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힌다. 눈을 감아라, 소리만 남은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에서 갈 곳을 모르는 시적 자아는 과거의 시간을 되짚어 보지만 그 시간조차 자신을 증명해내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모두 신성한 모험이었다는 거짓된 소문들”이 과거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다시 열리는 문 앞에 설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삶이 첩자의 삶이었는지, 먼지의 삶이었는지를 확인하여 스스로를 부스러기로 만들 “거대한 허무”로 침잠하지 않기 위해서다.

다시 삶. “지하철 2호선의 문이 활짝 열렸다”.

명왕성처럼, 분명히 존재하는 별이었는데 돌연 지위를 박탈당하고 태양계 행성으로부터 소외된 명왕성처럼 우리의 존재는 잠시 명멸한다. 무엇으로 스스로를 증명할 것인가?

_ [시와세계], 2007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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