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는 시인이다 / 이재훈
시인에게 시란?
김상훈 기자 icon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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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다 / 이재훈
김춘수(1922~2004) 시인은 "김수영(1921~1968) 시인이 평생의 라이벌이었다"고 했다. 그는 실제 김수영과 만난 적은 없었다. 서울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김수영 집으로 전화를 했던 김춘수. 김수영은 당시 집에 있었지만 만취해서 전화를 도저히 받을 수 없었다. 두 라이벌의 만남은 그렇게 미완으로 끝났다.

김춘수는 왜 김수영을 라이벌로 생각했을까.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몸소 겪어야 했던 김춘수는 이데올로기, 사상, 역사에 대한 회의감을 많이 느꼈다. 그것은 그가 평생 역사허무주의자란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이유였다. 물론 현실에 대한 울분으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란 시를 쓰기도 했지만 그의 본래 의식은 역사허무주의였다.


고 김춘수·허만하 등 35명 대담
'시론·개인사' 생생한 육성 담아

김춘수 시인은 라이벌로 여겼던 김수영 시인(오른쪽 작은 사진)이 참여 시인의 길을 걷자 내면세계를 더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부산일보DB

역사와 현실의 문제에 등을 돌렸던 김춘수는 1968년 김수영의 '풀'을 보게 됐다. '풀'은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풀에 빗대어 쓴 시로 김수영을 대표적인 참여 시인으로 만든 작품. 김춘수는 '풀'을 보며 '내가 써보고 싶었던 것을 벌써 썼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라이벌 의식과 질투심을 느꼈다. '나보다 선수를 쳤구나' 하는 생각에 김춘수는 더 의식적으로 내면세계에 침잠하게 됐다. 김수영은 '풀'을 쓰고 나서 보름 만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았던 김수영은 김춘수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자극을 줬다.

1999년 허만하 시인이 3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들고 문단에 다시 나왔을 때 한국 시단은 경탄의 눈빛을 보냈다. "어설픈 사고와 감상의 대중적 푸닥거리와 쉬운 위안이 유행하는 시대에 이만큼 깊이 생각하고 끈질기게 생각하는 시인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김우창)" "지난 천 년의 막바지에 마치 스톤헨지의 유적처럼 발굴되었다(정과리)" 등 호평이 이어졌다.

부산 고신대 의대교수를 지내며 병리학자와 시인의 길을 걸어온 허만하 시인. 그는 두 가지 길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끌어왔을까. 그는 "내가 시를 지켜주기도 했지만, 시 또한 나를 지켜 주었다"고 했다. 그는 생활인과 예술인의 길이 공존했던 30년 간 삶의 궤적을 데리다의 말로 압축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독립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의지해서 존재하는 상관적 존재'라는 사실!

유안진 시인은 대학 2학년 때 시작 노트를 들고 박목월 시인을 찾았다. 그는 박 시인과 설렁탕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됐다, 소금 그릇이 박 시인 그릇 옆에 있자 유 시인은 그것을 가져올 용기가 없어 설렁탕을 맹탕으로 먹었단다. 그 과정을 알고 있었던 박 시인은 그 일을 훗날 수필로 썼다. 유 시인에 대해 '저렇게 숙맥인 걸 보니까 시는 제대로 쓰겠구나'라는 평가를 남겼다. 그 뒤 유안진 시인은 박목월 시인이 '현대문학'에 추천한 10명 안팎의 시인에 드는 영예를 누렸다.

'나는 시인이다'는 월간 '현대시' 부주간인 저자가 2001년부터 10년간 시인들과 나눈 이야기를 묶은 대담집이다. 저자는 이미 작고한 김춘수, 오규원, 박찬 시인을 포함해 허만하, 서규정, 배한봉, 성선경과 같은 부산·경남지역 시인 등 35명을 인터뷰했다. '현대시', '유심' '열린시학' 등 문학잡지에 실렸던 원고들을 모았다. 시인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시와 시론, 내밀한 개인사를 접하고 나니 그들의 시들이 새롭게 보인다. 이재훈 지음/팬덤북스/570쪽/1만8천 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newsId=20110401000193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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