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도에서

시시각각 2006. 9. 2. 23:42


잔뜩 흐린 날이었습니다.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바닷가를 향해 달렸습니다.
걱정이 많으면 위안이라는 덤을 얻게 됩니다.
바다와 하늘은 검회색의 색다른 옷을 입고 있었지만
다른 어느 때보다 매혹적이었습니다.
햇살이 잠시 따가워질 때
갯벌 위에서 오래도록 머물렀습니다.
잠시의 체험이 어떤 이에게는 진지한 생활이라는 걸 깨달을 때
부끄러워집니다.
그날은 내내 무엇엔가 홀린 듯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소나기가 내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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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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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령_ 시인





만난 지 몇 년인가. 어쩌다 만났는가. 생각해보네. 구체적 답을 요要하기란 옹색해지는 법, 허나 인색함 그 자체가 우리가 만났던 그때 우리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네. 왜 우리들은 만나더라도 대로의 환한 빛 뒤편, 허름한 구석으로 스며들어 만나곤 했을까. 싼 곳을 찾느라 그런다 했지만 그것보단 어쩌면 우리 마음의 옹색함 저편 후미진 곳에 도사리고 있는 음습한 살기를 드러내 놓는 것이 부담스러워서는 아니었을까. 자네의 말대로 ‘어떤 폐부의 한 골짜기를 기억’한다는 것이 결국 시라면, 그 기억을 우리는 서로 들켜야만 하는 옹색함을 만날 때마다 견뎌야 되지 않았겠는가. 환한 대로를 걷기에는 너무 불편한 몸인 ‘자존심’을 가지고 그때 자네는 그리고 우리는 “구원의 문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기 망설여지게 하는” 시를 말했었던가. 우리 사이에 놓여있던 술들은 외피에 불과한 것. “구원을 욕망하게 하는 에너지”가 되는 시를 통해서 오히려 ‘구원의 문’이 단단히 잠겨 있음을 거듭 확인하는 곤혹스러움이 우리들이 나누었던 술 안쪽에 도사린 살기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그때 자꾸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졌던 자네를 기억하며, 자네의 시집 후기의 말을 잡고 더듬어 생각해보니 그런 듯 하단 말이네.


이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텨왔다 그러나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뜨개질을 하신다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뜨고 계신다

- 「마루」

자네 촌사람 아닌가. 그러나 얼핏 보면 사람들은 자네를 서울사람으로 착각하기 쉬울 것이네. 물론 서울사람과 시골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라든지, 시골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또 무엇이냐 라든지의 성의 있는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내 말이 무모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내가 볼 때 자네를 서울사람으로 보기 쉬울 듯 허네. 대부분 옷을 조이기보다는 풀어 입되, 정갈하게 풀어 헤쳤으며, 풀어진 곳에 적절히 배치된 안경, 액세서리, 그리고 내 기억엔 언젠가 자네 귀에 반짝이던 귀걸이. 그러나 이런 말은 처음 잠시 잠깐의 인상기일 뿐. 좀더 깊이 보면 그것들이 어쩌면 부유의 흔적일 거라는 생각.  저 강원도 영월에서 시작해 논산을 거쳐 서울에 자리 잡기까지 여정의 흔적일 거라는,  그리고 시 전문 문예지 편집장으로서 자네가 만나야 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또한 부유하는 자들 아니겠는가. 그 만만치 않았을 여정을 자넨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티는” 자로 걸어 온 게 아니었겠는가. 그것이 옷을 풀어 헤쳤으되 산만하지 않은 감각적이되 진지한 자네의 풍모를 만든 게 아니었겠는가.

자 그럼 이쯤에서 내 말을 바꿔야겠네. 자넨 부유하는 자처럼 보이지만 좀더 자세히 보면 자네의 부유엔 중심이 도사리고 있다고. 이별의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는 믿음이,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 올 때 무릎을 꿇고” 어머니가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짜 올린 슬픔이, 그리고 그 힘으로 “어느새 푸른 피가 발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깊은 시간 속을, 자꾸만 걷”(「숲」)는 고집이 자네의 부유 속 중심이라고. 아니 이 말은 너무 내가 고집스럽게 말한 듯하니 다시 사족을 달겠네. 내가 보기엔 그런 것 같다고. 갈수록 무엇은 그렇다고 단언하기엔 내 스스로가 불안해져 가기에. 차라리 조금은 비겁하게 말하는 게 낫겠네.


말 위에서 견디는 삶

그곳엔 조용한 잠도 없었지

열두 밤이 지나자 황도십이궁의 한 모퉁이에

나는 떨어졌지


새벽녘 어머니가 내 머리칼을 만지고 있었지

나는 쭈글해진 어머니 배에 귀를 갖다댔지

말발굽 소리와 활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지

그 큰 어둠을 품고 어머니는 새벽 기도를 가셨지

나는 어머니가 믿는 神의 안부가 궁금해졌지

- 「사수자리」 부분

내가 자네를 처음 볼 때부터 자네의 눈빛은 멀리 있었지. 가끔 자네를 마주칠 때 자넨 아주 멀리서 온 듯한 혼곤한 눈빛이었지. 어디를 갔다 온 것인지. 무엇을 본 것인지. ‘밤이 되면 말을 타’고 달려 자네가 달려가려 한 곳이 어디였는지.

그렇군. ‘신의 안부가 궁금한 자’가 그것을 묻기 위해 ‘말 위에서 견디는 삶’을 사는 자 어찌 ‘조용한 잠’의 안식을 찾을 수 맛볼 수 있었겠는가. 결국 자네의 눈빛은 ‘불면의 눈빛’이었나. 조용한 잠 대신, ‘십자가 없는 어둠’ 속에서 ‘활을 쏘아’대는 고투의 길을 달리는 말로 언어로 가득 찬 불면의 눈빛이 내가 본 자네의 눈빛이었나. 그래서 자네가 본 것은 무엇이었나. 아니네 이러한 질문은 부질없는 것.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는가가 아니라 보려 했다는 것, 보려 한다는 것. 그 자체일 테니.

시 쓰는 자가 문학하는 자가 이 세상 삶에 대한 답을 주는 자는 아니지 않겠는가. 답은 시인보다 훨씬 위대한 존재자의 영역일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네 말대로 다만 그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을 사랑으로 보지 않고, 균열을 균열로 보지 않고 그 위에 주저앉아 사랑을 통해 균열을 균열을 통해 사랑을 그리고 또 다시 거듭, 돌고 도는 해결점 없는 미로를 확인하고 절망하고 자멸해 가는 것. 스스로의 흔적을 말을 지우는 것. 그것이 시 쓰는 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경지 아니겠는가.  

작년 우리는 자네의 결혼식에 갔었지. 시골 교회에서 올려진 자네의 결혼식은 참했고 깊었지. 그 깊고 깊은 속에서 자네의 아름다운 사람이 이젠 자네의 머리칼을 만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신의 안부를 묻기 위해 달려가는 자에게 그 정도의 호사는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나는 자네에게 못된 욕심을 내네. 자네의 ‘불면의 언어’가 더욱 지속되기를. (계간 <시인시각>, 2006년 여름호 게재)



장무령
충남 홍성 출생.

1999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선사시대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다>가 있음.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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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감자바위세요?

산문 2006. 7. 16. 02:40
 

강원도가 고향이세요? 아, 감자바위시네요. 하하.

서로 고향 얘기를 주고 받을 때 흔히 듣는 말이다. 그리곤 강원도 어디어디를 얘기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대부분 놀러다녀 온 이야기다. 설악산이 어떻고 경포대가 어떻고 속초를 위시한 동해안 일대 등의 얘기가 오가면 강원도 얘기를 거의 다 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강원도 사람들을 ‘감자바위’라고 부르는 데에는 ‘촌스러움’이라는 지역적 선입견이 포함되어 있다. 이 촌스러움 때문에 강원도는 관광지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자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산수자연은 도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유혹적인 안식처인가. 그러니까 사람들은 강원도의 촌스러움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도시 사람들이 강원도를 철저하게 소비의 방식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제 내린천이나 영월 동강의 변해가는 모습은 이를 증명해 주는 일들이다. 이제 우리는 강원도의 겉모습이 아니라 강원도의 깊은 마음을 이해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경상도나 전라도, 충청도 사람들처럼 지역적 냄새가 많이 풍기지 않는다.어딜가나 경상도나 전라도 사람들은 금방 표시나는 데 반해 강원도 사람들은 여간해선 잘 알 수가 없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겉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속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한 성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속내 깊은 은근함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추암해수욕장 일출전야(2003)


강원도 ‘감자바위’들은 이름처럼 순박하다. 요즘은 순박하다, 착하다 라는 말이 좋은 말로 들리지 않게 돼버렸지만 강원도 사람들을 표현할 때 가장 적당한 표현이 순박하다는 말일 것이다. 대개 순박한 사람들은 자기표현에 서툴다. 그것은 타인과 자연스럽게 자기 감정을 표현할 일이 적음에서 생기는 쑥스러움 때문이다. 강원도를 다녀온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으로 강원도 사람들은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감정표현이 익숙치 않아서 생기는 오해이다.

감정표현이 서툰 것에는 지리적 특색이 큰 요인 중의 하나이다. 강원도의 북쪽은 함경도와 황해도, 서쪽은 경기도, 남쪽은 충청북도, 경상북도와 접하고 있다. 또한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동서로 양분되고 산악이 많은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세 탓에 지역 간 교통이 빈번하지 않았다.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설악산과 치악산 오대산 등의 험준한 산령이 남북을 길게 막아놓고 있고 이 산맥들이 쳐놓은 가지들 또한 작은 혈관처럼 넓게 뻗쳐 있다. 그래서 강원도 지역은 거의가 산악지형이다. 감자와 옥수수가 많이 나고 고랭지 농작물이 많이 생산되는 것 또한 이런 경우이다.

이러한 지형은 강원도 사람들을 진취적이지 못하고 고여있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미 자연을 정복하지 않고 자연과 순응하며 그 질서대로 사는 것이 생활 습관이 되었기에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강원도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고립되어 있고 고립된 만큼 폐쇄적이다. 또한 바깥의 문화를 흡수하는 데도 늦고 타지역에 대해 먼저 경계심부터 발동한다. 좋게 말하면 지역적인 고유의 색채가 아주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강원도 사람들의 무뚝뚝함은 특유의 사투리 때문에 더 딱딱하게 다가온다. 강원도 사투리는 다른 지역 사투리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영동지역은 서울로의 이주가 잦지 않고 또한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상경하기 때문에 사투리의 원형이 잘 유포되지 않았던 것 같다.

강원도의 사투리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영동지역과 영서지역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영서지역은 오히려 서울의 문화권과 가깝기 때문에 표준어에 가까운 말씨를 쓴다. 그러나 영동지역은 옛부터 태백산맥의 영향으로 중앙과의 교류가 없었으므로 독특한 사투리가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강원도 북부지역이 함경남도와 인접해 있으므로 이쪽의 말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강원도 토박이 사투리를 북한말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원도 사투리로 웃음을 선보인 개그맨 심원철이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선생 김봉두>는 강원도 사투리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이제 강원도 사투리가 전국적인 문화코드가 될 수 있을 날도 멀지 않았다.

감정표현이 서툰 대신 한번 정주면 끝까지 가는 성미가 강원도 사람들이다. 그네들의 정은 타지역 사람들의 정붙임에 비해 유달리 질긴 편이다. 흔히 말하는 남자들의 의리나 여자들의 살가움에 비해 강원도 사람들의 정붙임은 진득한 데가 있다. 한번 정을 붙이면 쉽사리 떨어질 줄 모른다. 그래서 강원도 사람들은 일단 친해지면 뚝배기처럼 은근하고 오래간다. 또한 감정 표현이 서툰 반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다독일 줄 안다. 그 다독인 감정을 소중하게 아끼고 보살필 줄 안다. 강원도 사람들 사이에 큰 싸움이 없는 것 또한 이런 이유이다.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느림의 미학이 속도의 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부면에 걸쳐 떠오르는 시대다. 강원도 사람들의 은근함과 포근함이 이제 빛을 발할 때가 아닌가. 주변에 강원도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 말을 걸어 보면 어떨까. “아, 감자바위세요?”


글 : 이재훈
출처 : WEL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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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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