성 쪽에 끌려듭니다.
이재훈 시인이 대담의 들머리에서 말했던 캠벨이 괴테를 공자, 노자, 장자와 같은 반열에 두는 것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시인 괴테보다 사상가 괴테를 보았던 것이지요. 단테를 “물음 안에서 시를 쓰는 하이에나”라 욕했던 험담가 니체가 “괴테는 내가 경의를 표하는 최후의 독일인”이라 아첨했던 것도 시인 괴테의 관념 체계에 대한 것이었지요. 이재훈 시인이 물었던 것은 잘된 시를 쓰기 위해서 관념을 어떻게 시속에 투영해야 하는가 하는 실제적인 문제였지요.
이 질의에 대해서는 김춘수 선생이 미리 해답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의 대답을 함께 들어보기로 하지요. 시집 <거울 속의 천사>(114 p.)에 수록되어 있는 「시인」을 읽겠습니다. 3할은 알아듣게/아니 7할은 알아듣게 그렇게/말을 해가다가 어딘가/얼른 눈치 채지 못하게/살짝 묻어 두게/살짝이란 말 알지/펠레가 하는 몸짓 있잖아/(후략). 통영 사투리가 배어 있는 그의 육성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이재훈:그간 우리의 시가 가지는 방법론은 자아의 세계화였습니다. 즉, ‘동일성’의 시학에서 본다면 작고 하찮은 사물을 통해 우주의 진리에 대해 동일화를 꾀하는 방법론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방법론은 이미 식상할 대로 식상해졌고, 꽃과 나무로 대표되는 소재들과 바라보는 시선들도 천편일률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근간에는 ‘차이’의 시학에 대해 많은 얘기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 선생님의 시는 단연 이채로운 세계였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허만하:우리들의 인식이 동일성보다 차이에 눈뜬 것은 서구의 이성 만능주의의 붕괴와 거의 때를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데리다의 탈구축 작업의 중심개념의 하나인 차연(diffrance)도 상이하다는 프랑스어의 동사 diffrer가 적극적으로 가담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과 ‘어떻게’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시작품에 대한 논의에서 시니피앙을 무시하고 시니피에의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하는 그 무렵의 글들을 보고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극대화한 것이 그로마틀로지(데리다)이겠지요. 시는 전달할 메시지의 문제이라기보다 표현의 문제가 선행하는 언어예술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바로 이 말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학에서 보는 특징의 하나라는 지적이 현 콜로라도 대학교 영문학부의 클라그스 교수의 말과 일치해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습니다. 나는 전혀 그런 입장에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지요.

 

이재훈:“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해서 추가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에서도 산문시가 많이 등장합니다. 요즘은 또한 산문시들이 아주 많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산문시에 관해서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선생님의 <길과 풍경과 시>에서 산문시에 관해 짧게 언급한 말이 있는데요. 또한 <현대시>에 「운율의 계보」라는 시론도 발표하셨습니다. 결국 산문시는 리듬으로서의 내재율이 어떻게 녹아 들어가느냐의 문제인데요. 선생님께서는 산문시의 문제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허만하:산문시에 대한 내 견해의 전모는 <현대시학>에 「산문시에 대하여」라는 글(2004년 2월호)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 압니다. 내 시론으로는 좀 긴 편이지요. 산문시의 발생과 그 전개는 시의 역사에서 필연적인 것이라는 견해였습니다. 시=행갈이 운율이라는 도식적인 견해에 대한 반성이지요. 산문과 산문시는 전혀 다릅니다. 산문은 의미의 전달을 사명으로 하지만, 시는(산문시를 포함하는) 도구로서의 언어사용을 거절하는 자평에 있습니다. 언어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지평이지요. 시와 산문시의 구별(또는 비산문시와 산문시의 구별)은 하나의 개념을 이항대립구도 속에서 파악하는 로고센트리즘이 낳은 구별이 아닌지 검증해볼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다. ‘시적인 것’이 입는 언어의 의상은 시인이(또는 시적인 것 자체가) 선택할 문제입니다.

 

이재훈:선생님의 산문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를 보면 두 가지의 길이 서로 공존하면서 수평선처럼 나란히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과학적 원리와 시의 원리, 즉 병리학자로서의 길과 시인으로서의 길입니다. 요즘 시인들은 대부분 두 가지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생활인으로서의 길과 예술가의 길인데요. 그것의 괴리감에서 오는 고민들이 많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두 가지 길을 어떻게 잘 이끌어오셨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허만하:내가 실존주의 사상에 눈떴던 것은 자연과학적 세계상(때로는 역사적인 필연성이라는 위협적인 모습을 띠기도 했었다)에 대항하는 주체로서의 나의 가치를 지키기로 결심했을 때였습니다. 이 두 가지 상이한 원리는 강도 높은 집중을 요구하는 분명히 대립적 관계였습니다만 차원을 달리한 시점에 서면 상호보완적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타원이었습니다. 원은 하나의 중심을 가지지만 타원은 두 개의 중심을 가지는 궤적입니다. 하나의 중심에 자리잡지 못하고 두 개의 중심(서로 다른 두 언어체계) 사이를 왕래할 때는 갈등을 느끼기도 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또한 시를 위한 밑거름이 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만일 병리학이란 자연과학에 헌신했다면 실존으로서의 자기표현의 길은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겁이 납니다. 그 동안 어려움 속에서 내가 시를 지켜 주기도 했지만 시 또한 나를 지켜주었고 또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정년이 지난 이 즈음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데리다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독립된 별개의 것이 아니고 서로서로 의지해서 존재하는 상관적 존재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상대방의 존재를 ‘le supplement’라고 한 견해가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재훈:릴케, 메를르 퐁티, 크리스테바, 데리다 등등 선생님께서 탐독한 시인과 철학자들입니다. 대체로 선생님의 사유는 서구적인 이성적 체계 속에서 발화되어 그것을 우리의 문법으로 체화시키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산문을 보면 동양적 사상에 대한 인식 또한 남다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년 시절에는 한학공부를 많이 하셨잖아요. 그리고 한국의 전통 문양인 기와에 대해서도 전문 연구자 이상으로 수집, 탐구하시고 <신라의 기와>(공저)라는 연구서까지 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양에 대한 관심은 어떤 부분에서 이어져오는 지 궁금합니다.

 

허만하:내 사유가 서구적인 이성적 체계 속에서 발화되어 우리의 문법으로 체화시키고 있다는 이재훈 시인의 지적은 옳은 것 같습니다. 동양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한국인의 사상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다방면에 걸쳐서 손을 뻗쳐 보았지만 이렇다 할 성취가 전혀 없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지적 편력이 나의 시 또는 시론에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재훈: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수직’의 개념으로 많이 파악하고 있습니다. 정신적 실존으로서의 수직 개념이지요. 이러한 수직 개념은 다시 지층을 탐색하는 상징으로 깊은 곳으로 내려오기도 합니다. 이것은 인식의 순결한 원형으로 되돌아가려는 몸짓으로 파악될 수도 있겠는데요. 메를로 퐁티의 ‘야생’이라는 개념을 말씀하신 적도 있으십니다. 이러한 인식은 동양적 사상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허만하:‘수직’의 개념이 단순한 기하학적 좌표(구도)의 Y축이 아닌 것은 메를로 퐁티의 철학에서 드러나 있지요. 그에게 있어서는 수직적인 것이란 존재를 실존에 잇는 한 방식이었지요. 그 자신, 그의 유저가 된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그가 수직적이라 부르는 것은 사르트르가 실존이라 부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그의 사유체계에 있어서는 높이와 깊이는 서로 교환 가능한 관념이 되어 있지요. 이재훈 시인이 말하는 지층을 탐색하는 상징으로서의 깊은 곳도 이런 수직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이런 추상적인 사유에 나는 생물학적인 차원에서의 수직 개념을 이었지요. 그것은 메를로 퐁티가 말하지 안했던 부분입니다. 원래 인간은 네발로 기어다니는 동물이었습니다. 앞발로 땅을 짚던 오래고도 오랜 생리적 습관에서 벗어나 뒷발로 대지를 밟고 벌떡 일어섰을 때가 인간이 처음으로 인간이 된 순간이라 나는 생각합니다. 수평이 수직이 된 것이지요. 바꾸어 말하면 인간이 수직적 인간이 됨으로서 비로소 두 손의 자유(=실존의 자유)를 얻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점이 높이를 얻었던 사실을 ‘수직’에서 읽어 낸 것이지요. 화순의 운주사를 찾아 야산의 정상에 누워 있는 와불 앞에 섰을 때 나는 메를로 퐁티가 말했던 수직에 homo erectus로서의 수직을 겹쳐 생각했었지요. 경주 불상들과 다른 바로크적 미를 가지는 불상들이 이 골짝에 있다는 황지우 시인의 귀뜸에 홀려 이 일대를 몇 번 찾아보았을 때였지요.
메를로 퐁티의 ‘야생’의 개념은 그의 수직개념과 맞물려 있지요. 위에서 말한 그의 최후의 저서에서 그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세계를 존재의 의미로서, 수직의 존재…야생의 존재로서 복원하는 일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야생의(sauvage) 존재란 인간의식의 반성적 분석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지각에 몸을 맡기지 않은 날것으로서의 존재이지요. 그 자신 이 용어를 시원적인(primordial), 또 날것(brut)라는 다양한 동의어를 구별 없이 쓰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시가 개입할 수 있는 틈새를 나는 읽었던 것입니다. 확연한 윤곽(정의)을 가지고 있지 않는 대상, 사람의 눈길이 머문 적 없는 정갈한 원존재( Urwesen)라는 추상을 나는 하이데거의 귀향이란 개념에 이어 본 것입니다. 철학적으로는 어불성설이지만 시는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나는 지각이전의 존재의 풍경에 야생이라는 형용사를 얹어 보았습니다. 모든 것은 시를 위한 모티프가 될 수 있다는데 시의 특권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장자는 인위를 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세계를 混沌(혼돈)이라 이름지었지요. 이 혼돈과 메를로 퐁티의 야생을 비교해보는 것은 격조 있는 심심풀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향하는 화살표의 끝간 데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莊子>의 인식론이라 볼 수 잇는 제물론편(齊物論篇)에서 그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혼연히 하나로 있는 것은 말하고 있지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 인간은 그것을 분석합니다. 그 분석 이전의 만물 제동(萬物齊同)의 경지를 메를로 퐁티는 야생이란 언어로 이해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메를로 퐁티의 야생이라는 개념과 연관이 있는 동양의 사상에 대한 질의는 나에게는 지나치게 어려 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끝까지 시인입니다. 이만 일어서야 할 것 같습니다.

 

이재훈:두서없는 물음에 좋은 답변 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대담이 독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허만하:알차지 못하고 두서없는 대답 사과 드립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시를 쓰겠습니다.

 

Posted by 이재훈이
,
 언어를 비집고 나오는 힘의 실체 
 

깨진 기왓장을 주워 주머니에 넣으면, 그 속에서 비닐에 덮여 자고 있는 여인을 볼 수 있다. 콧대와 턱이 뿌연 비닐과 뒤엉켜, 툭 건드리면 바삭 부서질 것 같다. 팔딱팔딱, 손가락 사이로 심장 소리가 뛰어 올랐다. 모든 소리들이 긴 줄에 매달려 그네를 탔다. 녹색의 밤.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었던 밤. 나는 단지, 일생을 꿈꾸었을 뿐인데. 챙, 소리에 놀라 보니 사방에 깨진 파편들이 반짝였다. 깜박깜박, 수많은 눈동자가 길을 물었다. 그네는 삐걱거리며 보랏빛 옷만 남겼다. 깊은 숲길에 안개가 뿌옇고, 여인은 안개를 덮었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 천년을 건너온 어떤 눈동자에 손을 베인다. 스윽.
- 이재훈,  [동경(銅鏡)], 문학사상 2007년 7월호

위의 시는 무의식과 의식이 뒤엉켜 강한 에너지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단일한 의식의 서정적 언표로 이루어지는 대신 충동적 상상력이 돌발적 이미지들의 연쇄를 일으키는 이 작품은 일견 초현실주의적이고 해체적인 시적 의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시에서 의미의 일관성을 읽어 내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유형의 시에서 우리는 대개 시적 의미와 형태의 파괴를 이루어 낸 의도와 동력에 관심의 초점을 두기 마련이다. 초현실주의와 해체시가 무의식적 충동에 근거를 두고 일상적 규범과 질서의 파괴 및 일탈을 겨냥한다는 해석은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된다. 위의 시 역시 이러한 해석의 자장 안에 충분히 놓일 수 있다. 그리고 만일 그러하다면 위의 시는 특정 시기에 우리가 무수히 보아 왔던 모던적인 혹은 포스트 모던적 실험시의 범위 안에 고스란히 포섭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간취되는 상상력의 방향은 단지 파괴와 해체에 그 지향성을 두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깨진 기왓장’, 즉 ‘동경’에서 연상된 ‘여인’에 대한 상상, ‘여인’의 ‘팔딱팔딱 뛰어 오르는’ ‘심장 소리’에의 귀 기울임과 “나는 단지, 일생을 꿈꾸었을 뿐”이라는 고백, 그리고 시적 화자를 에워싸는 미세하고 두터운 분위기에 대한 묘사는 시인의 상상력에 일정한 공간성과 방향성이 있음을 감지케 하는 것이다. ‘꿈’과 ‘심장’, ‘울음’, ‘눈동자’ 등은 모두 생명력에 대한 상징물들로서 ‘여인을 덮고 있는 비닐’, ‘안개’와 같은 주변을 내리덮고 있는 암울한 공간적 실체들과 서로 대립을 이루고 있거니와 전자는 후자의 억압적 환경에 저항하여 자아의 생명에의 의지를 보존케 하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생명체로 하여금 숨조차 쉴 수 없게 하는 주변의 어둡고 무거운 공기는 ‘심장의 팔딱’거림, ‘꿈’꾸는 행위, ‘수많은 논동자’의 헤매임, 상실로 인한 ‘울음’ 등의 생동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들에 의해 찢기고 소멸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상상의 스토리는 이 시의 충동적 에네르기가 파괴와 해체를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과 생명에로 정향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곧 시인은 초현실주의적이고 해체적인 기교시를 쓰고자 한 것이 아니라 숨 막히는 환경에 대한 공포와 그것으로부터의 초극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숨도 못 쉴 만큼 생명체를 덮어 누르는 그 공포스런 환경이란 ‘동경’에서 발견된 시간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의 긴 시간성와 ‘깨진 파편들이 던져져 반짝’거리는 ‘사방’, ‘깜박깜박 수많은 눈동자’가 형상화하는 공간성으로 확정된다. 그 환경은 수천 년과 천지 사방에 걸치는 시공간인 바, 그것에서 우리는 인간을 짓누르는 우주적 너비의 무게를 짐작하게 된다. 인간의 억압과 숨 막힘, 그것은 단지 하나의 물질이나 선명한 실체가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전우주적인 규모로 미지의 존재들이 형성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적 규모와 무게의 억압을 시인은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이기기 위한 힘을 강하게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그 힘은 ‘심장’과 ‘꿈’ 등으로 표현되는 것으로서 이들은 생명성을 지키기 위한 인간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총체적 의지와 노력을 의미한다.

이로써 우리는 시인이 위치해 있는 지점을 이해하게 된다. 시인은 비단 기교적이고 사조적 측면에서 시를 쓰고 있지 않다. 그는 의식이 스스로 구획하는 한정된 세계에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구획된 경계가 없는 지대, 무한한 지대, 곧 우주적 지대에서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서 우주를 느끼며 우주에 대해 말하고 우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드라마를 그리고 있다. 그때 그 우주란 결코 순결함과 온화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간 묵은 무거움과 억압을 포함하고 있다. 시인이 보여주고 있는 생명성의 존재물들은 다시 말하면 우주의 이와 같은 난해한 환경을 이기기 위한 힘에 해당한다. 우주적 지대에 던져진 자아가 그 안의 무수한 짓누름의 존재들과 겨루고자 하는 것, 그리고 겨룰 수 있는 힘을 지니는 것, 나는 이러한 의지가 다름 아닌 ‘정신’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시이느이 시 곳곳에서, 그 틈과 사이에서 얼굴을 내밀어 감춰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그러한 ‘정신’에 다름 아닌 것이다.


- 송기한, [우주를 건너는 힘으로서의 서정 정신], 문학사상 2007년 8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

시는 위반한다. 무엇에 대하여, 무엇을 위해, 그리고 무엇으로 위반하는가? 자유에 이르는 시의 노정을 위해 무차별적인 장치로써 제도를 위반하고 질서를 위반하며 시간을 위반한다. 그리고 경직된 세상의 벽을 허물고 닫힌 마음의 문을 연다. 그러므로 시의 위반은 인간의 위반과 달리 한량없다. 한량없는 위반이 자유를 불러오는 시의 힘이기 때문에 그러하며, 이와 같은 위반의 자유 속에서 시는 위반의 지평을 확장한다. 시의 위반이 이룩한 열린 문으로 온전한 영혼이 은밀히 내방하고, 상투적 삶이 알몸의 생이 되어 새로워진다.

오르한 파묵이 <내 이름은 빨강>에서 그림을 이성의 침묵이며 응시의 음악이라고 한 대목이 있다. 이때 이성의 침묵이란 이성의 칼 혹은 언어의 칼을 휘두르는 시언어의 칼을 감춘 시에 대한 은유로도 들린다. 언어의 칼을 휘두르는 시언어의 칼을 감춘 시, 그리고 언어를 왜곡시킨 시언어조차 침묵하게 한 시와의 사이에는 있음(존재)없음(부재) 사이만큼의 사이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성의 침묵인 그림이 아니라 시의 세계에서 침묵은 부재로써 존재하므로, 결국 존재와 부재 사이에는 사이가 없는 셈이다. 이성의 언어 혹은 왜곡된 언어가 이끄는 위반의 장치는 부재하는 것의 존재성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역설로 존재하고, 그 뒤에서 시는 은밀히 침묵의 권리를 완성한다. 시의 위반은 완성을 향한 시의 권리이며 주로 왜곡된 언어의 전략적 작용이 낳는 역설적 힘이다.

(중략)

깨진 기왓장을 주워 주머니에 넣으면, 그 속에서 비닐에 덮여 자고 있는 여인을 볼 수 있다. 콧대와 턱이 뿌연 비닐과 뒤엉켜, 툭 건드리면 바삭 부서질 것 같다. 팔딱팔딱, 손가락 사이로 심장 소리가 뛰어 올랐다. 모든 소리들이 긴 줄에 매달려 그네를 탔다. 녹색의 밤.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었던 밤. 나는 단지, 일생을 꿈꾸었을 뿐인데. 챙, 소리에 놀라 보니 사방에 깨진 파편들이 반짝였다. 깜박깜박, 수많은 눈동자가 길을 물었다. 그네는 삐걱거리며 보랏빛 옷만 남겼다. 깊은 숲길에 안개가 뿌옇고, 여인은 안개를 덮었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 천년을 건너온 어떤 눈동자에 손을 베인다. 스윽.

― 이재훈, <동경銅鏡>(<문학사상>, 7월호) 전문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 천년을 건너온 어떤 눈동자에 손을 베인다는 일탈된 시선이 무질서한 위반을 생산한다.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었던 밤. 단지 일생을 꿈꾸었을 뿐인데. 챙, 소리에 놀라 보니 사방에 깨진 파편들은 깨져버린 일생의 꿈이고, 잃어버린 신발의 영상이다. 잃어버린 신발은 잃어버린 일생의 꿈을 은유하고, 그것은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영혼의 결정체이며 시의 위반을 이끄는 기억의 언어이다. 무의식은 깊은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침묵의 샘이며, 침묵의 샘에서 길어 올려진 기억이 이재훈의 거울로 작용하고, 상투적인 일상을 알몸의 생으로 견인한다. 이재훈의 기억은 파편의 위반으로 돌아와 온전한 영혼의 거울을 환기시키고 있다.

- <현대시>, 2007년 8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

해가 다시 뜨고, 봄이 새롭게 오고, 생명이 나고 죽는 것. 이런 끝없는 반복의 과정에서 리듬을 발견한다. 리듬Rhythm은 바로 인간과 자연, 우주가 존재하는 기본 원리이자 그들의 존재를 가시화시키는 현상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들이 갖는 리듬의 양상은 동일하지 않다. 우주에서 미물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각기 다른 리듬을 타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리듬이란 모든 존재가 가진 본질적인 것이면서도 한편으론 각기 다른 규칙을 가진 개별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정형시로부터의 해방이 시인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리듬의 발견과 자유로운 시화詩化를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시의 리듬, 좁게 말하면 운율이라는 것은, 각 시인들의 호흡과 기질, 그리고 언어 습관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인들의 개성과 미의식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원리이다. 따라서 시어 자체의 물리적 존재성과 리듬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개개의 시어들이 그저 의미로만 환원되기 때문에 시인들의 독창성을 찾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최근 시단에서는 운율과 관련하여 산문화의 경향이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산문시에도 엄연히 시적 운율과 함축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런 고민은 일반 자유시 형과 다른 운율을 가진 산문시의 리듬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읽힌다. 이런 의미에서 현 시단은, 시인들의 감수성과 상상력, 미의식의 변화와 함께 리듬 역시 전통적인 운율 체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지점에 와 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최근에 읽은 시집들을 중심으로 2000년대 시인들이 구사하는 리듬의 양상과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중략)...

이런 의미에서 의도적으로 마침표를 사용하고 있는 시인의 의식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가 기타를 연주하십니다. 나는 아버지의 다리 밑에 누워 있습니다. 기타에서 떨어지는 마른 고독이 목젖을 열게 합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말들이 우르르 목덜미로 떨어집니다. 말들이 저 밖으로 퍼지지 못하고 등 뒤로 차오릅니다. 나는 말 위에 떠 있고, 아버지는 저 말 속에 계십니다. 내가 뱉어 놓은 검은 말속에서 기타를 연주하십니다. 말이 진화하면 물이 된다지요. 고도로 단련된 연금술인 셈입니다. 허공에 산화되어 사라지는 말을 만들어냅니다. 그때 비로소 저는 말을 배웠습니다. 내 말은 이미 물이 되었습니다. 물속에서 기타소리가 들려옵니다.

― 이재훈, 「기타가 있는 궁전」 부분

이재훈 시인은 산문시의 경우 대부분 마침표를 사용한다. 마침표가 시인의 호흡과 생각에 일종의 마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리듬의식을 자연스럽게 생산한다. 이때 한 문장의 종결을 표시하는 마침표는 산문시를 행 단위로 읽게 함으로써 길고 짧은 행의 구분에서 느껴지는 반복적 리듬의 변화를 보여준다. 한편 시인은 산문시에서 각 시행들의 의미가 응집되고 절제되도록, 한 행 안에 의미와 이미지를 응축시키고 있다. 의미상으로도 기타를 연주하는 아버지와 노래를 부르는 나의 대비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인이 갇힌 검은 말, 아직 흘러가거나 산화되지 않는 갇힌 말 속에서 들리는 기타소리가 마침표 안에서 울린다. 말에 갇힌 자의 고독과 슬픔이 여운을 남기지 않는, 짧은 문장의 반복과 마침표 안에 응집되어 있다.

...(중략)...

가면놀이

고양이가 탁자를 긁으며 옹알거린다 고양이의 목을 쓰다듬고 싶다 말랑말랑한 등뼈를 만지고 싶다 암소가 탁자에 걸터앉아 느릿하게 몸을 꼰다 로큰롤이 연발로 발사된다 모두 몸을 흔들며 잘도 피한다 낙서가 가득한 벽에 총탄 자국이 어지럽다 서로에게 총을 겨눈다 서로를 향해 난사한다 춤을 춘다 춤을 추며 총을 쏜다 고양이의 입술에 쥐꼬리가 걸려 있다 암소의 배가 불룩하다 배에다 연발총을 쏜다 가죽소리만 창창 난다 고양이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고양이가 암소 뱃속에 있다

― 이재훈, 「신촌, 우드스탁, 가면놀이」 부분

위의 시에서도 역시 몸으로부터의 리듬,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리듬을 느낄 수 있다. 세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위의 시는 한 장이 한 연으로 된 산문시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는데, 이는 현재 상황의 혼종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가면과 가면 밑의 실제 얼굴들, 고양이와 암소, 로큰롤 음악과 총탄의 발사, 고양이를 밴 암소 등 이질적인 것들이 열기와 에너지 속에 혼재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리듬의 특성은 우선 후반부로 갈수록 급박한 리듬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앞부분에서 옹알거린다, 쓰다듬고 싶다, 만지고 싶다는 느긋한 속도감을 주었던 서술어들이 후반부로 가면서 발사된다, 피한다, 어지럽다, 난사한다, 춤을 춘다, 총을 쏜다를 거쳐 고양이가 암소 뱃속에 있다는 그로테스크한 상황에까지 급박하게 진행된다. 이런 속도감은 로큰롤의 빠르고 강한 에너지를 실감하게 만든다. 둘째로는 리듬이 몸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느릿하다, 몸을 꼬다, 흔들며 피하다, 춤을 춘다, 가죽소리만 창창 난다 등은 모두 몸의 감각을 일깨우고 몸의 움직임을 통해 시적 공간이 술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재훈 시인 역시 에코가 메아리치는 몸을 상상한다. 아름다운 내 몸, 거울에 비추어, 아아아 에코가 흐느끼네(「수선화」) 라는 시인의 고백은 시각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정립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노래 그 자체의 몸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 시인들의 리듬은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율동과 호흡, 숨결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시의 리듬으로부터 멀어진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리듬을 살고, 리듬을 창조한다. 반복과 속도를 조절하면서 몸의 리듬을 고르는 그들은, 보는 시가 아니라 듣는 시를 씀으로써 시의 원형原型인 노래에 가까이 간다. 그러하므로 이제 독자들은 시를 읽고 보면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을 넘어 시인의 몸이 연주하는 리듬의 변주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_ 현대시, 2007년 7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