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언론기사 2006. 2. 14. 15:11

이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텨왔다 그러나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뜨개질을 하신다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뜨고 계신다

-> 출처 : 포스코신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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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의 노래

시詩 2006. 2. 14. 15:01
결별의 노래
― 성배(聖杯)를 찾아서

흰 눈을 만나기 위해
폭염을 견디었는지 모른다
먼 기억으로 터져나오는 울음 소리,
도시의 거리와 거리,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엉켜 태연히 입 맞추는 소리,
이 땅은 풀벌레 소리도 서러움이다
마음이 없는 몸을 질질 끌고
미술관으로 가서 꽃 가득한 정물화를 본다
지지 않는 꽃, 수없이 그리워하고 약속했던 꽃
나는 그림 속의 화려한 상징에만 골몰했다
마음이 없는 몸을 질질 끌고
시위대를 지나고 학교를 지나고
걸음을 멈추게 했던 대형전광판을 지난다
역사도 없고 분노도 없는 권태로운 시간을
홑날로 벼리는 젊은 어깨의 그림자
그림자들이 서로 만나 어둠을 만들고
어둠을 지키기 위해 네온사인이 하나 둘 켜진다

어제의 일이 까마득하다
하룻 밤새
이마 위에 주름이 깊어 눈이 감기고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 친다
차가운 결정(結晶),
그 위에 금빛새가 발자국을 찍고
푸드득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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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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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날의 기록

시詩 2006. 2. 14. 15:00
쓸쓸한 날의 기록
― 정재학에게


무기력하다 했던가
마지막 술잔을 남겨 놓고
우리가 귀가하는 순간
하늘 아래 어디 쯤에선 꽃이 피었을 거다
꽃을 보고도 그걸 표현할 방법을 몰라
그렇게 헤매었던가 우린 한낱
일렉기타의 음률과 철지난 유행가에
더 감상적이었잖은가
네게도 말했지만
나는 백년의 무명을 견딜 것이다
그렇게 철없이 살리라

더 이상 만질 것도, 들을 것도, 말할 것도 없는 어둠
소주 몇 병 먹고 어둠과 말할 수도 있지만
그만한 자족으로 그 어둠 속
텅 빈 공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옥상 위에 올라가 날아 보자
네 몸이 땅에 떨어져 옆구리가 찢어지고
사람들의 입가에 오르내린다 해도
내가 믿는 예수처럼
그 옆구리를 기억할 수 있을까
어느 요절한 시인처럼
흉흉한 소문 속에 네 아픔이 기억될 수 있을까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실패한 서정시인
서럽고 아름다운 자연은 이미 다 해먹고
남은 상상으로 목울대를 울리는,
이제 우리의 가난도 팔지 못하는,

거울 속에서 내 눈을 보았다
무얼 견디는 지도 모르는
몽롱한 얼굴이 날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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