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 137인 선언문

 

 

 

 

 

 

 

 

 

 

 

 

 

 

 

 

 

 

 

 

 

 

 

 

 

 

 

 

 

 

 

 

 

 

 

벌써부터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려는가!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신 권력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통제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첫 인사로 자신의 입인 수석대변인 자리에 거칠고 표독한 언사로 절반의 국민을 ‘국가전복세력’으로 몰아간 극우 언론인 출신을 임명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선보였다.

 

문재인 전 후보를 지지한 인사들을 두고 “정치적 창녀”라고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내뱉고, "박근혜 당선인에게 투표하지 않은 48%의 국민은 반(反)대한민국 세력이고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는 세력"이라며 절반의 국민을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망언으로 모욕한 자를 수석대변인으로 임명한 박 당선자는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려는 것인가.

 

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은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대선 과정에서 언론매체에 정권 교체를 염원하는 광고를 실었다는 이유로 문학인 137명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판정을 내리고 이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손홍규 소설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사태다.

 

137명의 젊은 문학인들은 자신들의 문학적, 사상적 양심이 이끄는 바에 따라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적법하게 공표했을 뿐이다. 그들은 선언문에서 “우리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은 조금이라도 삶의 고통이 덜어질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조금이라도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세상을 바란다. 그 출발이 정권교체에 있음을 절실히 공감한다”고 주장했다. 무엇이 잘못인가. 그들 의 주장 중 어떤 대목이 선거법을 위반했는가.

 

문학인은 ‘표현의 자유’란 이름의 산소를 마시는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존재들이다. 작가가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시인이 양심을 노래하지 못하는 세상은 이미 죽은 사회다. 박근혜 당선자는 문학인들을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현대판 홍길동으로 만들려 하는가.

 

극우 파시스트 칼럼니스트를 대통령 당선인의 수석대변인으로 임명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젊은 작가들의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 박근혜식 대통합인가. 선거가 끝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런 반민주적 행태부터 보이는 것인가. 취임도 하기 전에 공안통치를 시작하겠다는 것인가. ‘분서갱유’에 나서겠다는 것인가.

 

민주주의는 절차로 시작되고 내용으로 완성된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국민은 물론 그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도 투표라는 절차에 승복해 차기 정부가 성공적으로 출범하기를 원하고 있다. 박 당선인이 이명박 정권 아래서 상처 입은 한국 민주주의를 치유하고 그 내용을 채워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첫 조치가 48%의 국민을 반(反)대한민국 세력이라고 침 뱉은 인사의 중용인가. 작가들의 선언문 발표에 대한 보복과 탄압인가.

 

박 당선인은 분명히 답해야 한다. 지금 일련의 조치들이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사고체계의 소산인지를. 이게 그가 앞으로 펼칠 문화예술 정책의 실체인지를.

박 당선인은 윤창중 수석대변인의 임명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선관위도 젊은 문학인들에 대한 고발을 즉각 취하하고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 국민들이 자신의 행보를 눈 부릅떠 지켜보고 있음을 박 당선인은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2012년12월26일

부산작가회의

 

 

 

국민대통합을 위하여 분열과 보복 행위를 중단하기를 촉구한다

- 선거관리위원회의 젊은 문인 137명에 대한 고발을 규탄한다 -

1987년 6월 항쟁의 뜨거운 열정의 대가로 이룩한 대한민국 제6 공화국은 이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반세기에 걸친 민주화의 대장정은 때로 난관에 부딪치기도 하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때로는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정부가 구성되기도 했고, 민주화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조차도 민의를 담은 결과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묵묵히 민주주의의 구현에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일반인들에게는 하나의 정치적 행사에 불과했을 수도 있는 18대 대통령 선거를 실낱같은 희망으로 삼고 있다가 급기야 목숨을 바쳐 시대에 항변했던 노동자, 시민활동가들을 생각하면 목메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반이 느꼈을 좌절과 절망에 연민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선거 절차를 걸쳐 정권을 연장한 대통령 당선인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였을 때 부르짖었던 새 시대, 국민대통합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러나 공약으로 부르짖었던 국민대통합의 메아리가 채 사라지기 전에 분열과 보복의 징후가 먼저 드러나고 있다. 젊은 문인 137명이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정치적 견해를 언론매체의 광고지면을 통하여 공개하였다는 이유로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을 한 것이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사실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이다. 그러한 문학을 창작하는 문인은 시대정신을 누구보다도 먼저 감지해야 한다. 그것은 현실과 괴리되어 이루어질 수없는 것이다. 문인들은 우리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고, 때로 당위와 현상이 유리될 때는 과감히 자신의 신념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문인의 사명이고 존재 이유인 것이다. 문인으로 하여금 일상을 외면하게 한다면 결국 음풍농월이나 일삼는 사문으로 전락시키거나 용비어천가를 외치는 어용기사를 양산할 뿐이다. 설사 그것이 독단과 편견으로 점철된 것이라 하더라도 문인이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는 권력이나 재력으로 눌러서는 안 된다. 하물며 정당한 방식과 합리적 절차에 의거하며 전개한 문인의 목소리를 처단하려하는 것은 시대와 역사를 거스르는 착오가 아닐 수 없다.

 

공정한 선거 관리는 금권이나 압력에 의해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거기에 유권자로 하여금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비밀선거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공개함으로 파생되는 사회적 정서적 불이익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일련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공개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 정당한 권리이며 합법적 정치 행위이다. 현행 선거법에서 단체 명의의 지지선언을 금지하는 것은 단체의 구성원의 일부 혹은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목소리가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다.

 

따라서 개인 명의의 선언 또는 공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독재자’라는 단어나 ‘정권교체’라는 명제가 포함되었다고 위법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선거법이 가진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말꼬리 잡기일 뿐이고, 결국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는 18대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일련의 문화예술인들에게 날리는 경고일 것이고, 문인의 입에 재갈을 물려 결국 자기검열을 하도록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가 이를 필두로 의사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적 절차에 의한 신념의 개진을 위축시키려 는 의도로 보인다. 이것이 과연 18대 대통령 당선인이 언급했던 국민대통합에 걸맞은 것인가. 혹시 대통합이라는 것이 획일성과 교조성을 지향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 국가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서 당연히 다양성과 당파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를 어우르는 것이다. 효율성과 추진력이 떨어지더라도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때까지 설득을 하고, 그 결과는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의 온당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의견과 상반되는 것이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설득하며, 절차적 민주성을 담보해 내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고발된 문인들에 대한 검경의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며, 선거관리위원회는 더 이상 분열과 반목를 획책하는 행위를 중단하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차기 정부를 구성할 당선인과 그 세력은 보복과 압력으로 국민을 위협하는 행위를 할 것이 아니라, 비판과 저항을 겸허히 수용하여 국민대통합을 이루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12년 12월 27일

(사) 한국작가회의 대구광역시지회 (대구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성명서] 군사정권 검열의 잣대로 표현의 자유를 포박하려는가!

‘새 시대, 국민대통합’을 내세우고 정권을 연장한 새로운 권력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당혹스럽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대선을 앞두고 137명의 양심적인 젊은 작가들이 경향신문에 낸 광고를 문제 삼아 12월 25일 손홍규 소설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새로운 권력의 눈치 보기로 밖에 볼 수 없는 이 조치는 서명에 동참한 137명의 작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작가적 양심에 입각해서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모든 작가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협박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늘,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회원 작가들은 이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우리 작가들은 지난 이명박 정권하에서 유인촌 문화부장관이라는 자가 휘두르는 칼날에 의해서 충분히 상처받았다. 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과 KBS사장이 보복성 사퇴를 강요당했고 한국작가회의의 경우 “정부보조금을 줄 테니 집회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강요받기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박근혜 당선자의 아버지이자 18년간이나 이 나라의 언론과 문화예술계 숨통을 조여 온 박정희 군사정권의 압제에 의해서 수많은 언론인 작가가 투옥되고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 과정까지도 목도했다.

 

새 시대, 국민대통합을 외치던 당선자 진영의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정권이 채 출범도 하기 전에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선관위가 뒤늦게 작가적 양심과 그에 입각한 표현의 자유를 선거법이라는 법적 저울대 위에 올려놓고 시험하려드는 이 반문화적 작태에 대해서 우리 작가들은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한 정권이 이 땅의 진보적 작가들을 향한 문학적, 정치적 상상력에 대한 검열이자 문학적 위의(威儀)에 대한 도전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근혜 당선인과 서울시선관위에 요구한다. 이 시대의 가장 낮은 자들 곁에 서서 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대변하려했다는 이유만으로 알량한 법조항을 들이대고 젊은 작가들의 정치적 상상력에 칼날을 들이대는 그 모든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이 문제는 작가 손홍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처벌하려한다면 서명한 137명 모든 작가들을 소환해서 처벌하라. 그리고 그들과 같은 꿈을 꾸었으나 서명에 동참하지 못한 나머지 작가들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처벌하라. 우리도 137명의 작가들처럼 “조금이라도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세상”을 바랐고“ 또한 ”그 출발이 정권교체에 있음을 절실히 공감“해 왔다.

 

 최근 정치적 반대자를 향해 “국가전복세력” "정치적 창녀"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 윤창중 인수위 수석대변인 임명과 국민대통합위원회 김중태 부위원장 임명을 보면서, 부자감세는 포기하고 국채를 발행해서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일련의 반민중적 정책들에 대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만일 이러한 우리들의 요구를 외면할 경우 박근혜 정부는 출범도 하기 전에 137명의 작가가 아니라 한국작가회의를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진보적 작가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2012년 12월 28일

(사)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

 

 

 

 

[인천작가회의 성명서] 작가적 양심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을 엄중히 규탄한다!

―선관위의 젊은 작가와 시인 137명 고발에 대한 인천작가회의 성명서―

그 어느 대선보다 치열했던 18대 대선이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선관위는 기습적으로 137명의 젊은 작가와 시인들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집권 여당 측의 공공연한 선거부정 행위에 대해서는 그토록 미온적이었던 선관위의 행태를 고려할 때, 이번 137명의 젊은 작가와 시인들에 대한 발 빠른 고발 행위 속에는 분명 불순한 저의(底意)가 있는 것이 아닌 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들은 ‘현행법 상 위법 행위’ 운운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겠지만, 시대의 양심을 대변하고, 올바른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에 입각한 정당한 권리를 그들의 표현수단인 ‘글’을 통해 행사한 젊은 작가와 시인들을 고발한 것은 문화와 예술에 대한 몰상식의 극치이자 그악스런 도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권 5년을 돌아보라. 노동자와 시민들은 일터를 잃고 죽음의 상황으로 내몰리기 일쑤였고, 주요 매스컴들은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으며, 아름다운 조국 강산은 안보와 자본의 논리 속에서 철저히 훼손돼 오지 않았던가. 국민들의 고통은 한계상황에 이르렀고, 절망 속에서 분노를 키워가야만 했던 통한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통스런 현실을 혁파하고, 좀 더 나은 삶을 희구하는 것은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이자 자존(自尊)을 위한 최소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이번 선거에 임했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바로 이런 마음을 품고 투표장에 들어섰을 것이다.

 

137명의 젊은 작가와 시인들은 바로 위와 같은 비민주적, 반민중적 현실에 주목하고, 그러한 현실을 타파하는 것이 시대정신의 구현이자 작가적 양심의 발로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문학은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이라는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는 당위적 명제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 속에서도 검증되는 바가 아니던가. 일제치하와 독재 정권 시절, 칠흑 같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 조국과 민중을 위한 등불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허다한 작가와 시인들의 희생적 목소리와 선구적 실천을 이 자리에서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에 인천작가회의는 젊은 작가와 시인 137명의 ‘선언’에 대해 뜨거운 공감과 연대의 마음을 재삼 확인하며, 선관위와 사건을 담당할 검찰, 그리고 박근혜 당선자에 대해 아래와 같이 결연하게 요구하는 바이다.

 

일(一), 선관위는 특정 권력의 주구(走狗)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당장 고발을 취하하고 젊은 작가와 시인들에게 사과하길 바란다. 법의 집행에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시기상 그리고 성격상 이번 고발 행위는 분열과 반목을 획책하는 행위이자 문학인 길들이기라는 혐의가 짙다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

 

일(一), 사건을 담당하게 될 검찰은 문화예술인들의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꿰어 맞추기식 수사를 통해 훼손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어느 권력기관보다 우선적 개혁의 대상이 바로 검찰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一), 이번 사건에 박근혜 당선자의 의중이 반영되었든 그렇지 않든, 사건 처리 방식은 새 정부(권력)의 문화 정책과 예술에 대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이다. 자신이 선거 기간 내내 언급했던 국민대통합의 의지를 몸소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만약 위와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인천작가회의는 이것을 문학에 대한 권력의 길들이기이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간주하고, 이 땅의 양심적 문화 예술인들과의 전국적 연대를 통해 지속적인 싸움을 전개해 나갈 것을 밝혀 두는 바이다.

2012년 12월 28일

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

 

 

 

 

우리의 동료 · 벗들은 시대정신을 대변했다

암울했던 유신독재 시절에도 우리의 선배 문인들은 시대를 읽으려고 노력했고 작가정신을 바탕으로 시대와 함께 했다. 그것은 작가의 책무이고 의무이자 사명감이었다. 시대가 작가를 부르고 그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은 작가로서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다. 우리의 동료 · 벗들 137명은 그 시대정신에 부합하려 노력했다.

 

2012년 또 다시 우리는 시대정신을 요구받았고 그 답을 했다는 이유로 동료이자 벗이 서울선관위에 의해 검찰 수사를 받게 되었다. 젊은 시인 · 소설가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시대 상황, 더 이상 지켜볼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성명서로 이어졌다. 기륭전자,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 제주해군기지 등 수 없이 많은 이 땅의 힘없는 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렸고 하루가 멀다며 죽어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서민들의 눈물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수 없기에 나선 것이다.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가. 누가 작가들에게 글을 쓸 시간을 빼앗고 글로 밤을 새워야 할 시간에 성명서를 쓰게 만들었는가.

 

우리의 젊은 동료 · 벗이 고발당하고 작가의 사상을 검증하겠다는 시대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 이들은 앞으로 우리 문학을 이끌어갈 주역들이다. 그들이 느끼는 세상, 사람들, 소외, 가난, 공권력, 소통은 지난 5년간 절망 그 자체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역사를 거스르고 시대를 거슬러 저 유신시대로 회귀하고 있지는 않은가. 137명의 젊은 시인 · 소설가들이 던진 화두는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닌 희망을 잃고 사는 사람들의 삶과 좌절을 그동안 목격했기 때문이다. 피폐해져만 가는 삶들을 보고 모른 체 한다는 것은 작가정신이 아니다. 시대정신이 아니다.

 

이 땅의 젊은 시인 · 작가들은 그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고통스러워했다. 137명의 시인 · 소설가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20·30세대들 역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현실과 미래 앞에 서 있다. 이런 시대에 어떤 글을 써야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젊은 시인 · 소설가들은 말하고 싶다.

 

젊은이들의 입과 귀를 막는 것은 그 어떤 곳이 되었든 미래의 희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통합이라는 말도 쓸 수 없을 것이다. 희망 없는 미래, 희망 없는 우리의 이웃들, 그들을 누가 돌아보았는가. 이런 현실을 바꾸어 보자고 말하는 것은 작가의 의무요 책임이다.

 

서울 선관위가 고발한 작가는 미래 대한민국의 문학을 꽃피울 작가이다. 작가에게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생각의 자유에 대해 스스로 검열을 하게 만든다면 대한민국의 문학도, 표현의 자유도 함께 사장되고 말 것이다. 문학이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 세상에 미래가 없음이 자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한국작가회의 대전지회

 

 

 

 

우리 모두는 138번째 선언자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박근혜 당선자는 선거 기간 내내 국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100퍼센트 대한민국’, ‘정권교체’를 뛰어넘는 ‘시대교체’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당선인 대국민 인사에서는 화해와 대탕평책을 통해서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극복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보듬어 모두가 행복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선거 이후의 상황은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넘어서 ‘화해’의 시대를 열겠다는 당선자의 의지를 선뜻 신뢰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치가 어떤 희망도 줄 수 없다고 판단한 몇몇 노동자들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해’와 ‘행복’을 약속했던 정치세력은 동요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인수위원회의 인사를 둘러싸고 들려오는 잡음은 ‘화해’와 ‘100퍼센트’라는 약속이 한낱 정치적 수사에 그칠 것이라는 의심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선거 기간에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의 의지는 찾아볼 수 없고,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았으리라 여겨지는 세력에 대한 고소·고발과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면서 다수의 국민들은 이것이 긴 ‘겨울공화국’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은 아닌지 벌써부터 두려워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신문매체에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광고를 게재했다는 이유로 실무를 맡은 손홍규 소설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은 비록 한 명의 작가를 고발했을 뿐이지만 경찰조사가 끝나면 나머지 136명도 모두 같은 혐의를 적용해 기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해당 ‘선언문’의 형식을 띤 광고 중에 ‘독재자’, ‘새로운 대통령을 간절히 기다린다.’, ‘정권교대가 아닌 정권교체’라는 부분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로 판단될 수 있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세상을 바란다”라는 문학인들의 선언이 야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해석되어 법의 심판을 받는 상황을 ‘화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는 이 상황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때문에 생긴 선거법 위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견제를 봉쇄하려는 기득권 세력의 탄압이라고 판단한다.

 

문학은 ‘자유’의 공기를 호흡하며 성장한다. ‘자유’가 없는 곳에는 ‘문학’도 없다.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은 권력과 긴장관계를 유지해왔고, 그 긴장을 자양분으로 삼아 창조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돌이켜볼 때 중요한 역사의 장면들에 문학인들이 깊이 관여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정치적 행보는 비단 특정한 권력에 대한 비판을 넘어 모든 권력적인 것에의 저항을 통해서 ‘자유’를 호흡하려는 외침이었다.

 

‘자유’의 공기를 들이마신 문학인들의 ‘기침’, 그것이 문학이다. 우리는 이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불러왔거니와, 그것은 창작에의 자유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정당히 누려야 할 헌법에 명시된 권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특정 후보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상태로 ‘정권 교체’와 ‘삶의 가치’를 주장한 문학인들의 진의를 현실 정치의 논리로 재단하여 수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민주주의의 시간을 되돌리는 반(反)역사적인 구태에 불과하다. 이에 우리는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가 문학인에 대한 고소·고발을 즉각 취하할 것과 검찰이 이 사건을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역사라는 넓은 안목을 갖고 판단할 것을 촉구한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없다면 ‘화해’와 ‘통합’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낡은 구호 이상의 의미가 아닐 것이다. 서울시 선관위와 검찰은 그 선언문에 서명한 137명의 문인들이 같은 뜻을 지녔던 문학인들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간이 촉박해 동참하지 못한 수많은 문학인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기꺼이 138번째 선언자가 될 의사가 있다.

 

기록적인 한파가 한반도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이 유독 추운 것은 비단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울산과 평택의 송전탑 위에선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이 진행되고 있고, 제주도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함께 살자”라고 절박하게 외치는 가난한 자들이 있다. 이들의 삶에 희망을 드리우지 못하는 한 ‘100퍼센트 대한민국’은 또 다른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되고 말 것이다. 진정한 ‘화해’란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헌법적 권리에 따른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권력기관의 압력에 의해 저지당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서울시 선관위와 검찰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2012년 12월 28일

(사)한국작가회의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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