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혹은 할퀴며 키스하기


이승훈
(시인, 한양대 교수)




젊은 시인 이재훈의 <햇살의 집>(정신과 표현, 11 12월호)을 문제 삼는 것은 그의 이름이 나하고 비슷해서가 아니다. 일부에선 친척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린 친척이 아니다. 글쟁이들은 언어를 먹고 사는 자들이어서 그런지 말들이 많다. 그것도 문학 이야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뒤에서 헐뜯는 말, 있지도 않은 스캔들 만들기. 그러나 이재훈은 이 시에서 스캔들을 만들지 않는다. 그가 만드는 것은 햇살에 대한 새로운, 산뜻한, 신인다운 감각이다. 시인은 우선 감각이 예민해야 한다. 둔한 감각으론 안 된다. 병적으로 예민한 감각도 문제지만 그래도 둔한 것들보다는 낫다. 너무 예민하면 지나가는 말 한 마디에도 상처를 받고, 가을 햇살에도 상처를 받는다. 상처를 이기는 방법,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법, 나를 지키는 방법, 그것은 술마시기이다. 얼마나 좋은가? 이 시에서는 햇살도 술을 마신다. 시의 앞부분은


햇살이 술을 마신다. 거리는 방금 목욕을 한 것처럼 뽀얗다. 나는 버스 속에 앉아 술에 취해 이글거리는 햇살을 본다. 한 소녀가 버스에 오르며 묻는다. 이 버스는 천국으로 가나요? 햇살이 일그러지고 사람들이 비틀거린다. 광화문 네거리. 한 복판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 동상이 흠씰 움직인다. 칼자루를 놓고 싶다 후손들아! 꽃잎이 비틀거리며 이글거리는 햇살 속으로 날아간다.


와 같다. 햇살이 술을 마시니 햇살은 얼마나 좋겠는가? 이재훈은 버스에 앉아 술에 취한 햇살을 본다. 햇살은 빛이고, 거울도 빛이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 거울을 바라보고, 거울은 술에 취한 빛으로 가득 찬다. 나르시시즘의 황홀. 또한 이 빛은 꽃잎이고, 그러므로 꽃잎도 취하고, 물론 이재훈도 취하고, 이 글을 쓰는 나도 취한다. 버스에 오르는 소녀가 “이 버스는 천국으로 가나요?”라고 묻는 것은 그 소녀도 취했기 때문이다. 취하지 않고 어떻게 환한 대낮에 소녀가 말도 안 되는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소녀가 술에 취한 게 이상하지만 소녀도 인간이다.
광화문 네거리의 이순신 장군이 “후손들아!”라고 소리치는 것도 우습지만 아마 그도 술에 취해(대상 동일시)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고, 한편 이 소리는 정신차리라는 소리인 것 같지만 취한 판에 그런 소리가 들릴 리 없다. 결국 이런 현란한 감각은, 빛의 황홀은 모든 대상이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대상과 나는 매혹의 관계에 있다는 것, 매혹의 변증법과 통한다. 물론 햇살은 집이 없다. 햇살은 빛이고, 빛은 거울이고, 거울이 술을 마신다. 거울을 통해 내가 존재함으로 나도 술을 마신다. 거울, 빛, 반영(reflection)은 반성이고 사유이고 통찰이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다만 내가 빛들의 조각이고, 파편이고, 이 파편들의, 매혹의, 황홀한 테러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이론가(theorist)는 테러리스트(terrorist)인가? 역시 늙은 감각보다 젊은 감각이 좋다.

― 이승훈, <햇살 혹은 할퀴며 키스하기: 나는 무엇을 아는가?>, 문학사상, 2000년 12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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