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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에 매달려 있다가/툭,/떨어진 애벌레.//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온 생을 바쳤다.//늦은 오후./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그림자 잦아들고/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나비 한 마리./공중으로 날아간다.//풀잎이 몸을 연다.`
살벌한 세상과 사투를 벌이듯 살다 초라하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 남자의 숙명을 애벌레에 비유했다. 숨 막힐 정도로 끊임없이 옥죄는 사회에서 버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는 수컷의 피로감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민음사 펴냄) 속에는 도시 노동자의 핍진한 삶과 성찰이 담겨 있다. 거대한 기계의 부품처럼 존재감 없이 그저 살아내는 데 급급한 일상이 황량하게 펼쳐진다. 지하철과 버스, 독서실, 골목 등 시인의 일상 공간 속에서 느낀 소외감과 외로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시인은 각박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상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 남자를 명왕성에 빗댔다. 궤도가 불안정하고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퇴출된 명왕성 사건을 떠올린 것이다. 도시에서 버려지지 않기 위해, 구원받기 위해 넥타이를 매고 만원 지하철에 오르는 남자의 하루가 시 `매일 출근하는 폐인`을 통해 애잔하게 다가온다.
현실은 비루하지만 시인은 비관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정확하게 인지한다. 도피하려 하지도 않는다. 시 `명왕성 되다`를 통해 오히려 현실을 초월적 공간으로 바꿔 놓는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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