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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17 윤성근의 시 <엘리엇 생각> 낭독

윤성근의 시 낭독

 http://www.munjang.or.kr/mai_multi/djh/content.asp?pKind=14&pID=24

 

 

윤성근, 「엘리엇 생각」

 
 
내가 짧은 능력과 식견으로 돼먹지 않은 두 편의
미간행 장시를 발표한 것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나는 당신을 닮고 싶었던 것.
 
그러나 될 일도 될 턱도 없어 가슴에 묻고
예이츠도 키츠도 셰이머스 히니도 딜런 토마스도 아닌
많은 시인들 가운데 또 김수영도 정지용도 미당도 이상도 아닌
그 숱한 위대한 시인들 가운데 유독 당신 하나만을
칭송케 되었는데
 
어느 해 크리스마스 무렵 술 취해 막 이사한 아파트를 못 찾아
택시에서 어추어추 30분 이상 헤맬 때
당신의 시 「네 사중주」의 일 절 우리가 부단히 애써 인생을 살면
처음인 그 끝자리로 돌아오게 되리란 구절이 떠올라
곧장 택시 내린 곳으로 돌아와
뒤돌아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 성큼 집으로 찾아 들어갔던 것.
 
혹시 이런 모습을 시인이 내려다보고 있지나 않을까 해서
일순 계면쩍어하면서.
 
 
시_ 윤성근 - 1960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 시집 『우리가 사는 세상』『먼지의 세상』『소돔』『나는 햄릿이다』『나 한사람의 전쟁』 등이 있음. 2011년 영면함.
낭송_ 이재훈 - 시인.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가 있음.
출전_ 『나 한사람의 전쟁』(마음산책)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발표했다는 시인의 미간행 장시가 궁금하다. ‘도시서정’이라는 말이, 요즘의 ‘미래파’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시단에 회자되던 시절이었다. 윤성근은 이 도시, 서울의 ‘착란과 착란으로 얼빠진 얼굴들’(엘리엇의 「네 사중주」에서)의 잿빛 그림자를 시니컬하게, 그러나 유머러스하게 보여준 시인이었다. 참으로 유니크한 시를 썼던 이이가 생전에 마지막 시집을 낸 게 1992년이니, 20년 가까이 그는 대체 왜 침묵했단 말이냐? 하긴 20년이란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지만, 너무도 짧은 하루들의 한 덩어리일 따름이다. 20년, 금방이다. 아주 가끔, 윤성근 씨는 이제 시 안 쓰나 생각했을 뿐, 20년이나 지난 줄 나도 몰랐다. 미안하다…….
  「엘리엇 생각」이 실린 『나 한 사람의 전쟁』은 유고시집이다. 절박한 병상에서 쓴 시들이 어찌나 맑고 따뜻하고, 꾸밈없고 거침없는지! 「엘리엇 생각」도 찬물을 들이키듯 시원스레 썼다. 만취해서도 시를 줄줄이 욀 정도라니. 엘리엇에 대한 시인의 순정이 미소롭다.
  친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그를 ‘차도남’ 혹은 ‘까도남’이라 생각했었는데, 『나 한사람의 전쟁』을 보고 좀 놀랐다. 실은 이렇게 정 많고 온유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받은 그 인상은 그의 수줍음 때문이었나? 아니면, 그의 시에서 받아온 인상 때문?
  그가 소장한 SF소설을 한 트렁크씩 몇 차례 빌려 본 기억이 난다. 그의 아내를 통해 빌린 것이지만, 그가 아주 까칠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던 듯하다.
  술과 헤비메탈과 SF소설을 사랑했던 시인, 윤성근. 삼가 명복을 빈다.
 
문학집배원 황인숙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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