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에 해당되는 글 50건

  1. 2007.09.13 비오는 일요일 오후
  2. 2007.07.06 사랑시
  3. 2007.05.28 빗소리
  4. 2007.03.02 빗소리
  5. 2007.02.19 앉은뱅이꽃 2
  6. 2007.01.14 나는 기적을 믿지 않지
  7. 2007.01.14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8. 2007.01.05 Big Bang
  9. 2006.12.28 얼음연못
  10. 2006.11.29 겨울숲
  11. 2006.11.08 연금술사의 꿈
  12. 2006.02.14 결별의 노래
  13. 2006.02.14 쓸쓸한 날의 기록
  14. 2006.02.14 햇살의 집
  15. 2006.02.14 일식
  16. 2006.02.14 나스카 평원을 떠난 새에 관한 이야기
  17. 2006.02.14 순례
  18. 2006.02.14 수선화
  19. 2006.02.14 빌딩나무 숲
  20. 2006.02.14 사수자리

비오는 일요일 오후

시詩 2007. 9. 13. 10:13


목소리가 심하게 잠겼지.
일요일 오후에.
비 들이치는 창문을 닫고
한 달된 아이를 들쳐 업고
예배당에 갔었지.
뿌옇고 어두운 일요일 오후에.
분봉왕 헤롯이 세례요한의 목을 잘라
소반에 담았다는데, 잔칫날이었다는데.
소나기 때문에 교인이 별로 없는
일요일 오후에.
쉰 목소리로 사도신경을 외우고
친구 寅의 병마와 딸아이의 건강과
탈레반에 피랍된 청년들을 위해 기도했지.
빗소리가 기도소리와 몸을 섞는 일요일 오후에.
예배 후 멍하게 앉아 있다가 스르르 눈이 감기는
모든 것이 자꾸 늙어가는 일요일 오후에.
이젠 그 무엇도 파괴하지 못하는
나의 사랑, 나의 분노를 그저 바라보는
무심한 일요일 오후에.
풀무불에 온 머릿카락을 태우고
찬물에 머릴 집어넣고 싶은 일요일 오후에.
누구의 손도 잡고 싶지 않은
끈적끈적한 일요일 오후에.
소반에 라면 하나 끓여 놓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는 일요일 오후에.
낮인데도 컴컴한 하늘,
아무 것도 보이는 게 없지만
자꾸만 모든 걸 믿게 되는 일요일 오후에.
한 달된 딸을 보면 가슴이 축축해져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일요일 오후에.

_ [서시], 200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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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시

시詩 2007. 7. 6. 15:35




이재훈


잊으려했네, 내 가슴에 철쭉마냥 흐드러진 분홍빛 시간을, 저어기 삶의 저쪽에 띄우려했네, 흘러가면 그만이겠지, 한 세월 넘어 河口에 닿으면 분홍으로 물든 물빛, 그 빛깔 기억하면 되겠지, 그의 집 앞, 옷가슴, 덕적덕적 낀 욕망을, 백수광부처럼 노래하며 떠나 보내려했네, 그러나, 내 가슴 아직 고여 있네, 썩으면 어떡하나, 물가로만 빙빙도는, 내 속 수면 위에 떠서 자맥질하는······ 그 철쭉 그만 삼켜버렸네, 어떡하나 내 사랑, 도근도근 내 사랑, 나 몰랐네, 빛 좋은 철쭉, 먹으면 죽는다는 전설을, 아아 사레들리네, 꿈처럼 오련하게, 사레들리네


---
도서출판 [작가]에서 사랑시 100선 기획시선집에 보낸 시이다. 신작시는 아니고 예전 발표시이다.

내가 쓴 시 중에 정말 '사랑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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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시詩 2007. 5. 28. 10:21

메마른 땅에 아카시아 꽃잎 떨어져요. 질긴 가지 끝에서 제 몸을 뜯어내는 소리, 천둥치는 밤. 당신은 그 아픔을 숨기고 투명한 몸으로, 꽃잎처럼 경쾌하게 내려요. 낡은 군화를 신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앙상한 가지를 꺾어 가며 걸었어요. 흙발로 저벅저벅 아스팔트 위를 걷다가 문득, 당신을 봅니다. 사납고 포악한 걸음걸이 사이로 보이는 당신의 알몸. 밤이 되어도, 이별이 지나도, 당신의 몸이 온 사방에 닿는 소리 들려요. 당신이 울고 있다 생각했지만, 실상 당신은 아무 말 없어요. 아무 몸짓도 없어요. 잠시 침묵.

몸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요.
서러운 아픔도 참, 아름다워요.

----------------
⎗ 도시에서 한 시간을 걷더라도 흙을 밟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도시의 도로는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비가 내리는 요즘만큼은 우리가 사는 이곳이 ‘메마른 땅’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어서 위안을 받는다. 도시가 자연과 자연스러운 것들을 쫓아내고 시멘트로 장악해 버렸다 할지라도 봄바람과 비를 따라 내리는 꽃비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마음의 삭막함을 안아서 달래준다. 이재훈 시인의 「빗소리」는 마치 시멘트 포도에 내리는 꽃비처럼 여겨진다. 이재훈 시인의 「빗소리」를 읽으니, 시를 해석하는 일을 하거나 딱딱한 인식의 시를 쓰는 필자로서는 잠시 부끄러워진다. 시인의 작품이 내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감성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거나 현상을 바라보는 데 서툴다. 내게도 ‘빗소리’를 ‘서러운 아픔’으로 감각하던 때가 있었던가? 이재훈 시인은 「빗소리」에서 의미상의 대구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화자는 자신과 ‘당신’을 대조시켜서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대상인지를 드러낸다. 화자는 낡은 군화를 신었으며, 앙상한 가지를 꺾어들었고, 흙발이고 포악한 걸음걸이를 가진 사람이다. 반면에 ‘당신’은 투명한 몸과 꽃잎의 경쾌함을 지니고 있다. ‘당신’은 연약하고 부드러운 알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아스팔트 위에 내리는 빗방울 같은 이다. 화자가 ‘당신’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의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겪으면서도 “아무 말 없”이, “아무 몸짓도 없”이 메마르고 딱딱한 아스팔트를 적시고 안아주기 때문이다. 빗소리는 아스팔트 같은 화자의 가슴과 「빗소리」를 읽는 이의 마음자리에 “서러운 아픔”으로 내려와서 따스하게 안아준다. ‘당신’의 “서러운 아픔”을 아는 자 역시 ‘당신’만큼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겠다.

- 조해옥(문학평론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7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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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시詩 2007. 3. 2. 13:14



메마른 땅에 아카시아 꽃잎 떨어져요. 질긴 가지 끝에서 제 몸을 뜯어내는 소리, 천둥치는 밤. 당신은 그 아픔을 숨기고 투명한 몸으로, 꽃잎처럼 경쾌하게 내려요. 낡은 군화를 신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앙상한 가지를 꺾어가며 걸었어요. 흙발로 저벅저벅 아스팔트 위를 걷다가 문득, 당신을 봅니다. 사납고 포악한 걸음걸이 사이로 보이는 당신의 알몸. 밤이 되어도, 이별이 지나도, 당신의 몸이 온 사방에 닿는 소리 들려요. 당신이 울고 있다 생각했지만, 실상 당신은 아무 말 없어요. 아무 몸짓도 없어요. 잠시 침묵.

몸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요.
서러운 아픔도 참, 아름다워요.


-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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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꽃

시詩 2007. 2. 19. 14:34
 

앉은뱅이꽃



이 재 훈



일부러 가부좌를 틀 필요는 없다 당신은 감각의 수행자, 당신의 세상은 불구의 시간이 시작되는 때, 눈을 감아도 또렷이 기억나는 게 있다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반했던 제비꽃 향기처럼 당신, 들릴 듯 말 듯한 냄새 당신의 냄새를 들었다 노란색 코트가 아니라 감미로운 목소리가 아니라 당신의 발자국처럼 저 멀리서부터 두근거리는 냄새 눈을 감아도 또렷이 기억나는 게 있다 그러나 당신의 향기는 잠시 머물렀다 사라졌다 부재(不在)는 그리움의 양식 바이올렛 향기로 내 몸이 건반처럼 울렸지 잠시 뿐이었지만, 덤불 속에서 상채기를 핥다가 취한 당신의 냄새 적어도 당신의 몸에서 육식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다른 꽃으로 환생한다해도 이미 알았던 것 우주에서는 아무도 당신의 비명을 들을 수 없음을*



* 우주에서는 아무도 당신의 비명을 들을 수 없다 :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Alien)


 

시작메모


향기는 마법의 물질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 감각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는다. 향기에 의해 생성된 그 기억은 이전의 시간을 재생시킨다. 또한 그 시간과 함께 나누었던 감정의 세밀한 떨림들까지 느끼게 된다. 이러한 감각의 체험은 주관성에 의존한다. 같은 향기라도 그 향기가 거느렸던 사연과 순간의 각별함으로 인해 범상치 않은 감각체험을 하는 것이다. 앉은뱅이꽃은 제비꽃의 다른 말이다. 금방 날아가버리는 속성으로 귀했던 제비꽃의 향은 매력적인 냄새였다. 바이올렛향을 가진 앉은뱅이꽃의 불구성(不具性)이 감각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게 했다.

- 2007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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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이 들고 입술이 부르터서 몸뚱이가 버거울 때였지. 꿈을 꾸었어. 갑자기 뒷덜미가 서늘해져 지나온 것들을 보지 않으려 캄캄한 앞만 보았지. 저 앞의 세상엔 어떤 동물들이 살고 있을까. 한 발자국 내딛을 때, 내 몸에 사박사박 모래알 밟는 소리가 났어. 오, 누군가가 내 몸을 질근질근 밟고 있었지.
나는 기적을 믿지 않지. 아침마다 청량리에서 신촌으로 가는 131번 버스를 타지. 어쩌다 예쁜 여인이 옆에 앉으면 주문을 외지. 너는 내 아들을 잉태했다. 새벽에 술에 취해 방문을 열고 불을 켜면 섬뜩 놀라. 내 바지에 피가 흘러내리고, 아침에 보았던 예쁜 여인이 아기를 안고 있어.
나는 기적을 믿지 않지. 뒤를 돌아보면 내 목에 십자드라이버를 꽂고 있는 사람이 보여. 당신을 사랑해. 어지러워, 온 몸에 피가 타오르지. 독한 감기약을 먹고 아침이 되면 131번 버스를 타지.
나는 기적을 믿지 않지. 내 몸이 가벼워져 바다 위를 걷는다면, 당신의 손이 내 몸에 닿을 때 흐르는 피가 멎는다면, 그걸 누구에게 고백해야 할까.

-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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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곳을 찾았을 때
모든 시간은 무너지고
가없는 기억의 언덕도 무너지고
또닥또닥,
희미한 발굽 소리만 들렸는데

2.
잠든 말, 묵상도 없는 말들이 벽에 붙어 있다 너의 소리를 들으려고 널 만진다 그제야 너는 벽화가 된다 널 만지면 황소가 되었다가 사슴이 되었다가 초원을 가로지르는 말이 되고 나는 말 위에 올라 타 노래를 부르는 추장이 된다

3.
말은 내게 뱃속을 열어 보여준다
건강한 줄기를 먹고 자란 말
빨갛게 화장(化粧)한 말의 뱃속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뱃속에 질서있게 자리잡은 내장의 곡선에
손가락을 갖다 대본다
아프다, 말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다
뱃속에서 말의 새끼들이 뛰어나온다

4.
말이 쏟아져 내린다 초원에 내려 거칠게 달려나간다 내가 지겹게 머무는 도시의 거리까지 와서 내 머릿속을 후두둑후두둑 내달린다

5.
밤이 되면 나는 시를 쓴다
거리의 곤고함에 대해
꽃이 침묵하며 피는 이유에 대해
아는 척 쓰다가 말다가 결국
“말은 태양을 잉태했다”고 쓰다가

6.
믿음엔 증거가 있어야 한다
내가 검은 말을 타고 요정의 검을 차고
맥베스처럼 “눈 앞의 이것이 나인가” 되뇌이며
내 목을 자르고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 속으로 들어갔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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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Bang

시詩 2007. 1. 5. 17:22


태양이 어슷어슷 거리로 내려왔습니다. 쇼윈도우 마네킹들은 땀도 흘리지 않았지요. 누군가가 지나치는 여인에게 양공주 같다고 킬킬거렸습니다. 좌판 아저씨는 제 옷자락을 잡아끌고 빨간 비디오테이프를 꺼내주었습니다. 신문엔 사람들끼리 불총을 쏘아대고 있었습니다. 그런 거리를 걷다보니 어느새 제 겨드랑이에 털이 솟아 있었습니다.

무르팍에 힘이 없었습니다. 숱진 머리칼이 아버지를 닮았다지만 전 야틈한 언덕에서 방황했습니다. 아버지는 언덕을 넘으면 시온이 있다고 했었지요. 그때 태양이 제 몸에 달라붙어 명징한 기억들을 빨아먹고 있던 겁니다.

누구나 안식처를 찾아 세상을 헤매입니다. 눈 앞에 솔개그늘이 하나 있었고 그 속에서 저는 RPG게임을 했습니다. 제 몸의 태양열로 세계를 불질렀습니다. 펑펑펑 150억 광년의 우주에 불을 놓습니다. 세상에 불을 지른 자는 신이던가요?

가끔씩 가슴으로 소나기밥을 먹습니다. 온 몸에 자릿내가 풀풀거려도 괜찮습니다.

언덕을 넘으면 시온이 있구요. 그곳에 다가갈수록 수염이 자꾸 굵어집니다. 간간히 제 가슴에 나비물마냥 불덩어리들이 흩어 날아갑니다.

-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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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연못

시詩 2006. 12. 28. 00:06


내 몸이 뜨겁다
아스팔트가 뒤집혀져서 내 발목을 챈다
나는 문명의 미끼인가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의 바퀴
살이 짓이겨지는 줄도 모른 채
실실 웃고 다닌다
이 불안이 즐겁다
이젠 원시의 기억이 내겐 없다
내 몸의 불은
나무의 몸이 낸 게 아니다
광고 전단지나 두꺼운 여성지
반들반들 윤이 나는 오색의 컬러 잉크지가
매운 냄새를 풍기며 피워낸 불
그러므로 내 불의 풍경은 낭만적이지 않다
습기 많은 푸석한 불
불을 품고 날고 싶다
평생 걸리는 긴 겨울을 건너고 싶다
노동하지 않는 내 몸을 가릴 외투를
꼭 껴입고
유리처럼 선정적인 투명함을
성에로 담금질하고 싶다
그러면 나는 차가운 물의 시간에
발을 갖다 댈 것이다
얼음의 심장을 견딘
차가운 불이 되어
잔잔한 물 위를 떠다닐 것이다
이미 떠난 자들의 얼굴이
물 위에 가득 조각되어 있는
어느 시간의 틈을
고요히 건너갈 것이다
시와시학, 200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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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숲

시詩 2006. 11. 29. 15:24

― 兄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제야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무표정한 눈으로 거리를 바라보거나
구석진 골목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그
나는 이제 투사(鬪士)도 아니고 수사(修士)도 아니라던 그
훌쩍 겨울숲에 가겠노라고
버스터미널에 우두커니 서 있을 때
나는 오래도록 그의 등뒤를 서성거렸다
언젠가 술 취한 내 등을 두드리며
다 토해라, 있는 것 다 토해라고
그가 말할 때 나는 몰랐다
이미 목숨까지 다 토한 그를
그래서 끝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던 그는

겨울숲이 오히려 더 따뜻하다고 했다
풍성한 사연들이 모두 마른 채
앙상한 뼈들만 모여 서 있는
그곳이 더 뜨겁다고 했다
겨울숲에서 뜨겁게
뼈를 태우겠노라고,
이미 거죽만 남은 몸,
뼈까지도 아깝지 않다고
쓴 술을 들이키던 그를,
묘비도 없이 바람에 존재를 실어버리는 게
가장 행복한 결말이라고,
정말 시적이라고 말하던 그를
찾으러 겨울숲에 간다
신문에도 남지 않았던 그의 결말은
그가 진정 원하던 것이었다

_시로 여는 세상, 200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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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의 꿈

시詩 2006. 11. 8. 00:43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촛불도 아니고 감나무도 아니다
미끈한 자동차도 아니고
달콤한 솜사탕도 아니다
차갑고 텅 빈 사물에
쇳물을 들이붓고 싶다
나는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이었다
꿈을 꾸면
붉은 별 하나가 내게 떨어지는 사건이었다
손이 데일까 만지지도 못한 별이
마당에 내려와 날 또렷이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엎드려 울지 않겠다
슬픔을 우스운 몸짓으로 과장하지 않겠다
해거름에 사양(斜陽)을 보며 사흘을 울겠다
그러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겠다
그 비밀의 성소(聖所)가 내 집이었다
소멸이
내 먹는 밥이었다

시와세계, 200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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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의 노래

시詩 2006. 2. 14. 15:01
결별의 노래
― 성배(聖杯)를 찾아서

흰 눈을 만나기 위해
폭염을 견디었는지 모른다
먼 기억으로 터져나오는 울음 소리,
도시의 거리와 거리,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엉켜 태연히 입 맞추는 소리,
이 땅은 풀벌레 소리도 서러움이다
마음이 없는 몸을 질질 끌고
미술관으로 가서 꽃 가득한 정물화를 본다
지지 않는 꽃, 수없이 그리워하고 약속했던 꽃
나는 그림 속의 화려한 상징에만 골몰했다
마음이 없는 몸을 질질 끌고
시위대를 지나고 학교를 지나고
걸음을 멈추게 했던 대형전광판을 지난다
역사도 없고 분노도 없는 권태로운 시간을
홑날로 벼리는 젊은 어깨의 그림자
그림자들이 서로 만나 어둠을 만들고
어둠을 지키기 위해 네온사인이 하나 둘 켜진다

어제의 일이 까마득하다
하룻 밤새
이마 위에 주름이 깊어 눈이 감기고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 친다
차가운 결정(結晶),
그 위에 금빛새가 발자국을 찍고
푸드득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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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날의 기록

시詩 2006. 2. 14. 15:00
쓸쓸한 날의 기록
― 정재학에게


무기력하다 했던가
마지막 술잔을 남겨 놓고
우리가 귀가하는 순간
하늘 아래 어디 쯤에선 꽃이 피었을 거다
꽃을 보고도 그걸 표현할 방법을 몰라
그렇게 헤매었던가 우린 한낱
일렉기타의 음률과 철지난 유행가에
더 감상적이었잖은가
네게도 말했지만
나는 백년의 무명을 견딜 것이다
그렇게 철없이 살리라

더 이상 만질 것도, 들을 것도, 말할 것도 없는 어둠
소주 몇 병 먹고 어둠과 말할 수도 있지만
그만한 자족으로 그 어둠 속
텅 빈 공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옥상 위에 올라가 날아 보자
네 몸이 땅에 떨어져 옆구리가 찢어지고
사람들의 입가에 오르내린다 해도
내가 믿는 예수처럼
그 옆구리를 기억할 수 있을까
어느 요절한 시인처럼
흉흉한 소문 속에 네 아픔이 기억될 수 있을까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실패한 서정시인
서럽고 아름다운 자연은 이미 다 해먹고
남은 상상으로 목울대를 울리는,
이제 우리의 가난도 팔지 못하는,

거울 속에서 내 눈을 보았다
무얼 견디는 지도 모르는
몽롱한 얼굴이 날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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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의 집

시詩 2006. 2. 14. 14:59
햇살의 집


햇살이 술을 마신다. 거리는 방금 목욕을 한 것처럼 뽀얗다. 나는 버스 속에 앉아 술에 취해 이글거리는 햇살을 본다. 한 소녀가 버스에 오르며 묻는다. 이 버스는 천국으로 가나요? 햇살이 일그러지고 사람들이 비틀거린다. 광화문 네거리. 한 복판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 동상이 흠칫 움직인다. 칼자루를 놓고 싶다 후손들아! 꽃잎이 비틀거리며 이글거리는 햇살 속으로 날아간다. 차창 밖으로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사람들이 와 좋아한다. 나도 꽃잎이 되고 싶어요! 아가씨가 황급히 벨을 누른다. 햇살은 집이 없다. 사방 어디를 가도 햇살이 누워 있다. 나는 집 없는 햇살이 시큼한 술내를 풍기며 창가로 살짝 몸을 기대는 것을 보았다. 잠이 온다. 저 햇살에 집을 주고 같이 무너져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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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시詩 2006. 2. 14. 14:58
일식


태양이여,
나는 이 큰 우주를 목놓아 불러본 적 없다
용기도 없이 컴컴한 방에 앉아
창틀에 놓인 꽃병들만 바라봤다
어느 날 나는
태양이여, 불러보고 싶었다
늘 곁불만 쬐며 속으로 옹알거리기만 하며
이 엄살의 통각(痛覺)을 갖게 되었다
태양이여, 부르는 순간
내 항문으로 뱀이 숫진 머리를 들이밀고 왔다
온몸이 뜨거워져서 태양에게 다가가도
뜨겁지 않았다
불타지도 않았다

뱀이 태양을 갉아먹을 때,
하나의 꿈틀거리는 숨이 우주를 갉아먹을 때,
네 소멸이 위대한 미학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순간

어느새 뱀의 뱃속에 태양이 들어가 있다
고요 가운데 입을 열고 들어가
한 몸이 된
뜨거운 잉태

나는 큰소리로 태양이여, 불렀다
뱃속에서 울리는 뜨거운 공명

모든 사위는 어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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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 평원을 떠난 새에 관한 이야기


언제부턴가 새는 날지 않았다. 나스카 평원을 유유히 날아 광대한 상상의 틀까지도 슬쩍슬쩍 엿보던 새가, 날지 않게 되었다. 사연은 있었다. 가벼운 날갯짓, 그림자 아래에서 즐기는 종종걸음의 시간이 지나자, 설움이 찾아 왔다. 새의 부리와 발톱이 꺾이고, 허기가 지면 온 몸이 숯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새는, 투명한 옷을 입고 전생의 시간 앞을 오갔다. 수면을 뛰어오르는 물고기나 굴을 빠져나온 뱀을 낚아챌 때마다 한 생이 투명하게 빛 바래는 순간을 보았다. 새는, 눈이 멀었고 노래를 배웠다.

내 스무 살은 노래였다. 거리에서 배운 노래가 목청으로 흘러나올 때, 사람들은 그것을 먼 이방의 방언이라 여겼다. 천둥소리는 더 크게 들렸고, 몸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단 하나의 권능도 없이 숨소리 없는 거리에 서 있었다. 나는, 가볍게 다른 문을 열 수 있을까. 꿈도 없는 잠을 매일 잘 수 있을까. 내 손가락들이 들러붙어 물갈퀴가 되고 이빨은 사자처럼 송곳니만 사납게 솟아난다. 성 꼭대기에 올라 어둠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새의 등에 올라타고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으며 나스카 평원에 새겨넣은 神의 형상을 한눈으로 보고 싶었다. 나는, 어떤 법을 배웠던가. 노래하는 법 말고는 배운 것이 없다. 눈 먼 한 마리의 새가 내 머리칼 속에서 둥지를 틀고 있었다. 새의 전생은 자유였다고 평원을 돌보던 파수꾼이었다고, 그 새가 법을 배웠다.

법을 배우는 순간, 나는 풀이 되었다.
하늘을 날지 못하고 하늘을 바라보는
풀,

나는 오래 전 풀의 고독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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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시詩 2006. 2. 14. 14:51
순례


맨발로 유리밟는 소리를 듣는다. 유리의 머리가 내 발바닥을 찢는 수런거림을 듣는다. 수행자처럼 온 땅을 모두 밟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땅은 너무 넓어. 내 온기가 기댈 곳은 건물과 건물 사이, 그 사이의 위태로운 희망, 그리고 낯선 꿈들뿐.

내가 밟는 유리의 온기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 뜨거운 감촉. 두꺼운 군살을 비집고 환한 몸으로 날 찾아오는 신비. 유리를 밟으며 축제를 연다. 붉은 포도주가 흐르는 식탁. 얼굴에 분칠을 하고, 혀에 피어싱을 하고, 히피처럼 연기를 피워올린다. 치렁치렁한 푸른 옷을 입고, 방안을 빙빙 돈다. 사각사각 유리가 몸 안에서 춤을 춘다. 두려움은 없다. 정작 두려움은 예언자의 눈, 인디언의 귀, 언고기를 사각거리는 알라스카의 몽골리안을 그리워하는 것. 生의 분노도 잊은 채, 태평하게 먼 이방의 전설을 말하는 내 입술.

맨발로 유리밟는 소리를 듣는다. 유리가 내 몸을 돌고 돌아 검붉은 내장을 모두 만난다면, 늦은 밤 가냘프게 흔들리는 마음까지 싹둑 잘라버린다면, 나는 백치가 되리. 내 몸이 된 유리. 너의 촉감밖에, 소리밖에 모르므로 나는 불구다. 저기 저쪽, 나처럼 맨발로 유리 밟으러 가는 젊음들. 땡볕 아래 꽃들이 붉은 햇살을 게워내고 있다.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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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시詩 2006. 2. 14. 14:49
수선화


한밤중이 되면 내 몸에 수선화가 핀다, 방 안의 모든 소리가 잠을 잘 무렵이면, 내 몸에 꽃씨 앉는 소리가 들린다, 간지러워, 암술과 수술이 살 부비는 소리가 사물거리며 온몸에 둥지를 틀고, 어머 꽃피네, 마른버짐처럼, 간지러운 꽃이 속옷 새로 피어나네, 내 몸에 피는 꽃, 어머 내 몸에 핀 꽃, 나르키소스의 영혼이 노랗게 물든, 수선화가 핀다, 아름다운 내 몸, 노랑 꽃파랑이 쓰다듬으며 어깨에서 가슴을 지나 배꼽으로 핀 꽃과 입맞추고, 시커먼 거웃 사이에도 옹골지게 핀 꽃대 잡는다, 아아, 아 에코가 메아리치네, 아름다운 내 몸, 거울에 비추어, 아아아 에코가 흐느끼네, 내 몸이 하분하분 물기에 젖네, 꽃들이 더펄거리며 시들어가네, 나르키소스여 내 몸에 오지마소서 五慾에 물든 몸 꽃피게 마소서
한밤중이 되면 내 몸에 수선화가 핀다 방 안의 모든 소리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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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나무 숲

시詩 2006. 2. 14. 14:48
빌딩나무 숲


그 숲엔 풍경이 없다
나무와 새 온갖 풀벌레가 가득하지만
그들은 소리내지 않는다
사방을 둘러봐도 제자리만 지키고 선
가장 그럴듯한 포즈의 마네킹들
그곳엔 소리가 없다
어머니, 하고 부르면 침묵만 되돌아와
귓가엔 내 목소리만 자욱이 앉아 있다
숲속에서 숨이 막혀 한참을 내달았다
소리를 지르고 실컷 울고는,
그루터기에 앉아 부풀어 오르는 힘줄들을 만졌다
나는 나를 만지고 한없이 그리워져
나무에게로 간다
새에게 말을 건다
자애는 폐허, 라고 되뇌이는 시간들
내 힘줄을 내가 끊어도 고통스럽지 않은 곳,
그곳엔 아무도 없다
있다면, 침묵이 있다
아무도 면회오지 않는 숲에서
나는 이교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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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자리

시詩 2006. 2. 14. 14:46
사수자리


밤이 되면 말을 타러 갔었지
잠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깊은 동굴이었지
따뜻한 물 흐르는 동굴에서
서둘러 어둠을 껴입었지
찰박찰박, 어둠 사이로 붉은 등을 내비치는 탯줄
그 고요의 심지에 불을 당기고
입술을 오므려 휘파람을 불었지
나는 말을 부르는 소리부터 배웠지
탯줄이 사위를 밝히고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나는 편자를 갈고 있었지
등불을 들고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같았지
빛이 어둠을 갉아먹기 시작할 때
하늘에서 별이 하나씩 떨어졌지
말이 내 앞에 와서 가쁜 숨을 고르고 있었지
떨어지는 별에 맞을까 두려워 말에 올라 탔지
어둠 속으로 달렸지
손엔 활이 들려져 있었고
다리가 말의 몸에 심겨졌지
말과 나는 한 몸이 되었지
그제야 예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어둠 속엔 많은 별이 있었지
십자가 없는 어둠,
그 불안한 시간 속에서
별을 보며 내 형상을 기억했지
가끔씩 구름에 가려 별이 안보이면
활을 쏘았지 허공 속에서 비명이 들려왔지
꺼지지 않는 촛불의 위태로움을
말 위에서 견디는 삶
그곳엔 조용한 잠도 없었지
열두 밤이 지나자 황도십이궁의 한 모퉁이에
나는 떨어졌지

새벽녘 어머니가 내 머리칼을 만지고 있었지
나는 쭈글해진 어머니 배에 귀를 갖다 댔지
말발굽 소리와 활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지
그 큰 어둠을 품고 어머니는 새벽기도를 가셨지
나는 어머니가 믿는 神의 안부가 궁금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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