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어떤 시들은 「동경」과 같이 모호하고 막연한 추측들을 불러일으킨다. 좋은 시는 비평의 언어는 물론이고 스스로 시 자신의 언어까지 망설이고 머뭇거리게 하는 동시에 거리낌 없이 질문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든다. 즉, 비평이 그리고 시가 시를 동경하도록 이끈다는 말이다. 구체적인 감각 속에 모호하고 신비한 추상을 숨겨놓은, 이 동경의 힘은 이재훈 시를 이끄는 주요 동력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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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을 먹는다니, 이 기이하고 신비한 허기는 분명 시인의 것이라 불릴만 하겠다. 거식증 환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자가 아니라 무(無)를 먹는 자라는 라깡의 말을 변주하면, 시인이 먹는 것은 소멸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울음과 슬픔을 먹는 시들이 있다. 그것을 먹고 그것을 누설하며 어떤 비밀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시들. 이에 반해 이재훈의 시는 울음과 슬픔의 소멸을 먹는 시다. 이재훈은 울음과 슬픔을 양식으로 삼지 않는 그것들을 울음으로 울겠다고 하며 그 울음이 자신의 몸을 녹여서 비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비밀이 되지 않는 슬픔이란 얼마나 누추한 것인가. 울음과 슬픔의 격식이 상실되기 쉬운 자기 과시의 시대에 시인은 그것을 단단한 종의 울림처럼 쏟아내려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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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시는 그렇게 고통 속에서 망각과 소멸과 파멸을 말하지만, 그의 시는 망각되지도 소멸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명왕성 되다>에 실린 그의 시들은 모호한 신비의 안개를 걷어내고 한층 더 분명한 뼈를 보여줄 것만 같다. 그래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날 때마다 이 시집을 다시 꺼내 읽는 일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나는 아직 그가 보여준 고통의 뼈를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한층 더 분명해지기를 기다리겠다는 말이다. 그가 건축한 미궁 속에 이제야 처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

 

_ 송종원, 「시 쓰는 일의 비밀에 관한, 혹은 시가 쓰는 비밀에 대하여」, <시현실>, 2012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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