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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4 강성철_ 이재훈의 <안드로메다 바이러스> 평


안드로메다 바이러스


이재훈


그대들은

나를 외계인이라 불렀지.
난장이라고도 불렀으며
그냥 ‘꽃’이라고도 불렀지.
나는 원래 눈이 하나인 키클롭스를 사랑했고
피부가 검은 육체를 사랑했지.
피비린내 나는 이 행성에
착륙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잔혹한 DNA를 가진 종족들을 보고야 말았어.
내 고향에서 십만 광년이나 떨어진 땅.
처음엔 검은 땅과 푸른 바다와 하늘이 끔찍했지.
왜 지구에 사는 종족들은 땅에 붙어서 다닐까.
마음껏 날고 싶었지만,
이곳에 살기 위해선 참아야 했어.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팔과 다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매일 괴로웠지.
비명과 고통이 반복되었고,
숭배할 대상은 이 땅에 없었어.
몇몇은 돈을 숭배하기도 했지만,
정작 아름다운 살육을 보지는 못했어.
아름다운 역사도 간혹 있었다지만
이곳의 풍습은 선량한 것들만 쓰게 하지.
결국 이 세계는 수학의 아름다움이 지배해.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남겨진 숫자의 아름다움.
그 미학으로 서로의 키를 재고 우쭐거리지.
팔등신은 수로 만들어지는 것.
조화의 아름다움은 방황으로 만들어지는 것.
지구인이라는 종족은 말이야.
가끔씩 약속을 어기고 방사능을 누출하곤 하지.
나는 거대한 건물 속으로 몸을 숨겼어.
하얀 가루가 폭발하고
그 가루가 내 몸에 달라붙었지.
해독크림을 발랐지만 너무 늦었어.
갑자기 사위가 연기로 가득 찼어.
손전등을 빌려 친구들과
살아나갈 도주로를 찾았지.
눈을 뜨니
세상은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었어.
아름다운 북극의 얼음 위에서
지혜의 말들을 외울 거야.
그대들은 나를 북극에 핀 꽃이라 하겠지.
외눈박이 육체를 사랑하는 나를 말이야.


안드로메다 바이러스로 인해 지구 종말을 앞둔 미래 지구에서 안드로메다 바이러스와 그 퇴치법을 암시한 힌트를 현재 지구로 보내오면서 시작되는 영화 <안드로메다 바이러스>. 그 힌트를 이진법의 ‘숫자’ 등으로 해석해본 결과, 무언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의미의 원형 도형과 미래 지구에는 없는 안드로메다 바이러스 퇴치제인 해저 미생물 이름. 이 해저미생물로 안드로메다 바이러스가 거의 퇴치되어가다가 인간의 탐욕에 의해 퇴치제가 멸종되고, 동시에 누군가의 음모로 안드로메다 바이러스 샘플은 우주를 통해 미래로 보내져 미래 지구를 멸망으로 이르게 하는데…….
요즘 ‘신종 플루’, ‘아이티 지진’, ‘환경 재해’ 등으로 나타나는 지구 종말론의 일단을 보여주는 이 영화를 모티프 삼아, 이재훈 시인은 <안드로메다 바이러스>라는 시적 화자가 되어 지구의 타락상에 대해 선지자처럼 경고한다. 지구인들이 “눈이 하나(원형 도형을 상징)인 키클롭스를 사랑”하는 자신을, ‘외계인’ 등으로 불렀는데, 착륙하지 말았어야 할 지구라는 행성에 와 “잔혹한 DNA를 가진 종족들을 보고야 말았”다고 한다.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팔과 다리”를 가진 인간들은 왜 땅에 붙어만 다닐까? 괴로움과 비명과 고통이 계속되는 피비린내 나는 이 땅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마음껏 날고 싶었지만, 살기 위해 모든 끔찍한 일들을 참아야만 한다고 한다. 숭배할 대상이 없는 이 행성에서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살육은 있었지만, ‘노아의 방주’나 ‘소돔과 고모라’처럼 아름다고 정의로운 살육은 없었다고도 한다.
“아름다운 역사도 간혹 있었다지만/ 이곳의 풍습은 선량한 것들만 쓰게 하”는 이곳 지구는, 더하고 곱하고 빼는 계산적인 인간들과 ‘수학의 아름다움’만 존재한다고 한다. 바벨탑처럼 빌딩을 높이 쌓고, 서로의 키를 재고 ‘36, 24, 36’의 S라인 성형미인 등 ‘숫자의 아름다움’이 지배하는 곳인 지구라는 행성. 이곳 사람들은 “가끔씩 약속을 어기고 방사능을 누출하곤 하”여, 시적 화자인 ‘안드로메다 바이러스’가 지구를 멸망시키기도 전에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간다고 한다. ‘안드로메다 바이러스’는 지구의 몇몇 의인義人인 친구들과 ‘노아의 방주’를 타고 아수라장인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 빙하기가 지배하는 북극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노아처럼 “지혜의 말들을 외”우며 ‘동그란 눈의 외눈박이’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꽃으로 불려질 것이라고 한다. (강성철)

_ 강성철 시평집, <시 읽어주는 은행원>, 한국문연, 2010.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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