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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두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 출간
도시순례자의 눈으로 본 세상
명왕성 되다 / 이재훈 지음 / 민음사 펴냄
기사입력 2011.08.12 17:02:4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참 애처롭고 쓸쓸하다. 도시 남자의 일생이 애벌레처럼 느껴지다니. 이재훈 시인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수컷의 고충을 시 `남자의 일생`으로 토로한다.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툭,/떨어진 애벌레.//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온 생을 바쳤다.//늦은 오후./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그림자 잦아들고/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나비 한 마리./공중으로 날아간다.//풀잎이 몸을 연다.`

살벌한 세상과 사투를 벌이듯 살다 초라하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 남자의 숙명을 애벌레에 비유했다. 숨 막힐 정도로 끊임없이 옥죄는 사회에서 버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는 수컷의 피로감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민음사 펴냄) 속에는 도시 노동자의 핍진한 삶과 성찰이 담겨 있다. 거대한 기계의 부품처럼 존재감 없이 그저 살아내는 데 급급한 일상이 황량하게 펼쳐진다. 지하철과 버스, 독서실, 골목 등 시인의 일상 공간 속에서 느낀 소외감과 외로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시인은 각박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상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 남자를 명왕성에 빗댔다. 궤도가 불안정하고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퇴출된 명왕성 사건을 떠올린 것이다. 도시에서 버려지지 않기 위해, 구원받기 위해 넥타이를 매고 만원 지하철에 오르는 남자의 하루가 시 `매일 출근하는 폐인`을 통해 애잔하게 다가온다.

`의욕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미소를 연습한다. 수많은 거울 앞의 표정들. 낯선 얼굴, 낯선 침묵.//다른 말은 없다./너를 자위케 하던 기호들. 새, 별, 그리고 꽃과 나무. 아무 생각 없이 잠들 수 있었던 그대, 라는 말을 향해.(중략) 나는 육십억 분의 일일 뿐. 페트병에 가득 담긴 담배꽁초와 찌그러진 맥주 캔. 먹다 남긴 컵라면. 참기 힘든 소음. 역겨운 화장 냄새와 비둘기 똥 냄새로부터.//계곡의 하얀 물보라를 헤치고, 난파된 얼음 위에 올라서 저물어 가는 사람들의 삶을 감상하고 싶다. 그러면 아주 쓸쓸하겠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아무도 없이 고독하겠다.(중략)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밤의 형벌이었다.`

현실은 비루하지만 시인은 비관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정확하게 인지한다. 도피하려 하지도 않는다. 시 `명왕성 되다`를 통해 오히려 현실을 초월적 공간으로 바꿔 놓는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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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생태와 내면의 쓸쓸한 풍경


이재훈 시집 '명왕성 되다' 발간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Plutoed(명왕성 되다)'는 미국 방언협회에 의해 '2006년의 단어'로 선정된 신조어다. 국제천문연맹(IAU)이 명왕성의 태양계 행성 지위를 박탈한 뒤 'Pluto(명왕성)'라는 단어에 '가치를 떨어뜨리다, 소외되다'는 의미가 추가됐다.

시인 이재훈(39)은 도시 속 익명과 소외를 드러내는데 이 단어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2005년 이후 6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민음사 펴냄)에서다.

시인은 이 시에서 출퇴근길 지하철 2호선을 탄 도시 생활인의 팍팍한 정신세계를 전했다. 이 '도시인'은 주변 제약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눈만 감고 만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중략)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 소리. 단추 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명왕성 되다(Plutoed)' 중)

시인은 이처럼 시집에서 도시를 탐구 대상으로 삼았다. 도시의 생태와 자신의 내면을 결합해 쓸쓸한 풍경을 그렸다.

"의욕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미소를 연습한다. 수많은 거울 앞의 표정들. 낯선 얼굴, 낯선 침묵. (중략) 나는 육십억 분의 일일 뿐. 페트병에 가득 담긴 담배꽁초와 찌그러진 맥주 캔. 먹다 남긴 컵라면. 참기 힘든 소음. 역겨운 화장 냄새와 비둘기 똥 냄새로부터.('매일 출근하는 폐인' 중)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고 노래한 '남자의 일생'은 이 시대에 남자로 살아가는 고충을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과정으로 씁쓸하게 비유했다.

제약과 구속에 시달린 시인은 마침내 초월을 꿈꾼다. 하지만 그 시도는 현실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초월적 공간을 꿈꾼다. '근원'을 찾는 것이다.

"나는 근원을 바랐다./기적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중략) 언덕이 있는 곳은 월곡(月谷),/달빛이 있는 골짜기다./언덕을 오르고/또 한 언덕을 오르면/마치 기적처럼 달빛에 닿는,/존재의 비밀을 한순간에 깨칠/그런 순간이 올 수 있을까."('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 중)

문학평론가 조강석은 "이 시집의 기저를 맴도는 덩어리진 목소리는 일용근로자의 피로와 백수건달의 자책과 독학자의 자부심과 시인의 기상이 한데 배어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48쪽. 8천원.

c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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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4월 18일 (월)
우리시대 시인 서른다섯 명을 만날 수 있는 대답집으로 월간 <현대시> 부주간인 이재훈 시인이 지난 2001년부터 올해 봄까지 시인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이미 작고한 작고한 김춘수, 오규원, 박찬 시인을 포함해 정호승, 남진우, 여정, 고진하, 성선경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말하는 시와 시인이란 무엇인지 알아 볼 수 있는 기회제공한다.
■ 나는 시인이다
이재훈 지음  | 팬덤북스 펴냄 | 570쪽  | 18,000원

[한국일보] 4월 1일 (금)
▦나는 시인이다 이재훈 지음. 월간지 현대시 부주간이자 시인인 저자가 35명의 시인과 만나 나눈 대담집. 시인의 내밀한 육성을 들을 수 있다. 팬덤북스ㆍ576쪽ㆍ 1만8,000원

[조선일보] 4월 11일 (월)
이재훈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
'현대시' 부주간인 이재훈 시인이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팬덤북스)를 펴냈다. 김춘수 허만하 이승훈 유안진 오규원 정호승 한영옥 최동호 원구식 김정환 남진우 이사라 허연 강정 김소연 여정 등 시인 35명과 만난 인터뷰와 대담이다.

[연합뉴스] 3월 31일 (목)
▲나는 시인이다 = '현대시' 부주간인 이재훈 시인이 서른다섯 명의 시인과 만나 나눈 대담을 정리했다.
   2001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뤄진 대담은 김춘수, 오규원, 박찬 등 작고 시인부터 유안진, 정호승, 최동호, 김정환, 남진우, 이재무, 김영남, 여정 등 활발히 활동 중인 시인까지 다양한 시와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팬덤북스. 576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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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리브로> 5월호 인터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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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가 김수영을 질투한 까닭
이재훈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 출간
기사입력 2011.03.31 17:01:10 | 최종수정 2011.03.31 19:47:50
http://news.mk.co.kr/v3/view.php?year=2011&no=2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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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詩人)은 詩(시)이기도 하고 人(사람)이기도 하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이재훈의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팬덤북스 펴냄)는 시인들의 이 두 가지 면모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모두 35명의 시인을 만나 그들의 시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만난 시인은 김춘수 오규원 박찬 등 이미 세상을 떠난 시인부터 이승훈 정호승 남진우 김소연 강정 김태형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까지 연령별로 다양하다.

"김수영의 `풀` 같은 작품을 보면서 내가 써보고 싶었던 것을 벌써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종의 라이벌 의식, 질투가 생긴 거지요. 나보다 선수를 쳤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의식적으로 더 내면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고(故) 김춘수 시인은 "내 본래 의식은 역사허무주의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1960년대 김수영이 참여의 길을 가게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그 반대 진영 쪽이라 할 수 있는 내면세계로 더 침잠한 것은 아닌가"라는 저자의 질문에는 "그 말이 옳다"며 수긍한다.

"현실에 부딪히면 현실에 대한 울분 같은 것도 또 있는 것"이지만 김수영이 이미 그런 시들을 썼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더 내면으로 들어오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내 생애에 시인으로서 라이벌 의식을 가진 시인은 그 사람(김수영)뿐"이라고 고백한다.

그런 김춘수 시인은 이승훈 오규원과 더불어 우리 시사(詩史)에서 독창적인 시적 방법론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김춘수의 무의미시와 이승훈의 비대상시, 오규원의 날이미지시는 각각 고유한 방법론을 가진 독특한 시론.

하지만 각 시론의 차이와 특성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시인의 시론을 당사자의 육성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고(故) 오규원 시인은 김춘수의 무의미시론과 비교하며 자신의 날이미지시론을 설명한다.

"무의미시는 `무의미를 지향`하고, 날이미지시는 `의미를 지향`하는 시입니다. (무의미시에서는) 시의 내용이 무의미하니까 시인은 시의 형태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반면) 날이미지시는 사변화되거나 개념화되기 이전의 의미, 즉 관념화되기 이전의 의미를 존재의 현상에서 찾아내 이미지화하는 시입니다."

대담을 진행한 저자가 시인이라는 점은 독자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시와 시인의 관계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그는 꼭 물어야 할 것을 묻고, 꼭 들어야 할 것을 들었다. 그 덕분에 독자들은 시인들의 일상부터 유년 시절, 시인의 시 세계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승훈 시인은 자아 탐구, 모더니즘과 해체 그리고 선(禪)에 이르기까지의 삶과 문학 여정을 밝히고, 유안진 시인은 시를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유년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고교 문사에서 문학청년 시절을 거쳐 등단하기까지의 과정을 풀어놓는 정호승 시인과 쇳물은 물도 불도 아니라는 연금술적 상상력을 보이는 노동자 시인 최종천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 밖에 30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로 찬사를 받은 허만하 시인, 독특한 자유주의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정환 시인, 시인이자 명기타리스트로 문학적 순교를 꿈꾸는 원구식 시인, 사과나무 아래로 귀환한 오르페우스의 꿈을 꾸는 남진우 시인, 사물보다는 사물과 사물 사이 어떤 한 세계보다는 세계와 세계 사이에 자꾸 시선이 간다는 김소연 시인 등 그들이 밝히는 독특한 사유와 시론을 만나보는 것도 흥미롭고 의미 있다.

또한 1992년 `현대시세계`로 같이 등단해 우리 시의 확장성을 선보이는 동년배 시인 강정과 김태형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시는 시인에게서 나오고, 시인은 시로 세상을 산다. 그래서 시인의 머리와 가슴을 직접 열어보이는 이 책을 읽다보면 어렵게만 느껴졌던 시가 어느새 곁에 다가와 자리 잡고 앉는다.

[정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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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나는 시인이다 / 이재훈
시인에게 시란?
김상훈 기자 icon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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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다 / 이재훈
김춘수(1922~2004) 시인은 "김수영(1921~1968) 시인이 평생의 라이벌이었다"고 했다. 그는 실제 김수영과 만난 적은 없었다. 서울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김수영 집으로 전화를 했던 김춘수. 김수영은 당시 집에 있었지만 만취해서 전화를 도저히 받을 수 없었다. 두 라이벌의 만남은 그렇게 미완으로 끝났다.

김춘수는 왜 김수영을 라이벌로 생각했을까.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몸소 겪어야 했던 김춘수는 이데올로기, 사상, 역사에 대한 회의감을 많이 느꼈다. 그것은 그가 평생 역사허무주의자란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이유였다. 물론 현실에 대한 울분으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란 시를 쓰기도 했지만 그의 본래 의식은 역사허무주의였다.


고 김춘수·허만하 등 35명 대담
'시론·개인사' 생생한 육성 담아

김춘수 시인은 라이벌로 여겼던 김수영 시인(오른쪽 작은 사진)이 참여 시인의 길을 걷자 내면세계를 더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부산일보DB

역사와 현실의 문제에 등을 돌렸던 김춘수는 1968년 김수영의 '풀'을 보게 됐다. '풀'은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풀에 빗대어 쓴 시로 김수영을 대표적인 참여 시인으로 만든 작품. 김춘수는 '풀'을 보며 '내가 써보고 싶었던 것을 벌써 썼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라이벌 의식과 질투심을 느꼈다. '나보다 선수를 쳤구나' 하는 생각에 김춘수는 더 의식적으로 내면세계에 침잠하게 됐다. 김수영은 '풀'을 쓰고 나서 보름 만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았던 김수영은 김춘수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자극을 줬다.

1999년 허만하 시인이 3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들고 문단에 다시 나왔을 때 한국 시단은 경탄의 눈빛을 보냈다. "어설픈 사고와 감상의 대중적 푸닥거리와 쉬운 위안이 유행하는 시대에 이만큼 깊이 생각하고 끈질기게 생각하는 시인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김우창)" "지난 천 년의 막바지에 마치 스톤헨지의 유적처럼 발굴되었다(정과리)" 등 호평이 이어졌다.

부산 고신대 의대교수를 지내며 병리학자와 시인의 길을 걸어온 허만하 시인. 그는 두 가지 길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끌어왔을까. 그는 "내가 시를 지켜주기도 했지만, 시 또한 나를 지켜 주었다"고 했다. 그는 생활인과 예술인의 길이 공존했던 30년 간 삶의 궤적을 데리다의 말로 압축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독립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의지해서 존재하는 상관적 존재'라는 사실!

유안진 시인은 대학 2학년 때 시작 노트를 들고 박목월 시인을 찾았다. 그는 박 시인과 설렁탕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됐다, 소금 그릇이 박 시인 그릇 옆에 있자 유 시인은 그것을 가져올 용기가 없어 설렁탕을 맹탕으로 먹었단다. 그 과정을 알고 있었던 박 시인은 그 일을 훗날 수필로 썼다. 유 시인에 대해 '저렇게 숙맥인 걸 보니까 시는 제대로 쓰겠구나'라는 평가를 남겼다. 그 뒤 유안진 시인은 박목월 시인이 '현대문학'에 추천한 10명 안팎의 시인에 드는 영예를 누렸다.

'나는 시인이다'는 월간 '현대시' 부주간인 저자가 2001년부터 10년간 시인들과 나눈 이야기를 묶은 대담집이다. 저자는 이미 작고한 김춘수, 오규원, 박찬 시인을 포함해 허만하, 서규정, 배한봉, 성선경과 같은 부산·경남지역 시인 등 35명을 인터뷰했다. '현대시', '유심' '열린시학' 등 문학잡지에 실렸던 원고들을 모았다. 시인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시와 시론, 내밀한 개인사를 접하고 나니 그들의 시들이 새롭게 보인다. 이재훈 지음/팬덤북스/570쪽/1만8천 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newsId=2011040100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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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 머무는 풍경

눈에 대한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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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눈을 밟는다

눈이 시린 풍경을

꾹꾹 밟는다

그러나 눈은

온전히 밟혀지지 않고

자꾸만 발등 위로

심지어 무릎까지

올라온다

제 존재를

떠올리려 한다

덮어야 할

밟혀야 할 운명을

내 발걸음에 의탁한 채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눈이 떠올라

내 발목을 쥐고

너도 나처럼

떠올라라

떠올라라

머리 위까지

눈이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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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고 편하게 드러눕는 가을 들판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해남 땅끝 마을에서 배를 타고 도착하는 노화도는 의외로 큰 섬이지요. 섬의 들판이 왠지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남다른 정경이 오히려 가슴에 다가옵니다. 노화도를 거쳐 새로 놓인 대교를 건너 보길도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세연정을 만나게 되지요. 인공과 자연의 절묘한 조화가 산뜻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곳, 고산의 이상향이 구현된 공간이지요.

한때 갈급함을 가지고 이재훈 시인이 찾아갔던 곳이기도 하구요. 많은 노비를 거느리고 윤선도가 가꾸었던 보길도 원림. 윤선도 사후에 불만이 극에 달했던 노비들이 보길도 정자를 모두 불태우고 노화도로 도망갔다는 설도 있지요. 그래서 노화도(蘆花島)는 원래 노비들의 섬 또는 노화도(奴火島)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통과의례처럼 노화도를 반드시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보길도는 눈앞의 현실입니다. 시인은 보길도에서 며칠을 보내고, 다시 숨 막히는 도시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담담히 한 편의 글로 적은 적이 있지요.

다소 엉뚱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습니다. 시인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기 위해 한참 에돈 셈이지요.

시인은 결락의 공간을 걷습니다. 눈에 덮인 길, 겨울의 중심을 향해 나아갑니다. 꾹꾹 눈을 밟으며 걷는 길 위에서 시인은 상념에 젖습니다. 아마 시인은 천천히 길을 정독하며 걸었을 겁니다. 바쁘게,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며 쫓기듯 달아나듯 걷는 그런 걸음이 아니지요. 한 걸음 한 걸음 시간의 풍경 위에 마음의 그림자를 길게 늘이며 걷는 걸음이겠지요. 천천히 느리게 걸으면서 삶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인의 지난한 몸짓을 얼핏 엿볼 수 있지요. 느림은 도태나 일탈이 아니라 내적 통찰이요 다른 사물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일이지요. 숨 막혀 하는 영혼에게 숨통을 터주는 일이기도 하구요.

시인은 걸을 때마다 튀어 오르는 눈송이들을 보고 ‘제 존재를 / 떠올리려 한다’고 말합니다. 한낱 눈뭉치에 지나지 않지만 시인의 눈에 눈뭉치는 예사 사물이 아닙니다. 어엿한 생물이지요. 한없이 하늘을 떠돌다 겨우 지상에 내려앉은 눈송이들이 자꾸 치받고 올라옵니다. 시인은 그것을 ‘조용한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눈송이들이 살아나 말을 합니다. 그 말을 시인은 귀담아 듣습니다.

시인의 영성과 예민한 촉수는 세상 만물의 속삭임과 미세한 몸짓 하나까지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주술사요 어릿광대인지도 모릅니다. 이집트의 왕이나 로마의 황제들은 어릿광대에게 자문을 구하는 일이 있었지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의 황실에는 많은 어릿광대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사제나 주술사만큼 존중을 받았습니다. 어릿광대는 왕이 습관적 사고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거리낌 없는 풍자와 농담을 던졌고, 이들의 조언은 신선한 사고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지요.

오늘날 시인도 독자들의 관습적 사고에 정서적 충격을 가합니다. 이재훈 시인 역시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뒤집어 새로운 삶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걸을 때마다 튀어 오르는 눈송이들의 ‘조용한 혁명’을 보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눈송이들이 입을 열어 말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너도 나처럼 / 떠올라라 / 떠올라라’

눈송이들은 내면과 사물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없는 현실의 아수라를 차고 올라 떠오르라고 합니다. 현실의 바닥에서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비상하는 삶의 방식이지요. 시인은 첫 시집의 후기에서 “내 말이 간신히 시가 되는 이유는 눈물을 애써 감추기 위해 부족의 동화(童話)를 꿈꾸기 때문이다.”고 말합니다. 시인이 낯선 이방인으로 떠돌며 꿈꾸는 저곳은 어디일까요? 이 가을에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_ 출처 : http://www.digitalpo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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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있는 아침

 

‘남자의 일생’ 부분
- 이재훈 (1972~ )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진 애벌레.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
온 생을 바쳤다.
늦은 오후.
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
그림자 잦아들고
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



양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음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나는 음지를 좋아하는 편이다. 저녁에도 불끄고 있기를 즐겨 한다. 안경도 색이 들어간 안경을 주로 쓴다. 햇빛 알레르기가 없다고 할 수 없다. 햇빛을 싫어하는 마음도 햇빛 알레르기의 일종이다. 이재훈은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 온 생을 바치는 것을 “남자의 일생”이라고 했다. 혹시 여자는 현실주의, 남자는 이상주의(혹은 낭만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낭만주의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욕을 그동안 많이 들었다. ‘현실에 대한 적극적 외면’이라고 말하면 점잖은 표현이 된다. 현실주의도 나무랄 생각은 없다. 현실주의가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고 잠을 재웠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법. 나는 요즘 햇빛이 들라치면 차양을 거두어 올린다. 햇볕을 쬐고 싶어서.
<박찬일 시인>
2008. 11.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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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 이재훈(1972~ )

내 몸은 미끈한 살덩이였다. 푸른 잎사귀에 숨은 청개구리처럼, 천형을 가진 작은 울음이었다. 봄이 되자 몸이 조금씩 부풀어올랐다. 탕자의 우리 속에서도, 소문 무성한 저잣거리 에서도, 밟히지 않고, 물도 먹고, 햇살도 받았다. 미치도록 긴 가뭄이 찾아왔을 때, 내 살갗이 벗겨졌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가시가 솟아나왔다. 나도 모르게 자꾸 어딘가를 찌르고 싶도록 붉게 성난 가시. 그러나 난 그 가시를 감춰야 했다. 매일매일 가시를 깎아냈다. 미끈한 살덩이 속에서 가시들이 서로를 찌르는 소리. 아침에 일어나면 검은 피 먹은 가시가 턱밑으로 삐져나와 있다. 




빗소리를 들으며 잔다. 빗소리를 듣기 위해 자는 것인지 자기 위해 빗소리를 듣는 것인지. 나방이 유리창에 제 몸을 찧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잔다. 간혹 꿈의 껍질을 두드리는 비명소리. 내 최초의 몸은 미끈한 살덩이. 천형을 가진 작은 울음. 푸른 잎사귀에 숨은 청개구리. 기억을 달래주며 내리는 비가 평화의 모체가 되듯, 꿈에 비명이 가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빗소리 그치고 긴 가뭄이 찾아와 벗겨진 살갗과 어딘가를 찌르고 싶은, 붉게 성난 가시. 감추고 깎아내도 마침내 가시끼리 서로 찌르는 도저(到底)한 분노. 생의 근육이 빠져나가는 밤. 자존(自尊)에 박힌 가시 흉스럽게 가문 밤에 곤두서고, 죄를 덮는 사랑은 오지 아니하여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할 때, 두려움 없이 만드는 용서는 어디에 있는가. 기적이 세계를 목 놓아 불러 평화를 부를 때 검은 피 먹은 가시 끝끝내 턱밑으로 삐져나오고 있는데.  <박주택·시인> _ 200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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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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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시] 쓸쓸한 날의 기록





 

무기력하다 했던가

마지막 술잔을 남겨놓고

우리가 귀가하는 순간

하늘 아래 어디쯤에선 꽃이 피었을 거다

꽃을 보고도 그걸 표현할 방법을 몰라

그렇게 헤매었던가 우린 한낱

일렉기타의 음률과 철 지난 유행가에

더 감상적이었잖은가

네게도 말했지만

나는 백 년의 무명을 견딜 것이다



- 이재훈, '쓸쓸한 날의 기록' 중에서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문학동네, 2005)


= 젊은 시인의 우수에 찬 내면을 읽는다.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동상이몽 아닌가. 이상을 추구하지만 현실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젊음, 하지만 때로는 이상을 위해 현실을 내팽개칠 때도 있다. 그 몽상의 역동적인 작동이야말로 삶이라는 뿌리와 싹의 본질에 피를 돌게 하는 근원일 것이다. 시의 우주적인 힘도 그 변화와 굴곡에서 태어날 것이니! 무명이여, 백 년 동안 쓸쓸하라. 배한봉/시인

/ 입력시간: 2008. 01.21. 11:06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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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사 2007. 3. 15. 11:33

[경남신문 / 시가 있는 간이역 12] 눈-이재훈
 
 
 
 
눈 / 이재훈

눈을 밟는다
눈이 시린 풍경을
꾹꾹 밟는다
그러나 눈은
온전히 밟혀지지 않고
자꾸만 발등 위로
심지어 무릎까지
올라온다
제 존재를
떠올리려 한다
덮어야 할.
밟혀야 할 운명을
내 발걸음에 의탁한 채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눈이 떠올라
내 발목을 쥐고
너도 나처럼
떠올라라
떠올라라
머리 위까지
눈이 날린다

-이재훈. <눈> 전문.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문학동네. 200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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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이다. 눈이라도 내려 덮어주었으면 좋겠는데. 눈 내리지 않으니 눈 대신 눈에 대한 시 한 편 읽어보자. 세상길이 아무리 탁류라 해도 멈출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다리 아파도 함부로 쉴 수도 없는 것이 우리네 길 위의 삶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조용한 혁명’이다. 섬세함이다. 시인의 시선을 보라. 내리는 눈이 아니라 쌓여 밟히는 눈을 주목하고 있다. 그리하여 ‘밟혀야 할 운명’을 가진 눈이 밟는 자의 힘 반동을 이용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본다. 아름다운 눈의 혁명. 우리도 가만히 속삭여 보자. 떠올라라. 날아올라라. 머리 위까지! 그러면 우리 삶의 바닥 슬픔이 세상 끌고 가는 힘이란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 배한봉(시인. 《시인시각》 편집주간)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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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언론기사 2006. 2. 14. 15:11

이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텨왔다 그러나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뜨개질을 하신다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뜨고 계신다

-> 출처 : 포스코신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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