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 달린 존재들의 고통


문혜원
(문학평론가)



1. 혼란과 응시, 단절등단작에서 섬세한 감각과 다듬어진 어휘를 보여주었던 이재훈의 신작시는 평면적인 진술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어 있다. [수선화], [Big Bang]에서 감지되던 개인의 신화적인 공간은 사라지고, 일상 속의 현실적 자아가 직접 얼굴을 내민다. [빌딩나무 숲], [아마도 일상적으로 돌아갈 공복의 새벽에 관하여]에는 문명의 숲에서 살아가는 시인의 피곤과 상실감이 짙게 배어 있다. 관계는 단절되었거나 애초에 맺어져 있지 않다. 그는 잠시 낯선 것들과 함께 하는 관계 속에 놓여보지만(“어둠 속에선 낯선 냄새와/낯선 속삭임이 더 경이로워/아, 백치 곰보라도 함께 노래하는 밤”;[아마도 일상적으로 돌아갈 공복의 새벽에 관하여]), 밤이 지난 후 더욱 허무해진 ‘공복의 새벽’으로 되돌려진다. 그리고 다시 무관계성 속에 홀로 남겨진다. 그것이 나르시소스적인 색깔을 띠고 있는 것은 [수선화]나 마찬가지이지만, 그의 최근의 시는 좀더 건조하고 허무한 세상으로 밀려나온 듯하다.

- 문혜원, <뿔 달린 존재들의 고통>중에서, 현대시 2004년 1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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