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라디오 시콘서트(DJ 배우 강성연) <詩詩한 시간> 추석특집에 출연했다.

손택수 형이 고정게스트로 참여하는데, 택수형과의 친분으로 한번 더 방송에 나가게 되었다.

고향에 관한 시를 낭송하고 얘기하는 자리.

나는 내 시 <모운동>과 김영남 시인의 <그리운 옛집>을 낭송했다.

<모운동>이라는 시는 <영월에서 온 편지>라는 시를 개작한 작품이다.

그럼으로 나는 <모운동>이라는 작품을 2편 가지게 되었다.

'모운동'은 내가 태어난 곳,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주문리(모운동)의 지명이다.

지금은 지명이 김삿갓면으로 바뀌었다.

지명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모운동'이 가진 구름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을 곱씹었다.

'모운동'은 구름처럼 떠돌며 살다간 김삿갓((난고 김병연)을 이곳으로 다시 오게 했고

탄광마을로 북적이던 사람들이 구름처럼 흩어져 고요한 마을로 되돌려 놓았다.

모운동은 지금 산골오지마을 트래킹 코스 등으로 새롭게 알려지고 있다.

 

나는 김삿갓의 혼이 담긴 곳과 가장 가까이에서 태어난 시인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운명이라는 걸까. 이십대까지 구름처럼 전국을 떠돌며 살았고, 시를 쓰고 있다.

 

방송듣기

http://home.ebs.co.kr/reViewLink.jsp?command=vod&client_id=story&menu_seq=23&enc_seq=3121737

 


모운동(募雲洞)

 


이재훈

 


최초로 지상의 하늘을 보여준 건 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하늘을 이고 다녔고
광업소 앞에는 검은 작업복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광부들은 하늘을 보며 눈살을 지푸렸는데
하늘이 너무 무거워 그런 거라고 했다
옥동중학교 창가로 새어드는 햇살
나는 학생들의 까까머리 위로 날리는 백묵가루를
손에 쥐려고 울기도 했다
아버지는 나무 강단에서 하루 종일 백묵가루를 마셨다
저녁이 되면 아버지의 어깨엔 하늘이 뱉어놓은
검은 말의 찌꺼기가 내려앉았다
비가 새는 방에 누워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려고
양은냄비를 머리맡에 놓아두기도 했다
그런 날엔 노래부르는 꿈을 꾸었다
새벽에 목이 마르면 냄비에 고인 빗물을 벌컥 들이켰다
하늘이 내게 준 건 달았다
관념의 허위와도 곤궁한 생활과도 바꿀 수 없는
쓸쓸함을 하늘에게서 배웠다
그땐 겨드랑이 밑에 어둠이 있었는지 몰랐다
광부들이 하늘을 보며 왜 눈살을 찌푸리는지 몰랐다
새벽녘 예배당 마룻바닥에 엎드려 자고 있는 아이
방석에 축축이 얼룩진 영혼의 땀내
내 슬픔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구름이 모인다는 하늘 아래 첫 동네
우리는 그 해 그곳을 떠나왔다

 

* 모운동(募雲洞)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하동면) 주문리. 만경대산이 품고 있는 해발 700미터 마을.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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