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생태와 내면의 쓸쓸한 풍경


이재훈 시집 '명왕성 되다' 발간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Plutoed(명왕성 되다)'는 미국 방언협회에 의해 '2006년의 단어'로 선정된 신조어다. 국제천문연맹(IAU)이 명왕성의 태양계 행성 지위를 박탈한 뒤 'Pluto(명왕성)'라는 단어에 '가치를 떨어뜨리다, 소외되다'는 의미가 추가됐다.

시인 이재훈(39)은 도시 속 익명과 소외를 드러내는데 이 단어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2005년 이후 6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민음사 펴냄)에서다.

시인은 이 시에서 출퇴근길 지하철 2호선을 탄 도시 생활인의 팍팍한 정신세계를 전했다. 이 '도시인'은 주변 제약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눈만 감고 만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중략)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 소리. 단추 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명왕성 되다(Plutoed)' 중)

시인은 이처럼 시집에서 도시를 탐구 대상으로 삼았다. 도시의 생태와 자신의 내면을 결합해 쓸쓸한 풍경을 그렸다.

"의욕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미소를 연습한다. 수많은 거울 앞의 표정들. 낯선 얼굴, 낯선 침묵. (중략) 나는 육십억 분의 일일 뿐. 페트병에 가득 담긴 담배꽁초와 찌그러진 맥주 캔. 먹다 남긴 컵라면. 참기 힘든 소음. 역겨운 화장 냄새와 비둘기 똥 냄새로부터.('매일 출근하는 폐인' 중)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고 노래한 '남자의 일생'은 이 시대에 남자로 살아가는 고충을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과정으로 씁쓸하게 비유했다.

제약과 구속에 시달린 시인은 마침내 초월을 꿈꾼다. 하지만 그 시도는 현실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초월적 공간을 꿈꾼다. '근원'을 찾는 것이다.

"나는 근원을 바랐다./기적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중략) 언덕이 있는 곳은 월곡(月谷),/달빛이 있는 골짜기다./언덕을 오르고/또 한 언덕을 오르면/마치 기적처럼 달빛에 닿는,/존재의 비밀을 한순간에 깨칠/그런 순간이 올 수 있을까."('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 중)

문학평론가 조강석은 "이 시집의 기저를 맴도는 덩어리진 목소리는 일용근로자의 피로와 백수건달의 자책과 독학자의 자부심과 시인의 기상이 한데 배어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48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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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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