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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29 숭고한 그노시스와 연금술사
  2. 2006.11.08 연금술사의 꿈

시의 키워드를 한 단어로 요약하기에는 난감하다. 그것은 평가에 대한 곤궁함 때문인데, 늘 시 쓰는 창작주체들은 자신의 평가에 대해 수긍하고 싶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모든 시각에는 이분법적인 잣대가 배면에 깔려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달콤하다고 말하면 쓴맛이 없는 것 같고, 쓰다고 하면 달콤한 맛이 없는 것 같아서 늘 평가에 대해서는 허기가 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한 마디로 말해야 하는 억압 때문에 일어난 작은 해프닝과 같은 것이다. 진정한 창작자라면 평가와 같은 줄넘기에는 관심없는 단독자여야 한다.

별, 최초의 말, 미아

첫 시집을 낸 이후, 세간의 평가는 대충 이런 말들이었다. 광활한 시공, 시원에 대한 신비한 상상력, 유목민의 후예, 야생과 원시를 향한 주술의 언어, 기원에 대한 탐구, 그노시스의 열망, 낭만적 정신의 고투 등등.

나는 별을 꿈꾸었다. 별 속에서 게으른 발길질을 하고 있는 가녀린 영혼에 대해 생각했다. 그 영혼의 호흡이 공기가 아니라 물속의 부력으로 버텨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배꼽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제단은 육신을 밥으로 삼지만, 제단은 영혼이 본질이며 주인이다. 별 속에서 가르랑거리는 작은 목소리, 그 최초의 말에 대해, 최초의 말이 뛰어노는 이 땅에 대해, 이 땅에 거북이처럼 엎드려 살아도 자꾸 병들어가는 미아에 대해, 이 모든 것과 결별할 수 없는 땅의 작은 경이로움에 대해, 까닭을 알 수 없는 분노와 서글픔과 이 땅의 모든 슬픈 사랑에 대해.

숭고, 비의적 진리, 연금술, 서울, 골목길

아직도 나의 순례는 끝나지 않았다. 순례의 길목만이 다를 뿐이다. 예전엔 올라갈 먼 곳만 바라보며 올랐다. 목이 아팠다. 지금은 여유를 생각할 때다. 길목을 떠나면서 만나는 작은 풀꽃과 주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쉬어가며 길을 간다. 머나먼 길을 오래 걸으려면 쉽게 지쳐서는 안된다. 소요하며 걷는 곳에 때론 숭고미(崇高美)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장엄한 풍경들을 만난다. 여전히 나는 그노시스의 이교도 중 하나이다. 파스칼의 비의적 신념과 니체의 고된 말 사이를 오가며 걷는다. 킬리만자로의 설산이 예전 같지만 못하다는 소식과 명왕성이 태양계의 지위를 박탈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킬리만자로와 명왕성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더불어 서울이라는 이 도시도 늘 여전하다. 나는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골목길을 오르내리고 술집을 드나든다. 지금 내 삶에 가장 오랫동안 몸 누일 이 땅이 또한 시가 만들어지는 땅이다. 떠날 수 없다면, 사랑하라.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을 억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일이다.

_ 시와반시, 2007년 겨울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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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의 꿈

시詩 2006. 11. 8. 00:43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촛불도 아니고 감나무도 아니다
미끈한 자동차도 아니고
달콤한 솜사탕도 아니다
차갑고 텅 빈 사물에
쇳물을 들이붓고 싶다
나는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이었다
꿈을 꾸면
붉은 별 하나가 내게 떨어지는 사건이었다
손이 데일까 만지지도 못한 별이
마당에 내려와 날 또렷이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엎드려 울지 않겠다
슬픔을 우스운 몸짓으로 과장하지 않겠다
해거름에 사양(斜陽)을 보며 사흘을 울겠다
그러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겠다
그 비밀의 성소(聖所)가 내 집이었다
소멸이
내 먹는 밥이었다

시와세계, 200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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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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