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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21 이재훈의 <기타가 있는 궁전> 읽기

기타가 있는 궁전

 

 

이재훈

 

 

아버지가 기타를 연주하십니다. 나는 아버지의 다리 밑에 누워 있습니다. 기타에서 떨어지는 마른 고독이 목젖을 열게 합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말들이 우르르 목덜미로 떨어집니다. 말들이 저 밖으로 퍼지지 못하고 등 뒤로 차오릅니다. 나는 말 위에 떠 있고, 아버지는 저 말 속에 계십니다. 내가 뱉어놓은 검은 말 속에서 기타를 연주하십니다. 말이 진화하면 물이 된다지요. 고도로 단련된 연금술인 셈입니다. 허공에 산화되어 사라지는 말을 만들어 냅니다. 그제서야 저는 말을 배웠습니다. 내 말은 이미 물이 되었습니다. 물속에서 기타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버지가 기타를 연주하신 곳은 궁전이었다고 합니다. 그 궁전의 돌계단이 너무 높았지요. 다리가 아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곤 노래 위를 떠다녔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했던 기억의 꽃잎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립니다. 검은 말들이 기타의 현을 먹고 저렇게 아름답게 치장을 하다니. 참 감동스럽습니다.

겨울이 오고 말들이 얼어붙습니다. 저는 도끼로 말들을 내려칩니다. 얼었던 말의 입이 쩍 벌어지고 피가 솟아오릅니다. 아버지, 제 말이 자꾸만 피가 됩니다.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들려옵니다. 등 뒤로 솟는 피가 참 따뜻합니다.

 

-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문학동네) 중에서

 

 


 

 

 

이재훈의 「기타가 있는 궁전」을 읽으면서 어떤 연주가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생각했다. 하나의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여러 사태들을 연쇄적으로 이끌어낼 때, 그 사태는 사건으로 전화된다.

이 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은 아버지의 기타 연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아버지의 연주를 시적 화자는 자주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연주에서 “마른 고독”을 듣게 될 때, 그 연주는 사건으로 전화된다. 저 연주가 “마른 고독”임을 감지하는 순간 시적 화자의 목젖이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여, 열린 목젖은 노래를 불러일으키고 “나는 말 위에 떠 있”게 되며 아버지는 “내가 뱉어놓은 검은 말 속에서 기타를 연주하”시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시적 화자가 부르는 노래의 말이 물로 진화하게 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물과 같이 흐르는 노래는 말의 궁륭을 이룰 수 있게 했던 것이어서, 아버지는 그 궁륭의 궁전에서 연주하시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시적 화자의 노래를 불러일으켰던 것이 아버지가 연주하는 “기타에서 떨어지는 마른 고독”이었음을 상기해본다면, 말이 물로 진화될 수 있었던 것은 고독하게 말라버린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슬픔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그 고독과 슬픔은 어떤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한 사람을 사랑했던기억의 꽃잎들”인 “검은 말들”이 그 죽음을 암시한다. “검은 말들”에 기타의 현을 먹이는 아버지의 연주는 죽어버린 연인에 대한 “기억의 꽃잎들”을 반짝거리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가 “뱉어놓은 검은 말”이란 결국 기타 연주로 현현한 아버지의 검은 말들을 미메시스한 것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교묘하게 시간은 순환되는데, 화자가 자신의 “검은 말”에 아버지를 유폐한 것은 바로 아버지가 연주로 전화시킨 “검은 말들”에 미메시스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의 순환이 가능한 것은, “등 뒤로 솟는 피가 참 따뜻”하다는 문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아버지와 화자가 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들려옵니다”라는 문장에서 암시받을 수 있듯이 저 일련의 사태들은 화자의 기억과 상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암시 말이다.

그래서 “겨울이 오고 말들이 얼어붙”은 것 아니겠는가. 하여, 이재훈 시인에게 시 쓰기란 그 얼었던 말들을 도끼로 내려쳐서 그 말 속의 피―아버지의 피이기도 할―를 솟아오르게 하는 것이다. 말을 피가 되게 하는 시 쓰기는 아버지의 연주처럼 죽은 연인에 대한 기억―“검은 말들”―에 악기―“기타의 현”―를 먹이는 일이기도 할 터, 결국 그것은 현재 얼어붙어 있는 ‘사건’―“마른 고독”을 떨어뜨리는 아버지의 기타 연주-을 다시 기억하여 되찾는 일인 것이다.

- 이성혁(문학평론가)

 

출전 : <시사사>, 2014년 1~2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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