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몰록의 기계들

  과열된 기계는 멈추지 못한다. 불타는 제물처럼 우리를 고갈시키고 쓰러뜨리는 기계는 악마적으로 가동된다. 일상의 회전벨트에 실려가며 비명을 지르는 커다란 입은 이 세계의 균열이다. 마치 황량한 패잔병들이 널부러진 전쟁터처럼 지친 술꾼들이 창백하게 널려있는 황량한 대도시를 상상해보라. 버겁게 가동되는 세계를 견뎌내기 위해 우리는 서로에게 치명적인 이방인이 되어가며, 서로를 배신한다. 몰록신은 불가능한 업무를 강요하는 보스의 모습 혹은 의사당과 스타디움 어디든 모습을 감추고 있다. 우리는 이 세계가 주입한 성공의 신화를 위해 상관의 호의를 부적처럼 훔치고, 파멸이 예정되어 있는 사랑의 장소를 받아들인다. 경쟁에 지친 아이들은 유서를 쓰고, 밤마다 기어드는 스크린은 흡혈귀의 칼날을 쏟아낸다. 공포가 오락이 되고, 사랑은 기계인형을 껴안고, 법은 상습적인 부패로 물들어있다. 몰록신은 철저히 시스템 속으로 스며들어 보이지 않는다. 몰록신의 음성은 시끄러운 메탈음 속으로 스며들고, 악마의 눈은 시뻘건 네온빛으로 번득인다. 심야에 달라붙은 게임모니터들, 아직도 더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오만한 계산대들, 진실이 결핍된, 그저 모든 것을 잊고 참아내야 하는 세계에 몰록신은 서 있다.
  이렇게 알 수 없는 악의 기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진실한 언어를 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세계는 늘 투명한 ‘유리’처럼 신념과 확신을 흩뿌리지만, 그것은 결코 온전한 진실은 아니다. 이재훈의 시는 이 무서운 세계의 화려함과 그 이면의 어두움을 마주 대하며 자주 어떤 ‘진실’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고 있다. 시 속의 화자는 마치 수난을 앞둔 메시아처럼 혹은 긴즈버그의 <울부짖음>처럼 “북한산 밑에서 밤새도록 통곡의 기도를 하지. 항문에서 시커멓게 멍울진 피가 흘러내리지. 나무를 움켜잡고 소리를 지르지”(이재훈 <순례2>)만 “악령의 창”같이 존재를 찔러대는 통증은 멎지 않는다. 시인에 의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대환란’의 날이다. “수만의 별을 넘어”가도 안전한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악의 암운에 뒤덮힌 말세처럼 시 속의 화자는 “나는 눈물도 흘리지 않고 사람을 죽였”(이재훈 <공중정원3>)다는 범죄의 자기증언을 토해놓고 있다. 모호한 악의 기류에 오염되어가는 세계의 초현실적인 위험을 그는 감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편의 시를 읽어보기로 하자.  

  맨발로 유리밟는 소리를 듣는다. 유리의 머리가 내 발바닥을 찢는 수런거림을 듣는다. 수행자처럼 온 땅을 모두 밟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땅은 너무 넓어. 내 온기가 기댈 곳은 건물과 건물 사이, 그 사이의 위태로운 희망, 그리고 낯선 꿈들뿐.

  내가 밟는 유리의 온기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 뜨거운 감촉. 두꺼운 군살을 비집고 환한 몸으로 날 찾아오는 신비. 유리를 밟으며 축제를 연다. 붉은 포도주가 흐르는 식탁. 얼굴에 분칠을 하고, 혀에 피어싱을 하고, 히피처럼 연기를 피워올린다. 치렁치렁한 푸른 옷을 입고, 방안을 빙빙 돈다. 사각사각 유리가 몸 안에서 춤을 춘다. 두려움은 없다. 정작 두려움은 예언자의 눈, 인디언의 귀, 언고기를 사각거리는 알라스카의 몽골리안을 그리워하는 것. 生의 분노도 잊은 채, 태평하게 먼 이방의 전설을 말하는 내 입술.
(이재훈 <순례> 부분)

  시 속의 순례자는 “온기가 기댈 곳은 건물과 건물 사이, 그 사이의 위태로운 희망, 그리고 낯선 꿈들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붉은 포도주가 흐르는 식탁. 얼굴에 분칠을 하고, 혀에 피어싱을 하고, 히피처럼 연기를 피워올”리는 광폭한 유희 속에서도 그는 ‘그리움’을 버리지 못한다. 세속도시에 파묻혀 환락과 탕진으로 고갈되어가는 존재에게 “예언자의 눈, 인디언의 귀”같은 것은 너무나 갈망이 지독해서 도리어 두려워지는 꿈이다. 결국 “生의 분노도 잊은 채, 태평하게 먼 이방의 전설을 말하는 내 입술”은 진실의 땅을 어듬어 찾는 ‘순례’를 꿈꾸지만 궁극적으로 ‘관’같은 일상의 공간으로 다시 기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일상이라는 지능적인 시나리오에 빼앗긴 네 몸을, 경멸한다”(이재훈 <아마도 일상적으로 돌아갈 한 얼굴의 죽음에 관하여>) 결국 이 세계가 부여한 장소에서 지능적인 시나리오에 따라 꼭두각시 배역을 고수해야만 하는 일상의 작동자는, 몰록신의 기계요 사이보그(cyborg)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존재의 행동, 사유 모든 것을 세계의 가동모드로 전환시키는 잔혹한 힘의 지배 속에, 존재가 상실한 것은 무엇이고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번뇌로운 질문이 끌려나오는 것이다.

- 현대시, 2007년 3월호 부분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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