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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7 이재훈의 <Big Bang>
  2. 2007.01.05 Big Bang

Big Bang


이재훈


태양이 어슷어슷 거리로 내려왔습니다. 쇼윈도우 마네킹들은 땀도 흘리지 않았지요. 누군가가 지나치는 여인에게 양공주 같다고 킬킬거렸습니다. 좌판 아저씨는 제 옷자락을 잡아끌고 빨간 비디오테이프를 꺼내주었습니다. 신문엔 사람들끼리 불총을 쏘아대고 있었습니다. 그런 거리를 걷다보니 어느새 제 겨드랑이에 털이 솟아 있었습니다.
무르팍에 힘이 없었습니다. 숱진 머리칼이 아버지를 닮았다지만 전 야틈한 언덕에서 방황했습니다. 아버지는 언덕을 넘으면 시온이 있다고 했었지요. 그때 태양이 제 몸에 달라붙어 명징한 기억들을 빨아먹고 있던 겁니다.
누구나 안식처를 찾아 세상을 헤매입니다. 눈앞에 솔개그늘이 하나 있었고 그 속에서 저는 RPG게임을 했습니다. 제 몸의 태양열로 세계를 불질렀습니다. 펑펑펑 150억 광년의 우주에 불을 놓습니다. 세상에 불을 지른 자는 신이던가요?

가끔씩 가슴으로 소나기밥을 먹습니다. 온 몸에 자릿내가 풀풀거려도 괜찮습니다.
언덕을 넘으면 시온이 있구요. 그곳에 다가갈수록 수염이 자꾸 굵어집니다. 간간히 제 가슴에 나비물마냥 불덩어리들이 흩어 날아갑니다. 


불의 상상력은 제 몸을 태워서 제 몸을 빛낸다. 끊임없는 타오르는 ‘불의 빅뱅’은 ‘불의 블랙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누구나 꿈꾸는 불, 그러나 불은 위험하다. 영원한 소멸의 거대한 블랙홀이 입을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태양이 굴러다니는 거리가 있다. 한 소년이 성장해온 길바닥이 있다. 오늘도 태양빛이 내리쬐는 이상한 풍경이 있다. ‘소돔성’처럼 병들고 타락한 도시이다. 언제나 그러했던, 인간들은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 이곳으로 몰려들지만 사실은 도시에서 죽기 위하여 몰려온 것이다. 이런 허기진 욕망들이 이 도시의 남루하고 비루한 풍경을 이룬다. 시의 화자는 이런 ‘마네킹’과 ‘양공주 같은 여자’와 ‘빨간 비디오테이프’가 있는 풍경을 따라 ‘겨드랑이에 털이 솟’을 만큼 성장해 가는데, ‘기성세대’를 표상하는 ‘아버지’는 자꾸만 나를 속여먹는다. 구원의 땅은 멀고, 안식의 그늘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무수한 ‘아버지들의 아이’는 고작 RPG게임이나 하고, 배터리처럼 충전되는 게임머니로 이 세계를 불지른다. 사이버 공간이라 할지라도 ‘펑펑펑 150억 광년의 우주에 불을 놓’는다. 이는 ‘아버지들의 아이’가 타락한 이 도시의 블랙홀을 견뎌내기 몸부림인 동시에 스스로의 태양열로 이 세계를 불 지르고 싶어 하는 욕망을 표상한다. 스스로 하나의 불덩어리가 되어 세계를 불 지르고 우주에 불을 놓으려는, ‘불의 아이’의 당돌한 모험. 그러나 그 결과는 자명하다. 아카루스의 날개처럼 제 몸이 녹아낼 뿐이다. 따라서 시인은 이토록 음울한 정열의 음화를 우리에게 던져놓는 것일까? 결국, 이 시는 수직으로 내리쬐는 태양빛과 수평으로 걸어가는 시의 화자를 교직시킨 뒤 그 접점을 통해 인간 삶의 비루한 풍경을 보여준다. 가볍게 빗금처럼 긁고 지나가는 풍경을 배경으로 ‘태양 아래의 성장기’를 담아낸다. 여기엔 제 가슴의 불덩어리를 완전히 흩날리지 못한 ‘울울한 욕망’과 아직도 찾지 못한 ‘시온의 땅’이 숨 쉬고 있는데, 그렇다, 태양 아래의 안식은 애당초 없었다. 그런 갈증 때문에 시인의 상상력은 ‘불의 빅뱅’처럼 타오르는 것이리라.  (오정국 시인)

_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10년 3~4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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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Bang

시詩 2007. 1. 5. 17:22


태양이 어슷어슷 거리로 내려왔습니다. 쇼윈도우 마네킹들은 땀도 흘리지 않았지요. 누군가가 지나치는 여인에게 양공주 같다고 킬킬거렸습니다. 좌판 아저씨는 제 옷자락을 잡아끌고 빨간 비디오테이프를 꺼내주었습니다. 신문엔 사람들끼리 불총을 쏘아대고 있었습니다. 그런 거리를 걷다보니 어느새 제 겨드랑이에 털이 솟아 있었습니다.

무르팍에 힘이 없었습니다. 숱진 머리칼이 아버지를 닮았다지만 전 야틈한 언덕에서 방황했습니다. 아버지는 언덕을 넘으면 시온이 있다고 했었지요. 그때 태양이 제 몸에 달라붙어 명징한 기억들을 빨아먹고 있던 겁니다.

누구나 안식처를 찾아 세상을 헤매입니다. 눈 앞에 솔개그늘이 하나 있었고 그 속에서 저는 RPG게임을 했습니다. 제 몸의 태양열로 세계를 불질렀습니다. 펑펑펑 150억 광년의 우주에 불을 놓습니다. 세상에 불을 지른 자는 신이던가요?

가끔씩 가슴으로 소나기밥을 먹습니다. 온 몸에 자릿내가 풀풀거려도 괜찮습니다.

언덕을 넘으면 시온이 있구요. 그곳에 다가갈수록 수염이 자꾸 굵어집니다. 간간히 제 가슴에 나비물마냥 불덩어리들이 흩어 날아갑니다.

-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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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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